그와 만나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은 꽤나 독특한 경험이었다. 1시간반 가량 대화를 나누다보니 내가 지구가 아닌 다른 별나라에 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하 17도라는 너무 추운 날씨를 뚫고 1km 정도를 걸어와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대학생들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클래스메이트(Klassmate)를 만든 이두희씨를 만났을 때 나는 잠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멈칫한 상태였다. 원래 나는 권도혁 대표를 만나는 줄 알고 찾아왔는데 권 대표는 마침 자리에 없었다.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니까...대표는 권도혁 님이시고, 이두희님은 개발총괄? CTO? 그렇죠?”
 “저는 그냥 사람입니다. 개발하는 사람.”
 “아, 네...큭.”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너무나 진지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거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보통 이러면 질문에 대한 답을 잘 하지 않는 분이 많은데, 그렇지도 않았다. 인터뷰를 하기엔 너무나 편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한두번쯤 더 생각하게끔 만드는 기이한 유머감각이 있었다. 울트라캡숑. 이름에서부터 4차원적인 냄새가 물씬나는 이 회사를 찾았다.

◆정의감에 불타는 서울대의 전설적인 해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03학번 이두희 ‘사람’은 정의감에 불타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엔지니어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한번도 정의감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스토리를 들으며 정의감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강의를 자발적으로 평가하는 ‘SNU EV(snuev. com)’를 만든 사람이 그다. ‘와플스튜디오’라는 서울대학교 프로그램 개발 동아리에 있던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중이던 2008년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 일종의 강의평가시스템. 서울대의 공식 프로그램은 아니다. 순전히 그가 친구, 후배들과 함께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대 전 학생이 다 사용하는 사이트다. “2월1일에 얼마나 접속했나 보니까 1만명이 들어왔더라구요.” 서울대 재학생은 1만6000여명 수준이니 전교생이 다 쓴다는 말이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그걸 왜 만들었어요? 서울대에도 자체적으로 강의평가를 하게끔 하는 프로그램이 있지 않나요?”
 “있죠. 그런데 그것을 학생들에게 공개를 안 해요. 정작 학생들은 모른다는 거죠.”
 “아 강의 평가 결과를 교수 평가 등의 목적으로만 사용하는군요.”
 “100만원짜리 노트북 하나를 사도 20,30개 리뷰를 읽어보는데 400-500만원 수업료를 내고 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듣는 수업이 어떤 내용인지, 들어본 사람들의 후기는 어떤지 등 정보도 없이 신청해야 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학교다니던 시절에도 그랬는데, 지금도 그런가 보다. 막연하게 선배들의 경험담만 듣고 수업을 신청할 수 밖에 없는 게 대학 강의 신청 시스템의 현실이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딱히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잘 안하는데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들자마자 그날 1000명이 등록을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밖에도 그에 대한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2006년 ‘서울대 정보화 포탈 3만명 신상 정보 유출’을 학교에 가장 먼저 알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도 그였다. 서울대 전산시스템을 해킹해 김태희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꺼내온 사람도 그다. “김태희 사진은 왜 해킹했어요?” “보고 싶어서요.”

<서초동 울트라캡숑 사무실에서 찍은 울트라캡숑 창업 멤버들. 맨 왼쪽이 이두희,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권도혁 대표>

◆그냥 개발이 좋았을 뿐이다
정작 사람 이두희는 창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개발을 계속 했어요.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죠. 개발을 해서 친구들의 삶을 좀 바꿔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는 그래서 생활 자체가 프로그램 개발이었다. 기획? 그는 기획하지 않고 뭔가 불편한 점이 있다고 하면 바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친구들과 그것에 대해 토론을 했다. 와플스튜디오는 그가 주로 거주하는 곳이었다. 서울대 연구실에서 그는 거의 하루종일, 한달 내내, 일년 내내 붙어 있다시피 했다. 그러다보니 별별 앱, 별별 프로그램을 다 만들었다. 노래방 래퍼토리 추천기도 만들었다. 노래를 한번 부르면 그 사람에게 맞는 노래를 추천해주는 그런 프로그램이다.

 서울대학교 앱을 만들기도 했다. 2010년. 학교를 소개하고 지리 정보를 제공하고 곳곳의 다양한 정보나 이야기를 전해주는 그런 앱이었다. 사실 서울대가 만들만한 앱이다. 그런데 그는 이런 앱이 있으면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좋고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싶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이걸 싫어했다. 학교 허락도 받지 않고 만든데다가 학교 정보가 노출된다는 점이었다. 학교에 불려가 주의를 받은 그는 결국 서비스를 몇 달 해보지도 못하고 내렸다. 그래도 한달만에 1000명이 쓸 정도로 학교 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저커버그와 샌드버그?
서울대 연구실에서 살던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권도혁 대표가 그를 찾아오면서부터다. 2010년 11월. 늦가을치고는 꽤나 쌀쌀한 어느날 권도혁 대표가 이두희씨를 찾아왔다. 마침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울트라캡숑 사무실로 권도혁 대표가 들어왔다.

 “왜 이제 오셨어요?”
 “아 두 분 이야기 좀 나누시라구요”
 “그나저나 이두희님을 어떻게 알고 찾아갔어요?” 권 대표에게 물었다.
 “이두희님 친구가 큐박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일 잘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학교를 같이 갔었습니다. 그랬다가 만났죠.”

