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유통, 언론, 게임개발, 온라인 서비스 등 온갖 다른 분야에 종사하던 이들이 한데 뭉쳤다. 목적은 세계적인 서비스를 한번 만들어보자.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것 한 가지. 각자 10년 이상씩 스타트업이나 창업 전선에서 뛰어온 이들이 뭉쳤으니 그야말로 드림팀이라고도 할 수 있을 터. 이들은 선물이라는 키워드에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결집했다. 선물을 주고받고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이를 해결하는데 여전히 불편해한다는 것에 집중한 것. ‘선물로 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실력발휘를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스타트업 210회째 주인공은 창업역사만 15년째에 접어든 크레이지랩의 황라열 대표다.

15년간 창업 한 길을 달렸다

황라열 대표의 첫 창업은 2000년에 시작됐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00학번으로 입학한 그의 대학 생활 첫 해였다. 첫 창업의 기억은 좋지 않았다. 선배들하고 같이 했는데 같이 한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면서 그는 4000만원의 빚만 떠안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덜컥 대표를 하겠다고 한 제 탓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빚을 일해서 갚자 하고 죽어라고 일했어요.”

아르바이트를 6,7개씩 하면서 그는 부채를 갚아나갔다고 한다. 음악을 좋아해 음반을 직접 내기도 했던 그는 음반사와 스튜디오 등을 운영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나이는 96학번 나이이지만 군대를 먼저 갔다 온 뒤 남들보다 늦게 대학을 간 그로선 일찍부터 생존과 직업에 눈을 떴기 때문일까. 하여간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숨가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찍이 수많은 사람들의 창업 스토리를 들어왔지만 그의 경우처럼 다양하게 온갖 경험을 한 이는 만나기 힘들다.

게임엔진개발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회사를 매각한 뒤 2008년에는 수학능력시험을 다시 치른다. 삼성디자인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수능만 네 번을 봤네요. 하하.”

그가 디자인학교를 다닌 이유는 디자인에 관심이 생겨서라고. 디자인 관련해서 일을 벌여보고 싶은데, 아직 아는 게 없으니 학교를 다니면서 배우자고 한 것이다. 그야말로 도전의식이 충만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렇게 삼성디자인스쿨에 들어가서는 당연히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들과 만나 교류를 할 수 있게 됐다. 디자이너들을 만나서 친목만 다졌을리 만무하다. 그는 이들과 함께 디자인영상회사도 차려다. 국내의 각종 스포츠단과 계약을 체결하고 이들의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이때가 2010. 그때까지 10년간 벌써 10개에 달하는 회사를 차렸다가, 접었다가, 매각하는 일을 겪었던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를 또다시 마주하게 된다.

중국에서 발견한 새로운 기회

중국 출장을 자주 갔었어요. 거기서 사람들이 선물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그가 얻은 아이디어는 중국어에 익숙치 않은 직원들이 선물을 보내기 위해 주소를 적어야 하는 어려움에서 나왔다. “중국에는 선물 문화가 정말 발달했더군요. 그런데 선물을 주고받을 때 주소를 적어야 하쟎아요. 이게 중국어을 잘 못하는 사람이 제대로 받아적기가 쉽지 않더군요. 상대방에게 일일이 주소를 물어보는게 실례가 될 수도 있고, 물어봐도 맞게 썼는지 확실하지도 않구요.”

그래서 그는 선물을 받는 사람이 주소를 입력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생각을 그가 처음 한 것은 아니었지만(당시에 이미 국내에서도 유사한 서비스가 있었다), 나중에 더 큰 서비스로 발전하는 단초가 된 것은 분명했다.

당시 그가 중국을 갔던 것은 메디치코스메틱이라는 화장품 제조업체를 차린 뒤 중국쪽 영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뜻밖에 선물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얻고 한국에 들어와 아예 별도 법인을 차렸다. 그게 20149월이었다.

선물을 보낼 때 상대방의 주소를 몰라도 선물을 보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이게 처음 시작이었어요. 선물을 받는 사람이 선물을 받겠다고 하면 받는 이가 스스로 주소를 입력해서 받는 거죠. 개인 정보가 새나갈 염려도 없고, 괜히 주소를 물어보는 어색함도 없구요. 국내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로든 선물을 보낼 수 있으니 시장 확장 기회도 크다고 본 거죠.”

개발자만 9명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의 뜻을 알아본 밸류인베스트에서 제법 큰 규모의 시드머니를 투자했다. 물론 오프라인 선물하기만 되는 게 아니다. 온라인상의 선물하기도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온라인 선물하기, 즉 카카오톡의 선물하기 기능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서비스. 기프토(Giftto)는 올 6월부터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글로벌 서비스 제대로 하고 싶다

황라열 대표는 글로벌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국내 시장이 작기 때문이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해외에 엄청난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회사가 추구하는 선물을 주고 받는 방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기프토는 카카오톡의 선물하기와 같은 기능을 SNS에서 구현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은 물론, 중국의 웨이보에서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글로벌 선물이 가능한 게 매력이다. 선물을 보낼 때 받는 사람의 주소나 연락처를 몰라도 된다. 상대방과 내가 SNS 상에서 친구로 연결만 돼 있으면 된다. 베타서비스를 시작하고 불과 5개월여만에 한달에 5000만원 가까운 매출이 나오고 있다.

