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그러니까 6월27일 오후에 NHN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사장을 만났을 때 모바일 분야에서 소셜네트워크 말고 어떤 쪽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그는 게임은 아니라고 했다.당시 이것을 정리한 블로그에서 이 얘길 자세히 적지는 않았지만 그는 당시 ‘교육’이라고 답했었다.

 김 사장은 그때 이미 교육 분야에서 사업을 상당히 진행하고 있었다.약 5개월 정도 지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그리고 그것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
 올 7월 설립된 포도트리는 김범수 사장이 당시 말했던 바로 그 교육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스타트업이다.김범수 사장이 절반의 지분을 갖고 있고 나머지는 이진수 대표를 비롯한 22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카카오와 좀 다른 점이 있다면 김범수 사장이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더욱 큰 차이점은 사업 아이디어와 기획,그리고 집행에 이르기까지 이진수 대표를 비롯한 현 포도트리 창업진들이 모두 주도가 되서 했다는 점이다.이 대표는 창업 아이디어와 기획안을 들고 김범수 사장을 올 3월 찾아가 함께 인큐베이팅을 하기로 했다.내가 6월말에 김범수 사장을 찾아갔을 때 김 사장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미 확정된 사업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설이 좀 길었지만 나에겐 이런 스토리를 좀 장황하게 나마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아마 그것은 계속 이어지는 스타트업 관련 글에서 따로 다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김범수 사장은 카카오의 전신 아이위랩을 만들 때부터 벤처 기업 100개를 발굴해 투자하겠다고 했었다.아이위랩이 카카오로 명칭이 바뀌고 김범수 사장이 직접 뛰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포도트리는 아마 그가 말한 벤처 기업 100개 중 1호 벤처가 아닐까 싶다.어딘가 성경 말씀이 생각나기도 하고, 가지런하고 탄탄한 느낌을 주는 포도트리(podotree)라는 회사의 이진수 대표를 만나러 역삼동 사무실로 달려갔다.

◆치밀한 준비
12월이 되고 해서 올해 소개받은 스타트업을 한번 쭉 추려봤더니 족히 100개는 되는 것 같았다.물론 그 중에는 정말 아직 아이디어 차원인 곳도 있고 해서 일일이 다 카운트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하여간 스타트업을 만나면서 첫 만남에서 할 일이란 대개 뻔하다.회사에 대한 소개를 받는 것이다.아무리 자료를 들여다보고 홈페이지를 가서 공부를 해도 창업자를 만나서 회사의 비전과 수익 모델을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게 없기 때문이다.

 포도트리는 처음으로 회사를 방문했을 때의 강렬한 인상이 첫 손가락에 꼽을 만한 회사인 것 같다.무엇보다 놀란 것은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들의 엄청난 준비성이었다.(사실은 약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계속 스타트업을 만나다보니 격식 없음과 즉흥성에 어느 정도 길들여져 있었는데 포도트리는 처음 찾아간 순간부터 달랐다.

<포도트리 이진수 대표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 포도트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목소리부터 범상치 않은(어딘가 방송 앵커를 연상케 하는 낭랑한 목소리) 이진수 대표는 첫 만남부터 스케줄을 짜 놓고 있었다.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프레젠테이션,임원진 소개,스튜디오 탐방,그리고 마무리 발표 등 총 4단계로 이어지는 치밀한 회사 소개였다.이 대표는 이진영 이사,신종훈 CTO,차상훈 이사,박윤호 이사,박종철 이사,하성철 이사 등 창업 멤버를 일일이 다 소개했다.그리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그가 직접 한 프레젠테이션에서 보여진 회사 관련 내용은 글의 뒷부분에서 다루도록 하고 일단 이들의 창업 스토리부터 간략히 들여다보는 게 좋을 듯 하다.

◆서울대-프리챌-NHN 네트워크
 서울대 경영학과 92학번인 이진수 대표는 제대후 복학했을 때부터 창업을 생각했다고 한다.그래서 그는 첫 직장으로 컨설팅 회사가 아닌 P&G를 택했다.1999년에는 전제완 사장이 창업한 프리챌에 합류해 마케팅을 총괄하게 된다.유료화 직전인 2002년 9월 IBM으로 옮긴 그는 2004년에 NHN으로 갔다. 그는 NHN에서 미국법인 전략마케팅그룹장, 광고상품기획실장, 마케팅센터장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프리챌 시절부터 그와 함께 일하며 창업을 논의했던 이진영 이사도 이때 NHN에 있었다.이 대표와 이 이사는 치열한 직장 생활 가운데 창업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한 ‘10년 전우’인 셈이다.

 이 대표는 창업 멤버들을 일일이 소개하며 “바닥부터 시작해 주요 보직을 경험하며 창업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 온 탄탄한 인재들”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말은 과히 틀리지 않았다.이진영 이사는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프리챌,NHN,SK커뮤니케이션즈 등을 거치며 서비스 기획의 경력을 쌓아왔다.차상훈 이사 역시 서울대 경영학부를 졸업하고 NHN,KTF를 거쳐 올초 포도트리에 합류한 케이스다.김유진 이사는 미시간대를 나와 NHN에서 해외 사업 개발 및 해외퍼블리싱 업무를 맡아 했다.김범수 사장과 함께 미국 개척도 함께 한 ‘미국통’이다.

 포도트리의 창업멤버들은 서울대를 나와 프리챌-NHN등을 거치며 쌓은 노하우와 인맥으로 결합된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예외적인 인물인 신종훈 CTO는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졸업했고 네오위즈에서 세이클럽 개발팀장을 역임한 뒤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경력을 쌓았다.박종철 이사는 연대경영학과 출신으로 이랜드전략기획실 출신으로 단신으로 건너가 5년간 일본에서 모바일사업관련 벤처를 창업했던 국내에서 찾기 힘든 독특한 경험의 소유자다.포도트리의 일본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다.

◆아이폰을 써본 뒤 창업 결심
 창업을 오랫동안 고민해왔지만 직접적인 동기 부여가 이뤄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이 대표는 NHN에 있던 지난해 하반기 아이폰을 구입한 뒤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아이폰을 구매하고 앱스토어에서 앱을 다운로드받으며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인터넷 열풍이 불던 시절보다 더 큰 변화가 오고 있다.지금이 창업을 할 마지막 때다.지금 안 하면 평생 창업 못 한다.”

 그는 즉각 이진영 이사에게 연락을 했다.1초도 기다리지 않고 ‘OK’답이 나왔다.그리고 바로 전화를 돌렸다.신종훈,박종철,차상훈,김유진 이사 등에게 차례로 연락했다.모두가 참여하기로 했다.그리고 이 대표는 올 3월 카카오를 통해 모바일사업에 승부수를 준비 중이던 김범수 사장을 찾아갔고 김범수 사장의 후원과 코칭 속에서 모바일컨텐츠를 소재로한 사업기회 발굴과 상품모델, 그리고 회사에 대한 밑그림 작업을 4개월간 진행했고 7월에 포도트리 법인을 설립했다.

 이 대표는 창업에 영향을 미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프리챌 시절 전제완 사장과 NHN 시절 김범수 사장을 꼽았다.창업가로서의 롤모델을 전 사장이 제시했다면 비전과 구체적인 실행계획 등에 있어서 가장 최근까지 영향을 받고 도움을 받은 인물은 김범수 사장이다.