 이두희는 그때 컴퓨터공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중이었다. 
 “뭘 만들었는지 좀 봅시다.” 권 대표가 그에게 물어봤다. 이두희가 만든 SNU EV를 본 권 대표는 즉석에서 말했다고 한다. “저랑 같이 창업합시다.”

 그렇게 해서 이두희의 창업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바로 아이템을 내놓았다. “그냥 강의 평가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수업과 관련해서 학교에서 항상 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클래스메이트를 만들었죠. 강의 평가도 하고 친구들하고 수다도 떨고 학교 정보도 주고 받고 여러가지를 할 수 있게 했어요.”

 연세대 경제학과 94학번인 권도혁 대표는 졸업 후 베인앤컴퍼니를 다니다 2004년 NHN에 입사했다. 벤처로 성공한 친구들을 보면서 그는 대기업을 다니면서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고정 관념이 산산이 부서졌다고 한다. 나도 벤처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자 이런 마음에 2006년 4월 첫눈에 입사했는데 하필이면 입사한 지 3개월여만에 첫눈이 NHN에 매각됐다. NHN에 있다가 나온 마당에 다시 들어갈 수 없어 자신이 직접 벤처를 해보기로 결심, 미국으로 떠났다. 거기서 큐박스팀을 알게 돼 큐박스를 미국에서 서비스하는 일을 맡았다. 큐박스를 3년 넘게 했을 때 그가 만난 이들이 바로 서울대 와플스튜디오에 있던 이두희와 그의 친구, 동료 등 7명의 개발자들이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뭔가 큰 일을 낼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대로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도 저커버그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두희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샌드버그같은 역할을 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설득했죠. 지금 봐도 이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개발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팀, 어디가서 만나기 힘들 겁니다.”

◆페이스북도 시작은 학교에서 했다!
권도혁 대표는 비즈니스와 자금을 책임지기로 했다. 창업 자금은 같이 댔지만 엔젤투자도 받고 사업에 대한 조언도 필요했다. 노정석 사장이 떠올랐다.

 “해커 출신인 노정석 사장이라면 이두희님과 이야기가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두 사람을 소개시켜줬죠.”
 “그랬더니 어떻게 됐나요?”
 “왠걸. 노 사장이 두희님을 만나자마자 바로 ‘제가 투자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뭘 더 하면 좋을까요?’라고 말하더군요.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었습니다. 하하”

 노 사장은 그의 말처럼 즉각 엔젤투자를 했다. 작년 9월 클래스메이트 서비스가 나올 때 쯤 중요한 일이 또 하나 생겼다. 하버드대 행정학과 졸업생 아벨 아쿠나(23)가 미국 서비스 총괄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아벨과의 만남도 정말 극적이죠. 제가 큐박스를 나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고민하면서 글로벌 프로젝트 차원에서 인재를 모집한 적이 있었는데 사진을 잘 찍는 아벨이 자기가 해보겠다고 지원을 하더군요. 그런데 하버드대를 다니고 있는 친구였어요. 좀 놀랐죠. 바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봤는데 말도 통하고 일도 아주 책임감있게 하는 사람이었어요. 나중엔 두희님과 제가 미국으로 가서 미국 서비스를 다 알아서 해 보라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네요.” 권 대표의 설명이다.

 아벨 아쿠나가 현지 운영진으로 나서면서 보스턴 지역 10개 대학 학생 1000여명이 사용하게 됐다. 하버드대 학보인 ‘하버드 크림슨’에도 소개되면서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이 쓰는 앱으로 성장했다. 
 클래스메이트의 사용자는 아직 그리 많지는 않다. 1만명 수준. 처음 서울대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Safari라는 항목을 만들면서 학교간 대화와 네트워크의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와 이대 학생들 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학생 인증(이메일)만 하고 가입하면 자기가 익명의 아이디를 만들 수 있다. 자기를 상징하는 것은 동물이다. 이를테면 섹시한 타조, 수다쟁이 개미핥기 등등.

 “인터넷에서는 익명이 가지는 장점이 정말 많습니다. 익명이 갖는 장점을 잘 살리면서 학생들간의 커뮤니티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월에 클래스메이트는 대대적으로 개편이 될 예정이다. 강의와 수다, 교제 정도가 아니라 모든 대학의 구전돼왔던 정보들을 문서화하고 다양한 강의, 행사, 공연 등의 기록을 남기는 것도 가능하게 개편된다. 궁극적으로는 대학 생활에 대한 종합적인 사이트로 성장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공식적인 정보보다 훨씬 알차고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으며 다른 학교의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는 진짜 대학 생활을 온라인에서 만끽할 수 있게 하겠다는 거다. 

 “굳이 대학에 한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중학교에서도 하고 고등학교에서도 하고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런 말을 권 대표에게 했다. 그도 수긍했다. “페이스북도 처음엔 하버드 대학교 내부에서만 쓰이던 사이트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인이 쓰는 것처럼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은 대학에서 기반을 착실하게 잡는 것이 중요해요. 한국 대학생이 350만명, 미국이 1500만명인데 1차 milestone은 이 중의 절반 즉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 절반인 1000만명이 쓰는 서비스가 되자!’입니다. 그리고 나면 얼마든지 서비스 확장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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