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으로 생각한 것과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과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때로는 생각해내는 것 자체가 대단하기도 하지만 상품화의 벽은 높다. B2C 비즈니스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의 엄중함은 겪어보기 전엔 상상이 힘들 것이다. 퍼니버섯(Funny Busut)의 홍지현 대표는 그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몸소 체험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시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는 재빨리 습득하고 다음 단계로 한걸음씩 나가려고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창업가를 꿈꾼 건축학도

홍 대표는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04학번)를 나왔다. 건축학을 전공한 IT 분야 창업가를 만나기는 매우 오랜만인 것 같다. 졸업을 하고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기까지 그는 다른 길을 생각해보진 않았다. 건축은 전문 분야가 뚜렷하기 때문에 그는 건축사무소에서 일할 때까지 건축가로서 성장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변화의 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 그가 일했던 사무소는 홍대 모 교수가 하는 곳이었는데, 그는 여기서 2년 동안 ‘미디어아트’ 분야를 담당했다고 한다. 건축에만 관심을 갖고 있던 그가 처음으로 IT분야에 눈을 뜨는 시점이었다.

“현실을 깨달았다는 이유도 있었어요. 건축사 사무소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고 나서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거죠.”

때마침 디자인 오픈소스와 관련된 워크샵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무작정 여기에 참가했다. 오픈소스와 협업의 힘에 관심이 생긴 그는 아예 IT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기로 한다. SK텔레콤의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와 관련한 협력사에서 일하게 된다.

“좀 생소한 분야였을 것 같은데..무슨 일을 했나요?”

“처음엔 아마존서비스 등 다른 클라우드 서비스를 분석하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나중엔 기획도 했죠.”

IT 회사에서 일하면서 비슷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동료들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 클라우드컴퓨팅을 활용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하는 개발자 2명과 함께 스마트TV 앱 공모전에도 나가게 됐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뭔가를 해보려고 하면 어떻게든 길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스마트TV협회에서 주최하는 이 대회에서 상까지 받게 된다. 수상을 한 덕에 지원금도 받고 이것으로 앱을 개발해 출시까지 했다. 이게 2013년, 작년의 일이다.

결과는? “잘 안됐어요. 사업성은 별로라는 생각을 그때도 했었죠. 그래도 했던 이유는 기술자로서 도전해볼 만한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이런 분야를 알기 위해 직접 부닥쳐봐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도 당시 기술적인 이슈가 됐던 멀티스크린 연결 방식도 배우고 앱 시장의 현실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은 작은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발자 2명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감을 익혀온 홍 대표는 드디어 2013년 11월, 창업에 나섰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됐다. 이름하여 퍼니버섯의 탄생이다.

<퍼니버섯의 창업멤버들. 뒷줄 왼쪽 두번째가 홍지현 대표.>

◆생각과 현실은 달랐다

“이름이 왜 퍼니버섯이에요?”

“제가 버섯을 좀 좋아해요. 하하. 그리고 버섯이 확 퍼지잖아요. 재미가 그렇게 확 퍼지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엔 게임 개발로 시작했다. 단말기를 연결해서 여럿이 즐기는 게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클라우드업체에 다니면서 멀티스크린 관련 기술 업무를 했었던 게 창업 아이템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사람들이 모였을 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 이렇게 시작됐다. 스마트폰을 서로 꺼내서 게임을 실행하면 캐릭터가 각자의 스마트폰을 옮겨다닌다. 이를테면 이 캐릭터를 잡는 게 게임의 내용이 된다.

‘게임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사업을 시작했다.’ 이게 홍 대표의 총평.

“게임은 혼자서 하쟎아요. 네트워크로 연결되서 다른 사람과 경쟁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물리적으로는 혼자 붙잡고 하는 게 대부분인데 너무 그런 현실과 동떨어졌죠.”

게임을 4종을 개발했는데 성과는 썩 신통치 않았다. 호평을 받은 게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개발한 게임만으로 회사를 지속가능하게 운영하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새로운 계기는 생활 속에서 나왔다. “함께 창업한 멤버들이 다들 전형적인 개발자들이에요. 평소엔 말도 없고 계속 일만 하죠. 숫기도 없어요. 그런데 온라인 대화는 정말 잘들 하더라구요. 멤버들하고 온라인 그룹채팅을 하다보니 온라인에선 유머감각들도 있고 재밌다는 걸 알았어요.”

멤버들의 독특한 유머감각을 생각하던 중 유머콘텐츠에 빠져든 홍 대표. 나름의 시장 조사를 통해 유머콘텐츠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있는 반면 콘텐츠 플랫폼은 미진하다고 판단한 그는 멤버들을 설득해 유머SNS를 만들기로 한다. “국내포털사이트의 웃긴사진, 웃긴짤, 움짤등의 키워드 검색량은 하루에 1만건이 넘어요. 웃긴사진하나로 몇십만건 이상의 공감을 얻어낸 콘텐츠도 세상에 너무 많죠.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공감가는 유머콘텐츠를 만들어낸 창작자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거의 모르죠.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장이 확산된다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 11월 25일 퍼니버섯이 출시됐다. 안드로이드 버전이 우선 나왔고 12월 중에는 애플 앱스토어 버전도 나온다.

◆유머SNS로 콘텐츠플랫폼 키운다

'퍼니버섯'는 쉽게 말해 유머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SNS다. 유머콘텐츠 작가들이 창작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머캐스트' 기능을 이용, 창작자가 자신의 이름을 건 창작물을 올릴 수 있다. 이용자들은 서로의 유머캐스트에서 '개웃', '썰렁' 등의 '스티커'를 통해 각자의 유머코드에 대해 자유롭게 평가를 주고받는다. 매주 인기 있었던 웃짤을 만든 창작자를 소개하고 재미있는 유머토픽을 통해 이용자들이 공통된관심사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웹툰작가, 시인, 개그작가 뿐 아니라 다양한 UCC 창작자들도 자신의 이름을 건 콘텐츠를 자유롭게 공유 할 수 있다. 순수창작물과 그렇지 않은 것은 별도의 마크로 구분된다. 

 대화체로 키워드를 검색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 창작자가 만든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해시태그를 응용했다. #헉, #맙소사, #으리 등 유행어나 신조어로 검색이 가능하기 때문에 모바일메신저 또는 블로그글을 쓰는 사람들이 적절한 웃짤을 손쉽게 찾는 것이 가능해졌다. 

 플랫폼 콘텐츠로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에 퍼니버섯은 사용자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무분별한 광고는 지양한다는 방침. 창작자의 인기를 통해 얻은 광고수익에 대해 적정한 수익쉐어를 할 계획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SNS 자체가 활성화되야 하고 내부에서 이에 대한 의식이 형성돼 있어야 할 것 같다. 팬덤이 형성된 작가에게 대중이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수익모델을 적용할 계획이다. 구글플레이에서 '퍼니버섯'을 검색하면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고 웹으로도 접속이 가능하다. 12월말에는 애플 앱스토어에도 출시할 계획이다.

