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확실히 늘어나고 있다. 가볍게 가족들끼리 즐기거나 혼자하는 운동부터 팀을 이뤄서 하거나 지역사회, 또는 동호회에 가입해서 하는 운동까지 꾸준히 즐기면서 운동을 생활처럼 하는 사람들을 이제는 흔하게 주위에서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초보라는 이유로, 장비나 정보가 없어서, 함께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하고 싶은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생활체육을 사회 공헌의 관점에서 접근해 사업에 나선 사람이 있다. 한국의 스타트업 225회 주인공, 정아람 대표다.

소셜벤처 창업 나선 검도4단의 무도인

용인대에서 동양무예, 검도를 전공으로 한 정아람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일찌감치 창업을 할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체육을 전공으로 하면 프로선수, 실업팀 선수 등 전문적인 선수의 길을 가거나 아니면 도장을 차리거나 강습을 하는 쪽으로 가게 마련이에요. 스포츠 관련 지식이나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려면 도장이나 전문 강습을 하는게 맞죠. 그런데 저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4월중순 플레이콕 주최로 열린 검도 동호인 모임. 앞줄 오른쪽 네번째 앉은 이가 정 대표>

검도 4단의 무도인 정아람 대표는 확실히 운동으로 단련된 사람의 분위기를 풍겼다. 합기도와 씨름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한다. 어쨌든 그는 선수로 계속 남고 싶은 마음도, 그냥 도장을 차릴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뭘 알아야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다. 그래서 경영 관련 과목도 듣고 연관된 서적도 읽는 등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흔히 말하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홈플러스에 공채로 입사했다. 그는 여기서 인생공부를 했다고 한다. 나이 지긋하신, 거의 어머니뻘 되는 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조직 관리를 배우고, 지식이나 이성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한다. 3년 동안 있으면서 점포관리 매니저로 일했다.

아무리 권한이 있다고 해도,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을 이끌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가 먼저 앞장서서 매장의 물품을 정리하고 말로 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2014년에 홈플러스를 나와 스포츠총판회사에 입사해 영업을 기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 목적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과 같은 선수출신들 또는 체육 전공자들의 일자리 창출과도 관련된 것이었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들만 전국에 35만명에 달합니다. 실업팀이나 프로선수 출신의 체육인들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죠. 이들 대부분은 1년에 100만원 정도에 불과한 연금을 받습니다.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생활이 될 정도의 수입을 버는 사람은 매우 드물어요.”

이들에겐 일자리가 필요하다. 이들은 프로들이고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실력이 있다. 일반인들과 이들을 만나게 한다면 일반인들에겐 해당 스포츠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엄청나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학원을 차리는 것도 자금이 어느 정도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 운동만 열심히 한 체육인들은 돈을 좀 가지고 있더라도 사기를 당해 날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정 대표는 이런 선수출신 체육인들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스포츠교육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것은 통상적인 스포츠센터에서 하고 있는 정기 강습이나 체험 시스템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생활 체육 저변 넓힌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스포츠를 하고 싶거나 잘 해서 동아리 등을 조직해 스포츠를 즐기는 애호가들의 숫자만 3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협회 등에 등록된 사람만 이 정도니,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들 중 단순 취미 생활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도 제대로 배운 체육 전공자들이나 선수 출신들에게 강습을 받고 싶은 이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선수 출신이나 체육 전공자들에겐 이런 수요가 일자리가 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국민의 체육 활동을 장려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거창한 목표에 일조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를 찾는 운동 애호가들과 선수출신의 체육 전공자를 연결해주는 것. 이것이 정 대표가 생각한 서비스의 컨셉트였다. 일자리 창출과 건전한 활동의 증대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에 이른바 소셜 벤처로도 모자람이 없다. 사이트를 오픈해서 양 쪽의 수요를 연결시켜 줄 장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사이트를 만들려면 엔지니어가 있어야 한다. 그는 창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어서 직접 사람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그런 모임에서 드디어 개발자를 찾았다.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석사학위까지 받은 뒤 창업을 준비하고 있던 김문학씨를 만난 것이다. 김문학이 개발를 맡기로 하고 두 사람은 20151224일 플레이콕을 창업했다.

사이트는 이달 말쯤 정식 오픈할 예정. 다만 그 전에 실제로 사람들을 모으고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지 실험을 해보기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테스트를 하고 있다. 대학이나 직장 등 큰 규모의 동호회에 체육 전문가를 연결하는 것은 기존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정 대표의 판단. 전문가를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방법으로 수익도 낼 수 있다.

관건은 지역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다양한 소규모 모임을 끌어내는 것과 모임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운동에 대한 관심이 있는 잠재적인 동호인들을 세상에 나오게 하는 것. 시험 삼아 지난주엔 검도 모임을 만들어봤다고 한다. 별로 알리지도 않았건만 20명 한도는 그날로 다 찼다. 심지어 외국인도 있었다. 검도에 관심이 있지만 학원에 다닐 시간은 없고, 그저 검도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가끔씩 즐기고 싶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사실 그렇다. 운동을 한다고 꼭 도장을 다녀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스포츠센터에서만 체육 활동을 하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다른 선택은 쉽지 않다.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가 쉽지 않고 장소나 지도해줄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플레이콕은 그런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이다. 검도, 유도, 마라톤, 축구, 야구, 농구, 테니스, 탁구 등 20여개 종목의 동호회나 애호가들, 초보자들에게 언제든 원할 때, 시간 될 때 그런 모임에 나가 운동을 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스포츠 버킷리스트가 있다.’ 플레이콕에게 이 명제는 이 회사의 존재 이유와도 같다. 그런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게 해 주는 것이 이 회사의 목표다. 특강콕, 번개콕, 경쟁콕 등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다. 그냥 수영을 초보 단계부터 배우는 모임도 만들 수 있지만 특정 종목, 예를 들어 접영을 마스터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면 이들이 플레이콕을 통해 전문가를 초청해다 특별 강습을 받을 수 있다.(특강콕) 또 봄 등산을 하기 위해 즉석 모임을 만들거나(번개콕), 우리동네 농구대회를 여는 것(경쟁콕)도 가능하다.

당신의 스포츠 버킷리스트는 뭔가요? 수상스키? 암벽등반? 그런데 왜 그것을 못하고 있나요?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라서? 전문가를 못 찾아서? 장소가 없어서?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을 못 만나서? 플레이콕에 오시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 꿈을 현실로 만드어 드립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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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그는 살이 쪽 빠져 있었다. 얼굴이 더 작아 보였다.

살이 많이 빠졌네요?”

미국에서 살면서 야식을 못 먹어서 그래요 ^^”

에스이워스 홍민표 대표는 20137월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어느 덧 미국에서 일을 벌인 지 3년이 다 되간다. 그 동안 한국에서 사업을 해 왔던 그는 왜 미국으로 갔을까. 미국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는 그가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 만나 그 동안의 얘기를 들었다. 벌써 IT 분야에서만 세 번째 창업을 하는 그를 이제야 소개하는 것이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공교롭게 몇 차례 기회를 놓쳤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국이 낳은 대표적인 해커이자 스마트폰 앱 보안회사 에스이웍스를 운영하고 있는 홍민표 대표다.

더 큰 시장으로 가자

그는 2012년말까지 쉬프트웍스란 보안업체의 대표였다. 연말에 회사를 정리하고 다른 보안업체 에스이웍스를 차렸다. 모바일 시대에 맞게 모바일 앱에 최적화된 보안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런데 그는 회사를 차리자마자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본사를 아예 미국 델라웨어에 등록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냈다. 무슨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인가요?”

그렇죠. 그런 이유가 있죠. 그런데 계기는 사실 따로 있어요.”

그가 2008년 쉬프트웍스를 처음 설립할 때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룩아웃(Lookout)이라는 미국의 보안 회사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그 회사의 기업 가치는 15000억원을 상회할 정도.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그 회사를 보면서 그는 시장의 한계를 절감했다. “더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더 큰 시장에서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에스이웍스는 창업을 하자마자 미국으로 옮겼죠.”

그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서 글로벌 영업을 하려면 미국에 주소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실제 그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야 했다. “여기도 마찬가지에요. 곧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투자를 하려고 하겠어요?”

실리콘밸리 진출은 이처럼 현실이기도 했지만, 그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예전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하고픈 꿈이랄까, 동경이랄까 그런 게 있었어요. 물론 막상 가보니 현실은 완전히 달랐죠. 하하

<홍민표 대표와 오랜만에 만난 정다운 친구처럼 얘기를 나누며 그간의 소식도 듣고 사진도 찍었다. 미국 생활을 통해 훨씬 더 단단해지고 IT분야의 사업가로서 훨씬 더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 실리콘밸리에 있으면서 느낀 점을 물었다. 규제가 별로 없다는 것, 엔지니어 파워가 세다는 것, 그리고 제품이 정말 완벽해야 한다는 것 등을 꼽았다. 아울러 흔히 생각하는 칼퇴근 문화따윈 없다는 것도 지적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한다고 하면, 5시에 칼퇴근하고 근사한 곳에서 식사하면서 취미생활을 즐기고, 여유롭게 일하는 그런 풍경을 떠올리쟎아요? 그런 사람들이 물론 가끔 있긴 있죠. 하지만 대부분 벤처기업들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구요.”

규제가 별로 없다는 것도 그에겐 신선한 부분이었다. 이런 사업도 될까 싶은게, 실리콘밸리에서는 다 가능하다는 것. 제품을 일단 출시하고 수정 보완해가면서 판매를 늘려가는 방식이 실리콘밸리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한다.