연예인들에게도 선물 보내기가 가능해요. 글로벌하게 서비스를 하면 한류마케팅 등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거죠.”

선물을 받는 사람이 주소를 알아서 입력하고 받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시스템이니 분명 서로간에 편하고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외국에 비슷한 서비스가 많지 않을까.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SNS를 통한 선물 보내기 서비스가 또 있지 않을까.

황 대표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SNS들이 서비스 정책을 변경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직접 기술 개발을 했기 때문에 서비스 정책 변경이나 외부 연결 문제가 생길 경우 저희가 직접 해결하고 그에 맞춰 기술 개발을 해서 대응을 하면 되는데 외주로 하는 대부분의 업체들은 대응하기가 힘든 거죠. 쇼핑몰 APISNSAPI를 연동하는 문제도 있어요. 이 부분을 우리 회사만큼 잘 꿰뚫고 있는 회사도 드뭅니다.”

현재는 기프토앱을 따로 다운받아서 써야 한다. 아직까지는 매출이 많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앞으로는 SNS에서 직접 선택하고 결제하는 시스템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 기프토는 알리익스프레스와 웨이버를 연동해 선물하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마존, 이베이와 페이스북을 연동해 선물하기가 가능하게 하고 있다. 다만 국내에선 기프티콘 서비스가 메인이다. 쇼핑몰 API가 연동이 안돼있어서다.

그래도 그의 꿈은 결코 작지 않다. 목표가 전 세계 기프트 커머스 마켓이기 때문. 현재 웹사이트와 안드로이드 앱을 출시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곧 아이폰용 앱도 출시한다. 내년 2월에는 미국 법인을 설립하고 글로벌 서비스를 더욱 공격적으로 할 계획이다.

기존의 서비스들이 하지 못하고 있거나 놓치고 있는 게 많죠. 그 중 중요한 하나를 저희는 선물하기로 봤습니다. 이를 완벽하게 해결해주는 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곧 결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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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0월, VCNC 박재욱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회사 구성원은 달랑 다섯명이었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서비스 ‘비트윈(Between)’도 아직 정식으로 출시되기 전이었다. 2년 4개월의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VCNC에는 어느새 서른명을 훌쩍 넘긴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고 서비스는 탄탄하게 성장해 다운로드수 600만을 돌파했다. 카카오 시리즈물을 제외한다면, 국내에서 벤처기업이 만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가운데 가장 내실있게 성장한 서비스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윈은 아직 더 성장해야 하는 서비스고, 넘어야 할 산들이 남아 있다. 2년 동안 부쩍 성장한 비트윈 개발사 VCNC의 박재욱 대표를 만났다. 이날은 마침 VCNC가 일본의 DeNA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는 발표를 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순조로운 성장

비트윈은 2011년 11월 오픈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커플들을 위한 SNS를 표방했다. ‘연인들을 위한 둘 만의 온라인 비밀 공간’이 비트윈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였다. 공개SNS가 대세처럼 시장을 장악해가던 시기에 폐쇄형 SNS를 준비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기도 했고, ‘얼마만큼의 시장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보다는 기대가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트윈은 오픈베타 기간 3개월 동안에 35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2012년 3월 정식서비스를 개시한 뒤 빠른 시간 내에 1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며 순조롭게 성장해나갔다. 폐쇄형 SNS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상당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서비스가 출시되기 전에 이미 벤처캐피털(VC)로부터 상당한 인정과 기대도 받았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2011년 11월 비트윈에 투자했다. 

 둘 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비밀한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비트윈의 장점은 젊은 연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순조롭게 늘어가던 비트윈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꺾이기 시작했다. 원인은 빠른 성장에 따른 급격한 사용자 증가에 있었다. 

◆눈에 안보여도 고객은 다 안다

비트윈에게 첫번째 닥쳐온 위기의 시점은 2012년 여름. “이용자수나 메시지 이용 건수가 모두 정체 되더라구요. 기존의 성장 곡선이 어느날부터 멈춰선거죠.”

 왜 그랬을까. 박재욱 대표는 직원들을 소집해 대책회의를 했다. 외부 사용자들의 반응도 체크했다. 서비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적인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용자가 늘면서 에러가 자주 발생하게 되고 메시지를 보내는 데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이 생겼다. 