홍 대표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대우받고 이들이 정당한 권리와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궁극적으로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유머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SNS에 그치지 않는다. 검색 엔진으로 연결해 언제 어디서나 유머콘텐츠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이를 공유하게끔 할 계획이다. 홍 대표는 "유머콘텐츠 창작자의 권리가 보장되고 창의적인 유머작가가 발굴될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싶었다”며 “불펌의 악순환을 끊고 공유가치를 통해 창작자가 새로운 기회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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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김정주 넥슨 회장을 만났을 때 그의 창업 이야기를 잠깐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공개된 거창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의외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단편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간략하게나마 정리를 해 봤습니다.
이 글은 블로그에 올라오기 전 월간 '머니' 2월호에 먼저 게재됐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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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년 일본을 방문한 서른살 벤처기업가 김정주 넥슨 사장( NXC 대표)은 전자제품 매장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는 장면을 본다. 족히 100미터는 넘어 보이는 그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닌텐도 게임기를 사기 위해 모여있다는 것을 알고 그는 충격에 빠졌다. 그날 밤 일본에 연수중이던 최승우씨를 만나 식사를 함께 하며 두 사람은 의기투합을 했다. “닌텐도를 이기는 게임 회사를 만들자

 당시 넥슨은 게임 사업을 막 시작했지만 게임보다는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회사였다. 김 대표는 한국으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게임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귀국한 최승우씨도 넥슨에 합류했다. 그렇게 13년이 흘렀다.

 2011 1214. 넥슨재팬이 게임의 본고장 일본 증시에 상장하며 김정주 대표의 꿈은 첫 발을 내딛었다. 넥슨의 매출액은 2010년 기준 1조원 수준으로 21조원에 달하는 닌텐도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순이익도 닌텐도 33000억원, 넥슨 3100억원으로 10분의 1 수준이다. 그럼에도 일본 증시에 상장된 넥슨의 시가 총액은 8조원으로 닌텐도(25조원) 3분의 1에 달했다. 실적에 비해 훨씬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김정주 대표의 지분을 환산한 개인 재산은 3조원으로 불어났다. 증시에서 넥슨의 가치가 높게 평가받은 것은 성장성때문이었다. 넥슨의 영업이익은 2010 49.9% 증가했지만 닌텐도는 35.8% 줄었다. 2011년에도 넥슨은 30%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닌텐도는 실적이 후퇴한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닌텐도를 이기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김정주 대표의 꿈은 이렇게 조금씩 현실이 되가고 있다.

◆수재 청년, 온라인 게임을 최초로 만들다
김정주 대표의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덕분에 그는 돈 걱정이 없는 집에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집안도 좋고 머리도 비상했던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86학번)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 전산학과에 들어갔다. 기숙사에서 그는 이해진씨(NHN 창업자)와 같은 방을 썼다. 그들의 방 옆에 송재경(XL게임즈 대표), 김상범(넥슨 이사) 등이 있었다. 이들 네 명은 거의 붙어다니다시피 하며 진로를 고민했다.

 송재경, 김상범 두 사람은 카이스트에서도 소문난 괴짜였다. 송재경은 천재 프로그래머로 벌써부터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김상범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교수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김정주 대표는 송재경, 김상범, 이민교 등과 함께 1994 12월 넥슨을 창업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살 때였다.

 넥슨이 처음부터 게임업체는 아니었다. 웹 오피스라는 인터넷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기업체 내부의 인트라넷을 개발하는 용역 업무도 했다. 아시아나 항공의 예약 시스템을 1995년 개발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주 대표는 이런 인트라넷 솔루션으로 계속 사업을 영위할 생각은 없었다. 외주 개발 업무는 현금 확보를 위한 일종의 수단이었다. 넥슨의 창업자들은 당시 PC통신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온라인게임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봤다.

 1994년 마리텔레콤이 개발한단군의 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여러 사람이 접속해 온라인으로 즐기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이 게임은 그래픽이 없는 텍스트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텍스트로 제시되는 상황 설명을 보고 키보드로 명령어를 입력해 게임을 했다. ‘텍스트로 제시되는 상황 설명 대신 그래픽을 넣으면 어떨까.’ 지금은 게임에 그래픽이 들어가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만 당시만 해도 낮은 PC 사양에 복잡한 개발 과정, 비싼 서버 비용 등으로 인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김정주 대표와 넥슨은 이런 아이디어를 최초로 실현시킨 것이다.

 넥슨은 1995년말 고구려 대무신왕의 정벌담을 그린 온라인게임바람의 나라개발을 완료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4월 이 게임의 유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초의 그래픽 기반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는 게이머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당시 동시에 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고작해야 몇십명 수준이었지만 온라인에서 여러명이 한꺼번에 접속해 게임을 즐기도록 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시도였다. 넥슨은 이듬해인 1997 10월 두번째 작품어둠의 전설을 출시했다. 

◆시대의 흐름을 타다
김정주 대표가 일본을 방문해 닌텐도 게임기를 사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을 봤을 때는 바람의 나라와 어둠의 전설을 출시한 직후였다. 그는 일본에서 소니와 닌텐도 같은 콘솔 업체가 만든 게임을 보며 절망했다. 몇명이 모여 뚝딱 만든 넥슨의 게임과 수백억원을 들여 수천명이 만든 소니와 닌텐도의 게임은 하늘과 땅 차이였기 때문이다. 조잡한 그래픽과 열악한 개발 환경 속에서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끈기있게 계속해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었다.

 1998 12월에는일랜시아라는 게임을 출시했고 이어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게임을 내놓았다. 90년대에 넥슨은 매년 새로운 게임 타이틀을 내놓는 국내 유일한 게임회사였다. 게임을 직접 개발하는 게 힘들 때는 좋은 게임을 사들이기도 했다. 넥슨의 이름으로 국내 게임 산업의 흐름을 바꿔놓을 만한 인기 게임들이 계속 출시됐다. 퀴즈퀴즈, 크레이지아케이드,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카트라이더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게임들이 줄을 이었다.

 김정주 대표에게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그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운 좋게 시대의 흐름을 잘 탔습니다

콘솔 게임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한쪽에서 PC 시장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다. 넥슨이 만든 게임은 PC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즐기기에 가장 좋은 콘텐츠였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최대의 장점이었다. 그는실력보다는 시대가 우리 쪽으로 흘렀습니다.”라고 넥슨의 성공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게임 콘텐츠를 내놓고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지치지 않고, 자신이 파악한 시장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를 읽으면서 꾸준히 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넥슨은 해냈다.

◆게임만 잘 하기도 어렵다
넥슨과 관련해 자주 도는 소문이 있다. 제주도에 테마파크를 건설한다거나 영화 사업에 진출한다거나 하는 등의 소문이다. 넥슨이 향후 디즈니랜드 같은 기업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도 종종 들린다. 이럴 때마다 김정주 대표는 이런 말을 한다. “넥슨은 영화나 음악 등 그 어떤 다른 산업에도 진출할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게임에만 집중할 겁니다. 미디어 회사가 될 생각도 없구요, 그럴 여력도 없습니다. 게임만 잘 하려고 해도 어렵습니다. 아직 넥슨이 개척하지 못한 해외 시장도 많고 넥슨은 스포츠게임에서 성과를 보인 게 없습니다. 게임 분야에서도 넥슨은 더 노력해야 합니다.”

 넥슨이 오늘날 미국의 액티비전블리자드에 이어 세계 2위권 온라인게임업체가 된 것은 게임 한 분야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넥슨은 특히 국내외 다른 어떤 게임 회사보다 콘텐츠 개발과 서비스 유지에 공을 많이 들이는 회사다. 이것은 김정주 대표의 사업 철학이자 그가 넥슨에 대해 가장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다. 넥슨의 게임 중 바람의 나라는 출시된 이후 지금까지도 국내외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96년에 출시됐으니 벌써 16년이 됐다.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마비노기 카트라이더 등 넥슨의 인기 게임들은 모두 꾸준히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유지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많은 타이틀에 있어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넥슨이 유일하다.

