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네 번째 창업이다. 답답하고 재미없는 일은 못 참는 성격이어서일까. 잠깐의 공백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의욕적으로 새로운 일을 찾아왔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아주 야무지고 똑 부러질 것 같은, 화장품 샘플 정기배송 서비스와 건강 관리 서비스를 했던 그녀가 이번엔 금융상품 추천 서비스를 들고 나타났다. 한국의 스타트업 이백스물한번째 주인공은 핀다(Finda)의 이혜민 대표다.

未生에서 創業家

대학 다닐 때는 외교란 분야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 03학번이었던 학생 이혜민은 외교관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외교라는 분야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2005년 칠레로 떠났다. 당시 칠레와 첫 FTA가 처음 발효되면서 교환학생으로 갈 기회가 생겼다. 스페인어는 제대로 배웠을 것 같다. ADB(아시아개발은행)에서 인턴도 했다. 모두 외교 분야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선 진로가 달라졌다. STX 지주회사에 입사해 전략기획, 투자 등의 업무를 했다고 한다. 일은 힘들었지만 배우는 건 많았다. 공부도 많이 됐다. 하지만 성과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인프라 투자 등의 일을 하다보니 성과를 보기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일까. 이런 일들이 앞으로 내가 하려는 일들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대학생 시절과 사회 초년병일 때, 정체성과 미래의 직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못하고 그저 주어진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그에겐 무척이나 답답했다.

막연한 직장 생활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휩싸여 있을 때 마침 로켓인터넷(Rocket Internet)’이라는 독일의 벤처투자 및 육성회사의 투자, 인큐베이팅을 받을 기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2011년 회사를 나온 현재 꾸까 대표인 박춘화와 함께 공동창업을 했다. 한때 열풍이 불었던 화장품 섭스크립션(정기 배송) 분야의 국내 최초 기업이다. 미국 화장품 정기배송 서비스인 버치박스(Birch Box)’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회사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갔고, 매출도 늘어갔다. 관련 분야 산업도 급성장했지만 그는 오히려 답답함을 느꼈다. 창업자 지분이 많지 않았던 데다 외부 투자자의 권한과 역할이 컸던 게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냥 우리 힘으로 해 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래서 2012년에 그만두고 나왔죠.”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네 번째 도전

두 번째 창업 아이템도 정기배송이었다. 다만 품목이 좀 달랐다. 이번엔 유아 용품으로 했다. 유기농 식재료를 배송하는 서비스도 했다. 회사 이름은 베베앤코였다. 2012년에 이미 정기배송 분야의 사업은 성장세를 타고 있던 시기였다. 샘플을 팔던, 유통과정을 줄여서 가격을 낮추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과 가격 부담이 적다는 것에 소비자들이 열광하던 시기였다. 베베앤코도 당연히 그런 시대적 상황을 반영했다. 다만 문제는 창업자인 이혜민 대표 본인이 아이를 키우고 유기농 식단을 차리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그때 그는 정세주 눔(Noom) 대표를 만나게 된다.

미국 뉴욕에서 워크스마트랩스라는 건강관리 관련 앱 개발회사를 차리고 한국에서도 사업 기회 확장을 모색하던 정세주 대표는 이혜민 대표의 잇따른 창업 경험과 인터넷 사업 분야에 대한 열정, 감각을 높이 샀다. 이때 정 대표는 미국 본사명을 눔으로 바꾸고 건강 관리 앱에서 건강 관련 종합 정보 플랫폼으로 변신을 꾀하며 한국 진출을 타진하고 있었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눔코리아를 설립하기로 하고 이혜민 대표가 한국 법인 총괄을 맡았다. 내가 정세주 대표의 소개로 이혜민 대표를 만났던 것이 이 시점이었다. 2012년 가을에 두 사람은 로켓인터넷 방시으로 사무소 설립 실험을 해보자는 데 동의했다. 처음엔 3개월만 해보자였다. 남부터미널에 오피스텔을 구하고 눔코리아를 세웠다. 20151월 눔코리아를 나올 때까지 이혜민 대표는 약 2년 반 동안 건강관리와 다이어트 서비스의 한국화 및 수익모델 발굴을 맡은 한국 법인을 책임졌다.

이혜민 대표가 다시 새로운 창업에 나서게 된 근본적인 계기는 자신의 사업 경험에서 온 아쉬움이었다. 글로시박스의 경우 사명감이 부족했다는 생각, 베베앤코에서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가 가진 아쉬움이었다. 눔코리아의 경우 본사가 미국에 있고 한국법인의 대표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하고 싶으면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일에 다시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계기는 자신의 생활에서 나왔다.

눔코리아 시절에 결혼을 하고 집 문제 때문에 대출을 받거나 금융상품 가입을 위해서 이런 저런 정보를 알아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너무 복잡하거나 시간이 많이 들거나, 나에게 잘 맞지 않는 정보만 잔뜩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상담을 받으려고 해도 나를 잘 모르다보니 시행착오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죠. 이걸 좀 해소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핀다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금융분야의 아마존 되겠다!

몇 달 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이혜민은 박홍민과 함께 공동 창업에 나섰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니아주립대에서 부동산 금융 석사학위를 받은 박홍민 대표는 금융알고리즘을 담당했다.

<핀다 공동창업자 이혜민(왼쪽), 박홍민 대표>

이들이 201510월 설립한 핀다(FINDA)는 영어로 금융(Finance)’과 한자어 ()’의 조합어다. ‘많은 금융상품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 외 다른 중의적인 의미가 상당히 많다. ‘웃음꽃이 핀다’, ‘구겨진 것을 핀다’, ‘웅크린 것을 핀다등 다양한 뜻이 있다고 한다.

핀다는 판매자와 구매자, 공급자와 수요자간 금융정보의 비대칭에 주목한 서비스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함으로써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게 하겠다는 게 이 회사의 비전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어렵고 골치아픈 금융상품 선택 과정을 도와주는 맞춤형 금융상품 매칭 서비스라는 게 이 대표의 공식 설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고도화된 매칭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의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상황까지 고려, 최적의 금융상품을 비교하면서 찾아주는 서비스입니다.”

핀다 사이트(www.finda.co.kr)는 지난 114일 문을 열었다. 주택매매대출, ·월세대출 그리고 목돈 모으기가 필요한 고객들이 주된 타깃이다. 시중 은행에서 판매되고 있는 금융상품들 중에서 개인에게 가장 잘 맞는 상품을 바로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회원가입이나 신용등급 조회를 하지 않아도 가장 낮은 금리의 상품은 물론 회원들이 가장 많이 찜하거나 가입했던 상품, 평점이 높은 상품 순으로도 볼 수 있어서 마치 호텔 예약 서비스와 같이 쉽고 유용한 것이 특징이다.

핀다는 기본적으로 직접 금융상품을 판매하지는 않는다. 금융사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정보를 제공해준다. 금융사들 입장에선 마케팅 채널이 될 수 있고, 고객들 입장에서는 금융정보사이트가 될 수 있다. 미국 등 해외에선 핀다와 같은 온라인 금융 정보 서비스들이 활성화돼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 고객들이 더 이상 지점에 방문하는 등의 번거롭고 불편한 대면 채널을 이용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자신에게 잘 맞는 상품을 비교 검색하고, 온라인으로 바로 가입할 수 있도록 주요 통로역할을 해 주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단순 정보 제공 뿐 아니라 온라인으로 필요한 서류를 미리 준비하고, 맞춤 설명을 들음으로써 오프라인에서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일 수도 있다. 비대면전용 상품도 구성해 소비자들의 편의를 높일 계획이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금융상품도 쇼핑하듯 쉽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가 겪었던 그런 불편함이 해소돼서 누구나 편하게 자신에게 맞는 금융상품을 찾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했어요. 궁극적으로는 금융상품 분야의 아마존을 만들겠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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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받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저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그래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아무리 똑똑하고 성공한 사람이라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면 나락으로 추락한다는 것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과거 유명인들의 사례를 통해 봐 왔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방법을 못 찾는 사람도 있다. 제법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외국에서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기도 하고, 상담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럼 한국에서는? 어렵다. 가벼운 우울증 정도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지만, 아직 한국의 문화에서는 이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정신과 병원을 잠시만 다녀도 뭔가 큰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풍조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더더욱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를 기피하게 된다. 이게 반복되면 작은 병이 큰 병으로 악화될 수 있다. 카운스링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시작됐다. 현대인의 고민, 우울증과 정신적인 스트레스. 이것을 드러내놓고 치료받기 힘든 한국의 현실. 여기에 해결책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에서 발견한 현대인의 고통

카운스링의 조성식 대표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지만 IT(정보기술)업계에서 오래 일했다. 그가 결국 창업의 길로 들어선 것도 그가 일한 분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졸업후 LG전자에 입사했던 그는 2000년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미 인터넷 기업 야후의 한국법인 야후코리아에서 일하게 된다. 야후가 절정을 달리던 시기와 네이버, 다음 등에 의해 거센 추격을 받고 점점 밀려나던 시기를 다 겪은 그는 2006년 회사를 나와서 첫 창업에 도전한다.

당시 뜨고 있던 아이템은 웹2.0. 조 대표는 누보커뮤니케이션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첫 창업으로 세운 회사를 그는 바로 이듬해 매각했다. 미국의 웹스닷컴이라는 회사가 누보커뮤니케이션을 인수했다. IT 분야 창업 암흑기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창업과 매각이라는 과정을 거친 것 같다. 당연히 매각 조건으로 이 회사에 들어가 2년여 기간 동안 일한 뒤 2009년에는 삼성전자로 가게 된다. (웹스닷컴은 이후 다른 회사에 다시 M&A되면서 회사명 자체는 사라졌다.)

