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타트업-(247)쿨잼 최병익 대표
***지금까지 인터넷 인사이드(limwonki.com)는 한국경제신문 임원기 기자 본인이 작성한 글만 게재를 해 왔습니다. 그것도 신문에 쓴 기사는 제외하고 별도 취재를 통해 새롭게 작성한 글만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임원기가 아닌 다른 기자의 글을 올립니다. 한국경제신문 남윤선 기자(by inklings)는 산업부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등을 오랫동안 취재해 온 베테랑 기자입니다. 최근 저와 함께 스타트업 취재팀을 꾸리면서 합류, 스타트업과 첨단 기술, 기업가 정신에 대해 같이 취재하게 됩니다. 이승우 기자(by leeswoo)는 경제부에서 기획재정부, 환경부 등을 출입했으며 IT기기와 최신 트렌드에 해박한 기자입니다. 역시 남 기자와 함께 스타트업 취재팀에 합류했습니다. 두 사람은 수시로 스타트업 취재 기록을 블로그를 통해 전달하게 됩니다. 우선 남윤선 기자의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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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기가막힌 멜로디를 흥얼거린 적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노래로 만들면 대박일텐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일반인들은 멜로디를 악보로 옮길줄 모른다.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 ‘전설의 명곡’이 수십만곡에 이를 지도 모를 일이다.
스타트업(신생 창업기업) 쿨잼이 만든 험온은 이렇게 사라질 멜로디를 노래로 살려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 이다. 흥얼거리기만 해도 그 멜로디를 악보로 옮기는 것은 물론 발라드, R&B 등 각종 음악 스타일에 맞는 화음도 자동으로 입혀준다. 콘셉트는 단순하지만 ‘머신러닝’(빅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 알고리즘을 활용한 최신 기술이 활용됐다. 수 많은 아마추어 뮤지션의 꿈을 살려줄 앱을 개발한 주인공은 삼성전자 출신의 최병익 대표다.
삼성을 뒤로 하고 창업한, ‘음악을 사랑하는 기술자’들
‘갤럭시노트7 사태’ 등 이런 저런 사건사고가 있지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한국 최고의 직장 중 하나로 꼽힌다. 뒷면이 파란 삼성전자의 명함은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자식이자 동년배 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다는 일종의 증명서다. 최 대표는 이런 삼성전자를 떠나 험난한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대박의 꿈이나 거창한 계획이 있을 줄 알았지만 그가 내세우는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요, 사람들에게 쉽게 음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었고요.”
최 대표는 원래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에서 센서 선행개발을 맡았다. “2020년까지 모든 가전을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하겠다”는 윤부근 삼성전자 대표의 비전을 실행하는 핵심부서다. 전공은 전기공학이다. 한편 교회에서 10년 넘게 반주를 하고 있는 음악애호가이기도 하다. 원래 음악을 전공할까도 생각했지만, “음악은 취미로도 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공학도의 길을 택했다. 그러다가 삼성에 근무하면서 음악과 공학의 접점을 찾았다. 바로 MIR(music information retrieval·음악 정보 인출)이라는 학문이다.
MIR은 쉽게 말해 소리인 음악을 신호로 바꾸어 정보화 시키는 것이다. 녹음과는 다르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말 그대로 ‘소리’일 뿐이지만 이를 전기 신호로 바꾸면 이 소리는 ‘정보’가 된다. 개별신호를 가공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쪼개서 전달할 수도 있다. 최 대표는 “MIR을 활용하면 악기를 다루지 못하거나 악보를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맘껏 작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망설임없이 삼성의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C랩’에 지원했다.
<'험온'이 띄워진 태블릿을 들고 토론을 하는 최병익 쿨잼 대표(첫줄 왼쪽)와 창업멤버들.남윤선 기자 >
C랩 과제로 뽑히면 1년간 일상적 업무를 하지 않고 신사업 개발을 할 수 있다. 사업을 개발하면 사내 심사를 거쳐 분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준다. 삼성은 약간의 금액을 투자하고 지분을 가져간다. 최 대표는 ‘험온’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사내 게시판을 통해 같이 할 사람을 찾았다. 반응은 생각보다 컸다. 삼성의 구동소프트웨어(OS)인 타이젠을 개발한 주역인 안영기 책임을 비롯한 쟁쟁한 인재 4명이 “함께 사업을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 ‘쿨잼’은 그렇게 탄생했다. 최 대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 멤버들은 삼성전자에서도 우수한 인재들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안영기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우리는 모두 음악을 사랑했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최고의 기회였다”고 말했다.
‘머신러닝’활용, 허밍을 노래로 바꿔준다
‘허밍을 음표로 바꿔준다’는 콘셉트는 간단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허밍으로 똑같은 ‘도레미’를 불러도 음색이나 소리의 진폭 등은 모두 다르다. 이를 기계적으로 악보로 옮기면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온다. 자신은 ‘도레미’를 허밍으로 불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프로그램이 인식한 건 ‘도미레미파미’식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프로그램은 허밍하는 사람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악보로 옮겨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해 주는 기술이 머신러닝이다. 최 대표는 “사람의 허밍은 파형이 굉장히 불안전하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악보로 옮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수 많은 허밍 ‘빅데이터’를 머신러닝을 통해 분석해 사용자의 의도를 읽어내는 기술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허밍은 물론 개짖는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등 어떤 소리도 악보를 갖춘 ‘음악’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단순히 악보로 옮겨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허밍을 악보로 옮겨주는 앱은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험온은 악보에 좋아하는 장르의 화음도 붙여준다. 역시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했다. 프로그램이 많은 악보들을 학습해 사용자가 허밍한 멜로디에 최적화 된 화음을 골라 입혀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악보도 있지만 스스로가 음악 ‘고수’인 최 대표를 비롯한 팀원들이 직접 음원을 만들어 데이터를 입력했다. “스스로 많은 데이터를 확보한 것이 앞으로 시장에 뛰어들 경쟁자를 따돌릴 수 있는 큰 자산”이라는 설명이다.
일반인이 허밍을 악보로 만드는 게 신기할 순 있다. 출시 수개월만에 6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것이 대중의 관심을 방증한다. 하지만 이 앱이 ‘돈’이 될까. 최 대표는 사업적인 가치도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일단 단기적으로는 유명 음악가들과 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화음을 입힐 때 인앱결제를 통해 ‘박진영 스타일’을 구매하면 그대로 음악을 구성해주는 것이다. 아울러 최 대표는 전문가들로부터 험온으로 만든 음악파일을 가공이 가능한 ‘미디’ 형식으로 추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를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올 초 SXSW(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매년 3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3대 음악축제 중 하나)에 앱을 선보였을 때 ‘미디 추출만 되면 100달러라도 지불하고 이 앱을 사겠다’는 뮤지션이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궁극적으로는 머신러닝을 연구하다보면 새로운 사업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 대표는 “게임 같은 것을 만들 수도 있고 제대로 된 음악 검색을 하고 싶어하는 검색사이트들과 협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식으로 독립한지는 석달이 채 안됐지만 벌써 해외 유명 포털사이트들과 미팅이 잡히고 있다. 앱도 좋지만 ‘삼성 출신’이라는 ‘이름표’와 각종 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덕에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 안 CTO는 “자신 없었으면 삼성전자 타이틀을 버리고 나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by inkl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