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 밖에 안 되네?”
한게임의 창립멤버인 남궁훈 NHN USA 대표(당시 한게임 이사)는 2002년 하반기 경영진 회의가 열리기 전 받아든 보고서를 통해 한게임재팬에서 2001년 하반기부터 2002년 상반기까지 1년간 집행된 비용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임대료를 제외하고 한게임재팬이 한해동안 쓴 비용이 모두 합해서 1억원밖에 안됐던 것이다.
 “아니 직원이 그래도 20명은 될텐데,물가도 훨씬 비싼 일본에서 어떻게 1억엔도 아니고 1억원 갖고 버틸 수가 있었을까.”
 내부 경영진 회의에 허위 보고를 할 리는 없고,그 동안 NHN재팬이 겪었을 고충이 짐작이 됐다.

 NHN재팬은 처음부터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택했다.천 대표 본인이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했기에 직원들부터 시스템까지 모두 일본식으로 했다. 천 대표를 제외한 초기 20명의 직원이 모두 일본인이었다.
 NHN재팬은 일본인들이 오프라인에서 가장 즐겨하는 ‘마작’을 온라인으로 만들어 서비스를 시작했다.하지만 초기에 너무 인지도가 낮고 온라인게임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도가 없어서 사업이 사업이 아니었다.
  “무슨 행사를 하거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일본 IT기업체 사람들에게 요청을 해도 이런 회사가 있나? 하는 반응으로 거절당하기 일쑤였습니다.정말 당시엔 모두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었죠.”

 이러다보니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리가 없었다.그래도 천 대표는 차근차근 회사를 소개하고 다녔다.열심히 발품을 판 덕분에 일본 인터넷업계에서 그의 이름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2001년 9월 천 대표는 일본의 미디어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됐다.그리고 발표가 끝난 뒤 자리를 돌면서 인사를 하다가 그날 지금의 모리카와 부사장을 만나게 된다.모리카와 부사장은 당시 소니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모리카와 부사장은 당시 소니가 CS디지털(위성 디지털)스카이퍼펙트(스타TV 같은 것)방송을 시작했는데,하드웨어 업체에서 미디어 회사로 변신하는 소니의 미디어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모리카와 부사장은 처음 천양현 대표와 대화에서는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새로운 비즈니스긴 하지만 돈을 벌지는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그도 그럴 것이 라그나로크와 같은 MMORPG는 모르겠지만 당시 웹보드 게임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남궁훈 이사의 짐작대로 한게임재팬과 수장인 천양현 사장은 2001년 겨울과 2002년 봄,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야했다.자본금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는 우선 자기 방부터 뺐다.직원들 월급이 급해서였다.당장 자신이 잘 곳이 문제였다.일도 많았고,마음도 편치 않았기에 천 사장은 회사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회사에서 자기로 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따로 침대를 두자니 직원들 보기가 뭐 해서 그냥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난 뒤 책상을 붙여서 잤다.직원들이 아침에 출근했을 때 사장이 회사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의기소침해할 것도 걱정됐다.그래서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시부야 거리를 돌아다녔다.거리를 다니면서 하루 일과를 생각하고 고민거리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한계가 왔다.돈이 없어서 직원들에게 2∼3개월씩 월급을 못 주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2002년 여름의 일이었다.

 2002년 여름 천 대표는 20여명 남짓한 직원들을 모아놓고 비장한 말을 했다.
  “낮에는 각자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밤에만 나와서 일할 수 있는 사람만 일을 해야겠다. ”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무보수로 일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생계는 아르바이트로 해결하고 밤에 나와서 공짜로 일해달라니.그런데 의외로 직원들이 많이 나가지 않았다.딱 2명이 2주일 안에 회사를 떠났다.
 “2명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자금 담당이었다는 점이죠.회사 자금 사정을 훤히 알다 보니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다른 사람들이야 뭐 그 사람들 만큼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았겠죠.어려움이 있어도 일시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저랑 자금 담당자 2명을 제외하곤 회사 재무 사정을 잘 몰랐으니까요” 그가 껄걸 웃으며 한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밀어붙일 순 없었다.결국 한게임재팬은 어쩔수 없이 유료화를 서두르게 된다.당시 한게임재팬의 동시접속자수는 불과 4800명 밖에 안되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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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야할 것 같아”
 “다시 공부하려고?”
 “공부에 대한 생각도 아직 있지만,일본에서 게임 사업을 하면 어떨까해서.그때 얘기했던 것도 있고.”
 “잘 됐다.한게임 이름을 달고 하는 거야.한국에서도 지금 한참 크는 중이라 지원을 많이 하긴 힘들겠지만 이쪽에서 노하우도 있고,PC방도 해 봤으니깐 그쪽 생리는 잘 알꺼고.”