야후를 거쳐 웹2.0 분야의 창업을 했던 인물이 삼성전자로 간다는 것은 뭔가 미디어 분야의 일을 한다는 뜻이다. “삼성미디어솔루션 센터에 들어갔어요. 모바일에 들어가는 콘텐츠, 솔루션 등을 만드는 조직이었죠. 삼성앱스 아시죠?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그 앱을 만들고 기획하는 일이었요. 물론 처음엔 삼성앱스도 애플 앱스토어의 경쟁 개념으로 시작했지만요.”

삼성에서 그는 (어찌보면 처음으로) 직장인들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발견하게 됐다. 한국 사회의 엘리트 직장인들이고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회사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내하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를 인지한 것이다.

직장 동료 중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어요. 아마 다른 직장도 비슷할 거에요. 강도는 다를 수 있겠죠. 어쨌든 정서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상담을 받아봐라, 병원에 가 봐라고 권유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절대 그렇게 안하더라구요.”

아내가 정신과 의사인 그는 정신과 진료나 카운슬링이 상태를 진단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오프라인 심리 상담의 문제점 해결

우리 주위만 둘러봐도 함께 일하는 동료 가운데 정신과 진료를 받거나 심리치료를 위해 상담을 받고 있다는 사람을 그리 쉽게 만나보긴 힘들다. 행여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소문이 날까 두려워한다. 정신과 진료나 상담을 받는 것에 대해 터부시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뭐라고 꼬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다. 자신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는 게 세상에 알려져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불이익을 받게 되리란 것을 말이다. 가벼운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은 많지만 아무도 그것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조 대표는 이걸 바꿔보고 싶었다. 단숨에 이런 분위기를 역전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삼성에서의 경험과 정신과의사와 결혼했다는 점이 그의 창업 아이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이렇게 치료나 초기 상담을 놓치면 병을 더 키워요. 가벼운 우울증이 심각한 정신질환이 되는 거죠. 초기에 그걸 잡을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아본 거죠.”

그는 현재 오프라인 정신과 진료 및 카운슬링 분야의 문제점을 찾아봤다. 우선 개인 정보 보호가 안되고, 돈이 많이 든다는 게 문제였다. 자신이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않고 현금으로만 결제하는 방식을 쓰지만 병원이나 상담센터를 들락날락하다보면 사람들 눈에 띌 수 있다.

정신과 의사나 상담 전문가들의 고충도 있다. 이들은 심리적인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이 고객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고객이 잘 찾아오려고 하질 않는다. 고객 만나기가 힘들다.

<카운스링 창업자인 조성식 대표(오른쪽)와 박여진 이사.>

온라인 상담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오프라인 상담과 정신과 진료의 문제점을 해결하면 시장은 충분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수요와 공급을 모두 만족시키는 새로운 시장이 나올 수도 있다. 20143, 조성식은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5월에 법인을 설립했다아내이자 정신과 의사인 박여진 이사와의 공동 창업이다. 상담전문 서비스 카운스링은 이듬해인 20154월 출시됐다.

No.1 Mental Care Platform

카운스링은 기존 오프라인 상담의 문제점인 개인정보 노출, 서비스에 대한 정보 부족과 선택의 제약, 고객 모집의 어려움 등을 해소한다.

우선 모바일 앱을 깔고 익명으로 가입을 한 다음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분야의 전문 상담사와 문자로 예약을 한다. 상담은 이후 전화통화나 영상통화 상담으로 진행된다. 문자 상담은 절대 하지 않는다. 대면 상담도 하지 않는다. 문자 상담은 서로 오해를 하기가 쉽고, 대면 상담은 개인 정보 노출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카운스링에는 200명의 상담사가 등록도 있다. 이들은 공인받는 자격증을 받은 사람들이고, 평판 조회 등을 통해 1차적으로 검증을 한 이들이다.

모든 상담사에 대해 1회 무료 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다. 몇 차례 상담사별 무로 상담을 받아보고 난 뒤 자신에게 맞는 상담사와 계속 상담을 진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서로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일단 만나서 상담을 받아야 하고 맘에 별로 안들어도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쟎아요. 카운스링 앱에서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결제는 분당, 시간당으로 모두 계산할 수 있다. 종량제도 가능하다. 분당 계산할 경우 1000원꼴로 결제가 된다. 30분 상담을 받으면 3만원인 셈이다. 오프라인 상담 서비스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이다.

지난해 7월 베타서비스를 거쳐 현재 정식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3만여명이 다운로드를 했다. 카운슬러에 대한 평판 시스템을 도입, 처음 이용하는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게 했다.

조 대표는 앞으로 원격진료가 본격화되면 심리 치료 분야가 아마 가장 유망한 분야가 될 것이라며 원격진료를 통해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의 수요를 만족시키는데 원격진료만한 분야가 없다고 말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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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아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앞으로 증강현실은 진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만큼이나 친숙한 현실이 될 지 모른다. 인터넷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1990년대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 재밌는 현상 등이 나타났던 것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하게 증강현실이 진짜 현실과 공존하게 되는 세상이 올 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런 세상을 기대하고 대비하는 서비스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스마트한은 그 중 교육이라는 분야에서 증강현실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췄다.

세상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대학시절 전자공학을 전공한 한준환은 유엔젤이라는 IT 기업에 오랫동안 다녔다. 그의 이력 중에 독특한 점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는데,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으로 했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 보기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 그에게 이런 결정은 우연이나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닌 것 같다. 그 뒤의 행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전자공학과를 나왔지만 그는 콘텐츠나 미디어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직장 생활 중에도 엔지니어로서 일하지 않고 콘텐츠 분야에서 일을 했다.

유엔젤에서 그가 했던 것은 당시 2G폰 시절 휴대폰의 배경화면이나 벨소리를 공급하는 일을 했다. 통신사나 휴대폰 제조업체가 그가 맡은 업무의 고객사였다. 콘텐츠나 서비스 관련 리뷰를 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기도 했단다. 게임퍼블리싱에도 투입됐다. 그야말로 대기업을 상대로 납품 업무를 하는 것에 잔뼈가 굵었다.

그런 시간이 8년 정도 흘렀다. 콘텐츠를 납품하는 게 아니라 직접 기획해서 만들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왕이면 몸이 불편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뭔가 만들면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그를 창업으로 이끌었다.

어느 날 스위스에 여행을 갔는데 유람선에서 할머니와 아이들이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는 것을 봤어요. 가위바위보 게임이라는 게 참 누구나 할 수 있쟎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장애인이 하기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놀이에서 시작됐다. 그는 한국에 들어와 가위바위보 게임 관련된 특허를 찾아봤다. 삼성과 SK텔레콤 등 대기업들이 몇 개의 특허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제스처를 이용한 특허는 없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는 방식에 따라 가위바위보가 정해지는 방식이었다. 게임으로 시작하지만 제스처를 이용해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란 게 그의 구상이었다.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활용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20127월 그는 이 아이디어를 갖고 성남시 시민 창업 경진대회에 나갔다가 상금을 받게 된다. 유엔젤을 나와 창업을 준비하고 있던 그는 20131월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창업을 했다. 스마트폰 시대의 스마트한 서비스와 콘텐츠 제작소가 되겠다는 마음에 회사 이름을 스마트한으로 지었다.

전자책에 증강현실을 입혔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은 다 좋은데, 돈을 벌기 힘들 수가 있다. 한 대표는 장애인을 위한 사업을 하면서도 수익성을 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콘텐츠 사업 중에는 전자책이 그나마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분야로 여겨졌다.

창업을 하고 2013년부터 해외도서전시회를 쭉 나갔어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대표적이죠. 본래는 해외의 전자책 트렌드 등을 보기 위해 나간거였어요. 그런데 다니다보니 책에는 본질적으로 언어의 한계가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되더군요.”

글로벌한 사업을 하고 싶었던 그로서는 언어의 한계에 갇혀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도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다니면서 색을 칠하고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만들어가는 책, 이른바 컬러링 북이 시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거면 언어 장벽 없이 글로벌 서비스를 할 수 있겠다 싶었죠.”

스마트한은 지난해 1224일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꼬마버스 타요 컬러링 세계여행을 출시했다. 증강현실(AR) 기능이 연동된 컬러링 포스터와 앱으로 구성된다. 포스터 형태의 큰 종이에 도시를 테마로 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로마가 테마인 포스터 컬러링에서는 로마 시내 곳곳을 다니며 만날 수 있는 유적 그림과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꼬마버스 타요 캐릭터가 함께 그려져 있다. 어린이들이 마치 색칠공부 하듯이 그림에 색칠을 하고 앱을 실행해 그림에 갖다 대면 타요가 어린이들에게 로마의 주요 유적들이나 유명한 관광지를 설명해준다. 아이들이 실제로 칠한 색 그대로 구현이 되기 때문에 재미도 있고 아이들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해준다는 설명.

포스터 상품은 오프라인 서점 및 온라인 채널에서 구매가 가능하며 앱은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다. 현재는 안드로이드 버전만 출시된 상태이고, 아이폰 앱스토어 버전은 올 2월에 출시될 예정이다.

향후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더욱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추가할 예정. 색칠한 범위에 따라 점수를 획득하고 숨은 캐릭터를 찾을 수 있는 기능성 게임도 제공할 계획이다.

확실히 현재 나온 포스터와 앱 만으로도 어린이들에겐 충분히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색을 칠한 그림이 움직이고 얘기를 하는 모습이 어린이들에겐 확실히 통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사이즈의 포스터가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예를 들어 꼭 포스터 형태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폰과 연동해 증강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노트 사이즈는 어떨까. 타요 외 다양한 캐릭터도 필요할 것 같다. 이용하기에 상당히 번거롭다는 것도 넘어야 할 벽이다. 포스터를 구매해야 하고 앱을 다운받아 실행해야 하는 이중의 장치가 돼 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어려움이야 감수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교육적인 측면의 효과는 아직은 미지수다. 다만 상당한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는 정도다.

