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인 20161월경 김동호 당시 아이디인큐 대표의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는 회사의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다른 일을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당장은 좀 쉬면서 생각을 해보겠다는 말과 함께였다. 이미 아이디인큐의 오픈서베이로 성공을 거뒀고, 한동안은 쉴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움직였다. 한국신용데이터 김동호 대표는 첫 창업에 나선 지 5년여 만에 성공과 재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IT 밖에서 기회를 발견하다


그를 만나 우선 듣고 싶었던 것은 잘 되고 있는 회사에서, 그것도 창업자가, ‘왜 나왔는가였다. 나온 지 얼마 안 돼 다시 시작한 것도 궁금했다.


 그는 창업자라고 해서 그 회사를 꼭 계속 경영해야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0에서 1을 만드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이 있고 1에서 23을 만드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0에서 1을 만드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보다 그 일을 해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한 거구요.”


 아이디인큐가 이미 창업자 없이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꾸려져 돌아가고 있다는 거도 그의 이런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패기와 열정으로 회사를 꾸려나가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한 순간이 오더라구요.”


 작년 초에 그가 회사를 나올 때만 해도, 그는 정말로 최소한 1년 간은 그냥 쉴 생각이었다. 병역특례 시절 3, 창업 5년까지 총 8년을 쉴 새 없이 일했다는 생각. 잠시 좀 쉬어도 되겠다 싶었다고 한다.


 “그냥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대부분 IT쪽이 아닌 사람들이었죠. 주류도매업, 음식점업 이런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너무나 좁은, IT 창업 분야에만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벤처기업, 특히 IT쪽 스타트업들은 벤처캐피털이 투자를 하는 분야쟎아요. 그래서 투자 과정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해 왔죠. 그런데 IT 분야를 벗어나보니 사업가들이 투자를 받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일반 자영업은 물론이고 제조업이나 다른 중소 사업가들 가운데에는 투자를 받고 싶어도 제대로 된 투자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출조차 쉽지 않았다. 사업자들 대출이 크게 늘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 이는 대부분 부동산 임대업자들이 받는 대출이 늘었기 때문이고 실제 사업을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는 일반 사업자들은 대출조차 받기 힘들었다.


 왜 대출조차 이뤄지지 않을까. 금융권이 대출을 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들의 재무 상태나 리스크, 향후 수익 전망 등이 불확실하기 때문.


 “국내에 등록된 사업자 수가 총 341만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이 중 99.7%는 중소사업자입니다. 문제는 신고소득과 실제 소득의 괴리에요. 30% 정도 차이가 납니다. 이건 저희가 하는 말이 아니고 학자들이나 세무업계에서 분석한 겁니다. 문제는 이렇게 차이가 나다보니 금융권에서 볼 때 대출을 하는데 필요한 자료가 충분치 않다고 보고 대출을 안 해 줍니다. 그러니 카드론이나 사채 등으로 가는거죠.”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궁금하니까알아봤다고 한다. 이런 일이 왜 생길까 궁금해서 알아보다보니 결국 신뢰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는 것에 결론이 이르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것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Right Time


이런 문제의식을 김 대표 혼자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텐데. 지금까지 왜 아무도 신뢰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제대로 대출을 잘 해주는 일이 중요한 은행으로선 충분히 개인 사업자들이나 자영업자들, 중소 법인 사업자들에 대한 재무분석, 신용 분석에 나설 만한데 말이다.


 그는 이유를 두 가지에서 찾았다. 우선 중소 사업자들에게 대출을 하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재무 상태를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 필수적인 자료가 갖춰진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아직도 상당수의 세무사소들이 사업자들의 매출 자료를 받아서 전표와 대조해보면서 수기로 작성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전가세금계산서, 신용카드 전표, 현금영수증 등이 모두 갖춰져 전자식으로 매출 내역이 한 눈에 드러나게 된 것이 불과 최근 4-5년의 일이다. “사업자들의 소득원이 전자화되고 복식부기 대상자로 국세청에 등록된 것이 최근 1~2년에 생긴 일입니다. 저와 같은 고민을 누가 하고 있었더라도 서비스를 만들어낼 시간이 별로 없었던 거죠.”


 결국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다는 것. 또 다른 이유는 금융기관들의 수익구조와 관련된 문제였다. 어쨌든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선 누군가 사람이 투입되야 하는데 엄청난 인력을 지점에서 고용하고 있는 은행 등 금융권에서는 현장에서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서비스 인력이지 분석을 따로 하는 인력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백만개에 달하는 자영업소 및 중소기업의 재무 상태를 분석하기 위해 인력을 별도로 채용해야 하는데 비용 대비 효과가 분명치 않았다.


 이런 두 가지 상황이 맞물리면서 연간 400조원에 달하는 대출이 이뤄지는 중소 자영업자들에 대한 대출 시장이 제1금융권을 벗어나 진행돼 왔던 것이다. “2011년 아이디인큐를 창업할 때랑 상황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시장의 수요는 있는데 아직 초기다보니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거죠.”


 김 대표는 이를 프로그래밍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즉 사람이 아닌 기계가 이런 모든 작업을 하게끔 구조를 짜겠다는 것. 이를 위해선 사람이 필요했다. 자신 역시 프로그래머였지만 금융상품을 설계하고 분석하고 금융공학적으로 풀어낼 사람이 필요했다. 때마침 이런 일을 해 줄 만한 인물(양웅철)이 스타트업 프로그램스를 막 나온 참이었다. 김 대표는 아이디인큐 시절 제품본부장을 했던 안태훈, 프로그램스 개발팀장이었던 양웅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공학 및 정보시스템 박사인 임현석, 같은 대학 경영공학 석사 출신의 이승렬 등과 함께 한국신용데이터란 이름의 회사를 차렸다. 20166월이었다.

 

CreditCheck & CashNote


한국신용데이터라니. 뭔가 회사 이름이 대단히 공기업 또는 오래된 상장회사 같은 그런 느낌이다. 최소한 막 시작한 스타트업 같은 그런 느낌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간만에 만난 김동호 대표의 옷차림이나 분위기 역시 그랬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과 흡사한 느낌마저 풍겼다.


 김 대표는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웃었다. 주된 사업 파트너가 금융권이다보니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신용데이터가 2016년말 출시한 크레딧첵(CreditCheck)은 사업자의 금융거래 데이터를 비대면 방식으로 수집해 상환 능력을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서비스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대출을 신청하는 사업자가 은행 등 금융회사 사이트에 대출 신청에 필요한 항목을 입력하면서 한국신용데이터가 데이터를 캡쳐해가는 것에 동의만 하면 된다. 한국신용데이터는 이런 동의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 국세청과 은행 등에 신고된 사업자의 사업 관련 재무 정보, 세무 정보 등을 분석해 은행권에 제공해준다. 현금흐름을 분석해 대출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다보면 사업자가 신고하는, 또는 작성하는 데이터의 신뢰성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았다. 만약 이 데이터가 정확하지 않다면? 여전히 사업자의 소득 신고 및 사업 신고 내역이 정확한지, 얼마나 실제에 부합하는지는 여기선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캐시노트라는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


 크레딧첵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캐시노트는 세금계산서, 카드 및 계좌 내역 등 다양한 금융거래 정보를 한데 모아 회계 장부를 자동으로 작성해주는 서비스다. 이는 결국 세금 신고를 제대로 하는 기초가 된다. 사업자로서는 복잡한 회계지식 없이도 통합적인 재무관리를 할 수 있다.


 캐시노트가 정말 잘되면 크레딧첵의 역할은 줄어들게 된다. 이 서비스는 이달 중 출시할 예정이다. 캐시노트는 정확한 데이터 수집이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전자적인 각종 소득 및 지출, 비용 증명서 등을 기반으로 자동으로 기록을 남기기 때문에 이 서비스가 확산되고 정착되면 크레딧첵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기존 세무사 회계사 사무서에서 하던 일을 상당 부분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


 그의 말대로 된다면 한국신용데이터는 그야말로 국세청에도 없는 연도별 매출, 수익, 소득 등 각종 재무 정보를 수집해 분석, 축적하게 된다.


그에게 다시 창업을 하니 어떠냐고 물었다.

확실히 시행착오는 줄어든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제품이 나오기까지 시간을 줄일 수 있었죠. 사실 사업을 처음 할 때 헤매는 가장 큰 이유는 문제를 잘 정의하지 못하는 것과 팀 세팅을 잘 못하는 것 두 가지 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첫 번째 창업한 회사에서 나와서 쉬면서 문제를 먼저 정의하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 마침 비슷한 서비스가 없었구요. 팀 세팅은 확실히 첫 창업의 영향이 있었구요. 이래저래 운이 따라 준 것 같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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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이 선하다. 2014년 어느 날, 회사의 선배가 리멤버라는 앱을 소개해줬다. 명함관리 앱이라고 했다. “전에도 비슷한 거 써 봤는데 인식률이 영 안좋더라고 답했다. 그 선배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아냐, 이건 명함을 보내면 손으로 쳐서 준대


 그 때 순간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두가지였다. “, 그러면 정보는 대충 정확하겠네근데 그 많은 명함을 다 사람이 직접 입력하려면 얼마나 많은 직원이 필요할까, 돈은 어떻게 벌까였다.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한국의 링크드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젊은 기업가가 나왔다. “명함을 모으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 근데 그게 되겠어싶었다.


 2년 여가 지난 201611. 스타트업 취재 담당이 된 기자는 습관처럼 어제 만난 취재원의 명함을 리멤버 앱에서 촬영했다. 그랬더니 1초도 안돼 입력이 완료됐다는 알람이 떴다. “아무리 손이 빨라도 이게 되나싶었다. 불현듯 그 젊은 기업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최재호 드라마앤컴퍼니 대표를 찾아가게 됐다.

 

2년간 모은 6000만장의 명함


리멤버는 회원을 빨리 모았다. 출시 2년 반만에 140만명의 사용자와 명함 6000만장(중복 포함)을 모았다. 140만명은 단순한 앱 다운로드 숫자가 아닌 진성 사용자수다. 최 대표는 다른 모바일 서비스 대비 지속 이용 시간이 10배 이상 길다고 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기자로서도 이만큼 유용하고 편리한 앱이 없다. 이제 거의 리멤버가 스마트폰 주소록을 대체할 지경이다.


 서비스도 그간 많이 업그레이드 했다. 단순히 명함에 있는 정보를 글로만 옮겨주는 게 아니다. 명함의 주소를 지도로 띄워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유용한 건 라이브서비스다. 리멤버 회원의 명함이 바뀌면, 이전에 같은 명함을 등록한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거래처 차장이 부장으로 승진하면 바로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영업사원들에겐 정말 유용한 기능이다. 그간 시리즈B까지 받은 96억원의 투자금을 서비스 업그레이드에 썼다.