◆Studying-Books-Toys
 그는 창업 아이템으로 studying,books,toys를 뽑았다.한 가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마련하기 쉽지 않은데 세 가지 씩이나?
 이 대표가 준비한 회사 소개 발표 자료는 마치 스티브 잡스가 애용하는 방식을 연상케 했다.포도트리가 추구한 사업은 ‘something common but global and huge’였다고 한다.이런 차원에서 학습과 책,그리고 장난감이 선택된 것이다.게임산업에 몸담았던 인물들로 구성된 창업진이 볼 때 한국은 게임을 제외하고는 콘텐츠에서 한번도 전 세계적인 도전을 하지 못했다.하지만 교육이나 책,장난감에 대한 수요,그리고 시장은 게임 못지 않을 것이란 게 이들의 판단이다.그렇다면 새로운 태블릿 PC나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그래서 이들은 세가지 테마를 모두 영어 및 다국어 기반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각각의 사업 영역에서 하나의 스튜디오를 구축했으니 스튜디오가 3개인 셈이다.그리고 제작라인은 4개로 구성했다.가장 중점을 두는 플랫폼은 아이패드.기본적으로 각 스튜디오에서 아이패드용 앱을 개발해 전 세계에서 판매하는 것이다.

 포도트리는 어떤 목표를 갖고 있을까? 이 대표는 ‘5년내 10억 다운로드’라고 자신있게 말했다.그리고 앱 1회 다운로드 가격은 기본적으로 0.99$다. 이 대표는 이를 priceless 0.99$라고 표현했다.가격은 비록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지만 그 이전의 어떤 서비스나 앱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다.

 앱의 가치를 정하는 포도트리의 슬로건은 ‘apps that breathe’로 정했다.살아 숨쉬는 앱이라 어떤 뜻일까? 아이패드가 됐건 갤럭시탭이 됐건,아이폰이 됐던 모바일과 태블릿이라는 환경에서 최적화된 그래서 마치 살아숨쉬는 것 같이 생생하고 사용자와 상호작용을 하는 앱을 만들겠다는 것이다.포도트리 기준에서 보면 기존의 제품이나 정보를 그대로 가져다 나열하는 것은 죽은 제품이나 다름없다.

◆Redesign
 말로 설명하자면 상당히 복잡해지지만 3개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포도트리의 주요 앱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Redesign’이다.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포도트리가 내년 3월 전 세계 앱스토어에서 판매할 예정인 오즈의 마법사 앱은 고전 ‘오즈의 마법사’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담고 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새롭게 구성이 됐다.

 이진영 이사가 보여준 ‘오즈의 마법사 동화책’ 포도트리 버전은 어린이 뿐 아니라 어른들의 눈도 단숨에 사로잡을 만큼 멋졌다.수백페이지에 달하는 오즈의 마법사 원전을 해석해 80여페이지 분량으로 새롭게 구성했다.기본 줄거리는 유지하지만 각 등장인물의 특징과 개성을 보다 살리고 책을 보면서 이용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캐릭터들의 이미지를 (홍대 미대 출신으로 동화작가가 꿈인) 하성철 이사가 직접 손으로 그렸다.(그는 수천장에 달하는 손으로 그린 삽화를 보여줬다.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는 “고전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직접 손으로 삽화를 그렸다”고 설명했다.

 오즈의 마법사를 아이패드에서 다운로드 받아 이용한다고 해 보자.동화책이지만 게임적인 요소와 장난감같은 요소가 결합됐다.아이패드는 기울이거나 좌우로 흔들면 그에 따라 풍경이 바뀌고 캐릭터가 움직인다.도로시를 손을 클릭하면 움직이는가 하면 숨겨져 있는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다.그야말로 오즈의 마법사를 Redesign한 것이다.

 1월중 한국,중국,일본에서 출시될 iStudy 스튜디오의 영어 어휘 공부 앱 역시 기존 흔한, 하지만 꼭 필요하고 글로벌한 영역의 영어 공부 교재를 Redesign한 것이다.이 대표는 “세상에 제일 재미없는게 아마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일 것 같다”며 “그렇지만 이 앱은 사용자의 이런 경험을 redesign해서 영어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앱”이라고 설명했다.박종철 이사는 이 앱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최다 어휘,최고 디자인,놀라운 가격”
 “이 정도면 사람들이 사지 않겠습니까. 5년내 10억 다운로드가 결코 허황되지 않은 것 같죠?” 박 이사의 설명을 듣던 이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iRead 스튜디오에서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양질의 콘텐츠인 책을 모바일 환경에 옮겨놓은 앱이다.현재 다산북스의 ‘Who?’ (세계인물학습만화) 시리즈에 대한 작업이 완료된 상태다.이 제품은 12월 중순께 앱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모바일 직접 출판도 계획

 이 대표는 모바일 직접 출판에 대한 계획도 갖고 있다. “사람들이 비즈니스를 하면서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은 책에서 습득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있습니다.그런데 그것을 꼭 정형화된 책 형태로만 가지고 가려고 하면 한계가 많죠.특히 모바일 환경에서 사람들이 그때그때 필요한 지식을 얻는 데는 그에 최적화된 방법이 필요할 겁니다.그 시장을 노리고 모바일 직접 출판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너무 많아서 내가 일일이 그것을 거론하기 힘들 정도였다.이미 시간은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아직 남아있는 못다한 아이디어와 창업 스토리 등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했다.

 포도트리는 다음 주 홈페이지를 오픈하고 소비자에게 처음 존재를 알릴 예정이다.12월중 Who 시리즈의 아이패드 버전이 출시되고 내년 1월에는 한,중,일에서 영어어휘앱이 공개된다.2월에는 영어를 비롯한 8개국 언어로 영어 학습 앱이 선보일 예정이다.디지털 강아지 캐릭터를 소재로 한 장난감 앱도 같은 시기 나온다.내년 3월에는 오즈의 마법사 동화책 앱을 필두로 재미있는 동화책 시리즈들도 선보인다.포도트리의 이 대표가 10년을 준비하며 갈고 닦은 실력을 조만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포도트리의 브랜드 동영상을 직접 보시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듯..

<포도트리의 전 직원이 모였다.스타트업 답게 밝고 활기찼다. 젊은 직원들로 구성돼 있어 카메라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모습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다. 앞줄 왼쪽에서 네번째 앉은 이가 이진수 대표.그의 오른쪽은 이진영 이사,왼쪽은 신종훈 CTO.사진은 유저스토리랩의 김봉간님께서 수고해주셨다.>
,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카카오톡’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지난 3월 앱을 출시한 지 6개월만인 9월에 100만 회원을 돌파했고 금주중 200만명 돌파가 예상되고 있다.스마트폰 가입자 400만명 중 절반 가량이 카카오톡을 쓰는 셈이다.매일 4-5만명씩 가입하고 있는 현 추세를 감안하면 올해 안에 300만명 돌파도 가능하다는 게 회사측의 관측이다.

 카카오톡의 장점은 기존 휴대폰 메신저와 인터넷 소셜네트워킹 서비스가 가진 장점을 결합한 데 있다.휴대폰 메시지 서비스는 간편하지만 다양한 기능이 없다.웹에서 쓰는 SNS 서비스는 즉시즉시 연락하는데 한계가 많고 무엇보다 내 정보를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볼 가능성이 항상 있다.하지만 카카오톡은 메신저의 편리함,즉시성과 기존 SNS의 다양한 기능 등 장점을 두루 갖췄다.카카오톡때문에 친구나 동료 그룹과 상시적으로 채팅을 하는 사람들이 급증했고 ‘번개모임’도 가능하게 만들었다.소개팅도 카카오톡의 기능을 이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일 정도다.

 카카오톡이 과거 싸이월드의 열풍을 연상케하는 것은 그것이 가진 강력한 네트워킹 기능 때문이다.자신의 전화번호에 등록돼 있는 사람과 연결해주는 이 서비스는 다른 어떤 종류의 소셜 네트워킹보다 긴밀한 관계 형성을 가능하게 한다.아는 사람들끼리 수시로 모바일 접속으로 모이거나 대화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업계에서는 “카카오톡의 소셜 그래프가 가장 강력하다”고 지적한다.

 카카오톡을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카카오라는 업체는 30대 초반의 젊은 이제범 사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2007년 설립될 때 이 회사는 한게임과 NHN의 창업자로 유명한 김범수 사장이 만든 회사로 더 알려져 있었다.김범수 사장의 이름에 가려 이제범 대표가 많이 드러나지 않았다.