 “바로 서비스 안정성 개선에 나섰습니다. 백업단의 기술도 보완하고 서버쪽도 점검을 했죠. 사실 이게 눈에 보이는 부분이 아니어서 서비스를 하다보면 이런 부분의 개선은 자꾸 뒤로 미루는 경향이 생겨요. 새로운 서비스의 업데이트에만 매달리는 거죠. 스타트업은 리소스가 제한돼 있으니까 급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우선 자원을 투자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눈에 안보이는 부분을 고객들이 바로 알아차리더라구요.”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는 3개월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그래도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문제점을 해결하자 사용자 수와 메시지 수 등 주요 지표들이-그의 표현에 의하면-J커브로 급상승했다. “당시가 1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던 시점이었거든요. 아마 이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으면 상승세를 타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2012년 하반기 꾸준하게 성장하던 VCNC는 2013년초 다시 한 번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번에는 조직 내부의 이슈였다. 멤버간의 불화가 아니라 회사가 성장하는데 따른 업무의 비효율성이 문제였다. “사람이 갑자기 늘면서 일하는 프로세스에서 문제가 생기곤 하더라구요. 어떤 일이 있을 때 이것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고 누구와 논의해야하는지 등등 정해진 게 없었으니까요. 내부의 일하는 원칙을 만들고 책임과 권한에 대해 토론하고 그러면서 프로세스를 다듬는 시간이 필요했죠.”

 그때부터 박 대표는 ‘자유롭게 일하지만 강한 책임을 진다’는 업무 원칙을 설정했다고 한다.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 조직 정비에 여념이 없던 시절에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당시 일본 등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경험이 없다보니 운영과 커뮤니케이션 등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보니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더라구요. 비전 공유를 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애를 좀 먹었죠.”

◆수익모델과 해외 안착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는 2013년초 다시한번 소프트뱅크와 캡스톤, 스톤브릿지 등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2013년말 5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한 데 이어 최근 600만 다운로드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비트윈의 현황을 알 수 있는 숫자를 알려달라고 했다. 600만 다운로드에 이어 하루에 실행되는 횟수 2100만번, 지금까지 등록된 사진 1억4000만장(핀터레스트의 4분의 1 수준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메시지 125억건, 메모(장문의 편지 등) 1600만장 등등.

 비트윈이 꾸준히 성장해온 것은 맞지만, 아직 수익모델은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현재까지 수익모델 없이 진행해 온 게 맞다”는 답이 왔다. 물론 앞으로는 달라진다. 우선 선물추천, 기프티콘 보내기 등의 기본적인 수익모델을 올 여름부터 실시할 계획이다. 커플을 타깃으로 한 이벤트를 실험적으로 진행하면서 각종 이벤트 상자(광고채널) 등의 가능성을 점검해보기도 했다. 

 그에게 지금 당장 고민하고 있는 것을 물어보자 수익모델과 해외 시장 안착을 꼽았다. 2012년말부터 준비한 일본 시장은 지난해 3월 3명의 직원으로 법인을 설립한 뒤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처음 직원을 채용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간 싱가포르 법인도 올해 3월경 설립될 예정이다. 현재 비트윈의 600만 유저 중 국내 사용자는 350만명, 해외 사용자가 250만명 수준. 일본 사용자는 전체의 12% 정도를, 중국 사용자가 8%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해외 사용자가 늘면서 국가별로 사용자들의 패턴이 보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국은 20대 중반부터 후반 사용자가 대부분인 반면 10대 유저는 없는데 일본은 10대 유저가 20대 유저 다음으로 많습니다. 미국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가장 많은 사용자가 포진해 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 그는 나라별로 미세하지만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는 그런 연령대에 차이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비트윈이 좀 더 성장한다면 어떤 것을 하고 싶을까. 아니 어떤 분야로 확장하게 될까. 박 대표는 웨딩 시장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웨딩 분야 시장 규모는 11조원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하지만, 쪼개져 있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 분야에서 새롭게 시도할 만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고 보지만 일단 이것은 당장 할 것은 아니고 아마 내년 이후에나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일본 DeNA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것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해외에서, 그것도 일본의 투자를 받았을까. “비트윈의 일평균 가입자 중 60%가 해외에서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미 비트윈은 해외 사용자들이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서비스죠.” 한국어 뿐 아니라 중국어(간체/번체), 영어, 일어로 서비스되고 있는 가운데 곧 태국어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는 해외 서비스에 대한 저항이 적어요. 일본 시장은 잠재력이 크고 비트윈은 결국 해외 시장에서 크게 성장해나가야 할 겁니다. 이번 투자는 그래서 전략적 제휴의 의미도 있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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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프로야구 각 구단의 1루수 중에는 유난히 강타자가 많았다. 삼성라이온스의 이승엽 선수가 그렇고, 한화이글스의 김태균 선수, 롯데의 이대호 선수(현 오릭스 버팔로스) 등이 우선 떠오른다.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기아타이거즈의 최희섭 선수, SK의 박정권 선수도 만만치 않은 1루수 출신 선수들이다. 통계적으로 역대 타자 MVP 18명 가운데 11명이 1루에서 배출됐다는 것을 봐도 1루수는 검증받은 선수들의 자리였다.