 ‘일본으로 가야겠다’ 는 마음을 먹고 있던 천양현 NHN재팬 대표(당시 미션엔터테인먼트 자양동 지점 PC방 사장)는 2000년 여름,김범수 한게임 사장과 만나 일본 시장 개척을 논의했다.김범수 사장과 자양초등학교 동기동창인 천양현 대표는 일본 유학 시절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 받을 정도로 김범수 사장과 친한 친구 사이다.그가 1999년 한국에 들어올 때만 해도 한국 일을 마무리한 뒤 다시 게이오 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가 학업을 계속할 생각이었지만 PC방 사업을 하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일본에서 게임 사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그의 이런 생각에 김범수 사장도 찬성했다.김범수 사장과 천양현 대표는 아직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미지의 땅 일본에서 온라인게임 사업을 일찌감치 개척해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아직도 따가운 여름 햇살이 채 가시지 않은 2000년 9월초,천양현 대표는 김범수 사장과 단 둘이서 도쿄로 넘어갔다.두 사람이 일본 게임업체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린 결론은 ‘일본에는 아직 전혀 온라인게임에 대한 기반이 없다’는 거였다.

 이미 한국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초고속인터넷은 물론이고 미국에서 먼저 시작한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은 아주 느릴 때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일본에서 게임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다.온라인은 대세이고,일본 시장이 그 대세에서 비켜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특히 체질적으로 게임이라는 장르에 강한 일본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먼저 움직여야 했다.김범수 사장 스스로 “당시 막연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무도 안할 그 때에 시작하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시장 개척 임무를 받은 천양현 사장은 막연하기 짝이 없었다.우선 시부야에 10평도 안되는 방을 하나 얻고 직원 5명을 채용했다.모두가 일본인이었다.당시 한국 한게임도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시기여서 자금이나 인력 차원에서 따로 지원을 기대하기가 힘들 때였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초기 자본금은 비싼 일본의 물가 등으로 인해 금세 동이 났다.설립 초기 ‘한번 해 보자!’는 분위기 속에 젊은 소수의 직원을 이끌고 시작할 때만 해도 패기에 넘쳐 있었지만 돈이 떨어지자 사정이 달라졌다.돈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설립후 1년이 지났을 때부터.즉 2001년 여름부터 NHN재팬(당시 한게임재팬)의 진정한 위기가 찾아왔다.

 "가끔 정말 힘들 때는 한국의 재무 담당자와 통화를 해 보기도 했지만 서로 돈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힘없이 전화를 끊곤 했다”

 모두가 일본인인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언어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화와 온라인에 대한 인식의 차이였다.돈이 많으면 많은 댓가를 지불하며 직원들을 붙잡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어려워진 것이다.여기에 회사 직원들마저 온라인으로 게임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고 그러면서 사기가 점점 떨어져간다는 것이 문제였다.

 천양현 대표가 홀로 밤잠을 자지 못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물리적으로 돈이 없는 것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아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데다 분야마저 생소한 온라인게임에서 현지의 투자를 받기도 어려웠고,사실은 관심을 가져주는 곳도 거의 없었다.그저 하루 빨리 인정을 받는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엔 사실 일본 IT업계를 다니면서 좀 만나자고 해도 아무도 쉽게 만나주지 않던 시기였습니다.더군다나 보수적인 일본시장이니 더욱 그랬죠"

 이후 유료화를 시작하는 2002년 가을에 이르기까지 1년이 넘는 기간동안 한게임재팬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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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히트작없는 한국 게임

게임이야기 2008. 2. 15. 14:50 Posted by wonkis

“한국 온라인게임이 일본에서 한류 드라마 꼴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일본 인터넷기업 GMO의 자회사인 GMO게임즈의 권오석 사장과 통화를 하던 중 그가 불쑥 던진 말이다.안부차 전화를 걸었는데,뜻밖에 심각한 이야기가 나왔다.그의 말은 한국 게임이 겨울연가 등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한류 열풍을 일으켰지만 인기가 빠른 속도로 떨어진 한국 드라마처럼 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왜 그렇죠? 그래도 요즘 한국게임엄체들이 일본에서 잘 하고 있지 않나요?”
 “NHN이나 넥슨같이 자리잡은 회사들은 그렇죠.하지만 저는 콘텐츠로서 한국의 온라인게임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요즘 일본에선 한국산 온라인게임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식었습니다.”
 한빛소프트 출신의 권오석 사장은 올해 일본의 GMO사가 온라인게임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스카우트한 인물이다.그를 안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게임산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고 의욕도 많아 가끔씩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곤 한다.