 넥슨은 플랫폼에 욕심을 낸 적도 없다. 자신들의 게임을 집대성해 그것만 즐길 수 있는 자체 플랫폼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들 법 한데 플랫폼 쪽으로는 별다른 시도를 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작년 여름 기자와 만나 회사의 경영 방침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콘텐츠 회사입니다. 콘텐츠 회사는 플랫폼 영역을 넘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플랫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갑니다. 넥슨은 많은 게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바일이나 소셜용으로 변환하는 것도 엄청난 작업입니다. 앞으로도 플랫폼이 점점 다양해지고 사람들은 다양한 기기,플랫폼에서 게임을 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런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

 김 대표는 다시 시작된 시장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그이지만 지금은 잠도 못 이룰 만큼 고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PC를 외면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넥슨의 성공 기반은 PC였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PC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확 줄었다. 아무리 좋은 게임을 만들어도 시대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걸 김정주 대표는 잘 알고 있다. 어쩌면 10여 년 전 소니가 했던 고민을 지금 그가 하고 있다.

<2011년 5월 김정주 넥슨 회장을 만났을 때 사진. 갑작스레 만나 예고없이 사진을 찍었지만 흔쾌히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했다. >

◆사람, 사람, 사람
2011 11 16일 오후 KAIST 정문술관 2층 강의실. 세계적인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의 연주 동영상이 화면에 떴다. 케니 지가 자신의 밴드 구성원을 한 명씩 청중에게 소개하며 칭찬하는 10분 분량의 동영상이었다.

 김정주 대표가 강단에 서 있었다. 그는 2011년 9월부터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에서기술벤처라는 과목을 맡아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이 동영상을 보여준 뒤 학생들에게이 동영상을 보고 오래 생존하는 기업의 특징을 맞혀보라고 문제를 냈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는팀원들의 유대감을 유지하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20년 전에도 잘나가던 회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속가능한 기업이 되려면 오랫동안 함께 일할 만한 사람을 고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은오랫동안 함께할 만한 사람으로 좋은 사람과 유능한 사람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좋은 사람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그는유능한 사람은 컴포넌트(부품) 역할이 끝나면 나가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면서앞으로 이 사람이 나와 20년을 같이 일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것이 경영자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승우 넥슨재팬 대표, 서민 넥슨코리아 대표, 다니엘 김 넥슨아메리카 대표, 박경환 넥슨차이나 대표, 한경택 CFO(최고재무책임자) 등은 그가 손꼽는오래 일을 같이 할 만한 좋은 사람들이다.

 그는 항상 사람을 강조해왔다. 게임을 종합 작품으로 생각하는 그로서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넥슨은 흔히 자체적으로 게임을 잘 만들었다기 보다는인수합병(M&A)을 잘 해서 큰 회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넥슨의 히트작 메이플스토리는 이승찬 씨가 설립한 위젯이라는 작은 게임개발사가 만들었다. 던전앤파이터는 허민 위메이크프라이스 대표가 만든 네오플에서 개발한 게임이다. 군주온라인, 아틀란티카는 엔도어즈에서 만들었고, 국내 최고 인기 총싸움게임 서든어택은 게임하이의 작품이다. 넥슨은 이런 좋은 게임 개발사들을 모두 인수하면서 덩치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넥슨이 M&A를 계속 해 왔던 것에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좋은 콘텐츠 못지 않게 좋은 사람을 찾는 그의 경영 스타일 때문이다.“오래 같이 즐겁게 일할 사람을 항상 찾고 있습니다. 사업에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그는 오늘도 또 다른 대박 신화를 일궈낼뛰어난 인재가 아닌, ‘좋은 사람을 찾아 다니고 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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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노인터랙티브는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를 진행하면서 처음으로 나오는 본격 리얼 게임 회사다.이렇게 본격이니 리얼이니 하는 말을 강조하는 것은 이 회사가 국내에서 그리 흔하지 않은 콘솔 게임용 콘텐츠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콘솔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것 외에도 이 회사는 이 코너에서 소개했던 회사들과 차이가 나는 점이 많았다.아직 창업 초창기이지만 게임 개발사답게 비교적 많은 인력으로 구성돼 있고 투자도 상당히 많이 받았다.(물론 게임사로서는 반드시 금액이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창업진들은 모두 한국인이지만 중국,영국,미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경험을 쌓고 창업을 했다는 것도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최근에 아주 젊은 창업자들을 많이 소개했었는데 쿠노인터랙티브의 등장으로 한국의 스타트업 평균 연령대도 조금 높아지게 됐다.쿠노인터랙티브의 창업자들은 상당 기간 사회 경험을 한 뒤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꿈
 쿠노인터랙티브를 만든 김상준 사장은 스토리가 제법 있는 인물인 것 같다.첫인상부터 그랬다.사장이지만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하고 있는 그는 연륜이 느껴졌고 차분한 가운데 썰렁한 농담도 잘 하는 사람이었다.(대부분 개발자인데다 남자들로 득시글대는 사무실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서일까)

 김 사장은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서 학교를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90년대초반 다른 학교에 들어가 군대까지 마쳤지만 애니메이션을 해보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국민대 미디어디자인학과 00학번으로 재입학하게 만들었다.국민대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나래디지털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서 3D(입체)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일을 했다.하지만 2002년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는 바람에 회사를 나와 광고회사,공공기관,게임개발사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나래에서 일은 뜻대로 안 됐지만 그는 훗날 함께 창업을 하게 되는 사람들을 모두 이곳 나래를 통해 만나게 됐다.이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지금 쿠노인터랙티브를 공동 창업한 연경흠 부사장이다.나래디지털에서 만난 두 사람은 2002년 김상준 사장이 광고회사로 이직하고 연 부사장이 아주대학교로 옮기면서 헤어지게 된다.하지만 아주대를 통해 두 사람의 인연은 다시 이어진다.

 아주대에서 산학협력프로젝트를 맡게 된 연경흠 부사장은 애니메이션 팀장으로 일하면서 장진만씨(쿠노 CTO)를 만났고 장진만의 절친인 류태영 이사를 알게 된다.김상준,연경흠과 장진만,류태영은 조금씩 그리는 그림이 달랐던 것 같다.김상준과 연경흠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장진만,류태영은 게임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연 부사장이 2008년 아주대를 떠나 CJ를 거쳐 중국으로 떠나면서 이들은 다시 헤어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들이 다시 만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의리로 뭉친 사나이들
 사람이 어떤 일을 도모할 때 누군가가 떠오르는 것은 신기한 현상 중 하나다.수많은 이들을 경험하더라도 꼭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광고회사와 공공기관 등에서 일을 하면서도 김상준 사장은 가끔씩 연경흠 부사장과 연락을 해 왔다고 한다.그러면서 어떻게든 애니메이션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현실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그때 두 사람은 벤쿠버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만난 아주대 멤버들 중 류태영,장진만 두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연경흠 부사장이 아주대에 있던 시절 두 사람과 알게 됐고 이후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던 것도 이들이 합류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류태영 이사는 고품질의 애니메이션 기술을 게임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아주대를 나와 미국 USC(남가주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연구원 생활을 했던 류 이사가 합류하면서 4명의 창업진이 완성됐다.

