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BM왓슨의 데이비드 케니(David Kenny) 사장을 만났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 “인공지능이 공헌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신약 개발이고 많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 이번에 소개하는 스탠다임이 바로 그런 회사다. 스탠다임은 인공지능을 신약개발에 적용할 때 어떤 효과와 이점이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고 있었다. 인공지능과 생물학(바이오) 분야의 박사 출신으로 구성된, 탄탄한 스타트업이다.

삼성 나와서 창업한 인공지능과 바이오 전문가

서울대학교 응용생물화학과(95학번)를 졸업한 김진한은 이후 나모인터랙티브와 엔씨소프트 등에서 개발자로 일하게 된다. 생물화학을 전공했지만 그는 컴퓨터공학도 복수 전공을 했다. 대학 시절 코딩을 배우고 그쪽 분야 일에 재미를 느껴 일도 그 쪽으로 선택했다.

그의 삶에 본격적인 변화가 생긴 것은 200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하면서부터다. 이 때 인공지능에 눈 떴다.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 학위는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에딘버러 대학에 진학해 받았다.

한때 영어에 미쳐 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 덕에 영국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로 미쳐 있었나요?”

그야말로 ABC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완전 기초부터요. 제가 영어를 너무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서울대까지 진학한 사람이 영어를 다시 기초부터 공부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의 인공지능과 생물학에 대한 고민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학부 때 생물학을 전공으로 했고 석박사를 인공지능 분야로 한 그에겐 당연한 귀결이다.

석사 과정 시절부터 그는 인공지능을 통한 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으로 박사학위를 따고 돌아와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약개발의 가능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기술원 내부 다른 팀과의 협업 과정에서 송상옥, 윤소정 두 연구원을 만났다. 세 사람은 DNA가 손상을 입은 뒤 어떻게 복구되는가를 시뮬레이션하는 연구를 하면서 팀웍을 다졌다고 한다. 이 연구에는 김 대표의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송상옥 윤소정 두 사람의 바이오 지식과 기술이 필요했다.

예전부터 창업을 하고 싶었지만 함께 창업을 할 사람도, 자금도 없었기 때문에 주저했던 게 사실입니다. 두 사람을 만나 팀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가 없었더라도 실제 창업에 이르게 됐을까. 2014년말, 삼성종합기술원은 김진한 송상옥 윤소정이 공동 진행하던 연구 프로젝트를 종료했다. 몇 년 뒤 계획까지 세워놨던 그는 크게 낙심했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신약을 만드는 데 어떤 공헌을 할 것인지를 직접 증명해보고 싶었던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리라 마음먹고 20154월말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불과 나흘 뒤 스탠다임을 창업했다. 송상옥 윤소정 두 사람은 흔쾌히 동참했다.

이미 결혼을 하고 자녀까지 있었지만 아내에게 말했을 때도 전혀 놀라운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노래를 불렀거든요. 언젠가 자기 일을 갖고 창업을 하리란 걸 알고 있었던 거죠.”

인공지능으로 신약개발 비용과 시간 30% 단축

스탠다임은 인공지능을 신약개발에 적용하는 솔루션을 만드는 회사인데,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가 핵심이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했다.

인공지능을 신약개발에 적용하면 시간과 비용이 최대 30%까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인공지능은 사람이 생각지 못한 화학물질의 조합을 통해 신약개발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설명이다.

마치 지난달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인간이 생각지 못한 의외의 수를 뒀듯이,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거나 사람이 하기 쉬운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것도 가능하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의 조합이라고 하더라도 매우 빠른 속도로 물질의 조합을 만들어내고 이를 검증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단축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이익은 그 다음부터다. 김 대표는 시간과 비용이 30% 줄어들면 신약 개발회사의 이익은 최대 120%까지 늘어난다고 말했다. “개발 기간 단축으로 이익이 발생하는 시점이 앞당겨지기 때문이란 설명.

김 대표의 에딘버러 대학 박사과정 시절 동료였던 가야트리 나다라잔(Gayathri Nadarajan)도 그의 창업 소식에 서울대 치의대 연구원이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합류하는 등 인재들은 속속 모여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자금이었다.

때마침 스타트업 전문 투자회사 케이큐브벤처스 등이 총 11억원의 자금을 투자하고 정부 지원도 받게 되면서 자금에 숨통이 트였다. 국제 대회에서 실적을 내면서 대내외적으로 실력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달 영국의 세계적인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 Zeneca)가 개최한 인공지능 신약개발 경쟁 프로그램 드림 챌린지에서 스탠다임 팀은 70여개 참가팀 가운데 중간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완성된 버전의 인공지능 신약개발 프로그램 스탠다임 솔루션은 약 2년 후인 2018년께나 출시될 예정이다

출시에 앞서 국제 대회애서 공인된 개발력을 바탕으로 제약회사, 화장품업체 등과 제휴를 맺고 B2B(기업간) 인공지능 컨설팅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신약 개발을 비롯해 생물학에는 인간이 풀기 어려운 숱한 난제들이 있다스탠다임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며 그런 어려운 생물학적 과제를 풀어 인류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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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시장은 불황일지 몰라도 인테리어는 호황이다. 낡은 집에 살면 내부를 바꾸고 싶어지고, 새로 개업을 하거나 이사를 가도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집을 사기 힘든 사람은 많아도 돈이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인테리어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인테리어 분야에서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는 과정은 비슷한 가격 대의 다른 소비 행태에 비해 너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결(?)하다. 가격대는 천차만별이겠지만 대략 5000만원 안팎이 드는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고 할 때 얼마나 고민하고 비교하고 따져본 뒤에 선택을 할까. 비슷한 가격의 차 한 대를 살 때는 아마 엄청나게 발품을 팔고 정보를 구하고, 시승까지 여러 차례 해 본 뒤에야 결정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인테리어를 할 때는 별로 그런 정보 없이 그냥 부동산 업체를 통해 소개를 받거나 동네 인테리어 업체와 얘기를 해서 공사를 진행한다. 꽤나 고가의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 치고는 너무 단순하고 정보가 없다. 인테리어코리아는 이처럼 정보가 차단된 소비자에게 정보와 선택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허지선 대표가 보기엔 이것은 새로운 시도인 동시에, 시장 정상화의 과정이다.

중개업체가 왜 필요할까

허지선 대표는 전남대학교 공과대학에서 건축학과를 나왔다. 건축설계가 그의 전공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 시절 그는 좀 더 큰 규모의 건축에 관심을 가졌다. “큰 설계를 해 보고 싶었어요. 큰 규모의 건축을 통해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대학원 과정은 도시설계를 택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도시설계를 전공했다고 한다. 건축설계가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라면 도시설계는 하나의 도시 전체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복잡하고 공부할 것도 많고, 해야 할 과제도 많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도시 설계는 건축설계와는 다른 세계였다. 허지선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수원시정연구원에 들어갔다. 그게 2014년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어요. 글쎄 좀 공허했죠. 너무 규모가 큰 일을 한다는 게 붕 뜨게 만드는 효과도 있더라구요. 도시 설계라는 분야가 꼭 그렇다기보다는 연구원 생활이 제게 안 맞았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그러면서 연구원 생활은 1년 만에 끝이 났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건축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일을 하면서 너무 큰 그림만 그리는 일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건축이 그런 측면에선 맞지 않을까 생각했구요.”

이렇게 해서 건축설계 쪽으로 돌아섰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건설 분야가 불황이어서 일감이 없는데다 건축사들은 차고 넘쳐나기 때문에 경쟁이 너무 치열했기 때문이었다. 점점 작아지는 시장을 놓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하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인테리어 사업 분야는 경쟁은 치열했지만 일감 역시 쏟아지고 있었다. 일감이 워낙 많기 때문에 업체가 많아도 다들 살 수 있는 구조라는 것. 다만 건축설계 분야에 비해 건당 규모가 작고 마진 폭도 작을 수밖에 없었다.

인테리어쪽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유심히 보던 허지선 대표는 뜻밖의 일을 발견하고 놀라게 됐다고 한다. 소비자가 인테리어 공사를 맡기기 전에 업체들간, 다양한 인테리어간 비교하거나 평가해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는 거였다. 그러다보니 소비자들은 단순 중개업체에 의존하고 있었다. 인테리어를 요청하면 중개업체가 주문을 받아 몇 개의 인테리어 업체를 소개해주고 소비자들은 이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식이다.

도대체 왜 중개업체가 필요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업체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면 될 텐데 말이죠. 중개업체는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지만 사실 소비자들과의 연결만 해 줄 뿐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것도 아니고, 상세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그는 소비자와 인테리어 업체를 직접 연결하는 사업에서 기회를 찾고자 올초 인테리어코리아를 설립했다.