 “한국 게임에 대한 관심이 식었다면 이유가 있을 텐데...”
 “그렇죠.이유가 있죠.요즘에 한국에서 히트친 게임이 없지 않습니까?제가 알기론 한국에서 대박난 게임이 최근 2년간 없었습니다.국내에서 파괴력을 지닌 게임이 출현하지 않았는데 어떤 한국 게임이 해외에서 힘을 쓰겠습니까.일본에선 한국 게임 시장이 정체돼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권 사장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요즘 게임 시장에 눈에 띄는 히트작이 없다.기대를 모았던 작품들은 줄줄이 참패를 면치 못했다.돌이켜보면 한국 온라인게임은 2003년 리니지2,2004년 카트라이더,2005년 스페셜포스와 서든어택 등 리니지가 태동한 1998년 이후 매년 꾸준히 히트작을 양산해 왔다.한국에서 히트한 이 게임들은 고스란히 해외 시장에서도 크게 성공을 거두며 한국 게임의 경쟁력을 전 세계에 과시해왔다.우리가 그동안 누가 뭐래도 온라인게임에서는 최강자이며,지존이자,원조라고 자부하고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엄청나게 많은 유저를 확보하고 돈도 벌게 해준 대박 게임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게 언제부터인가 끊긴 것 같다.

 작년에 기대를 모았던 이른바 ‘빅3’,그라나도에스파다,썬(SUN),제라는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그라나도에스파다는 라그나로크의 아버지로 국내 최고 개발자로 손꼽혀왔던 김학규 IMC게임즈 사장의 작품이었음에도 유저들의 기대를 저버렸다.썬은 웹젠을 누란지위로 몰아갈 만큼 심각한 타격을 줬다.제라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로한이나 R2는 상당한 성적을 내고 있지만 히트작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우울한 분위기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프리스톤테일2와 라그나로크온라인2 모두 초기 성적이 처참할 지경이다.올해 웹젠의 헉슬리,엔씨소프트의 아이온,한빛소프트의 헬게이트:런던 등 대작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지만 낙관하기는 힘들다.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권 사장의 말이 이어졌다.
 “국내 산업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사실 해외 시장에도 바로 반영됩니다.얘네들도 정보를 수집하면서 다 알고 있죠.특히 최근에는 새로 개발되는 한국 온라인게임들이 과거 게임에 비해 차별화가 확실히 되지 않는다고 일본 친구들이 판단하는 것 같아요.”
 “그럼 자기네들이 직접 게임을 만들려고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기업들도 있고 아예 온라인게임에 대한 투자를 줄이려는 회사도 있구요.일본에서는 온라인게임이 한국처럼 급속도로 성장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과 많이 달라요.또 콘솔 게임 자체가 온라인화하는 부분도 있구요”

 이 말을 듣고 보니 작년말 일본에서 넥슨 데이비드 리 사장을 만났을 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일본 시장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건,게임을 서비스하면서 점점 사용자가 늘고 성숙해지면 서비스 업체 입장에서 기대를 하게 됩니다.즉 이정도 시점이 되면 탁 치고 올라가야 하는 때가 오는데,그 때도 별로 시장이 움직이질 않아요.치고 올라가는 맛이 없이 맨날 시장이 완만하게 커지죠.한국에 비하면 이런 부분은 정말 답답해요.반응은 좋은데 유저들 숫자나 들어오는 돈은 기대만큼 빨리 늘어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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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한국계로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다는 데이비드 은 부사장을 단독으로 인터뷰할 기회가 왔다.3년전 당시 메릴린치 2인자로 명성이 높았던 다우 킴 부사장을 인터뷰할 때처럼 흥분됐다.왠지 예감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11일 서울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 22층(구글코리아)에서 데이비드 은 부사장을 만났다.예상대로 첫 인상이 다우 킴과 비슷했다.외모는 전형적인 동양인이지만 고수에게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한 느낌이 비슷했다.필요 이상으로 거들먹거리거나 물어보지도 않은 잘난 척을 하지 않는 단계다.다우 킴에게서 가장 강하게 느꼈던 기운이었다.
 하루 전날 한국에 도착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뒤에 그 다음날 아침 8시30분에 나를 만났으니 피곤할 법도 했겠지만(미국에서 13시간을 날아왔을 것이 분명한데) 별로 피곤한 기색도 없이 마치 친구랑 얘기하듯 둘이서 김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눴다.기사 꺼리는 별로 없었지만 그만큼 정말 편안한 자리였다.

 “2년 전 구글에 입사한 뒤 한국에는 처음입니다.한국의 우수한 콘텐츠 업체들을 직접 만나고 이들과 협력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한국에는 정말 훌륭한 인터넷 업체들이 많네요.”

 데이비드 은 부사장은 영어를 훨씬 잘하긴 했지만 한국어로도 일상 대화엔 큰 지장이 없었다.그래서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섞어 가면서 얘기를 했다. 그는 2000년 개인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뒤 7년만에 한국에 왔다.