<리멤버의 내년 구상을 설명하고 있는 최재호 드라마앤컴퍼니 대표.  드라마앤컴퍼니 제공>


 모은 인물 정보도 질이 좋다. 최 대표는 직급으로 보면 대표급, 임원급, 팀장급, 중간관리자급, 사원급이 각각 20%이라고 말했다. 대표급 명함만 1200만장, 팀장급 이상으로만 3600만장이라는 얘기다. 밖에서 명함을 활발하게 주고 받는 사람들은 주로 높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자가 의문을 가졌던 대로 돈을 어떻게 버느냐다. 140만명이 쏟아내는 명함 정보를 입력하는 사람 수만 한때 1500명에 이르렀다. 직접 고용이 아니긴 하나 인건비가 만만찮을 수 밖에 없다. 최근 앱에 광고를 붙이기 시작했다. “리멤버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비즈니스맨이어서 관련 광고를 붙이면 효과가 좋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앱 광고만으로 회사를 운영하긴 힘들다. 이미 드라마앤컴퍼니의 정규 임직원 수만 해도 30명이 넘는다. 매년 회사를 유지하는데만 수십억원이 들어간다.

 

비용 줄이는 묘책 찾았다


어느 회사든 돈 버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같다. 비용은 줄이고 매출은 늘리는 것이다. 일단 비용 측면에서 최 대표는 묘안을 찾았다.


 리멤버 이전 명함관리 앱들의 인식률이 떨어졌던 것은 OCR(광학적 문자 판독장치)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프로그램이 문자를 읽어주는 기능인데, 이게 명함에선 좀처럼 먹히질 않았다. 명함마다 모양도, 글씨체도, 표시방법도 다 달랐기 때문이다. 최 대표가 수기입력방법을 고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명함 6000만장을 모은 지금, 최 대표는 이제서야 OCR 카드를 꺼냈다. 6000만장의 명함 중 중복된 것이 상당수여서다. 지금은 명함이 새로 들어오면 OCR로 읽는다. 그리고 기존 데이터와 매칭을 시켜본다. 정보가 완벽하게 일치한다면, OCR이 명함을 제대로 읽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사람 손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기자가 최근 입력한 명함을 1초만에 처리해 보내준 것도 이 시스템 덕이었다


 최 대표는 지금은 전체 명함의 3분의 1 정도는 자동으로 처리한다한때 1500명에 이르던 타이피스트도 900명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명함 빅데이터가 늘수록, 그리고 중복되는 비중이 높을 수록 자동 처리 비율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타이피스트들도 점점 숙련되고 있고, 입력 정확도를 높이는 노하우도 많이 도입해서 인당 생산성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 비용은 계속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내년부터 관계 진화서비스 진출


 다음은 매출을 늘리는 문제다. 최 대표는 내년부터 한국의 링크드인이 되겠다는 비전을 하나씩 실천에 옮길 계획이다. 1단계는 명함공유첩이다. 기자는 과거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는데, 보통 팀 명함첩을 한두권씩 만들었다. 함께 공유해야 하는 거래처 직원 명함이나 접대하기 좋은 식당 명함 등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이 기능이 리멤버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서로 취재원을 공유할 필요가 있는 기자들에게도 유용할 것 같았다. 현재 베타 테스트 중이고 내년 상반기 유료화 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게 최 대표의 계획 중 몸통은 아니다.


 6000만장의 명함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본격적인 사업은 내년 하반기 시작할 계획이다. 일단 인물 소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살다보면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기자의 경우 기사에 멘트를 해 줄 전문가를 찾는데 상당한 시간을 쓴다. 영업사원들은 신규 판매처를 확보할 때 해당 회사 구매팀의 전화번호만이라도 알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는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누구 아느냐고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최 대표는 리멤버를 통해 이 불편을 해결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기자가 IT 전문가를 찾고 있다고 치자. 기자가 이제껏 리멤버에 입력한 명함에는 IT전문가가 없다. 하지만 기자의 지인이 입력한 명함 중에는 있다. 그러면 지인의 허가를 받고 기자에게 이 IT전문가를 소개해 주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를 관계 진화서비스라고 불렀다.


 그 다음단계는 링크드인 처럼 헤드헌팅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 리더들에 대한 정보를 촘촘히 모아놓은 만큼 헤드헌팅 서비스를 하기에도 유리하다. 이 서비스들이 안정되면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투자해 준 벤처캐피탈 들이 일본 시장에 대한 정보를 주고 있다고 한다. 아직 세계적으로도 수기 입력을 통해 명함 데이터를 모은 사례는 없다.


 최 대표는 회원 수를 국내에서만 500만명 까지는 늘릴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직 목표에 3분의1도 못채운 셈이다. 500만명의 사람들이 쏟아내는 명함 정보를 가지고 인물소개, 구인구직 서비스를 해 준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 사업모델로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면. 구체적으로 과금을 어떻게 할 지는 최 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최 대표의 얘기를 듣고 나니 한국의 링크드인이 되겠다는 그의 목표가 허황되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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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media)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전달수단이라고 나온다. 일반적으로 매체라고 하면 신문이나 방송같은 언론매체를 떠올린다. 신문이나 방송이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큰 수단, 다른말로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모두 인터넷을 쓰게 되면서 매체의 주도권은 네이버같은 포털사이트로 넘어갔다. 사람들이 매일 인터넷에 접속할 때 나오는 첫 화면이 가장 큰 매체였다.


 그러면 2016년 현재 가장 큰 매체는 뭘까. 사람들이 어디에서 정보를 전달받는지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스마트폰 화면이다. 신창균 퓨쳐스트림네트웍스(FSN) 대표는 이같은 변화를 가장 빨리 파악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앱을 켤 때 광고를 띄워주는 카울리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광고주와 새로운 매체인 앱 첫화면을 연결해 준 프로그램을 만든 건 한국에선 FSN이 최초 선두주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난 10월 그의 창업인생 10년만에 수많은 창업자들의 꿈인 코스닥 상장을 일궈냈다.

 

모바일 광고 시장 선점한 카울리


 신 대표는 2010년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갓 고안한 스마트폰이라는 기기는 몇 개의 포털사이트가 장악할 수 없고, 개별 애플리케이션() 별로 구동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결국 앱들이 매체가 되는 것이다. 그는 광고주와 앱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사업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만든 프로그램이 카울리였다.


 개념은 간단하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앱을 통해 스마트폰을 쓴다. 그 앱을 켤 때 광고가 뜨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광고 수익을 앱 개발자와 FSN이 공유한다.


 단순히 연결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눌러볼만한 광고를 띄워야 한다. 이를 위해 스마트폰 사용자의 다양한 정보를 이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용자의 스마트폰에 운동 관련 앱이 많이 깔려있으면 나이키 신발 광고를 띄우는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써서 사용자가 광고를 실제로 보게 하는 확률을 높인다.


 카울리는 시장에 먼저 뛰어들어 선점한 효과를 누렸다. 지금 카울리는 한국에서 앱을 만든다는 사람은 웬만하면 다 아는 프로그램이 됐다. 12000개의 앱에 카울리가 적용돼 있다. 매달 약 2500만명의 사람들이 카울리를 통해 띄워지는 광고를 본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신 대표는 2014년 전체 지분의 63.63%(당시 벤처캐피탈 등 투자자들이 FSN에 투자했던 지분 포함)을 옐로모바일에 매각하고 그룹의 일원이 됐다. 매각 가격은 약 178억원이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스팩(SPAC·비상장기업과 합병한 뒤 상장을 목적으로 하는 페이퍼컴퍼니)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2차 투자회수도 마쳤다. 스타트업의 성공방정식을 밟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시장 진출 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신창균 퓨쳐스트림네트웍스 대표. by inklings>

 

해외 시장 개척에 집중


 신 대표는 아직도 모바일 광고 시장의 성장 여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일단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온라인광고협회에 따르면 올해 14000억원 수준인 모바일 광고 시장은 201716000억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스마트폰 사용자와 사용시간이 모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광고 단가도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게 신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사람들이 웹보다 모바일에서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도 아직 모바일 광고단가는 웹에 비해 3분에 1수준이라며 모바일 비중이 커지고 광고 효과가 증명될 수록 단가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시장 상황은 좋은 셈이다.


 옐로모바일의 다른 계열사들과 시너지도 기대할만한 부분이다. FSN2014년 옐로모바일에 합류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시너지는 없었다는 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옐로모바일이 그간 기업들을 인수하고 외형을 키우는데 집중하다보니 계열사 간 시너지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옐로모바일은 올해 중 현재 80개가 넘는 계열사 수를 줄이면서 지배구조를 단순화 하고 시너지를 내는데 집중할 전망이다. 시장에선 옐로모바일의 가격비교 서비스인 쿠차나 콘텐츠 서비스인 피키캐스트등 좋은 매체들과 FSN이 본격적으로 협업하면 적지 않은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 대표가 제일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해외 시장 개척이다. 특히 해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의 유명인들과 협업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예전에는 유명인들은 기업의 의뢰를 받고 마케팅을 할 때 SNS에 글을 하나 올릴 때마다 돈을 받았다


 이같은 방식은 실제로 그 광고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FSN의 기술을 활용하면 유명인이 올린 글을 실제로 몇명이 봤는지 등 광고 효과를 증명할 수 있다. 그러면 그 효과에 따라 광고주에게 돈을 받고 이를 FSN과 유명인이 나누는 것이다. 최근 인수한 베이징오블리스정보자문유한회사SNS상에서 유명인 마케팅을 대행해 주는 회사다. 신 대표는 옐로모바일이 해외 사업을 지원해 줘서 좀 더 수월히 시작할 수 있었다중국, 싱가폴 등에서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과 경쟁이 관건


그렇다고 미래가 마냥 장미빛인 것은 아니다. 일단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카울리는 시장에 초기부터 진출했고 덕분에 많은 앱 개발자들이 카울리를 쓰고 있다. 하지만 모바일 광고 시장이 유망해지자 대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NHN엔터테인먼트의 광고 계열사 NHN TX가 만든 토스트익스체인지’, 카카오의 아담등 국내 서비스는 물론 구글의 애드몹등 해외 대기업도 비슷한 서비스를 한다. 신 대표는 우리가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에 많은 앱 개발자들이 카울리에 익숙해져 있어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사용자 타겟팅 광고는 생각보다 어려운 기술이라며 “FSN이 우수한 개발자와 자본을 갖춘 대기업과 경쟁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가관리도 FSN이 보완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된다. 이 회사는 지난 10월 상장했다. 이후 거의 매일 주가가 하락하다가 지난 117일 갑자기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신 대표는 주가가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다아직 유통 주식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적은 주식으로도 주가를 움직일 수 있다고만 설명했다. 아울러 실적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는 만큼 실적이 좋아지면 주가는 자연히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증권업계에서는 처음 상장한 기업이 주가를 조작하는 들의 타깃이 될 수 있고, 주가 변동이 심할 경우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by ink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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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대학때 코딩 못했어요. 1,2학년때 프로그래밍 부진아였죠. 컴퓨터 정말 잘 못했습니다. 수업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이두희 누구나주식회사 대표와의 인터뷰 도중, 그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당한 충격이었다. 한국 벤처업계에서 알아주는 개발자로 손꼽히는 그가 대학때 프로그래밍 수업을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니.