한 대표는 시중에 다양한 컬러링 상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초대형 사이즈 포스터에 증강현실 애니메이션 기능까지 연동된 상품은 전 세계 최초라며 전 세계 도시 이미지를 통해 관광상품화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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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과 떨어져 있을 때, 특히 자녀들이 야외에 있거나 이동 중일 때 부모라면 누구라도 자녀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휴대폰을 사 주기도 하고, 수시로 연락도 하지만 아이들이란 원래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트래블 가디언은 여행중인 자녀들의 안전을 확인하고픈 부모와 선생님의 마음을 겨냥한 서비스. 자녀나 혹은 자신이 보살펴야 할 사람이 안전한 곳에 있는지 확인하는 데 최적이다. 여행이나 멀리 떠났을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 활용도를 충분히 넓혀나갈 가능성이 있는 트래블 가디언의 창업자들을 만났다.

가장 중요한 안전이 비어있다!

트래블 가디언의 창업자 3인방(조재현, 원희재, 박지환)은 브레이브이노베이션이라는 IT 회사에서 만났다. 박지환은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이미 한 차례 소개한 바 있다. 일흔아홉번째 스토리로 전했던 위시앤위시(http://limwonki.com/515)의 창업자 겸 대표이사였다. 당시 박지환 대표는 위시앤위시 회사를 매각하고 브레이브이노베이션에 들어갔다.

박지환에 앞서 조재현은 브레이브이노베이션이 들어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었다. 조재현은 명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LBS 텔레메틱스 회사에 입사한 뒤 이후 IT, 모바일, 광고, UX컨설팅/에이전시, O2O 회사 등 다양한 회사를 거쳤다.

브레이브이노베이션은 2013년에 소리바다로부터 외주를 받게 된다. UX디자인과 관련된 컨설팅이 주제였다. 당시 소리바다 개발총괄책임자였던 원희재는 브레이브이노베이션에 일을 맡기고 카운터파트너로서 함께 일을 하다가 이들이 하는 일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원 희재가 아예 회사를 옮기면서 세 사람의 만남이 완성됐다.

세 사람이 함께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조재현 대표에서 비롯됐다. 조재현은 자녀들이 수학여행을 가거나 멀리 나갔을 때 안전한지 확인하고 싶어도 확인할 방법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업 아이템의 출발이었다. “애들은 전화를 잘 안받쟎아요. 사실 정확한 위치 파악 이전에 안전한 곳에 잘 있는지만이라도 확인되면 좋을 텐데 그게 잘 안되는 경우가 많죠.”

<트래블가디언 멤버들. 맨 앞 오른쪽이 조재현 대표.>

일때문에라도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조재현은 박지환과 원희재에게도 이런 생각을 얘기했다. ‘아빠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은 조재현의 아이디어에서 사업화 가능성을 찾았다. 무엇보다 여행 관련 각종 서비스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지만 안전 분야만큼은 비어 있다는 게 이들에겐 기회로 여겨졌다. “가이드, 예약 서비스, 숙박 및 교통 안내 등 여행 관련해서 정말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들이 나오고 있쟎아요. 그런데 안전은 비어 있어요. 정말 중요한 분야이고 점점 중요해질텐데 말이죠. 여행 중의 안전에 대한 서비스는 없어요.”

이런 아이디어를 배경으로 조재현대표는 서비스기획과 프로토타입을 만들면서 동료인 원희재와 박지환에게 서비스를 소개와 함께하자는 제안을 했다. 안전이라는 화두와 여행이라는 트렌드에 맞추면 사용자들의 불편하고 불안한 부분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린 이들은 11월 서비스를 출시했다.

여행에서 일상까지. 생활의 에스원

컨셉은 간단하다. 단체로 여행을 떠났을 때 가이드나 리더가 있기 마련인데 이들을 중심으로 일정 반경에 안전 펜스(fence)가 설정된다. 함께 동향한 여행객들이나 학생 등 동반자들이 트래블 가디언 앱을 깔고 움직이면 된다. 안전 펜스 반경 내에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벗어나면 바로 가이드 등 리더에게 알려준다. 여행사나 학교 선생님, 가이드 등이 활용하면 정말 편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일이 어디로 가는지 통제할 필요 없이 앱만 깔아 놓으면 움직임을 알 수 있어 안전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된다.

펜스를 다른 방식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리더 중심의 안전 펜스는 안전 반경이라고 하고 위험한 지역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려면 위험 반경을 설정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국가를 방문했는데 일부 지역만 여행 위험지역으로 외교부에서 방문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고 하자. 트래블 가디언을 깔면 단체 여행을 가든 혼자 여행을 가든 위험 지역 인근에 갈 때 자동적으로 경고가 울려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준다.

특정 목적지를 설정하고 이 지역 내에서만 움직이고 싶으면 목적 반경을 설정해도 된다. 예를 들어 파리 에펠탑 인근을 설정한 뒤 일행과 함께 움직이기로 하면 일행 중 누군가가 이 지역을 벗어날 때 다른 일행들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수익모델은? ‘여행자 보험이라고 조재현 대표는 말했다. 그래 여행자보험은 얘기가 된다. 여행자보험의 가입율이 국내 여행과 해외 여행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불과 8%, 해외여행 중에는 30%로 낮다. 패키지 여행은 여행사에서 가입을 하지만, 최근 개별여행, 자유여행이 크게 증가 했는데 여행자가 여행자 보험 가입에 대한 정보와 가입이 쉽지 않은 게 현실.

트래블가디언 모바일 앱에서 간편하고 즉시 가입할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여행자는 여행출발하기 전이나, 공항에서 바로 즉시 가입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저희 수익의 일부를 고객에게 리워드 하여 드리고 있습니다. 차량 블랙박스를 설치하면 자동차 보험이 할인되는 것처럼, 트래블가디언 서비스앱을 설치하고 여행에서 사용하시면 여행자보험을 할인하여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여행자는 여행 안전율을 높이고 보험 할인을 받는 혜택이 있고, 보험사는 가입자 증가, 사고율 및 손해율 감소로 수익이 증가되는 이점이 있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

해외 진출은 필수 코스다. 현재 서비스는 전세계에서 모두 사용가능하나, 한국어 버전만 오픈 돼 있다. 20162월 일본 오픈을 시작으로, 2016년 상반기에 중국, 미국, 유럽에 서비스 오픈예정.

여행에서 만이 아닌 일상으로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상 생활에서 자녀가 노인, 챙겨줘야 할 사람들의 경로를 파악하고 안전을 확인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행중 안전을 파악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가 여행과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위치 기반 서비스이기 때문에 여행 이동 경로를 체크해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과 매칭을 해 주고 여행을 다녀온 뒤 이를 한눈에 보여주는 서비스를 검토하고 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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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시력 문제로 고통을 받는 인구는 무려 45억명에 달한다고 한다. 인간의 오감 중 시력에 의존하는 비중은 90%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시력이 그저 잘 보는 문제 뿐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일일이 다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력이 이렇게 중요한 만큼 평소 눈을 관리하고 눈의 상태를 체크하는 게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병원은 고사하고 안경점에 들를 시간이 없거나, 돈이 많이 들거나,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이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다면 단순히 편의가 증진되는 정도가 아니라 어려운 이들을 돕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휴대용 검안기를 개발한 오비츠의 김종윤 대표가 217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뜻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김종윤 대표는 중3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어린 학생이 미국의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아예 자신이 몇몇 유학생 커뮤니티를 운영하기도 했다. 스포츠 행사나 각종 행사를 외부 지원을 받아 진행하기도 했다.

미 로체스터 대학 광공학 전공으로 2008년 입학한 그는 이듬해 군 입대를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제대를 한 뒤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때 그는 사실상의 첫 사업을 하게 된다. “스쿠터 쉐어링 사업을 기획했어요. 2011년이었죠. 프라이머 엔턴십에도 들어갔고요.”

그러데 그는 이 시기를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갔던 때라고 설명했다. “제가 사실 잘 모르는 분야였죠. 당시 트렌드를 좀 따라가려고 헀어요. 스쿠터 쉐어링이라. 제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사업이죠. 그냥 의욕만 앞섰어요. 그리고 뭐랄까. 정말 겉으로 보이는 것에 치중을 많이 했어요. 그럴 듯하게 보이는 사업을 하려고 한 거죠. 열심히 하기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영혼이 없이 열심히만 한 거죠.”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 이 사업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명확한 동기가 부여되질 않았다고 한다. 사실 본격적으로 제대로 시작도 못 한 채 사업을 도중에 접었다. 그리고 2012년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건강을 해치고, 마음에 상처도 입었다. 자책을 하려고 치면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터.

그래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했다. ‘본업을 열심히 하자가 그 당시의 마음가짐이었다. “공부를 해야했어요. 본업, 즉 전공인 광공학으로 돌아간 거죠. 그때의 생각은 공부 열심히 해서 바슈롬에 취직하자. 이거였습니다. 하하

본업에서 진짜 아이템을 찾다

그런데 사업가 기질이 어디 가질 않았다. 결국 사업을 해야 하는 운명이었을까. 1년여 얌전하게 수업을 듣고 학교 공부를 따라갔지만 2013년부터 다시 그는 창업 대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달라진 점이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분야가 아니라 자신의 전공이자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구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겪은 뼈저린 실패가 그에게 준 교훈이었다. 다행히 미국에 돌아와 학교 생활을 하면서 운 좋게 플라움시과학연구소(Flaum Eye Institute)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됐다. 학부 전공자로서는 특이한 경험이다. 특히 시과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윤근영 교수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아시아에서 유독 근시가 많습니다. 그런데 연구자들 사이에서 그 원인을 놓고 여러 가지 분석을 하거든요. 아직 딱 떨어지는 답이 나온 것은 없어요. 이를 위해선 다양한 사례 분석 뿐 아니라 엄청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이 데이터를 우선 습득하면 연구에 상당한 진척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창업 아이디어가 여기서 시작됐죠.”