 이들을 만나보면 그들만의 끈끈한 의리로 뭉쳐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여러 곳을 거치고 때론 허송세월을 하기도 했지만 꿈을 쫓아 노력해왔다는 점이 이들의 공통점이었다.각자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쿠노를 창업한 이들이 콘솔 게임이라는 국내의 희귀 분야에서 인재 찾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 최적의 인물이 느닷없이 회사를 찾아온다.김상준 사장은 “이런 게 운명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10월 말께 쿠노에 합류한 이세현 아트실장은 프로그래머 출신이지만 아트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한 사람이다.남아공에 이민을 간 부모님을 따라 남아공에서 살다가 영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테크니컬아트리드로서 키넥트 스포츠 1,2를 개발하는데 참여한 이세현 실장은 쿠노가 찾던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정통 콘솔게임의 개발 과정을 다 겪었다는 점,글로벌 회사에서 팀을 이뤘다는 점,자신이 만든 게임을 출시해봤다는 점 등 여러가지 면에서 최적의 경험과 기술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가족 문제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되는 상황이 된 이세현 실장은 공부나 하자는 차원에서 쿠노를 방문했다가 덜컥 입사를 하게 됐다.그가 낚인 것인지,화룡점정을 찍은 것인지는 곧 알게 될 것 같다.

<쿠노인터랙티브 창업멤버들.왼쪽부터 류태영 이사,김성준 대표,연경흠 부사장,장진만 CTO>


◆뮤턴트 디펜스 출시
 쿠노인터랙티브가 만들고 있는 게임은 뮤턴트 디펜스(Mutant Defense)라는 일종의 디펜스 게임이다.방어가 게임의 핵심인 이 장르는 콘솔게임 영역에서도 디펜스그리드,새비지문 등 유명작들이 포진해있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영역에 비해 경쟁이 덜 치열하고 대작의 수가 적은 곳이다.

 작년 4월부터 게임 기획을 한 쿠노의 창업진들은 작년 10월 법인 설립을 하고 게임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외부 활동을 했다.지난해 정부지원과제 중 뉴미디어 지원사업,게임 지원 사업 등에 선정되면서 7억원 가까운 돈을 지원받았다.올해 들어서는 LG전자의 모바일콘텐츠지원사업 1호 선정되면서 추가로 개발금을 지원받았다.

 벤처치고는 개발비가 넉넉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게임,그것도 콘솔게임이라는 분야를 감안하면 꼭 자금이 넉넉하다고 보기는 힘들다.쿠노인터랙티브는 액션게임 모로,퍼즐게임 룸즈2 등 뮤턴트 디펜스에 뒤이어 나올 게임들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 이 분야의 개발자들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다.김상준 대표는 “현재 내년 상반기에 출시될 뮤턴트 디펜스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지만 콘솔 전문 개발사로 크기 위해선 시장의 반응이 있을 때 좋은 게임들이 잇따라 나와야 해 동시다발적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며 “해외 퍼블리셔들과 협력해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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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게이트를 아십니까

게임이야기 2011. 10. 11. 17:20 Posted by wonkis

영업이익률 80%,매년 100% 이상 성장,최고 동시접속자수 세계 기록 보유,게임 출시한 지 4년만에 매출 1조 달성.

스마일게이트라는 게임 개발사가 갖고 있는 기록이다.이 회사가 2007년 출시한 크로스파이어라는 게임이 중국에서 말 그대로 대박이 나면서 스마일게이트는 게임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2009년 매출이 261억원,영업이익이 183억원이었던 이 회사는 2010년 매출액 815억원,영업이익 658억원을 기록했다.영업이익률이 무려 80.7%다.올해는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연매출 18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영업이익은 1467억원으로 예상된다.영업이익률은 지난해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81.5%!!

이 회사를 창업한 권혁빈 사장의 스토리도 흥미를 끈다.서강대 전자공학과 92학번인 권 사장은 대학 4학년때 삼성전자 입사 기회를 뿌리치고 창업을 택했다.1999년 이러닝 솔루션 업체인 포시소프트를 차려 업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창업에 다분히 자질이 있는 인물이다.2001년 회사를 공동 창업자에게 넘기고 유학 준비를 하던 중 게임으로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2002년 스마일게이트를 창업한 그는 이제는 국내 게임 산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실적을 올리는 회사의 대표가 됐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스마일게이트가 중국에서 엄청난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배급사가 대부분을 가져가는 계약 조건으로 인해 스마일게이트에 직접적으로 잡히는 매출을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점이다.업계에 따르면 크로스파이어 중국 퍼블리셔인 텐센트가 매출의 70%를,스마일게이트가 30%를 인식하는 구조로 돼 있다.중국 등 해외 시장에서 크로스파이어가 올리는 매출은 올해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이 회사 매출로 잡히는 것은 2000억원이 채 안되는 것도 이때문이다.

 처음 크로스파이어가 한국에서 출시됐을 때 서든어택,스페셜포스 등 국내 쟁쟁한 경쟁작들 때문에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이런 이유로 스마일게이트는 텐센트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없었다.물론 그만큼 텐센트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계기도 됐지만 훌륭한 콘텐츠를 만든 회사에 막상 대가가 적게 돌아가는 조건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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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스터디는 교육과 게임을 결합한 그런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다.하지만 이들은 기존의 에듀테인먼트 방식과는 다르다고 한다.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에듀테인먼트는 게임을 교육으로 포장한 것.스마트스터디는 ‘기본적으로 공부를 재미있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공부라는 것은,또는 자기 자신을 개발하고 단련한다는 것은 결국 아주 고통스런 과정이 동반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하겠다는 거다.이들이 결코 이상주의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대신 스마트스터디는 이런 고통스런 공부의 과정에 게임의 요소를 도입해 조금이나마 재미있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창업자들의 살아온 스토리와 백그라운에 기반하고 있다.여기서 이들은 재미보다는 성취감을 더 강조한다.그래서 펀스터디가 아니라 스마트스터디다.

<스마트스터디 창업 멤버. 가운데가 김민석 대표>

◆게임 업계 출신 세 사람이 교육에 투신하다?
 스마트스터디 창업자 세 명의 공통점은 모두 그 전에 게임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는 것이다.게임 회사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온 사람들이 교육 관련 앱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는 것으로도 재미있는 이력이다.

 김민석 대표는 연세대학교에 정보특기자로 2000년 입학했다.화학공학을 전공으로 한 그는 정보특기자로 입학한 사람답게 2001년,대학교 2학년때부터 넥슨에서 일을 한다.아르바이트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그는 고등학교때부터 소문난 게임 마니아였다고 한다.그래서 게임 개발 소모임을 주도하면서 게임 업계에서도 이름이 알려졌다.대학에 가고 나서도 그의 이런 활동은 계속됐다.그의 이름을 들은 넥슨이 그의 팀을 넥슨에 불러서 따로 공간을 주면서 게임을 개발해 보라고 했다.그러면서 넥슨에서 그의 생활이 시작됐다.그리고 그는 여기서 스마트스터디의 창업자로 함께하게 되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한편으로는 그의 실력에 대한 짐작을 가능케하면서도 넥슨이라는 회사에 대해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 부분이다.넥슨은 그 정도로 열려 있는 조직이었다.여하튼 넥슨이 자리를 만들어준 덕분에 대학생 김민석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게임을 마음껏 만들면서 회사 생활도 할 수 있었다.넥슨에서 5년가까이 있었던 그는 병역특례를 마치고 2005년 학교로 돌아와 학부 과정을 끝냈다.그리고 2007년 NHN으로 자리를 옮겨서 한게임 분야에서 일을 했다.

 NHN에서 김민석 대표는 계속 게임 개발을 했던 그 동안의 경력과는 다른 일을 하게 된다.퍼블리싱 사업부에서 일을 하면서 그는 게임의 다른 세계에서 눈을 떴다.2009년에는 삼성출판사로 자리를 옮겨 더 다양한 경험을 한다.삼성출판사의 인터넷쇼핑몰 개편 업무를 하던 그는 마케팅과 사업개발,퍼블리싱까지 다양한 일을 소화해낸다.그로서는 일종의 경영 수업을 받은 셈이다.

