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요하네스버그,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장을 앞둔 지난 4월26일,우연히 서점에서 펴든 남아공 여행 안내 책자에 써 있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대한 첫 소개말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였다.
출장을 앞두고 있는 도시가 하필이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니..기분이 찜찜할 수 밖에 없다.그 뒤로 출장을 떠나는 5월2일 직전까지 계속해서 남아공 현지에 대해 계속 좋지 않은 이야기만 들었다.'낮에도 길거리를 혼자 다니면 안된다'.'호텔 앞 편의점에도 함부로 나가지 말아라','택시를 절대 타면 안된다' 등등.일주일간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요하네스버그와 더반을 경험해본 소감은 이 모든 말들이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틀리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전 지역에만 머물면 실감을 못한다
3일 오전 7시30분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날씨는 섭씨 15도 정도.생각보다 쌀쌀한 데다 비까지 내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공항은 아주 깨끗하고 월드컵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외국인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공항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출장 일행이 머무른 지역은 오하네스버그 시 외곽의 Sandton 이라는 지역이었다.백인들이 따로 구축한 지역인데 요하네스버그에서 치안이 가장 안정된 지역이었다(그만큼 물가도 비싸고 호텔비도 가장 비싼 곳이다)
상당수의 관광객들이 요하네스버그에 오면 이곳 샌톤이나 경기장이 위치한 사커시티 근처에 머무를 것 같은데 한마디로 이런 지역에만 있으면 위의 안내 책자에서 말한 것과 같은 것을 실감하기 어렵다.'너무 과장됐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정도다.
◆여전히 남아있는 흑백 인종 갈등
그렇다면 남아공의 위험은 과장된 것인가? 남아공의 위험 여부를 따지기 위해선 이 나라의 역사와 인종 갈등에 대해 조금은 알고 가는게 필요하다.
이곳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가 하는 말이 남아공은 1994년 민주화가 됐다고 한다.그리고 그때를 기점으로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Apartheid)가 폐지됐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행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이 나라는 빈부격차 심화로 인한 갈등은 더 커지고 있다.인구의 15%인 잘사는 백인과 경제 발전 과정에서 여기에 편입된 극소수의 흑인(블랙 다이아몬드)을 제외한 인구의 80%가 넘는 절대 다수의 흑인 빈곤층 사이의 갈등이 그것이다.
계층간의 갈등은 아주 평범한 개개인의 일상에서도 모두 경험되고 있다.그리스인 어머니를 두고 있는 23세 남아공 여성 나타샤가 대표적인 사례다.그녀는 남아공에서 지금껏 살아왔지만 흑인 친구가 한명도 없다.그녀의 동년배 또래들도 마찬가지다.흑인과 백인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심지어 아직도 일부 젊은 백인들 사이에서는 흑인에 대해선 말투도 다르게 대한다고 한다(하대하는 듯한 말투 등)
아파르트헤이트는 종식됐지만 아직도 흑인과 백인의 엄청난 장벽은 존재한다.오히려 수면 아래로 숨어 버려서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이란 정말 무엇인가...남아공에 와서 흑인과 백인의 투쟁의 역사를 보면서 그런 의문을 다시 하게 된다.얼마 되지 않는 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남을 차별하고 빼앗으려 하고 피해를 입히고 일신의 영달을 꾀하다 덧없이 죽어버리고 만다.
◆절대 궁핍마저도 판매의 대상
남아공의 치안 문제는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요란법석을 떨 정도는 아닌 것 같다.특히 샌톤시티와 같은 곳에 머무를 경우 왜 이런 도시가 위험하다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흑인 거주 지역이라는 SOWETO에 가게 되면 그런 생각은 더욱 굳어진다.흑인들만 거주하고 대부분 극빈자들이 살고 있는 이 지역에 가면 가난한 흑인들이 친절하게 맞이해주곤 한다.영어를 잘하는 SOWETO의 청년들은 네그로폰테 교수의 100달러 넷북 프로젝트에 힘입어 넷북으로 인터넷을 하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문명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SOWETO의 무서움은 절대 빈곤마저도 상품화한 자본주의 논리다.이 곳이 관광하러갈 수 있을 만큼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도 이것으로 돈을 벌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그들은 이곳마저 상품화했다.흑인의 빈곤을 파는 것이다.
이곳의 흑인들은 오랜 투쟁을 통해 흑백 인종 차별 정책을 폐지하고 평등한 나라는 만드는데 결국 성공했다.하지만 곳곳에 있는 그와 관련된 박물관을 보면서 그들의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남아공 흑인 투쟁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한 성당 벽에서 발견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The battle for all blacks continues in capitalist South Africa."
"We may have won the battle, but the war against poverty is far from over."