사람들이 항시적으로 시력을 측정하고 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 분석하게 한다면 이것이 나중에 빅데이터가 됐을 때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관건은 많은 사람들의 눈의 정보를 주기적으로, 자주, 오랫동안 측정하는 방법을 찾는 것. 역시 휴대용으로 간편하게 할 수 이게 해 주는 게 최선이다. 오비츠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창업 초창기 시절의 김종윤 대표.>

그가 이런 생각을 처음 했을 때는 2013. 그때만 해도 연구소 내에서 학생 프로젝트로 시작됐다고 한다. 윤근영 교수와 대화 도중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런데 로체스터 Regional Competition’ 대회에 나가서 덜컥 상을 받게 됐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이었다. 상금은 25000달러. 미국은 각 지역사회별로 엔젤투자자들이 이런 대회를 열어 젊은 유망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거나 아이디어에 투자를 하곤 하는데 그가 그런 사례가 된 것이다. 상금이 자본금이 됐다. 윤근영 교수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로 했다. 연구소 안팎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도와줄 사람들도 모았다. 2014년이 되면서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가장 많은 정보를 가장 정확하고 가장 간편하게

그의 사업은 대단히 심플하다. 휴대용, 또는 간편하게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력 및 눈 검사 장비를 만들어내는 것. 정확하게 측정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에, 무엇보다 적당한 크기로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기술력의 응집을 보여주는 척도다.

시력만 정확하게 측정해 줄 수 있어도 쓸모가 많을 것 같은데, 그는 무려 45가지의 눈에 대한 정보를 측정하는 장비를 만들었다. 아쉽게도 아직 개발중인 제품이기 때문에 즉석에서 눈을 측정할 수는 없었다. 물론 시제품 정도는 나와 있지만 제품 오픈을 앞두고 막바지 테스트가한창이라고 한다.

김종윤 대표가 동영상으로 보여준 오비츠의 눈 측정 장비는 눈에 대한 45가지 정보를 파악해낼 수 있으면서도 한 손에 쥐고 쓸 수 있을 정도로 크기를 줄였다. 안과나 안경점에 갔을 때 시력을 재는 기기보다 크기를 훨씬 줄이면서도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오비츠는 미국과 한국에 모두 법인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는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이다. 양쪽 모두 엔지니어, 즉 개발자들이 핵심이다. 내년 1월게 알파테스트를 실시하고 3월부터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장비 자체를 대규모로 팔아서 돈을 버는 모델은 아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렌탈을 하는 업체나 개인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를 축적하면 그것이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인란 게 김 대표의 예상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MIT미디어랩의 연구팀이 주도한 EYENETRA라는 업체가 있고 보스턴대가 중심이 된 Smart Vision Labs가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PLenOptika라는 곳도 극비리에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비츠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기술력. 소형화 기술과 측정 방식에 관한 기술에서 이미 특허를 취득하고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하면서 초기부터 30만 달러를 투자받았고 한국의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퓨처플레이, TIPS, KOICA 등 쟁쟁한 투자회사 및 협력 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아냈다. 총 투자금액이 15원을 훌쩍 웃돈다.

오비츠의 제품은 단순 시력검안기가 아니다. 국내 안과병원에서는 라식 및 라섹 수술용 장비로 쓰이는 그런 수준 높은 장비를 휴대용으로 만든 것이다. 시력 측정이 중요한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활용도가 급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시력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눈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두뇌 발달, 학습력, 바른 성장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것만 잘 알려져도 수많은 잠재 고객들과 빈곤층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무엇보다 그에겐 자신이 사업을 하는 이유, 동기,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찾은 것이 중요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오비츠의 회사 표어가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Our vision is your vision.’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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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열정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꿈과 비전을 설명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들었다. 그는 확실히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같았다. 될 때까지 계속 해 보는 것.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것. 그가 사는 세상은 이런 세상이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왜 알토스벤처스가 이 회사에 투자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에이프릴의 서경미 대표다.

한국은 너무 좁다. 내 무대는 세계

그의 전공은 호텔경영학. 학교는 미국 라스베가스에 있는 네바다주립대를 나왔다.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교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한 전공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대학 졸업에서 큰 의미를 찾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졸업을 한 것은 그 나름대로 부모에 대한 효도의 일환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미국 학교로 간 이유를 물었다. “그때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한국은 너무 좁은 나라라고. 한국 사람들은 왜 미국에서도 코리아타운에 몰려 살까. 더 넓은 세계를 향해서 움직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 보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으로 미국에 가서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찾아 다녔던 학생 서경미. 미국 여성들, 특히 흑인 여성들을 위한 네일아트가 사업이 될 것 같았다고 한다. 뭔가가 보이면 즉각 시작하는 것이 서경미 대표의 특징이다. 즉시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네일아트 아이템을 들여와 미국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갖고 있는 돈 2만 달러를 몽땅 투자했다고 한다. 네일아트 관련 아이템은 날개돋힌 듯이 팔렸다. 불과 6개월 만에 현지 업체에 70만 달러를 받고 회사를 매각했다. 사업을 좀 더 하면 더 회사를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시엔 학교를 다녀야 하는 문제도 있었고 현실적으로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그 사업에서 제 운은 거기까지였던 거죠. 그 뒤 그 회사는 더 많이 성장해서 지금도 잘 되고 있어요.”

학생 신분으로선 짧은 시간에 상당히 많은 돈을 번 서 대표. ‘하게 회사를 정리했지만 얌전하게 학교에서 학업에만 몰두할 리 만무했다. 학업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그는 틈틈이 사업을 병행하면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거점은 미국에 두고 있었지만 그는 사업 기회가 세계 시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 브라질, 한국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사업 기회를 찾았다. 주로 패션, 주얼리 쪽을 했단다. 어렵게 생각하질 않고 일을 벌였다. 라스베가스에 오는 사람들이 도박을 하러 오기 때문에 행운을 중시한다는 걸 간파하고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크리스탈에 넣어서 간단한 소품, 액세서리로 만들어서 판매했다. 매장을 30개나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면 할수록 그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는 한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하기엔 제약이 너무나 많았다.

무엇보다 그는 결국 한국을 기반으로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 시장에서 도매업 경험은 있었지만 한국을 기반으로 하기엔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 온라인 쇼핑몰이나 플랫폼을 중심으로 패선 및 주얼리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한국의 핵심 상권인 동대문 업자들이 좀처럼 문을 열지 않는 것도 그로 하여금 미국을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됐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하는 것이다. 그는 결국 한국에 들어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장사되는 일이라면 지구 끝까지 간다

전 세계에서 의류 도매와 생산 모두가 되는 곳이 어딘지 아세요?”

서경미 대표의 느닷없는 질문. 글쎄. 내가 알 턱이 없다.

한국, 중국, 미국, 브라질, 인도 이렇게 다섯 개 나라가 전붑니다.”

그 정도 밖에 없나요?”
그게 다에요. 다른 나라들은 도매업은 하지만 생산을 못하거나 생산만 하고 도매 능력이 안되거나 그런 형편입니다. 그런데 이 중 인도를 제외한 4개 국가에 한국인 네트워크가 광범위하게 구축돼 있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유독 한국인 네트워크가 구축된 것이?”

한국이 예전에 어려웠던 시절에 외국에 이민을 가서 주로 세탁소를 차리거나 봉제업 분야의 일에 종사를 했어요. 이 사람들이 결국은 세탁소로 부를 축적하고 봉제업에서 성공해 현지 공장을 세우고 이러면서 의류 분야의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된 거죠.”

서 대표 덕분에 역사 공부까지 했다. 그가 유독 중국과 미국, 브라질을 오가면서 사업을 벌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동대문을 잡으면 되겠다.’

이게 서 대표의 생각이었다. 전 세계 주요 거점에 한국인 네트워크가 있다면 그 네트워크의 핵심은 동대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서 대표는 동대문 경험이 없었다. 견고한 이들의 네트워크를 뚫고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동대문에 들어가서 B2B 사업을 해야겠구나. 그의 결론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쉬지 않고 일을 벌여오셨나요?”

쉴 새 없이 생각하고 일을 벌이고, 계속 새로운 시장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이 신기해 물었다.

너무 재밌어요.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에요. 돈을 얼마를 벌어야겠다. 이런 목표를 정한 적은 없었어요. 그냥 사업 기회를 찾아서 물건을 팔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는 게 너무 재밌었죠.”

그의 아버지는 사업가라고 한다. 역시. 그 피가 어디 가질 않는다.

어쨌든 기회를 찾아 세계를 누비던 서 대표는 한국에 들어와 동대문에서 정착했다. 의류 도매업자로 일을 시작해 도매 매장 5, 소매 매장 1개를 열었다. 중국 광저우에도 매장을 여는 등 꾸준히 확장을 해 나갔다. 3년간 동대문을 팠다. 동대문을 알았다 판단한 그는 드디어 2012년 에이프릴을 설립했다. 진짜 해보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동대문의 의류와 패션을 전 세계를 상대로 판매하는 것이다. 개인사업자로 일해온 그에겐 법인은 처음이기도 했다.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개인 사업자로 일하는 것과 법인을 차리는 게 엄청난 차이가 있네요.”