 그래서 회사명을 ‘일루수’로 지은 황지영 대표를 만났다. “일루수처럼 모바일 시대의 강타자가 되고 싶은 바람”을 담았다. 회사 이름에 야구의 특정 포지션을 쓴, 재미난 상상력의 팀이다. 회사가 잘 되면 사업을 넓혀가면서 이루수, 삼루수, 유격수 등으로 이름을 단 회사를 세우는 등 확장할 수 있다며 즐거워하는 일루수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뻔한 것은 못 참는 여성 공학도

황지영 대표. 오랜만에 이 코너에 등장한 여성 CEO다. 화학공학을 전공으로 한 그는 “뻔히 안 될 것이 분명한 일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고 본인을 설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처음부터 윗선의 여러가지 지시와 그에 맞춰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게 싫었다고 한다.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일이 떨어졌을 때 회사를 나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소신이 뚜렷하고 강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있고, 조직형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 덕에 여러 회사를 옮겨다녔다. 부산 출신으로 부산의 모 종금사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그가 IT(정보기술) 분야로 발을 옮기게 된 것은 필명 도이모이(Doimoi)라는 사람이 쓴 칼럼을 읽고 난 후였다. 

인터넷이 앞으로 세상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이 글을 읽고, 황 대표는 IT업계로 옮겼다.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곳에 자신을 던진 것이다. 

 다모임, 조이온, 엔씨소프트, 한컴 씽크프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그런 회사들에서 주로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며 일을 했다.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는 일 보다는 기획 업무를 맡았지만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다보니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옮기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을 싫어하는 성격도 크게 작용했다. 이런 경력이 샐러리맨으로 계속 그렇게 살려고 한다면 단점이 되겠지만, 회사를 창업했으니 현재로선 딱히 단점이 될 일도 없을 듯하다. 

 이야기가 잘 이어지지만, 여기서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회사 생활이 지겨워져서 창업을 했다? 뭔가 이상하다. 그래서 물었다. “혹시 창업에 원래 관심이 엄청 많았던 거 아닌가요?” 아니나 다를까, 혼자서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검증받으러 여러번 다닌 경력이 있었다.

 “주로 게임 쪽에서 사업 아이디어가 좀 있었어요. 제가 프로그래머가 아니었기 때문에 게임을 직접 만드는 것과 관련된 아이디어는 아니었구요, 게임 속에서 작동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 아이디어였죠.”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아이디어를 다듬은 그는 국내 한 유명 게임회사 창업자를 찾아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 회사의 사업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기좋게 거절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완전히 꿈을 접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혼자서 시작한 창업

회사를 많이 옮겨다녔지만 계속 뜻을 함께 하면서 호흡을 맞췄던 사람들도 주위에 생겼다. 그런 사람들 5명이서 창업을 모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가 아직 무르익지 않아서인가. 생각과 달리 추진이 잘 되지 않았다.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무작정 공동 운명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거쟎아요. 그래서 창업을 할 때 초창기 멤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인 것 같아요. 그런 열정이 없으면 일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는 혼자가 됐다. 혼자가 됐어도 그는 시작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남편한테 말했죠. 창업 자금 좀 빌려달라고. 사실 결혼하고 둘이 같이 모은 돈이었지만,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의 지지를 얻은 그는 2012년 5월 혼자서 회사를 설립했다. 당장의 현실때문이지, 1인 창업을 해서 회사를 끌고 갈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가장 시급한 인물은 CTO(최고기술책임자). 믿을 만한 사람에게 CTO를 맡아달라고 청을 했다. 그런데 그가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줬다. CTO가 확정되면서 디자이너, 마케팅 담당자 등 다른 멤버들도 채워졌다. 프로젝트 방식으로 회사 생활을 해 온 그는 창업도 그렇게 했다.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그 프로젝트를 이 멤버들과 하는 식이다. 성과나 함께 일을 하는 과정에 따라 계속해서 같이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느슨한 형태의 창업멤버들이다.

◆자연스럽게 ‘공감’을 나누는 ‘비타민’

이들의 첫 작품은 공감을 나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비타민’. 10월중 서비스가 출시된다. 아이폰 용으로 먼저 나오고, 안드로이드 버전은 추후 출시될 예정이다.

 출시되기 전의 비타민 서비스를 살짝 맛봤다. 이름처럼, 이 서비스는 고된 하루에 지친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거나 외로운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그런 공감형 서비스다. 

 서비스를 실행하면 자신의 그날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창이 뜬다. 그날 내 기분을 입력하는 방식은 아니다. 너무 다양하게 기분을 표현하면 오히려 소통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16가지로 제한했다. 그 정도만 되도 대략 그 날의 자신의 기분을 알리는 데 부족함은 없을 것이란 판단이다.

