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대학때 코딩 못했어요. 1,2학년때 프로그래밍 부진아였죠. 컴퓨터 정말 잘 못했습니다. 수업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이두희 누구나주식회사 대표와의 인터뷰 도중, 그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당한 충격이었다. 한국 벤처업계에서 알아주는 개발자로 손꼽히는 그가 대학때 프로그래밍 수업을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니.


 이두희 대표는 업계에선 천재 개발자로 통한다. 대학 재학 중 서울대 전산실을 해킹했던 사건이나 단기간에 만들었던 그의 개발작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인식이다. 멋쟁이 사자처럼의 코딩 교육, SK텔레콤이 설립한 누구나주식회사 대표 등 그간의 이력을 보면서 코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를 찾아갔다. 인터뷰는 구글 캠퍼스서울의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한국경제신문 추가영 기자와 함께 갔다.


 누구나주식회사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할지, 멋쟁이 사자처럼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지. 이 회사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등등.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런데 대학때 코딩 부진아였다니?

<즉석에서 작성한 코드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가리키고 있는 이두희 멋쟁이 사자처럼/누구나 주식회사 대표.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대학 2년까지 컴맹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코딩을 잘 하게 됐나요?”


수업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학점은 전부 1점대를 깔고. 그런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른 길을 찾아볼까 생각도 했는데, 컴퓨터공학과에 들어왔는데 어떻게든 코딩은 배우고 나가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혼자서 공부를 했죠.”


 그는 C언어가 너무 힘들어 코딩을 포기할 뻔 했다고 했다. 그래서 파이썬과 루비로 시작을 했다고. (개인적으로는 루비를 더 추천한다고 한다.)


 그가 코딩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의미를 찾았기 때문.

이 어려운 걸 배워서 뭐하나 이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수업 시간표 프로그램도 만들고, 해킹도 하고. 이것 저것 응용이 되더라구요. 사회에 영향도 미치고. 할 게 정말 많았어요. 그때 정말 빠져들었죠.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그래밍의 의미를 찾은 그는 무섭게 코딩을 익혔다. 울트라캡숑을 창업한 것도 세상에 의미있는 변화를 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는 울트라캡숑 창업자였지만 결국 회사를 나왔고, 끝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이 얘기를 길게 하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어쨌든 울트라캡숑을 나와 집에서 백수로 지냈다고 한다.


 “그냥 누워서 빈둥거렸어요. 할 일이 없더라구요. 기분도 안 좋았구요.”


 대학에 돌아갈까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을 밟던 도중 그만두겠다고 통보한 터였다. 결정을 번복하기는 싫었다. 할 일을 찾다가 심지어 수능을 다시 보고 약대를 갈까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실제 수능 공부도 했고, 약사 일이 어떨까 싶어서 친구가 하는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도 해 봤다. 그런데 하루 종일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다. 자신에겐 맞지 않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집에 돌아와서 고민했어요. 난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요.”


 그때 그가 생각해 낸 것이 멋쟁이 사자처럼프로젝트였다.


 “내가 잘 하고, 항상 하고 싶은 것은 코딩이니까 이걸 사람들한테 가르치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일단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얼마나 오래 할까 이런 생각도 없었어요. 내가 백수니까, 근데 백수의 왕은 사자니까, 이름을 사자로 지었구요. 나 자신에게 최면을 가하기 위해 멋쟁이 사자처럼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나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나는 멋있다. 나는 잘 할 수 있다 계속 최면을 걸었죠. 그때 저에겐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게 필요했어요.”


벼랑끝에서 시작한 멋쟁이 사자처럼


처음에 30명에게 프로그래밍 교육을 시작했다. 장소를 못 잡아서 애를 먹었는데, 자주 갔던 카페 사장님이 도움을 줬다. 이 사장님은 돈을 벌어서 네팔에 집 지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사정을 듣고 흔쾌히 장소를 내줬다고 한다.


“30명을 어떻게 모았나요?”

서울대에 안내문을 붙였어요, 10.”
그렇게 해서 얼마나 지원을 했나요?”

200명 정도?”

그 중에서 30명을 어떤 기준으로 뽑나요?” (이게 정말 궁금했다.)

