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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09 한국의 스타트업-(160)헬스웨이브 정희두 대표

큰 병원, 종합병원일수록 힘들게 찾아가 오랜 시간 기다려놓고 정작 의사선생님을 만나는 시간은 턱없이 짧다. 물어보고 싶은 말은 끝도 없이 많지만, 환자나 보호자가 갖고 있는 수많은 궁금증의 대부분은 해결되지 못한다. 뒤에 엄청난 수의 환자가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의사선생님의 준비된 멘트(?)만 일방적으로 듣고 병원문을 나서기 일쑤다.

 이런 현상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다만 좀 더 심할 뿐. 그리고 꼭 해당 의사의 문제만이라고 보기도 힘들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아무리 자상하고 상세히 설명을 하고 싶은 의사라고 하더라도 환자나 보호자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의료 현실, 즉 건강보험 수가나 의사의 수, 병실의 수 등을 논하는 것은 이야기를 너무 확대시킬 소지가 있다. 일단 이 정도로 하고,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는 선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런 병원 진료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걸 근본적으로 고치기 위해선, 의료시스템 전체를 바꿔야 하는데 이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실제 개선을 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알고, 불편해하면서도 이런 현상에 변화를 줄 만한 힘이 없다. 이걸 바꾸기 위해선 병원이 돌아가는 시스템 뿐 아니라 심지어 의료지식까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있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헬스웨이브를 세운 의사, 정희두 대표다.

◆10년간 의사로 살다

록앤올 박종환 대표를 소개하면서, 내비게이션 분야에서 10년 넘게 한 우물을 판 인물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정희두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10년 넘게, 마치 운명이 이끌듯이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하기위한 준비를 해왔다. 그 과정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그만둬야하는 결단도 있었고, 불확실한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가 이 일을 하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희두 대표는 의사다. 그것도 외과의사. 1997년부터 2006년까지 꼬박 10년 동안 그는 의사로서 살았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로서 살아왔지만 그는 인턴으로서 첫 출발을 할 때부터 다른 길에 대한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외과의사는 문제를 진단하고 솔루션을 찾는, 그런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솔루션에 대해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안내해야 하는 경우가 정말 많죠. 커뮤니케이션이 하는 일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왠걸. 그는 이런 커뮤니케이션에 보람을 느꼈다. “외과 분야는 사실 상당히 심각한 내용이 많습니다. 상처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구요. 그런데 저는 직접 수술을 하는 것보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그런 과정에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에게 문제의식이 없을 리 없다. 10년간 의료현장에서 그가 느낀 것은 한국의 의료현실이 지나치게 최종결과물에만 집착한다는 것. 그가 말하는 최종 결과물은 물론 ‘완치’다. “모두가 완치에만 집중합니다. 병을 낫게 하는 분야에선 한국이 경쟁력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병을 치료하면 되는거 아니냐. 그거면 되지 뭐가 더 필요하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사실 저는 병을 치료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지적하는 것은 중간 과정에 대한 설명이나 케어, 상담 등이 전혀 없다는 것. “수술했는데 재발했을 때 수술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항암치료만 해야되는 거죠. 결과에만 집중한다면 그냥 이 환자를 외과로 보내면 됩니다. 또는 수술후 재발해 의학적 조치가 전혀 불가능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그냥 요양병원에 보내야하죠. 결과만 따지자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환자나 보호자는 정말 궁금한게 많죠. 다시 재발하는 건 아닌지, 치료에 얼마나 걸리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왜 병원을 옮겨다녀야하는지 등등. 그런데 못 물어봅니다. 물어봐도 대답을 하기 힘들어요.”

 왜 그럴까. 물론 우리가 모두 아는 이야기다.

 “한국의 대학병원들은 급성환자만 다룹니다. 즉 매우 급박한 상황에 처한 환자들만 다루는 거죠. 그리고 그 환자들이 엄청나게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주 심각한 내용을 3분안에 이야기해야 합니다. 30분 동안 환자 10명이 예약돼 있거든요. 이 정도로 예약을 받아 진료를 하니 이 가격에 그런 수술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목적 달성에는 세계 최고 수준이죠. 하지만 중간 과정의 케어는 안되는 겁니다.”

◆환자와 의사간 매체를 만들자

매일 같이 이런 일을 겪으면서 그는 참 많은 생각을 했을게 분명하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환자들이 많아 그에겐 자신도 모르게 ‘연민’과 ‘공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의 성품이 유독 남달랐기 때문일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병원에서 이런 상태론 의사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게 문제였다. 남들보다 훨씬 오래 설명하고 이해와 동의를 구하면, 느릴수밖에 없다. 밤을 새워가며 설명을 한 적도 있고, 장장 사흘에 걸쳐 설득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내 가족이라면 수술을 하게끔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가끔 이런 경우 가족들은 되레 수술을 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술을 안했다가 나중에 상호간에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일단 수술을 하고 보려는 심리가 있어요. 그런데 수술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거든요.” 결국 그는 이 환자에게 수술을 받지 않는 쪽으로 설득했다.

 수술보다 커뮤니케이션, 진료보다 상담과 케어에서 더 보람을 찾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그는 2000년부터 서서히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 물론 그때 명확한 답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림을 그려서 설명을 하면 더 쉽게 이해하고 환자나 보호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는 처음으로 매체에 대한 생각을 했다. 환자들에게 병의 상태와 진료 과정 등을 알려주는 매체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어머니가 미술학원을 하셨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환경에 있었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공보의로 있으면서 의료계의 이원복이 되자는 생각도 했었죠. 먼나라 이웃나라 있쟎아요? 그런 것을 저도 하고 싶었어요.”