 “그때도 한국이 초고속 인터넷 강국이라는 점을 보고 놀랐었는데 이번엔 많은 젊은이들이 영어를 잘하고 경쟁력있는 인터넷기업들이 많아 인상깊었습니다.모국인 한국이 이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2세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버지니아에서 자란 은 부사장은 하버드대학교 행정학과,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는 등 지금까지 계속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타임워너를 거쳐 아츠 얼라이언스에서 근무하다가 2005년 구글에 합류했다.한국어 문법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지난 1989년에 연세대학교에서 6주 단기 코스를 밟기도 했다.

 “부모님이 두 분이서는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셨지만 의식적으로 집에서 저와 대화를 나눌 때에는 영어를 항상 쓰셨어요.게다가 제가 자란 버지니아쪽에 한국 사람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영어가 더 익숙해진 게 사실입니다.”

 그는 덕분에 영어가 빨리 늘고,미국에서 생활하는데 아무 부족함이 없게됐지만 요즘에는 어릴 때 한국말을 좀 더 열심히 배워둘 껄 하는 후회가 생긴다고 했다.그래서 그는 두 자녀에게는 한국어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있다.

 “제가 한국어를 가르칠 만큼 잘 하지 못하니깐 한국어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자기의 뿌리를 명확하게 안다는 것은 중요한 것 같아요”

 주로 개인적인 대화를 계속 나누고 싶었지만 일 때문에 만들어진 만남인 만큼 그럴수는 없었다.그래서 형식적으로나마 한국의 인터넷 환경과 그의 한국에서의 사업 계획을 조금 들었다.그는 한국에서 빠른 시일 내 책 검색을 실시하기 위해 많은 출판사들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은 부사장은 “구글과 제휴를 맺으면 글로벌하게 콘텐츠를 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구글의 최고의 엔지니어들과 콘텐츠를 더욱 발전시키는 방안을 모색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 부사장은 최근 있었던 ‘구글이 뉴스뱅크에 포털로의 뉴스 공급 중단을 요청했다’는 설을 부인했다.그는 “구글은 어떤 콘텐츠 업체나 미디어와도 배타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며 “구글 본사에서는 한국의 수준 높은 콘텐츠에 관심이 많으며 전 세계의 네티즌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우수한 콘텐츠를 알리는 통로가 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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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물등급위원회(게임위)의 도덕적 해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게임위가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등급위원의 자질에 관한 문제부터 게임위 퇴직자의 부적절한 행위,게임업계와 등급위원의 사사로운 만남 등 구성원,조직,심사 과정에 이르기까지 게임위가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드러내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발단은 게임위 정책심의지원팀장을 지내다 지난 7월 퇴직한 이 모씨가 지난달 27일 언론사에 실명 제보를 하면서 비롯됐다.당시 이씨는 “게임위가 명백한 근거 없이 법정처리기한(15일)을 넘겨 심의를 지연하면서 몇몇 업체로부터 급행료 5000만원을 제의받았다”며 “게임위가 업계에 피해를 끼치고 불법행위가 생길 수 밖에 없는 행정 편의주의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때만 해도 ‘법정 처리 기한인 15일을 지켜야 비리가 근절될 수 있다’는 주장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난 6일 정동배 게임위 등급위원이 아케이드 게임 업체 ‘골드드림’의 실제 사주라는 손 모씨와 이 모가 자신에게 3백만원의 뇌물을 전달하려 했다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면서 사건은 급진전했다.

 정 위원의 이날 발표에 따르면 이모씨가 저녁에 전화를 해 한번 만나자고 했으며,이 만남에는 등급을 부여 받았다가 위변조돼 등급 부여가 취소된 골드드림이라는 게임업체 실제 사주 손 모씨가 동석했다.자정을 넘은 시각,2차 자리는 호프집에서 가졌는데 2차에는 정 위원의 아들이 함께 나갔었고 2차가 끝날 무렵 손 모씨라는 사람이 치킨 상자를 건네줬고 이를 받아 냉동실에 보관했다고 한다.며칠이 지나 아는 사람이 정 위원의 집에 와 치킨 상자를 열었다가 300만원 현금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정 위원에게 알려 정 위원은 즉시 이를 손 모씨에게 돌려줬다고 한다.

  정 위원은 “뇌물을 알게 된 시점에서 즉각 돌려줬으며 두 사람을 뇌물공여혐의로 사법당국에 고발했다” 면서 “이 과정의 일부 부적절한 처신에 사과드리며 책임을 지고 게임위 위원직을 사퇴한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이 모씨는 “그날 만남에 손 모씨라는 사람은 동석하지 않았고 다만 골드드림 관계자들이 배석했다”며 “골드드림측과 정 위원의 만남을 주선하긴 했지만 뇌물건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이 공방을 지속하면서 게임위의 구조적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보도자료에서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라고 한 정동배 위원은 2년전 면직된 것으로 드러났다.서울디지털대학교측은 “소송중이라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정씨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2년전 면직됐다”고 밝혔다.게임위측은 “등급위원 결정은 추천 기관과 문화부의 소관이므로 게임위 관할이 아니다”며 “추천 기관과 문화부에서는 정씨가 교수에서 면직된 것을 알고 있지만 전문성 등을 높이 사 임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게임위는 뒤늦게 보도자료를 정정했다.하지만 지난해 10월 게임위 출범 당시 정씨를 등급위원으로 추천한 게임학회는 “정씨가 면직됐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답변했다.