정말 고마워하면서 배울 사람. 그리고 정말 전력을 다해서 배울 사람을 뽑았습니다. 코딩이 배우기 어렵거든요. 이것만 열심히 해도 배우기 쉽지 않습니다. ”


 처음에 30명을 가르쳤는데, 어려운 환경에서도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계속하기는 힘들었다. 수업을 무료로 진행하는데다 오히려 자비를 써가면서 가르쳤는데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한 번 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이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만두겠다고 페이스북에 공지를 했더니 메일이 300통이 넘게 오는 거에요. 교육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죠. 자기도 받고 싶다는 내용도 있구요.”


 지원자가 많아서 몇 차례 더 진행을 했지만 번번이 그는 그만두려고 했다. 자금 문제가 있었고, 그도 계속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가 아니라 창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4기까지 하고 정말 그만두려고 했을 때 구글에서 찾아왔다. 이걸 꼭 해야 한다는 게 구글의 요구였다. 비용도 대겠다고 했다. 구글과 손잡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수락했다. 올해 구글의 임팩트 챌린지에서 선정되면서 지속할 수 있는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해서 멋쟁이 사자처럼은 벌써 4년 가까이 진행됐다. 이 기간 중 2000여명이 과정을 거쳐갔다. 어떤 사람들이 코딩을 잘 할까. 얼마나 코딩 능력을 익혔을까. 궁금한 게 많았다.


 “2000명 중 20% 정도? 400명 가량은 코딩 능력을 습득했어요. 이 중에는 저보다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 정도는 사실 중도에 포기했구요. 나머지 60% 정도는 과정은 마쳤지만 코딩 능력을 완전히 익히진 못했어요.”


 “그래도 의미가 있나요?”


 “네 의미가 있습니다. 코딩은 할 줄 몰라도 볼 줄은 알게 됐어요. 무엇보다 개발자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게 된 거죠. 처음부터 멋쟁이 사자처럼은 이걸 의도헀어요. 비전공자들이 코딩을 배워서 개발자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코딩의 핵심은 문제의식


비전공자들을 가르칠 때 어떤가요? 수학을 오랫동안 하지 않은, 예를 들어 인문계 학생들도 잘 배우던가요?”


 “
사실 인문대생들 가운데 코딩을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기본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거든요. 사실 공대생은 이런 부분이 좀 덜해요.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개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거죠. 예를 들어 총학생회 온라인 투표 앱을 만든 학생은 불문학과 출신이에요. 정치 참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학생이었죠. 이런 문제의식이 확실히 있으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는 개발만 해 온 개발자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게 소통이라고 했다. 개발자들에게 소통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보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고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있는 비전공자들에게 코딩을 가르쳐 이들이 개발자들과 소통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비전공자들에게 코딩을 가르쳤다는 것. 농대를 다니다가 멋쟁이 사자처럼의 코딩 수업을 듣고 컴퓨터공학과로 전공을 바꾼 사람도 있었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겐, 어쨌든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멋쟁이 사자처럼 과정은 이제 상당히 유명해졌다. 그 덕에 후원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처음의 취지를 지속하기 위해 학생들에겐 무료로 가르치고 있따. 초등학교쪽에도 진출하고 있다. 지리산 토지초등학교 영곡분교라는, 전교생 20명 밖에 안되는 곳에 가서 소프트웨어 의무교육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이곳 학생들은 집에 컴퓨터도 없기 때문에 컴퓨터 후원을 받아서 교육을 진행중이다.


 취지는 좋지만 어쨌든 돈을 벌어야 사업도 지속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는 유료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취업층을 1년 안에 개발자로 컨버팅 해 줄테니 믿고 따라와라 하는 식으로 가르칠 수도 있구요. 아주 세심하게 가르쳐야겠죠. 이것도 유료가 가능합니다.”


 이두희 대표는 멋쟁이 사자처럼 커리큘럼이 대학에서 배우는 코딩과는 매우 다르다고 했다. “대학교 프로그래밍은 이론부터 출발해요. 변수가 뭐고 분기문, 자료 구조, 알고리즘 등 용어부터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멋쟁이 사자처럼은 조합해서 이것을 만들 수 있다. 네가 만들 것을 정의해라. 3~4명 팀을 갖춰서 팀이 만들 것을 정의하라고 합니다. 만들 것이 없으면 개발하지 말라고 해요. 예를 들어 채팅 구현하기 위해서 소켓을 배워야합니다. 목적 지향적이에요. 네가 만들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하고 컴퓨터는 그 발판이 될 뿐이다라는 거죠.”