 올 여름에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만났을 때 카카오톡의 수익 모델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그때 김범수 의장은 아직 고민중이라고만 답했다.아직은 마땅히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만 한 것이 없다고도 덧붙였다.최근 이제범 대표를 만나서 다시 수익 모델에 대해 물어봤다.뜻밖에 그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하지만 할 것은 많습니다.아이디어도 많고요.얼마나 적정한 타이밍에 풀어놓느냐가 문제입니다.”라고 답했다.

< 카카오 이제범 대표가 카카오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카카오는 판교벤처밸리로 최근 사무실을 옮겼다.사진은 한국경제신문 신경훈 부장께서 찍어주셨다.>

아이디어가 어떤게 있을까.디지털콘텐츠를 판매하는 것도 고려중이고 선물하는 기능 등도 추가할 수 있다고 한다.이 대표는 “카카오톡을 오픈플랫폼화하려는 계획도 있습니다.이 밖에 몇가지 다양한 기능을 넣을 수 있습니다.카드를 보낸다고 할 때 모바일에 특화된 카드를 보낼 수 있게 하거나 다른 앱과 연동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벤처간 시너지가 나지 않은 것,토대가 마련되지 않는 것에 대해 김범수 의장께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고민중입니다.사내에서 수익 모델과 관련해 논의를 하다보면 롤링페이퍼 이런 아이디어도 있고 많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서드파티와의 협력도 가능합니다.”

 한가지 더 궁금한 게 있었다.통신사들이 유사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선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네트워크효과에 의한 선점이 무섭다고 생각합니다.대기업들이 한다고 반드시 더 뛰어난 것은 아니죠.모바일에서는 작은 조직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오픈 마인드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그게 우리의 강점입니다.모바일에서는 게임의 룰이 바뀌기 때문에 새로운 강자가 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외 시장 준비는? 여름에 김범수 의장과 만났을 때 그는 해외 진출 준비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했었다.이 대표는 이와 관련해 “당초 9월쯤 해외로 나가려고 했었는데 한국에서 유저가 너무 급속히 늘면서 안정화 작업과 서버 확충 등을 우선시 하고 그 다음에 하자고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안정화가 핵심이라는 소리다.

 “가입자가 200만명이면 하루에 2000만개의 대화가 오고갈 수도 있습니다.수천만의 대화가 오고가도 문제가 없게끔 안정화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도 해외 준비는 지속하고 있다.11월에 일본 버전부터 출시하고 영어 버전도 올해 안에 출시할 계획이다.

 카카오톡이 일본,중국 등 해외에서도 통할까. “일본과 중국은 시장 시장 초기입니다.이럴 때 들어가서 역시 이곳에서도 선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노려야 한다고 봅니다”

,

김범수 NHN 전 대표를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게 참 많았다.오랫만에 만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NHN은 왜 떠나게 됐는지,게임 사업을 다시 할 건지,1999년에 남궁훈,문태식 대표 등과 함께 한게임을 창업할 때나 NHN을 설립할 때와 비교해 지금의 국내외 인터넷 비즈니스 상황은 어떤지,국내 게임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사전에 메모를 해 놓은 내용만 해도 수첩에 빼곡했다.하지만 미처 준비된 질문을 할 겨를도 없었다.대화가 계속 이어지며 나름의 흐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결국 미리 생각해 놓은 질문은 모두 포기하고 그냥 흐름에 맡겼다.그래도 충분히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그가 재작년 설립한 아이위랩은 분당 정자동,과거 NHN이 있던 그 건물 바로 코 앞에 있었다.왜 하필 여기를 잡았냐고 하자 “그냥 분당이 좋아서요.여기가 살기 좋쟎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사무실에서는 탄천이 내려다보이고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눈이 부실 정도였다.우선 옛날 이야기부터 물었다.미국에서 어땠는지,얼마나 막막했을지가 궁금했다.

-미국에서 얼마나 답답하셨습니까
 “처음엔 정말 막막했죠.한국의 어떤 회사라도 미국에 가서 그냥 바로 영업을 시작할 수 있는 회사는 없을 겁니다.그런데 아무 기반도 없이 갔으니..그래도 소득은 있었습니다.가보니 미국에선 보드게임으로 승부 보기가 어려울 것 같더라구요.그래서 퍼블리싱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BEP 정도는 맞출 수 있는 수준으로 회사를 만들어놨습니다.”

-NHN을 나온다는 발표가 있던 시점에 참 뜻밖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뭐랄까..의욕이 좀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제가 생각했던 목표치를 초과달성하고 나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물론 지금의 NHN보다 더 큰 목표를 세울 수도 있었겠지만 1999년 한게임을 만들던 시절엔 그정도까지 생각은 못 했죠.회사가 커지면서 조직을 관리하는 일이 점점 커진 것도 저에겐 별로...제가 삼성SDS를 다니다 나온 것도 그런 게 싫어서였는데,다시 그렇게 되니 뭐 나와야죠”

-그래도 자식같은 기업인데,너무 빨리 나오신 건 아닌지.아이도 키우면 대학 보낼 정도까지는 보살펴줘야하쟎아요?
 “하하 물론 그렇죠.아이가 지금 몇살이신지? NHN은 대학은 보낸 것 같은데요..(웃음)”

-직원으로서 계실 때 그런 조직문화가 싫다고 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사장님으로 계시면서도 그런 거대 조직이 싫다고 하시니 참 뜻밖입니다.여전히 젊으십니다 하하
 “그러게요.젊게 살려고 하다보니 그런가 봅니다.”

-처음에 위지아라는 서비스를 하실 때와 달리 최근엔 완전히 모바일쪽으로 방향을 잡으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위지아는 실험적인 서비스였는데,잘 안됐습니다.사실 그때만 해도 아직 방향을 잘 못 잡고 있던 때였고 중간에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작년말에 아이폰이 국내에서도 판매되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정말 이 시장이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열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그때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에 올인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습니다.특히 아이폰에 집중하자고 했죠”

-NHN에 계시면서 하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NHN에서 제가 나오던 시절만 해도 아직 분위기가 이정도까지는 아니었죠.아직 새로운 시장이 열리거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 본격화되기 전이어서 그때 그런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NHN을 나오면서 느낌은
 “아쉬움도 있었지만...기억나는 것은 NHN을 나올 때 출사표를 던지고 나왔습니다.‘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하지만 배의 본연의 모습은 아니다.’ 당시에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이대로 안주하기엔 아직 젊다는 생각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고,그러기엔 NHN 밖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어떻게 보면 기존 인터넷기업의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맞습니다.기존의 인터넷에서 성장한 지금의 인터넷 강자들은 기존의 웹을 버리는 것을 하지 못합니다.그리고 결국 그게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이를테면 웹에서 우리가 카페를 아주 유용하게 썼지만 모바일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다만 모바일의 카페는 웹의 카페와 전혀 다른 UI와 서비스 형태를 띠겠죠.기존의 웹에 집착해서,성공한 기억을 버리지 못하면 모바일에서는 살아남기 힘듭니다.모바일로 인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시기가 지금입니다.패러다임이 바뀌면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는 것이 이치죠.1990년대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넘어가던 것과 분위기는 비슷한데 시장 규모는 그때보다 훨씬 더 커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TV를 앞세운 애플 진영과 안드로이드를 앞세운 구글의 경쟁 구도로 이야기가 이어지게 됐다.얼마전 와이디온라인 유현오 대표는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동일한 주제와 관련해 “결국은 폐쇄적인 애플이 안드로이드에 밀리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하지만 김범수 전 NHN 대표는 전혀 다른 전망을 했다.그는 “애플이 과거 폐쇄적인 정책을 고집하다가 윈텔리즘에 밀린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거기서 분명 교훈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그는 지금 애플의 정책을 보면 과거와 달리 완전히 폐쇄적인 방식을 쓰지는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자신들의 시스템안에서는 모든 것을 개방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김 대표는 애플이 쉽사리 구글에 추월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가 아이폰에 현재 집중하고 있는 것도 그의 이런 분석에 기반하고 있다.아이폰에 최적화된 앱을 하나 만들고 나면 그 뒤로 애플의 다양한 기기나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하기도 쉽고,또 글로벌 진출에도 훨씬 용이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모바일은 글로벌 서비스의 비용을 확 줄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사업 비용은 줄이고 기회는 많아진 거죠”

-과거 해외에서 고생했던 경험을 떠올리신 것 같습니다.
 “게임을 제외하고는 해외에서 성공할 만한 국내의 서비스나 콘텐츠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오랫동안 해외 시장을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장벽도 높고 무엇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데 기회는 적고..하지만 모바일 분야에서는 글로벌화의 비용이 확 줄어듭니다.사업하는 입장에서는 엄청난 장점이죠.”