세계적인 모바일 보안업체 만들고파

, 어쨌든 홍 대표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미국에서 정착하려고 애쓴 건 최근 출시한 스마트폰 앱 전용 보안 솔루션 앱솔리드의 미국 및 해외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에스이웍스를 창업하고 나서 바로 메두사헤어라는 모바일 전용 보안 소프트웨어를 내놓았다. 메두사헤어는 초기 출시 이후 몇 차례의 업데이트와 성능개선 등을 거쳐 올 3월에 앱솔리드로 재탄생했다.

앱솔리드는, 쉽게 말해 해커가 앱에 악성코드를 심는 것을 막아주는 프로그램이다. 앱에 악성코드를 심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혹시 내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일까. 그런 측면보다는 앱을 만든 기업체들이나 앱을 통해 광고를 하는 회사 등 기업들이 피해를 보게된다는 게 홍 대표의 설명. 앱의 소스코드를 해킹해 악성코드를 심으면 앱의 광고를 통해 A라는 회사에 들어가야 할 광고수익이 악성코드를 심은 곳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려면 앱에 보안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시간과 인력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 이런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개발자가 앱을 앱솔리드 사이트에 올리면 1~2분 안에 프로그램의 구조 정보를 담은 소스코드를 볼 수 없도록 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글 플레이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무료 앱 중 85%가 보안 조치가 허술해 손쉽게 앱의 소스코드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커가 앱의 소스코드를 빼낸 뒤 악성코드를 심거나 위·변조한 앱을 배포해 사용자 모르게 개인정보를 빼내는 데 악용할 위험이 있다. 한때 세계 해킹대회에서 우승을 한 적도 있고 세계 3대 해커로 손꼽히는 인물이 전하는 해커에 대한 경고다.

그는 미국 시장 진출을 통해 해외 고객을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고객의 90%는 한국기업들이고 미국 고객은 10%에 불과하다. 최소한 미국 및 해외 고객을 절반 수준으로 끌어올릴 정도로 글로벌 영업을 확대하려고 한다.

미국에 가서 실리콘밸리에 있으면서 그는 현지 생활을 이득을 톡톡히 본 것 같다. 현지에서 메리 민(Mary Min)이라는 창업가 출신의 인재를 회사에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메리 민은 게임회사를 창업하는 등 잇따른 창업을 통해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하고 대형 IT기업에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홍 대표는 우연한 기회를 그를 만나 설득해 회사에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사업을 확대하고 주요 투자자 및 파트너를 연결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줄곧 미국에 살던 홍 대표가 이번에 잠깐 한국에 들어온 것은 미국에서의 사업 확대를 위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다. 에스이웍스는 이미 창업 초기 소프트뱅크벤처스, 퀄컴벤처스 등으로부터 20억원의 투자를 받은 바 있다.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달려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러시아 속담인데 제가 항상 명심하려고 하는 경구죠. 투자를 받을 때는 항상 조심하려고 합니다.”

미국 생활이 외롭지는 않을까. 현지에서 4명의 현지 직원을 채용했고 주간에는 사무실에 나가 있겠지만, 주말과 밤에는 혼자 있어야 하는 생활이다. 생각보다 한국인으로 현지에 진출해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 사업가가 별도 없다는 점도 어려운 부분이다.

외롭죠. 스스로 이방인이라는 인식도 상당히 있구요. 그걸 이겨내는 것도 해외 시장에 나가서 겪어야 할 숙명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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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눈에도 전투력이 상당히 높아 보였다. 청소든, 비즈니스든, 영업이든, ‘뭐든 맡겨만 주면 다 해치우겠다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일을 찾아서 하고, 재밌게 하고, 결국 해결점을 찾고야 마는 이들은 분위기에서부터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여기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청소 시장에 혁신을 몰고 오겠다는 홈마스터 변영표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문의 내력

변영표 대표는 어릴 적 클리닝(청소) 사업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컸다. 대기업에 재직하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퇴직을 하신 아버지께서 선택한 사업은 원래 비디오 대여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만류로 사업 아이템이 바뀌었다. 편하지만 전망이 불투명한 비디오 대여점 대신 몸이 고되더라도 시장이 사라지지 않을 청소분야에서 일을 만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당시 변 대표는 10살 꼬마였다. 어머니의 만류와 아버지의 새로운 선택. 당시엔 몰랐지만 이 선택은 부모님의 인생 뿐 아니라 14, 10살이었던 변영효, 변영표 형제의 운명까지 바꿔놓고 말았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학생 변영표는 틈틈이 부모님의 회사에 가서 일을 했다. 간단한 일을 도와주고 용돈을 벌었다. 폴린아트(부모님이 운영하는 회사)는 개인사업이었지만 주로 법인을 상대로 한 B2B 청소 사업을 했다.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는 폴린아트는 특히 법인 소유의 비행기, 헬리콥터, 자동차 내부 청소에 특화돼 있었다. 고정 고객이 있었고 이들에게 인정을 받아 오랫동안 영업을 지속해온 것이다. 청소에는 도가 튼분들임에 분명하다.

이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이들 형제 역시 청소에는 남다른 감각이 있지 않을까 싶다. 청소란 것도 제대로 배워서 한 사람과 대충 현상 유지를 할 정도의 수준으로만 하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학생 변영표는 가천대 산업디자인학과(미대)에 진학했다. 아이폰이 국내에서 처음 출시된 2009, 컴퓨터공학을 전공해 엔지니어의 길을 가고 있던 형 변영효와 동생 변영표에게 첫 기회가 오게 된다.

어느날 형하고 얘기를 하다가 ATM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근처에 어디에 어떤 은행의 ATM 기기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면 1300원에서 1800원에 달하는 ATM기 수수료를 아낄 수 있을텐데 그걸 모르니 사람들이 수수료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 거죠.”

형제는 위치 기반 정보를 이용, 사람들에게 은행 ATM 기기의 위치를 알려주는 앱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ATM Finder’. 각자의 주거래 은행 ATM 기기 중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기기를 찾아주는 것이다. 가격은 0.99달러. 유료이지만 한번 이상만 쓰면 무조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컨셉트로 가격을 책정했다. 맞는 말이다. 제대로 알려주기만 한다면 단 한번만 잘 써도 앱을 구매하느라 쓴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형이 앱을 만들고 동생은 앱을 디자인했다. 형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앱. 이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출시한 지 열흘만에 인기있는 앱 순위 10위에 올라갔다고 한다. 그랬다. 누가 생각해도 잘 될 것 같았다.

사람들이 0.99달러씩 결제해서 그냥 돈이 들어오더라구요. 당시 학생 신분에선 큰 돈이라고 할 수 있죠. 돈 쉽게 번다.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리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앞으로 계속 이렇게 돈을 벌 줄 알았죠.”

그런데 세상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이제 그냥 앱을 내비두면 돈이 저절로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생각이 오산이었다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사업의 교훈

어느 날부터 악플이 달리고, 사용자들의 평가가 확 나빠지더군요.”

왜 그랬을까. 오류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앱 자체에 버그도 발생했고, 위치 기반 정보를 크롤링하는 과정에서 일부 실수도 있었다. 사업을 한 경험도 없고, 앱이란 것도 처음 만들어본 이들은 관리유지 보수까지 생각이 미치질 못했다. 결국 이들은 얼마 안 가 앱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성공의 과정이 오래 지속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소중한 경험이었다. 사업이란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 못지 않게 지속적인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공교롭게도 또 IT 분야에서 일을 할 기회가 온다. “2013년말부터 2014년말까지 스터디서치란 벤처기업에서 일을 했어요.”

그는 이때 다시 한번 확신을 하게 된다. 자신이 IT 분야 일을 좋아하는 것을. “일이 재밌더라구요. 그리고 예전에 앱을 만들었던 것도 생각 나고요. 그때는 앱을 내렸지만, 다시 서비스를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군을 제대하고 나오니 세상이 달라진 것도 그가 결심을 굳히는 데 도움이 됐다. 여기저기 창업 열풍이었다. 변영표는 경험이 있었고, 하고 싶은 분야도 있었다. 그는 형을 설득했다. 이번엔 이 형제들의 장기인 청소 분야를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삼성전자를 다니고 있었던 형은 흔쾌히 동생의 말을 수락했다. 사이가 상당히 좋은 형제다. 한 사람은 엔지니어, 한 사람은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서로 빈 곳을 채우기 좋았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는 좋은 조합이다. 부모님의 조언도 받았다. 부모님은 B2B를 하시지만, 이들 형제는 B2C에 도전하기로 했다. 아직도 가능성이 충만한 시장이라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회사 이름은 홈마스터로 정했다.

<홈마스터 창업멤버들. 가운데가 변영표 대표.>

출장 청소 서비스 분야엔 절대 강자가 없어요.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업체가 1%가 안될 정도니까요.”

그만큼 시장이 춘추전국시대라는 건데, 그렇다면 한편으로 경쟁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시장에서 변영효 변영표 형제는 어떤 차별점으로 승부를 보려고 한 것일까.

핵심은 서비스의 질이다. 청소 서비스의 수준을 높여 고객 만족도를 높이면 된다. 그런데 사실 모든 업체들이 이것을 추구하고 있다. 홈마스터는 뭐가 다른 걸까.

가사 도우미의 스케줄 관리가 저희들의 차별점입니다.”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선 공급자인 가사도우미 분들의 일에 대한 만족도, 일에서 오는 보상이 확실해야 한다는 게 오랜 시간 동안 청소 분야를 섭렵(?)해 온 이 형제들의 결론이었다. 즉 가사도우미가 자신의 일에 만족해야 고객도 혜택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사도우미 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원하는 만큼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어요. 예를 들어 매일 매일 일거리가 있으면 좋겠는데 실제로는 일주일에 두 건 정도밖에 없는 거죠. 그나마 오전 일만 있고 오후엔 공치는 일도 허다하구요.”

