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스튜디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9.21 한국의 스타트업-(95)파티스튜디오 이대형 대표 2
  2. 2012.09.12 모바일 시장, 결국 게임이 열었다 2

창업자들의 구성이 이 정도 된다면 아마 ‘드림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표이사는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사업 기획과 영업까지 경험해 비즈니스 마인드가 확실하고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디자이너는 서로 절친이어서 신뢰가 깊다. 대표와 CTO는 같은 과 선후배 사이이면서 오래 알고 지내 호흡이 잘 맞는다. 이런 멤버들이 각자 열심히 경험을 쌓다가 모여서 창업을 했다. 뭔가 될 것 같지 않은가? 그런 예감이 크게 빗나가지 않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회사는 카카오톡 게임하기에서 스타로 떠오른 ‘아이러브커피’를 만든 파티스튜디오다.

◆비즈니스 경험을 쌓은 엔지니어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99학번으로 입학한 이대형은 입학 후 얼마 안 있어 선배인 김정주 넥슨 사장을 만난다. 김정주 사장이 넥슨의 초기작 중 하나인 ‘퀴즈퀴즈’를 알리고 후배들을 뽑기 위해 컴퓨터공학과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짧지만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그리는 미래를 봤는지도 모른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다날에 입사, 병역특례를 시작한 그는 처음엔 휴대폰 결제 쪽에서 자신의 전공인 프로그래밍 업무를 했다. 그때 그가 개발한 것이 ‘컬러링 플러스’라는 서비스. 자신의 상태를 문자로 기록해두면 부재시 전화가 왔을 때 컬러링(전화연결음) 서비스에서 자신의 상태를 상대방에게 알려준다. 회의중이라던가, 운전중이라던가 등등. 서비스는 사람들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돈은 제법 벌었다. 통신사들이 이 서비스를 약정 조건에 일종의 끼워팔기로 집어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뭐랄까. 좀 허탈했어요. 개발자로서 약간의 좌절감도 있었구요. ‘아무리 잘 만들면 뭐하나. 영업이 훨씬 중요하지 않나’ 이런 생각도 했죠.”

 2005년 병특은 끝났지만 그는 학교로 복학하지 않았다. 때마침 다날이 중국에 진출했는데 그는 중국지사 근무를 자청해 나갔다. 새로운 시장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다날 중국지사에서 그는 결제사업을 총괄했지만 이때부터 엔지니어가 아닌 사업기획자로서의 인생이 시작된다. 중국 업체들과 결제 계약을 따내기 위해 특히 중국 게임업체들을 줄기차게 만나고 다녔다. 지금은 최대 게임 회사로 성장했지만 그때만 해도 게임에 막 입문하기 시작했던 텐센트와 일을 하면서 사업 기획을 하기도 했다.

 2007년 귀국한 그는 제이투엠소프트라는 게임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된다. 내심 그는 게임 개발 일을 하고 싶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박종흠 사장이 이번에도 그에게 비즈니스 일을 맡겼다. 그덕에 그는 이번엔 제이투엠의 대표작 ‘레이시티’를 들고 전 세계를 누비며 영업을 했다. “전 세계의 게임 전시회는 다 가본 것 같아요.”

◆환상의 창업팀

 2008년말 미국 게임회사 EA가 제이투엠을 인수하면서 그는 갑자기 현금을 손에 쥐게 된다. 제이투엠의 지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EA에서의 생활이 썩 즐겁지만은 않은 것 같다. 벤처에 계속 있다가 글로벌 대기업에 들어간 셈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다가 시키는 일만 하는데 진력이 난 이대형은 답답한 마음에 2010년 EA 리크루팅을 자청해서 하다가 2010년엔 커피숍을 인수했다. 답답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직접 고객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면서 그는 새로운 세계에 눈뜬다. 그리고 그의 인생의 진로가 다시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커피숍 운영에 대한 어떤 로망이 있는 것 같았어요. 커피숍을 운영하면서 그걸 느꼈죠.”

 사람들의 이런 로망을 실현하게끔 해주면 어떨까. 비록 가상의 공간에서라도 말이다. 게임을 만들어서 하면 되지 않을까. 시장 상황을 살펴보니 싸이월드와 네이버 등이 앱스토어를 웹페이지에서 서비스하면서 소셜게임이라는 장르가 국내에서도 형성되고 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하지만 EA를 나오긴 쉽지 않았다. 4년 계약을 하고 들어갔기에 그냥 나올 경우 보유하고 있던 주식 상당수를 포기해야 했다. 잠깐 동안 그는 고민을 했다. 그래도 대기업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컸다. 결국 그는 보유 주식 중 절반 이상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회사를 나왔다.  

 창업에 대한 결심을 굳히자 사람이 떠올랐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2년 후배이자 메이플스토리를 만든 위젯이라는 게임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했던 임태형이 생각났다. 이대형 대표 본인도 의식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는 제이투엠 시절부터 창업을 하겠다고 곧잘 주위에 말하곤 했다고 한다. 그때 그가 내심 찍어놓고 있던 상대가 임태형이었다. “제가 볼 때는 대한민국 최고의 게임 개발자입니다. 올림피아드 출신으로 실력은 미이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죠. 저와 뜻도 통하니 더욱 좋구요.”