-지금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주로 SNS를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가실 건지
 “사실 카카오톡을 내놓을 때 계획은 분기마다 3개씩 1년에 10개 이상의 앱을 출시할 계획이었습니다.그런데 카카오톡이 완전히 뜨면서 기존의 다른 팀을 다 정리하고 이거 하나에 집중하자는 쪽으로 갔죠.지금 한 팀만 빼고 전부 카카오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카카오가 뜨긴 했지만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선 얘기가 좀 다릅니다.저는 모바일에서 2개의 비즈니스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우선 커뮤니케이션인데,이와 관련해서 직원들하고 얘기하면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사람들의 기본적인 니즈가 크게 변할까? 사람들의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해결하는 방식이 변화되는 것 아닐까.모바일에서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인 커뮤니케이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그래서 카카오톡 카카오아지트와 같은 것을 선보인 겁니다.두번째는 콘텐츠입니다.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 환경에서는 분명 콘텐츠 산업이 새롭게 부각될 겁니다.기존 PC 시절엔 불법 복제 때문에 게임을 제외하곤 (특히 국내에서) 다른 콘텐츠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스마트폰에서는 콘텐츠 시장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아이위랩에서도 콘텐츠쪽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
 “그렇지 않습니다.따로 회사를 설립해서 그곳에서 전담할 예정입니다.이미 준비중에 있습니다.”

 김 대표는 그가 준비하고 있는 모바일 콘텐츠 비즈니스에 대해 기대감이 큰 것 같았다.게임이라고 묻자 게임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게임은 한번 했었는데 이제는 다른 것으로 승부를 봐야죠.게임 말고 다른 분야에서 승부를 볼 겁니다.”그는 살짝 힌트를 줬지만 그의 비즈니스를 위해 여기선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럼 이번에도 NHN처럼 큰 회사 만들 건가
 “글쎄..큰 회사라기 보다는..NHN 창업할 때도 큰 회사보다는 100년 짜리 기업을 만들자고 했었습니다.국내 기업사를 보면 100년 넘긴 기업이 별로 없습니다.기업이 100년을 가면 그 자체로 국가경제에 크게 이바지하는 겁니다.NHN은 100년을 영속할 기반을 갖췄다고 보고,또 다른 100년짜리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모바일은 그런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벤처기업 100개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신다는 건가?
 “제가 직접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아닙니다.회사 설립에 자문을 하고 컨설팅을 해주고 자금을 모으는데 도움도 주고 벤처 설립에 있어서 각종 시행착오를 줄이고 좀 더 오랫동안 수익을 내면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그런 기업들을 여럿 만드는데 이바지하자는 생각입니다.”

<김범수 NHN 전 대표와 분당 아이위랩 사무실에서 만났다.(햇살이 워낙 강해 사진이 좀 어둡게 나왔다.)그는 아이폰을 손에 들고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아이위랩을 만들었지만 자신이 대표로 나서지는 않고 이제범 대표이사에게 일을 맡겼다.그는 앞으로 만들 100개의 기업에 대해서도 자신이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아이위랩 이름 지을 때 좀 고민스럽지 않았느냐고 물었는데,지금도 이름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다.카카오 시리즈가 지금의 분위기를 쭉 이어간다면 회사명이 바뀔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

지난 2004년 중국 현지 아워게임을 인수하면서 시작된 NHN의 중국 시장 진출은 실패로 끝날 것인가.NHN 중국 사업이 심상치 않다.2006년 이후 퍼블리싱을 한 게임들이 대부분 좋지 않은 성적을 내면서 현지 서비스인 아워게임의 실적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데다 NHN 본사에서 실적 부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이미 지난 2008년 중국 방문시 만난 중국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워게임은 마이너로 추락한 지 꽤 됐다"며 "메이저 업체들은 아워게임을 이제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워게임 매출,몇년째 제자리걸음

NHN의 중국 매출은 올 3분기 3080만위안으로 2분기보다 감소했다.지난해 3분기 3600만 위안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실적이다.4분기에 매출이 가장 많고 3분기가 비수기인 점을 감안해도 좋지 않다.500만위안대의 적자도 남겼다.

 NHN은 이미 지난 2006년 2분기에 중국에서 3500만 위안의 매출을 기록했었다.그 뒤로 실적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분기별로 적자와 흑자를 반복하면서 안정되지 못한 것도 계속되고 있다.

NHN 중국 법인의 이런 실적은 급성장하는 중국 시장과 비교해 볼 때 더욱 두드러진다.문화체육관광부와 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06년 10억달러였던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는 2007년 70%가 성장한 17억 달러로 커졌고 2008년엔 25억 달러,그리고 작년엔 34억 달러로 커지며 한국 시장 규모도 추월했다.작년까지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50%가 넘는 성장률을 보여왔다.

◆급성장하는 중국 시장에서 소외. 왜?

급성장하는 중국 게임 시장에서 아워게임은 유독 소외됐다.NHN이 아워게임을 인수할 당시 메신저서비스업체 정도였던 텐센트는 불과 4년이 지나 중국 최대 게임 업체로 부상했고 샨다 역시 나스닥에 상장한 뒤 글로벌 게임업체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더나인 넷이즈 등 수많은 스타 게임업체들이 중국 시장에 등장했다.

"중국 온라인게임시장이 이렇게 클 동안 아워게임은 무엇을 했나?"라고 한다면 NHN으로서는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당초 김범수 대표가 2004년에 아워게임을 인수할 때 노렸던 것도 초창기였던 중국 온라인게임 산업이 급성장할 것을 예측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쉽다.예측은 맞았지만 성장의 수혜를 전혀 입지 못했기 때문이다.

 NHN은 아워게임 인수 당시 중국의 해홍유한공사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경영은 NHN이,중국 현지에서의 제도적인 문제 해결이나 현지화 이슈는 해홍이 맡기로 했었다.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체질 개선과 성장을 위한 투자 등에 있어서 아무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판단된다.

NHN의 퍼블리싱에 있어서의 약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도 중국 법인의 어려움이었다.귀혼을 비롯해 한국에서 들여온 게임 대부분이 실패를 면치 못했고 중국에서 직접 개발한 게임들은 사행성 이슈 등이 불거질 때 마다 타격을 입었다.직원 상당수를 중국인으로 채용했지만 이미 2류 업체가 되면서 우수한 직원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었고 현지화에도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김정호 대표가 중국 법인을 맡고 있을 당시 "좋은 인재를 얻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탄했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중국 시장의 급성장세의 수혜를 비교적 소수 업체들이 가져가면서 아워게임에는 별 기회가 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지지부진한 실적이 계속되면서 애초에 아워게임을 인수할 때 부터 가격 산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인수 가격 거품?