속칭 장사만 하다가 법인을 차리고 나서 당황했다고 한다. 조직 관리도 해야 하고, 사람도 잘 뽑아야 하고, 신경 쓸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아 사업이 혼자서 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런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그의 구상은 처음부터 명확하고 심플했다. 동대문의 의류 패션 매장의 상품들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 예전에도 온라인으로 상품을 판매해봤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우선 플랫폼이 되야 했기 때문에 사이트 구성이 훨씬 더 치밀하고 완성도가 높아야 했다. 그런데 이건 그가 잘 하는 분야가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외주에 맡겼는데 여기서 탈이 났다.

제가 원하는 수준의 사이트가 나오질 않더라구요.”

사실은 수준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류도 많았고, 필요한 기능 자체가 제대로 작동이 안됐다. 안되겠다 싶어 사람을 뽑았다. 솜씨 좋은 개발자라고 해서 영입해서 일을 맡겼는데, 이게 웬걸. 이번에는 사람이 배신을 했다.

그냥 믿고 다 맡겼는데, 뽑아 놓은 개발자가 어느날 사이트는 공중분해시켜놓고, 사이트 개발 과정에 얻은 핵심 콘텐츠와 코드 등을 다 들고 사라져버렸어요.”

계속 눈을 반짝이며 얘기하던 이 순간에만 그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역시 대표가 잘못한 일인 걸. 그리고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꼈단다. 좋은 파트너가 있어야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지나고 보니 모든 게 다 인사 사고였네요. 사람 잘못 뽑은 제 탓이죠. 그래도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제 소신은 변함이 없습니다.”

<에이프릴 서경미 대표(가운데)와 직원들. 아래에 놓인 비닐봉투에는 동대문 의류 시장에서 촬영을 위해 가져온 옷들이 담겨 있다. 사진-에이프릴>

결국 2012년에 법인 설립하고 사이트를 세 번이나 뒤엎었다. 그리고 네 번째 만든 사이트가 링크샵이다. 링크샵을 만들면서 서 대표는 멤버를 대폭 보강했다. 우선 다음커뮤니케이션 출신의 전문가를 영입했다. 올해초 합류해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고 있는 추연진 이사다. 웅진에서 M&A 업무를 하던 오영지 이사도 합류해 회계, 재무, 조직관리 등을 맡고 있다.

알리바바 잡는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차근차근 일은 진행되고 있다. 동대문 상권을 중심으로 글로벌 생산자 네트워크를 연결해 한국의 에프릴이 전 세계에 인터넷 판매하는 그림이다. 멤버를 보강해 제대로 된 사이트를 오픈했고 11월에는 알토스벤처스로부터 투자도 잘 받았다.

동대문 상권에서 팔리는 제품의 규모가 얼마나 될까. 2만 개나 되는 동대문 상인들의 판매 규모는 연간 11조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물론 이 곳에서는 대부분의 매출이 현금으로 발생하는데다 상당수 물량이 외국인 관광객 등 해외로 판매되기 때문에 정확한 시장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

하여간 시장 규모는 충분히 된다. 그의 목표는 동대문이 곧 링크샵이 되는 것. 링크샵에 입점한 동대문 매장은 전 세계를 상대로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사이트내 개별적인 홈페이지나 고객 관리 등도 가능해진다. 6월에 오픈했는데 1100개가 입점해 있다. 에이프릴은 내년까지 3000개 매장 입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6월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뒤 거래액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6월 거래액 대비 9월 거래액은 5배에 달한다.

동대문 시장이 이대로 있다간 중국에 먹힐 것 같아요. 중국이 예전에는 하청공장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생산, 도매, 디자인 등 생산과 판매의 전 과정을 다 하고 있거든요.”

서 대표의 구상은 동대문 상권을 살린다는 대의명분도 있다. 동대문 시장은 전 세계에서 밤을 꼴딱 새가며 영업을 하는 거의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내수가 부진하고 대부분 중국 등 해외 바이어들이나 관광객들의 구매력에 의해 돌아가는 곳이다. 링크샵은 낮에 잠깐 쉬고 밤새도록 영업을 하는 이곳 매장으로부터 옷을 받아가서 하루종일 촬영을 돌린다. 이렇게 촬영을 한 옷 등 패션제품들을 링크샵에 올려놓고 매장들이 영업을 하기 전 저녁 시간에 다시 돌려준다. 링크샵만이 가진, 업체들과 상생할 수 있는 장점이다.

동대문 시장의 패션 제품들이 모든 시장에서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동남아에서는 잘 통하지만, 미국에서는 잘 안통한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제품은 따로 있다. 반면 유럽 관광객들에게는 반응이 좋다. 그래서 에이프릴은 한국의 동대문 시장, 미국의 자바 시장, 그리고 중국의 상인들로 셀러(판매자) 네트워크를 확대하면서 전 세계 고객들의 다양한 수요를 맞춰간다는 계획이다. 패션에서 시작해 주얼리, 기프트 등 아이템도 확장한다.

암요 알리바바 잡아야죠. 이왕 시작했는데, 세계적인 회사 되야죠. 패션하고 주얼리는 저희가 잘 알아요. 알리바바 잡아야죠. 할 수 있어요.”

서 대표는 알리바바 잡아야죠를 계속 되뇌었다. 주문처럼. 나오는 길에도 그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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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전했다. 20119월 스타일쉐어가 처음 공개됐을 때 봤던, 소탈하면서도 똑 부러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당시 학생 창업가에서 이제는 어느덧 5년차 벤처기업 CEO로서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이 부여됐을 뿐이다. 학생 창업가가 시작한, 젊은 여성들의 패션 정보 공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시작된 스타일쉐어는 커머스와 미디어의 역할로 기능을 확대하며 플랫폼화하고 있다. 이제는 어느덧 학생 창업의 귀감으로 손꼽히는 스타일쉐어 윤자영 대표를 만나 근황을 들었다. (윤자영 대표의 과거 창업스토리는 한국의 스타트업-(58)스타일쉐어 윤자영 대표)

올해 가장 큰 변화가 뭔가요.

매출이죠! 매출이 올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20119월 스타일쉐어를 처음 런칭했으니까 이제 어느덧 만 4년 지났어요. 그런데 사실 작년까지는 매출이 전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매출이 작년에 처음 났지만 고작 1000만원 정도?(웃음) 연 매출 1000만원 했는데 올해는 그것의 30배 이상 성장한 것 같아요. 그래봤자 이제 매출이 막 시작한 단계긴 하지만요.”

매출은 주로 광고에서?

아직까진 그렇습니다. 매출은 주로 광고에서 나오고 있어요. 작년에 광고 처음 시작했고 올해 본격화됐어요.”

그럼 그 동안은 거의 매출 없이 어떻게?

투자자금으로 계속 버텼죠. 처음에 프라이머에서 받았고 이재웅 대표와 슈프리마에서 시리즈A투자를 받았어요. LB인베스트먼트에서 작년에 투자 받았던 게 마지막이었는데요, 내년쯤 다시 투자를 받아야할 것 같습니다.”

광고 외 다른 매출이 있나요?

최근에 커머스를 시작했어요. 아주 조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대화 도중 윤자영 대표는 커머스가 작동하는 화면을 직접 보여줬다. 화면에는 패션 관련 정보와 아기자기하고 예쁜 사진들 속에 실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페이지가 함께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만큼 아직 비중도 작고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정말 조심히 시작한 게 확실히 티가 나네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을 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스타일쉐어는 10대후반에서 20대 여성들이 정말 모여서 즐겁게 정보를 공유하고 즐기는 곳인데 커머스를 붙이면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죠. 다행히 아직까지는 전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네요.”

<스타일쉐어의 청담동 새 사무실에서. 이름이 각각 '단'과 '추'인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는데, 낯선 사람이 들어가서 그런지 쏜살같이 사라졌다. 스타일쉐어의 사무실 각 방에는 예전 사무실 주소가 적혀 있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어려움을, 그리고 짧은 시간에 사무실을 옮겨 다닐 정도로 성장했음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아직 BEP에 도달하진 않았죠?

네 아마 내년 상반기쯤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현재 회원 수는 200만명이고, 스타일쉐어 MAU(월평균사용자 수)50만명, 하루 평균 15만명의 유저들이 순수하게 방문해서 쓰고 있어요. 커머스는 두 달 전부터 시작했는데, 매출이 나오면서 매출액이 비용의 70% 가량을 커버하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BEP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투자는 필요해요. BEP를 넘기고 나서 이익이 더 생기면 누적이 되겠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지금 충성도 높은 사용자가 늘어나고 매출이 늘어날 때 서비스를 더욱 확장하고 글로벌 서비스를 하려면 확실히 투자가 필요합니다.”

외국 사용자도 있죠?

아직 대부분의 고객은 한국에 있어요. 지금 유저의 90%가 한국이고 그 밖에 일본과 대만에서 유저들이 들어오고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어요. 바라기는 내년 하반기에는 일본이나 대만에서 해외 결제가 가능한 모델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우리는 10대와 20대 여성 최고의 정보와 커뮤니티의 장이 되려고 하는데 국내에서만 할 필요는 없어요. 해외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모델이죠.”

말씀을 듣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멘탈이 갑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까지 창업하고 3년이 지나도록 매출이 거의 없었는데, 걱정 되지 않았나요? 엄청나게 쪼들리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은데.

글쎄요. 아마 아무것도 몰라서 그렇지 않았을까요. 제가 정말 어릴 때 창업을 한 것 같아요. 지금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당시엔 그냥 유저들이 계속 늘어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었어요. 그게 즐거워서 일을 했지 돈을 어떻게 벌고 그런 것은 별로 생각을 못했어요.”