 공동 창업자인 박현우 CTO(최고기술책임자)는 공교롭게도 똑같이 연세대 정보특기자 출신이다.김민석 대표와 00학번 동기인 그는 연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NHN의 초창기 멤버 중 한명인 그가 2000년 한게임에 입사했을 때 직원은 30명에 불과했다.NHN과 합병한 뒤 그가 받은 사번은 153번.한게임에서 개발자로서 외길을 걸었던 그는 2007년 엔플루토라는 개발사가 분사되자 엔플루토로 자리를 옮겼고 2010년까지 엔플루토에서 일했다.

 서로 다른 회사에 있으면서도 두 사람은 계속 만나면서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고 한다.다만 마땅한 아이템도 없고 뭘 잘하는지 알지도 못해 선뜻 새롭게 시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면서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시대의 주역이 되고 싶다
 ‘게임 회사에서 그렇게 오래 있었던 사람들이 뭘 잘하는지 모르겠다니?’ 이들의 말을 듣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게임 사업을 할 생각은 안 했나요?”
 “게임산업에 10년 동안 몸 담았습니다.지금도 게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세상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을 합니다.하지만 게임이라는 것은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비즈니스인 것 같아요.사람들에게 계속 게임을 하라고 권유하기도 그렇구요.우리 스스로 볼때 그 동안 너무 게임만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도 컸습니다.게임 말고 다른 것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김민석,박현우 두 사람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한편으로는 너무 이른 나이에 사회 생활을 하면서 급성장한 게임 산업의 주역이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이들에게 많은 것 같다.“저희는 너무 일찍 게임 회사에 들어갔고 선배들이 사업을 주도해 크게 성공하는 것을 지켜봤습니다.하지만 우리가 주역이 되지는 못했죠.그러기에는 우리가 너무 어렸습니다.인터넷과 브로드밴드의 폭발적인 확산에 의해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80년대 중후반 학번들이었어요.저희는 지켜보기만 했죠.”

 이들은 주역이 되지 못했다고 했지만 주역이 될 시기를 위해 그동안 준비를 했던 것은 아닐까.김민석 대표의 말을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인터넷에서 모바일로 환경이 변화되고 새로운 산업이 태동되면서 세상은 새로운 주역을 기대하고 있다.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종종 말하는 “새로운 시장에서는 새로운 강자가 태어난다”는 말처럼 말이다.어쨋든 이들이 바로 그 주역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하여간이 스마트스터디는 이런 새로운 시장에서의 주도자가 되고 싶은 이들이 만든 회사다.

◆게임의 성공 요소를 교육에 접목
 게임 사업을 직접 하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스마트스터디 창업멤버들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게임 사업의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이다.그렇다면 그런 장점을 그냥 썩히는 것은 썩 스마트한 결정은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게임의 핵심인 펀(fun)과 수많은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온라인 시스템을 다른 분야에 적용해보자는 결정을 내린다.그리고 이들이 택한 분야가 교육,그것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시장이었다.

 “게임의 성공 요소를 분해해 교육에 접목하고 싶었습니다.공부 자체가 재밌어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공부로 인한 보상의 즐거움을 더 자주 더 많이 느끼게 해 준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 보상은 학습을 하는 개개인에게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삼성출판사와 이들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콘텐츠 제작 노하우는 있지만 온라인과 모바일 서비스 노하우는 없는 삼성출판사는 이들을 통해 모바일 분야에서 교육 콘텐츠가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삼성출판사는 이들에게 투자를 하는 한편 자신들이 갖고 있는 콘텐츠를 앱으로 만드는 작업도 이들에게 맡겼다.

 작년 6월 창업을 해 삼성출판사를 통해 워밍업을 하던 이들은 올 6월 보들북 시리즈를 서비스하면서 본격적인 이들의 사업을 시작했다.보들북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율동이나 동요를 만화 기반 동영상으로 만든 것이다.‘뚱보 아저씨 집에는 일곱명의 아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에 하나 키가 크고요 나머지는 작대요’ 김민석 대표가 보여준 보들북 앱은 우리가 잘 아는 이런 동요를 동영상 기반 인터랙티브 이북으로 만든 것이었다.보들북은 4가지 시리즈로 나왔는데 지난달 티스토어 교육 카테고리에서 이들 4개가 1위부터 4위를 휩쓸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시장의 인정도 받고 이다.

 스마트스터디가 준비하고 있는 몇몇 인터랙티브 이북 콘텐츠를 살짝 보여줬다.미취학 아동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터치하거나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이에 반응을 하면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삼성출판사의 콘텐츠에 대한 축적된 경험과 게임 사업에서 스마트스터디 멤버들이 쌓아온 노하우,기술이 접목된 것이다.

 스마트스터디는 국내 최대 게임회사에서 일한 경력들을 살려 다른 어떤 앱들보다 완성도가 높은 앱을 만든다는 계획이다.온라인에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만 몰두하지 않고 기존의 좋은 오프라인 콘텐츠를 앱으로 전환하는 것도 한다는 전략이다.“교육계의 넷플릭스가 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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셧다운제,게임업계의 책임

게임이야기 2011. 5. 2. 08:18 Posted by wonkis

16세 이하 청소년들의 심야 시간 게임 이용 제한을 골자로 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른바 셧다운제)이 지난달 29일 통과됐다.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이 법이 시행되는 오는 11월부터 16세 미만 청소년들은 밤 12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게 된다.청소년들이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문제를 게임 접속 자체를 물리적으로 차단해 방지하고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장하겠다는 의도다.

 게임업계와 많은 언론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 법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규제를 위한 규제로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이코노미스트 등 외국 언론들이 지적하듯 최대 수출문화산업인 게임의 성장을 저해하는 입법인 동시에 애시당초 의도했던 청소년 보호라는 본래 의도는 별로 달성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업계는 업계대로,이용자는 이용자대로 벌써 이 법을 피해서 게임을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다.정부와 시민단체로서는 게임 중독에 빠질뻔한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조치는 했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 말고는 큰 효과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앞서 언급한 이런 것들을 다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셧다운제가 통과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게임 산업의 취약점을 지적하려고 하는 글이다.한국 게임 산업은 아직 게임 산업 종사자들조차도 자신들이 몸담은 업계를 하나의 떳떳한 산업군으로 인식하는데 큰 한계를 드러냈다.특히 각 회사 사장들이 그렇다.업계의 목소리를 모아 힘있게 대응하는 어떤 시도도 이뤄지지 못했다.서로 딴 생각하느라 엇박자를 내는 모습만 보였다.게임산업의 긍정적인 면과 성장 가능성,게임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게임 회사에 취직해 새로운 꿈을 키워갈 수도 있다는 그런 면을 부각시키고 이해못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작업 역시 핵심은 게임업계가 져야 할 몫이었다.그런 점에서 보면 셧다운제 통과에는 게임업계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사분오열 게임업계
 어떤 산업에서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만한 큰 일이 터지면 거기에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주로 업계를 대표할 만한 위치에 있는 시장 선도적인 업체의 사장이라던가,스타CEO라고 할만한 인물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떠나서 이런 인물이나 업체의 존재,그리고 이들의 행동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정부 정책이나 여론에도 영향을 미치게 돼 있다.

 게임업계에서 이런 역할을 할 만한 회사는 아마 3곳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넥슨,NHN,엔씨소프트다.그런데 이 회사들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과거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가 제기됐을때도 그랬고 이번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왜 그럴까.