 이두희 대표는 업계에선 천재 개발자로 통한다. 대학 재학 중 서울대 전산실을 해킹했던 사건이나 단기간에 만들었던 그의 개발작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인식이다. 멋쟁이 사자처럼의 코딩 교육, SK텔레콤이 설립한 누구나주식회사 대표 등 그간의 이력을 보면서 코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를 찾아갔다. 인터뷰는 구글 캠퍼스서울의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한국경제신문 추가영 기자와 함께 갔다.


 누구나주식회사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할지, 멋쟁이 사자처럼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지. 이 회사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등등.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런데 대학때 코딩 부진아였다니?

<즉석에서 작성한 코드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가리키고 있는 이두희 멋쟁이 사자처럼/누구나 주식회사 대표.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대학 2년까지 컴맹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코딩을 잘 하게 됐나요?”


수업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학점은 전부 1점대를 깔고. 그런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른 길을 찾아볼까 생각도 했는데, 컴퓨터공학과에 들어왔는데 어떻게든 코딩은 배우고 나가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혼자서 공부를 했죠.”


 그는 C언어가 너무 힘들어 코딩을 포기할 뻔 했다고 했다. 그래서 파이썬과 루비로 시작을 했다고. (개인적으로는 루비를 더 추천한다고 한다.)


 그가 코딩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의미를 찾았기 때문.

이 어려운 걸 배워서 뭐하나 이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수업 시간표 프로그램도 만들고, 해킹도 하고. 이것 저것 응용이 되더라구요. 사회에 영향도 미치고. 할 게 정말 많았어요. 그때 정말 빠져들었죠.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그래밍의 의미를 찾은 그는 무섭게 코딩을 익혔다. 울트라캡숑을 창업한 것도 세상에 의미있는 변화를 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는 울트라캡숑 창업자였지만 결국 회사를 나왔고, 끝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이 얘기를 길게 하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어쨌든 울트라캡숑을 나와 집에서 백수로 지냈다고 한다.


 “그냥 누워서 빈둥거렸어요. 할 일이 없더라구요. 기분도 안 좋았구요.”


 대학에 돌아갈까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을 밟던 도중 그만두겠다고 통보한 터였다. 결정을 번복하기는 싫었다. 할 일을 찾다가 심지어 수능을 다시 보고 약대를 갈까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실제 수능 공부도 했고, 약사 일이 어떨까 싶어서 친구가 하는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도 해 봤다. 그런데 하루 종일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다. 자신에겐 맞지 않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집에 돌아와서 고민했어요. 난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요.”


 그때 그가 생각해 낸 것이 멋쟁이 사자처럼프로젝트였다.


 “내가 잘 하고, 항상 하고 싶은 것은 코딩이니까 이걸 사람들한테 가르치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일단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얼마나 오래 할까 이런 생각도 없었어요. 내가 백수니까, 근데 백수의 왕은 사자니까, 이름을 사자로 지었구요. 나 자신에게 최면을 가하기 위해 멋쟁이 사자처럼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나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나는 멋있다. 나는 잘 할 수 있다 계속 최면을 걸었죠. 그때 저에겐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게 필요했어요.”


벼랑끝에서 시작한 멋쟁이 사자처럼


처음에 30명에게 프로그래밍 교육을 시작했다. 장소를 못 잡아서 애를 먹었는데, 자주 갔던 카페 사장님이 도움을 줬다. 이 사장님은 돈을 벌어서 네팔에 집 지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사정을 듣고 흔쾌히 장소를 내줬다고 한다.


“30명을 어떻게 모았나요?”

서울대에 안내문을 붙였어요, 10.”
그렇게 해서 얼마나 지원을 했나요?”

200명 정도?”

그 중에서 30명을 어떤 기준으로 뽑나요?” (이게 정말 궁금했다.)

정말 고마워하면서 배울 사람. 그리고 정말 전력을 다해서 배울 사람을 뽑았습니다. 코딩이 배우기 어렵거든요. 이것만 열심히 해도 배우기 쉽지 않습니다. ”


 처음에 30명을 가르쳤는데, 어려운 환경에서도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계속하기는 힘들었다. 수업을 무료로 진행하는데다 오히려 자비를 써가면서 가르쳤는데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한 번 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이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만두겠다고 페이스북에 공지를 했더니 메일이 300통이 넘게 오는 거에요. 교육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죠. 자기도 받고 싶다는 내용도 있구요.”


 지원자가 많아서 몇 차례 더 진행을 했지만 번번이 그는 그만두려고 했다. 자금 문제가 있었고, 그도 계속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가 아니라 창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4기까지 하고 정말 그만두려고 했을 때 구글에서 찾아왔다. 이걸 꼭 해야 한다는 게 구글의 요구였다. 비용도 대겠다고 했다. 구글과 손잡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수락했다. 올해 구글의 임팩트 챌린지에서 선정되면서 지속할 수 있는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해서 멋쟁이 사자처럼은 벌써 4년 가까이 진행됐다. 이 기간 중 2000여명이 과정을 거쳐갔다. 어떤 사람들이 코딩을 잘 할까. 얼마나 코딩 능력을 익혔을까. 궁금한 게 많았다.


 “2000명 중 20% 정도? 400명 가량은 코딩 능력을 습득했어요. 이 중에는 저보다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 정도는 사실 중도에 포기했구요. 나머지 60% 정도는 과정은 마쳤지만 코딩 능력을 완전히 익히진 못했어요.”


 “그래도 의미가 있나요?”


 “네 의미가 있습니다. 코딩은 할 줄 몰라도 볼 줄은 알게 됐어요. 무엇보다 개발자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게 된 거죠. 처음부터 멋쟁이 사자처럼은 이걸 의도헀어요. 비전공자들이 코딩을 배워서 개발자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코딩의 핵심은 문제의식


비전공자들을 가르칠 때 어떤가요? 수학을 오랫동안 하지 않은, 예를 들어 인문계 학생들도 잘 배우던가요?”


 “
사실 인문대생들 가운데 코딩을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기본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거든요. 사실 공대생은 이런 부분이 좀 덜해요.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개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거죠. 예를 들어 총학생회 온라인 투표 앱을 만든 학생은 불문학과 출신이에요. 정치 참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학생이었죠. 이런 문제의식이 확실히 있으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는 개발만 해 온 개발자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게 소통이라고 했다. 개발자들에게 소통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보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고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있는 비전공자들에게 코딩을 가르쳐 이들이 개발자들과 소통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비전공자들에게 코딩을 가르쳤다는 것. 농대를 다니다가 멋쟁이 사자처럼의 코딩 수업을 듣고 컴퓨터공학과로 전공을 바꾼 사람도 있었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겐, 어쨌든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멋쟁이 사자처럼 과정은 이제 상당히 유명해졌다. 그 덕에 후원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처음의 취지를 지속하기 위해 학생들에겐 무료로 가르치고 있따. 초등학교쪽에도 진출하고 있다. 지리산 토지초등학교 영곡분교라는, 전교생 20명 밖에 안되는 곳에 가서 소프트웨어 의무교육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이곳 학생들은 집에 컴퓨터도 없기 때문에 컴퓨터 후원을 받아서 교육을 진행중이다.


 취지는 좋지만 어쨌든 돈을 벌어야 사업도 지속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는 유료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취업층을 1년 안에 개발자로 컨버팅 해 줄테니 믿고 따라와라 하는 식으로 가르칠 수도 있구요. 아주 세심하게 가르쳐야겠죠. 이것도 유료가 가능합니다.”


 이두희 대표는 멋쟁이 사자처럼 커리큘럼이 대학에서 배우는 코딩과는 매우 다르다고 했다. “대학교 프로그래밍은 이론부터 출발해요. 변수가 뭐고 분기문, 자료 구조, 알고리즘 등 용어부터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멋쟁이 사자처럼은 조합해서 이것을 만들 수 있다. 네가 만들 것을 정의해라. 3~4명 팀을 갖춰서 팀이 만들 것을 정의하라고 합니다. 만들 것이 없으면 개발하지 말라고 해요. 예를 들어 채팅 구현하기 위해서 소켓을 배워야합니다. 목적 지향적이에요. 네가 만들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하고 컴퓨터는 그 발판이 될 뿐이다라는 거죠.”


누구’, 국민 비서로 진화한다


코딩을 가르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누구나주식회사의 대표가 된 것은 어찌 된 일일까. 그는 인공지능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SK텔레콤으로부터 올해 봄, 알파고 붐 직후 얘기를 듣고도 이게 잘 될까 싶었다고 한다. “처음 베타 버전일 때 인식률이 낮았어요. 그런데 이후 개발 속도가 상당히 빠른 걸 보고 제대로 된 뭔가가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올해 초여름경에 SK텔레콤의 누구프로젝트에 합류한 그. 누구나주식회사의 가상 대표를 맡게 된 그가 하는 일은 전문가 집단과 SK텔레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이나 이와 관련된 다양한 학문이 있어요. 여기엔 전문가 분들이 많이 있는데 이 분들의 아이디어 역시 상당히 많습니다. 회의를 자주 해요. 난상 토론을 합니다. 이 분들은 상당한 고집과 철학이 있고, 다 의미가 있는 부분이지만 사업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에요. SK텔레콤에 이런 전문가들의 지식과 제안을 사업화할 수 있게 다듬어서 다시 제안하고 함께 고민하는 게 저의 역할입니다.”


 그는 누구에 대해 기본적으로 잘 짜졌다고 평가했다. “문자 매칭이 아니라 모듈이 잘 짜여 있어요. 버전업이 빨리 될 것 같습니다. 알파고 후에 첫 번째 채널을 잘 열었고,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 에코 등 비슷한 서비스가 있지만 한국어 음성과 발음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의미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서비스는 결국 어떻게 진화되게 될까. “기획 단계에서 고민이 있었어요. 친구 역할을 할지, 비서 역할을 할지. 처음엔 대화 상대로 여기는 시리 쓰듯이 몇 살이지?’, ‘나랑 사귀자와 같은 친근한 대화로 갔습니다. 그런데 비서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앞으론 대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주는 그런 비서와 같은 존재로 성장할 것 같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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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자율적인 직장 문화를 꿈꾼다.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일하는 과정에 시시콜콜히 개입하지 않으며 쉬고 싶을 땐 아무 이유 없이 쉬는 그런 문화. 퇴근할 때 눈치를 보지 않고 휴가 갈 때 사유를 작성하지 않으며 집안에 일이 있을 때 걱정 없이 급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그런 문화.


 하지만 이런 문화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일반적인직장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런 문화 속에서 일할 때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생산성이 엄청나게 오를 것 같지만, 도입할 수가 없다. ? 이런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기(또는 그럴 것이라고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장담하건대, 반드시 있다.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라고 하면 출근 시간이 한도 없이 늘어질 수 있고, 쉬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쉬라고 하면 갑자기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교적 자율적인 환경 하에서 일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노력하더라도 말이다.


 이러다보니 우리가 일하는 환경은 이와 정 반대인 경우가 많다. 출근 시간 1분 지각할까봐 전전긍긍하기 일쑤고, 하루 종일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실제로 일을 하기 보단) 보고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가며, 쉬고 싶을 때 마음대로 쉰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 휴가 갈 때 사유를 고민하는 건 당연지사고, 정기 휴가를 갈 때조차 눈치를 보는 게 일반 직장인들의 삶이다.