4년전 처음 봤을 땐 창업멤버들이 전부였는데, 이젠 직원들도 많이 늘고, 조직 관리나 신경 쓸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지금 직원이 스물다섯명이에요. 많이 늘었죠? 사무실도 소풍 사무실에 있다가 압구정동 갔다가 최근에 청담동으로 옮겨왔어요.

사실 작년까지는 잘 몰랐는데, 올해 들어와서 초반기 6개월 정도, 이 정도가 창업을 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작년에 스타일쉐어는 멤버를 크게 보강했거든요. 그동안 시니어 개발자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해 다음 출신의 시니어 개발자를 CTO로 모셨거든요. 그 밖에 여러 포지션의 강력한 사람들을 모셔오면서 팀이 업그레이드됐죠.

그런데 그러면서 나 자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어요. 팀이 업그레이드 되기 전, 회사가 초창기에는 제가 기획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여러 가지 업무를 했거든요. 그런데 각 분야에 훌륭한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러면서 그분들이 기대하는 CEO로서의 모습과 내가 실제로 하는 그런 모습과의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 같았어요. 내 역할이 뭔지, 나의 정체성이 뭔지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구요.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맞추려고 나를 자꾸 바꾸려고도 해 보고 그랬는데 그러면서 처음으로 사업이 별로 재미가 없어지기도 하더군요. 사업하고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조언도 구하고 그랬는데, 결국 내린 결론은 나는 그냥 내 스타일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 외에 별로 방법이 없더라구요. 그리고 결국 회사가 잘못되면 책임은 대표가 져야 하는 거. 조직원이 점점 많아지고 회사가 커지면서 대표의 역할이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 자신의 그릇, 조직 관리 등에 대해 정말 생각이 많아질 것 같아요.”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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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침식사를 꼬박꼬박 챙겨 드십니까. 아침식사를 어떤 형태나 방법으로든 챙겨 먹으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시간에 쫓겨 쉽지 않을 때가 많고, 그러다보면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침식사를 하는게 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실제 하루 일을 시작하는데도 훨씬 좋다는 것 모두들 알고 있다는 사실. 다만 잘 실천하지 못할 뿐이다. 이는 사실 한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의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이그니스는 요즘 트렌드인 건강한 아침식사, 간편하면서도 모든 필수 건강요소를 갖춘 식사에 대한 대안을 들고 나온 회사다. 아직까지는 대안 또는 틈새 시장 정도로 여겨지지만,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생각보다 빨리 주류 시장에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 기존 간편 식사가 갖고 있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면.

창업을 위한 취업

대학 들어가자마자 창업부터 알아보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지는 않지만 어디가나 꼭 있다. 이그니스를 설립한 박찬호가 딱 그랬다. 서강대 경제학과 04학번으로 입학한 학생 박찬호는 대학 동기동창인 윤세영과 함께 이것저것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고 한다. 윤세영이 프랑스에서 산 경험이 있어서 프랑스 사정에 밝았다. 프랑스에서 한국식 스티커 사진기나 팬시문구용품이 인기가 많다는 얘길 들은 박찬호는 기계를 한국에서 프랑스로 파는 일을 하려고 했다. 프랑스로 갖고 가서 팔기만 하면 대박을 치리라 확신을 하고 있었는데, 사업자 등록이 안됐다. 현지 수입상을 만나 물건만 납품하는 방법도 찾아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 후로도 이들은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를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접는 등 시작 단계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일을 좀 배우고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알아야할 것 같구요.”

두 사람은 각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박찬호는 대우인터내셔널에, 윤세영은 대우건설에 들어갔다. 2011년초의 일이었다. 박찬호는 투자사업실에서 신사업개발 및 투자심의를, 윤세영은 대우건설 해외영업기획팀에서 해외 신시장 리서치 업무를 했다.

일을 배우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종합상사 일이 재미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별로 그렇지 않았어요. 생각보다 일이 별로 재미가 없더군요. 주로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게 하루의 일과였어요.”

2014년에 박찬호는 소이렌트라는 미국의 벤처가 뜨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물에 타먹는 간편식을 제조해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기업인데,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었다. 간편식을 많이 찾고, 건강을 중시하는 트렌드를 볼 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처음에 그는 이 아이디어를 회사에 제안했다고 한다. “종합상사에서도 할 만한 아이템이 아닐까 싶었는데요, 거절당했어요. 그럼 아예 나가서 내가 해보자 이렇게 생각했죠.”

때마침 대기업에 들어가 친구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던 윤세영도 찬성해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 회사를 나오게 된다. 20145월의 어느 날이었다.

전국 공장 50곳을 찾아다니다

두 사람은 이그니스(EGNIS)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열정이라는 뜻이다. 박찬호 대표가 회사를 나온 것은 20145월인데, 법인 설립은 201410월에 했다.

이그니스의 사업아이템은 식사 대용식이었다. 식사 대신 먹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한국적인 상황에 맞아야 했다. 기존 선식 시장이 성장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보면, 먹기 불편하거나 별로 맛이 없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소이렌트가 뜨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 제품을 직접 구매를 해 봤다고 한다. “2주일이나 걸려서 도착한 소이렌트의 간편식은 근데 너무 맛이 없더라구요. ‘왜 이런 걸 먹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소이렌트는 기본적으로 음식 먹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착안한 서비스였다. 바쁜 현대인들이 매번 식사를 할 때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고,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게 비합리적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영양소를 고루 갖춘 분말 형태의 식사 대용식을 물에 타서 먹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그니스의 첫 제품 랩노쉬(Lab Nosh) 역시 기본 컨셉트는 비슷했다. 다만 미국은 인구도 많고, 문화적 특성도 있기에 매 끼니 이렇게 먹을 수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한국은 상황이 엄연히 다르다. 아무래도 아침 식사 정도를 대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준비 기간 중에 이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를 찾는 것. 재료를 준비해다가 이들이 직접 물건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이들을 대신해 생산해줄 업체가 최우선적이었다. 아울러 제품이 식품이기 때문에 영양소와 식품영양학적 검증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내부에 필수적이었다. 다행히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던 김지훈이 제품개발자로 합류해 두 번째 문제는 해결됐다. 문제는 첫 번째.

“OEM 업체를 찾아다니던 시절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운전만 하루에 15시간씩 하기도 했구요.”

박찬호 대표의 말이다. 어찌 보면 실체도 없는 회사 명함을 들고 간 새파랗게 젊은 청년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요구에 맞춰서 분말가루를 제작해야 하는데, 그닥 쉬울 것 같지는 않은 일이다. 상호간에 요구 조건이나 원하는 것이 맞아야 하는 문제도 있다.

<이그니스 사무실에서 회사 제품 랩노쉬를 손에 들고 포즈를 취한 회사 임직원들. 맨뒤 오른쪽부터 박찬호 대표, Operating Manager 이윤주, Executive PR Director 주소희 , Designer 이민진, COO 이준영, CSO 윤세영, CTO 김지훈.  -사진제공 이그니스 >

그래서 박찬호 대표와 윤세영 이사는 전국을 다니면서 50여 곳에 달하는 식품 공장을 일일이 방문해 사장님들을 만났다. 그리고 결국 충북 제천에 있는 신영에이치에스라는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7월에는 컴퍼니케이파트너스라는 회사에서 6억원의 시드머니 투자도 받으면서 생산이 더욱 탄력을 받았다. 성분검사와 식양청 신고까지 마치고, 드디어 201510월 첫 제품이 나왔다.

간편한 건강식, 랩노쉬

첫 제품을 내놓을 때 이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시장의 반응을 보고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1033일간 진행한 크라우드 펀딩에서 크라우드 펀딩 역사상 가장 많은 금액인 13000만원을 달성한 것이다. 당초 목표로 했던 1000만원을 채우는 데는 사흘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무려 2500명이 참여해 제품을 구매했다고 한다.

시장의 반응을 확인한 이들은 곧바로 생산과 마케팅에 착수했다. 태평양물산에서 GAP 브랜드의 해외영업팀 업무를 하던 주소희 이사가 7월에 합류한 뒤 마케팅을 총괄했다.

저희는 간편식과 건강기능식, 그리고 다이어트 식품의 접점에 있습니다.” 박 대표의 설명이다. 랩노쉬는 주 타깃을 20, 30대 여성으로 하고 있다. 아침 식사 대신 랩노쉬를 먹으면서 건강도 챙기고 다이어트도 하려는 이들은 주로 20, 30대 여성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01일 하루 158만원이었던 매출액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111일에는 558만원을 찍었다. 딱 한달 만에 매출액이 3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구매자 가운데 20%는 재구매자. 현재 랩노쉬 제품은 3가지 맛으로 나온다. 씨리얼 맛과 요거트 맛, 그리고 쇼콜라 맛.

시험삼아 이 제품을 물에 타서 먹어 봤다. 확실히 맛은 좋았다. 먹기도 간편하고 먹은 뒤 뒤처리도 깔끔했다. 먹은 후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만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먹고 난 뒤 약간 달다는 느낌이 강했다. 일주일 정도는 문제 없겠지만 계속 먹을 수 있으려면 좀 더 다양한 맛의 라인업을 갖추거나, 아니면 좀 더 심심한 맛을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간편한 것이 최대 장점이고, 영양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는 것도 상당한 장점이 될 터. 편리함과 건강을 모두 챙기려는 이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이보다 더 큰 목표를 갖고 있다. 단순히 틈새 시장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식사 대체품을 만들려는 것이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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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엄청난 양의 동영상을 본다. 자신도 모르게. 소셜네트워크에 접속해도, 이메일을 받아도, 친구와 메신저를 주고 받으면서도, 과거 텍스트와 스틸 사진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던 자리와 시간을 이제는 동영상이 가져가고 있다. 이 분야엔 벌써 고수들이 넘쳐나고 있다. 쉽게 흉내내기 힘든 끼로 무장한 이들이 마치 일상인 듯 무심하게 찍어서 올려놓은 동영상에 순식간에 수백만명이 몰려온다. 이들 자체가 이미 미디어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과 연합군을 구성, 새로운 미디어 세계를 꿈꾸는 이들도 있다. 루키스트엔터테인먼트는 그런 회사다.

