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느닷없이 창업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있는가하면,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해 서서히 창업의 길을 가게 되는 사람도 있다. 갑자기 창업에 뛰어든 사람의 경우도 통상 준비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 들어가 일정 기간 일을 하다가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게 됐다던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문제의식을 갖게 되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자영업 창업이 아닌 다음에야 정말 느닷없이 창업을 하는 사례는 많지 않은 법이다. 그런데 벤디스라는 회사를 창업한 조정호 대표의 경우는 정말 갑자기 창업에 나선 스타일. 그것도 아무 경험도 없는 젊은 나이에, 전혀 다른 길을 가다가 창업에 도전했다.
◆고시준비하다 떠오른 아이디어
“창업이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었죠.” 창업가들을 만나다보면 이런 말을 많이 듣곤 한다. 창업을 한 사람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그래도 갑자기 창업을 하게 되는 사람들은 어떤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 계기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마련되곤 하는데, 그의 창업 계기는 좀 엉뚱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과 05학번으로 입학해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고시 준비를 하고 있던 학생 조정호. 때는 2010년 즈음이었다. 당시 서울-분당선 고속광역버스를 비롯해 수도권과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노선이 잠깐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다. 요지는 직장인들이 광역버스를 타고 다니느라 고생한다는 것.
“직장인들이 버스가 부족해 서서 출퇴근하느라 힘들다는 뉴스를 봤어요. 그런데 전세버스를 빌리면 될텐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전세버스를 빌리고 사람들을 태워다주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니까, 돈이 될 것 같았고 도저히 공부를 더 할 마음이 안들더라구요.”
그는 즉시 고시책을 헌책방에 팔았다. 사법시험을 불과 한달 앞둔 시점이었다. 그리고 사업을 하는 것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혹 별로 고시공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 격이라고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데, 그 정도로 결연한 의지와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부모님께 고시 공부를 중단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했는데, 당연히 엄청난 진노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창업을 할 사람은 하기 마련이다. 공부할 때 느끼지 못했던 에너지가 넘쳤다.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창업은 열정만 갖고 되지는 않는다. 사업은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전세버스를 빌리는 일은 운수사업법상 관련 자격증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업을 했다간 당장 버스 업계의 반발을 살 수도 있었다. 이렇게 첫 창업은 꿈은 날아가버렸다. 허무하게. 고시공부하던 책까지 팔았는데 말이다.
◆좌충우돌 첫 도전
첫 아이디어는 시작도 못 해보고 무산됐지만 그냥 주저앉지는 않았다고 한다. 뭘 가지고 창업을 해 볼까. 끊임없이 생각하던 학생 조정호는 CJ ONE 카드란 것을 써 보고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된다. 2011년의 일이었다.
“가맹 음식점에서 카드를 내고 결제하면 포인트를 적립해주더라구요. 그런데 프랜차이즈가 아닌 맛집들은 이런 걸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어요.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동네 맛집들도 살리고 사업도 되지 않을까 했던거죠.”
그는 오래 생각하기보단 바로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 한양대 컴퓨터공학과에 다니던 후배 2명을 설득해서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다. 서비스명은 숨포인트. 기획을 한 뒤 서비스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신촌으로 영업을 나갔다.
“영업이란 건 처음으로 나가본 거죠.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10군데랑 계약을 했어요. 대단하죠?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대부분이었고 거절도 많이 당했죠.”
한 업소를 찾아갔다가 이런 충고를 들었다. 쿠폰 적립 만들어도 업소 입장에서는 매출로 연결되는게 중요한데, 그걸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즉 돈이 되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다 하는 포인트 적립 이런 것 보다는 모바일 상품권이 낫지 않겠냐는 거였다.
조정호 사장의 특징은 결단과 실행이 빠르다는 것. 그는 이런 충고를 듣고 모바일 상품권을 만들기로 했다. ‘브로컬리마켓’이라는 회사를 2011년말에 차리고 브로컬리상품권을 출시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매장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인 셈이었다. 사업을 위해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5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스스로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제가 있었다. “바코드를 인식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상품권 번호를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거였어요. 아무리 잘 만들어도 팔리지가 않았던 거죠.”
팔리지 않는 제품은 아무리 기획을 잘 하고, 디자인을 잘 해도 소용이 없다는, 단순하지만 소중한 진리를 배운 셈. 그래도 아주 헛된 시도는 아니었다. 이들의 서비스가 출시됐다는 기사를 보고 유비클의 김윤수 사장이 연락을 한 것이었다.
“유비클에서도 모바일 상품권과 관련된 사업을 기획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그러던 차에 저희가 그런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거죠. 즉시 만나서 함께 하기로 했어요. 그랬다가 김 사장님이 깜짝 놀란거죠.”