 세 회사는 모두 한 가지씩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약점들을 하나씩 갖고 있다.문제는 이들의 약점이 전혀 다른 범주에 있다는 것이다.NHN은 항상 사행성 관련된 논란이 나오면 그 중심에 선다.고스톱,포커류의 게임들이 한게임의 주력이기 때문이다.넥슨은 청소년 보호와 관련된 이슈가 제기되면 가장 민감해 한다.넥슨의 주력인 캐주얼게임들의 주 이용자들이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어린이,청소년들이기 때문이다.엔씨소프트는 게임 중독,또는 과몰입에 대한 이슈가 제기될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세 회사의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다.사행성 문제가 제기되면 NHN은 잔뜩 움츠러들지만 다른 회사는 거의 아무 상관이 없다.서로 공동으로 대응하는 등 협력이 어려운 게 어찌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게임 중독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 엔씨소프트는 정신이 없지만 다른 회사들은 큰 관련이 없다.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업계 선두에 있는 회사들이 이렇듯 입장이 다르니 힙을 합하기 어려워진다.매출 기준으로 4위권 아래에 있는 회사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이런 3가지 이슈 중 한가지 문제 정도에만 국한된다.여기에 은둔을 지향하는 각 업체 오너들의 행보도 무관하다 할 수 없것이다.

◆양극화 현상 뚜렷..저마다 살 길 바빠
 이런 가운데 게임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게임산업협회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게임산업협회장은 모든 게임회사 사장이나 오너들이 가장 기피하는 자리 중 하나다.사분오열된 게임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맡으면 피곤한 일만 가득하다.업계의 현안이 쌓여 있어 협회장 일을 하다가는 자기 회사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일쑤다.과거의 사례들이 이를 보여준다.

 사실 지금 게임업계의 현안들은 업계가 공통의 의견을 내고 공동 대응을 해도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그만큼 사행성,청소년보호,과몰입(게임중독) 등의 문제는 문제 제기 자체에 대해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사안들이다.오죽하면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조차 ‘아들이 게임하는 것을 보면 걱정스럽다’는 말을 할 정도일까.김 사장 뿐 아니라 게임업계에서 종사하는 많은 이들 역시 자기 자식의 게임 과몰입이나 지나치게 늦은 시간까지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해선 걱정을 하고 있다.다만 지금의 해결 방법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 뿐이다.

 최근 게임 산업에서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는 것도 게임업계의 공동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앞서 언급한 흔히 빅3로 일컫는 넥슨,NHN,엔씨소프트 3사와 네오위즈,CJ E&M 등 2개사까지 5개 회사는 국내 매출과 해외 시장의 개척에서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고 있다.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회사들은 국내 시장에서의 생존조차 어려운 현실이다.위메이드,액토즈소프트 등은 국내 기반이 취약한데 따라 실적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한빛소프트,엠게임,와이디온라인 등은 실적이 정체되거나 이익이 감소하고 있다.여전히 급성장하는 회사들과 국내에서의 생존이 급급한 회사가 입장이 같을 수가 없다.여기에 각 회사가 당면한 주요한 사회적인 이슈도 제각각이니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 선두권에 있는 회사나 적자를 내고 있는 중소 규모 개발사나 게임협회 회비가 똑같다”며 “대형사들은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 소형사들은 불만이 누적되고 있으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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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현 NHN 창업자(45)가 돌아왔다.인터넷 1세대인 그가 한게임재팬을 설립하러 2000년 일본에 건너간 지 10여년 만에 한국 시장에 복귀했다.한게임재팬을 일본에서 가장 큰 온라인게임회사로 키웠던 그는 이번에는 교육 서비스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그는 최근 한국에 코코네코리아를 설립하고 코코네일본어의 공개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코코네코리아 일로 한국을 찾은 천 대표를 지난 24일 만났다.

◆10년전 옛 꿈에 도전
천 대표는 일본에선 ‘온라인게임의 전설’로 통한다.그도 그럴 것이 2000년 9월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4년 만에 당시 일본엔 존재하지도 않던 온라인게임이라는 새 시장을 만든 인물이기 때문이다.게임 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전체를 봐도 일본 시장을 개척해 성공한 매우 드문 한국인이다.이런 그가 2009년초 NHN재팬 회장직을 그만두고 일본에서 벤처기업 코코네(Cocone)를 창업했다.코코네코리아는 코코네의 한국 법인이다.

정상의 자리에서 그는 왜 내려왔을까.“10년전 꿈을 다시 생각했습니다.일본에서 공부하면서 하고 싶었던 언어교육사업을 꼭 해보고 싶었죠.그런데 NHN에서 하는 것보다 나와서 하는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10년 전 꿈은 뭘까.천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정책미디어대학원에서 인지언어학을 전공했다.언어의 미묘한 차이가 사회와 문화 현상에 미치는 영향,외국어 학습에서 모국어가 간섭하는 현상(모국어가 걸림돌이 되는 것)에 관심을 가져왔다.게이오대학원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언어교육 관련 사업을 꿈꿨다.1999년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한국에 들어오게 됐고 한국에서 초등학교 동기동창인 김범수씨(현 카카오 사장)를 만나 한게임을 창업했다.

천 대표는 2000년 일본 시장 공략을 책임지고 일본에 돌아가 한게임재팬을 만들었다.그리고 전공이 아닌 게임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천 대표는 그러나 게임 사업을 하면서도 교육 비즈니스에 대한 열망을 억누르기 어려웠다.NHN재팬이 현지에서 완전히 자리잡는 것을 확인한 뒤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학교 다닐 때부터 하고 싶었던 그 일을 하자.”

◆일본에서 두 번째 창업
코코네는 마음의 소리라는 일본어 ‘코코’(心音)에 ‘네트워크’를 합성한 말이다.어려워도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겠다는 그의 다짐이 담겨있다.코코네에 대해 설명하다가 천 대표가 문든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예전에 같이 갔던 그 식당 있죠? 그 식당 이름이 코코네였습니다.그 집이 좋아서 자주 갔었는데,창업을 하려다보니 그 식당 이름과 같은 회사명을 짓게 됐어요.그래서 식당을 찾아가서 그 이름을 쓰겠다고 허락을 받고 이름을 아예 샀습니다.”

 천 대표와 나는 지난 2007년 7월께 일본 도쿄 시내에 있는 한 소박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물론 나는 식당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못했지만) 그 식당이 바로 코코네였다.코코네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코코네를 차린 천 대표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났다.우연치고는 재미있다.그 식당은 소박했지만 음식이 참으로 맛있었다.그 뒤로 많은 이들에게 나는 그 식당에 대해 말하곤 했다.일본의 장인 정신이 살아있는 듯한,정갈하고 주인장의 성실함과 실력이 돋보이는 식당이었다.무엇보다 분위기가 따뜻하고 진정성이 있었다.식당에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지만 말이다.식당 얘기가 좀 길어졌지만 암튼 그렇게 천 대표는 코코네를 차렸다.

◆그 힘든 창업을 왜 다시 했나?
 여기서 다시 한번 천 대표와 내가 나눈 대화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나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천 대표와 기존에 여러차례 대화를 나눴었다.이 블로그에서도 몇차례 인용한 적이 있었지만 그 중 인상깊었던 것이 그가 벤처 창업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얘기한 점이었다.그는 벤처가 사람의 생명을 바탕으로 자란다고 했었다.잘못되면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정도로 어렵다는 뜻이다.