결국은 자기 길을 찾다

확실히 환경의 영향은 무섭다. 계속 접하고 주위의 소식을 듣다보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오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생겨나기도 한다.

루키스트엔터테인먼트의 유한민 대표가 대학(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04학번)을 졸업하던 무렵, 벤처 열풍이 뜨겁게 일고 있었다. 2011년부터 그는 그런 현상을 목도하고, 2012년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취직했다. 인성정보통신이라는, 통신장비 회사였다.

본래는 판도라TV같은 그런 곳에 취직하고 싶었어요. 그런 분야의 회사에 지원도 했는데, 떨어졌죠. 그래도 인성정보에 합격해서 잘 다닌 셈이죠.”

2013년 여름까지 다니면서 그는 고민했다고 한다. 자신이 꼭 일하고 싶던 회사는 아니었지만, 일하면서 배우는 것도 있고 할 만 하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관심사는 속일 수가 없다. 평소에 눈여겨 보고 관심을 가졌던 일에서 진로가 바뀌게 된다.

제가 원래 트위터, 블로그, 카페 이런 서비스들이 처음 나올 때 아주 초기부터 활동했던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트위터도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을 많이 끌어모았죠. 제가 봐도 인터넷에서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인성정보통신에 다니던 201210월의 어느 날 그는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데 내 친구가 좋아했다는 이유로 타임라인에 뜬 동영상을 본 것이다.

? 이런 식으로 인기를 끄는 동영상이 많이 나오겠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즉시 동영상을 올리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실험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름은 돈의 맛. 처음엔 경제 콘텐츠를 올리려고 했단다. 자신에게 뭔가 남는 게 있고 공부가 되는 콘텐츠를 올려놓으려는 생각때문이었다고. 그런데 재미가 없어서 바로 접고 그 다음부터는 웃기고 재미있는 영상만 올리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방문자 수가 금새 10만명이 채워지더군요. 웃기는 동영상 올리고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공유하고 이런 게 너무 재밌어서 나중에는 회사에 가서도 이것만 하고 그랬어요.”

<해외의 주요 MCN 사업자들>

결단의 시간이 왔다.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승진하고 나면 이젠 정말 다른 일을 하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고, 무엇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 결국 그는 본래 자신이 좋아했던, 동영상과 소셜엔터테인먼트의 세상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인성정보에 입사한 지 1년반쯤 지난, 2013년 여름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 아홉이 돼 있었다.

자체 콘텐츠를 확보하자

거창하게 일을 벌이기보다는 회사를 나오기 직전에 하고 있던 업무를 확장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동영상 올리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애드바이미를 통해 광고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실험을 해 본 뒤 바로 SNS 마케팅에 돌입했다고 한다.

동영상 분야의 피키캐스트라고나 할까요. 일종의 콘텐츠 큐레이션인데 웃기는 동영상을 올려놓고 사람들의 관심을 떠보는 거죠.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고 어떻게 몰려드나를 봐야하니까요.”

그는 이런 방식이 미디어로 성장할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단순한 유머 동영상에 라이크가 1만개 넘게 찍히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자체 콘텐츠가 있어야 해요. 외부의 콘텐츠 링크를 단순히 연결하는 거나, 기존 콘텐츠를 편집하거나 변형하는 정도로는 지속적인 사용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고 성장도 힘들다는 걸 알게 됐어요. 확실히 돈은 돼요. 하지만 상당한 비난을 감수해야 하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게다가 성장도 한계가 있다면 더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봤어요.”

<루키스트엔터테인먼트 직원들. 맨 앞 오렌지색 파카에 양 손 브이자를 한 인물이 유한민 대표.>

물론 그가 자체 콘텐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된 건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단순 동영상 링크를 걸거나 외부 콘텐츠를 편집하는 수준의 페이스북 페이지류의 모델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 경쟁마저 치열한 곳에서 똑같은 모델로 갈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럼 자체 콘텐츠를 어떻게 확보할까?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일일이 다 만들려면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떠도는 수많은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올려놓고 공유하는 일반인들에게서 해답을 찾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동영상을 제작해 만들어 유통하는,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난 일반인들. 이들은 끼는 있지만 동영상의 효과적인 유통과 지속적인 관리, 마케팅 등의 능력은 한계가 있었다. 개인 차원에서 대응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이들 중 뛰어나고 잠재력이 있는 이들을 발굴, 전속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계약을 체결하고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나가면 될 일이었다.

있는 사람 누구나 스타가 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루키스트엔터테인먼트는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한 페이스북 전문 MNC(멀티채널네트워크) 회사다. 페이스북을 택한 것은 이제 어느덧 사람들이 동영상을 조회하는 수에 있어서 페이스북이 유튜브를 앞질렀기 때문이다. 그만큼 페이스북은 동영상의 핵심 채널로 부상하고 있다. 게다가 휴대폰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콘텐츠는 바로 동영상이다.

작년에 만들어진 회사이지만 불과 얼마 안되는 시간 동안 루키스트는 37명의 외부크리에이터를 확보했다. 6월 월 조회수 총합은 6500만이었는데 내가 그를 만났던 11월말에 이미 월 조회수 1억뷰를 돌파했다고 한다.

루키스트에 올라오는 동영상은 다양하다. 유머, 뷰티, 일상공감, 패러디 등등. 별 거 아닌 것 같은 동영상이지만 올려놓으면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그걸 보고 공감을 표시하고 라이크를 누른다. 유한민 대표가 시범삼아 보여준 동영상은 분명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힘이 있었다. 뭔가 빠져들게 하는 그런 힘.

얼핏 루키스트의 사업 모델을 보면 연예매지니먼트사의 온라인 동영상 특화 버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키스트는 얼짱 또는 끼가 충만하고 화면앞에 서면 더욱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는 그런 일반인(연예인이 아니라는 뜻)들을 발굴해 이들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이들의 채널을 관리한다. 이들은 루키스트와 계약을 체결하면 루키스트를 통해서만 동영상을 공유하게 된다. 연예매니지먼트사의 사업 모델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이들의 동영상이나 채널을 통해 광고를 하고 커머스를 연결해 수익을 만들어내는 것도 유사하다. 다만 루키스트는 온라인과 모바일, 특히 페이스북이라는 SNS에 특화된 회사라는 점이다.

결국 얼마나 끼 있고 유망한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확보하고 이들을 페이스북을 통해 널리널리 확산시키느냐가 이 회사의 성패가 달린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연말까지 콘텐츠 크리에이터 숫자를 50명으로 늘리고 내년에는 100명으로 확대한다. 페이스북 뿐 아니라 카카오스토리, 아프리카TV, 유튜브 등 채널도 확대하고 있다.

매출도 순조롭게 늘어나고 있다. 뷰티 관련 동영상 등 동영상 콘텐츠에 따라 연관된 상품을 연계해 판매하는 방식인데, 올 여름 12일 동안 진행해서 매출액이 1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실제로 루키스트에서 보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동영상을 보노라면 상품 매출과 직접적인 연계를 하기가 용이해보인다. 그저 일상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고, 화장품 등 특정 상품을 쓰는 것을 보여주는 일견 평범해보이는 동영상이지만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사람들도 그것 때문에 모여드는 것이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유튜브에 올리고 광고하는 것에 비해 저희와 같은 멀티채널네트워크를 이용하면 절반도 안되는 비용에 더 큰 효과를 올릴 수 있거든요. 거기에서 비즈니스의 기회가 있는 겁니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사람을 모으는 재주를 지녔던 독특한 인물인 유한민.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 잘하는 곳에서 자신의 특성과 딱 맞는 사업을 찾아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말처럼 이제 콘텐츠 개인 창작의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이 자유분방한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넘쳐나는 끼를 유감없이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한 경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그는 루키스트라는 이름으로 그 전쟁에 뛰어들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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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적인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벌써 10년 가까이 알아왔건만,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어요?’ 뭐 이런 인사도 별로 필요 없다. 처음엔 약간 놀랐을 법도 하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마치 매일같이 본 사람을 대하듯이.

그는 그런 스타일이다. 겉치레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그냥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날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바로 시작한다. 그날 날씨가 어떻든, 오랜만에 만나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왔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괜히 간보지 않고, 거침없이 하고 싶은 대화를 바로 나누는 것. 넥슨 창업자이자 이제는 엔젤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상범 전 넥슨 이사를 만나 간만에 수다를 풀었다. 이번에는 주로 그의 근황에 초점이 맞춰졌다.

<김상범 넥슨 공동창업자와 함께 대화를 나누던 중 커피숍 직원에게 부탁해 찍은 사진. 전혀 닮지 않은 외모인데, 표정이 묘하게 닮은 듯 나왔다. >

요즘 투자를 많이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아예 전문적인 투자 회사를 차려서 하지는 않으시구요?

사람들이 저한테 종종 물어보곤 합니다. ‘왜 직접 게임 회사를 차리지 않으세요? 새로운 게임 업체 하나 하지 않으시겠어요?’ 뭐 이런 질문이죠. 넥슨이라는 게임회사를 창업한 것처럼 새로운 게임 업체을 창업하지 않느냐는 것을 계속 물어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경험은 사실 이미 오래된 경험입니다. 예전의 경험이죠.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경험의 차원이 다르다고나 할까. 시대에 따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한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종종 예를 드는 것 중 하나가 이런 게 있어요. 예전에 바람의 나라 게임을 개발할 때였는데, 일본의 모 대형 콘솔 게임업체 사람들이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개발중인 게임을 보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런 거는 일본에서, 특히 우리 같은 게임 업체에서 돈 조금 들이면 다 살 수 있다. 다 쓸어 버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목에 힘 엄청 주면서 말이죠.