김범수 사장은  2004년 1000억원을 투자해 아워게임 지분 49%를 인수했다.당시부터 투자 금액에 대한 논란은 상당했다.NHN에서는 그래도 당초 해홍유한공사가 제시한 2000억원을 대폭 깎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당시 시장에서는 "적정 가격의 2배가 넘게 주고 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1억명이 넘는 회원에 50만명을 상회하는 동시접속자수가 그 당시로서는 매력적이었다.하지만 아워게임은 당시에도 수익성이나 수익 모델에서 약점이 많은 회사였다.증권가에서 "껍데기뿐인 회사를 너무 많은 돈을 주고 샀다"는 말이 나올 법 했다.

 인수 뒤 과정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다.최근 김상헌 사장이 "시스템이 너무 노후화됐다"고 일갈한 바 있지만 그 만큼 그 동안 급성장하는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중국 현지에서 한국 업체가 발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난을 겪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초창기 좀 더 빠른 의사 결정을 왜 하지 못했나 하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재석 삼성 증권 팀장은 "구조조정 시기를 놓쳤다"고 진단했다.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개선으로 선두 업체들과 경쟁하기에는 이미 너무 격차가 벌어져버렸고 이를 밀어붙일 만한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NHN 중국 법인의 미래는

NHN의 한 관계자가 지적하듯,중국 법인은 이제 NHN의 '골칫거리'가 돼 버렸다.구조조정을 하고 투자를 한 들 별로 앞이 보이질 않는다.빠른 성장만큼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는 중국 시장에서 너무 뒤쳐져 버린 것이다.

결국 매각만이 방법인데,중국 현지 언론들이 NHN의 중국 철수를 운운하는 것도 이런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NHN은 그나마 그동안 투자한 금액을 최대한 많이 회수하기 위해 가격 등 매각 조건에 신경을 쓰겠지만 별 장점이 없는 아워게임의 현실을 생각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 조건에 불리해질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규모나 성장성 면에서 완전히 포기하기엔 힘든 시장이다.이래저래 NHN은 중국 전략을 다시 수립해야할 때가 됐다.

,

지난해 5월초 나는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리쬐는 캘리포니아 어바인(Irvine)의 NHN USA 사무실을 방문했다.족히 200여명은 일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의 사무실에는 40여명의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휑했다.같은 날 저녁시간에 방문한 LA 넥슨아메리카의 사무실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넥슨아메리카가 어느 정도 자리잡힌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면 NHN USA는 (사무실을 마운틴뷰에서 어바인으로 옮긴 이유도 있겠지만 ) 아직 어수선하고 정돈되지 못한 느낌이었다.지난 2005년 2차 도전으로 시도된 NHN 미국 비즈니스가 4년여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동반 부진에 빠진 해외 법인

미국,중국,일본 3개국을 중심으로 진출한 NHN의 해외 사업이 매출 정체와 수익성 감소로 동반 부진에 빠졌다.중국의 경우 현지에서 철수설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고,잘 나가던 일본 법인은 매출이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던 미국 법인 역시 3분기 매출 감소에 이어 4분기에도 적자를 기록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NHN 일부에서는 '안되는 해외 사업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NHN의 해외 법인이 기로에 선 것이다.

◆정체된 매출,불안한 수익성

지난해 3분기 NHN 미국 법인의 매출액은 243만 달러로 2분기의 277만 달러에 비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소규모긴 하지만 순손실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4분기에도 매출액은 늘었지만 여전히 적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법인의 경우 지난 해 3분기 매출액이 3080만 위안으로 2분기 3200만 위안에 비해 감소세를 보였다.555만 위원의 적자도 기록했다.일본 법인은 29억엔의 매출을 기록,2분기(28억엔)보다 조금 늘었지만 최근 2년동안 매 분기 매출액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이익도 적자와 흑자를 왔다갔다 하며 불안정한 상황이다.

 최근 NHN 해외 법인들의 특징은 매출은 제자리,수익성 불안으로 요약할 수 있다.수익이 나오지 않더라도 매출이 늘어나면 새로운 수익원을 모색해 볼 기회가 생기겠지만 현재 NHN 해외 법인들의 모습은 어느 한 쪽으로도 기댈 대가 없는 상황이다.

 중국에서는 현지 업체들에 치이고,일본에서는 온라인게임 시장의 부진에 속이 타고,미국에서는 국내 업체들에게도 밀리고 있는 게 NHN 해외 법인의 현 주소다.

◆세대 교체와 해외 법인의 위상

 NHN이 해외에서 왜 부진한가는 이어지는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일단 이 글에서는 실적 부진과 맞물린 1세대의 퇴진을 주로 언급하려고 한다.

 지난 2007년에서 2008년에 걸쳐 NHN 해외 법인은 큰 변화를 겪었다.대표들이 대거 세대교체된 것이다.창업자들이 이끌던 해외 법인들은 이 시기 2세대로 모두 교체됐다.창업자인 김정호 대표가 이끌던 중국 법인은 프리챌 출신 김현수 대표로 수장이 바뀌었고,한게임 창업자인 김범수,남궁훈 대표가 진두지휘하던 미국 법인은 소니 출신의 윤정섭 대표로 사령탑이 교체됐다.2000년부터 일본 법인을 개척해 일본 온라인게임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천양현 대표 역시 재작년 NHN을 떠났고 지금은 소니 출신의 모리카와 대표가 일본 법인을 맡고 있다.

 창업자가 물러나고 2세대가 물려받은 해외 법인의 위상에도 변화가 있을 수 밖에 없다.강력한 카리스마로 각종 난관을 뚫고 해외 시장을 개척했던 김범수,남궁훈,천양현,김정호 등 창업자들과 2세들과는 같은 대표라도 '급'이 다를 수 밖에 없다.물론 지금 2세대 대표들 역시 실력자들임엔 분명하지만 NHN 내부에서 창업자들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창업자들이 이끌던 시기 NHN의 해외 법인은 한국 본사에 눌리지 않고 사업을 논의하고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각각의 대표들이 최고 결정권자로 이뤄진 8인회의 멤버들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현재로서는 그야말로 해외 법인에 지나지 않게 됐다.실적이 뒷받침이 됐더라면 양상이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실적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해외 법인의 위상이 갈수록 나빠질 수 밖에 없다.

 해외 법인의 국내 본사에서의 위상 약화(대표자의 교체로 인한)는 해외 법인의 사업 추진과 새로운 시도 등에 어려움을 한층 배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뀐 지휘부,달라진 생각

때마침 NHN 국내 본사의 대표 이사도 교체가 이뤄졌다.작년 3월 취임한 김상헌 대표는 전임 최휘영 대표와는 입장이 사뭇 다르다.김 대표로서는 실적이 나오지 않는 해외 사업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지난해 기자들과의 미팅에서 김 대표가 '중국 법인'에 대한 구조조정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직접적으로는 중국 법인의 대규모 조정 또는 폐쇄를 염두에 둔 것일수도 있지만 전체 해외 법인에 대한 NHN 정책이 본격적으로 변화될 것이란 점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NHN 내부에서는 지난해 중반부터 실적이 나오지 않는 해외 법인에 대한 질책의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국내 시장의 녹록치 않은 환경 역시 해외 법인에 대한 시각 변화에 일조하고 있다.한게임의 고포류 게임에 대한 계속되는 규제 움직임이나 검색에서 네이트가 약진하면서 시장이 요동치는 것은 국내 시장의 본 게임에서 경쟁력을 높이는데 회사의 초점을 이동시키고 있고 자연스레 실적이 나오지 않는 해외법인에 대한 우려와 구조조정을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진한 실적이 1세대의 퇴진과 맞물리면서 NHN의 해외 법인은 가장 큰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

김정호 NHN 한게임 대표이자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이 최근 회사에 휴직서를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1월 1일 NHN 관계자는 "김정호 대표가 최근 휴직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형식적으로 김정호 대표는 휴직을 한 것이다.일신상의 사유,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좀 지쳐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가 정확한 사유라고 한다.

◆정말 휴직인가?