소비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업체엔 더 많은 기회를

소비자들이 인테리어 업체를 직접 만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하면 된다. 그런데 이 역시 상당히 제한적이다. 검색창에 인테리어 관련 업체를 검색해보면 그야말로 무작위로 나온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인테리어를 잘 하는 업체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고민하다가 집이나 자신이 운영하게 될 매장 근처의 인테리어 업체를 선택하게 된다. 시중의 중개업체를 통하더라도 결국 2~3군데를 소개받아 결정할 뿐이다. 이렇게 하면 수수료도 떼기 때문에 가격만 오른다. 인테리어 업체들 입장에서는 중개업체를 통하면 입회비를 내는 등 부담이 커진다.

허지선 대표는 소비자가 소수의 몇몇 인테리어 업체를 소개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먼저 고르고, 그 다음에 그걸 제일 잘 하는 업체를 찾는 방식으로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방식이다.

업체들이 정보를 올리면 소비자들이 그것을 보고 선택하는 것. 이를 위해선 블로그나 홈페이지 등을 운영하면서 자신들이 어떤 스타일로 시공을 해 왔는지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인테리어 업체들을 잘 모아야 한다. 업체들의 시공 사례를 모아 포털 형식으로 보여준다.

현재 시범서비스 중인 인테리어코리아 사이트에서는 인테리어 업체들의 시공 사례를 디자인 및 스타일 별로 분류하고 있다. 대표 이미지를 클릭해 들어간 뒤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찾아서 해당 업체에 직접 문의하면 된다. 중개가 아니라 소비자가 업체들이 올린 정보를 직접 보고 찾아가는 식이기 때문에 별도의 중개 수수료나 입회비 같은 게 일체 없다.

수많은 인테리어 업체 중 자신들의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관리할 정도로 실적이 있고 장기적으로 사업을 하는 양질의 업체들을 최대한 많이 모아 분류를 잘 해 소비자들에게 보여주는 게 핵심이다. 한 해 인테리어 공사 건수만 100만 건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시장성은 충분하다는 게 허 대표의 판단. 당장은 광고 외 수익 모델이 없지만 업체 등록이 늘어나고 인테리어 분야의 정보 포털로서 트래픽이 늘어나게 되면 클릭 자체에서 수익을 얻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 대표는 인테리어 업체가 35000여개에 달하지만 이 중 지속적으로 고객을 관리하고 블로그 등을 운영하는 곳은 수천개에 불과하다이 업체들의 시공 실적은 인테리어 디자인별로 잘 구별하는 것만 해도 업체들 뿐 아니라 고객들에게 상당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스타일의 인테리어 디자인 업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업체들은 포털에서 확보하기 힘든, 실제 구매로 연결되는 고객을 만날 수 있게 되는 등 양측에 모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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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확실히 늘어나고 있다. 가볍게 가족들끼리 즐기거나 혼자하는 운동부터 팀을 이뤄서 하거나 지역사회, 또는 동호회에 가입해서 하는 운동까지 꾸준히 즐기면서 운동을 생활처럼 하는 사람들을 이제는 흔하게 주위에서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초보라는 이유로, 장비나 정보가 없어서, 함께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하고 싶은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생활체육을 사회 공헌의 관점에서 접근해 사업에 나선 사람이 있다. 한국의 스타트업 225회 주인공, 정아람 대표다.

소셜벤처 창업 나선 검도4단의 무도인

용인대에서 동양무예, 검도를 전공으로 한 정아람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일찌감치 창업을 할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체육을 전공으로 하면 프로선수, 실업팀 선수 등 전문적인 선수의 길을 가거나 아니면 도장을 차리거나 강습을 하는 쪽으로 가게 마련이에요. 스포츠 관련 지식이나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려면 도장이나 전문 강습을 하는게 맞죠. 그런데 저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4월중순 플레이콕 주최로 열린 검도 동호인 모임. 앞줄 오른쪽 네번째 앉은 이가 정 대표>

검도 4단의 무도인 정아람 대표는 확실히 운동으로 단련된 사람의 분위기를 풍겼다. 합기도와 씨름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한다. 어쨌든 그는 선수로 계속 남고 싶은 마음도, 그냥 도장을 차릴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뭘 알아야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다. 그래서 경영 관련 과목도 듣고 연관된 서적도 읽는 등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흔히 말하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홈플러스에 공채로 입사했다. 그는 여기서 인생공부를 했다고 한다. 나이 지긋하신, 거의 어머니뻘 되는 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조직 관리를 배우고, 지식이나 이성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한다. 3년 동안 있으면서 점포관리 매니저로 일했다.

아무리 권한이 있다고 해도,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을 이끌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가 먼저 앞장서서 매장의 물품을 정리하고 말로 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2014년에 홈플러스를 나와 스포츠총판회사에 입사해 영업을 기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 목적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과 같은 선수출신들 또는 체육 전공자들의 일자리 창출과도 관련된 것이었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들만 전국에 35만명에 달합니다. 실업팀이나 프로선수 출신의 체육인들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죠. 이들 대부분은 1년에 100만원 정도에 불과한 연금을 받습니다.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생활이 될 정도의 수입을 버는 사람은 매우 드물어요.”

이들에겐 일자리가 필요하다. 이들은 프로들이고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실력이 있다. 일반인들과 이들을 만나게 한다면 일반인들에겐 해당 스포츠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엄청나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학원을 차리는 것도 자금이 어느 정도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 운동만 열심히 한 체육인들은 돈을 좀 가지고 있더라도 사기를 당해 날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정 대표는 이런 선수출신 체육인들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스포츠교육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것은 통상적인 스포츠센터에서 하고 있는 정기 강습이나 체험 시스템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생활 체육 저변 넓힌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스포츠를 하고 싶거나 잘 해서 동아리 등을 조직해 스포츠를 즐기는 애호가들의 숫자만 3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협회 등에 등록된 사람만 이 정도니,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들 중 단순 취미 생활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도 제대로 배운 체육 전공자들이나 선수 출신들에게 강습을 받고 싶은 이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선수 출신이나 체육 전공자들에겐 이런 수요가 일자리가 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국민의 체육 활동을 장려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거창한 목표에 일조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를 찾는 운동 애호가들과 선수출신의 체육 전공자를 연결해주는 것. 이것이 정 대표가 생각한 서비스의 컨셉트였다. 일자리 창출과 건전한 활동의 증대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에 이른바 소셜 벤처로도 모자람이 없다. 사이트를 오픈해서 양 쪽의 수요를 연결시켜 줄 장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사이트를 만들려면 엔지니어가 있어야 한다. 그는 창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어서 직접 사람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그런 모임에서 드디어 개발자를 찾았다.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석사학위까지 받은 뒤 창업을 준비하고 있던 김문학씨를 만난 것이다. 김문학이 개발를 맡기로 하고 두 사람은 20151224일 플레이콕을 창업했다.

사이트는 이달 말쯤 정식 오픈할 예정. 다만 그 전에 실제로 사람들을 모으고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지 실험을 해보기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테스트를 하고 있다. 대학이나 직장 등 큰 규모의 동호회에 체육 전문가를 연결하는 것은 기존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정 대표의 판단. 전문가를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방법으로 수익도 낼 수 있다.

관건은 지역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다양한 소규모 모임을 끌어내는 것과 모임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운동에 대한 관심이 있는 잠재적인 동호인들을 세상에 나오게 하는 것. 시험 삼아 지난주엔 검도 모임을 만들어봤다고 한다. 별로 알리지도 않았건만 20명 한도는 그날로 다 찼다. 심지어 외국인도 있었다. 검도에 관심이 있지만 학원에 다닐 시간은 없고, 그저 검도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가끔씩 즐기고 싶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사실 그렇다. 운동을 한다고 꼭 도장을 다녀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스포츠센터에서만 체육 활동을 하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다른 선택은 쉽지 않다.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가 쉽지 않고 장소나 지도해줄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플레이콕은 그런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이다. 검도, 유도, 마라톤, 축구, 야구, 농구, 테니스, 탁구 등 20여개 종목의 동호회나 애호가들, 초보자들에게 언제든 원할 때, 시간 될 때 그런 모임에 나가 운동을 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스포츠 버킷리스트가 있다.’ 플레이콕에게 이 명제는 이 회사의 존재 이유와도 같다. 그런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게 해 주는 것이 이 회사의 목표다. 특강콕, 번개콕, 경쟁콕 등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다. 그냥 수영을 초보 단계부터 배우는 모임도 만들 수 있지만 특정 종목, 예를 들어 접영을 마스터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면 이들이 플레이콕을 통해 전문가를 초청해다 특별 강습을 받을 수 있다.(특강콕) 또 봄 등산을 하기 위해 즉석 모임을 만들거나(번개콕), 우리동네 농구대회를 여는 것(경쟁콕)도 가능하다.