하긴 그들이 볼 때 게임이 얼마나 형편없었겠어요. 그래픽도 좋지 않고 게임 움직이는 것이나 여러 가지로 한창 발달해 있었던 콘솔 게임에 비해 별 볼일 없어 보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온라인 게임에서 어떤 성적을 냈을까요.”

온라인게임에서는 대부분 실패했죠.

사실 온라인게임이 그렇게 급성장하고 많은 실적은 낸 것은 그래픽이 화려하고 콘솔게임보다 게임성이 훨씬 더 뛰어나고,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용자들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었어요.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결국은.

콘솔게임업체들이 온라인게임이 뜨는 것을 보고 원인을 분석해봤다고 합니다. ‘아 사용자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온라인으로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구나.’ 이런 결론이 나왔죠. 그래서 이들이 콘솔게임에 채팅방을 만들고 대화가 가능하게 했어요. 그러면 콘솔게임이 온라인 게임 영역까지 먹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죠. 그냥 채팅창 흉내 낸다고 따라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의 수준이 아니었는데, 그걸 알기 힘들었어요.

모바일 게임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앵그리버드가 뜨는 걸 보면서 많은 온라인게임업체들이 고민을 했습니다. 이런 걸 만들어야 하나. 그런데 만들어서 앱이 수백만 다운로드가 되도 연 매출이 20억원? 뭐 이런 수준으로 예상이 됐거든요. 그런데 이걸 만들려면 회사 내 핵심 개발자 몇 명을 투입해서 새로 시작해야 하는 거에요. 성공 가능성도 낮은 데 말이죠.

사실 예전에 잘 나가던 온라인 게임들은 여름방학 때 이벤트 창에서 경험치를 2배 드립니다 라는 문구 하나만 바꿔 넣으면 매출액 몇백억, 최소 몇십억이 달라지곤 했어요. 그런데 1년 내내 해서 고작 매출 20억 하려고 핵심 개발자를 전부 투입한다고? 그건 기존 게임업체들이 하기 힘든 거죠 그래서 모바일 게임에서도 결국 새로운 회사들이 들어가서 잘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투자를 할 때는 그래도 과거의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나요.

글쎄요. 게임 개발 뿐 아니라 투자의 영역에서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선데이토즈 초기 시절에 사실 투자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기회를 놓쳤죠. 이유가 있었어요. 소프트뱅크 벤처스가 투자 검토하고 그럴 때였는데 밸류 300억원 얘기 나오고 그럴 때였죠. 그런데 내가 만들면 50억원이면 되는데, 좀 비싸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니까 투자를 못하겠는거요.

그런데 이건 사실 바보같은 생각이죠. 제가 다른 예를 들어 볼께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제빵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하고 같이 길을 걸어가다가 내가 배가 고파서 거리에 있는 빵집에 들어가서 빵을 2000원을 주고 샀습니다. 그런데 제빵하는 사람이 자기가 만들면 300원이면 된다고 하면서 빵이 비싸서 사 먹을 수가 없다고 해요. 그러면 나는 이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죠. ‘아니 내가 지금 이 순간에 빵이 먹고 싶고, 좋아하는 빵을 마침 팔고 있고, 그 가격이 내게 비합리적이거나 가치에 비해 비싸다고 판단되지 않으면 그냥 사서 먹는 거다이렇게요. 사실 이게 맞는 말 아닌가요?

그런데 나도 이런 걸 알면서 내가 예로 든 그 제빵사가 한 말이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투자도 해 보니 제가 아는 분야에 투자한다고 돈을 벌고, 투자 결과가 좋고 그런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투자는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회사에 돈을 맡기고 나는 LP로 들어가고 그런 게 실적이 더 좋았어요. 내가 안다고 착각하고 투자한 분야는 별로 안 좋았죠. 업종 전혀 모르지만 회사 대표 보고 사람이 좋은 것 같아서 투자한 곳에서 수익이 더 잘 나왔어요.”

(참고로 그는 본엔젤트벤처파트너스, 스파크랩스, 케이큐브벤처스, 퓨처플레이, 포메이션8 7개 투자회사에 LP로 참여하고 있다. 2012년초 넥슨을 공식적으로 떠나면서 대부분의 지분을 정리했고 지금은 주로 엔젤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직접 투자한 스타트업은 20, 투자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한 회사는 최소 100개가 넘는다.)

결제 얘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온라인이나 모바일 결제가 많이 편해졌다고 하는데, 사실 전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제약도 많고, 아직도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왜 이럴까요.

지금 한국에서 모바일결제쪽은 너무 지지부진해서 한심해 보일 정도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알리페이를 쓰게 될 때가 와야 정부나 업계가 정신을 차릴 것인가. 잘못하면 온 국민이 알리페이로 결제하게될 지도 몰라요. 중국 은행에 계좌 터놓고 말이죠.

한국은 공인인증서와 액티브엑스가 모바일 결제 분야의 발전을 다 막아버렸어요. 공인인증서를 이용한 이런 방식이 15년전 처음 등장할 때는 결코 나쁘지 않았죠. 나름 훌륭한 방식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뒤쳐져 버렸어요. 사실 해커들의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뚫는 사람들의 기술은 발전하는데 한국에서는 15년 전의 기술을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는거에요. 그리고 그냥 그걸로 업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거죠.

사실 서비스를 만들면 거기서 고객의 데이터를 보호하고 결제를 안전하게 하고 이런 것은 다 업체들의 책임이에요. 왜냐? 그들은 고객의 결제와 거래로 인해 이익을 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부가 15년 전의 방식을 규제로 해 놓고 업체들에게 이걸 따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업체들이 그것만 잘 따라하면 고객 DB5000만개가 털리건 상관하지 않는다. 우린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어. 정부는 정부대로, 우리는 최선의 방식을 썼어. 어쩔 수 없어. 북한의 소행인가? 해커들이 너무 뛰어난 걸 어떻게 하겠어.

이건 업체들에게 이렇게 면죄부를 줄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죽어라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안전장치를 만들어서 안전하게 서비스를 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죠.”

외국에서 아마존을 통해 결제하면 깜짝 놀라죠. 이렇게 허술하게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왜 아마존이나 애플은 그렇게 편리하게 결제를 할 수 있게끔 할까요. 그들은 그럼 고객의 DB를 다 노출하고 맨날 털리는데도 그냥 그렇게 서비스를 하는 걸까요. 그들이라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닐겁니다.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날 거에요. 하지만 외국의 정부들은 절대로 업체들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고객의 데이터를 보호하는 것은 업체들이 할 일입니다. 정부가 기준을 세워놓고 이대로만 하면 문제가 안생겨 이러거나 이것만 잘 따라하면 너희들은 아무 책임없어 이렇게 말할 문제가 아닌거에요.

애플이나 아마존은 서버 단에서, 보다 본질적인 부분에서 시스템을 지키려고 끊임없이 체크를 하고 있습니다.”

개발자 출신이시니 시스템을 잘 아실 것 같은데요.

사실 이것은 패턴을 읽어내는 문제에요. 카드사들이 국내에서 이미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해킹이나 정보를 보호한다는 것은 이런 거에요. 예를 들어 내가 쓰고 있는 국민카드가 항상 서울에서만 결제가 됐는데, 어느 날 갑자기 호주에서 결제가 됐다고 쳐요. 카드사에서는 바로 연락이 옵니다. 호주 간 거 맞냐 당신의 카드가 낯선 곳에서 결제가 됐다는 것을 확인하는 거죠. 데이터 보호도 크게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을 하기 위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노력을 하면 되는 거에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부는 옛날 기준으로 낡은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고 업체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쓰면서 서로 면죄부를 줘 버립니다. 그리고 소비자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죠.”

이메일 비밀번호를 끊임없이 바꾸라고 하는 것도 정말 이상한 일이에요.

왜 고객이 이메일 비밀번호를 계속 바꿔야 하나요. 지메일을 봅시다. 소비자한테 그런 귀챦은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낯선 IP로 접속이 되거나 뭔가 패턴이 다른 사용이 읽히면 바로 집요하게 확인에 들어갑니다. 본인이 맞는지. 이런 게 바로 업체들이 할 일이에요. 그냥 비밀번호나 바꾸라고 하는 게 아니고 말이구요. 이런 것은 실제 정보를 보호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봅니다.”

중국 쪽 서비스도 좀 보시는지요.

요즘 한국에서 나오는 앱 중에 사실 별로 눈에 띄는 게 없습니다. 기존 주요 앱들도 보면 업데이트도 늦어지고, 별로 공을 들이지 않는 것 같아요. 중국의 메신저나 지도 서비스 등을 보면 놀랍니다. 벌써 예전부터 내비게이션 안에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게 해 놓고 있어요. 지도 하나만 켜도 장소 확인, 길 찾기, 음식 주문, 전화걸기 등 모든 게 다 됩니다. 아까 결제 얘기 때로 그랬지만, IT는 중국에 벌써 뒤진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눈여겨 보시는 분야가 있다면요

“VR(가상현실)이 대세가 될 것 같아요. 지금 스마트폰 안들고 다니면 바보같은 느낌이 들 듯이 조만간 VR을 쓰지 않거나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 시기가 올 것 같다. 이런 회사 하나 차리면 무조건 누군가 살 것 같아요. 분명히 대비를 하고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는 분야인데 다들 너무 준비가 안 돼 있죠. 그러니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면 그 회사가 상당히 주목을 받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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