 그런데 꿈에서나 볼 듯한 이런 근무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회사가 있다. 이번 스타트업생태계컨퍼런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스마트스터디 김민석 대표의 우리가 만드는 스타트업 문화강연이었다.


<2016년8월25일 부산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스타트업생태계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김민석 스마트스터디 대표>


 20103명의 창업멤버로 시작한 스타트업 스마트스터디. 이 회사 직원 규모는 이제 113명으로 불었다. 아직 작은 규모라면 작다고 할 수 있겠지만, 스타트업으로서는 상당한 규모의 회사가 됐다. 그의 강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109개국에서 교육앱 매출 1위를 기록한 바 있으며 지금도 많은 국가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핑크퐁 시리즈. 창업 2년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해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흑자 경영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회사. 투자를 받았지만 투자금을 거의 쓰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그는 스마트스터디에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고 설명했다. 5분 지각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고 한다. “1, 2분 늦을까봐, 그 붐비는 아침에 헐레벌떡 나오고, 스트레스 받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렇고 저희 직원들도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출퇴근 시간을 없앴습니다.”


 휴가가 무제한이라는 것도 이 회사의 특징. 정말 무제한일까. 김 대표의 말에 따르면 정말 그렇다고 한다. 아무도 특정인이 얼마나 휴가를 쓰는지 신경쓰지 않고 휴가를 간 것 때문에 인사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 회사. 실제로 스마트스터디엔 1년에 한 달 이상 휴가를 쓰는 사람이 무척 많다고 한다. 한꺼번에 한달 이상을 모아서 자리를 비우는 사람도 있다고!


 근무지도 자유다. 꼭 매일 아침 회사의 자기 자리에 와서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언제 어디서나 일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누구든 그렇게 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지난해 메르스가 창궐했던 시절엔 전 직원이 자택근무를 하기도 한 회사. 무려 4주 동안이나 말이다.


 김민석 대표가 설명한 스타트업 문화는 이상적인 것이었다. 누구나 아마 그런 문화를 가진 회사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까 싶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 회사엔 파티션이 없고, 회의실에도 벽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김 대표는 자신의 회사의 근무 문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규칙을 만들지 않는다

 그는 이런 현상들은 사실 모두 결과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게 중요한 포인트다. 정책과 혜택으로 보이는 현상들은 그저 어떤 가치관으로 꾸준히 회사를 만들어간 결과물일 뿐이라는 점이다.


어떤 생각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할까요

김 대표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이렇게 대답을 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일견 수긍이 갔다.

 “모든 사람에게는 목표가 있고 지금보다 더 잘하기를 원합니다. 어른답게 놀고 어른답게 일하게 하면 됩니다. 스타트업은 어차피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스타트업은 취업하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개개인의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스마트스터디는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둔다. 다만 회사 차원에서 강조하는 것은, ‘최대한 많이 소통을 하라!’

 김민석 대표는 스타트업에게 회사는 일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회사 생활이 곧 삶이고 창업가와 직원들의 삶이 곧 회사 생활이라는 것. 그는 월급에 대해서도 다르게 생각한다고 했다. 월급은 회사가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직접 만들어낸 수익 중 일부를 가져가고 일부는 회사에게 돌려주는 게 회사의 급여 시스템이라고 봤다.


 그의 발표가 끝나고 누군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회사의 이런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관리하나요?”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사실은 이런 반응이나 이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위험한 반응이라고 봅니다. 사람을 믿지 않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악용할 만한 사람을 뽑지 말아야 하는 거죠. 그리고 모두가 이런 문화를 만들어가고 지킨다면 악용하려고 하는 사람이 오히려 버텨내지 못하게 되고 스스로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실제로 그런 경험도 했구요.”


 김 대표가 발표를 하기 전에 서울에서 부산으로 오는 KTX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 이야기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당연히 주제는 그의 발표 내용이었다.


이게 정말 이상적이긴 한데, 정말 가능할까요. 현실적으로? 그게 궁금하네요.”

어느날 갑자기 기존 조직이 우리도 이런 문화를 만들어보자 이렇게 해서 바꾸려고 하면 아마 안 될 겁니다. 스마트스터디도 그렇게 해서 만든 문화가 아니거든요. 그렇게 할 수도 없구요. 이렇게 하려면 직원을 뽑는, 채용 단계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채용을 잘 해야 하는 문제죠. 자율적으로 일하는 정도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움직이고 일을 만들어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다보면 만들어지는 문화인거죠.‘


 그가 거듭 말했듯이, 이런 문화는 이렇게 만들어보자라고 시작해서 완성된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꾸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하는 가운데 일하는 최적의 스타일을 찾아내려고 하다보니 생겨난 결과일 뿐이다. 그래도 어느덧 상당히 이상적인 형태가 된 것은 분명하다. 기존 조직을 이렇게 바꾸려고 하면 너무 큰 잡음이 있을 것이고 그의 말처럼 채용 단계에서부터 다른 접근을 해야 하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규모가 점점 커져도 이런 문화가 지속될 수 있을까에는 여전히 의문이 따른다. 결국 회사가 계속 성장하다보면 이질적인 사람들이 들어 올 수밖에 없고, 특히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지점에 오게 되면 외부 인력이 대거 유입된다. 이 외부 인력들은 전혀 다른 문화에서 일했던 사람들이고 이들이 일정 규모 이상 되면 기존의 문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만에 하나 그렇지 않고 지금의 분위기를 계속 이어간다면 이 회사는 사내 문화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김 대표 역시 이런 점을 알기에 만들어가는스타트업문화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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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착각을 한 것일까. 그의 눈이 살짝 젖는 것 같았다. 창업하고 처음으로 상당한 규모의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던 이야기를 할 때였다. “전체 직원의 절반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닥치니까 회사로 나가 직원들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나 막막했습니다. 기업가로서의 삶이 끝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요”라는 말을 하던 이진수 포도트리 대표의 눈에 살짝 물이 맺히는 듯 했다. 창업한 뒤 2년 만에 자금이 모두 바닥나 직원들 50여명에게 월급을 줘야하는 날 통장에 800만원밖에 없었던 시절 얘기를 할 때도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그였다.


 20107월 설립돼 이번 달로 창업한 지 딱 만 6년이 된 회사 포도트리. 화려하게 출발했으나 두 번에 걸쳐 망할 뻔한 위기를 겪었고 수익모델을 찾으려 몸부림쳤다. 이제는 하루 거래액 25000만원~3억원에 달하고 연간 거래규모 1000억원을 예상하고 있는 콘텐츠 플랫폼 회사가 됐다. 6년에 걸친 이 회사의 시작과 고난, 그리고 결실의 이야기를 이진수 대표에게서 들었다.


화려한 출발=김범수와 이진수의 공동 창업

20107, 이진수 대표는 포도트리를 창업했다. 모바일 콘텐츠 전문 앱 개발사였다. 글로벌 히트앱을 만들어 콘텐츠 앱 개발로는 글로벌 넘버1 회사가 되겠다는 게 이 회사의 비전이었다.


 창업하기 직전 20103월말경 이 대표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찾아갔었다. 서울대 경영학과(92학번)를 졸업하고 프리챌과 IBM, NHN 등을 거친 이 대표는 NHN 시절부터 김 의장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2009년말 아이폰을 사서 써 보고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교육용 콘텐츠 앱을 만들면 히트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는 김 의장을 찾아가 앱 개발사 포도트리 설립은 논의했다. 20103월은 카카오톡이 출시된 시점이었고 김 의장은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을 활용할 비즈니스를 고심하던 때였다.


 김범수 의장을 최대주주로 하는 포도트리 설립안이 이때 마련됐다. 그해 7월 회사가 설립될 때 최대주주는 김범수, 이진수 대표는 2대 주주이자 최고경영자를 맡았다. 이 대표와 NHN 시절 동고동락했던 이진영 이사, 차상훈 이사를 비롯해 서울대와 카이스트 출신의 인물들이 창업멤버로 합류했다.


 201012월초, 창업한 지 불과 3개월이 갓 지난 이 회사를 찾아갔을 때 회사 인원은 이미 22명에 달했고 앱 개발이 상당히 진행돼 있었다. 당시 이 대표는 포도트리는 간지 앤 크레이지모드입니다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명품 앱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팔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었다. 정말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들어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팔면 시장을 석권하지 않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일견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2010년 처음 찾아갔을 당시의 이진수 포도트리 대표.  당시엔 사무실이 논현동에 있었다.>


 영어학습 앱, 전자책 앱 등 다양한 교육용 앱을 만들어 나갔다. 2011년초부터 바로 앱이 출시됐는데 한국과 일본의 교육앱 시장에서 1등을 하는 등 시작부터 기세 좋게 출발했다. 앱의 품질에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한데다 이런 앱을 불과 0.99 달러에 출시하니 사람들이 몰려드는 듯 했다. 그가 말 한 대로 글로벌 넘버원 콘텐츠 앱 개발사가 되는 꿈이 멀지 않은 듯 보였다. 하지만 앱 개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창업하고 1년반 만에 폐업 위기

포도트리가 개발한 교육 분야의 앱은 저마다 출시한 직후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회사 수익에는 별 도움이 안됐다. ‘고품질의 앱을 내놓으면 사람들이 앞다퉈 살 것이라는 전제가 깨진 것이다. 돈이 안되자 이것을 계속해서 만들기도 애매해졌다. 포도트리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당시 폭증하는 스마트폰 이용자를 겨냥하고 세계 곳곳에서 출시된 콘텐츠 분야의 각종 앱이 비슷한 처지에 몰렸다.


결국 창업한 뒤 1년쯤 지난 20117월경부터 포도트리는 삼성전자와 전략적 제휴를 모색했다. 아이폰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에 비해 스마트폰 전략 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삼성이 소프트웨어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모바일 분야의 기업들과 제휴를 강화하던 시점이었다.


 “앱을 그냥 앱스토어에 팔아서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가 안되겠더군요. 그래서 삼성전자와 제휴해 스마트폰에 기본 앱이나 서비스로 장착되는 방식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삼성벤처투자와 투자 유치도 추진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작업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투자가 될 듯 말 듯 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2011년이 저물고 있었다. 투자가 과연 될지 말지 불확실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그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가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직원들이 동요하기 때문이다.


 20111223일 금요일 아침이 밝았을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을 만큼 괴로웠다. “아침에 보니 통장에 돈이 800만원밖에 없더라구요. 50명 직원들한테 월급을 줘야하는 날인데 말이죠. 이날 삼성벤처투자의 투자금이 안들어왔으면 꼼짝없이 파산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투자금이 이날 오후에 들어왔다. 파산은 면했지만 그는 그날로 정체불명의 병에 걸렸다. “땀이 나질 않는 거에요. 아무리 더워도. 병원에 갔더니 무슨 엄청난 울화가 치미는 일이 있는데 화를 내지 못하고 계속 참았냐고 하더라구요. 열을 제때 발산하지 못하니 피부병이 생긴거죠.”