 게임위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15일의 심의 기간을 위배하고 있다는 것도 드러나고 있다.이 모씨는 “가위바위보게임,베리인터레스팅포커 등은 접수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심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게임위측은 “비경품 아케이드 게임 심의 지연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회,해당 업체 등과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심의 지연은 인정한 셈이다.

 심의가 취소된 게임업체 관계자와 등급위원이 한밤중에 은밀하게 만나고 이 만남을 게임위 전 정책심의팀장이 주선해주는 부분은 게임위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자정이 넘은 시간에 정동배 위원이 골드드림 관계자와 만나 이들이 전해주는 뇌물이 든 ‘상자’를 받아가는 장면도 납득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이런 일련의 사태들이 무소불위 규제 기관인 게임위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임을 지적하고 있다.‘규제’라는 막강한 힘을 지녔지만 견제할 수단이 전혀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지난해 바다이야기 사태에서 드러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비전문성과 도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위가 탄생했지만 10개월여만에 또 다시 비슷한 문제가 터졌다.

 즉 규제 기관은 게임 업체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보유한 반면,이를 견제할 수단은 거의 없고,게임업체들 중에는 심의를 받지 못하면 당장 내일이 없는 회사가 태반이며 이 때문에 심의를 받기 위해서라면 거금을 쓸 준비가 돼 있는 기업이 많다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게임위 위원들이 아무리 청렴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업체 사람들이 아무리 순수한 의도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각종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일본,미국 등에서는 이런 점을 우려해 업계가 주축이 된 민간 기구가 게임 등급을 관장하고 있다.일본의 ‘CERO’가 대표적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게임위 내에 윤리위원회가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반면 게임업체들 중에는 심의 통과를 위해서라면 수억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막강한 힘을 가진 위원장을 포함한 등급위원을 견제하는 확실한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이런 사건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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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영혼의 반려자로 교제를 하게 된 데는 서머셋 모옴(William Somerset Maugham)이 1915년 출간한 소설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의 영향이 컸다.우연한 첫 만남에서‘무슨 책을 좋아하세요?’라는 당시 아내의 질문에 내가 ‘인간의 굴레’라고 답한 것이 서로 호감을 갖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그러고 보면 100년 가까운 시간을 뛰어넘어 나는 아내를 만나게 해 준 서머셋 모옴에게 큰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갑자기 ‘인간의 굴레’가 떠오른 것은 지난 주말에 처가에 갔다가 처남의 책상에서 그 책을 다시 봤기 때문이다.아마 내가 입버릇처럼 ‘인간의 굴레’를 얘기하고 다녀서인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처남도 그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나보다.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너무 많이 읽어 손때가 묻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그 책을 보니 아내와 가끔 주고 받는 대화가 생각났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일까’,그리고 ‘인간의 굴레를 언제쯤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선뜻 자신있게 대답할 사람이 그 누가 있을까.내가 중학교때 처음 접한 ‘인간의 굴레’에서 큰 충격을 받은 것도 이 책이 주인공의 굴곡진 삶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간의 굴레’에 나오는 주인공 필립은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다.우선 그는 절름발이로 태어난다.마치 모든 인간이 누구나 선천적으로 결함을 갖고 태어나는 것처럼...육체적으로든,정신적으로든,영적으로든,가정환경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소설에 나오는 서른에 즈음하여까지 불편한 다리를 저주하고 그 때문에 가슴아파하면서 살아간다.누구나 자신의 결함때문에 좌절하고 방황하는 것처럼.

 불편한 다리 때문에 그는 신을 버리고 자신에게 실망하지만 결국 서른이 되어서는 그동안 그 다리 때문에 자신이 그만큼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었음에 감사하기도 한다.마치 사람들이 자심의 나약함때문에 자신에게 실망하고 신을 버리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삶이 풍요로울 수 있었음을 고백하는 것처럼.

