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맞는 사람과 인생을 건 모험을 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여기 소개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트너가 있다. 동향 사람, 고등학교 친구도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꼭 무슨 거창한 공통점이 있어야 뜻이 맞는 것은 아니다. 인간 관계의 화학적 결합이란 이래서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수많은 우연 가운데 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으로 인해 인생이 변하기도 한다. 하긴, 결혼도 인생을 건 모험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는 그닥 다르지 않다. 

 크라우드캐스트를 창업한 박성렬, 이홍규 두 대표는 머나먼 미국 땅에서 만났다. 서로 다른 학교, 다른 전공을 택해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미국의 좁은 한인 사회에서 서로를 잘 알게 됐고 각자의 실력을 지켜보면서 함께 하면 뭔가 해 낼 수 있다는 소망을 가져왔다고 한다. 이들의 동행은 한국에 와서 실현됐다. 새출발을 하기 위해 각자 잘 하고 있던 기득권을 버렸다. 배수진을 친 셈이다. 이들은 함께 뭘 하고 싶은 걸까. 

<크라우드캐스트의 창업자, 박성렬 대표(왼쪽)와 이홍규 대표>

◆직장 그만두고 한국 가자

코넬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던 박 대표가 뉴욕대(NYU)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이홍규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뉴욕에서 인턴 경험을 쌓고 있을 때였다. 박 대표는 메릴린치에서 금융 분야의 일을 배우며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공학을 전공했지만 그는 금융 쪽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반면 이홍규 대표는 기자의 꿈을 키워가던 학생이었다. ABC 방송국에서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던 이 대표는 졸업후 위성라디오업체에서 editor(편집기자)로 입사했다. 

 85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학생 때 만나 금방 친해졌다.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치 운명처럼,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조금씩 만들어졌다. 공교롭게도 이 대표가 들어간 위성라디오 회사가 입사한 지 6개월여 만에 망했다.(정확히는 처음엔 재정난으로 부서가 없어졌고, 나중에 이 매체는 결국 다른 미디어에 흡수됐다고 한다) 기자의 꿈을 갖고 회사에 입사했지만 그가 열심히 배운 일은 웹 프로그래밍이었다. 에디터로서 그런 역할이 주어졌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자신에게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회사를 나온 이 대표는 외환트레이딩회사 FXCM에 들어갔다. 처음에 그는 웹사이트 구축과 관련된 일을 더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뜻밖에 여기서 온라인마케팅을 배웠을 뿐 아니라 프로그래밍을 위한 컴퓨터 언어 전반에 대해 배울 수 있게 된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무기들을 하나씩 갖추는 과정인 듯 하다. 2년이 지나 그는 MLB.com에 들어갔다. 그리고 당시 추신수 선수가 활약하고 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온라인마케팅을 담당하겠다고 자청해 나섰다. “추신수 선수가 좋아서 시작했죠. 무엇보다 마케팅을 더 전문적으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란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저널리즘을 전공해 미디어에 대한 감이 있는데다 프로그래밍, 온라인 마케팅으로 영역을 넓히는 그에게 어느날 친구 박성렬이 찾아왔다.

 “미래가 보장된 안정된 직장 때려치우고 나랑 같이 한국 가서 사업 하자” 박 대표는 이 대표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는 당장 선뜻 확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좀 더 일을 배운 다음, 한국에 들어가 합류하기로 약속했다. 생각보다 그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Fab.com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박 대표가 창업을 생각한 것은 역설적으로 메릴린치에서 생각보다 쉽게(?) 돈을 벌면서부터다. “군 문제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야 했는데 한국에 들어와서 과연 이렇게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어느날 들었죠. 왠만한 대기업에 들어가서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죠.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됐구요. 그래서 젊을 때 원하는 것을 한번 해보자. 이렇게 된 거죠.”

 건축을 공부하면서 그는 많은 실력있는 디자이너나 건축가의 작품을 접했다. 그러면서 세상의 정말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상품을 사람들에게 판매하거나 알릴 공간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때마침 미국에서 벤처기업 Fab.com이 만들어져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뉴욕에서 시작된 Fab.com은 역사상 가장 빨리 크고 있는 온라인 e-커머스 업체 중 하나다. 이른바 ‘디자인’ 소셜 커머스를 표방하는 이 사이트는 2010년 6월 서비스를 시작, 불과 5개월여 만에 300만명의 사용자를 모으는 등 급성장하고 있다. Fab.com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사용자 50%이상이 SNS(소셜 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유입되고 있기 때문.