 내 기분을 표현하면 소통과 공감을 위해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것이다. 많은 다른 앱들이 그렇듯, 이 앱도 역시 다운로드하는 순간 스마트폰 주소록에 있는 지인들과 자동적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무작정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다. 내가 기분을 표현해야 네트워킹이 시작된다. 내가 그날 그 어떤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고 싶지 않으면 기분을 표현하지 않으면 된다. 

 나는 기분을 표현하지 않지만 친구 중에 그날의 기분을 표현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아주 우울한 친구가 있다고 치자. ‘오늘 술이나 한잔 할까’, ‘힘내 내가 있쟎아’, ‘힘든 일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야’ 등 위로의 멘트를 날리고 싶다. 여기서 통상적인 SNS와 다른 비타민의 특징이 나타난다. 비타민은 텍스트를 입력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다. 슬쩍슬쩍 미는 방식으로 나의 기분을 표현한다. 즉 미리 준비된 멘트를 선택해 이를 상대방에게 보내는 것이다. 어떤 말을 해줄까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만의 독특한 멘트를 보내긴 어렵지만 쉽고 편안하게 상대방에게 한 마디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SNS가 발전하고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익숙해질 수록 개개인의 일상 생활은 더욱 외로워지는 경향이 있다. 주소록에 친구는 넘쳐나지만 막상 힘들때 내 기분을 표현하고 위로받기는 힘든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등에 기분을 남길 수 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볼 우려가 있다. 기분이 우울하다는 글에 ‘좋아요’를 누르기도 그렇다. 바쁘게 살다보니 일일이 텍스트를 입력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한 SNS다. 

 ‘하루에 한 번 감정 터치’ 황지영 대표가 내세운 비타민의 캐치프레이즈다. 감정 표현에 서툰 사람들도,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이 없는 사람들도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수월하게 표현해 소통할 수 있다. 악플을 달 수 없는 구조라는 장점도 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NHN 밴드 등 기존 모바일 기반 SNS가 놓치고 있는 최소한도의 심플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빈틈을 파고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서비스를 소개하고 다니다보니 헬스클럽이나 회원제 운영 서비스 등에서 회원 관리에 아주 좋은 서비스라는 말을 들었어요. 많은 사람들과 복합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 대화 시간이 부족한 사람 등에게 유용할 것 같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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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떠날 준비가 돼 있다는 것. 그리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는 것. 창업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거의 예외없이 이 두 가지로 시작된다. 거기서 시작해 창업가들은 기회를 만들어간다. 그들은 알고 있다. 기회는 절대로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더욱이 누가 가져다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필요한 사람이 직접 움직일 때 기회란 것도 다가온다.

 둡 박기현 대표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그냥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때론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그는 움직여야 할 때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행운은 함께 할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사업 아이템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끄는 힘이다

1998년 대구 능인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생 박기현은 친구인 최원석과 처음으로 ‘뭔가’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이름하여 잉크두닷컴(www.inkdoo.com). 쉽게 말하면 오마이뉴스와 비슷한 사이트라고나 할까. 이용자 개개인이 자신의 기사를 작성하거나 자신의 지식, 알고 있는 소식 등을 올릴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였다. 첫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두 학생은 크게 고무된 듯 하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글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보람과 희열도 느꼈다. 하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상의 제약이 이 서비스의 본격적인 사업화를 어렵게 했다. 그래도 이 첫 시도는 두 학생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두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갔다. 박기현은 서울대 응용생물학과 01학번으로 입학했고, 최원석은 펜실베니아주립대(Penn. State University)에 들어갔다. “이과생이었지만 입학할 때부터 저는 비즈니스에 더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대학 입학 후 바로 휴학을 했습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난한 형편도 아니었다. 그가 휴학을 하고 사업을 해봐야겠다고 한 것은 학비를 벌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었다. 서울대생이면 과외하기는 쉬웠을 터. 그런데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목적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과외는 하기 싫더라구요. 돈은 쉽게 벌 수 있었겠지만, 제가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고. 그래서 대전에서 물건을 떼다가 서울에 와서 파는 사업을 했습니다.”

 그가 택한 상품은 세탁용 세제. 대전에 있는 공장에서 물건을 받아다 서울 아파트 단지에 와서 부녀회를 통해 팔았다. 그가 포장도 안 된 세제를 포대 자루 채로 팔면 부녀회에서 이것을 아파트 단지에서 저렴하게 주민들에게 판매하는 식이었다. “시중에서 파는 세제와 똑같은데 가격은 10분의 1밖에 안됐죠. 꽤 잘 팔렸습니다.”

 그런데 돈은 별로 못 벌었다. 3개월 정도 하면서 생활비 정도만 건졌을 뿐이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 차를 빌려 물건을 날랐는데 트럭 운전이 익숙치 않아 사고가 잦았고, 수습 비용이 더 들었다.