당신의 스포츠 버킷리스트는 뭔가요? 수상스키? 암벽등반? 그런데 왜 그것을 못하고 있나요?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라서? 전문가를 못 찾아서? 장소가 없어서?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을 못 만나서? 플레이콕에 오시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 꿈을 현실로 만드어 드립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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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그는 살이 쪽 빠져 있었다. 얼굴이 더 작아 보였다.

살이 많이 빠졌네요?”

미국에서 살면서 야식을 못 먹어서 그래요 ^^”

에스이워스 홍민표 대표는 20137월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어느 덧 미국에서 일을 벌인 지 3년이 다 되간다. 그 동안 한국에서 사업을 해 왔던 그는 왜 미국으로 갔을까. 미국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는 그가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 만나 그 동안의 얘기를 들었다. 벌써 IT 분야에서만 세 번째 창업을 하는 그를 이제야 소개하는 것이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공교롭게 몇 차례 기회를 놓쳤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국이 낳은 대표적인 해커이자 스마트폰 앱 보안회사 에스이웍스를 운영하고 있는 홍민표 대표다.

더 큰 시장으로 가자

그는 2012년말까지 쉬프트웍스란 보안업체의 대표였다. 연말에 회사를 정리하고 다른 보안업체 에스이웍스를 차렸다. 모바일 시대에 맞게 모바일 앱에 최적화된 보안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런데 그는 회사를 차리자마자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본사를 아예 미국 델라웨어에 등록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냈다. 무슨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인가요?”

그렇죠. 그런 이유가 있죠. 그런데 계기는 사실 따로 있어요.”

그가 2008년 쉬프트웍스를 처음 설립할 때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룩아웃(Lookout)이라는 미국의 보안 회사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그 회사의 기업 가치는 15000억원을 상회할 정도.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그 회사를 보면서 그는 시장의 한계를 절감했다. “더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더 큰 시장에서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에스이웍스는 창업을 하자마자 미국으로 옮겼죠.”

그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서 글로벌 영업을 하려면 미국에 주소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실제 그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야 했다. “여기도 마찬가지에요. 곧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투자를 하려고 하겠어요?”

실리콘밸리 진출은 이처럼 현실이기도 했지만, 그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예전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하고픈 꿈이랄까, 동경이랄까 그런 게 있었어요. 물론 막상 가보니 현실은 완전히 달랐죠. 하하

<홍민표 대표와 오랜만에 만난 정다운 친구처럼 얘기를 나누며 그간의 소식도 듣고 사진도 찍었다. 미국 생활을 통해 훨씬 더 단단해지고 IT분야의 사업가로서 훨씬 더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 실리콘밸리에 있으면서 느낀 점을 물었다. 규제가 별로 없다는 것, 엔지니어 파워가 세다는 것, 그리고 제품이 정말 완벽해야 한다는 것 등을 꼽았다. 아울러 흔히 생각하는 칼퇴근 문화따윈 없다는 것도 지적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한다고 하면, 5시에 칼퇴근하고 근사한 곳에서 식사하면서 취미생활을 즐기고, 여유롭게 일하는 그런 풍경을 떠올리쟎아요? 그런 사람들이 물론 가끔 있긴 있죠. 하지만 대부분 벤처기업들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구요.”

규제가 별로 없다는 것도 그에겐 신선한 부분이었다. 이런 사업도 될까 싶은게, 실리콘밸리에서는 다 가능하다는 것. 제품을 일단 출시하고 수정 보완해가면서 판매를 늘려가는 방식이 실리콘밸리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한다.

세계적인 모바일 보안업체 만들고파

, 어쨌든 홍 대표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미국에서 정착하려고 애쓴 건 최근 출시한 스마트폰 앱 전용 보안 솔루션 앱솔리드의 미국 및 해외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에스이웍스를 창업하고 나서 바로 메두사헤어라는 모바일 전용 보안 소프트웨어를 내놓았다. 메두사헤어는 초기 출시 이후 몇 차례의 업데이트와 성능개선 등을 거쳐 올 3월에 앱솔리드로 재탄생했다.

앱솔리드는, 쉽게 말해 해커가 앱에 악성코드를 심는 것을 막아주는 프로그램이다. 앱에 악성코드를 심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혹시 내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일까. 그런 측면보다는 앱을 만든 기업체들이나 앱을 통해 광고를 하는 회사 등 기업들이 피해를 보게된다는 게 홍 대표의 설명. 앱의 소스코드를 해킹해 악성코드를 심으면 앱의 광고를 통해 A라는 회사에 들어가야 할 광고수익이 악성코드를 심은 곳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려면 앱에 보안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시간과 인력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 이런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개발자가 앱을 앱솔리드 사이트에 올리면 1~2분 안에 프로그램의 구조 정보를 담은 소스코드를 볼 수 없도록 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글 플레이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무료 앱 중 85%가 보안 조치가 허술해 손쉽게 앱의 소스코드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커가 앱의 소스코드를 빼낸 뒤 악성코드를 심거나 위·변조한 앱을 배포해 사용자 모르게 개인정보를 빼내는 데 악용할 위험이 있다. 한때 세계 해킹대회에서 우승을 한 적도 있고 세계 3대 해커로 손꼽히는 인물이 전하는 해커에 대한 경고다.

그는 미국 시장 진출을 통해 해외 고객을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고객의 90%는 한국기업들이고 미국 고객은 10%에 불과하다. 최소한 미국 및 해외 고객을 절반 수준으로 끌어올릴 정도로 글로벌 영업을 확대하려고 한다.

미국에 가서 실리콘밸리에 있으면서 그는 현지 생활을 이득을 톡톡히 본 것 같다. 현지에서 메리 민(Mary Min)이라는 창업가 출신의 인재를 회사에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메리 민은 게임회사를 창업하는 등 잇따른 창업을 통해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하고 대형 IT기업에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홍 대표는 우연한 기회를 그를 만나 설득해 회사에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사업을 확대하고 주요 투자자 및 파트너를 연결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줄곧 미국에 살던 홍 대표가 이번에 잠깐 한국에 들어온 것은 미국에서의 사업 확대를 위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다. 에스이웍스는 이미 창업 초기 소프트뱅크벤처스, 퀄컴벤처스 등으로부터 20억원의 투자를 받은 바 있다.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달려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러시아 속담인데 제가 항상 명심하려고 하는 경구죠. 투자를 받을 때는 항상 조심하려고 합니다.”

미국 생활이 외롭지는 않을까. 현지에서 4명의 현지 직원을 채용했고 주간에는 사무실에 나가 있겠지만, 주말과 밤에는 혼자 있어야 하는 생활이다. 생각보다 한국인으로 현지에 진출해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 사업가가 별도 없다는 점도 어려운 부분이다.

외롭죠. 스스로 이방인이라는 인식도 상당히 있구요. 그걸 이겨내는 것도 해외 시장에 나가서 겪어야 할 숙명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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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디캠프 센터장은 27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 산업 현장을 누볐다. 유통 시장을 취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첨단 산업 현장이 그의 주된 취재 영역이었다. 그런 그가 보기에 지금은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시기다.

나는 그와 운좋게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는 데스크로 모셨고, 2011년에는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했다. 331일 아침 일찍 만난 그는 여전히 열정이 넘치고, 바빴다. 데스크로 모셨을 때보다 더 활기가 넘쳐 보였다.