 그는 직업을 무려 5번이나(목사, 회계사, 화가, 백화점점원, 의사) 바꾼다.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자신에 대해 무지하며 삶의 의미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그리고 그의 그러한 삶은 평생 자신의 직업과 정체성 찾기에 골몰하는 현대인의 역경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

 필립은 결국 ‘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회복하고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얼마쯤의 가치관을 정립하게 된다.필립은 죽어가는 숙부의 얼굴을 보면서 끔찍한 고통을 안겨준 신을 인간이 믿고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그리고 삶이 얼마나 준엄한 것인지 깨닫는다.그는 결국‘인생은 고통으로 점철되지만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필립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크론쇼가 준 페르시아 양탄자에서 해답을 찾는다.얼핏 무의미해보이지만 조용히 자신만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30년동안 지고 있었던 ‘인간의 굴레’에서 아직 해방되지 않은 것 같다.아직 굴레를 짊어진 필립의 모습은 결국 나를 포함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의 모습인 것 같다.그리고 완결되지 않은,30의 나이에서 정지한 소설의 그 부분에서 우리의 삶이 이어지는 것을 필립은 바라보고 있다.모든 이가 지고 있는 인간의 굴레를,그리고 자신이 여전히 지고 있는 인간의 굴레를 내려놓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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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영 페이지온 사장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즉각 이런 대답이 나온다.“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기술들을 현실화시키는 것”
 여자친구와 만나 차를 타고 같이 가면 분위기에 맞춰서 알아서 음악이 흘러나오고,데이트하기 좋은 식당으로 차가 안내해주는 그런 놀라운 인공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그의 꿈이란다.

 국내에 얼마 되지 않는 기술 벤처기업인 페이지온은 2005년 5월22일 설립돼 계속해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해왔다.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 98학번인 장세영 사장(28세)이 재학중이던 시절 같은 학교 동창들을 중심으로 조직해 만든 회사다.하지만 항상 돈이 문제였다.특히 설립 후 1년이 지난 뒤부터 문제가 심각해졌다.(NHN재팬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항상 사업을 시작한 뒤 1년뒤에 본격적인 어려움이 찾아오는 것 같다.자본금이 떨어질 시점이다.)

 처음에 5000만원으로 시작한 뒤 3억원까지 늘렸지만 계속 직원은 늘어나고 작년 하반기부터 자금이 딸리기 시작했다.“항상 일은 많고 사람은 적기 때문에 야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한번은 직원들 3명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갔는데 누구 한 명은 돈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 식당에 앉았는데,아무도 음식값을 계산할 돈이 없다는 걸 알게됐다.탈탈 털었지만 2000원도 채 나오지 않아서 힘없이 식당에서 나왔던 일이 있다.결국 그날은 야근도 못하고 본의 아니게 다들 집으로 일찍 들어갔다.난 집에 가서 라면으로 때웠는데,다른 직원들은 그날 어찌했는지 모르겠다.”
 장 사장이 웃으며 한 말이지만 초기 사업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목 같았다.월급이 제때 지급되지 않았던 적이 꽤 있었기 때문에 돈이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요즘엔 얼굴이 활짝 피었다.코스닥 상장사인 디브이에스에 인수되고 디브이에스가 최근 유상증자에 성공하면서 자금력이 생겼기 때문이다.장 사장은 “항상 돈이 문제였는데 요즘엔 좀 할만해졌네요”라고 말한다.
 그는 내비게이션 등 자동차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디브이에스와 힘을 합쳐 내년 상반기께 사람과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내비게이션을 출시할 예정이다.그래서 우선 선보인 것이 아이봇 이라는 인공 지능 에이전트다.‘아이봇’이라는 명칭은 인공지능의 ‘AI(artificial intelligence)’와 로봇을 뜻하는 ‘봇’을 합성하여 사용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존재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그는 ‘아이봇’을 쇼핑몰,내비게이션,홈 네트워킹,UCC  등에서 사용자를 안내하는 통합적인 인공지능 에이전트 기술로 활용할 계획이다.

 페이지온이 개발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은 현재 전자제품에서 사용되고 있는 음성 인식보다 크게 진화된 것이다.현재 내비게이션 제품 등에 쓰이는 기술은 단순히 사람의 음성을 인식해 그와 부합되는 결과물을 화면에 띄워주는 수준.하지만 페이지온이 개발중인 기술은 음성을 인식한 뒤 자연어처리 과정을 거쳐 추론해서 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한다.에어컨을 예를 들면 현재 기술에서는 ‘온도 높여’,‘온도 낮춰’ 등과 같은 직접적인 명령어만 인식하지만 페이지온이 개발중인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되면 ‘춥다’라는 말을 듣고 에어컨이 이를 논리적으로 분석해 추리를 한다.‘추우니깐 온도를 높여야 겠다’는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것이다.
 장세영 사장은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사실상 모든 종류의 전자 제품에 활용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내비게이션에 이 기술을 적용한 뒤 음성 코드만 넣으면 사람과 대화도 가능해진다.즉 ‘데이트하기 좋은 카페가 어딨지?’라고 말하면 내비게이션이 주변 정보 중에서 카페를 선별해 찾아준다.기술이 더 발달하면 카페별로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지도 설명해 준다.사용자가 이중 하나를 선택하면 여기에 맞춰 길안내를 해주는 방식이다.