 사실 그는 대학때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도 홍보부장을 맡아 틈틈이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공보의 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만화를 그렸다. 그런 그의 실력을 알고 정부에서 의뢰를 해 공보의 시절 대국민 홍보카툰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가 만화 그리는 실력때문에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대형병원일수록 병의 개념과 치료, 검사 동의서 및 이에 필요한 설명 등을 자세한 설명한 자료가 다 있었어요. 저는 그걸 알고 있었죠. 그 원자료를 갖고 만화를 그리거나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정말 쉽게 환자들에게 설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가 충북 음성 보건소에서 공보의로 있던 2003년, 조류독감이 전국을 강타했다. 마침 조류독감이 처음 시작된 곳이 음성 보건소 관할 지역이었다.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공동으로 조류독감의 대처법 등을 알리는 만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일을 했어요. 그게 경험이 됐죠.”

 조류독감 애니메이션은 그에게 실전을 방불케 한 기회였다. 이 애니메이션때문에 그는 공보의들 사이에 일약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다. 이 덕에 충북대 의대 교수팀과 공동작업을 할 기회도 생겼고, 연구 과정이 전해지면서 충북대 의대엔 애니메이션 연구팀도 신설됐다.

 준비를 하고, 반응까지 확인한 그는 공보의를 마치고 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에서 1년여간 연구교수 생활을 한 뒤 2009년 5월, 헬스웨이브를 창업했다.

◆파산 직전에 투자를 받다

정 대표가 염두에 둔 것은 병원들이 갖고 있는 각 질병에 대한 3000개의 원천자료. 이 자료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아주 쉽게, 비교적 짧은 시간에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생각이었다. 이 애니메이션 역시 일종의 의사가 제공하는 처방전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Information Transcription(설명처방)이라는 말이 별도로 있다.

 정 대표는 이것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의사들의 전자차트에 넣는 게 핵심이라고 봤다. 우선 이 처방전을 이해해야 하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줄 알아아하며, 전자차트에 넣어서 작동하게끔 해야 했다. 의학적 지식과, 애니메이션 분야와, IT(정보기술) 분야의 지식까지 다 있어야 한다!

 헬스웨이브를 차리기 전 그는 오래전부터 닥터두애니&일러스트라는 회사를 차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을 전문적으로 해 왔다. 사실 2009년에 차린 헬스웨이브는 애니메이션이 전자차트에 들어갈 수 있도록 시스템적으로 구현하는 일을 하는 회사다. 정희두 대표는 2010년 두 회사를 합병, 헬스웨이브로 합쳤다.

 하지만 사업은 역시 녹록치 않았다. 우선 전문의가 참여한 고품질 애니메이션이었지만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병원들도 환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애니메이션 사용료 정도는 내겠다는 의지는 물론, 예산도 없었다. 

 파산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수차례 거듭하던 중 기적같이 투자자를 찾았다. 유전체 분석업체 마크로젠 서정선 회장이 헬스웨이브의 잠재력을 보고 7억원을 투자한 것이다. 때마침 국내에서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병원들이 차츰 디지털 콘텐트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2011년 서울대병원을 시작으로 삼성서울병원, 강남차병원 등 대형병원들이 월 500만원 안팎의 이용료를 내고 헬스웨이브 프로그램을 찾기 시작했다. 현재 병원이 20여개까지 확대됐다. 

 헬스웨이브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인 대표적인 서비스다. 그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한번 보여주자 금방 이해가 됐다.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에게 수십번을 물어봐야 알 만한 내용이지만, 헬스웨이브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환자는 의문을 해소해 만족감이 높아지고, 의사는 보다 진료 행위에 집중하면서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픈 스튜디오 준비

 헬스웨이브의 사업은 글로벌 시장 어디에서나 통할 수 있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장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하는 의료 지식의 내용이나 의사·환자 사이의 소통 스트레스는 비슷하기 때문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료진들은 올해 초부터 헬스웨이브와 시범사업으로 헬스웨이브의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진료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의 유명 병원 의료진들도 시범 서비스에 참여했다. 

 “사실 국내에선 리베이트로 의심받을까봐 광고 기반 사업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지만, 해외에서는 병원과 환자들에게 의료 애니메이션을 무료로 제공하고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 훨씬 자유롭습니다.”

 자금 측면에서도 호재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2월에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설립한 스타트업 전문투자사 케이큐브벤처스가 헬스웨이브에 5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그동안 이 시스템을 쓰겠다는 의료진이 많았음에도 자금이 부족해 사업을 확장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그로서는 날개를 단 격. 

 그는 이 서비스에 ‘오픈 스튜디오’ 개념도 도입할 계획이다. 즉 의료진이 자기가 원하는 정보 안내 프로그램 콘텐츠를 애니메이션으로 직접 만들 수 있게 하겠다는 것. 환자 교육 자료를 의료진이 자유롭게 만들어 활용하면 의사와 환자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원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을 직접 하기 힘든 의사들도 있기 때문에, 출판사 개념의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 이 출판사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출판사다. 즉 제작사라고 할 수 있다. 의사와 병원 등이 소스를 제공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자료를 이 출판사를 통해 만들 수 있게 된다. 마치 저자와 책 판매 수익을 나눠갖듯이 이 애니메이션에 광고를 붙여서 수익을 나누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의 사업 계획은 거침이 없다. 2000년 이후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이 길을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14년간 준비한 셈이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중단하거나, 사업을 그만둘뻔한 위기가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내면서 내공도 탄탄해졌다. 그리고 14년의 노력의 결과물은 이제야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저는 여전히 제가 의사로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딴 길을 고민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 역시 의사로서의 삶이었습니다. 이 일 자체가 외과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의사 중에는 저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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