그의 첫마디는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거였다. 스타트업을 제 값 주고 인수, 혁신을 외부에서 사오는 것이 국내에서도 일반화될 것이라는 거였다. 그는 제 값혁신에 방점을 찍었다. 혁신이 필요한 데 대기업에서는 혁신이 나오기 힘들다는 건 마치 상식과도 같은 일이다. 구글이나 애플도 그런 점을 알기에 거액을 주고 스타트업을 인수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었다. 되레 스타트업의 모델을 그대로 베끼거나 고사시키는 작전으로 나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것을 그는 어디서 느꼈을까. 그는 작년 삼성이 미국 스타트업 루프페이를 인수해 삼성페이를 만든 것이 모범적 협업 사례라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나 내년쯤에는 한국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인수하는 사례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이 조직문화를 스타트업처럼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서도 일부에선 가능하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중요한 변화가 곧 닥칠 것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김광현 센터장은 앞으로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연결해주고 협업을 도와주는 사업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미 100여명의 스타트업 종사자 및 대기업 관계자를 모아놓고 매달 디 파티(D. Party)를 열고 있다. 푸드테크, 여행, 패션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를 정해놓고 얘기를 나눈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네트워크 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네트워크를 통해 스스로 성장하고 깨우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창업 1세대들의 멘토도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존 자신의 제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자들에게 잘못된 조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업에 대해 창업가 본인만큼 고민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좋은 벤처기업이 요즘에 정말이 많이 늘어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즉답을 피한채 돌려서 말했다. “요즘 대기업을 그만두고 나와 창업을 하는 30대 중후반이 스타트업의 주력들입니다. 이 중에 좋은 멤버들이 많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창업지원기관이 늘어나면서 기업가정신을 잃고 자금지원에 안주하는 스타트업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보였다. 김 센터장은 이미 경쟁력을 잃은 스타트업이 창업지원센터에 의지해 연명만 하는 사례가 자주 보인다면서 뛰어난 기술과 훌륭한 인재가 고인 물에 갇혀있는 듯 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창업지원기관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그가 느끼는 가장 안타까움은 훌륭한 아이템을 가진 창업팀이 깨지는 것을 볼 때. 대부분 리더십의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카리스마가 지나치거나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과신하는 경우 팀이 깨질 때가 많다고 한다.

이날 디캠프는 서울 역삼동에서 설립 3주년 기념 성과발표회를 열었다. 디캠프가 지난 3년간 투자와 프로그램으로 지원한 스타트업은 모두 3287개에 달한다. 직간접 투자 금액은 2235억원에 이른다. 누적 방문자는 17만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에만 디캠프는 8개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를 진행했다.

올해 김광현 센터장이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은 뭘까. 그는 창업팀 급증에 따라 점점 부족해지는 공간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밝혔다. 좋은 팀을 발굴해내서 키울 수 있는 내부의 역량을 확충하는데도 신경을 쏟고 있다.

스타트업을 잘 구별해서 볼 줄 아는 안목이 중요합니다. 경쟁력 없는 곳을 가려낼 수 있어야 진짜 잘 하는 업체들이 클 수 있는 거죠.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듬어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에요.”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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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자로 경제부를 떠나 IT과학부로 다시 복귀했습니다. 스타트업을 비롯해 IT업계 분들을 다시 만나 인사드리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작을 하려고 합니다. 

경제부에서 4년 동안 있으면서, 그 중 3년 가까운 시간을 세종시에서 생활하면서 국세청 기재부 산업부 등 경제부처 위주로 출입하다가 돌아오다보니 감도 떨어졌을 것 같고, 모르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을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많은 도움과 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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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눈에도 전투력이 상당히 높아 보였다. 청소든, 비즈니스든, 영업이든, ‘뭐든 맡겨만 주면 다 해치우겠다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일을 찾아서 하고, 재밌게 하고, 결국 해결점을 찾고야 마는 이들은 분위기에서부터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여기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청소 시장에 혁신을 몰고 오겠다는 홈마스터 변영표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문의 내력

변영표 대표는 어릴 적 클리닝(청소) 사업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컸다. 대기업에 재직하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퇴직을 하신 아버지께서 선택한 사업은 원래 비디오 대여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만류로 사업 아이템이 바뀌었다. 편하지만 전망이 불투명한 비디오 대여점 대신 몸이 고되더라도 시장이 사라지지 않을 청소분야에서 일을 만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당시 변 대표는 10살 꼬마였다. 어머니의 만류와 아버지의 새로운 선택. 당시엔 몰랐지만 이 선택은 부모님의 인생 뿐 아니라 14, 10살이었던 변영효, 변영표 형제의 운명까지 바꿔놓고 말았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학생 변영표는 틈틈이 부모님의 회사에 가서 일을 했다. 간단한 일을 도와주고 용돈을 벌었다. 폴린아트(부모님이 운영하는 회사)는 개인사업이었지만 주로 법인을 상대로 한 B2B 청소 사업을 했다.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는 폴린아트는 특히 법인 소유의 비행기, 헬리콥터, 자동차 내부 청소에 특화돼 있었다. 고정 고객이 있었고 이들에게 인정을 받아 오랫동안 영업을 지속해온 것이다. 청소에는 도가 튼분들임에 분명하다.

이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이들 형제 역시 청소에는 남다른 감각이 있지 않을까 싶다. 청소란 것도 제대로 배워서 한 사람과 대충 현상 유지를 할 정도의 수준으로만 하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학생 변영표는 가천대 산업디자인학과(미대)에 진학했다. 아이폰이 국내에서 처음 출시된 2009, 컴퓨터공학을 전공해 엔지니어의 길을 가고 있던 형 변영효와 동생 변영표에게 첫 기회가 오게 된다.

어느날 형하고 얘기를 하다가 ATM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근처에 어디에 어떤 은행의 ATM 기기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면 1300원에서 1800원에 달하는 ATM기 수수료를 아낄 수 있을텐데 그걸 모르니 사람들이 수수료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 거죠.”

형제는 위치 기반 정보를 이용, 사람들에게 은행 ATM 기기의 위치를 알려주는 앱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ATM Finder’. 각자의 주거래 은행 ATM 기기 중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기기를 찾아주는 것이다. 가격은 0.99달러. 유료이지만 한번 이상만 쓰면 무조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컨셉트로 가격을 책정했다. 맞는 말이다. 제대로 알려주기만 한다면 단 한번만 잘 써도 앱을 구매하느라 쓴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형이 앱을 만들고 동생은 앱을 디자인했다. 형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앱. 이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출시한 지 열흘만에 인기있는 앱 순위 10위에 올라갔다고 한다. 그랬다. 누가 생각해도 잘 될 것 같았다.

사람들이 0.99달러씩 결제해서 그냥 돈이 들어오더라구요. 당시 학생 신분에선 큰 돈이라고 할 수 있죠. 돈 쉽게 번다.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리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앞으로 계속 이렇게 돈을 벌 줄 알았죠.”

그런데 세상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이제 그냥 앱을 내비두면 돈이 저절로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생각이 오산이었다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사업의 교훈

어느 날부터 악플이 달리고, 사용자들의 평가가 확 나빠지더군요.”

왜 그랬을까. 오류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앱 자체에 버그도 발생했고, 위치 기반 정보를 크롤링하는 과정에서 일부 실수도 있었다. 사업을 한 경험도 없고, 앱이란 것도 처음 만들어본 이들은 관리유지 보수까지 생각이 미치질 못했다. 결국 이들은 얼마 안 가 앱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성공의 과정이 오래 지속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소중한 경험이었다. 사업이란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 못지 않게 지속적인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공교롭게도 또 IT 분야에서 일을 할 기회가 온다. “2013년말부터 2014년말까지 스터디서치란 벤처기업에서 일을 했어요.”

그는 이때 다시 한번 확신을 하게 된다. 자신이 IT 분야 일을 좋아하는 것을. “일이 재밌더라구요. 그리고 예전에 앱을 만들었던 것도 생각 나고요. 그때는 앱을 내렸지만, 다시 서비스를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군을 제대하고 나오니 세상이 달라진 것도 그가 결심을 굳히는 데 도움이 됐다. 여기저기 창업 열풍이었다. 변영표는 경험이 있었고, 하고 싶은 분야도 있었다. 그는 형을 설득했다. 이번엔 이 형제들의 장기인 청소 분야를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삼성전자를 다니고 있었던 형은 흔쾌히 동생의 말을 수락했다. 사이가 상당히 좋은 형제다. 한 사람은 엔지니어, 한 사람은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서로 빈 곳을 채우기 좋았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는 좋은 조합이다. 부모님의 조언도 받았다. 부모님은 B2B를 하시지만, 이들 형제는 B2C에 도전하기로 했다. 아직도 가능성이 충만한 시장이라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회사 이름은 홈마스터로 정했다.

<홈마스터 창업멤버들. 가운데가 변영표 대표.>

출장 청소 서비스 분야엔 절대 강자가 없어요.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업체가 1%가 안될 정도니까요.”

그만큼 시장이 춘추전국시대라는 건데, 그렇다면 한편으로 경쟁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시장에서 변영효 변영표 형제는 어떤 차별점으로 승부를 보려고 한 것일까.

핵심은 서비스의 질이다. 청소 서비스의 수준을 높여 고객 만족도를 높이면 된다. 그런데 사실 모든 업체들이 이것을 추구하고 있다. 홈마스터는 뭐가 다른 걸까.