 임태형은 혼자 오지 않았다. 위젯에 있으면서 그와 함께 메이플스토리를 개발했던 심정섭씨를 설득해 함께 왔다. 심정섭은 아트디렉터를 맡기로 했다. 비즈니스와 개발자, 디자이너로 구성된 3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창업진이 구성됐다. 서로 다른 장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들이 공통적으로 인터넷과 게임이라는 분야에서 계속 일했다는 것도 이들의 화학적 결합을 용이하게 했다.

◆실전 경험을 녹였다!

이대형 대표가 소셜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하던 시점은 사실 국내에서는 소셜게임이 이미 기울고 있던 때였다. 2011년초 법인을 설립하고 바로 게임 개발에 들어갔지만 하필이면 그 때는 싸이월드 앱스토어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국내 소셜게임 시장이 정체되던 시기였다. 당시 선데이토즈, 피벗스튜디오, 고슴도치플러스 등 소셜게임 개발사들이 수백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며 활약하고 있었지만 돈이 안된다는 게 점차 입증되고 있었다. 싸이월드 플랫폼에서는 사용자들에게 돈을 쓰게 하는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싸이월드 자체에 있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점점 간단한 게임은 PC를 떠나 스마트폰에서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즉 시장이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하고 있는 게 소셜게임의 진짜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파티스튜디오에게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기대치를 좀 낮추고 시작했습니다. 국내 시장은 테스트베트 정도로 하자고 했죠.”

 2011년 7월11일. 싸이월드 앱스토어에 아이러브커피를 출시했다. 자신이 커피숍을 운영하면서 겪은 노하우를 게임에 담았다. 그냥 커피숍을 운영하고 키우는 것에만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디테일을 살렸다. 사람들이 커피숍을 운영하는 것은 손님을 만나고, 서비스를 하고, 매장을 가꿔 나가고 커피를 만드는 그런 과정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커피숍 운영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손님이든, 주인이든 커피숍에 들어갔을 때 할 법한 행동, 동선, 과정 등을 충실하게 그대로 담으려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미 기울고 있던 시장에서 아이러브커피는 40만명 가량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하지만 시장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선데이토즈가 겪었던 것처럼, 파티스튜디오 역시 사용자에 비해 수익이 나질 않는 시장을 보며 그해말 중국 시장에도 게임을 선보였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용자는 400만명이 넘게 확보했지만, 역시 돈이 되질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대표는 확신했다. “모바일로 가자.”

◆진짜 승부는 해외 시장에서

사실 아이러브커피는 이미 검증된 게임이다. 돈을 비록 예상만큼 많이 못 벌었다고 할 지라도, 당시 이유 중 상당수가 플랫폼 문제라면 모바일에 와서 플랫폼은 카카오톡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이 해결해줬다. 판이 깔리면 준비된 자가 도약하기 쉬운 법이다.

 올들어 모바일 게임 개발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콘텐츠가 탄탄하다는 장점을 앞세워 아이러브커피는 순식간에 스타 게임이 됐다. 2012년 8월 서비스를 시작해 사흘 만에 일 매출 1억원을 찍었고 9월에는 일 매출이 2억원 가까이 치솟았다. “처음에 서비스를 하면서 3개월 안에 일 매출 1억원을 기록하는 게 목표었는데 그걸 사흘 만에 달성할 줄은 몰랐죠.” 20, 30대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것도 주효했다. 현재 가입자 150만명, 일일 사용자수 70만명, 동시접속자 수는 13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러브커피는 시작일 뿐이다. 파티스튜디오는 차기작 개발과 함께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아이러브비트를 9월 중 비공개 시범서비스 형태로 시작하고, 연말께 대중에 공개할 예정이다. 내부적으로 검토하다가 아이러브커피가 속칭 대박이 나면서 인력 부족 등으로 중단했던 프로젝트 아이러브팜도 10월 중 재개해 내년 2분기 중에는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일본 시장은 이미 어느 정도 판이 깔렸다. 아직 공개 시점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서비스업체를 정해놓고 논의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10월부터는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아이러브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중국 시장은 이대형 사장의 궁극적인 지향점 중 하나다. 다날 시절에, 제이투엠 시절에, 그는 중국 시장을 계속 두드렸지만 실패를 맛봤다. 카카오톡 조차 나중을 기약하고 있는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이대형 사장은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 시장에서 겪었던 시행착오가 그에게 보약이 될 수 있을까.

 뮤지컬 ‘페임(Fame)’의 한 대사를 살짝 바꿔 인용, 이대형 사장과 파티스튜디오가 보여줄 모바일의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해본다.  “You ain‘t seen the best of him 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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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대형 마트 인근에 있는 SK텔레콤 대리점을 들렀다가 우연히 듣게 된 대화 한 토막.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딸 뻘로 짐작되는 학생과 함께 대리점 직원을 붙들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는 애니팡을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지금 이 휴대폰이 너무 오래되서 그런지 애니팡이 안되네요.”

“아 게임을 많이 하세요? 게임 하시기에 좋은 요금제와 폰을 알려드릴까요.”