카카오가 들어와도 자신 있다

그래서 홈마스터는 가사도우미의 스케줄을 관리해준다. 이들이 괜히 놀지 않도록, 일이 없어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고객의 요청이 들어오면 시간표를 채워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사도우미는 소득이 높아져 만족도가 높아지게 되고, 홈마스터 입장에서는 적은 수의 가사도우미로도 많은 지역, 많은 고객을 커버할 수 있게 된다. 일 잘하고 평판 좋은 가사도우미와 계약을 체결하고 이들에게 빈틈없이 일감이 돌아가기 때문에 고객들의 만족도도 상승하게 된다. 모두가 이익이 되는 구조라는 설명. 즉 일하는 구조에 변화를 줬다는 게 변영표 대표의 주장이다.

기존 다른 서비스들은 고객과 가사도우미를 단순 연결해주거나 경매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싼 값을 제시하는 가사도우미를 고객이 선택하는 방식이다. 홈마스터는 경매나 단순 연결이 아닌 관리품질을 앞세우고 있다. 앱을 다운로드받고 자신의 지역을 등록하면 평형에 따른 가격표와 가사도우미가 제시된다. 얼핏 당연한 듯 보이지만 평형에 따라 가격을 조정해 가사도우미와 고객 간 논쟁의 소지를 줄였다는 것도 홈마스터가 내세우는 차별점이다.

변 대표는 자신들의 서비스를 카카오택시가 아닌, 카카오블랙에 비유했다.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가격이 비싼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가격에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받고 싶은 고품질의 청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사도우미에 대한 선별도 까다롭게 하고 있다.

현재 아파트 및 전업주부를 위한 별도의 상품을 만드는 등 상품 다양화도 추진하고 있다. 일종의 프리미엄 서비스인 셈이다. 청소에 대한 기준이 높고 까다로운 사람들을 위해선 그들에게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요즘 이 시장에 카카오가 들어온다는 설이 파다합니다. 아마 맞을 겁니다. 올 상반기 중에 진출한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저희는 카카오가 들어와도 자신있습니다. 인터넷으로 그냥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에 변화를 준 겁니다. 가사도우미의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면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높아지게 됩니다. 그 구조를 만들어가겠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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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시장은 그 어떤 시장보다 불신의 장벽이 높은 시장이다. 거래를 하고 나서 누구라도 뭔가 속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물론 신차나, 휴대폰 구매 시장도 그런 측면이 다분히 있지만 신차나 휴대폰 구매의 경우엔 속았다는 느낌이 가격에만 적용된다. 즉 가격적인 손해만 보면 된다. 그런데 중고차에서는 품질에 대한 불신의 벽도 굉장히 높다.

이처럼 가격과 품질에 대한 불만, 불신이 팽배한 시장이지만 거래는 엄청나게 이뤄진다. 불편하고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중고차 시장의 거래규모가 신차 시장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의 중고차 등록 대수는 346만대에 달했다. 167만대에 불과한 신차 등록 숫자의 2배를 뛰어넘는다. 중고차를 사고 파는 수요는 많은데 과정이 너무 불편하고 신뢰가 바닥이다. 불만이 곳곳에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를 바꿔보려는 시도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기존 딜러들에 의한 거래 관행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하는 카팜은 딜러를 배제한 중고차 거래 시스템에 도전하고 있다. 재미있는 시도다.

신차 딜러에서 중고차 매매상으로

카팜의 창업자 박도일 대표는 푸조와 아우디, BMW 등 수입자동차 업계에서 딜러로서 일을 시작했다. “2005년에 처음 시작해서 2011년까지 수입자동차 업계에 있었어요.”

수입자동차의 국내 판매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할 때쯤 그는 그 업계를 떠난 것 같다. 그쪽 분야에서 별로 비전을 찾기 힘들었다는 설명. 최연소 과장이 되고, 항상 해당 브랜드의 전국 판매순위 10위 안에 들 정도의 실적을 냈지만 영업이 설 자리가 없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영업맨이 가져가는 마진이 점점 줄어들고, 영업을 열심히 하는 메리트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그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일즈맨이라는 자신의 직업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세일즈라는 직업이 언젠가, 그것도 좀 빨리 대체될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이었죠. 영업직이 미래에 사라질 것 같았어요. 꼭 신차 판매쪽이 아니더라도. 보험이든 뭐든. 핵심적인 것은 기술로 다 커버가 가능하고. 점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뭔가 물건을 구매하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요즘에 보면 BMW는 차에 대해 설명만 해주는 월급 직원을 뽑아서 배치하고 있습니다. 차 판매 실적 부담이 없는 직원이에요. 손님에게 차를 사라고 강권하지도 않죠. 그냥 친절하게 설명만 해 줘요.”

자동차도 그렇고, 보험도 그렇고, 전부 시장에 정보의 비대칭과 불확실성이 큰 분야다. 손님이 딜러나 영업사원을 잘 신뢰하지 않을뿐더러 분쟁이 잦은 영역이다. 어느 순간 이런 분야에서 영업맨이라는 중간의 과정이 불필요한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게 그의 예상이었다.

어쨌든 그는 그래서 중고차 시장으로 들어왔다. 물론 중고차 시장으로 넘어온 가장 큰 이유는 더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생각때문이었다. “신차는 사실 사람들도 브랜드를 보고 사고, 영업사원도 브랜드에 힘입어 매상을 올립니다. 차가 잘 되도, 잘못되도 다 브랜드 탓이죠. 그런데 중고차는 그렇지 않아요. 영업사원의 역할이 크고, 매우 중요합니다. 세일즈맨에게 돌아가는 책임도 훨씬 크고요.”

중고차 분야에 와서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차 영업을 하면서 비교적 꾸준히 계속해서 성공 가도를 달려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만해지고, 세상에 겁 날 게 없다는 생각도 했다고. “저는 밖에 나가서 막 계약을 갖고 들어오고 그럼 직원들이 이것을 처리하느라 바쁠 정도였어요. 정말 일이 잘 풀렸죠.”

중고차 매매를 한 지 3년이 채 안된 시점에서 일이 터졌다. 대금을 떼이는 일이 발생한 것. 그 때까지 그런 일은 상상조차 못했지만, 수억원대의 돈을 떼이고 빚까지 지게 됐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한국형 비피닷컴

어려움이 닥치자 그는 다시 처음의 문제 의식으로 돌아왔다. 결국 딜러로 지내는 삶이 비전이 없을 것 같다는 문제 의식. 그렇다면 자신도 기존 중고차 매매상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또 다른 중고차 매매상이 되는 것 보다는 다른 시장을 창출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시장을 완전히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에요. 다만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차 공유 서비스가 확산된다고 기존 렌트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쟎아요. 차를 공유하는 새로운 시장이 생긴 거죠.”
중고차 매매 과정의 불편함과 불신,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그가 찾은 것은 기존 딜러(중고차 매매상)들과의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 비용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 “중고차 딜러들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요. 여기서 비용을 줄이려면 딜러들 마진을 줄이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딜러들도 힘들어지죠.”

중고차 딜러 출신이어서 그럴까. 그는 기존 중고차 딜러들과 경쟁해서 그들의 시장을 가져오는 방식은 선택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차피 그 쪽 시장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있을 것이란 판단. 대신 그는 소비자들간의 직거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뒀다. 기존 중고차 딜러 없이 거래하돼, 딜러와 연계해서 하는 서비스처럼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즉 직거래 시장의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다. 그래서 카팜을 만들면서 직거래 도우미라는 컨셉을 가져왔다.

그의 이런 생각은 미국 중고차 매매업체 비피닷컴(www.beepi.com)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비피닷컴은 온라인 중고차 거래 사이트인데, 기존 딜러를 통하지 않고, 구매자와 판매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서비스다. 더 비싼 값에 팔고, 더 싼 값에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정책을 모토로 성장하고 있다. 차량을 맡기면 30일 이내 책임판매를 보장해준다. 얼마 동안 걸릴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매수인과 매도인이 만날 필요도 없다. 딜러를 상대할 필요도 없다. 모든 과정을 비피닷컴이 다 알아서 해 준다. 그런데도 기존의 딜러를 통한 방식보다 더 차를 비싸게 팔 수 있고, 구매자 입장에서는 싸게 살 수 있다. 운행 이력 보고서는 당연히 기본적으로 제공되고, 차를 판매하겠다고 내놓은 사람도 차가 팔릴 때까지 그냥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다.

사실 비피닷컴의 가장 큰 장점은 강력한 환불보장 정책이다. 강력한 환불보장 정책 때문에 매력도가 크게 상승해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구매자가 구매 후 마음에 안들면 무조건 차 구매 비용을 환불해준다. 차를 사면서 들어간 각종 운송비 등도 다 돌려준다. 구매후 10일이 지나지 않았고 1000마일 이내로 자동차를 이용했다면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든, 지난밤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이유 불문하고 환불을 받을 수 있다. 환불을 했다고 해서 차량 판매자에게 다시 돈을 받아내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떠안고 알아서 판매를 진행한다. 정말 엄청난 서비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환불 정책을 실시하는데도 미국에서 비피닷컴에 실제로 접수되는 환불 요청은 1% 미만이라고 한다. 그만큼 품질에 대한 까다로운 통제가 있기에 가능한 시스템이다.