◆일상생활에서 노출되는 적개심
SOWETO에 가서 친절한 흑인들을 만나면서 '아 이곳이 혼자 다녀도 되는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다간 오산이다.관광 상품으로 지정돼 있는 몇 개 구역을 제외하면 이곳 역시 위험천만한 곳이라는게 현지인들의 전언이다. 일상생활에서 노출되는 적개심이 남아공의 가장 큰 위험이라고나 할까.내가 느낀 것은 그런 거였다.과거 남아공보다 더 못사는 나라 (예를 들어 라오스) 를 방문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의 불행한 표정과 세상에 대한 적개심.그들의 얼굴 표정과 말투에서는 그런 것을 다분히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그런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그런 이들과 시내 한복판에서 마주친다는 것 만으로도 당황스러운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실제로 현지 재래시장에서 만난 흑인들은 "우리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고통받고 있다"며 고통스럽게 말했다.나 역시 위협적인 말투로 말을 걸어오거나 빠르게 쫓아오는 이들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걷기도 했다.
◆매우 위험하다고 전제하는 것이 맞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남아공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남아공의 흑인들 역시 대부분은 여전히 가난하고 억압받고 차별적인 대우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현지인들의 증언이 내가 겪은 단편적인 풍경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소웨토의 모습들은 상업적으로 포장된 모습일 뿐이다.나타샤에 따르면 그녀가 사는 곳은 이 지역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 샌톤시티 인근의 지역이지만 여전히 밤에는 절대로 혼자서 걸어가는 것은 물론 차를 몰고도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혼자서는 차를 몰고 집 앞을 나가는 것조차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다.여성들이 살기에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남아공에서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그녀의 답이다.
사실 남아공의 위험성 문제는 관광객들에게 남의 일일 수도 있다.관광객들이 일반적인 관광 지역에만 머물러 있는다면 별 어려움이나 위험을 느끼지 못하고 귀국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잠시라도 아주 유명한 관광 지역을 잠깐이라도 벗어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그리고 그런 경우 왜 요하네스버그를 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고 부르는 지 실감하게 될 지도 모른다.(물론 요하네스버그만 제외한다면 케이프타운이나 더반 등 남아공의 다른 대도시들의 치안은 그렇게 나쁘지 않은 편이다.특히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케이프타운은 관광지로도 유명하고 치안도 안정돼 있다고 한다.)
글을 맺으면서 나는 내가 떠나기 전에 들었던 많은 소문들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해 봤다.
1)낮에도 길거리를 혼자 다니면 안된다? - 요하네스버그에선,샌톤지역을 제외하곤 다른 거리에선 가급적 혼자 거리를 다니는 것은 삼가하는 게 좋겠다.차량으로 이동하는편을 선택해야 한다.
2)버스나 택시를 타면 안된다? - 버스는 당연히 타면 안된다. 택시 역시 위험하다.이곳 사람들 이야기를 그대로 빌면 택시는 very cheap and very dangerous
3)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을 들이대는 사람이 있다면? - 무조건 요구대로 들어줘야 한다.지체없이.
4)화장실도 혼자 가지 말아라? - 이 역시 지역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화장실에 갈 때 나보다 먼저 화장실에 와 있는 누군가가 느낌이 좋지 않다면 일단 좀 참았다가 다른 사람없는 화장실을 찾거나 큰 건물의 공개되고 사람으로 북적대는 화장실을 선택하는게 낫다.
5)호텔에도 물건을 두고 다니면 안된다? - 아주 고가의 귀중품(보석류 등)이 아닌한 왠만한 노트북이나 카메라 정도는 요즘엔 괜챦다고 한다.물론 이것도 별4개짜리 이상 고급호텔에 한해서다.
6)흑인과 눈을 마주치면 안된다? -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적개심을 보이는 이들에겐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위험을 피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하지만 시내에서 또는 가게에서 마주치는 이들과는 인사를 나누는게 좋다.
요하네스버그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다.다운타운과 같이 아주 극심하게 위험해서 접근을 하지 말아야 할 곳을 제외하면 조심스럽게 다닌다면 어디든 차를 몰고 여기서도 생활을 할 수 있다.다만 내가 만난 현지인들은 꼭 이렇게 조언하곤 한다 "관광객들의 경우 어디를 가면 안되고 어디는 가도 좋은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극도로 조심하는 것이 좋다"
사실 나는 이번 출장 중에 아주 제한적으로만 다녔기 때문에(치안 등의 문제로 인해) 단편적인 판단밖에 할 수 없었다.하지만 때로는 주변인이 강렬하게 받아들이는 일상의 편린이 가장 무거울 때도 있는 법이다.여행 중반에 남아공에서 10년을 살았다는 한 한국인의 말이 귀에 남았다. "남아공을 보실 때 조심하실 것이 있습니다.남아공을 결코 아프리카와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겉 모습은 유럽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아프리카 어느 곳보다 갈등이 심한 남아공은 결코 다른 아프리카와 동격으로 놓고 비교를 하면 안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