가사 도우미의 스케줄 관리가 저희들의 차별점입니다.”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선 공급자인 가사도우미 분들의 일에 대한 만족도, 일에서 오는 보상이 확실해야 한다는 게 오랜 시간 동안 청소 분야를 섭렵(?)해 온 이 형제들의 결론이었다. 즉 가사도우미가 자신의 일에 만족해야 고객도 혜택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사도우미 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원하는 만큼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어요. 예를 들어 매일 매일 일거리가 있으면 좋겠는데 실제로는 일주일에 두 건 정도밖에 없는 거죠. 그나마 오전 일만 있고 오후엔 공치는 일도 허다하구요.”

카카오가 들어와도 자신 있다

그래서 홈마스터는 가사도우미의 스케줄을 관리해준다. 이들이 괜히 놀지 않도록, 일이 없어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고객의 요청이 들어오면 시간표를 채워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사도우미는 소득이 높아져 만족도가 높아지게 되고, 홈마스터 입장에서는 적은 수의 가사도우미로도 많은 지역, 많은 고객을 커버할 수 있게 된다. 일 잘하고 평판 좋은 가사도우미와 계약을 체결하고 이들에게 빈틈없이 일감이 돌아가기 때문에 고객들의 만족도도 상승하게 된다. 모두가 이익이 되는 구조라는 설명. 즉 일하는 구조에 변화를 줬다는 게 변영표 대표의 주장이다.

기존 다른 서비스들은 고객과 가사도우미를 단순 연결해주거나 경매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싼 값을 제시하는 가사도우미를 고객이 선택하는 방식이다. 홈마스터는 경매나 단순 연결이 아닌 관리품질을 앞세우고 있다. 앱을 다운로드받고 자신의 지역을 등록하면 평형에 따른 가격표와 가사도우미가 제시된다. 얼핏 당연한 듯 보이지만 평형에 따라 가격을 조정해 가사도우미와 고객 간 논쟁의 소지를 줄였다는 것도 홈마스터가 내세우는 차별점이다.

변 대표는 자신들의 서비스를 카카오택시가 아닌, 카카오블랙에 비유했다.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가격이 비싼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가격에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받고 싶은 고품질의 청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사도우미에 대한 선별도 까다롭게 하고 있다.

현재 아파트 및 전업주부를 위한 별도의 상품을 만드는 등 상품 다양화도 추진하고 있다. 일종의 프리미엄 서비스인 셈이다. 청소에 대한 기준이 높고 까다로운 사람들을 위해선 그들에게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요즘 이 시장에 카카오가 들어온다는 설이 파다합니다. 아마 맞을 겁니다. 올 상반기 중에 진출한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저희는 카카오가 들어와도 자신있습니다. 인터넷으로 그냥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에 변화를 준 겁니다. 가사도우미의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면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높아지게 됩니다. 그 구조를 만들어가겠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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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Undergog). (사회적) ‘약자란 뜻이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기업가를 배출하고 싶다는 김정헌 대표의 뜻이 들어간 이름이다. 이미 소셜벤처 딜라이트와 프로젝트 옥(OK)의 우주 사업을 통해 사회적 기업가(한국에서 제도상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기업가와 정의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그는 스스로를 소셜벤처사업가라고 말하곤 한다.)로서 다양한 시도를 해 왔던 김정헌이 이번에는 소셜벤처 컴퍼니 빌더(Company Builder)’로 돌아왔다.

혁신에 도전하는 사회적 기업가 양성소

2014년은 김정헌 대표에게 변화의 시기였다. 기존 프로젝트 옥 사업을 과거 딜라이트 공동창업자였던 김정현 대표에게 맡기고 자신은 다른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 당시에도 김정헌 대표를 만나 자신이 만든 사업에서 왜 나오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김정헌 대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며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말처럼 다시 창업에 나섰다. 분야는 여전히 사회적 기업이었지만 방식이 사뭇 달랐다.

야구에도 보면 선발투수가 있고, 중간계투, 마무리가 있쟎아요. 그런데 저는 선발투수 스타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계속 일만 벌일 수는 없을 것 같고, 새로운 일을 계속 시작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 봤어요.”

그의 결론은 사회적 기업을 계속 창출해내는 것. , 사회적 기업 분야의 컴퍼니 빌더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컴퍼니 빌더의 역할과 하는 일, 과정 등을 알아보니 상당한 자금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즉 어느 정도 스스로 자금 마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 그래도 어렵게 찾은 새로운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돈이 좀 부족해도 작게라도 시작해보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20154월에 설립된 언더독스는 사회혁신가들의 사회적 기업을 통한 새로운 시도에 초점을 맞췄다. “절대적 강자가 존재하는 경쟁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약자의 승리를 응원하게 되는 현상을 underdog effect라고 합니다. 제가 고민했던 것은 사회적 가치와 비즈니스적 가치의 실현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성공률이 대단히 낮다는 것, 하지만 결코 뒤로 미루기만 할 일은 아니라는 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걸 저는 하고 싶었던 거구요.”

강력한 멤버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리얼씨리얼 최고전략책임자(CSO)를 거쳐 삼성전자 사내벤처인큐베이팅 업무를 했던 장수한, 딜로이트컨설팅 출신의 문성화, 소셜벤처 창업 경험이 있는 박준규, 그리고 변호사 조준성 등이 언더독스의 경영진이 됐다.

김정헌과 창업멤버들은 사회적 기업가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아니, 그 전부터 아이디어는 있지만 실행 방법을 모르거나 뜻은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과 방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찾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찾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기본적인 준비가 필요한 사례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언더독스의 사업 프로그램이 정해졌다. 우선 사회적기업 창업가 양성 프로그램인 언더독스 사관학교, 그리고 사회적기업에 대한 마케팅, 브랜딩 지원을 하는 언더독스 스튜디오, 마지막으로 인큐베이팅을 수행하는 언더독스 레이블 등이다.

온라인 프로그램 강화..해외로 나간다

20157월 첫 번째 프로그램을 시작한 언더독스 사관학교는 국내 최초의 사회적 기업가 양성 프로그램이다. 9명이 1기로 뽑혀 교육과 훈련을 수행했다. 6주의 기간 동안 300시간 이상 집중 훈련을 받았다. 거의 집에도 가지 못할 정도로 집중적인 교육 과정이 이어졌다고 한다. 과정이 끝나자 3개의 소셜벤처 창업팀이 만들어졌고 이들은 3개의 사회적 기업을 세웠다.

버려진 폐이어폰으로 팔찌를 만드는 회사, 건물의 공간을 공유하고 관리하는 부동산매니지먼트 회사, 그리고 파트타임 보모를 연결해주는 회사 등이 그것이다. 첫 번째 회사의 경우 이미 수출까지 진행되고 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회사 모두 서비스를 시작한 상태.

<지난달 수료한 언더독스 사관학교 2기생들의 수료식 모습. >

201512월에 시작된 2기에는 17명이 교육을 받았다. 2월초 졸업을 한 2기생들 가운데에서도 3개의 회사가 새롭게 탄생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3월에 실시되는 3기생들 역시 17명으로 구성돼 교육이 곧 시작된다.

언더독스는 최근 언더독스 부산 사관학교 프로그램도 새롭게 만들었다. 21명의 창업 지망생들이 모여들었다. “부산은 온라인 강의를 위주로 하고 있어요. 1회 정도, 한번에 4시간에서 6시간 정도를 오프라인 교육에 할애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원격교육입니다.”

부산에 원격 사관학교 모델을 도입한 것은 아시아 시장에 대한 가능성 때문이다. 즉 글로벌화를 추구하는 모델이라는 뜻이다. 그가 이런 모델을 생각하게 된 것은 지난해 영국문화원의 초청으로 런던을 방문하면서부터. 당시 사회적기업가들을 초청해 워크샵이 개최됐는데 그는 소풍의 한상엽 대표와 함께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됐다. “런던에 가서 다른 아시아 국가의 사회적기업가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어요. 그건 한국의 사회적 경제 영역이 비교적 넓다는 것이죠. 대부분 아시아국가에서는 사회적 기업가 자체가 희소할 뿐 아니라 관련 분야에 자금이 없는 상태이고, 홍콩의 경우 사회적 기업의 필요성에 따른 자금은 충분한 데 이를 할 만한 기업가가 없는 상황입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해당 사회의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기업가에 대한 교육 수요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교과 과정을 온라인으로 실시하고 있는 해외 대학들의 모델 등을 참고해 온라인 교육 과정을 만들었다. 분야는 창업, 직무, 인문 등 3가지. 교육 모델을 갖고 해외 진출시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그 전에 교육 과정에 대한 고도화 작업이 필수다.