형식은 휴직이지만 NHN 내부에서는 김정호 대표가 사실상 회사를 떠나는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관측을 하고 있다.과거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도 고문 등의 지위를 유지하다가 차례로 회사를 떠난 김범수,남궁훈 전 대표의 사례도 이런 추측을 가능케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가 휴직의 이유를 "지쳤기 때문"이라고 표현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솔직한 김정호 대표의 스타일상 그가 직접 언급한 말이라면 그의 심정을 상당부분 반영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즉 통상적으로 대표이사들이 하는 말이라도 그가 하면 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가 가식을 싫어하고 항상 "솔직하게 할 얘기는 하자"는 스타일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김정호 대표가 말했다면,의례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 그가 지쳤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이렇게 생각해보면 그의 말처럼 지친 김 대표가 언제 돌아올 지 알 수 없는 일이다.결국 형식은 휴직을 택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휴직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왜 지쳤나?

기본적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세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정말 심신이 지쳤거나,회사 내부의 어떤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회사 외부의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의한 것이거나,3가지 중 최소 한 가지 이상은 관련이 될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필이면 한게임쪽 인물들(김범수,문태식,남궁훈,천양현)이 차례로 회사를 떠나는 것에 비춰서,그 역시 한게임 대표를 맡았다가 떠나게 됐다는,우연치고는 너무나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에서 한게임 또는 NHN 내부의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한게임 쪽 창업 멤버들이 계속 나가게 되는 것과 관련된 어떤 공통점을 찾아보는 방식이다.(하지만 김 대표는 한게임쪽 창업 멤버는 아니다.엄밀히 말해서)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겠지만,현재로선 최근의 일련의 일들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 같다.즉 그가 게임산업협회장을 맡고 난 뒤 정부의 게임 규제와 관련된 업무와 힘겹게 싸우다 정말 그야말로 '지쳤다'는 것이다.더 이상 자신이 가진 신념과 능력과 열정으로 극복할 수 없는,또는 너무나 힘겨운 상황이 왔다고 생각했을 때 진이 빠졌을 수도 있다.그런 종류의 피곤함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왜냐하면 그는 정말 그만두기엔 너무나 젊기 때문이다.

◆김정호 대표는 누구인가?

물론 그가 이렇게 지쳤다고 가정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그는 다만 지쳤다고만 말했지만 그의 과거 이력을 볼 때 쉽게 상상하기 힘든 대목이다.

김정호 NHN 한게임 대표는 이해진 현 NHN CSO를 비롯해 김희숙,오승환,강석호,김보경,최재영씨 등과 함께 공동으로 네이버를 창업한 네이버 창업 멤버이자 2000년 네이버와 한게임이 합병해 NHN을 만들 때 두 회사의 다리를 놓은 합병 일등 공신이다.

김 대표는 고려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삼성SDS에 입사해 1992년에는 인력개발팀에 있으면서 이해진씨를 채용하는 실무를 담당하기도 했다.회계 전산시스템을 개발할 떄는 PC통신 유니텔의 과금 체계를 만들고 관리해본 경험이 있고 1999년 7월 네이버컴이 설립됐을 떄는 서비스본부 이사를 맡았었다.2000년 한게임과 네이버가 합병된 뒤에는 네이버 본부장과 한게임 서비스 부문장을 같이 담당하기도 했다. -네이버 성공신화의 비밀,p190 중 일부 발췌.

이해진,김범수라는 두 창업자보다 삼성SDS에 먼저 입사한 회사 선배였고 그런 인연으로 NHN이 창업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고,두 걸출한 주연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 준 NHN의 가장 빛나는 조연이라고 할 수 있다.

 NHN의 창업 멤버 중 네이버와 한게임의 주요 사업 영역을 모두 담당했고,미국 시장 개척,중국 법인 설립 등 회사 역사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초창기 한게임 유료화 모델을 만든 이도 그였고 NHN의 인사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열정이나 최근까지 행적을 볼 때 아주 최근의 사건이 아닌 다음에야 급작스런 휴직을 결정한 이유를 찾기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해 보인다.

<2006년 9월 중국 베이징 중간촌에 위치한 NHN 중국 법인에서 만난 김정호 대표.당시 그는 중국 지도를 보여주며 중국 사업에 대한 열의를 보였었다.>

 

◆NHN과 게임산업협회 모두 상당한 타격 불가피

그에 대해서 이처럼 좀 길게 설명을 한 이유는 그가 가진 위치 때문이다.NHN 내부에서는 네이버와 한게임 양쪽 사업의 균형을 모두 잡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업멤버였고,한국 게임산업 측면에서는 최근 산업협회장을 맡아 20억 달러 수출 목표를 세우기도 했었다.

휴직이긴 하지만,어쨋든 현장에는 없는 것이다.그리고 NHN 내부의 관측처럼 그가 회사를 떠나는 수순을 밟는 것이라면 결국 NHN의 한게임 부문은 지금의 정욱 한게임 본부장이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게임산업협회장의 대리 업무는 어떻게 될 지 아직 윤곽이 그려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의 공백이 가져올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그가 임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그가 가진 균형잡힌 시각이나 열정을 대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인터넷벤처 2.0 시대

뉴미디어 세상 2009. 6. 19. 15:38 Posted by wonkis

한국 인터넷 산업에서 최근 두드러진 점은 1990년대 중후반 인터넷 벤처를 창업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인물들이나 이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미국에서 2005년을 전후해 웹2.0 기업들이 본격화되면서 제2의 벤처붐이 일었다면 웹2.0기업의 활약이나 산업에서의 파급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혹은 한국에서는 애시당초 웹2.0 성격이 상당히 반영된 1세대 기업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것을 한국 인터넷 산업에서도 2기가 시작됐다고 표현하고 싶다.또는 유행처럼 일었던 말을 활용한다면 인터넷 벤처 2.0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굳이 한국에서 웹 2.0보다 1세대들의 복귀 또는 재도전을 2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이들이 한국 인터넷 산업에서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점과 함께 이들이 시도하는 서비스들의 동향,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움직임이 한국적인 벤처 창업 현실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벤처 1세대들의 새로운 도전.
이런 경향은 2007년부터 일찌감치 시작됐다.NHN의 창업자이자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손꼽히는 김범수 사장이 그해 여름 NHN USA 사장을 그만두고 공식적인 모든 직함을 내놓고 다시 야인으로 돌아간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김범수 사장은 작년에 위지아이닷컴을 오픈하면서 벤처 창업 일선에 복귀했다.
 나성균 사장과 함께 네오위즈를 만들었던 장병규 사장이 비슷한 시기 움직인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장병규 사장 역시 게임개발사인 블루홀스튜디오를 만들고 벤처 창업 일선에 다시 뛰어들었다.장병규 사장은 이미 그 이전에 첫눈이라는 매우 실험적인 검색 벤처를 시도한 바 있으니 그는 공식적으로만 3번째 창업을 하게 되는 셈이다.
 한국 인터넷 산업의 대부로도 불리던 허진호 전 인터넷기업협회 회장도 일선에 복귀했다.그는 물론 창업이라는 형태를 띄진 않았지만 인터넷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해 왔기에 그의 움직임도 주목되고 있다.
 1999년 프리챌을 창업해 한국 인터넷 벤처 1세대 인물에 속하는 전제완 사장도 최근 유아짱을 창업하면서 일선에 복귀했다.전제완 사장은 신개념의 쇼핑몰이란 컨셉으로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옥션 창업자였던 이준희 사장은 하루에 딱 한가지 물품만 파는 원어데이라는 쇼핑몰로 이 분야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싸이월드 창업자로 잘 알려진 형용준 사장은 최근 신개념의 오디션 사이트 스토리투필름닷컴(story2film.com)을 오픈,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 이와는 조금 사례가 다르지만 안영경 핸디소프트 사장은 지난 해 4년여만에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왜 1세대의 복귀인가.
1세대들 복귀의 표면적인 이유는 간단하다.새로운 시도를 해보기 위해서다.그리고 아주 실험적인 일을 하기엔 기존의 조직은 덩치가 너무 크다.이들의 DNA 자체가 벤처 DNA라는 설도 있지만,Who knows? (어떤 이들은 몸속에 벤처의 피가 흐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공동 창업자 또는 자신이 만든 조직과의 갈등 때문인 경우도 있다.이 역시 기존의 조직에서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가 어려워진 케이스다.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안정된 곳을 뛰쳐나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케이스라면 정말 이들이야말로 일찌기 경제학자 케인스가 언급한 야수와도 같은 기업가 본능을 가진 인물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두에서 1세대들의 복귀를 매우 한국적인 상황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이는 새로운 벤처 기업 발굴,지원에 인색한(혹자는 전혀 없다고도 한다) 한국적인 벤처 투자 상황에 비춰 볼때 기존의 성공을 통해 자금력을 갖춘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벤처 창업을 하는 사례 자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악화되는 벤처 창업 환경이 1세대들의 복귀를 이끌 수 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년전과 다른 점? 같은 점?
사람은 같다.하지만 그들의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이들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성공의 경험이다.그리고 이것은 바로 가장 큰 독이 될 수도 있다.어쨋든 이들의 성공 경험은 일찌기 보기 힘든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이들의 움직임이 항상 주목되는 이유다.
성공 경험만 있는 게 아니다.일부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과거의 성공을 기반으로 자금 기반을 갖추고 있다.외부에서 돈을 끌어올 필요도 없고,혹 그런 시도를 하다가도 여의치 않으면 그냥 자기 돈을 투자해서 하면 된다는 거다.
 돈도 있고 경험도 있지만,이게 다는 아니다.이들은 여전히 아이디어로 반짝인다.김범수,전제완,장병규,이찬진 등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은 팔팔한 20대들 못지 않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로 의욕에 불타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새로운 시도는 또 다른 대박을 낳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건 아무도 모른다.아이디어와 돈,그리고 경험의 3박자를 모두 갖췄지만 이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불확실한 시장의 힘이기도 하다.
 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뭘까? 사람이다.그러고보면 모든 것을 다 갖춘 듯 보여도 역시 사업은 혼자 할 수 있는게 아니다.정말 적재 적소의 쓸만한 인물을 찾기란 그들이 창업하던 10년,15년 전보다 더 힘들어졌다.왜? 이제는 이 분야에도 NHN,엔씨소프트,다음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안정된 직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인재들을 흡수해간다.인력 시장에서의 배고프고 가난하던 시절은 끝났는지도 모른다.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는 눈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 이들의 두번째(혹은 세,네번째)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보자.