물론 카팜이 한국형 비피닷컴을 지향한다고 해도 강력한 환불보장 정책은 도입하기 힘들다. 일단 취득세 등 차량 구매시 붙는 세금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품질에 대한 까다로운 검수와 소비자 편의 조치는 비피닷컴 수준으로 하겠다는 것.

결제까지 해결한다

기존 직거래 방식은 딜러를 통해서 거래하는 것에 비해 금전적인 이득이 더 있다는 것 외에는 전부 단점 투성이다. 일단 시간이 많이 걸리고, 온갖 서류작업 등 불편을 감수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상대방을 신뢰하기 힘들다는 문제까지 있다. 서류 작업 및 차량 보증 문제를 해결해주고 결제까지 안전하게 해 주면 직거래의 문제가 상다부분 해소된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거래가 늘어나면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판단.

온라인에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사이트를 만들기로 한 박 대표는 생소한 IT(정보기술) 분야의 창업에 도전하기 위해 패스트트랙아시아(FTA)의 패스트캠퍼스에서 창업 관련 수업도 들었다. 물론, 함께 창업할 사람을 만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다행히 그는 패스트캠퍼스에서 선데이토즈와 로켓오즈에서 개발을 했었던 엔지니어 박순우를 만났다. 신민호, 정준모 등이 합류하면서 창업 멤버가 갖춰졌다.

<카팜 창업자 박도일 대표(오른쪽)와 박순우 CTO>

카팜은 기존의 중고차 매매상들처럼 차량을 매입하지 않고, 판매자와 구매자를 직접 연결, 중고차 유통이윤을 뺀 금액으로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최대한의 금전적 이득이 갈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게 핵심이다. 비피닷컴과 마찬가지로 카팜이 사실상 중개업체, 즉 딜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차량을 미리 매입하는 방식을 쓰지 않는다는 것. 그러다보니 고정 비용이 적게 발생하기 때문에 마진을 낮추고도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이득을 돌려줄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카팜의 시세분석 결과 평균적으로 판매자는 중고차 매매상에 판매할 때보다 약 7~9%의 높은 금액으로 판매할 수 있고, 구매자는 5~6% 정도 저렴한 금액으로 중고차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량 판매 신청이 들어오면 중고차 성능진단평가사를 통해 정밀 점검, 가격을 제시하고 이 가격에 판매될 수 있도록 구매자를 찾아주는 것이다. 1월에 카팜(www.carfarm.kr)시범서비스를 시작했고 34일에 정식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카팜은 다만 거래시 약간의 수수료만 받을 예정이다. 현재 중고차 거래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딜러가 개입되면 10%에서 15%까지 가격 차가 발생하는 것에 비해 카팜은 1.5% 안팎의 수수료만 받는 것을 모델화하고 있다.

그는 성장을 위해 금융부분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관리 직원의 숫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고차 구매에서 불편함을 해소해주게 되면 궁극적으로 남는 문제는 금융이기 때문이다.

현재 딜러를 통해 거래하더라도 카드 결제를 하면 수수료율이 무려 8.8%에 달한다. 때문에 대부분 현금이나 캐피탈 할부금융으로 결제를 하는데 이자율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게 그의 분석. 카드결제나 캐피탈사를 통한 할부금융에서 이자율과 수수료율을 현실화할 수 있으면 금융 부분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의 편의가 완성될 것으로 보는 것. 아울러 카팜도 인력 구조가 끝없이 비대해지는 걸 막고 거래 규모 성장을 통해 회사가 발전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카팜에서는 계약금만 카드 결제를 하고 나머지는 가상계좌를 통해서 계좌이체를 진행하고 있다.

사실상 딜러의 역할을 하고, 딜러나 마찬가지이지만 기존 딜러와 직거래의 장점을 결합한 케이스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영업을 하지 않고, 차를 매입하지도 않습니다. 정확한 가격을 제공하고 안전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도와주며, 모든 최종 결정은 소비자들에게 맡깁니다. 대신 거래 안전을 보장하고 차량 구매시 일정 기간의 보증도 진행합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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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네 번째 창업이다. 답답하고 재미없는 일은 못 참는 성격이어서일까. 잠깐의 공백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의욕적으로 새로운 일을 찾아왔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아주 야무지고 똑 부러질 것 같은, 화장품 샘플 정기배송 서비스와 건강 관리 서비스를 했던 그녀가 이번엔 금융상품 추천 서비스를 들고 나타났다. 한국의 스타트업 이백스물한번째 주인공은 핀다(Finda)의 이혜민 대표다.

未生에서 創業家

대학 다닐 때는 외교란 분야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 03학번이었던 학생 이혜민은 외교관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외교라는 분야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2005년 칠레로 떠났다. 당시 칠레와 첫 FTA가 처음 발효되면서 교환학생으로 갈 기회가 생겼다. 스페인어는 제대로 배웠을 것 같다. ADB(아시아개발은행)에서 인턴도 했다. 모두 외교 분야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선 진로가 달라졌다. STX 지주회사에 입사해 전략기획, 투자 등의 업무를 했다고 한다. 일은 힘들었지만 배우는 건 많았다. 공부도 많이 됐다. 하지만 성과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인프라 투자 등의 일을 하다보니 성과를 보기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일까. 이런 일들이 앞으로 내가 하려는 일들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대학생 시절과 사회 초년병일 때, 정체성과 미래의 직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못하고 그저 주어진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그에겐 무척이나 답답했다.

막연한 직장 생활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휩싸여 있을 때 마침 로켓인터넷(Rocket Internet)’이라는 독일의 벤처투자 및 육성회사의 투자, 인큐베이팅을 받을 기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2011년 회사를 나온 현재 꾸까 대표인 박춘화와 함께 공동창업을 했다. 한때 열풍이 불었던 화장품 섭스크립션(정기 배송) 분야의 국내 최초 기업이다. 미국 화장품 정기배송 서비스인 버치박스(Birch Box)’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회사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갔고, 매출도 늘어갔다. 관련 분야 산업도 급성장했지만 그는 오히려 답답함을 느꼈다. 창업자 지분이 많지 않았던 데다 외부 투자자의 권한과 역할이 컸던 게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냥 우리 힘으로 해 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래서 2012년에 그만두고 나왔죠.”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네 번째 도전

두 번째 창업 아이템도 정기배송이었다. 다만 품목이 좀 달랐다. 이번엔 유아 용품으로 했다. 유기농 식재료를 배송하는 서비스도 했다. 회사 이름은 베베앤코였다. 2012년에 이미 정기배송 분야의 사업은 성장세를 타고 있던 시기였다. 샘플을 팔던, 유통과정을 줄여서 가격을 낮추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과 가격 부담이 적다는 것에 소비자들이 열광하던 시기였다. 베베앤코도 당연히 그런 시대적 상황을 반영했다. 다만 문제는 창업자인 이혜민 대표 본인이 아이를 키우고 유기농 식단을 차리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그때 그는 정세주 눔(Noom) 대표를 만나게 된다.

미국 뉴욕에서 워크스마트랩스라는 건강관리 관련 앱 개발회사를 차리고 한국에서도 사업 기회 확장을 모색하던 정세주 대표는 이혜민 대표의 잇따른 창업 경험과 인터넷 사업 분야에 대한 열정, 감각을 높이 샀다. 이때 정 대표는 미국 본사명을 눔으로 바꾸고 건강 관리 앱에서 건강 관련 종합 정보 플랫폼으로 변신을 꾀하며 한국 진출을 타진하고 있었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눔코리아를 설립하기로 하고 이혜민 대표가 한국 법인 총괄을 맡았다. 내가 정세주 대표의 소개로 이혜민 대표를 만났던 것이 이 시점이었다. 2012년 가을에 두 사람은 로켓인터넷 방시으로 사무소 설립 실험을 해보자는 데 동의했다. 처음엔 3개월만 해보자였다. 남부터미널에 오피스텔을 구하고 눔코리아를 세웠다. 20151월 눔코리아를 나올 때까지 이혜민 대표는 약 2년 반 동안 건강관리와 다이어트 서비스의 한국화 및 수익모델 발굴을 맡은 한국 법인을 책임졌다.

이혜민 대표가 다시 새로운 창업에 나서게 된 근본적인 계기는 자신의 사업 경험에서 온 아쉬움이었다. 글로시박스의 경우 사명감이 부족했다는 생각, 베베앤코에서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가 가진 아쉬움이었다. 눔코리아의 경우 본사가 미국에 있고 한국법인의 대표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하고 싶으면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일에 다시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계기는 자신의 생활에서 나왔다.

눔코리아 시절에 결혼을 하고 집 문제 때문에 대출을 받거나 금융상품 가입을 위해서 이런 저런 정보를 알아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너무 복잡하거나 시간이 많이 들거나, 나에게 잘 맞지 않는 정보만 잔뜩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상담을 받으려고 해도 나를 잘 모르다보니 시행착오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죠. 이걸 좀 해소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핀다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금융분야의 아마존 되겠다!

몇 달 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이혜민은 박홍민과 함께 공동 창업에 나섰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니아주립대에서 부동산 금융 석사학위를 받은 박홍민 대표는 금융알고리즘을 담당했다.

<핀다 공동창업자 이혜민(왼쪽), 박홍민 대표>

이들이 201510월 설립한 핀다(FINDA)는 영어로 금융(Finance)’과 한자어 ()’의 조합어다. ‘많은 금융상품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 외 다른 중의적인 의미가 상당히 많다. ‘웃음꽃이 핀다’, ‘구겨진 것을 핀다’, ‘웅크린 것을 핀다등 다양한 뜻이 있다고 한다.