언더독스는 현재 사관학교 교육 전 과정을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B2B로 사업을 해서 돈을 번 다음 여기서 번 돈을 사관학교에 투자하는 식이다. 유료화도 검토하고 있지만 흔히들 생각할 수 있는 교육 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유료화는 하지 않겠다는 계획. 즉 일단 무료로 교육을 하되 창업을 하지 않는 팀에 대해서만 유료를 하는 방식이다.

사관학교 과정은 스튜디오나 레이블 사업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사관학교에서 프로그램을 마친 팀에 대해 디자인과 마케팅 차원의 지원(언더독스 스튜디오)이 들어가고 법인화를 위한 본격적인 인큐베이팅(언더독스 레이블)을 하는 것이다. 투자 회사들과의 연결도 포함된다. 실제로 언더독스는 1기 배출 창업팀에 대한 투자 유치도 추진하고 있다.

사관학교에 들어오는 팀을 뽑을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시하나요?”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인지를 확인합니다. 온전히 모든 것을 걸고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실제 교육 과정도 그렇구요. 사회적으록 가치있는 일을 하면서 비즈니스적으로도 돈을 버는 사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 사람인지, 그게 중요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의지도 없고, 실제로 일을 만들어가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되게끔 하는 사람은, 그런 여건을 스스로 만들어갈 것이라는 것. 그게 소셜 벤처에 계속 시도하면서, 가치와 값의 공존을 놓고 고민해 온 김정헌 대표가 찾아낸, 벤처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하나의 기준인 것 같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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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시장은 그 어떤 시장보다 불신의 장벽이 높은 시장이다. 거래를 하고 나서 누구라도 뭔가 속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물론 신차나, 휴대폰 구매 시장도 그런 측면이 다분히 있지만 신차나 휴대폰 구매의 경우엔 속았다는 느낌이 가격에만 적용된다. 즉 가격적인 손해만 보면 된다. 그런데 중고차에서는 품질에 대한 불신의 벽도 굉장히 높다.

이처럼 가격과 품질에 대한 불만, 불신이 팽배한 시장이지만 거래는 엄청나게 이뤄진다. 불편하고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중고차 시장의 거래규모가 신차 시장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의 중고차 등록 대수는 346만대에 달했다. 167만대에 불과한 신차 등록 숫자의 2배를 뛰어넘는다. 중고차를 사고 파는 수요는 많은데 과정이 너무 불편하고 신뢰가 바닥이다. 불만이 곳곳에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를 바꿔보려는 시도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기존 딜러들에 의한 거래 관행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하는 카팜은 딜러를 배제한 중고차 거래 시스템에 도전하고 있다. 재미있는 시도다.

신차 딜러에서 중고차 매매상으로

카팜의 창업자 박도일 대표는 푸조와 아우디, BMW 등 수입자동차 업계에서 딜러로서 일을 시작했다. “2005년에 처음 시작해서 2011년까지 수입자동차 업계에 있었어요.”

수입자동차의 국내 판매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할 때쯤 그는 그 업계를 떠난 것 같다. 그쪽 분야에서 별로 비전을 찾기 힘들었다는 설명. 최연소 과장이 되고, 항상 해당 브랜드의 전국 판매순위 10위 안에 들 정도의 실적을 냈지만 영업이 설 자리가 없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영업맨이 가져가는 마진이 점점 줄어들고, 영업을 열심히 하는 메리트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그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일즈맨이라는 자신의 직업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세일즈라는 직업이 언젠가, 그것도 좀 빨리 대체될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이었죠. 영업직이 미래에 사라질 것 같았어요. 꼭 신차 판매쪽이 아니더라도. 보험이든 뭐든. 핵심적인 것은 기술로 다 커버가 가능하고. 점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뭔가 물건을 구매하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요즘에 보면 BMW는 차에 대해 설명만 해주는 월급 직원을 뽑아서 배치하고 있습니다. 차 판매 실적 부담이 없는 직원이에요. 손님에게 차를 사라고 강권하지도 않죠. 그냥 친절하게 설명만 해 줘요.”

자동차도 그렇고, 보험도 그렇고, 전부 시장에 정보의 비대칭과 불확실성이 큰 분야다. 손님이 딜러나 영업사원을 잘 신뢰하지 않을뿐더러 분쟁이 잦은 영역이다. 어느 순간 이런 분야에서 영업맨이라는 중간의 과정이 불필요한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게 그의 예상이었다.

어쨌든 그는 그래서 중고차 시장으로 들어왔다. 물론 중고차 시장으로 넘어온 가장 큰 이유는 더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생각때문이었다. “신차는 사실 사람들도 브랜드를 보고 사고, 영업사원도 브랜드에 힘입어 매상을 올립니다. 차가 잘 되도, 잘못되도 다 브랜드 탓이죠. 그런데 중고차는 그렇지 않아요. 영업사원의 역할이 크고, 매우 중요합니다. 세일즈맨에게 돌아가는 책임도 훨씬 크고요.”

중고차 분야에 와서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차 영업을 하면서 비교적 꾸준히 계속해서 성공 가도를 달려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만해지고, 세상에 겁 날 게 없다는 생각도 했다고. “저는 밖에 나가서 막 계약을 갖고 들어오고 그럼 직원들이 이것을 처리하느라 바쁠 정도였어요. 정말 일이 잘 풀렸죠.”

중고차 매매를 한 지 3년이 채 안된 시점에서 일이 터졌다. 대금을 떼이는 일이 발생한 것. 그 때까지 그런 일은 상상조차 못했지만, 수억원대의 돈을 떼이고 빚까지 지게 됐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한국형 비피닷컴

어려움이 닥치자 그는 다시 처음의 문제 의식으로 돌아왔다. 결국 딜러로 지내는 삶이 비전이 없을 것 같다는 문제 의식. 그렇다면 자신도 기존 중고차 매매상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또 다른 중고차 매매상이 되는 것 보다는 다른 시장을 창출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시장을 완전히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에요. 다만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차 공유 서비스가 확산된다고 기존 렌트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쟎아요. 차를 공유하는 새로운 시장이 생긴 거죠.”
중고차 매매 과정의 불편함과 불신,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그가 찾은 것은 기존 딜러(중고차 매매상)들과의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 비용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 “중고차 딜러들도 먹고 살아야 하쟎아요. 여기서 비용을 줄이려면 딜러들 마진을 줄이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딜러들도 힘들어지죠.”

중고차 딜러 출신이어서 그럴까. 그는 기존 중고차 딜러들과 경쟁해서 그들의 시장을 가져오는 방식은 선택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차피 그 쪽 시장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있을 것이란 판단. 대신 그는 소비자들간의 직거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뒀다. 기존 중고차 딜러 없이 거래하돼, 딜러와 연계해서 하는 서비스처럼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즉 직거래 시장의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다. 그래서 카팜을 만들면서 직거래 도우미라는 컨셉을 가져왔다.

그의 이런 생각은 미국 중고차 매매업체 비피닷컴(www.beepi.com)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비피닷컴은 온라인 중고차 거래 사이트인데, 기존 딜러를 통하지 않고, 구매자와 판매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서비스다. 더 비싼 값에 팔고, 더 싼 값에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정책을 모토로 성장하고 있다. 차량을 맡기면 30일 이내 책임판매를 보장해준다. 얼마 동안 걸릴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매수인과 매도인이 만날 필요도 없다. 딜러를 상대할 필요도 없다. 모든 과정을 비피닷컴이 다 알아서 해 준다. 그런데도 기존의 딜러를 통한 방식보다 더 차를 비싸게 팔 수 있고, 구매자 입장에서는 싸게 살 수 있다. 운행 이력 보고서는 당연히 기본적으로 제공되고, 차를 판매하겠다고 내놓은 사람도 차가 팔릴 때까지 그냥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다.

사실 비피닷컴의 가장 큰 장점은 강력한 환불보장 정책이다. 강력한 환불보장 정책 때문에 매력도가 크게 상승해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구매자가 구매 후 마음에 안들면 무조건 차 구매 비용을 환불해준다. 차를 사면서 들어간 각종 운송비 등도 다 돌려준다. 구매후 10일이 지나지 않았고 1000마일 이내로 자동차를 이용했다면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든, 지난밤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이유 불문하고 환불을 받을 수 있다. 환불을 했다고 해서 차량 판매자에게 다시 돈을 받아내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떠안고 알아서 판매를 진행한다. 정말 엄청난 서비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환불 정책을 실시하는데도 미국에서 비피닷컴에 실제로 접수되는 환불 요청은 1% 미만이라고 한다. 그만큼 품질에 대한 까다로운 통제가 있기에 가능한 시스템이다.