누구’, 국민 비서로 진화한다


코딩을 가르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누구나주식회사의 대표가 된 것은 어찌 된 일일까. 그는 인공지능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SK텔레콤으로부터 올해 봄, 알파고 붐 직후 얘기를 듣고도 이게 잘 될까 싶었다고 한다. “처음 베타 버전일 때 인식률이 낮았어요. 그런데 이후 개발 속도가 상당히 빠른 걸 보고 제대로 된 뭔가가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올해 초여름경에 SK텔레콤의 누구프로젝트에 합류한 그. 누구나주식회사의 가상 대표를 맡게 된 그가 하는 일은 전문가 집단과 SK텔레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이나 이와 관련된 다양한 학문이 있어요. 여기엔 전문가 분들이 많이 있는데 이 분들의 아이디어 역시 상당히 많습니다. 회의를 자주 해요. 난상 토론을 합니다. 이 분들은 상당한 고집과 철학이 있고, 다 의미가 있는 부분이지만 사업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에요. SK텔레콤에 이런 전문가들의 지식과 제안을 사업화할 수 있게 다듬어서 다시 제안하고 함께 고민하는 게 저의 역할입니다.”


 그는 누구에 대해 기본적으로 잘 짜졌다고 평가했다. “문자 매칭이 아니라 모듈이 잘 짜여 있어요. 버전업이 빨리 될 것 같습니다. 알파고 후에 첫 번째 채널을 잘 열었고,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 에코 등 비슷한 서비스가 있지만 한국어 음성과 발음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의미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서비스는 결국 어떻게 진화되게 될까. “기획 단계에서 고민이 있었어요. 친구 역할을 할지, 비서 역할을 할지. 처음엔 대화 상대로 여기는 시리 쓰듯이 몇 살이지?’, ‘나랑 사귀자와 같은 친근한 대화로 갔습니다. 그런데 비서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앞으론 대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주는 그런 비서와 같은 존재로 성장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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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만나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은 꽤나 독특한 경험이었다. 1시간반 가량 대화를 나누다보니 내가 지구가 아닌 다른 별나라에 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하 17도라는 너무 추운 날씨를 뚫고 1km 정도를 걸어와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대학생들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클래스메이트(Klassmate)를 만든 이두희씨를 만났을 때 나는 잠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멈칫한 상태였다. 원래 나는 권도혁 대표를 만나는 줄 알고 찾아왔는데 권 대표는 마침 자리에 없었다.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니까...대표는 권도혁 님이시고, 이두희님은 개발총괄? CTO? 그렇죠?”
 “저는 그냥 사람입니다. 개발하는 사람.”
 “아, 네...큭.”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너무나 진지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거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보통 이러면 질문에 대한 답을 잘 하지 않는 분이 많은데, 그렇지도 않았다. 인터뷰를 하기엔 너무나 편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한두번쯤 더 생각하게끔 만드는 기이한 유머감각이 있었다. 울트라캡숑. 이름에서부터 4차원적인 냄새가 물씬나는 이 회사를 찾았다.

◆정의감에 불타는 서울대의 전설적인 해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03학번 이두희 ‘사람’은 정의감에 불타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엔지니어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한번도 정의감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스토리를 들으며 정의감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강의를 자발적으로 평가하는 ‘SNU EV(snuev. com)’를 만든 사람이 그다. ‘와플스튜디오’라는 서울대학교 프로그램 개발 동아리에 있던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중이던 2008년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 일종의 강의평가시스템. 서울대의 공식 프로그램은 아니다. 순전히 그가 친구, 후배들과 함께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대 전 학생이 다 사용하는 사이트다. “2월1일에 얼마나 접속했나 보니까 1만명이 들어왔더라구요.” 서울대 재학생은 1만6000여명 수준이니 전교생이 다 쓴다는 말이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그걸 왜 만들었어요? 서울대에도 자체적으로 강의평가를 하게끔 하는 프로그램이 있지 않나요?”
 “있죠. 그런데 그것을 학생들에게 공개를 안 해요. 정작 학생들은 모른다는 거죠.”
 “아 강의 평가 결과를 교수 평가 등의 목적으로만 사용하는군요.”
 “100만원짜리 노트북 하나를 사도 20,30개 리뷰를 읽어보는데 400-500만원 수업료를 내고 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듣는 수업이 어떤 내용인지, 들어본 사람들의 후기는 어떤지 등 정보도 없이 신청해야 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학교다니던 시절에도 그랬는데, 지금도 그런가 보다. 막연하게 선배들의 경험담만 듣고 수업을 신청할 수 밖에 없는 게 대학 강의 신청 시스템의 현실이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딱히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잘 안하는데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들자마자 그날 1000명이 등록을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밖에도 그에 대한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2006년 ‘서울대 정보화 포탈 3만명 신상 정보 유출’을 학교에 가장 먼저 알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도 그였다. 서울대 전산시스템을 해킹해 김태희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꺼내온 사람도 그다. “김태희 사진은 왜 해킹했어요?” “보고 싶어서요.”