핀다는 판매자와 구매자, 공급자와 수요자간 금융정보의 비대칭에 주목한 서비스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함으로써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게 하겠다는 게 이 회사의 비전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어렵고 골치아픈 금융상품 선택 과정을 도와주는 맞춤형 금융상품 매칭 서비스라는 게 이 대표의 공식 설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고도화된 매칭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의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상황까지 고려, 최적의 금융상품을 비교하면서 찾아주는 서비스입니다.”

핀다 사이트(www.finda.co.kr)는 지난 114일 문을 열었다. 주택매매대출, ·월세대출 그리고 목돈 모으기가 필요한 고객들이 주된 타깃이다. 시중 은행에서 판매되고 있는 금융상품들 중에서 개인에게 가장 잘 맞는 상품을 바로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회원가입이나 신용등급 조회를 하지 않아도 가장 낮은 금리의 상품은 물론 회원들이 가장 많이 찜하거나 가입했던 상품, 평점이 높은 상품 순으로도 볼 수 있어서 마치 호텔 예약 서비스와 같이 쉽고 유용한 것이 특징이다.

핀다는 기본적으로 직접 금융상품을 판매하지는 않는다. 금융사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정보를 제공해준다. 금융사들 입장에선 마케팅 채널이 될 수 있고, 고객들 입장에서는 금융정보사이트가 될 수 있다. 미국 등 해외에선 핀다와 같은 온라인 금융 정보 서비스들이 활성화돼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 고객들이 더 이상 지점에 방문하는 등의 번거롭고 불편한 대면 채널을 이용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자신에게 잘 맞는 상품을 비교 검색하고, 온라인으로 바로 가입할 수 있도록 주요 통로역할을 해 주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단순 정보 제공 뿐 아니라 온라인으로 필요한 서류를 미리 준비하고, 맞춤 설명을 들음으로써 오프라인에서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일 수도 있다. 비대면전용 상품도 구성해 소비자들의 편의를 높일 계획이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금융상품도 쇼핑하듯 쉽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가 겪었던 그런 불편함이 해소돼서 누구나 편하게 자신에게 맞는 금융상품을 찾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했어요. 궁극적으로는 금융상품 분야의 아마존을 만들겠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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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받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저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그래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아무리 똑똑하고 성공한 사람이라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면 나락으로 추락한다는 것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과거 유명인들의 사례를 통해 봐 왔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방법을 못 찾는 사람도 있다. 제법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외국에서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기도 하고, 상담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럼 한국에서는? 어렵다. 가벼운 우울증 정도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지만, 아직 한국의 문화에서는 이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정신과 병원을 잠시만 다녀도 뭔가 큰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풍조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더더욱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를 기피하게 된다. 이게 반복되면 작은 병이 큰 병으로 악화될 수 있다. 카운스링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시작됐다. 현대인의 고민, 우울증과 정신적인 스트레스. 이것을 드러내놓고 치료받기 힘든 한국의 현실. 여기에 해결책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에서 발견한 현대인의 고통

카운스링의 조성식 대표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지만 IT(정보기술)업계에서 오래 일했다. 그가 결국 창업의 길로 들어선 것도 그가 일한 분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졸업후 LG전자에 입사했던 그는 2000년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미 인터넷 기업 야후의 한국법인 야후코리아에서 일하게 된다. 야후가 절정을 달리던 시기와 네이버, 다음 등에 의해 거센 추격을 받고 점점 밀려나던 시기를 다 겪은 그는 2006년 회사를 나와서 첫 창업에 도전한다.

당시 뜨고 있던 아이템은 웹2.0. 조 대표는 누보커뮤니케이션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첫 창업으로 세운 회사를 그는 바로 이듬해 매각했다. 미국의 웹스닷컴이라는 회사가 누보커뮤니케이션을 인수했다. IT 분야 창업 암흑기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창업과 매각이라는 과정을 거친 것 같다. 당연히 매각 조건으로 이 회사에 들어가 2년여 기간 동안 일한 뒤 2009년에는 삼성전자로 가게 된다. (웹스닷컴은 이후 다른 회사에 다시 M&A되면서 회사명 자체는 사라졌다.)

야후를 거쳐 웹2.0 분야의 창업을 했던 인물이 삼성전자로 간다는 것은 뭔가 미디어 분야의 일을 한다는 뜻이다. “삼성미디어솔루션 센터에 들어갔어요. 모바일에 들어가는 콘텐츠, 솔루션 등을 만드는 조직이었죠. 삼성앱스 아시죠?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그 앱을 만들고 기획하는 일이었요. 물론 처음엔 삼성앱스도 애플 앱스토어의 경쟁 개념으로 시작했지만요.”

삼성에서 그는 (어찌보면 처음으로) 직장인들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발견하게 됐다. 한국 사회의 엘리트 직장인들이고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회사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내하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를 인지한 것이다.

직장 동료 중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어요. 아마 다른 직장도 비슷할 거에요. 강도는 다를 수 있겠죠. 어쨌든 정서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상담을 받아봐라, 병원에 가 봐라고 권유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절대 그렇게 안하더라구요.”

아내가 정신과 의사인 그는 정신과 진료나 카운슬링이 상태를 진단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오프라인 심리 상담의 문제점 해결

우리 주위만 둘러봐도 함께 일하는 동료 가운데 정신과 진료를 받거나 심리치료를 위해 상담을 받고 있다는 사람을 그리 쉽게 만나보긴 힘들다. 행여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소문이 날까 두려워한다. 정신과 진료나 상담을 받는 것에 대해 터부시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뭐라고 꼬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다. 자신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는 게 세상에 알려져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불이익을 받게 되리란 것을 말이다. 가벼운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은 많지만 아무도 그것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조 대표는 이걸 바꿔보고 싶었다. 단숨에 이런 분위기를 역전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삼성에서의 경험과 정신과의사와 결혼했다는 점이 그의 창업 아이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이렇게 치료나 초기 상담을 놓치면 병을 더 키워요. 가벼운 우울증이 심각한 정신질환이 되는 거죠. 초기에 그걸 잡을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아본 거죠.”

그는 현재 오프라인 정신과 진료 및 카운슬링 분야의 문제점을 찾아봤다. 우선 개인 정보 보호가 안되고, 돈이 많이 든다는 게 문제였다. 자신이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않고 현금으로만 결제하는 방식을 쓰지만 병원이나 상담센터를 들락날락하다보면 사람들 눈에 띌 수 있다.

정신과 의사나 상담 전문가들의 고충도 있다. 이들은 심리적인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이 고객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고객이 잘 찾아오려고 하질 않는다. 고객 만나기가 힘들다.

<카운스링 창업자인 조성식 대표(오른쪽)와 박여진 이사.>

온라인 상담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오프라인 상담과 정신과 진료의 문제점을 해결하면 시장은 충분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수요와 공급을 모두 만족시키는 새로운 시장이 나올 수도 있다. 20143, 조성식은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5월에 법인을 설립했다아내이자 정신과 의사인 박여진 이사와의 공동 창업이다. 상담전문 서비스 카운스링은 이듬해인 20154월 출시됐다.

No.1 Mental Care Platform

카운스링은 기존 오프라인 상담의 문제점인 개인정보 노출, 서비스에 대한 정보 부족과 선택의 제약, 고객 모집의 어려움 등을 해소한다.

우선 모바일 앱을 깔고 익명으로 가입을 한 다음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분야의 전문 상담사와 문자로 예약을 한다. 상담은 이후 전화통화나 영상통화 상담으로 진행된다. 문자 상담은 절대 하지 않는다. 대면 상담도 하지 않는다. 문자 상담은 서로 오해를 하기가 쉽고, 대면 상담은 개인 정보 노출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카운스링에는 200명의 상담사가 등록도 있다. 이들은 공인받는 자격증을 받은 사람들이고, 평판 조회 등을 통해 1차적으로 검증을 한 이들이다.

모든 상담사에 대해 1회 무료 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다. 몇 차례 상담사별 무로 상담을 받아보고 난 뒤 자신에게 맞는 상담사와 계속 상담을 진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서로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일단 만나서 상담을 받아야 하고 맘에 별로 안들어도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쟎아요. 카운스링 앱에서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결제는 분당, 시간당으로 모두 계산할 수 있다. 종량제도 가능하다. 분당 계산할 경우 1000원꼴로 결제가 된다. 30분 상담을 받으면 3만원인 셈이다. 오프라인 상담 서비스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이다.

지난해 7월 베타서비스를 거쳐 현재 정식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3만여명이 다운로드를 했다. 카운슬러에 대한 평판 시스템을 도입, 처음 이용하는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게 했다.

조 대표는 앞으로 원격진료가 본격화되면 심리 치료 분야가 아마 가장 유망한 분야가 될 것이라며 원격진료를 통해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의 수요를 만족시키는데 원격진료만한 분야가 없다고 말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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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아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앞으로 증강현실은 진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만큼이나 친숙한 현실이 될 지 모른다. 인터넷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1990년대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 재밌는 현상 등이 나타났던 것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하게 증강현실이 진짜 현실과 공존하게 되는 세상이 올 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런 세상을 기대하고 대비하는 서비스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스마트한은 그 중 교육이라는 분야에서 증강현실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췄다.

세상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대학시절 전자공학을 전공한 한준환은 유엔젤이라는 IT 기업에 오랫동안 다녔다. 그의 이력 중에 독특한 점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는데,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으로 했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 보기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 그에게 이런 결정은 우연이나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닌 것 같다. 그 뒤의 행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전자공학과를 나왔지만 그는 콘텐츠나 미디어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직장 생활 중에도 엔지니어로서 일하지 않고 콘텐츠 분야에서 일을 했다.