물론 카팜이 한국형 비피닷컴을 지향한다고 해도 강력한 환불보장 정책은 도입하기 힘들다. 일단 취득세 등 차량 구매시 붙는 세금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품질에 대한 까다로운 검수와 소비자 편의 조치는 비피닷컴 수준으로 하겠다는 것.

결제까지 해결한다

기존 직거래 방식은 딜러를 통해서 거래하는 것에 비해 금전적인 이득이 더 있다는 것 외에는 전부 단점 투성이다. 일단 시간이 많이 걸리고, 온갖 서류작업 등 불편을 감수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상대방을 신뢰하기 힘들다는 문제까지 있다. 서류 작업 및 차량 보증 문제를 해결해주고 결제까지 안전하게 해 주면 직거래의 문제가 상다부분 해소된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거래가 늘어나면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판단.

온라인에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사이트를 만들기로 한 박 대표는 생소한 IT(정보기술) 분야의 창업에 도전하기 위해 패스트트랙아시아(FTA)의 패스트캠퍼스에서 창업 관련 수업도 들었다. 물론, 함께 창업할 사람을 만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다행히 그는 패스트캠퍼스에서 선데이토즈와 로켓오즈에서 개발을 했었던 엔지니어 박순우를 만났다. 신민호, 정준모 등이 합류하면서 창업 멤버가 갖춰졌다.

<카팜 창업자 박도일 대표(오른쪽)와 박순우 CTO>

카팜은 기존의 중고차 매매상들처럼 차량을 매입하지 않고, 판매자와 구매자를 직접 연결, 중고차 유통이윤을 뺀 금액으로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최대한의 금전적 이득이 갈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게 핵심이다. 비피닷컴과 마찬가지로 카팜이 사실상 중개업체, 즉 딜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차량을 미리 매입하는 방식을 쓰지 않는다는 것. 그러다보니 고정 비용이 적게 발생하기 때문에 마진을 낮추고도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이득을 돌려줄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카팜의 시세분석 결과 평균적으로 판매자는 중고차 매매상에 판매할 때보다 약 7~9%의 높은 금액으로 판매할 수 있고, 구매자는 5~6% 정도 저렴한 금액으로 중고차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량 판매 신청이 들어오면 중고차 성능진단평가사를 통해 정밀 점검, 가격을 제시하고 이 가격에 판매될 수 있도록 구매자를 찾아주는 것이다. 1월에 카팜(www.carfarm.kr)시범서비스를 시작했고 34일에 정식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카팜은 다만 거래시 약간의 수수료만 받을 예정이다. 현재 중고차 거래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딜러가 개입되면 10%에서 15%까지 가격 차가 발생하는 것에 비해 카팜은 1.5% 안팎의 수수료만 받는 것을 모델화하고 있다.

그는 성장을 위해 금융부분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관리 직원의 숫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고차 구매에서 불편함을 해소해주게 되면 궁극적으로 남는 문제는 금융이기 때문이다.

현재 딜러를 통해 거래하더라도 카드 결제를 하면 수수료율이 무려 8.8%에 달한다. 때문에 대부분 현금이나 캐피탈 할부금융으로 결제를 하는데 이자율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게 그의 분석. 카드결제나 캐피탈사를 통한 할부금융에서 이자율과 수수료율을 현실화할 수 있으면 금융 부분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의 편의가 완성될 것으로 보는 것. 아울러 카팜도 인력 구조가 끝없이 비대해지는 걸 막고 거래 규모 성장을 통해 회사가 발전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카팜에서는 계약금만 카드 결제를 하고 나머지는 가상계좌를 통해서 계좌이체를 진행하고 있다.

사실상 딜러의 역할을 하고, 딜러나 마찬가지이지만 기존 딜러와 직거래의 장점을 결합한 케이스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영업을 하지 않고, 차를 매입하지도 않습니다. 정확한 가격을 제공하고 안전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도와주며, 모든 최종 결정은 소비자들에게 맡깁니다. 대신 거래 안전을 보장하고 차량 구매시 일정 기간의 보증도 진행합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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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아직 일천한 한국 IT(정보기술) 산업 역사에서, 특히 창업사에서 조원규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창업을 해 성공한 경험을 가진 매우 보기 드문 인물이다. 새롬기술을 창업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다이얼패드를 개발해 한국 인터넷 창업사의 역사를 새로 썼다. 미국에서 한 차례의 창업을 더 거쳐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Google)의 한국법인 대표를 맡기도 했다.

이런 쟁쟁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 최근 다시 창업에 뛰어들었다. 나이 오십이 돼서 새로운 창업에 도전하는 그는 아직도 시도하고픈 아이템 리스트가 너무 많아 혼자 소화하기 힘들 정도의 왕성한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 새롬기술과 다이얼패드, 구글 등을 거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이제 한국 벤처 창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갖고 있다.

새롬기술 창업 7

조원규는 한게임과 카카오의 창업자 김범수, 엔씨소프트의 김택진과 동갑내기다. 1966년생. 인터넷 발흥기의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세대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같은 전공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영화인의 길을 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고 지금도 영화에 빠져 지내는 나날이 많다. 어쨌든 그는 카이스트 석사 과정을 마치고 유학을 가려고 했다가 아내와 만나 결혼을 하면서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박사 과정 중이던 19937, 조원규는 카이스트 인공지능연구센터 연구원이자 학교 선배인 오상수, 최진근, 최환익 등과 함께 새롬기술을 창업했다. 조원규는 새롬기술의 핵심 사업 분야인 소프트웨어연구개발본부장을 맡았다.

오상수와 조원규는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창업이 꿈이었다. 다만 때가 무르익길 기다렸을 뿐이다. 실제로 이들은 카이스트에서 만나 매주 한 차례씩 Portware라는 소프트웨어 창업 준비 모임을 가졌다. 단순히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은 정도가 아니라 사업 아이템과 가능성에 대해 토론을 했다고 한다.

이들은 첫 아이템으로 컴퓨터로 팩스를 주고 받는 사업을 생각해냈다. 컴퓨터와 통신이 연결되면 문서를 주고받는 일이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상수가 5000만원을 조달하고 나머지 멤버가 5000만원을 모아 1억원의 자본금으로 역삼동에 오피스텔을 구했다.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돈을 못 벌면서 자금난이 심화됐다. 이들이 창업할 때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분야는 비전이 없다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가 근거가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금방 깨달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걸고 시작한 이들은 사무실 유지를 위해 뭐든 닥치는 대로 했다고 한다. 프린터 드라이버 개발 용역도 하고 홈페이지 만드는 작업도 대신 해줬다. 우여곡절 끝에 팩스맨’(FAXMAN)이라는 문서 송수신 프로그램이 나왔다. 지금이야 문서를 이메일로도 보내고 웹하드나 구글드라이브 등에 공유를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당시엔 문서를 원거리로 전송하는 게 쉽지 않았다. 팩스맨은 문서를 팩스로 보내듯 원거리로 송신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 컴퓨터에서 마우스로 처리할 수 있게 해 주는 소프트웨어였다.

팩스맨을 국내 컴퓨터업체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일어났다. 이후 소프트웨어 산업의 불황 속에서도 새롬기술은 보이스맨, 데이터맨, 페이저맨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출시하면서 매출이 성장해 나갔다.

국내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새롬기술은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해외 시장 진출을 시도한 것이다. 조 대표는 당시엔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들로선 해외 시장 진출은 숙명과도 같았다고 전했다. 아무도 하지 못한 것을 누군가는 해야만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오기 직전, 새롬기술 역시 해외 진출을 추진하게 된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총괄하고 있던 조원규는 해외 시장 개척팀으로 미국 실리콘밸리 문을 두드린다.

다이얼패드와 구글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새롬기술 경영진과 초기멤버들은 얼마 안 돼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처했다. 대한민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원화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평가절하)하고 국내 경기 상황과 함께 모기업의 상황도 크게 악화된 것이다.

갑자기 본사로부터의 자금 지원이 끊겼어요. 어떻게 할지를 문의했는데, 일단 국내 상황이 어려우니 해외 팀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답변이 왔죠.”

본사 도움이 없을 것이 명확해지자 이들의 생존 본능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새롬기술의 기존 사업 영역으로는 미국 시장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1997년에 처음 새롬기술의 해외 사업 개척 임무를 맡았던 안현덕, 조원규, 김도연 등 세 사람은 1998년부터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구상하게 된다. 아이디어는 김도연에게서 왔다.