<서초동 울트라캡숑 사무실에서 찍은 울트라캡숑 창업 멤버들. 맨 왼쪽이 이두희,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권도혁 대표>

◆그냥 개발이 좋았을 뿐이다
정작 사람 이두희는 창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개발을 계속 했어요.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죠. 개발을 해서 친구들의 삶을 좀 바꿔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는 그래서 생활 자체가 프로그램 개발이었다. 기획? 그는 기획하지 않고 뭔가 불편한 점이 있다고 하면 바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친구들과 그것에 대해 토론을 했다. 와플스튜디오는 그가 주로 거주하는 곳이었다. 서울대 연구실에서 그는 거의 하루종일, 한달 내내, 일년 내내 붙어 있다시피 했다. 그러다보니 별별 앱, 별별 프로그램을 다 만들었다. 노래방 래퍼토리 추천기도 만들었다. 노래를 한번 부르면 그 사람에게 맞는 노래를 추천해주는 그런 프로그램이다.

 서울대학교 앱을 만들기도 했다. 2010년. 학교를 소개하고 지리 정보를 제공하고 곳곳의 다양한 정보나 이야기를 전해주는 그런 앱이었다. 사실 서울대가 만들만한 앱이다. 그런데 그는 이런 앱이 있으면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좋고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싶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이걸 싫어했다. 학교 허락도 받지 않고 만든데다가 학교 정보가 노출된다는 점이었다. 학교에 불려가 주의를 받은 그는 결국 서비스를 몇 달 해보지도 못하고 내렸다. 그래도 한달만에 1000명이 쓸 정도로 학교 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저커버그와 샌드버그?
서울대 연구실에서 살던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권도혁 대표가 그를 찾아오면서부터다. 2010년 11월. 늦가을치고는 꽤나 쌀쌀한 어느날 권도혁 대표가 이두희씨를 찾아왔다. 마침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울트라캡숑 사무실로 권도혁 대표가 들어왔다.

 “왜 이제 오셨어요?”
 “아 두 분 이야기 좀 나누시라구요”
 “그나저나 이두희님을 어떻게 알고 찾아갔어요?” 권 대표에게 물었다.
 “이두희님 친구가 큐박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일 잘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학교를 같이 갔었습니다. 그랬다가 만났죠.”

 이두희는 그때 컴퓨터공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중이었다. 
 “뭘 만들었는지 좀 봅시다.” 권 대표가 그에게 물어봤다. 이두희가 만든 SNU EV를 본 권 대표는 즉석에서 말했다고 한다. “저랑 같이 창업합시다.”

 그렇게 해서 이두희의 창업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바로 아이템을 내놓았다. “그냥 강의 평가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수업과 관련해서 학교에서 항상 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클래스메이트를 만들었죠. 강의 평가도 하고 친구들하고 수다도 떨고 학교 정보도 주고 받고 여러가지를 할 수 있게 했어요.”

