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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14 한국의 스타트업-(94)그레이삭스 이승이 대표

사업을 하는 데 역시 가장 어려운 것은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것, 그리고 그들이 함께 꿈꿀 만한 비전과 목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레이삭스도 그랬다. 하드웨어 제조업체에서 시작해 외주 작업도 하고 다양한 스마트폰 앱을 개발해오다 SNS에 도전하는 현 모습에 이르기까지 모였다가 헤어지고, 아이템을 수정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창업자가 일관되게 사업에 대한 비전을 품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음악을 좋아한 엔지니어

포항제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 기계정밀공학과에 입학한 ‘학생’ 이승이는 음악을 좋아했다. 연주도 좋아했지만 특히 음악 감상에 취미가 있었다. 첫 학기에 그는 음악 동아리방에 가서 거의 살다시피한 것 같다. 좋아하는 음악도 마음껏 들을 수 있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리에서 그는 나중에 함께 창업을 하는 방무석을 만난다. 

 첫 학기만 마치고 그는 바로 군에 입대했다. 나 역시 그랬지만,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20대 초반의 남성은 좀 다급해지기 마련이다. ‘매를 먼저 맞자’는 심정으로 그 역시 일단 군 문제를 해결하러 입대했다.

 제대하고 그는 학교에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라도 미국에 가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작은 결정이 그의 인생 진로를 바꿔놓을 줄을 그가 알았을까. 4개월짜리 어학연수를 갔는데 돌아가려고 하니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그는 귀국을 1년 늦추기로 햇다.

 1년의 시간이 주어지자 다시 주위를 차분히 둘러봤다. 그전까지 그는 다만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미국 학생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을 뿐이었다. Boston에 있었던 그는 현지 유학생들과 대화를 하다가 용기를 얻게 된다. “선배들이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너도 이곳 좋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너보다 훨씬 영어도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왔다. 너는 할 수 있다’ 라구요. 그래서 그 말에 입학 준비를 시작했죠.”

 공부한 시간은 고작 6개월. SAT를 보고 서류도 준비할 게 많았다. 정신없이 시간은 지나갔다. 반신반의한 가운데 결단의 시간이 왔다. 한국에서 학교 복학 최후통첩이 온 것이다. 그동안 군대 등으로 휴학을 많이 해 더 이상 휴학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고 복학신청을 하지 않으면 제적이 된다는 통보였다. 하필이면 미국 대학 합격자 발표가 복학신청 마감일 이후였다. 그로서는 미국 대학 합격을 확인한 뒤 편안한 마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이다.

 “부모님께 전화를 했어요. 복학하지 않겠다구요. 그리고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학에 합격할 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잘못하면 스물넷의 나이에 고졸로 다시 출발해야한다는 생각도 했죠.”

◆다만, 후회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10여개 대학에 원서를 냈는데, 줄줄이 합격 통지가 날아왔다. 기대치 않았던 아이비리그에서도 합격장이 왔다. 그는 뿌듯한 마음으로 코넬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첫 1년은 학교 생활 적응과 생존이 오로지 목표였던 시절이었다. 코넬대 당시 입학생 중에서 그는 외국에서 학교를 다닌 경력없이 바로 입학한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고 한다. 그가 겪었을 고초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세월이 흘러 코넬대 전자공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그가 선택한 직장은 삼성전자. 미국에서 면접을 보고 바로 입사해 금의환향,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그때가 2002년이었다. 2007년까지 그는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무선사업부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만든 것이 ‘블랙잭’이었다.

 좋은 직장에서 5년 이상 일하면서 그는 ‘인생의 시나리오’를 계속 생각했다. “50이 넘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이 회사에서 탄탄대로를 밟아 제일 잘 됐을 때를 생각했을 때 내 모습은 어떨까.”

 직장에서 가장 성공했을 때를 떠올려봐도 그는 별로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언젠가는 내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후회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어요. 내 일이 아닌 것을 계속 하면 언젠가 지칠 것이고 그렇게 살아온 자신에게 실망하고 후회할 것 같았죠. 힘들겠지만 내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알게 된 2명과 함께 나와 창업을 했다. 한양대 시절 알게 된 방무석도 창업멤버로 합류했다. 2007년 3월 그의 첫 창업 회사 ‘브레인쿼드’를 설립했다. 브레인쿼드는 전자악기를 만드는 업체였다. 하드웨어 회사다.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을 만한 전자키보드를 만들었다. 1년반 동안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08년 10월 프로토타입이 나왔다. 이승이 대표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제품을 들고 투자자를 물색하고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리만브라더스 사태가 터졌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투자 심리는 얼어붙었다. 투자자를 찾지 못했고 그렇게 그의 첫 창업 작품은 흐지부지되고 있었다.