1998년 말 크리스마스에 인터넷광고 단가가 올라가고 전화비는 내려가는 것을 본 김도연은 광고를 보여주는 대신 공짜 전화를 제공하는 수익모델을 구상했다. 조원규, 안현덕과 상의한 뒤 이들은 이듬해 19993월 한국계 투자회사로부터 자금과 사무실을 투자받아 실리콘밸리에서 다이얼패드 법인을 설립하고 그 해 1013일 제품을 출시했다. 인터넷전화의 대명사가 된 다이얼패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새롬기술과 별개의 법인으로 설립됐지만 이후 다이얼패드는 오히려 새롬기술의 중요한 사업이 된다. 한국에서 영업이 악화된 새롬기술이 다이얼패드에서 활로를 찾았기 때문이다. 새롬기술은 실제 다이얼패드에 투자도 하고 국내외에 다이얼패드를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 다이얼패드의 사업성이 부각되면서 새롬기술 주가는 2000년 한 때 300만원(액면가 5000원 기준)까지 치솟기도 했다.

고객이 최고 1400만명까지 불어나고 투자자금을 6000만달러나 받았다. 직원 수도 170명으로 늘어나는 등 미국에서 급성장을 거듭했고, 한국에서도 다이얼패드에 투자한 새롬기술이 액면가의 640배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런 호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00년초 나스닥 붕괴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코스닥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인터넷산업에 대한 실망감이 번졌고 다이얼패드의 수익성에 대한 논란, 제품 품질에 대한 불만이 확산됐다. 다이얼패드 미국 조직이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조직 관리에 어려움도 많아졌다. 결국 창업 210개월만에 법정관리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이얼패드의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고 있던 조원규 대표는 다이얼패드를 정리한 뒤 미국에서 오피니티란 인터넷 평판평가 업체를 창업했다가 2007년 구글코리아 연구개발부문 대표를 맡으면서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실리콘배리에서 창업을 하면서 새 출발을 한 지 만 7년이 넘어 8년에 접어들던 시점이었다.

새로운 출발, 스켈터랩스

그는 구글에 오면서 기대한 것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해보는 거였다. 초기 구글코리아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구글이라는 세계 자체가 너무 커진 거에요. 구글이 커지다보니 저는 신문 기사 한 줄 읽을 시간도 없을 만큼 내부에 몰두할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구글이라는 세계 자체가 워낙 거대하고 그 안에서도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서 다른 일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구글에서 독려했던 20% 프로젝트가 사라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구글은 원래 업무 시간의 20%를 딴 짓을 하는 데 쓰라고 독려했었다. 그 시간에 구상된 새로운 아이디어, 독창적인 비즈니스, 엉뚱한 사업 계획이 구글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는 구글의 창업가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경영철학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글 매출이 커지고 글로벌화되면서 20%의 의미가 점점 줄어들었다. “업무 시간에 다른 것을 구상해서 사업을 만들어도 몇 년 뒤에 고작 매출 1억 달러 정도를 올릴 뿐이에요. 벤처 기업 입장에서는 이게 엄청난 매출이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구글에서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게 되버린 거죠.”

구글에 오고 난 뒤 7년이 넘었다는 걸 알게 된 어느 날. “7년마다 새로운 일을 했더라구요. 때가 됐다 싶어서 나왔죠.” 20146월이었다.

그는 구글에서 진정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을 이번에 새롭게 시작했다. 그것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것. 작지만 빠르고 능력있는 실행조직을 만들어 이들이 실험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이런 과정을 거쳐 다수의 스타트업을 배출해내는 것이다.

<스켈터랩스 창업멤버들. 오른쪽 두번째가 조원규 대표.>

의 뜻을 듣고 과거 다이얼패드를 함께 창업했던 막강한 인물들이 모였다. 김도연, 안현덕 등이 그들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 박철준·홍용완씨 등이 설립한 창업기획사 앤드비욘드(&Beyond)에서 자금을 투자했다. 앤드비욘드 내부의 기술창업팀으로 시작했다.

조 대표 등 구글 출신 엔지니어 4명이 앤드비욘드 사무실 한 켠에 터를 잡았다. 열다섯 명 팀원 중 60% 이상이 엔지니어다. 회사명은 스켈터랩스(SKELTERLABS)로 정했다. ‘SKELTER’사방으로 흩어진다는 뜻이 있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사업화해 사방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가 스켈터랩스를 만든 것은 미국과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한국 창업 생태계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구글을 그만두고 한국의 창업 기업들을 돕는 한편 그들의 현실을 알기 위해 TIPS 심사위원을 맡았어요. 그런데 사실 너무 실망했습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벤처가 아닌 사업을 하려고 하더군요. 그냥 작은 시장에서 의미있는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도 나쁘진 않죠. 하지만 그것은 기술 기반의 벤처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냥 사업일 뿐인 거죠. 누군가는 제2의 구글, 페이스북을 만들어서 하키스틱(J모양) 같은 성장 곡선을 그려야 합니다. 그게 벤처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인 겁니다.”

그는 한국에선 왜 글로벌 벤처가 잘 안나올까를 고민했고 A급 인재가 모이는 창업 플랫폼을 만들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A급 인재가 모이게 하려면 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대기업에 모여있는 A급 엔지니어들을 나오게 하려면 투자자의 역할이 지금 한국과 같은 방식이 되선 곤란하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투자자들은 그냥 자금만 투자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금도 투자하지만 경험과 네트워크, 인사이트 등 방대한 분야를 지원합니다. 그런데 한국엔 파이낸스 투자자밖에 없는 것 같아요.”

 조 대표는 스켈터랩스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투자자-창업가 모델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창업가는 실행하는 사람, 투자자는 목표 설정과 펀딩을 도와주고, 심지어 후속 투자까지 이끌어주는 존재라는 것. 창업가가 돈 구하러 뛰어다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일단 조 대표 본인이 스켈터랩스의 대표이자 이런 창업가 자신이 됐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스켈터랩스 내에서 구체화해 비즈니스가 성장하면 스핀오프를 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컴퍼니 빌더로서의 첫 프로젝트를 자신이 스스로 시작한 것이다. 그게 201412월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새 추가되고 추가돼 이제 프로젝트 4개를 바라보게 됐다. 프로젝트별 대표들은 기업가로서 해당 사업을 책임지지만 스켈터랩스는 컴퍼니빌더로서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수행한다.

한국의 유니콘 기업 배출해내는 컴퍼니빌더된다

썸데이(Thumbday)는 스켈터랩스의 첫 번째 아이템이지만, 조원규 대표가 갖고 있는 수많은 아이템 리스트의 하나일 뿐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 대표 본인이 기획하고 직접 총괄 지휘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그는 기록을 남기는 것은 좋아하지만 텍스트 입력은 싫어하는 자신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이 서비스를 기획했다고 한다. 썸데이는 기록을 남기는 앱이다. 그런데 기록을 남기는 데 타이핑을 할 필요가 없다. 앱을 깔면 스마트폰 주소록에 있는 친구들이 자동으로 등록된다. 이 친구들이 앱을 같이 쓴다면 자신이 남긴 기록을 공유할 수 있다. 물론 혼자만 보는 것도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자신을 위한 기록이고 다른 이들과의 공유는 선택 기능으로 들어간다.

예를 들어 영화 관람을 하면 영화 항목을 관심사로 담고 같이 본 친구를 찾아서 추가하고 사진을 넣고 함께 저녁 먹으러 간 위치를 표시하거나 사진을 올릴 수도 있다. 여행 중의 기록도 엄지 손가락으로 툭툭 치듯이 몇 번만 클릭하면 상세한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텍스트를 입력할 필요는 거의 없다. 앞으로 하려는 일, 계획하고 있는 사안에 대한 기록도 가능하다. 이것 역시 주로 영상과 이미지, 위치 지도, 타임테이블 등으로 대부분 표현할 수 있다. 매 순간 기록을 남기고 이것이 축적되면 개인에게도 상당히 의미있는 데이터가 되겠지만 썸데이 차원에서도 엄청난 데이터가 될 수 있다.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많이 다니거나, 외부 활동(외부 손님과의 미팅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한 기능이 많다. 기록을 그때 그때 남기고 싶어도 번거로워서 못 했던 사람들이나 스마트폰에서 글 쓰기가 힘든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 외부 활동이 많지 않더라도 쓰임새는 얼마든지 다양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즐겨듣는 책이나 음악 등에 대한 기록을 쉽게 남길 수 있다. 자신이 최근 생각하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간단한 기록을 남겨두는 것도 엄지손가락 클릭 몇 번이면 가능하다.

데이터가 쌓이면 차차 개인화된 추천 기능 등 추가를 할 수 있다. 조 대표는 최근 Facebook SNS 에 지친 사람들이 탈 SNS 경향을 보이고 있다개인화 Application 에 대한 필요성 대두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by wonkis

*이 글은 KT경제경영연구소 디지에코의 스타트업 스토리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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