,
정확히 말하면 한게임 창업 멤버들이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2007년 여름 한게임의 창업자이자 NHN의 양 기둥 중 한명인 김범수 사장이 NHN을 떠난 이후 지금의 NHN을 만들어낸 초창기 멤버 중 한게임 쪽 창업 멤버들 상당수가 회사를 떠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널리 알려졌다시피 김범수 사장은 작년에 새로운 인터넷 기업을 창업해 두번째 도전에 나선 상태다.김 사장은 일종의 소셜 추천 사이트인 위지아닷컴을 오픈하고 웹2.0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그의 실험은 아직 크게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아직 초기 단계인 데다가 김범수 사장의 아이디어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아 좀 더 지켜봐야할 상황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창업 당시 멤버는 아니지만 한게임재팬을 창업해 NHN의 창업 멤버로 분류되는 천양현 NHN재팬 회장 역시 사실상 NHN재팬을 떠난 상태다.천 회장은 일본에서 온라인교육 사업을 새롭게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천 회장이 벌이는 온라인교육 사업에는 2001년 한게임재팬이 일본에서 힘겹게 초기 개척을 할 당시 한국 본사에서 특공대로 파견됐다가 일본에 눌러 앉은 유희동 전 NHN 실장을 비롯해 일부 NHN재팬 인력이 회사를 나와 합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범수 사장이 미션엔터테인먼트라는 PC방을 창업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동고동락했던 문태식 전 NHN게임스 대표는 일찌감치 NHN을 나와 역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게임 창업 멤버인 남궁훈 NHN USA 전 대표는 아직까지는 고문이라는 호칭으로 NHN에 남아 있지만 그 역시 이미 다른 사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남궁훈 전 대표는 운동에 게임을 접목해 즐기면서 게임을 할 수 있는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다.닌텐도가 가정용 게임기 위(Wii)에서 선보인 것이 남궁 전 대표의 관심 분야와 가장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그로선 그런 초기 단계를 벗어나 집에서 뿐 아니라 야외나 헬스장 등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이해진 의장을 비롯해 김정호 NHN 중국법인 대표,오승환 영업본부장,강석호 검색본부장,김희숙 이사 등 검색 쪽 창업 멤버들이 창업 이래 비교적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과 달리(아주 초반에 회사를 나간 김보경 팀장을 제외하고) 게임 쪽 창업 멤버들이 차례차례 회사를 빠져나가는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게임이라는 장르가 갖는 특성에 기인하는 바가 큰 것 같다.타이틀이나 장르에 따라 분리되기 쉬운 속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결과가 비교적 빨리 나오고 성격에 따라 창업 멤버들끼리라도 같이 하기 힘든 순간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한국 시장에서 한번 '끝'을 봤던 이들이기에 인터넷의 전혀 다른 분야나 게임 포털이 아닌 다른 장르의 게임에 도전하기 위해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 할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혹자는 이미 막대한 성공을 이뤘기에 아쉬움이 없다는 점도 이들의 '제 갈길'을 촉진했다고도 한다.하지만 아직 은퇴하기에는 너무나 젋은 이들이기에 분명 다른 분야에서 제 2의 NHN을 꿈꿀 것이란 짐작만 어렴풋이 할 따름이다.
,
2002년 겨울 한국 본사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던 '특공대'의 대장이었던 당시 신상철 게임개발실 실장을 최근 우연치않게 인터뷰할 수 있었다.지금은 '아라리오'라는 일본 게임 퍼블리싱 업체 대표를 맡고 있는 그와 전화 통화로 간단하게 대화를 나눴다.

-처음 이야기를 들은 것은 언제인가
 "떠나기 며칠 전에 들었다.그동안 계속 준비해왔다기 보다는 아마 일본 시장을 원격으로 지원해주는데 한계가 있다고 김범수 사장이 판단해서 전격 결정된 것 같았다."

-일본 시장이 심각하다고 생각했었나
 "심각하다기보다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일본에서 승부를 볼 타이밍이라고 본 것 같다.일본은 온라인게임에 대해서는 플랫폼이 갖춰지지 않아서 초기엔 한국 스타일을 접목하는 게 필요했었다.즉 서비스를 위한 기본 틀을 일단 갖추자고 한 것이다."

-얘기를 전해듣고 당황하진 않았나.일본어라든가 현지 상황 파악 등의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
 "사실 2년전인 2000년 10월부터 일본어를 공부해왔었다.NHN이 처음 일본에 진출한 2000년부터 유희동 팀장과 함께 일본어 학원도 같이 다니고 어학 공부를 해 왔다.그때 생각에 일본에 조만간 나갈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인데,결과적으로는 그때 판단이 맞았다."

-처음 가서 맡은 역할은
  "한국에서 게임제작실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한게임과 같은 기본적인 플랫폼을 개발하고 이를 일본식으로 정착시키는 일을 주로 했다."
 
-성과는 어땠나?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성과를 냈다.그때문에 생각보다 일찍 들어오게 되기도 했지만.일본에 온라인게임이라고는 거의 없던 상황에 일본 시장에 온라인을 통해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고 온 것이다."