 “그루폰에서 물건을 샀을 때 그루폰에서 샀다고 사람들은 말을 잘 못합니다. 하지만 Fab.com에서 좋아하는 디자인 상품을 샀을 때는 친구들에게 자랑을 합니다. 소셜커머스에서 물건을 사는 이유는 싼 가격에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질 좋은 상품일 때 패턴이 달라진다는 뜻이죠.”

 그는 한국에서 디자인 상품에 특화된 소셜커머스가 없다는 것에 착안, 친구 이홍규 대표를 설득하는 한편 자신은 바로 한국으로 들어와 사업을 시작했다. 가격이 아니라 디자인을 내세우자, 소비자들에게 기존에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디자인을 갖고 어떤 상품이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자. 이런 생각에서 시작됐다. 메릴린치에서 인턴을 하면서 모은 돈 5000만원이 자본금이 됐다. 2011년 9월 크라우드캐스트가 설립됐다. 

◆전문가들이 연예인이 될 수 있는 공간

 “한국에 돌아와서 놀란 것이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세계 굴지의 저변을 가지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창의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디자인을 효율적으로 유통하거나 세계 시장으로 수출하는 통로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박 대표는 “디자이너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이 연예인이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연예인이 된다. 무슨 뜻일까. 

 “예전엔 미술을 배우려면 유명 미술가나 유명한 미술 선생님에게 사사를 받아야 화가가 될 수 있었죠. 하지만 요즘엔 한달만 배워도 포토샵을 합니다. 하지만 진짜 전문가들은 한 달 배운 사람들과는 분명 다릅니다. 실력이 출중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죠.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전문가가 부각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을 해 봤어요. 결국 전문가들은 개개인이 브랜드가 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인데, 그런 공간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생각한 것은 전문가들이 자신의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 처음엔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들부터 시작하지만 확장되면 꼭 디자이너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중요한 것은 고상한 작품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구매할 수 있는, 하지만 전문가들의 내공이 담긴 제품을 크라우드캐스트가 선보인 온라인 디자인 박람회 디블로(www.dblow.com)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그 전문가의 fan이 된다. 다음 상품이 나오면 fan은 이를 먼저 알게 되고 판매자는 자신의 상품 단골을 확보할 수 있다. 소셜커머스적인 요소를 도입한 것은 120시간 동안 전시할인판매한다는 것. 다만 판매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브랜드를 걸고 판매한다는 점은 기존 소셜커머스와 다른 점이다. SNS를 더 활발히 쓴다는 것도 다르다. 

 이런 시스템이 되려면 좋은 전문가 집단이 확보되야 한다. 이들이 자신의 작품을 올려놓고 소비자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어야, 그리고 소비자들이 이에 관심을 보일만한 작품들이 있어야 한다. 준비 과정에서 좋은 디자이너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박 대표에겐 행운이었다. 박 대표가 가장 처음으로 만난 전문가는 잡지 ‘디자인’과 ‘메종’,  CJ브랜드샵을 거쳐온 강정원 현 ‘엘르 데코’ 편집 디렉터와 ‘행복이 가득한 집’ ‘마리 끌레르’ 등의 잡지를 거친 김윤수 편집 디렉터. 디자인, 패션, 스타일 잡지에서 경력을 쌓은 두 디렉터를  통해 디자이너, 빈티지 컬렉터, 사진가들을 만난 박 대표는 그의 아이디어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이들을 보며 해볼만 하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박 대표는 웹사이트가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이디어와 비전만을 가지고, 김명한 aA 뮤지엄 대표, 국종훈 세컨드호텔 대표, 박진우 ZD Lab 대표, 등을 설득시켜 디블로의 큐레이터 시스템을 완성했다.

 웹사이트 구축은 이홍규 대표가 올해 초 합류하면서 속도가 빨라졌다. 디블로는 5월1일, 첫 베타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6월 1일부터는 공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5월 한 달 동안에는 팝업스토어 형태로 운영하며 한 번에 8개의 상품군을 올린다. 6월 공식 오픈 이후엔 매일 4가지 이상의 상품이 판매된다. 

 두 동갑내기 친구가 가진 포부는 제법 크다. 온라인라는 매개체를 통해 장인 정신과 감각으로 무장한 가능성 있는 디자이너와 문화인을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 소개하려고 한다. 박 대표는 준비 과정에서 싱가폴, 인도네시아 등의 나라를 방문해 ‘한국’을 수출하기보다 ‘한국인’을 수출하는 것의 가능성을 봤다.

  “건축, 인테리어, 액세서리, 가구 등 디자인은 이미 현대인의 삶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류가 단순히 연예인과 방송으로 접근했다면 이젠 아시아와 세계로 문화인으로서의 한류가 자연스레 스며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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