유엔젤에서 그가 했던 것은 당시 2G폰 시절 휴대폰의 배경화면이나 벨소리를 공급하는 일을 했다. 통신사나 휴대폰 제조업체가 그가 맡은 업무의 고객사였다. 콘텐츠나 서비스 관련 리뷰를 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기도 했단다. 게임퍼블리싱에도 투입됐다. 그야말로 대기업을 상대로 납품 업무를 하는 것에 잔뼈가 굵었다.

그런 시간이 8년 정도 흘렀다. 콘텐츠를 납품하는 게 아니라 직접 기획해서 만들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왕이면 몸이 불편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뭔가 만들면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그를 창업으로 이끌었다.

어느 날 스위스에 여행을 갔는데 유람선에서 할머니와 아이들이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는 것을 봤어요. 가위바위보 게임이라는 게 참 누구나 할 수 있쟎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장애인이 하기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놀이에서 시작됐다. 그는 한국에 들어와 가위바위보 게임 관련된 특허를 찾아봤다. 삼성과 SK텔레콤 등 대기업들이 몇 개의 특허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제스처를 이용한 특허는 없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는 방식에 따라 가위바위보가 정해지는 방식이었다. 게임으로 시작하지만 제스처를 이용해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란 게 그의 구상이었다.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활용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20127월 그는 이 아이디어를 갖고 성남시 시민 창업 경진대회에 나갔다가 상금을 받게 된다. 유엔젤을 나와 창업을 준비하고 있던 그는 20131월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창업을 했다. 스마트폰 시대의 스마트한 서비스와 콘텐츠 제작소가 되겠다는 마음에 회사 이름을 스마트한으로 지었다.

전자책에 증강현실을 입혔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은 다 좋은데, 돈을 벌기 힘들 수가 있다. 한 대표는 장애인을 위한 사업을 하면서도 수익성을 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콘텐츠 사업 중에는 전자책이 그나마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분야로 여겨졌다.

창업을 하고 2013년부터 해외도서전시회를 쭉 나갔어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대표적이죠. 본래는 해외의 전자책 트렌드 등을 보기 위해 나간거였어요. 그런데 다니다보니 책에는 본질적으로 언어의 한계가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되더군요.”

글로벌한 사업을 하고 싶었던 그로서는 언어의 한계에 갇혀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도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다니면서 색을 칠하고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만들어가는 책, 이른바 컬러링 북이 시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거면 언어 장벽 없이 글로벌 서비스를 할 수 있겠다 싶었죠.”

스마트한은 지난해 1224일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꼬마버스 타요 컬러링 세계여행을 출시했다. 증강현실(AR) 기능이 연동된 컬러링 포스터와 앱으로 구성된다. 포스터 형태의 큰 종이에 도시를 테마로 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로마가 테마인 포스터 컬러링에서는 로마 시내 곳곳을 다니며 만날 수 있는 유적 그림과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꼬마버스 타요 캐릭터가 함께 그려져 있다. 어린이들이 마치 색칠공부 하듯이 그림에 색칠을 하고 앱을 실행해 그림에 갖다 대면 타요가 어린이들에게 로마의 주요 유적들이나 유명한 관광지를 설명해준다. 아이들이 실제로 칠한 색 그대로 구현이 되기 때문에 재미도 있고 아이들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해준다는 설명.

포스터 상품은 오프라인 서점 및 온라인 채널에서 구매가 가능하며 앱은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다. 현재는 안드로이드 버전만 출시된 상태이고, 아이폰 앱스토어 버전은 올 2월에 출시될 예정이다.

향후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더욱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추가할 예정. 색칠한 범위에 따라 점수를 획득하고 숨은 캐릭터를 찾을 수 있는 기능성 게임도 제공할 계획이다.

확실히 현재 나온 포스터와 앱 만으로도 어린이들에겐 충분히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색을 칠한 그림이 움직이고 얘기를 하는 모습이 어린이들에겐 확실히 통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사이즈의 포스터가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예를 들어 꼭 포스터 형태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폰과 연동해 증강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노트 사이즈는 어떨까. 타요 외 다양한 캐릭터도 필요할 것 같다. 이용하기에 상당히 번거롭다는 것도 넘어야 할 벽이다. 포스터를 구매해야 하고 앱을 다운받아 실행해야 하는 이중의 장치가 돼 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어려움이야 감수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교육적인 측면의 효과는 아직은 미지수다. 다만 상당한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는 정도다.

한 대표는 시중에 다양한 컬러링 상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초대형 사이즈 포스터에 증강현실 애니메이션 기능까지 연동된 상품은 전 세계 최초라며 전 세계 도시 이미지를 통해 관광상품화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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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과 떨어져 있을 때, 특히 자녀들이 야외에 있거나 이동 중일 때 부모라면 누구라도 자녀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휴대폰을 사 주기도 하고, 수시로 연락도 하지만 아이들이란 원래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트래블 가디언은 여행중인 자녀들의 안전을 확인하고픈 부모와 선생님의 마음을 겨냥한 서비스. 자녀나 혹은 자신이 보살펴야 할 사람이 안전한 곳에 있는지 확인하는 데 최적이다. 여행이나 멀리 떠났을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 활용도를 충분히 넓혀나갈 가능성이 있는 트래블 가디언의 창업자들을 만났다.

가장 중요한 안전이 비어있다!

트래블 가디언의 창업자 3인방(조재현, 원희재, 박지환)은 브레이브이노베이션이라는 IT 회사에서 만났다. 박지환은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이미 한 차례 소개한 바 있다. 일흔아홉번째 스토리로 전했던 위시앤위시(http://limwonki.com/515)의 창업자 겸 대표이사였다. 당시 박지환 대표는 위시앤위시 회사를 매각하고 브레이브이노베이션에 들어갔다.

박지환에 앞서 조재현은 브레이브이노베이션이 들어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었다. 조재현은 명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LBS 텔레메틱스 회사에 입사한 뒤 이후 IT, 모바일, 광고, UX컨설팅/에이전시, O2O 회사 등 다양한 회사를 거쳤다.

브레이브이노베이션은 2013년에 소리바다로부터 외주를 받게 된다. UX디자인과 관련된 컨설팅이 주제였다. 당시 소리바다 개발총괄책임자였던 원희재는 브레이브이노베이션에 일을 맡기고 카운터파트너로서 함께 일을 하다가 이들이 하는 일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원 희재가 아예 회사를 옮기면서 세 사람의 만남이 완성됐다.

세 사람이 함께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조재현 대표에서 비롯됐다. 조재현은 자녀들이 수학여행을 가거나 멀리 나갔을 때 안전한지 확인하고 싶어도 확인할 방법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업 아이템의 출발이었다. “애들은 전화를 잘 안받쟎아요. 사실 정확한 위치 파악 이전에 안전한 곳에 잘 있는지만이라도 확인되면 좋을 텐데 그게 잘 안되는 경우가 많죠.”

<트래블가디언 멤버들. 맨 앞 오른쪽이 조재현 대표.>

일때문에라도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조재현은 박지환과 원희재에게도 이런 생각을 얘기했다. ‘아빠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은 조재현의 아이디어에서 사업화 가능성을 찾았다. 무엇보다 여행 관련 각종 서비스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지만 안전 분야만큼은 비어 있다는 게 이들에겐 기회로 여겨졌다. “가이드, 예약 서비스, 숙박 및 교통 안내 등 여행 관련해서 정말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들이 나오고 있쟎아요. 그런데 안전은 비어 있어요. 정말 중요한 분야이고 점점 중요해질텐데 말이죠. 여행 중의 안전에 대한 서비스는 없어요.”

이런 아이디어를 배경으로 조재현대표는 서비스기획과 프로토타입을 만들면서 동료인 원희재와 박지환에게 서비스를 소개와 함께하자는 제안을 했다. 안전이라는 화두와 여행이라는 트렌드에 맞추면 사용자들의 불편하고 불안한 부분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린 이들은 11월 서비스를 출시했다.

여행에서 일상까지. 생활의 에스원

컨셉은 간단하다. 단체로 여행을 떠났을 때 가이드나 리더가 있기 마련인데 이들을 중심으로 일정 반경에 안전 펜스(fence)가 설정된다. 함께 동향한 여행객들이나 학생 등 동반자들이 트래블 가디언 앱을 깔고 움직이면 된다. 안전 펜스 반경 내에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벗어나면 바로 가이드 등 리더에게 알려준다. 여행사나 학교 선생님, 가이드 등이 활용하면 정말 편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일이 어디로 가는지 통제할 필요 없이 앱만 깔아 놓으면 움직임을 알 수 있어 안전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된다.

펜스를 다른 방식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리더 중심의 안전 펜스는 안전 반경이라고 하고 위험한 지역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려면 위험 반경을 설정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국가를 방문했는데 일부 지역만 여행 위험지역으로 외교부에서 방문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고 하자. 트래블 가디언을 깔면 단체 여행을 가든 혼자 여행을 가든 위험 지역 인근에 갈 때 자동적으로 경고가 울려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준다.

특정 목적지를 설정하고 이 지역 내에서만 움직이고 싶으면 목적 반경을 설정해도 된다. 예를 들어 파리 에펠탑 인근을 설정한 뒤 일행과 함께 움직이기로 하면 일행 중 누군가가 이 지역을 벗어날 때 다른 일행들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수익모델은? ‘여행자 보험이라고 조재현 대표는 말했다. 그래 여행자보험은 얘기가 된다. 여행자보험의 가입율이 국내 여행과 해외 여행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불과 8%, 해외여행 중에는 30%로 낮다. 패키지 여행은 여행사에서 가입을 하지만, 최근 개별여행, 자유여행이 크게 증가 했는데 여행자가 여행자 보험 가입에 대한 정보와 가입이 쉽지 않은 게 현실.