 첫 사업을 통해 교훈을 얻은 그는 미국에 있는 친구 최원석에게 연락을 했다. 당시 최원석은 미국에서 Raknoa라는 유학생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었다. 유유상종이라 해야 할지. 최원석도 휴학을 한 상태였다. Raknoa는 페이스북의 초기 상태와 유사했다. 훗날 페이스북의 성장을 보면서 가슴이 쓰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시 낯선 이국 땅에서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그렇게 키운다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사업은 아이템도 중요하지만 그 아이템을 끌고 나갈 힘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요. ” 비슷한 처지에 있게 된 두 사람. 마침 군대 문제도 해결해야했기에 두 친구는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모바일의 기회는 놓치지 말자

2002년말 최원석이 귀국했을 때 박기현은 세탁물 커버를 이용한 광고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세탁소에서 세탁물을 보호하기 위해 씌우는 커버에 광고를 하면 어떨까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 커버만 연간 1억장이 넘게 돌아다닌다는 것에 착안한 것. 그런데 사업 전 특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가 엉뚱하게도 다른 사업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변호사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사이트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 되지 않았다. 사업 진행이 여의치 않자 두 친구는 일단 군대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고 2005년 한 중소기업에 병역특례로 입사를 햇다. 이듬해 박기현은 NHN게임스로 옮겨 병특을 이어갔고 최원석은 병특을 마치고 2009년 에이팜스(Apalms) 라는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렵 박기현은 NHN이 인수한 웹젠으로 옮겨 해외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물론 최원석 대표가 에이팜스를 전적으로 혼자 한 것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곳에 있었지만 박기현 대표는 외부에서 지원을 하면서 사업 방향을 함께 고민해 왔다.

 NHN게임스와 웹젠을 거치면서 전략기획, 해외사업 기획 등을 담당했던 것은 박기현에게 중요한 경험으로 축적됐다. 하나하나의 사업 아이템에 골몰하던 그에게 시장의 흐름을 보고 사업을 구상하는 기반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절친이 다시 용감하게 사업을 하는 것을 보면서 박기현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잉크두도 그랬고 Raknoa도 그랬고, 시도는 괜챦았는데, 기회를 이어가지 못한 것 같다.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 두 사람은 결국 힘을 합쳐 사업을 하기로 했다. “인생에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큰 기회가 왔다. 모바일에서 온 기회는 놓치지 말자.”

◆세상 모든 음악의 게임화

박기현 대표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웹젠을 나온 것은 2011년 8월. 그 당시 개인사업 형태였던 에이팜스는 이미 ‘궁합’이라는 SNS와 Location Notes라는 서비스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은 상황이었다. 2010년에는 Boom Shake라는 소셜뮤직게임을 출시해 미국 아이튠즈스토어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 대표가 합류하면서 사명을 둡으로 변경하고 정식으로 법인 설립도 했다. 이후 K-POP 스타들의 음원을 활용한 리듬액션게임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처음 슈퍼주니어의 음원을 기반으로 나오기 시작해 현재까지 16개의 국내 음원을 기반으로 한 리듬액션게임이 출시돼 있다. ‘Musician Shake’로 명명된 이 게임은 앞으로 한류 스타들의 모든 음원을 대상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SM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JYP, YG 등 유명 연예기획사와 모조리 계약을 맺고 출발을 했다. 

 출시부터 반응이 좋아서 올 1월 캡스톤파트너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Musician Shake’는 한류 스타의 음원에만 제한하지 않을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 어디서나 음악이 새로 나올 때마다 간단하지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관련 게임이 개발된다. 박 대표는 “아예 새로 음반을 내는 가수 누구나 이것을 만드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만들 수 있도록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둡은 리듬액션게임에 집중을 하고 있지만 있지만 게임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 창업자인 최원석 대표가 특화돼 있는 분야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이기 때문이기에 둡은 소셜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회사명과 같은 둡이 그 자체로 SNS 플랫폼이 되는 그런 서비스다. 시기는 7월말~8월초. 박 대표는 “의미있는 대화가 있는 소셜서비스”라고 힘줘 말했다. 의미있는 대화가 있다? 무슨 뜻일까. 동행한 최백범 마케팅 매니저에게 힌트를 달라고 요청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합쳐 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이해하기 빠를 겁니다. 하지만 일회성의 의미없는 그런 대화들이 아니라 대화들이 축적이 돼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그런 새로운 방식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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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하는 이유

뉴미디어 세상 2012. 7. 1. 23:01 Posted by wonkis

<이 글은 LG전자 블로그 opinions에 실렸던 글입니다.>

“오늘 아침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교에 아이를 두고 나오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더군요. 힘내라 우리딸!”

“10년간 함께 살았던 우리집 고양이 유미가 어제 밤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천국이 있다면 유미는 천국에 갔겠죠?”

 전 세계 7억명이 사용한다는 페이스북에는 하루에도 이런 글들이 전 세계에서 수억개씩 올라온다. ‘좋아요’ 버튼을 누르기도 하고 댓글을 달면서 사람들은 대화를 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싸이월드, 카카오톡.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넘쳐나는 시대다. 지금 언급한 SNS 중 하나 이상을 쓰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되려 힘들 정도로 수많은 이들이 인터넷에서 SNS에 접속해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글을 올린다. 