김윤수 사장이 놀랐던 이유는 바코드 인식 방식이 아니라는 점. 다행히 그는 함께 하기로 한 결심 자체는 바꾸지 않았다. 다만 이래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판단한 김윤수 사장은 자신이 직접 자금을 투자하고 리뉴얼 작업을 하기로 했다. 엔지니어도 투입하는 등 본격적인 모바일 상품권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벤디스 창업멤버들. 맨 왼쪽이 조정호 대표.>
◆허무하게 날아간 첫 매출
한창 리뉴얼 작업을 하고 있던 중 뜻밖의 주문이 들어왔다. 국내 대형 게임사 한 곳으로부터 직원들이 새로 입주한 건물에서 쓸 수 있는 모바일 쿠폰을 만들어달라는 의뢰였다. 이 회사는 IT업체였기 때문에 종이 식권이나 종이 사용권 등을 쓰지 않고 직원들이 스마트폰만 보여주면 입주 건물 내에 있는 식당이나 커피숍 등 어디에서든 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했다.
리뉴얼 작업을 하고 있던 것과는 방향이 달랐지만 꽤나 쏠쏠한 사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리뉴얼 작업을 보류하고 이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사실 저희가 처음 생각하고 구상했던 모바일 식권하고 같은 개념이었어요. 바코드 인식이나 이런 것도 필요가 없었구요. ”
신이 나서 자신들의 처음 구상대로 모바일 식권을 만들고 있던 이들에게 날벼락같은 소식이 전해져왔다. 이 회사가 자사 건물 식당 등에 관한 운영권을 다른 회사에 팔아버린 것이다. 합의했던 내용도 당연히 휴지조각이 됐다 이전에 계약이라도 체결하고 이를 문서로 남겨놨으면 별 문제없이 진행을 할 수 있었겠지만 이들은 이런 것도 하지 않았다. 구두로 합의만 해 놓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매출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너무 낙심했죠. 그런데 어느날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그 회사만 모바일 식권을 필요로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어디든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리뉴얼 작업을 하지 말고 그냥 모바일 식권을 범용화하는 상품을 만들고 기업 고객들에게 최적화해서 영업으로 뚫어보자. 이렇게 된 거죠.”
즉시 시장 조사에 나섰다. 강북 광화문 인근 식당을 돌면서 식권 제휴를 맺은 회사들이 있는지 조사를 했다. 무려 600개 이상의 기업들이 식권 제휴를 맺고 있다는 것이 파악됐다. 수요가 있으면 이들의 필요도 반드시 있겠다. 우여곡절을 거쳐 모바일 식권 밀크는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됐다.
◆밀크, 식권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밀크(Mealc)는 구내 식당이 없는 기업을 위한 스마트폰 기반 식권 발급 및 식대 관리 솔루션이다. 쉽게 말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종이 식권을 스마트폰으로 가져온 것이지만 업소 입장에서는 식대 관리까지 되는 매장 관리 솔루션도 된다.
기업이 직원 개개인에게 지원 식대 금액에 해당하는 ‘밀크’ 포인트를 지급하면 직원은 회사 인근 제휴 식당 및 전국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 매장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에 설치한 ‘밀크’ 앱을 통해 회사가 적립해준 포인트를 이용, 식대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기존 식권에 비해 좋은 점은? 인근 제휴 식당에서만 쓸 수 있는게 아니라 유명 프랜차이즈, 즉 커피숍이나 빵집 등에서도 사용 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어차피 돈 써서 직원들의 복지용으로 지급하는데, 직원들의 만족도를 훨씬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식당 제휴 및 서비스 관리, 식대 정산 및 결제에 이르는 전 과정을 벤디스의 전문인력이 대행한다는 장점도 있다. 벤디스에서는 매월 세금계산서로 식대 결제를 해 주고 기업들의 여건 및 필요를 듣고 적당한 가격, 상품 등을 구성해주는 등 식권 관련 컨설팅 업무도 해 준다. 관리자 페이지에 들어가면 실시간으로 식대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새나갈 염려가 없다는 뜻이다.
‘밀크’는 모바일 식권 솔루션 ‘밀쿠폰’, 모바일 매점 솔루션 ‘밀카페’, 하이퍼로컬(hyper-local) 마케팅 솔루션 ‘밀헌트’, 폐쇄형 소셜커머스 솔루션 ‘밀당’으로 구성돼 있다. 밀당은 가입한 기업들의 직원들이 단체로 물건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공동구매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밀쿠폰을 정점으로 한 이런 서비스들의 가장 큰 장점은 기업들이 어떤 별도의 시스템 구축이나 배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 장비를 구매할 필요도 없다. 그냥 벤디스랑 계약을 맺고 모든 것을 맡기면 된다. 그러면 각 회사의 직원 수와 예산, 특성 등에 맞는 식권이 발급 가능하도록 해 준다. 직원들이 스마트폰만 쓰면 된다. 매달, 매일 사용 내역을 알 수 있고 언제든 직원들을 위한 추가적인 서비스를 붙일 수도 있기 때문에 유용하다. 기업들을 겨냥한 마케팅을 고민하고 있는 업체들에겐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될 수도 있다. 활용도가 많다는 뜻이다.
직원들의 식사를 고민하는 기업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즉 해외에서도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지만 전 사업이 체질인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나가는게 좋네요. 식권으로 출발했지만 식권을 뛰어넘어 직원들에게 다양한 복지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채널, 마케팅 도구로 발전시켜 전 세계로 확장해나가겠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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