트래블가디언 모바일 앱에서 간편하고 즉시 가입할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여행자는 여행출발하기 전이나, 공항에서 바로 즉시 가입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저희 수익의 일부를 고객에게 리워드 하여 드리고 있습니다. 차량 블랙박스를 설치하면 자동차 보험이 할인되는 것처럼, 트래블가디언 서비스앱을 설치하고 여행에서 사용하시면 여행자보험을 할인하여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여행자는 여행 안전율을 높이고 보험 할인을 받는 혜택이 있고, 보험사는 가입자 증가, 사고율 및 손해율 감소로 수익이 증가되는 이점이 있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

해외 진출은 필수 코스다. 현재 서비스는 전세계에서 모두 사용가능하나, 한국어 버전만 오픈 돼 있다. 20162월 일본 오픈을 시작으로, 2016년 상반기에 중국, 미국, 유럽에 서비스 오픈예정.

여행에서 만이 아닌 일상으로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상 생활에서 자녀가 노인, 챙겨줘야 할 사람들의 경로를 파악하고 안전을 확인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행중 안전을 파악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가 여행과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위치 기반 서비스이기 때문에 여행 이동 경로를 체크해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과 매칭을 해 주고 여행을 다녀온 뒤 이를 한눈에 보여주는 서비스를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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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시력 문제로 고통을 받는 인구는 무려 45억명에 달한다고 한다. 인간의 오감 중 시력에 의존하는 비중은 90%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시력이 그저 잘 보는 문제 뿐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일일이 다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력이 이렇게 중요한 만큼 평소 눈을 관리하고 눈의 상태를 체크하는 게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병원은 고사하고 안경점에 들를 시간이 없거나, 돈이 많이 들거나,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이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다면 단순히 편의가 증진되는 정도가 아니라 어려운 이들을 돕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휴대용 검안기를 개발한 오비츠의 김종윤 대표가 217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뜻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김종윤 대표는 중3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어린 학생이 미국의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아예 자신이 몇몇 유학생 커뮤니티를 운영하기도 했다. 스포츠 행사나 각종 행사를 외부 지원을 받아 진행하기도 했다.

미 로체스터 대학 광공학 전공으로 2008년 입학한 그는 이듬해 군 입대를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제대를 한 뒤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때 그는 사실상의 첫 사업을 하게 된다. “스쿠터 쉐어링 사업을 기획했어요. 2011년이었죠. 프라이머 엔턴십에도 들어갔고요.”

그러데 그는 이 시기를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갔던 때라고 설명했다. “제가 사실 잘 모르는 분야였죠. 당시 트렌드를 좀 따라가려고 헀어요. 스쿠터 쉐어링이라. 제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사업이죠. 그냥 의욕만 앞섰어요. 그리고 뭐랄까. 정말 겉으로 보이는 것에 치중을 많이 했어요. 그럴 듯하게 보이는 사업을 하려고 한 거죠. 열심히 하기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영혼이 없이 열심히만 한 거죠.”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 이 사업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명확한 동기가 부여되질 않았다고 한다. 사실 본격적으로 제대로 시작도 못 한 채 사업을 도중에 접었다. 그리고 2012년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건강을 해치고, 마음에 상처도 입었다. 자책을 하려고 치면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터.

그래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했다. ‘본업을 열심히 하자가 그 당시의 마음가짐이었다. “공부를 해야했어요. 본업, 즉 전공인 광공학으로 돌아간 거죠. 그때의 생각은 공부 열심히 해서 바슈롬에 취직하자. 이거였습니다. 하하

본업에서 진짜 아이템을 찾다

그런데 사업가 기질이 어디 가질 않았다. 결국 사업을 해야 하는 운명이었을까. 1년여 얌전하게 수업을 듣고 학교 공부를 따라갔지만 2013년부터 다시 그는 창업 대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달라진 점이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분야가 아니라 자신의 전공이자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구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겪은 뼈저린 실패가 그에게 준 교훈이었다. 다행히 미국에 돌아와 학교 생활을 하면서 운 좋게 플라움시과학연구소(Flaum Eye Institute)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됐다. 학부 전공자로서는 특이한 경험이다. 특히 시과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윤근영 교수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아시아에서 유독 근시가 많습니다. 그런데 연구자들 사이에서 그 원인을 놓고 여러 가지 분석을 하거든요. 아직 딱 떨어지는 답이 나온 것은 없어요. 이를 위해선 다양한 사례 분석 뿐 아니라 엄청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이 데이터를 우선 습득하면 연구에 상당한 진척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창업 아이디어가 여기서 시작됐죠.”

사람들이 항시적으로 시력을 측정하고 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 분석하게 한다면 이것이 나중에 빅데이터가 됐을 때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관건은 많은 사람들의 눈의 정보를 주기적으로, 자주, 오랫동안 측정하는 방법을 찾는 것. 역시 휴대용으로 간편하게 할 수 이게 해 주는 게 최선이다. 오비츠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창업 초창기 시절의 김종윤 대표.>

그가 이런 생각을 처음 했을 때는 2013. 그때만 해도 연구소 내에서 학생 프로젝트로 시작됐다고 한다. 윤근영 교수와 대화 도중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런데 로체스터 Regional Competition’ 대회에 나가서 덜컥 상을 받게 됐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이었다. 상금은 25000달러. 미국은 각 지역사회별로 엔젤투자자들이 이런 대회를 열어 젊은 유망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거나 아이디어에 투자를 하곤 하는데 그가 그런 사례가 된 것이다. 상금이 자본금이 됐다. 윤근영 교수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로 했다. 연구소 안팎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도와줄 사람들도 모았다. 2014년이 되면서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가장 많은 정보를 가장 정확하고 가장 간편하게

그의 사업은 대단히 심플하다. 휴대용, 또는 간편하게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력 및 눈 검사 장비를 만들어내는 것. 정확하게 측정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에, 무엇보다 적당한 크기로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기술력의 응집을 보여주는 척도다.

시력만 정확하게 측정해 줄 수 있어도 쓸모가 많을 것 같은데, 그는 무려 45가지의 눈에 대한 정보를 측정하는 장비를 만들었다. 아쉽게도 아직 개발중인 제품이기 때문에 즉석에서 눈을 측정할 수는 없었다. 물론 시제품 정도는 나와 있지만 제품 오픈을 앞두고 막바지 테스트가한창이라고 한다.

김종윤 대표가 동영상으로 보여준 오비츠의 눈 측정 장비는 눈에 대한 45가지 정보를 파악해낼 수 있으면서도 한 손에 쥐고 쓸 수 있을 정도로 크기를 줄였다. 안과나 안경점에 갔을 때 시력을 재는 기기보다 크기를 훨씬 줄이면서도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오비츠는 미국과 한국에 모두 법인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는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이다. 양쪽 모두 엔지니어, 즉 개발자들이 핵심이다. 내년 1월게 알파테스트를 실시하고 3월부터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장비 자체를 대규모로 팔아서 돈을 버는 모델은 아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렌탈을 하는 업체나 개인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를 축적하면 그것이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인란 게 김 대표의 예상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MIT미디어랩의 연구팀이 주도한 EYENETRA라는 업체가 있고 보스턴대가 중심이 된 Smart Vision Labs가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PLenOptika라는 곳도 극비리에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비츠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기술력. 소형화 기술과 측정 방식에 관한 기술에서 이미 특허를 취득하고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하면서 초기부터 30만 달러를 투자받았고 한국의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퓨처플레이, TIPS, KOICA 등 쟁쟁한 투자회사 및 협력 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아냈다. 총 투자금액이 15원을 훌쩍 웃돈다.

오비츠의 제품은 단순 시력검안기가 아니다. 국내 안과병원에서는 라식 및 라섹 수술용 장비로 쓰이는 그런 수준 높은 장비를 휴대용으로 만든 것이다. 시력 측정이 중요한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활용도가 급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시력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눈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두뇌 발달, 학습력, 바른 성장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것만 잘 알려져도 수많은 잠재 고객들과 빈곤층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무엇보다 그에겐 자신이 사업을 하는 이유, 동기,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찾은 것이 중요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오비츠의 회사 표어가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Our vision is your vision.’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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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열정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꿈과 비전을 설명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들었다. 그는 확실히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같았다. 될 때까지 계속 해 보는 것.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것. 그가 사는 세상은 이런 세상이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왜 알토스벤처스가 이 회사에 투자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에이프릴의 서경미 대표다.

한국은 너무 좁다. 내 무대는 세계

그의 전공은 호텔경영학. 학교는 미국 라스베가스에 있는 네바다주립대를 나왔다.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교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한 전공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대학 졸업에서 큰 의미를 찾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졸업을 한 것은 그 나름대로 부모에 대한 효도의 일환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미국 학교로 간 이유를 물었다. “그때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한국은 너무 좁은 나라라고. 한국 사람들은 왜 미국에서도 코리아타운에 몰려 살까. 더 넓은 세계를 향해서 움직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 보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으로 미국에 가서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찾아 다녔던 학생 서경미. 미국 여성들, 특히 흑인 여성들을 위한 네일아트가 사업이 될 것 같았다고 한다. 뭔가가 보이면 즉각 시작하는 것이 서경미 대표의 특징이다. 즉시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네일아트 아이템을 들여와 미국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갖고 있는 돈 2만 달러를 몽땅 투자했다고 한다. 네일아트 관련 아이템은 날개돋힌 듯이 팔렸다. 불과 6개월 만에 현지 업체에 70만 달러를 받고 회사를 매각했다. 사업을 좀 더 하면 더 회사를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시엔 학교를 다녀야 하는 문제도 있었고 현실적으로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그 사업에서 제 운은 거기까지였던 거죠. 그 뒤 그 회사는 더 많이 성장해서 지금도 잘 되고 있어요.”