“아뇨, 게임 안해요. 게임 안 좋아하는데, 딸이 해서 같이 애니팡을 하려고하는데, 안돼서..”

일견하기에도 게임에 별 관심이 없고, 해 본 적도 없는 분인 듯 했다. 그런데 대리점에 와서 게임이 되는 폰을 찾고 있는 모습이라니!

 2005년에 카트라이더가 대박을 치고, 국민 게임의 반열에 오를 때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생전 게임을 안하던 사람들-여학생이나 주부 등-이 게임을 하러 PC방에 가고 친구들하고 게임 이야기를 하는 일이 일어났다. 기존에 게임을 안하던 사람들을 대거 게임 시장으로 끌어들이면서 카트라이더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고, 개발·서비스 업체인 넥슨의 실적과 이 회사에 대한 평가도 껑충 뛰어올랐다.

 현상만 놓고 보면, 애니팡은 이보다 더 한 것 같다. 카트라이더를 하기 위해 PC를 살 사람은 많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애니팡을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바꾸거나 스마트폰을 고르면서 애니팡을 염두에 두는 사람은 이처럼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숫자로 봐도 명확하다. 7월30일에 출시된 애니팡은 그 후 1주일 동안은 소비자들의 큰 변화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1주일뒤부터 사용자가 급증하기 시작해 4주차에 50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고, 5주차가 지나자 다운로드 건수가 1000만을 돌파했다. 하루 평균 이용자수는 무려 600만명, 동시접속자수는 200만명이다. 일일 매출의 경우 다운로드 1000만을 달성하기 전에 이미 1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동안 접속이 잘 안되고 게임을 하다가도 에러가 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할 정도로 사용자 폭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사실 이런 모습은 과거 온라인게임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신작이 나올 때마다 대기하던 사람들이 몰려들 때 흔히 봤던 모습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숫자는 아니었다. 그나마 최근 온라인게임 분야에서는 이와 유사한 현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말이다.

 콘텐츠를 만들고, 모바일 분야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런 모습을 선데이토즈가 만든 애니팡이라는 게임이 해냈다. 애니팡 정도는 아니지만, 이 게임의 뒤를 이어 파티스튜디오의 아이러브커피 등도 인기를 끌면서 ‘모바일 앱 게임’이라는 하나의 시장을 완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물론 애니팡이나 아이러브커피의 성공은 6000만명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카카오톡에 이 게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게임들도 많았다.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이 나오기 전에 앱스토어라는 공간에서 스마트폰 열풍에 힘입어 선전했던 팔라독과 같은 게임들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로비오사의 앵그리버드같은 게임도 있었다. 

 여러 사례들이 있음에도 애니팡을 주목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확산됐다는 점, 여러가지 에러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늘었고 개발사와 카카오톡이 이를 결국 감당해냈다는 점, 카카오톡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애니팡이라는 게임을 만든 회사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점 등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요인은 이번 흥행이 일회성에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앱개발자들을 비롯해 모바일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모두가 바랬던 모바일 시장이 드디여 열렸다. 그 시장을 연 상징적인 현상의 첫번째가 카카오톡이었다면, 두번째는 애니팡 열풍이다. 카카오톡은 사용자 기반 측면에서, 애니팡은 모바일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정표를 세웠다.

 모바일로 광고를 하던, 스폰서를 모으던, 음악 영화 책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던,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시장이지만 결국 게임이 열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즐기고, 열광해야 시장이 만들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것을 애니팡이 다시 일깨워줬다. 애니팡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제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이로 인해 파급될 효과는 지금 생각하는 수준 이상일 것이다. 지금 애니팡이 보여주고 있는 수치가 이미 온라인게임 시절 겪었던 경험치를 한참 초과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애니팡은 낮도깨비처럼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게임이 아니다. 매니아들을 중심으로 알려졌지만 2009년 싸이월드가 앱스토어를 PC기반 웹 서비스에서 오픈했을 때 선데이토즈는 소셜게임 형식으로 애니팡을 서비스했었다. 그때도 사용자수 100만명을 넘기며 인기 몰이를 했었다. 스마트폰 게임보다 훨씬 작은 시장에서 한 차례 검증된 게임을 갖고 모바일에 들여와 제대로된 승부를 펼친 게 주효한 것이다. 즉, 족보가 있는 게임이다. 공교롭게도 애니팡이 출시되던 날 이정웅 사장을 분당 사무실 근처에서 만났었다. 나 역시 그랬지만, 그 역시 애니팡이 이렇게 대박이 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 1000만을 돌파하고 나서 전화를 걸었다. 

“생각해보니 역사적인 날 만났었네요.”

“그러게요. 언젠가 모바일 게임에서 대박이 하나 나올 줄은 알았지만, 첫 게임이 우리가 될 줄은 전혀 몰랐네요. ”

선데이토즈와 이정웅 사장의 스토리는 예전에도 한번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다룬 적 있지만 조만간 최근의 스토리까지 업데이트한 풀스토리를 올려놓을 생각이다. 그 이야기 전체를 본다면, 이 회사와 모바일게임 시장이 가는 방향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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