 투자금이 들어와서 위기를 모면했다고 안도할 때가 아니었다. “왜 삼성이 이렇게 투자를 계속 주저했을까를 생각했어요. 투자를 받았으니 다행이 아니라 삼성으로 하여금 투자를 주저하게 한 그 요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회사에 미래가 없다고 본 겁니다.”

삼성이 투자를 한 지 불과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 대표는 이듬해인 14일 전 직원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워크샵을 했다.


완벽한 실패

투자금이 막 유입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으니 회사 분위기가 좋은 시기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심각했다.


그 당시 6개 분야에서 총 14개의 앱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너무 뭐가 많았어요.”


범위의 함정no killer 다변화 심화slow learning curve느린 스피드저성과


 이 대표가 직원들에게 보여준 포도트리의 20121월 현재 상황이었다. 결국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결론. 이대로 가다간 201112월의 상황이 2012년말에도 반복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앱스토어 랭킹과 판매액에 관계없이 그냥 가만히 지위를 유지만 해도 시장 규모와 100% 비례해서 함께 성장하는 방법이 뭘까요?”


 그가 답까지 제시했으면 좋으련만, 그 역시 답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이제부터 우리들이 함께 답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직원들이 아마 허탈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삼성벤처투자에서 투자받은 금액이 30억원이었는데, 당시의 개발 규모와 인력을 고려하면 1년쯤 버틸 수 있겠더라구요. 6개월 안에 혁신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얘길 했습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답을 찾으려고 했죠.”


 그가 찾은 것은 개별 앱 개발사가 되는 게 아니라 콘텐츠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는 거였다. 일일이 개별 앱을 만들어서 시장에 파는 게 아니라 플랫폼을 만들고 단일 저작툴을 공개해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올릴 수 있게 하는 거였다.


 최대주주인 김범수 의장과도 상의를 했다. 결과는 OK. 그해 6월에 사업모델이 확정됐다. 전자책 뿐 아니라 VOD, 만화, 동영상, 각종 교육 콘텐츠 등을 만들어 올리고 이용하는 플랫폼이었다. 이듬해까지 쉴 새 없이 플랫폼 개발에 매달렸다. 그리고 20134월에 카카오페이지라는 이름의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이 출시됐다. 카카오톡의 방대한 사용자를 기반으로 하면서 수많은 작가, 출판사, 파워블로거, 교육업체, 잡지사 등이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 및 유통 플랫폼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완전 망했어요.” 이 대표의 말이다.


 그가 보여준 당시 방문자 수 및 수익 그래프에는 아무것도 표시돼있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줄이 그어져 있었다. 이용자 증가, 매출 증가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사용자는 매우 느리게 유입되고 이탈은 매우 빨랐어요. 재구매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죠.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혹독한 구조조정

카카오페이지를 오픈하기 전 201211월 포도트리는 삼성벤처투자, 메가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70억원의 추가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 누적 금액이 100억원을 훌쩍 넘어 있었다. 서비스 출시 직후엔 중국의 텐센트로부터 70억원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서비스가 처참하게 실패한 것이다.


 그해 7월에는 심지어 가입자보다 이탈자가 더 많아지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는 최고경영자로서 결심을 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그래도 판단이 빨랐습니다. 그게 제 장점이라고나 할까요? 하하시간이 지났으니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당시 그로선 사선을 달리고 있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다급했다. 어떻게 바꿔야 할까. 뭐가 문제일까. 시장에선 이미 카카오페이지가 망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었다. 저작권자도, 소비자도 모두 불만이었다.


 이 대표와 포도트리가 분석한 카카오페이지의 실패 원인은 너무나 많았다. 콘텐츠를 찾기도 힘들고, 가격도 복잡하고 유료 모델은 불편했으며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장르별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저작툴과 뷰어, 운영 방식 등으로 인해 저작자들도 불만이 폭주하고 있었다. 총체적인 실패인 셈이다.


 “그때 저희는 세 가지 되겠지신드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말하는 세 가지 되겠지신드롬이란 카카오니까 되겠지’, ‘새로우면 되겠지’, 그리고 추천하면 무료인데 되겠지였다.


 재빨리 개편에 나섰다. 20139월에 카카오페이지 2.0’ 버전이 오픈됐다. 핵심은 콘텐츠 분절 판매였다. “책과 만화를 전부 분절해서 올려놨습니다. 조금씩 볼 수 있게 한 거죠.”


 처음엔 출판사들과 저작권자들이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도움을 받기가 힘들어 동의만 얻고 책을 분절하는 작업을 직접 했다고 한다. 여기에 애니팡의 하트 소진과 충전 모델을 도입했다. 일단 효과는 있었다. 방문자 수가 늘었다. 결제를 하는 사람들도 확실히 늘어났다. 일 사용자 수가 기존 1000명 대 수준에서 이제는 2만명~3만명 수준으로 늘었다.

여전히 형편 없는 수준이었어요. 나아지긴 했죠. 하지만 그 수준에서는 회사가 지속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2014년이 밝았다. 상황은 비슷했다. 쓰는 돈에 비해 나가는 돈이 훨씬 많으니 실적 개선은 요원했다. 어느새 100명을 넘어선 인원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흔히들 눈에서 피눈물이 난다고 하는데, 그런 심정이었을까. “40~50명을 구조조정해야 했습니다. 정말 살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어요.”


 그는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모든 SNS를 다 끊었다. 회사가 이 지경인데 사람들과 온라인에서 희희덕거릴 마음이 나질 않았다. 회사가 잘 되지 않으면 그에겐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급한대로 구조조정을 했지만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DAU 2~3만명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무엇보다 잔존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계속 반복적으로 서비스 이용을 위해 방문하는 이들이 감소하고 있다는 거였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기다리면 무료...포도트리를 살린 BM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콘텐츠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좋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면서도 기꺼이 이들이 돈을 내게 함으로써 수익을 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대표가 마치 독백처럼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1인극처럼 자신에게 대답했다.

저는 다른 방법은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기다리면 무료를 하지 않았으면 아마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사라져버렸을 수도 있죠. 저희가 볼 때 이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구조조정을 거친 뒤 20144월 카카오페이지는 세 번째 버전을 공개했다. 버전이 나올 때마다 운영방식과 비즈니스 모델이 달라졌다. 이번엔 웹소설과 웹툰을 도입했다. 웹소설과 웹툰이 들어오고 나서 매출과 트래픽이 동시에 늘어나는 우상향 성장이 시작됐다. 20144월 이전 꼼짝도 않던 성장 그래프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일 사용자 수는 3만명에서 20만명으로, 월 매출은 6억원 안팎에서 13억원으로 늘었다.


<카카오페이지 월 결제액 및 일 이용자수 지표. 오른쪽은 일 사용자 수, 왼쪽은 월 결제액>


 그리고 그해 201411기다리면 무료’ BM이 도입됐다. 말 그대로 기다리면 무료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방식을 도입한 것. 사용권을 충전해야 잘게 쪼갠 콘텐츠를 계속해서 이어 볼 수 있는데 여기에 과감하게 일정 시간이 지나가면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무료로 볼 수 있는지 시간표시로 알려줬다. 예를 들어 24시간이 지나면 무료로 볼 수 있음을 소비자에게 알려주면서 시계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23시간, 22시간...남아 있는 시간을 표시해주면서.


 “안에서 치열하게 논의를 했어요. 만일 전국민이 그냥 기다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진거죠. 물론 전국민이 다 기다리면 우리는 망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랬다.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기다리면 무료라는 걸 알지만 결국 결제를 했고, 여러 가지 콘텐츠를 보기 위해 습관적으로 들어왔다가, 잠시 기다려도 봤다가, 결국 결제를 하고 여러 콘텐츠를 봤다. 기다리면 무료 방식은 습관적인 재방문과 재구매를 유도했다.


 201411월까지 매달 적자를 면치 못했고, 하루하루 불안한 나날을 이어갔던 포도트리는 기다리면 무료 BM을 출시한 뒤 벌떡 일어났다. 201412월 월 단위로 바로 흑자전환을 했고, 폭발적으로 성장을 했다하루 이용자 수는 20만명에서 90만명으로, 월 거래 금액은 13~14억원에서 75억원으로 급증했다. 하루 거래 금액만 25000만원을 웃돌고 있다.


우리의 가장 큰 경쟁자는 '어제의 우리'

2015년 포도트리의 카카오페이지 연간 콘텐츠 거래액은 600억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1000억원을 가뿐히 넘어설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10년 창업했을 때 제가 회사 슬로건 말했던 거 기억하세요?”

물론 기억하고 있다. “Apps that breathe”

맞아요. 제가 정했던 겁니다. 살아 숨쉬는 앱을 만들자는 의미였어요. 그만큼 생생하고 최고의 앱을 만들어서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뭘까요.”

내가 알 턱이 없다.

지금은 One Step More입니다. 이건 직원들이 지었어요. 한 걸음만 더.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한 걸음만 더 가자. 여기서 포기하지 말고 한 걸음만 더 가자. 주저앉지 말고 한 걸음만 더 가자.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우리가 깨달은 겁니다.”


<이진수 포도트리 대표의 최근 모습.>


 포도트리는 2015년말 큰 변화를 겪었다. 최대주주인 김범수 의장의 지분을 전량 카카오가 인수하고 이진수 대표의 지분도 절반 가량을 카카오에 넘겼다. 이제 김범수와 이진수의 회사가 아니라 카카오의 자회사가 된 것이다. 이제 포도트리 전체 지분 중 70%를 카카오가 갖고 있다. 이진수 대표는 여전히 포도트리의 대표이지만 카카오라는 더 큰 틀에서 움직여야 한다.


 포도트리는 올해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1000억원 거래를 예상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1조원짜리 회사. 그가 입버릇처럼 외는 말이다. “사업을 시작했으면 1조원짜리 회사는 만들어야죠!”


 그는 더 이상 201012월에 만났던, 당시 창업한 지 4개월짜리 회사를 이끌던 그 때의 이진수 대표가 아니었다. 여전히 섬세하고, 치밀하고, 주도면밀하지만,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시장을 배웠고 직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을 배웠다. 그와 장장 네 시간이 넘는 대화를 나눴지만 그의 마지막 말이 나에겐 가장 와닿았다.


 “우린 요즘 회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경쟁자는 다른 경쟁사가 아니라 바로 어제의 우리, 지난 주의 우리, 그리고 한달 전의 우리라고 말입니다. 어제의 우리에겐 수도없이 깨졌고 지금도 깨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의 우리에게도 많이 졌습니다. 하지만 한 달 전의 우리에겐 결코 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35개월이 지났습니다. 35개월동안 우린 한 달 전의 우리의 모습보다 더 나은 실적, 더 나은 실력을 보여주면서 계속 성장해왔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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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대표를 처음 봤을 때 그는 ‘21세기 최첨단 찌라시를 만든다고 했었다. 수식어는 좋지만, 어쨌든 요약하자면 찌라시(음식점들의 전단지) 를 스마트폰으로 옮겨 놓는 게 그의 구상이었다. 그 뒤로 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배달의 민족은 여전히 음식 배달 주문 1위 앱이고 주문 건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회사의 수익구조와 지향점은 완전히 탈바꿈했다. 그는 우리를 단순히 음식 배달 앱 개발사로 여기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 “창업하고 6년이 지났어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꿈이 다른 회사가 됐습니다.”