 장세영 사장은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주인공이 여자친구와 데이트할 때 분위기에 맞춰서 알아서 음악이 나오고,좋은 장소로 내비게이션이 알아서 길안내를 해주는 기술이 아주 먼 일이 아니다”며 “영화에서나 봤던 꿈의 기술이 내년부터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이지온은 우선 자체적으로 운영중인 UCC 동영상 사이트 맥스피디(
www.maxpd.com)에서 인공지능 로봇 ‘아이봇’을 적용한다.‘아이봇’은 사용자가 맥스피디에서 조회한 동영상 내역을 자체적으로 분석,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자동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아이봇’은 인공지능 기술에 따른 아이큐 개념을 도입,사용자와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지능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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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름대로 열심히 인터넷 벤처 기업을 찾아 다닌다고 찾고 있는데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특히 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기술 벤처인데,이건 더 힘들다.첫눈,코난,그리고 최근의 레비서치 정도? 첫눈하고 코난은 큰 회사로 흡수됐고,그 밖에 몇몇 기업을 더 만났던 것 같은데 사실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다.

 대학생 인맥 구축 네트워크 피플2를 운영하고 있는 김도연 사장을 만났을 때 의문이 풀렸다.김 사장은 인터넷 산업의 기술 기업 기근 현상을 현장에서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계속 이쪽에 있었고 아는 사람들도 다 그런지라 많이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만납니다.최근엔 사업 때문에 기술적인 자문을 듣고 신기술 동향도 배우고자 기술 벤처 기업 리스트를 작성해 본 적이 있었어요.그랬다가 깜짝 놀랐죠.거품이 꺼졌다 뭐다 했지만 그래도 불과 5-6년 전만 해도 서울 시내 맘 먹고 돌아다니면 기술 벤처들 200여개는 찾을 수 있었거든요,그런데 이제는 없어요.20개 정도나 남았을려나? 한국 인터넷 산업에서 벤처는 게임 밖에 안 남은 것 같습니다.검색의 영역을 개척하거나 새로운 웹 환경을 만드는 기술력을 갖춘 기업은 이제 없어요.”

 국내 시장이 작은 것도 문제긴 하다.이 좁은 내수 시장에서 벤처기업으로서 그 고생을 하기엔 댓가가 너무 적은 것이다.하긴 레비서치의 안상일 사장도 검색 기술을 개발해 바로 해외에서 승부볼 생각을 갖고 있으니.

 시장이 작은 것이 이런 문제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미국에서는 인터넷 관련 기술 기업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끊임없이 시도가 이뤄지면서 새로운 개념의 기업들이 탄생하고 이것이 구글을 더욱 자극하고 산업이 커지는 효과를 보이고 있는데,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되지 못할까.이공계로 진학을 하지 않고 설혹 진학을 하더라도 우수한 인재들은 고시 보러 빠져나가고 다시 의대로 편입하고 이래서 그럴까.

 퍼피레드를 운영하는 트라이디커뮤니케이션즈의 이용수 사장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참고로 그는 카이스트 96학번이다.“제가 거의 마지막인가 봐요.요즘 학교 후배들을 만나면 창업하겠다는 친구들이 거의 없어요.춥고 배고픈 일을 뭐하러 하냐는 거죠.그냥 고시 보겠다는 친구들,공무원 준비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사실 그 사람들을 설득할 논리가 별루 없습니다.”

 한국의 인터넷 산업에는 어떤 미래가 있을까.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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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 검색 엔진 개발을 내세웠던 벤처기업 첫눈이 NHN에 매각된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고 있다.새삼스럽게 첫눈 얘기를 1년이 지나서 끄집어 내는 것은 첫눈 매각 이후 이 바닥의 생태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인터넷 산업을 이끌며 한가락씩 했던 이른바 ‘선수’들은 첫눈의 NHN 인수가 인터넷 벤처의 생태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고 전한다.

 뭐가 그렇게 달라졌을까? 우선 벤처 기업을 좀 해보려고 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사라졌다.기술력을 벤처 기업을 세워서 사업을 좀 해보려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첫눈에 열광했던 유저들도 돌아섰다.벤처 정신으로 거대 시장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첫눈은 실력이나 매력,대표이사의 자질 등 모든 면에서 최근 보기 드물게 수준 높은 회사였었다.그렇기에 1년이 넘게 지났건만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NHN하고 한번 맞짱을 뜰 만한 선수 중의 선수,장병규 사장이 포기하고 회사를 NHN에 넘겼는데 어느 누가 있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배인식 그래텍 사장은 이런 업계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요즘에 후배들이나 동기 중에서 새로 사업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내용을 자세히 보기 전에 그 사업이 어느 영역인지 우선 봅니다.웹 분야면 내용을 더 이상 보지 않고 이렇게 말해줍니다.‘나 이거 내용 안 봤다.어느 정도 하다가 회사 파는 게 목적이냐? 그러면 해라.하지만 가격 잘 받기 녹록치 않을꺼다.독립적인 벤처기업으로 계속 커가고 싶으냐? 그러면 이걸로 사업하지 말아라.’
 제가 웹 쪽으로 사업을 하지 않고 어플리케이션을 고집하는 것도 이쪽에서는 승부를 걸어볼 만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웹에서는 한국에서 이제 정말 네이버,NHN을 넘어서기 힘들게 됐습니다.”