◆아이팟터치에 놀라다

2009년초 음악을 들으려고 아이팟터치를 구매한 이승이 대표는 깜짝 놀랐다. “제가 스마트폰을 만들어봐서 원리나 기계적인 장치 등에 대해서도 알쟎아요. 그런데 사용해보는 순간 ‘이 정도 퍼포먼스가 어떻게 가능할까’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손으로 키보드를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이런 기기를 이용해 터치만 하면 악기 연주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오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사업을 수정했다. 하드웨어 제조업체에서 앱 개발사로 변신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서 창업 멤버는 방무석 이사와 둘 만 남게 됐다. 변변한 사무실도 없어 고생하던 차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진형 교수가 사무실을 빌려주는 대신 일을 좀 도와달라는 제안을 하게 된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이 잘 풀리려니 때마침 더팟이라는 디자인 회사가 새로운 개발팀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회사 김홍균 대표와 만난 이승이 대표는 서로 뜻이 통한다는 것을 알고 회사를 합치기로 했다. 2009년 7월 통합회사 그레이삭스가 설립됐다. 이승이 대표가 그레이삭스의 대표를 맡고, 김홍균 더팟 대표는 그레이삭스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기로 했다.

 그레이삭스는 한동안 음악 관련 앱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성과도 냈다. Finger Stomp, Drum Meister, String Trio, Aquarist 등 앱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드럼 앱과 스트링 트리오 등은 특히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수익성이 신통치 않았다. “이렇게 해서 돈을 벌려면 정말 앱을 10개 이상 만들어야겠더라구요”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 이상이었다. 

 물론 운영비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외주 사업을 하면서 회사 운영비는 차질없이 벌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회사의 대표작을 만들고픈 마음은 한결같았다. 하지만 음악 앱을 들고 투자받을 생각은 없었다. 다행히 기회가 왔다. 이승이, 김홍균 등 회사 주력 멤버들이 밤늦게 회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사진을 활용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거다!’ 싶은 생각에 이승이 대표가 작업을 시작, 불과 이틀만에 뚝딱하고 기본 컨셉트를 만들었다. 이제 투자를 받고 본격적으로 개발에 나설 때가 됐다.

◆미디어를 지향하는 사진SNS, ‘해프닝’

2011년 이승이 대표는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주최하는 한 조찬모임에서 회사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장병규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대표와 만난 게 계기가 돼 2011년 11월 엔젤 투자를 받게 된다.

 사진을 활용한 SNS 이름은 해프닝(Happen.in). 올해 입사한 이승이 대표의 코넬대 후배 박지현씨가 이름을 지었다. 얼핏 보기엔 사진을 올려놓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이를 통해 사람들을 사귀어 가는 여느 SNS와 유사하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우선, 지금 찍은 사진만 올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트위터처럼 리트윗을 해서 전파하는 방식으로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진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대상은 얼마든지 제한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하면 실시간으로 찍은 사진만 올려놓고 이것을 통해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서비스다. 

 “사진을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브로드캐스트할 수 있는 서비스가 없습니다. 사진을 이용한 미디어가 얼마든지 가능해지는 거죠.”

 처음부터 실시간 사진이라는 컨셉트로 간 것은 아니었다. 만들다보니 현재 찍은 사진만 올릴 수 있게 했는데, 거기서 의외의 즐거움을 찾은 것이다. “실시간 사진만 올려놓게 하니까 3가지가 달라지더군요.”

 그게 뭘까. 우선 올라오는 사진이 달라진다는 점. 그리고 댓글이 아니라 사진으로 사람들이 대화를 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실시간으로 사진을 검색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사진을 공유하면서 전세계의 뉴스를 공유하는 식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위치를 추가하면 서비스가 한층 더 발전한다. 위치를 정해놓고 해당 지역에서 올라오는 사진을 실시간으로 볼 수도 있고 그 지역의 그동안의 사진을 검색할 수도 있다. 아직 내부적으로 베타테스트중인 해프닝은 9월 중 베타서비스를 시작하고 10월중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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