쿼드 닷(Quad Dot)

최근 우아한 형제들은 중국의 벤처캐피털(VC)인 힐하우스캐피털로부터 5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벌써 다섯 번째 투자다. 누적 투자 금액은 100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힐하우스는 왜 우아한 형제들에 투자를 했을까. 김봉진 대표는 푸드테크 분야의 1위 업체에 투자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의 저스트잇, 미국의 우버잇츠처럼 한국의 1등 배달 업체에 투자를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장점유율은 이용량에서 50%(코리안클릭 집계 기준)를 넘는 압도적인 1위이지만 그냥 음식 배달 앱 개발사가 아니었기에 서로 손을 잡았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의민족에 이어 배민라이더스(맛집배달대행), 배민프레시(신선식품 정기배송) 등 신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건 모두 최근 1~2년새 이뤄진 일이다. 올가을께 반조리 식품·식자재를 배송하는 배민쿡을 출시할 계획이다. 배민라이더스 서비스의 경우 현재 서울 강남, 서초, 송파, 관악 등 일부 지역에서만 서비스가 되고 있지만 올해안에 서울·경기 전 지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이들 4개 사업을 쿼드닷(quad dot)’이라고 불렀다. 어딘가 잡스가 말한 점의 연결(connecting the dots)’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우아한 형제들이 잘하는 게 패러디 아닙니까. 하하 과거 일련의 사건들이 당시엔 각각의 점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엔 다 연결되더라는 잡스의 말을 사업에 적용한 것 맞습니다.”

4가지 분야는 그가 말하는 푸드테크라는 산업의 큰 맥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기술을 통해 음식 산업의 발전을 꾀한다는 것.

배달의 민족은 완성된 음식을 음식점에서 집으로 갖다 주는 것만 한다. 그것도 사실 배달이 가능한 음식에 대해서만 서비스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음식을 따로 배달하지 않지만 맛있는 음식점도 있고, 음식을 꼭 어디서 시켜 먹어야만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음식 배달을 할 수 없는 맛집의 음식을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배민라이더스, 신선식품을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가 배민프레시다.

음식의 궁극적인 최고 경지는 결국 집밥이다. 집에서 식구가 같이 맛있게 해 먹는 음식처럼 맛있는 게 있을 리 없다. 배민쿡은 음식을 집에서 해 먹기 어려운(솜씨가 없던, 시간이 없던) 사람들의 요리 부담을 덜어주는 서비스. 음식을 해 먹기 쉽게 반 완성 상태로 재료를 그대로 집에 갖다 준다. 요리엔 왕초보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해 먹으면 훌륭한 요리사가 한 요리처럼 맛있는 집밥이 된다. 전국민의 백종원화라고나 할까.

사업 6년째...더 큰 꿈이 생겼다.

그는 왜 이렇게 사업을 넓혀나가고 있을까. 혹시 지난해 수수료 0% 선언이 영향을 미쳤을까. 음식 배달로부터 수익을 내는 폭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수익을 낼 수 있는 다른 사업으로의 확장이 필요한 것일까.

그는 사업 6년째에 접어들면서 변화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사업을 시작할 때는 ‘21세기 최첨단 찌라시라는 모토 만으로도 충분했다. 업계 1위로 올라섰고 거래는 계속 늘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인재를 모으고 더 성장하기 위해선 그저 음식 전단지를 온라인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배달의 민족이 미친 가장 큰 영향이 뭔지 아세요?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음식을 시켜 먹는 것에 거부감을 없앴다는 겁니다. 전화 통화를 해야만 될 것 같고, 전단지를 찾아야 음식을 시킬 수 있을 것 같고, 이런 습관이 스마트폰 앱 하나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해 준 것이죠.”

결국 배달의 민족은 자신이 스스로 사람들에게 선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선 것이다. 지금까지는 전단지를 스마트폰에 집어 넣는, 기존의 공식을 따랐다면 이제는 자신이 만든 새로운 경험을 더 확장하는 것이 숙제가 된 것. 그게 쿼드 닷이다. 온라인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고 결제하고 받아서 먹는 일련의 과정을 배달의 민족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냈고 이제는 그 과정을 좀 더 세분화해 사람들의 경험이 더 확대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사업도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제 커머스의 단계로 접어든 거죠.”

온라인쇼핑은 처음엔 책으로 시작됐다. 형태의 변질이 없고, 유통기한이 없으며 운송이 간편한 책으로 시작돼 점차 다양한 물품으로 확대됐다. 그는 우아한 형제들이 하고 있는 업의 본질을 결국 커머스로 본 것 같다. 음식 배달이 아닌, 음식과 관련된 거의 모든 커머스다. 음식을 주문해서 먹는 게 자연스러워진 사람들에게 이젠 식재료도 정기적으로 갖다 주고, 맛집의 음식도 대신 사다 주며, 아예 요리를 바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기에 우리는 꿈의 크기가 다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커머스가 되니까 기술의 영역이 커지고 있다. 그건 그가 당면한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이다. 현재 460명인 직원 중 개발자는 70여명 수준. 빠른 시일 내 이를 100명까지 늘려야 하는게 그의 숙제다.

커머스가 되면 물류가 중요해진다. 모든 종류의 배달과 배송에 있어서 배차를 잘 해야 하고 지역과 시간에 따른 효율적인 배분이 중요해진다. 배민라이더스를 처음엔 강남 3구에서 했지만 지역이 확대되면 엄청난 수의 라이더가 필요하다. 사람 숫자만 무작정 늘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배달 및 식재료 수요가 늘어나면 날씨에 따라, 그날의 이벤트에 따라 최적화된 배송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선 데이터 분석과 이를 위한 기술 인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야말로 고객의 주문 전화가 오기 전에 이미 치킨이 배달 준비를 끝마친 상황이 되야 하는 것이다.

그는 장기적으로 창업 컨설팅으로의 확장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전국의 창업 지도를 배달의 민족이 파악하게 되면 식음료 분야 창업을 시도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컨설팅이 가능하다. 피자집에 몰려 있는 동네에 또 다른 피자집을 내지 말라고 조언하는 식이다.

스타트업으로 6년째 접어들면서 정말 생각이 많아졌어요. 스타트업은 처음엔 어떤 문제를 해결하면서 비즈니스가 발전하고 성장하쟎아요. 하지만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또 하나의 혁신이 있어야 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아마존이나 네이버 넥슨 이런 기업을 그런 것을 해 낸 거죠. 작년에 0% 수수료 선언한 이후 두 번째 도약을 위한 과도기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기업이 될 것인가.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이게 우리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주고 변화해서 혁신을 이뤄내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스타트업이니까요.”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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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전했다. 20119월 스타일쉐어가 처음 공개됐을 때 봤던, 소탈하면서도 똑 부러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당시 학생 창업가에서 이제는 어느덧 5년차 벤처기업 CEO로서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이 부여됐을 뿐이다. 학생 창업가가 시작한, 젊은 여성들의 패션 정보 공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시작된 스타일쉐어는 커머스와 미디어의 역할로 기능을 확대하며 플랫폼화하고 있다. 이제는 어느덧 학생 창업의 귀감으로 손꼽히는 스타일쉐어 윤자영 대표를 만나 근황을 들었다. (윤자영 대표의 과거 창업스토리는 한국의 스타트업-(58)스타일쉐어 윤자영 대표)

올해 가장 큰 변화가 뭔가요.

매출이죠! 매출이 올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20119월 스타일쉐어를 처음 런칭했으니까 이제 어느덧 만 4년 지났어요. 그런데 사실 작년까지는 매출이 전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매출이 작년에 처음 났지만 고작 1000만원 정도?(웃음) 연 매출 1000만원 했는데 올해는 그것의 30배 이상 성장한 것 같아요. 그래봤자 이제 매출이 막 시작한 단계긴 하지만요.”

매출은 주로 광고에서?

아직까진 그렇습니다. 매출은 주로 광고에서 나오고 있어요. 작년에 광고 처음 시작했고 올해 본격화됐어요.”

그럼 그 동안은 거의 매출 없이 어떻게?

투자자금으로 계속 버텼죠. 처음에 프라이머에서 받았고 이재웅 대표와 슈프리마에서 시리즈A투자를 받았어요. LB인베스트먼트에서 작년에 투자 받았던 게 마지막이었는데요, 내년쯤 다시 투자를 받아야할 것 같습니다.”

광고 외 다른 매출이 있나요?

최근에 커머스를 시작했어요. 아주 조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대화 도중 윤자영 대표는 커머스가 작동하는 화면을 직접 보여줬다. 화면에는 패션 관련 정보와 아기자기하고 예쁜 사진들 속에 실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페이지가 함께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만큼 아직 비중도 작고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정말 조심히 시작한 게 확실히 티가 나네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을 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스타일쉐어는 10대후반에서 20대 여성들이 정말 모여서 즐겁게 정보를 공유하고 즐기는 곳인데 커머스를 붙이면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죠. 다행히 아직까지는 전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네요.”

<스타일쉐어의 청담동 새 사무실에서. 이름이 각각 '단'과 '추'인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는데, 낯선 사람이 들어가서 그런지 쏜살같이 사라졌다. 스타일쉐어의 사무실 각 방에는 예전 사무실 주소가 적혀 있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어려움을, 그리고 짧은 시간에 사무실을 옮겨 다닐 정도로 성장했음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아직 BEP에 도달하진 않았죠?

네 아마 내년 상반기쯤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현재 회원 수는 200만명이고, 스타일쉐어 MAU(월평균사용자 수)50만명, 하루 평균 15만명의 유저들이 순수하게 방문해서 쓰고 있어요. 커머스는 두 달 전부터 시작했는데, 매출이 나오면서 매출액이 비용의 70% 가량을 커버하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BEP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투자는 필요해요. BEP를 넘기고 나서 이익이 더 생기면 누적이 되겠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지금 충성도 높은 사용자가 늘어나고 매출이 늘어날 때 서비스를 더욱 확장하고 글로벌 서비스를 하려면 확실히 투자가 필요합니다.”

외국 사용자도 있죠?

아직 대부분의 고객은 한국에 있어요. 지금 유저의 90%가 한국이고 그 밖에 일본과 대만에서 유저들이 들어오고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어요. 바라기는 내년 하반기에는 일본이나 대만에서 해외 결제가 가능한 모델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우리는 10대와 20대 여성 최고의 정보와 커뮤니티의 장이 되려고 하는데 국내에서만 할 필요는 없어요. 해외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모델이죠.”

말씀을 듣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멘탈이 갑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까지 창업하고 3년이 지나도록 매출이 거의 없었는데, 걱정 되지 않았나요? 엄청나게 쪼들리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은데.

글쎄요. 아마 아무것도 몰라서 그렇지 않았을까요. 제가 정말 어릴 때 창업을 한 것 같아요. 지금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당시엔 그냥 유저들이 계속 늘어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었어요. 그게 즐거워서 일을 했지 돈을 어떻게 벌고 그런 것은 별로 생각을 못했어요.”