-일본에 나중에 다시 들어온 것 같은데
 "2003년 겨울에 우선 유희동 팀장만 들어오고 나는 한국에 남아서 일본 지원 업무를 계속했다.2005년부터는 기술 총괄로 보직이 변경됐고 그때 퍼블리싱 일도 같이 하다가 2006년에 나도 일본퍼블리싱 부장으로 다시 넘어오게 됐다."

-그럼 그때 인생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2000년에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하고 2002년 일본에 와서 한게임의 초기 정착을 지원하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아라리오라는 게임업체 대표를 맡고 있다.일본 법인이고 작년 5월에 NHN을 나와서 6월에 창업했다."

-아라리오는 어떤 게임업체인가
 "퍼블리싱 전문 업체라고 보면 된다.창업한지 얼마 안돼 아직 직원 수는 많지 않지만 스키드러쉬와 크로스파이어 등 탄탄한 온라인게임을 일본에서 퍼블리싱했다."

-지금 일본 게임 시장은 어떤가
 "아직 온라인게임은 마이너다.성장은 하고 있지만 성장속도는 아직 느리다.한국이나 중국에서 기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빨리 성장을 못하고 있다.그러다보니 일본 현지 기업들이 온라인게임 사업을 어려워하고 있다.오히려 한국 기업들은 이때를 기회라고 보고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 왜 온라인게임이 어렵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이 패키지형 게임이나 콘솔에 익숙하고 게임에 대한 개념이 그렇게 돼 있는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게임 개발 업체나 서비스업체들도 온라인게임에 대한 마인드가 아직 분명치 않다.게임을 출시해서 최소 2-3년간 유지하면서 유저들과 계속 관계를 갖고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업데이트 및 A/S를 해야 한다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온라인게임 시장에 희망이 있다면?
 "한국 게임업체들의 선전은 계속되고 있다.매월 1억엔 이상 나오는 게임들 대부분은 여전히 한국 게임들이다.던전앤파이터,리니지,썬 등이 대표적이다.또 일본 유저들은 로열티가 높다.때문에 장기 고객이 많고 이는 온라인게임의 특성상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갖고 간다는 것은 온라인게임업체에게 많은 기회를 준다."
,

<제가 작년에 작성했던 NHN 일본 시장 진출기 내용 중 일부 오류 및 빠진 내용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내용을 수정해 다시 올립니다.NHN 일본 시장 진출기 1-3 내용은 다음을 참고해 주십시오>
NHN 일본 시장 진출기(1)=시부야 쪽방 시절
NHN 일본 시장 진출기(2)=1억원으로 1년을 버티다
NHN 일본 시장 진출기(3)=유료화 단행


김범수 사장은 한국의 게임 플랫폼 업무를 담당해왔던 6명의 특공대를 소수정예로 한게임재팬에 긴급 투입하기로 결정했다.이 역시 한국에서 한게임 유료화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유료화를 시작하고 나서 초반에 확실히 분위기를 잡아놓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한 것이다.

2002년 11월초 어느날,당시 NHN 본사에서 게임제작실을 맡고 있던 신상철 실장에게 문태식 이사가 찾아와 긴급 지시를 내렸다.
“아무래도 일본에 가서 좀 도와줘야겠다.여기서 지원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어”
“직접 플랫폼을 구축하라는 말씀이죠? 얼마 동안이나 있게 될까요? ”
“글쎄...2∼3년 정도 걸릴 수도 있고..그보다 짧을 수도 있고”

 2002년 11월 11일 어느새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추운 날씨 속에 신상철 실장과 유희동 팀장을 위시한 6명의 특공대원들이 베낭 하나씩만 달랑 메고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신상철 실장이 총괄을 하고 유희동 팀장을 비롯해 게임개발자 2명,빌링을 담당한 사람이 1명,현지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 1명 등으로 구성된 멤버였다.거주지 마련 등 기본적인 것도 거의 준비하지 못한 채 긴급하게 결정된 사안이었다.이들은 처음 한달 동안은 사무실이나 근처 여인숙 같은 곳에서 숙박을 취하면서 힘들게 생활해야 했다.

 김범수 사장이 특별 조직한 이 특공대는 일본에 머무르면서 한게임재팬의 기본적인 시스템과 유료화 구조,네트워크 등을 구축했다.지금의 NHN재팬은 이때 만들어진 시스템위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보면 된다.당시 2∼3년으로 예상했던 체류 기간은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감에 따라 10개월로 단축됐다.유희동 팀장은 10개월만인 이듬해 8월에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가족들을 데리고 2003년말 일본으로 돌아와 지금은 일본에서 완전히 정착해서 살고 있다.이 특공대가 당시 교육했던 일본인 다쿠마 상이 지금도 NHN재팬의 게임 시스템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로 손꼽힌다.

 특공대를 이끌고 왔던 당시 신상철 실장은 2003년 8월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2006년 일본으로 다시 넘어왔다.신 실장은 1년쯤 NHN재팬에서 퍼블리싱 관련 업무를 하다가 작년 5월에 퇴사,지금은 일본에서 아라리오라는 게임 회사를 창업했다.신상철 실장이나 유희동 팀장이나 모두 2002년 겨울 일본에 왔던 일이 어쩌면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된 것이다

 당시 특공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막 유료화를 시작한 일본 한게임의 수익 모델을 안정화시키는 것이었다. 2002년 10월 유료화를 시작한 일본의 한게임은 한국에 비해선 훨씬 못 미치는 유료화 성적을 내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돈이 들어오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결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중요한 시기였다. 한게임재팬이 확실하게 자립할 수 있어야 한국의 한게임도 부담없이 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게임재팬은 초창기에는 그냥 한국게임들을 그대로 올려놨었다.한국의 한게임에서 서비스하던 게임들을 언어만 바꿔서 올려놓는 식이었다.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현지에서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했다.신상철 실장을 주축으로 한 6명은 오자마자 한게임재팬의 아바타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바꿨다.아바타를 클라이언트단이 아니라 서버쪽에서 저장해서 바로 불러 오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이로 인해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게임을 개발할 수 있게끔 환경을 구축했다.

 “처음에는 모듈이 2개가 있었습니다.대기실을 누르면 창이 또 뜨는 시스템이었죠.당시 한국에서 넷마블이 하나로 된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우리도 그것을 벤치마킹해 일본 시장에 적용했습니다.동시접속자수가 단숨에 1만명까지 올라갔고 2003년초에는 1만명을 넘겨 1만2000명까지 급상승했습니다.”
 유희동 팀장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02년 일본에는 게임개발자가 2명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유희동 팀장은 아쉬운 대로 직접 직원들을 교육을 시켰지만 결국 2003년에 여자2,남자 1명으로 구성된 웹개발팀이 한국에서 추가적으로 파견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특공대는 한게임재팬이 자체적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과금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아울러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고 백업할 수 있는 내부 의사 결정 시스템을 만드는 역할도 했다.

 특공대가 다녀간 이후 한게임재팬은 기준이 달라진 회사가 됐다.이후 하늘처럼 높아만 보였던 야후재팬의 게임 사이트가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여기에 내부적으로 시스템이 구축되자 목표를 정해놓고 이의 달성을 위해 매진할 수 있는 분위기도 형성됐다.이 시기에 천 대표는 또 한번의 큰 모험을 했다.아직 채 성장하지 않고 직원들도 아직 많지 않던 시기였지만 일본 도쿄 시내에서도 유명한 에비수가든으로 사무실을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
BLOG main image
임원기의 人터넷 人사이드
인터넷과 그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블로그.
by wonki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766)
뉴미디어 세상 (119)
게임이야기 (66)
임원기가 만난 사람들 (55)
(책)네이버 성공 신화의 비밀-그 이후 (61)
夢幻泡影-삶과 꿈,살아가는 이야기 (55)
책 다시보기 (25)
한국의 스타트업 (293)
San Francisco&Berkeley (29)
스타트업 소식 (17)
한국의 스타트업 시즌2 (26)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VC (14)

달력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wonkis'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