 천 대표는 그런 말을 할 만하다.그는 극도로 고생을 했었다.우리나라에 어느날 제3세계 국가의 한 젊은이가 들어와서 듣도보도못한 사업을 한다고 생각해보자.누가 그를 인정해주고 이해해주고 도와주겠나? 그런데 그런 제3세계 젊은이가 3-4년 만에 회사를 엄청 키우더니 우리나라의 기존 대기업들까지 따라하는 모델을 만든 것이다.새로운 산업을 일궈내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이 생겼다고 생각해보자.거의 있기 힘든 일 아닐까.그런데 그가 일본에서 그랬다.한국의 한 젊은이가 일본에서 사업을,그것도 처음으로 해 보겠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법하다.
 그는 그렇게 아무 기반도 없이 2000년 9월 한게임재팬을 시작했다.그리고 불과 4년여만에 한게임재팬을 일본 최고의 온라인게임회사로 만들었다.일본에서 콘솔게임이 주류 시장이었던 탓도 있지만,어쨋든 그는 외국에 나가서 빈손으로 새로운 시장을 일궈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몸도 많이 상했다.내가 책(네이버 성공신화의 비밀)에서도 일부 내용을 쓴 바 있지만,잠을 잘 때도 계속 생각하는 희귀한 증세에 시달리기도 했고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그렇게 심하게 고생을 했으면서 왜 다시 창업을 했을까? 이제 상당한 성공도 거뒀으니 좀 쉬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그는 다시 도전했다.앞서 그의 말이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그는 10년전 옛꿈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사람은 해 보고 싶은 것은 꼭 해봐야 한다.천 대표는 의지가 강하고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이다.자신의 마음의 중심에 있는 것을 끝까지 놓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추진한다.무엇보다 아직도 젊다.그의 2번째 도전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일 문화 교류의 다리를 놓고 싶다
 코코네는 지난해 일본에서 영어 교육 서비스를 시작했다.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동영상 강좌 중심의 영어 강좌 사이트가 아니었다.러닝스페이스,커뮤니티 스페이스,유징 스페이스 3가지 코너로 나뉘어 있다.러닝스페이스에서는 가벼운 퀴즈나 게임을 하듯이 영어를 공부할 수 있고 커뮤니티 스페이스에서는 회원끼리 정보를 나눌 수 있다.핵심은 유징스페이스다.

 유징스페이스는 그 동안 온라인 학습 사이트에서 불가능했던 대화 상대를 만나게 해 준다.기존 교육 사이트는 일방적이다.코코네는 한국어에 관심있는 일본인과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한국인을 연결해준다.그들이 사이트에서 만나 채팅을 하고 화상대화도 한다.일방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상대방과 함께 대화를 하며 연습한다.온라인교육에 소셜 기능을 접목한 소셜러닝 시대를 연 셈이다.

 유징스페이스는 아직 한국 사이트에서는 오픈하지 않았다.조만간 일본에서 한국어 배우기 서비스를 시작한뒤 이 사이트에 들어오는 일본인과 코코네일본어에 들어오는 한국인을 연결할 계획이다.예를 들어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거나 한국 관광을 다녀오고 나서 한국어에 관심이 생긴 일본인이 코코네의 일본 사이트에 가입을 하면 반대로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코코네코리아의 한국인 회원과 서로 연결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전문 강사와 일반인의 만남이 아니라 학습을 매개로 해 일반인들끼리 연결되는 것이다.이들이 서로 배운 것을 온라인에서 나누면서 학습을 하다보면 친구도 사귀고 언어도 배우고 문화도 익히는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의 꿈은 단순히 어학 교육이 아니다.“대화를 하면 장벽이 낮아집니다.일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그들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사라질 겁니다.일본인들 역시 마찬가지구요.그러면 우리가 더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지고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by wonkis
(아래는 신문에 실었던 천 대표 관련 기사의 이미지입니다.관련 기사 http://bit.ly/h56ohZ)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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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입주한 오피스텔 주차장 지붕이 불법 건축물이라 게임을 만들 수 없다는 게 말이 될까.

이런 말을 들으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하기 싶상이다.나 역시 그랬다.6일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에서 화제가 됐던 한 게임개발자의 눈물겨운 사연은 아무리 내용을 들여다봐도 ‘이게 정말 사실일까?’ 싶을 정도다.거짓말이 아닐까 눈을 의심하게 된다.

 이미 많은 분들이 ‘좌절개그’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이 분의 사연을 접하셨겠지만 제 블로그에 들어오는 분들을 위해(특히 요즘 구글 크롬번역기로 제 블로그 내용을 보시는 분들을 위해) 대충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3D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인 정덕영씨(필명 몽마)는 지난해 다니던 회사를 뛰쳐나와 지인들과 함께 모바일 게임 업체를 창업했다.몇 달전 해외시장에 내놓은 게임을 한국 앱스토어에서도 출시하기 위해 게임물등급위원회에 심사 절차를 밟기 시작한 건 지난 3일.그런데 정씨가 심사를 받는 것은 MMORPG의 퀘스트를 깨는 것보다 힘들었다.

 우선 그는 별도의 법인용 공인인증서를 발급받기 위해 전국에 단 한 곳 있는 발급 업체(한국전자인증)를 찾아가 심사를 받고,신용정보업체에 실명 인증을 신청해야했으며,게임설명서를 작성하고,심의료를 납부해야했다.여기까지는 그래도 필요한 절차거니 하고 발에 땀나게 뛰어다니면서 처리를 했다.그런데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에 부닥쳤다.

 정씨는 “처음에는 간단히 서류를 작성해 내면 될 줄 알았는데 어이없는 이유로 심사 신청도 못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오피스텔 주차장의 아크릴제 지붕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서울시 마포구청 관할의 게임제작업체로 등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정씨는 “구청 담당 직원도 황당해 했다.공장을 짓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규정이 있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의 글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제가 빌린 오피스텔 건물의 주차장 지붕이 불법건축물이기 때문에, 그걸 철거하거나, 벌금을 물기 전까지 게임업체 등록을 시켜줄수 없다는 겁니다.
  제 입대차 계약서를 검색하면 불법건물이라고 나오기 때문에 등록시켜줄수 없다는군요.
  제가 10월 말에 입주했는데, 11월 중순에 불법건물 지정이 되었습니다.
  구청 문화체육과에서 저보고 참 딱하다고, 상황은 이해가 되고 하는데 운이 없으시다며.
  해결방법은 이사가랍니다.
  그게 젤 쉬운 방법이랍니다.

 이 글을 읽은 네티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필자 몽마님에 대한 격려의 멘트와 함께 정부에 대한 비난도 쏟아졌다.
 ‘게임강국은 무슨..... 개머리해안에서 보온병던지는 소리죠.’ ‘전문 프린트해서 청와대에라도 보내고 싶네요...’
 ‘어떻게든 게임심의를 안내주겠다는 나라의 녹을 쳐 받으시는 분들의 불굴의 의지를 보는것 같습니다.’
  ‘게등위에 게임을 심의 받는 험난한 과정을 MMORPG 게임으로 만드는겁니다. 아... 만들어도 심의 받기가 어렵구나.’

 이런 내용은 계속 문제가 되고 MB가 그렇게 강조해왔지만 전혀 현장에서 약발이 먹히지 않는 행정만능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몽마님이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무슨 심사를 받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할애해서 서류를 들고가면
 ‘거기에 두고 가세요’
 이런 말만 듣는다. 왜 서류를 여기에 내려고 요즘같은 세상에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을 당연히 하지 않을까.