4년전 처음 봤을 땐 창업멤버들이 전부였는데, 이젠 직원들도 많이 늘고, 조직 관리나 신경 쓸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지금 직원이 스물다섯명이에요. 많이 늘었죠? 사무실도 소풍 사무실에 있다가 압구정동 갔다가 최근에 청담동으로 옮겨왔어요.

사실 작년까지는 잘 몰랐는데, 올해 들어와서 초반기 6개월 정도, 이 정도가 창업을 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작년에 스타일쉐어는 멤버를 크게 보강했거든요. 그동안 시니어 개발자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해 다음 출신의 시니어 개발자를 CTO로 모셨거든요. 그 밖에 여러 포지션의 강력한 사람들을 모셔오면서 팀이 업그레이드됐죠.

그런데 그러면서 나 자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어요. 팀이 업그레이드 되기 전, 회사가 초창기에는 제가 기획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여러 가지 업무를 했거든요. 그런데 각 분야에 훌륭한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러면서 그분들이 기대하는 CEO로서의 모습과 내가 실제로 하는 그런 모습과의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 같았어요. 내 역할이 뭔지, 나의 정체성이 뭔지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구요.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맞추려고 나를 자꾸 바꾸려고도 해 보고 그랬는데 그러면서 처음으로 사업이 별로 재미가 없어지기도 하더군요. 사업하고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조언도 구하고 그랬는데, 결국 내린 결론은 나는 그냥 내 스타일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 외에 별로 방법이 없더라구요. 그리고 결국 회사가 잘못되면 책임은 대표가 져야 하는 거. 조직원이 점점 많아지고 회사가 커지면서 대표의 역할이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 자신의 그릇, 조직 관리 등에 대해 정말 생각이 많아질 것 같아요.”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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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봄, 윤반석 데어즈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경영자라기 보다는 디자이너에 가까웠다. 간지 나는 패션에서나 실제 하는 일에서나, 그에게서 디자인 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긴 힘들어보였다.

그 후로 3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그는 디자이너에서 경영자로 확실하게 변신했고, 디자인 에이전시 업무 역시 서비스 기획·개발로 바뀌어 있었다. 두 차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개발했다가 실패를 맛봤지만 안정적인 에이전시 일을 할 때보다 훨씬 의욕에 차 있었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지만, 조금씩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데어즈 윤반석 대표의 3년 간의 기록이다

대전환 ; 디자인에서 모바일 SNS

디자인을 통해 세상에 공헌하겠다는 포부로 사업을 시작했던 그이기에 2008년 창업을 한 뒤 2011년까지는 디자인 외주를 받거나 다른 상품의 디자인을 기획하는 일을 해 왔다. 그의 생각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12년 무렵부터. 그때 그는 자신들이 직접 운영하는 모바일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시장의 엄청난 변화를 목격한 게 첫 번째 이유. 그 다음 이유는 조직의 성장을 위해선 자체 비즈니스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모바일 혁명이 오는 것을 보면서 이대로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두번 다시 오기 힘든 엄청난 기회와 시장이 열리고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았어요.”

그는 엄청난 기회에 주목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해 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한 것 같았다. 그때 그는 지인의 소개로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2012년 당시 아블라컴퍼니 창업자인 노정석 사장이었다.

노정석 사장을 만나고 나서 제 사업의 지평이 완전히 달라지게 됐죠. 당시엔 사실 그걸 잘 몰랐어요.” 노정석 사장을 통해 IT(정보기술) 분야의 디자인 일을 하면서 틈틈이 IT분야 창업자들과도 만나게 된 윤 대표.

변화하는 시대의 기회를 잡아야한다는 확신을 굳힌 그는 SNS 분야 서비스를 기획했다. 디자인 외주를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오기 힘든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수야 없죠.“ 처음 개발한 것은 팅팅팅’. “이성을 사귀고 싶어하는 솔로 친구들을 최대 6명까지 소개할 수 있어요. 이것을 본 지인 중 이 앨범에 올라온 솔로 친구에게 관심이 간다면 포크 버튼을 누르면 되는 식이죠. 이렇게 하면 주선자에게 소개팅 의사가 있다는 게 전달되고, 이 사람이 두 사람을 연결시켜 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즉 소개팅을 공개적으로 하는 그런 서비스다. 그냥 막연하게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가 아니라 친구의 친구들 리스트를 보면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찜해 소개시켜달라고 하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말에 나온 팅팅팅2013년 중반까지 40% 가까운 재방문율을 보이며 순항하는 듯 했다. 그런데 오래가지 못했다. 우선 서비스를 지속할 만큼의 사용자가 충분히 모이지 않았다. 재방문율은 높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충성도는 양호한 편이었지만 전체 유저 수가 늘지 않았고 수익 모델도 없었다.

팅팅팅을 서비스하던 와중에도 윤 대표는 두 번째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은 픽업(PICUP).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 이미지를 손쉽게 버튼 하나로 스크랩하며, 스크랩한 이미지를 보고 친구들이 해당 제품이나 비슷한 제품을 추천해주는 취향 관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이자, ‘쇼핑링크 공유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윤반석 대표는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스타일의 이미지나 매거진의 글래머러스한 이미지는 실제 쇼핑을 통해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단순히 워너비의 성향이 강한 정보로 구성된 것이 대부분이죠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픽업을 단순히 이미지 정보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구매도 할 수 있도록 연결을 시켜줬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201311월 첫 클로즈베타서비스를 시작해 20142월 오픈베타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픽업 역시 채 1년을 지속하지 못하고 중단되고 말았다.

분명히 기회가 있었는데, 왜 잘 안됐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이유있는 실패, 확실한 깨달음

사실 아무 이유없는 실패는 아니었다. 이미 전조는 있었다. “B2C 서비스를 만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의욕은 대단했죠. 그런데 시장에 대한 고려도 없이 무작정 뛰어들었던 거죠.”

그가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실패의 이유다.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창업자 역시 이런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노 대표가 계속 지적을 했었죠. 사업을 기회로만 바라보지 말라고요. 기회는 어디에나 있지만 사업은 기회가 전부가 아니다. 시장을 봐야 한다. 그래야 사업성이라는 게 나온다고요. 저는 사실 시장 사이즈나 성장 가능성, 수익 모델 이런 것에는 애시당초 별 생각이 없었던 게 사실이에요. 이렇게 큰 기회가 있는데 어찌 놓칠 수 있을까 하고 시작한 거였거든요.”

그렇지만 아무 의미 없는 실패도 결코 아니었다. “서비스를 두 번 접으면서 확실하게 배운 게 있죠. 일단 수익모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기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이라는 거였죠. 수요가 없는 서비스를 만들어서 뭘 하겠습니까.”

그래도 그에겐 확실한 장점이 있었다. 우선 실행력이 있다는 것. 기획을 하면 그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원하는 대로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그의 큰 장점이다. 두 번째로 그에게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는 동료들이 있다. 수년간 온갖 일을 겪으면서도 묵묵하게 그와 함께 지내온 현소민 실장, 김민 팀장 등 창업 멤버 및 초창기 멤버들이 회사를 지탱하고 있는 것 역시 큰 장점이다.

그가 갖고 있는 장점은 지속가능한 데 비해 단점은 수정 가능했다.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는 뜻이다. 그는 픽업에서 의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서비스는 결과적으로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사람들이 실제 패션 관련 상품을 구매하는 등 구매로 연결되는 비율이 상당히 높은데 이걸 그냥 지켜보기만 했던 게 안타까왔다고 한다. “정말 숫자가 좋았는데 외부 링크로 연결을 하니 자체 매출이 나오질 않았죠. 이걸 살려보고 싶었어요.”

이걸 어떻게 살릴까. 고심하는 자에겐 답이 나오는 법. 그는 키워드를 열심히 찾던 중 구글과 바이두 등 해외 검색엔진에서 Seoul 키워드가 최근 2년새 4배 이상 급증한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게 하나의 트렌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문화를 찾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어떤 트렌드를 만들어갈 수도 있다고 봤어요

이렇게 해서 그가 찾아낸 것이 서울스토어닷컴(www.seoulstore.com)이다.

서울언니들의 서울스토어닷컴

서울스토어는 세계적으로 트렌디한 키워드로 떠오르는 서울트렌드 리더들인 서울언니' 모습을 보여주고 커머스로 연결하는 온라인 스토어입니다.”

윤 대표가 직접 설명하는 서울스토어닷컴의 모습이다. 타겟은 좁게는 서울트렌드에 관심이 많은 20-30대 여성이지만, 요우커, 동남아시아의 서울의 트렌드와 제품에 관심이 높은 사용자까지 확대할 예정.

서울스토어는 지난 두 차례의 실패에서 배운 교훈이 반영돼 있다. 철저하게 수익 모델이 있는 사업이며, 시장 수요와 전망에 기초해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패션과 beauty 분야에 집중하면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윤 대표 본인의 그동안의 경험과 자신감도 깔려있다. 무엇보다 윤반석 사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장성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찾은 사업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픽업은 개발하는 데 5개월이나 걸렸어요. 하지만 서울스토어는 4주만에 개발을 끝냈죠.”

어떻게 이런 차이가 가능했을까. 사업적인 접근을 했더니 문제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는 설명. “커머스 서비스는 상품, 가격, 콘텐츠. 이렇게 3가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에 집중을 했어요. 쇼핑몰 본연의 것에 집중하니 개발의 원칙도 분명했죠.”

물론 내가 보기엔 픽업의 경험이 상당히 작용한 것 같다. 픽업에서 이미 패션정보를 공유하는 SNS 서비스를 해 봤기에 한결 수월하게 서울스토어닷컴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여간 출발은 단순하게 했다. 트렌드가 되고 있는 서울 언니들(패션과 뷰티쪽의 열혈 사업자들과 주된 소비를 하는 여성들)의 물건을 사고 팔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시간을 보내는 그런 온라인 장소로 만들겠다는 것.

414일 서비스를 오픈했다. 아직 마케팅을 할 때는 아니라고 판단돼 별로 알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첫날 부산,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결제까지 이뤄졌다. “너무 기뻐서 마진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날 바로 직원들하고 치킨 시켜 먹으며 자축파티를 했죠. 하하

서울스토어는 현재 모바일 웹 버전으로 만들어져 있다. 앱으로도 만들어 곧 출시할 계획이고 이미 개발에 착수했다. 이미 현재 웹 버전도 앱 못지 않게 심플하다. 각종 패션샵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패션 정보, 가게 정보를 올려놓기도 하고 자신의 패션스타일이나 자신이 파는 상품을 올려놓기도 한다. 이것을 들어가 구경만 하기도 하고 자신의 패션을 자랑하기도 하고 마음에 들면 바로 주문도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라는 키워드로 하나의 패션세계를 만들어보겠다는 그의 구상이 담겨 있다.