도대체 언제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SNS에 열광하게 된 걸까. 왜 사람들은 SNS에 이렇게 글을 올리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할까.

◆SNS의 역사는 10년 남짓에 불과

 SNS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대중화된 2009년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그 전에도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국내의 대표적인 SNS 서비스 ‘싸이월드’가 등장한 게 1999년이었다. 그 전에도 하이텔, 케텔 등 이른바 ‘PC통신’을 통해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대화를 하는 등의 일이 일반적이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네트워크의 특성상 모든 인터넷 서비스에는 사실 소셜(social)이라는 명칭을 붙여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SNS의 원형은 과거 PC통신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선 1985년 커뮤니티 서비스 ‘더 웰(The Well)’이 처음 등장했고 국내에선 1988년 한국경제신문이 만든 케텔을 시작으로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 통신이 잇따라 등장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웹 기반 인터넷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PC통신은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초창기 인터넷 서비스는 PC통신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왔다. 다음 ‘카페’와 프리챌 ‘커뮤니티’ 등이 대표적이다.

 인터넷 도입과 함께 공통의 ‘관심’보다 개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미국에선 1997년 ‘식스디그리즈닷컴(SixDegrees.com)이란 사이트가 나타났다. 친구 리스트와 추천 시스템이 있고 개인 프로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오늘날 SNS와 흡사하다. 국내에선 1999년 아이러브스쿨과 싸이월드가 잇따라 오픈했다. 아이러브스쿨은 출신 학교를 매개로 사람들을 구분했다. 싸이월드는 ‘1촌’ 제도를 도입해 사진 등 게시물을 1촌에게만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식스디그리즈닷컴은 2000년 후반에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SNS에 영향을 미쳤다. 이를 바탕으로 2003년 마이스페이스, 링크트인, 2006년 페이스북, 트위터 등 다양한 서비스들이 생겨날 수 있었다. 

 2007년 6월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은 IT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본격적인 모바일 시대로의 대전환을 이끌어낸 것이다. 지금까지 아이폰이 촉발한 모바일 시대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서비스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였다. 하지만 모바일은 인터넷보다 더 빠르게 변하는 게 특징이다. 카카오톡은 나온 지 불과 2년 밖에 안 된 서비스지만 전 세계적으로 4500만명의 가입자를 모았다. 카카오톡 회원을 기반으로 한 SNS 카카오스토리는 출시된 지 닷새만에 1000만명 가입자를 모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어떤 서비스가 뜨고 질지는 아직도 예측 불가능이다.

◆’공감’하고픈 인간의 욕구는 불변

서비스는 계속 바뀐다. 싸이월드도 그 높은 인기를 계속 유지하진 못했고, 천하의 페이스북도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 하지만 서비스의 이름은 계속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서비스를 관통하는 SNS의 존재 이유, 바로  ‘공감’이다. 

 SNS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정말 다양할 것이다. 기쁨, 슬픔, 분노, 행복, 기대, 실망, 초조, 반가움 등. 하지만 SNS를 하는 이유, 그 시간을 쏟아붓는 이유, 계속해서 기대감을 갖는 이유는 동일하다. 그것은 공감을 원해서다.

 우리는 다 누군가와 공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함께 존재함을 느끼고 싶어서라고 거창하게 말할 필요 없이, 그저 공감을 하면 기쁘고 행복하고 살아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가상의 세계가 확산되고 차가운 디지털이 보편화될수록 사람들은 따뜻한 인간의 정을 갈구하고, 공감할 대상을 찾는다. 밖으로 좀처럼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공감할 대상을 찾는 것은 그래서 SNS다. SNS의 역기능과 짧은 역사, 폐쇄성 등을 이유로 SNS가 곧 멸종하리라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SNS는 어떤 형태로든 가상 세계가 지속하는 한 공감을 찾아 사이버 세상을 배회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유지될 것 같다. 그것이 모바일 메신저건, 게임이건, 커뮤니티건, 소셜커머스건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다들 너무나 외롭다. 대부분 머리를 푹 숙이고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가상의 세계에서라도 공감을 하고 싶어한다. 이런 이들에게 SNS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형태가 뭐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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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일이 이제 생길 때가 됐다.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한번 등장했던 인물이 회사를 바꿔 다시 등장하는. 써니로프트를 창업한 정주환 사장은 2010년10월 한국의 스타트업 스물두번째 회사로 기록을 남겼었던 넥스알(http://limwonki.com/394)에서도 등장했었다. 넥스알을 창업한 한재선 사장을 도와 당시 그 회사에서 사업총괄이사(CSO)를 맡았다. 그해 연말에 회사를 KT에 매각한 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지분을 팔고 새롭게 회사를 차렸다. 
 