학생 신분으로선 짧은 시간에 상당히 많은 돈을 번 서 대표. ‘하게 회사를 정리했지만 얌전하게 학교에서 학업에만 몰두할 리 만무했다. 학업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그는 틈틈이 사업을 병행하면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거점은 미국에 두고 있었지만 그는 사업 기회가 세계 시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 브라질, 한국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사업 기회를 찾았다. 주로 패션, 주얼리 쪽을 했단다. 어렵게 생각하질 않고 일을 벌였다. 라스베가스에 오는 사람들이 도박을 하러 오기 때문에 행운을 중시한다는 걸 간파하고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크리스탈에 넣어서 간단한 소품, 액세서리로 만들어서 판매했다. 매장을 30개나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면 할수록 그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는 한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하기엔 제약이 너무나 많았다.

무엇보다 그는 결국 한국을 기반으로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 시장에서 도매업 경험은 있었지만 한국을 기반으로 하기엔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 온라인 쇼핑몰이나 플랫폼을 중심으로 패선 및 주얼리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한국의 핵심 상권인 동대문 업자들이 좀처럼 문을 열지 않는 것도 그로 하여금 미국을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됐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하는 것이다. 그는 결국 한국에 들어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장사되는 일이라면 지구 끝까지 간다

전 세계에서 의류 도매와 생산 모두가 되는 곳이 어딘지 아세요?”

서경미 대표의 느닷없는 질문. 글쎄. 내가 알 턱이 없다.

한국, 중국, 미국, 브라질, 인도 이렇게 다섯 개 나라가 전붑니다.”

그 정도 밖에 없나요?”
그게 다에요. 다른 나라들은 도매업은 하지만 생산을 못하거나 생산만 하고 도매 능력이 안되거나 그런 형편입니다. 그런데 이 중 인도를 제외한 4개 국가에 한국인 네트워크가 광범위하게 구축돼 있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유독 한국인 네트워크가 구축된 것이?”

한국이 예전에 어려웠던 시절에 외국에 이민을 가서 주로 세탁소를 차리거나 봉제업 분야의 일에 종사를 했어요. 이 사람들이 결국은 세탁소로 부를 축적하고 봉제업에서 성공해 현지 공장을 세우고 이러면서 의류 분야의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된 거죠.”

서 대표 덕분에 역사 공부까지 했다. 그가 유독 중국과 미국, 브라질을 오가면서 사업을 벌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동대문을 잡으면 되겠다.’

이게 서 대표의 생각이었다. 전 세계 주요 거점에 한국인 네트워크가 있다면 그 네트워크의 핵심은 동대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서 대표는 동대문 경험이 없었다. 견고한 이들의 네트워크를 뚫고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동대문에 들어가서 B2B 사업을 해야겠구나. 그의 결론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쉬지 않고 일을 벌여오셨나요?”

쉴 새 없이 생각하고 일을 벌이고, 계속 새로운 시장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이 신기해 물었다.

너무 재밌어요.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에요. 돈을 얼마를 벌어야겠다. 이런 목표를 정한 적은 없었어요. 그냥 사업 기회를 찾아서 물건을 팔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는 게 너무 재밌었죠.”

그의 아버지는 사업가라고 한다. 역시. 그 피가 어디 가질 않는다.

어쨌든 기회를 찾아 세계를 누비던 서 대표는 한국에 들어와 동대문에서 정착했다. 의류 도매업자로 일을 시작해 도매 매장 5, 소매 매장 1개를 열었다. 중국 광저우에도 매장을 여는 등 꾸준히 확장을 해 나갔다. 3년간 동대문을 팠다. 동대문을 알았다 판단한 그는 드디어 2012년 에이프릴을 설립했다. 진짜 해보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동대문의 의류와 패션을 전 세계를 상대로 판매하는 것이다. 개인사업자로 일해온 그에겐 법인은 처음이기도 했다.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개인 사업자로 일하는 것과 법인을 차리는 게 엄청난 차이가 있네요.”

속칭 장사만 하다가 법인을 차리고 나서 당황했다고 한다. 조직 관리도 해야 하고, 사람도 잘 뽑아야 하고, 신경 쓸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아 사업이 혼자서 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런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그의 구상은 처음부터 명확하고 심플했다. 동대문의 의류 패션 매장의 상품들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 예전에도 온라인으로 상품을 판매해봤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우선 플랫폼이 되야 했기 때문에 사이트 구성이 훨씬 더 치밀하고 완성도가 높아야 했다. 그런데 이건 그가 잘 하는 분야가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외주에 맡겼는데 여기서 탈이 났다.

제가 원하는 수준의 사이트가 나오질 않더라구요.”

사실은 수준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류도 많았고, 필요한 기능 자체가 제대로 작동이 안됐다. 안되겠다 싶어 사람을 뽑았다. 솜씨 좋은 개발자라고 해서 영입해서 일을 맡겼는데, 이게 웬걸. 이번에는 사람이 배신을 했다.

그냥 믿고 다 맡겼는데, 뽑아 놓은 개발자가 어느날 사이트는 공중분해시켜놓고, 사이트 개발 과정에 얻은 핵심 콘텐츠와 코드 등을 다 들고 사라져버렸어요.”

계속 눈을 반짝이며 얘기하던 이 순간에만 그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역시 대표가 잘못한 일인 걸. 그리고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꼈단다. 좋은 파트너가 있어야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지나고 보니 모든 게 다 인사 사고였네요. 사람 잘못 뽑은 제 탓이죠. 그래도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제 소신은 변함이 없습니다.”

<에이프릴 서경미 대표(가운데)와 직원들. 아래에 놓인 비닐봉투에는 동대문 의류 시장에서 촬영을 위해 가져온 옷들이 담겨 있다. 사진-에이프릴>

결국 2012년에 법인 설립하고 사이트를 세 번이나 뒤엎었다. 그리고 네 번째 만든 사이트가 링크샵이다. 링크샵을 만들면서 서 대표는 멤버를 대폭 보강했다. 우선 다음커뮤니케이션 출신의 전문가를 영입했다. 올해초 합류해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고 있는 추연진 이사다. 웅진에서 M&A 업무를 하던 오영지 이사도 합류해 회계, 재무, 조직관리 등을 맡고 있다.

알리바바 잡는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차근차근 일은 진행되고 있다. 동대문 상권을 중심으로 글로벌 생산자 네트워크를 연결해 한국의 에프릴이 전 세계에 인터넷 판매하는 그림이다. 멤버를 보강해 제대로 된 사이트를 오픈했고 11월에는 알토스벤처스로부터 투자도 잘 받았다.

동대문 상권에서 팔리는 제품의 규모가 얼마나 될까. 2만 개나 되는 동대문 상인들의 판매 규모는 연간 11조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물론 이 곳에서는 대부분의 매출이 현금으로 발생하는데다 상당수 물량이 외국인 관광객 등 해외로 판매되기 때문에 정확한 시장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

하여간 시장 규모는 충분히 된다. 그의 목표는 동대문이 곧 링크샵이 되는 것. 링크샵에 입점한 동대문 매장은 전 세계를 상대로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사이트내 개별적인 홈페이지나 고객 관리 등도 가능해진다. 6월에 오픈했는데 1100개가 입점해 있다. 에이프릴은 내년까지 3000개 매장 입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6월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뒤 거래액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6월 거래액 대비 9월 거래액은 5배에 달한다.

동대문 시장이 이대로 있다간 중국에 먹힐 것 같아요. 중국이 예전에는 하청공장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생산, 도매, 디자인 등 생산과 판매의 전 과정을 다 하고 있거든요.”

서 대표의 구상은 동대문 상권을 살린다는 대의명분도 있다. 동대문 시장은 전 세계에서 밤을 꼴딱 새가며 영업을 하는 거의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내수가 부진하고 대부분 중국 등 해외 바이어들이나 관광객들의 구매력에 의해 돌아가는 곳이다. 링크샵은 낮에 잠깐 쉬고 밤새도록 영업을 하는 이곳 매장으로부터 옷을 받아가서 하루종일 촬영을 돌린다. 이렇게 촬영을 한 옷 등 패션제품들을 링크샵에 올려놓고 매장들이 영업을 하기 전 저녁 시간에 다시 돌려준다. 링크샵만이 가진, 업체들과 상생할 수 있는 장점이다.

동대문 시장의 패션 제품들이 모든 시장에서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동남아에서는 잘 통하지만, 미국에서는 잘 안통한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제품은 따로 있다. 반면 유럽 관광객들에게는 반응이 좋다. 그래서 에이프릴은 한국의 동대문 시장, 미국의 자바 시장, 그리고 중국의 상인들로 셀러(판매자) 네트워크를 확대하면서 전 세계 고객들의 다양한 수요를 맞춰간다는 계획이다. 패션에서 시작해 주얼리, 기프트 등 아이템도 확장한다.

암요 알리바바 잡아야죠. 이왕 시작했는데, 세계적인 회사 되야죠. 패션하고 주얼리는 저희가 잘 알아요. 알리바바 잡아야죠. 할 수 있어요.”

서 대표는 알리바바 잡아야죠를 계속 되뇌었다. 주문처럼. 나오는 길에도 그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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