그는 지금 B2C 사업에 대한 열망에 가득차 있다. 서울스토어는 그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커머스 사업인 동시에 확실한 수익모델이 있는 B2C 사업이다. “디자인을 계속 해오다 사업으로 넘어오고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의 희열이 엄청나다는 걸 처음 알게 됐네요. 7년이나 사업을 했는데 여전히 새로운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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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월 정지웅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소셜커머스 사업을 하고 있었다. 공동구매 경험을 한 곳에 모은 토스토라는 서비스를 내놓기 직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뒤로 4년하고도 7개월이 지났다. 이 기간 중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명품 소셜커머스 클럽베닛으로 관련업계 1위에 올랐고 사업을 성공적으로 매각하기도 했다. M&A된 회사에 들어가 잠시 일하기도 했지만 결국 또 다른 창업을 위해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이제 광야에서 다시 출발했다. 바이탈힌트를 창업해 돌아온 정지웅 대표를 만났다.

6개월 뒤만 생각하니 길이 보이더라

2010. 당시엔 소셜커머스가 한창 붐이었다. 티켓몬스터의 급격한 성장에 고무된 스타트업들이 너도나도 소셜커머스란 신분야에 뛰어들었다. 정지웅 대표는 그런 소셜커머스 열풍 속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가 구상해 출시했던 토스토(Tosto)는 일종의 공동구매포털이었다. 당시 소셜커머스들이 특정 상품에 대해 한정된 시간에 싸게 구매할 수 있는 혜택을 주는 방식인데 비해 토스토는 이미 활발하게 공동구매를 하고 있는 유명 카페나 파워 블로그 등을 한 곳에 모으는 공동구매 포털을 지향했다. 블로거들의 마켓플레이스인 셈이었다.

이미 블로그 등을 통해 공동구매를 활발하게 하고 있던 이들을 모았기 때문에 토스토는 초기 안정적인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성장이 신통치 않았다. 거의 정체돼 있다시피한 서비스를 보면서 그는 고민에 휩싸였다. “매출이 하루에 1000만원도 나고 그랬지만 성장을 못 했어요.”

시기가 문제였다. 상당수 블로그의 상업성 때문에 유저들이 블로그를 떠나는 시점에 토스토를 오픈한 것. 때마침 국세청이 블로그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 것도 타격이 컸다. “토스토에 앞서 수공예제품을 거래하는 원포미라는 서비스를 했었는데 그것도 잘 안 됐었거든요. 계속 잘 안되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이유가 뭘까.”

원포미는 너무 빨리 시작햇고, 토스토는 너무 늦게 시작한 게 문제였다. 그게 그의 결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는 커머스 분야를 다시 돌아봤다. 막 명품 아울렛이 생겨나고 있는게 보였다. 6개월후에는 명품에 대한 소셜커머스의 수요가 엄청나게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사실 제가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이미 명품을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사이트들이 꽤 있었어요. 후발주자로 들어간거죠. 하지만 시장이 아직 미성숙해 있어서 승산이 있다고 봤어요.”

그가 볼 때 다른 명품판매 사이트들은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명품 재고를 사서 싸게 파는 방법이었다. 명품 소셜커머스 클럽베닛을 오픈하기 전 그는 쇼핑업계 사람들을 두루 만나고 다녔다. 그리고 한국 현실에 맞는 서비스를 기획했다. “우선 재고없이 가기로 했어요. 오프라인 창고를 두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운영해서 효율성을 높이고 재고를 쌓아두지 않았기 때문에 자금 수요도 적었죠.”

광고도 차별화했다. 외주를 주지 않고 광고를 직접 운영했다고 한다.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 광고를 집행하면서 실시간으로 고객의 반응을 체크했고 고객의 반응에 따라 상품 구성을 수시로 바꿨다.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오늘의 주력 상품으로 원래 프라다를 밀었는데 오늘 루이뷔통이 반응이 더 좋다. 이런 결론이 나오면 바로 제품을 교체하는 거죠. 광고를 집행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바로 알 수 있거든요.”

토스토와 원포미의 실패를 통해서 그는 고객의 반응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 배움을 클럽베닛에서 그대로 실천한 게 성공의 비결이라면 비결. 2012년 클럽베닛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업계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때쯤 싱가포르 소재의 리본즈라는 벤처기업에서 인수 타진이 왔다. 한국에서 리본즈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명품커머스를 하고 있던 이 업체는 아예 클럽베닛을 인수해 한국 사업을 본격화하기로 한 것이다. 지분을 매각하고 리본즈코리아로 들어가 일을 같이 했다. 첫 사업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M&A한 셈이다.

Exit을 한 뒤 방황이 시작됐다

사업을 하면서 너무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매각을 하고 나면 좀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사업을 그만두고 나서 방황이 시작됐다. 갑자기 인생의 방향성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원래 저는 제프 베조스같은 기업가가 되는게 꿈이었어요. 훌륭한 기업가들을 롤모델로 삼고 지금까지 살아왔죠. 그런데 막상 창업해서 Exit을 경험하고 나니 인생의 목표가 좀 달라졌다는 걸 깨달은거죠. 그런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나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이런 형이상학적인 고민이 그때부터 시작됐다. 회사를 계속 다녀야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가 들었다. 내가 정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창업 선배들의 조언이 도움이 됐다. “30년 후의 모습을 먼저 그리면 10년 후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고, 10년 후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3년 후 무엇을 해야 할지가 나올 거라고 하더군요. 3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고 1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니 내일 뭘 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구요. 그렇게 했더니 정말 알겠더라구요.”

그래서, 어떤 결론을 내렸나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사회를 해킹하는 사람이 되자? 표현이 좀 이상한가요? 저는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는데 기술을 기반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오프라인의 삶, 그런 영역에 공헌을 하고 싶은 거에요. 아주 쉽게 말하면 전통산업을 IT로 바꾸는 거라고도 할 수 있죠.”

결국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3년간 있기로 했던 조건을 지키지 못했기에 얼마간의 혜택을 포기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새롭게 출발해 뭔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좋았다.

어떤 아이템으로 시작을 할까. 골똘히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게 아니다. 계기는 우연처럼 왔다. “아버지께서 고지혈증으로 쓰러지셔서 간호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이 병이 먹는 걸 정말 잘 관리해야 했는데, 특히 짜게 먹으면 안되거든요. 약으로 낫는 병이 아니에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찾는 정보가 잘못된 게 너무 많은 거에요. 이거 안되겠다 싶었죠. 거기서 창업이 시작됐어요.”

새로운 시작, 또 하나의 시행착오

그는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지혈증과 관련된 몸에 좋은 음식 정보를 알려주듯이 음식의 영양 성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준비한 것이다.

처음엔 영양정보 사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정말 유용하게 쓰면 모여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수익모델도 생길 거라고 판단했구요.”

회사명은 바이탈힌트(Vital Hint)라고 지었다. 서비스명도 Hint. 우선 정확한 정보에 초점을 맞췄다. 음식 영양 사전이 목표였다. 방대한 작업이었고 이를 위해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았다.그런데 서비스를 하다보니 사람들의 반응이 그가 생각했던 것과 좀 달랐다.

이런 음식에 이렇게 좋은 영양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만들 수 있는거냐? 이런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아니, 어떻게 만들면 좋은지 알 수가 없는데 이런 정보가 무슨 소용이 있냐. 이런 지적도 있었구요.”

그리고 사람들이 영양이나 건강만 찾지 않는다는 것도 서비스를 해보고 알게 됐다고 한다. “좋은 정보를 제공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게 꼭 그렇진 않더라구요. 사람들이 음식에서 기대하는 가장 큰 가치는 맛이더군요. 그 다음에 건강을 찾아요. 그러니까 맛있는 음식 중에서 건강한 음식을 찾는 거죠. 그걸 몰랐어요.”

서비스는 이래서 어렵다. 좋은 서비스를 만든다고 되는게 아니다. 사람들이 찾는 서비스가 되야 한다. 첫 사업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그는 영리한 변화를 꾀했다. 흔히 피봇이라고 한다. 영양 정보는 Hint 1.0. 그러면 사람들이 찾는 음식 정보는 Hint 2.0으로 하면 어떨까.

피봇을 할 때는 시장의 흐름을 유심히 봐야 한다. “첫 창업때 느낀 거죠. 너무 일찍 시장에 진입해도, 너무 늦게 진입해도 힘들다는 걸요. 사람들이 음식을 해먹는 것에 슬슬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TV에서 음식 해먹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고. 되겠다 싶었어요.”

이번엔 음식이다!

그래서 그의 두 번째 창업 아이템은 시행착오를 거쳐 음식으로 확정됐다. 음식을 해먹는 남녀라는 뜻의 해먹남녀로 서비스명도 확정했다.

맛집 정보 못지 않게 요즘 관심있는 분야는 직접 해 먹는 음식. 냉장고를 부탁해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도 1인 가구의 증가와 혼자 먹는 음식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남녀노소 구분없이 누구나 간단하게 음식을 해먹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줄었고 건강을 중시하면서 무작정 밖에서 사먹는 음식보다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그러면서도 뭔가 독특하게 해 먹는 음식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

“‘냉장고를 부탁해’ PD 인터뷰를 봤는데, 인상적인 부분이 있더군요. ‘만드는 데 15분 이상 걸리는 요리는 안된다는 거였어요. 사람들이 그런 요리는 보질 않는다는 거죠. 심플한테 독특하고 몸에 좋고 그런 음식을 찾는 추세입니다.”

시장의 트렌드는 이런데 마침 제대로된 서비스는 없다는 게 그의 판단. 2013년 네이버 키친이 벤처기업 상생 차원에서 폐지되면서 그나마 있던 서비스가 사라졌고 이런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커지고 있다.

요리에 대해서만큼은 네이버를 능가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 수많은 요리의 레시피 재료를 분석해 음식명 뿐 아니라 재료로도 검색이 가능하게 만든다. 시간대별, 난이도별 검색도 된다. 냉장고를 열었더니 재료가 돼지고기와 고추장밖에 없다고 하자. 이런 재료를 입력하면 한정된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 리스트가 뜬다. 음식명, 재료, 난이도 등으로 레시피 검색이 가능한 최초의 요리 검색 서비스가 되겠다는 것이다.

자 그럼 이런 요리 검색을 하기 위한 데이터가 중요한데, 이건 어디서 가져올까. “요리 블로거들과 제휴을 맺었어요. 한 사람당 500개 정도의 레시피가 등록돼 있더군요. 100명과 제휴를 하면 5만개의 레시피가 등록되는 셈이죠.”

요리 블로거들이 기존에 올린 글이 해먹남녀에 맞게 재구성돼 편집된다. 모바일 버전에서는 스마트폰 환경에서 보기 편하게 화면이 재구성된다. 스크롤 방식이 아니라 화면을 넘겨가면서 요리 과정을 보고 따라할 수 있게 한 것. 이와 같은 패턴 알고리즘을 만드는 게 개발의 주요 과정이었다.

해먹남녀는 다음주 중 오픈할 예정이다. 우선 웹으로 나오고 그 다음에 앱으로도 출시된다. 해먹남녀 서비스 추이를 보면서 투자 유치도 추진할 계획. “다시 창업을 하니까, 그런 느낌 아시나요. 심장이 쫄깃쫄깃하다는 느낌. 정말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지나고보면 실패하는 과정이 곧 성공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실패할 때 배우는 게 정말 많았죠. 다시 창업을 하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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