 그런데 게임 등급 심사만 문제가 아닌 것 같다.이 글에 대한 네티즌들의 댓글 중에 이런 게 있었다.이 글을 보고 게임위 게시판에 글을 올리려고 한 네티즌이 겪은 일이다.
 “게임위 게시판에 몇자 적으려고 했는데
  회원가입이 황당하네요 “유선확인 후 담당직원 승인”
  정부기관 홈피들중 회원가입시 ‘유선확인’ 하는곳이 게임위 말고 또 있나요???
  참여마당에 질문/답변 게시판에 몇 자 적은것도 회원가입하라고 하고
  회원가입시 유선확인 이라니요???? 국민을 귀찮게 해서 쓴 소리는 안듣게다는 의도가 분명하지요? ”
 <변경 후>
 회원가입 버튼 클릭
 회원가입 약관에 동의
 회원가입 실명인증
 회원가입 양식 작성 및 확인
 {{{{{{{{ 유선확인 후 담당직원 승인}}}}}}}}}}
 가입완료 및 로그인 후 이동


 이게 정말일까. 나도 궁금해서 게임위 홈페이지로 갔다.그리고 게시판을 글을 남기려고 시도를 했다.그런데 회원 가입이 안됐다! 분명히 모든 것을 다 빠짐없이 적었는데,회원 가입이 안 되는 거였다.특수 문자를 넣으면 안된다는 메시지만 나오면서(특수 문자는 넣은 적도 없지만)..

 항상 느끼는 것을 몽마님이 지적해 주신 거였지만 정말 행정 처리와 관련된 것은 황당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규제를 뽑겠다고 그렇게 큰 소리치면서 대통령이 되도 현장에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그렇다고 현장의 공무원맛 탓할 일이 아니다.그런식으로 일하는 것에 계속 익숙해져온 데다 실제로 규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규정에 살고 규정에 죽는 공무원들은 그런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자기 목이 달아날 판이다.왜 숱한 민원인들 때문에 규정을 어기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나서서 규제를 없애려고 하겠는가.

이런 것은 인터넷이나 IT만의 문제가 아니다.규제를 없앤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법령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가장 중요한 규제 문제 해결은 쓸데없는 행정 절차를 줄이고 서류 제출을 간소화하는 것이지 멀쩡한 전봇대를 뽑는 것이 아니다.

네티즌들의 댓글 중에 이런 게 있었다. ‘게임을 영어로 만드시고, 맘편히 미국, 홍콩, 캐나다 엡스토어에 올리세요....그게 더 맘편하실듯..’

이 댓글처럼 실제로 이렇게 하는 개발자들이 많이 있다.아예 한국에서 뭔가를 개발하는 것을 관두고 해외에 나가기도 한다.인력의 해외 진출 아니냐고 정부가 좋아한다면 할 말 없겠지만 이 나라에서 창업과 기술 개발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면 생각을 달리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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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이 결국 중국에서 하던 게임 사업을 중단했다.중국 아워게임에 대한 지분을 전량 매각, 중국에서 철수키로 결정한 것이다.이로써 지난 2004년 NHN이 1000억원을 투자해 중국에 진출한 지 만 6년여 만에 NHN의 중국 게임 현지 사업은 실패한 시도로 끝나게 됐다.

 27일 NHN은 "중국 해홍사와 제휴를 통해 합작 설립한 ‘Ourgame Assets Ltd.(이하 아워게임)’에 대한 지분 55%을 전량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NHN은 2004년 중국 해홍사와 아워게임 서비스에 관한 제휴를 체결하고 중국 내 온라인게임 사업을 진행해 왔으며, <마작>, <두지주> 등 중국 전통 게임에 온라인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효과로 재미를 더해 각 지방의 특색을 살린 룰을 적용하는 등 현지화 전략을 구사해왔다.

 하지만 2007년 이후 매출이 정체되고 손실이 계속 늘어나면서 중국 사업에 대한 회의가 커져갔다. 특히 NHN이 중국에 진출한 이후 텐센트,샨다,넷이즈,더나인 등 당시엔 소규모였던 중국 현지 게임업체들이 엄청난 규모로 성장, NHN의 중국 비즈니스를 위협해 왔다. NHN은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시장 기회를 살리지도 못한채 다른 경쟁사들의 성장에 밀려왔다. 이로 인해 지난 2008년부터 중국 비즈니스에 대한 회의론이 NHN 내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왔으며 김상헌 대표는 지난해말 가졌던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사업을 정리할 것을 내비치기도 했다.

 NHN은 이번 공시에서 주식 매각 금액을 밝히지 않았다. WDWF (Beijing Wei De Wo Fu Investment Consulting Co., Ltd.)라는 회사에 55%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키로 했다는 것만 밝혔다. NHN 관계자는 "매각 금액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NHN이 투자한 금액이나 매입한 금액에 비해 훨씬 적은 금액을 받고 매각키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미 누적된 손실과 매각 손실까지 하면 NHN이 상당한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글 -  기로에 선 NHN 해외 법인             -  NHN 중국 진출은 실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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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포털쓰던 10대들,어디로 갔을까'란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이에 대해 이메일,트위터, 다양한 채널의 블로그 댓글 등으로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의견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봤습니다.포털이나 블로그 등 기존의 인터넷 서비스를 쓰던 10대들의 움직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육 사이트로 이동?

일부에선 교육 사이트로의 이동을 지적했다.즉 EBSi나 메가스터디 등을 통해 10대들이 교육 콘텐츠 뿐 아니라 커뮤니티 등의 욕구도 충족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사실과 달랐다.기존 글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조사 자료에 따르면 교육사이트는 자체 방문자수가 감소했을 뿐 아니라 10대들의 비중도 감소한 상태였다.특히 메가스터디,EBSi 등은 지난해-올해에 걸쳐 계속 꾸준히 방문자수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지난해 12월에는 교육 사이트 전체적으로 사상 최대 감소폭을 보이기까지 했다.

◆참여형 웹2.0 서비스로 넘어갔다
기존의 포털이나 블로그 UCC 사이트 등을 탈피,웹2.0 서비스나 새로 등장하는 SNS, 커뮤니티 등으로 이동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미 미국 등 해외에서 7-8년전에 불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의견은 최근 1-2년간  참여형 소셜사이트들로 점점 넘어 가고 있고  앞으로 몇년간 커뮤니티나 위키같은 소셜 사이트들이 인기를 끌다가 2-3년 후면 참여형 네트워크 사이트가 대세가 될 것이란 전망이었다.즉 상대적으로 수동적이고 백화점식으로 정보가 나열된 네이버,다음 등 포털식 서비스가 저물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숨어 있는 지표들에 대한 의문

글의 근거가 됐던 지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예를 들어 10대들이 부모 아이디나 주민번호 등으로 접속하는 사례가 많다는 거였다.하지만 이런 지적은 2008년까지 별 변화가 없던 이들이 (저작권 문제 등의 대두에도 불구하고) 왜 작년에 갑자기 대거 부모 주민번호로 접속을 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분명히 설명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었다.

한편으론 게임사이트로의 이동을 지적하는 분들도 있었는데,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게임 사이트 역시 10대들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한국 인터넷 트렌드의 변화
 근본적으로 한국의 인터넷 트렌드가 변화되고 있는 조짐이라는 견해도 있었다.앞으로 지금의 10대들이 20대가 되면 한국인터넷흐름도 네이버류의 포털에서 탈피할것으로 예상된다는 분석이다.한 네티즌은 "과거 거의 10년간 한국인터넷은 외국에 비해 변화가 없었는데. 아주바람직한 현상입니다.이미 외국은 검색,포털 , 뉴스, 블로그,UCC등에서 -> 개인간 네트웍상의 정보공유로 변했습니다.지금 한국에서 10대들사이에 부는 단순형 참여-공유-커뮤니티 형 사이트는  네트워크기반 공유로 가기위한 중간단계입니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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