 지금 국내 인터넷업계에서는 어떤 서비스를 해도 웹 기반으로는 네이버를 넘어설 수 없다는 절망감이 가득하다.첫눈은 이를 타개할 가능성을 보여줬었지만 결국 NHN의 품으로 들어가 버렸다.NHN이 한국의 인터넷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다시피 하면서 벤처 기업이 의욕적으로 사업을 하기 힘들어졌다는 거다.독점 기업의 사회적 비용인 셈이다.NHN으로서는 앞으로 국내 시장을 발판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앞장서 환경을 구축해야 할 의무도 생길 것 같다.

 첫눈같은 회사가 다시 국내 인터넷산업에서 등장할 수 있을까.그만한 자본력과 맨파워,기술력과 명성을 지닌 인터넷 벤처 기업이 다시 나올지 의문이다.나만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업계의 종사자들이 비슷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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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을 창업한 넥슨홀딩스 김정주 사장은 요즘 미국에 주로 가 있다고 한다.작년말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한 미국 지사를 독려하고 직접 자신이 현지 시장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서라고 한다.가끔씩 한국에 들어오곤 하는 그를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한국에 들어온다고 다른 사장들처럼 넥슨 사무실이 있는 선릉역 근처로 잘 오지도 않기 때문에 도저히 동선을 종잡을 수가 없다.하지만 최근 김 사장과 정기적으로 골프를 치는 멤버 2명을 알게됐다.간접적이긴 하지만 그분들로부터 김 사장의 최근 동향과 그가 고민하고 있는 것을 들어봤다.

“1년에 게임 20개는 만들어야 닌텐도랑 경쟁할 수 있다”

 사실 그가 정확히 한 말은 이거라고 한다.닌텐도가 무섭게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김정주 사장은 부러움과 함께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본인 입으로 “닌텐도를 열심히 스터디중”이라고도 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두 가지 동기가 있다.우선 제라 실패가 가져온 충격이다.거금을 들여서 만든 게임 제라의 실패는 그 뿐 아니라 넥슨 수뇌부에 많은 생각을 하게 했을 것이다.제라는 2005년부터 썬,그라나도에스파다 등과 함께 대작 온라인게임으로 주목을 받으며 작년에 요란하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승승장구하던 김정주 사장은 제라의 실패로 다시 한번 게임 시장의 예측 불가능성과 변동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종종 영화와 대비되곤 하지만 작년에 나온 100여개 게임 중 그나마 세상에 이름을 제대로 알리고 인기 순위권에 들면서 살아남은 게임은 단 2개다.영화보다 더 낮은 확률이다.2%의 성공 확률에 도전하는 것이니 도박이나 다름없다.

 반면 이와 정 반대되는 닌텐도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닌텐도는 게임 타이틀이 저마다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게임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콘솔게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지금 닌텐도의 강력한 경쟁력이 온라인게임 시장에 미칠 영향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닌텐도가 본격적으로 온라인게임 타이틀을 만들기 시작한다면 막강한 콘텐츠의 힘으로 누구보다 파워풀한 경쟁자가 될 것이란 예상을 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닌텐도와 경쟁하기 위해선 타이틀 숫자를 대폭 늘려서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법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궁극적으로는 이 정도는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소리다.엠게임의 손승철 회장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게임업체 사장님들의 생각은 어느 정도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다.타이틀 숫자를 늘리면 여러가지 효과가 있다고 한다.단순히 숫자를 늘려서 확률을 높이는 것 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트렌드를 읽는 데 도움이 된다.무엇보다 내부적으로 다양한 트렌드에 대응할 수 있는 개발력을 확립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물론 그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한국 게임시장의 현실과 함께 넥슨이 처한 상황때문이기도 하다.넥슨은 2004년 카트라이더로 빅히트를 친 뒤 아직까지 대박 게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메이플스토리,마비노기,비앤비,카트라이더 등 4강이 빵빵한 실적을 뒷받침해주고 있지만 작년과 올해 매출 성장률이 과거에 비해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등 고속 성장기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그새 국내 매출에서는 NHN의 한게임이 저만치 앞서 버렸고 네오위즈,CJ인터넷 등은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다.

 현재 넥슨이 자체적으로 이름을 걸고 만드는 게임은 1년에 10개가 채 되지 않을 것이다.이 정도로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자체 개발력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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