 연세대 경제학과 94학번인 권도혁 대표는 졸업 후 베인앤컴퍼니를 다니다 2004년 NHN에 입사했다. 벤처로 성공한 친구들을 보면서 그는 대기업을 다니면서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고정 관념이 산산이 부서졌다고 한다. 나도 벤처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자 이런 마음에 2006년 4월 첫눈에 입사했는데 하필이면 입사한 지 3개월여만에 첫눈이 NHN에 매각됐다. NHN에 있다가 나온 마당에 다시 들어갈 수 없어 자신이 직접 벤처를 해보기로 결심, 미국으로 떠났다. 거기서 큐박스팀을 알게 돼 큐박스를 미국에서 서비스하는 일을 맡았다. 큐박스를 3년 넘게 했을 때 그가 만난 이들이 바로 서울대 와플스튜디오에 있던 이두희와 그의 친구, 동료 등 7명의 개발자들이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뭔가 큰 일을 낼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대로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도 저커버그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두희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샌드버그같은 역할을 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설득했죠. 지금 봐도 이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개발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팀, 어디가서 만나기 힘들 겁니다.”

◆페이스북도 시작은 학교에서 했다!
권도혁 대표는 비즈니스와 자금을 책임지기로 했다. 창업 자금은 같이 댔지만 엔젤투자도 받고 사업에 대한 조언도 필요했다. 노정석 사장이 떠올랐다.

 “해커 출신인 노정석 사장이라면 이두희님과 이야기가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두 사람을 소개시켜줬죠.”
 “그랬더니 어떻게 됐나요?”
 “왠걸. 노 사장이 두희님을 만나자마자 바로 ‘제가 투자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뭘 더 하면 좋을까요?’라고 말하더군요.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었습니다. 하하”

 노 사장은 그의 말처럼 즉각 엔젤투자를 했다. 작년 9월 클래스메이트 서비스가 나올 때 쯤 중요한 일이 또 하나 생겼다. 하버드대 행정학과 졸업생 아벨 아쿠나(23)가 미국 서비스 총괄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아벨과의 만남도 정말 극적이죠. 제가 큐박스를 나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고민하면서 글로벌 프로젝트 차원에서 인재를 모집한 적이 있었는데 사진을 잘 찍는 아벨이 자기가 해보겠다고 지원을 하더군요. 그런데 하버드대를 다니고 있는 친구였어요. 좀 놀랐죠. 바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봤는데 말도 통하고 일도 아주 책임감있게 하는 사람이었어요. 나중엔 두희님과 제가 미국으로 가서 미국 서비스를 다 알아서 해 보라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네요.” 권 대표의 설명이다.

 아벨 아쿠나가 현지 운영진으로 나서면서 보스턴 지역 10개 대학 학생 1000여명이 사용하게 됐다. 하버드대 학보인 ‘하버드 크림슨’에도 소개되면서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이 쓰는 앱으로 성장했다. 
 클래스메이트의 사용자는 아직 그리 많지는 않다. 1만명 수준. 처음 서울대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Safari라는 항목을 만들면서 학교간 대화와 네트워크의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와 이대 학생들 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학생 인증(이메일)만 하고 가입하면 자기가 익명의 아이디를 만들 수 있다. 자기를 상징하는 것은 동물이다. 이를테면 섹시한 타조, 수다쟁이 개미핥기 등등.

 “인터넷에서는 익명이 가지는 장점이 정말 많습니다. 익명이 갖는 장점을 잘 살리면서 학생들간의 커뮤니티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월에 클래스메이트는 대대적으로 개편이 될 예정이다. 강의와 수다, 교제 정도가 아니라 모든 대학의 구전돼왔던 정보들을 문서화하고 다양한 강의, 행사, 공연 등의 기록을 남기는 것도 가능하게 개편된다. 궁극적으로는 대학 생활에 대한 종합적인 사이트로 성장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공식적인 정보보다 훨씬 알차고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으며 다른 학교의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는 진짜 대학 생활을 온라인에서 만끽할 수 있게 하겠다는 거다. 

 “굳이 대학에 한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중학교에서도 하고 고등학교에서도 하고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런 말을 권 대표에게 했다. 그도 수긍했다. “페이스북도 처음엔 하버드 대학교 내부에서만 쓰이던 사이트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인이 쓰는 것처럼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은 대학에서 기반을 착실하게 잡는 것이 중요해요. 한국 대학생이 350만명, 미국이 1500만명인데 1차 milestone은 이 중의 절반 즉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 절반인 1000만명이 쓰는 서비스가 되자!’입니다. 그리고 나면 얼마든지 서비스 확장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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