 그가 새롭게 도전하는 써니로프트(Sunnyloft)는 이름 그대로, 햇빛이 잘 드는 다락방에서 이름을 따 왔다. 볕 잘드는 다락방에 올라가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뭔가 재밌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이름을 짓고 출발한 이 회사는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주면서도 즐겁고 재미있는 아이템을 발굴해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친구 6명이 시작한 써니로프트
정주환 대표는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같은 학교 기술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SK커뮤니케이션즈,네오위즈게임즈 등에서 사업전략,기획,신사업 개발 등을 담당했다. 공대를 나와 기술 분야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서도 경영 분야를 따로 공부한 그는 엔지니어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던 넥스알에 들어가 사업 분야를 총괄하고 회사를 KT에 매각하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다. 

 한재선 넥스알 사장이 넥스알을 매각하고 KT에 들어갔지만 정 대표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지분을 모두 넘기고 회사를 나온 그는 종종 연락하던 친구들과 만나 무엇을 할까 고민을 같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때마침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서로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들이 비슷한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백그라운드가 비슷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창업멤버인 정하녕 이사와 김재호 CTO(최고기술책임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으로 했다. 정하녕 이사는 NHN에서, 김재호 CTO는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각각 상품개발과 검색기술 개발 분야에서 일했다. 창업멤버인 정윤수 부사장과 나영채 팀장은 서울대에서 과는 다르지만(컴퓨터공학과) 정 대표와 비슷한 시기 동문수학한 사이고 조민구 팀장은 네오위즈게임즈에서 정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좋은 회사에서 커리어를 잘 쌓고 비슷한 백그라운드에서 함께 고민했다는 이들이 생각한 아이템은 바로 현재 떠오르고 있는 인터넷 신서비스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나 약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의 데이팅서비스엔 소셜이 없다
이들이 우선 주목한 것은 소셜데이팅서비스였다. ‘데이팅은 분명한 데 왜 소셜이 붙은 거지?’가 의문의 출발점이다. 즉 지금 온라인에서 데이팅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들의 대부분은 소셜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그냥 회원 가입을 하고, 하루에 한 쌍씩을 랜덤으로 연결해주는 것은 소셜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점은 지금 온라인 데이팅 업체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즉 지금의 소셜데이팅이건, 온라인데이팅이건 데이팅 서비스에는 소셜 항목이 전혀 없다. 여기서 출발해 써니로프트는 소셜 항목을 새로 시도하고 있다.

 데이팅에서 소셜이 추가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써니로프트는 소셜의 핵심을 신뢰성(credibility)라고 생각하고 있다. 데이팅 업체가 아무리 나의 프로필과 맞는 좋은 사람을 소개해준다고 해도 그 업체의 선의를 신뢰하기는 힘들다. 즉 서류상 기준은 충족할 지 몰라도 나의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딱 맞는 사람을 소개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남자인 나의 친한 남성 친구와 내 여자친구의 친한 동성 친구 중 맞는 사람이 있다면 최상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그런 것을 반복하기는 힘들죠.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것을 시작하는 데는 자신이 쓴 프로필에 대한 불신이 출발점이 됐다. “보통 소셜데이팅 서비스에는 자신이 프로필을 쓰게 돼 있쟎아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가 자기 자랑을 한다는 게 얼마나 정확할까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일견 맞는 말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를 야구 전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야구에 정통한 친한 친구가 볼 때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친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규정도 여러가지 부문에서 균형이 필요하다.

 써니로프트가 출시한 소셜데이팅 서비스 이름은 데이트프레소(Datepresso). 이 서비스의 특징 중 두드러진 부분은 자기 자신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소셜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특징 이런 것에 대해 나 스스로 나를 평가할 수도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항목에 대해 다른 사람의 냉정한 평가가 덧입혀진다. 나는 스스로를 ‘나이스한 도시 남자’라고 평할 수도 있고 ‘노래가 특기’라고 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항목을 아무도 클릭 안하면 아주 썰렁하게 남아 있는다. 남들은 나를 ‘차가운 도시 남자’라고 정 반대의 평가를 할 수도 있고 ‘노래 좀 부르지 마’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자신에 대한 평가부터 자신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소셜네트워크에서 이뤄진다. 이것을 써니로프트는 Friends of Friends Network라고 명명한다. 일종의 플랫폼이다. 참으로 적절한 이름인 것 같다. 데이트프레소에는 이것 말고도 재밌는 장치가 많다. 상대방을 찜할 수 있는 기능 Dibs도 있다. 누군가 나를 마음에 두면 Dibs를 클릭한다.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굉장히 설레는 시스템이다. ‘Woo’는 일종의 ask out 이다. 고백하는 장치다. 마음에 드는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고백할 수 있다.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검색 장치가 필요하다
 데이트프레소의 서비스를 유심히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것은 사실은 데이팅을 매개로 한 다른 서비스다.’ 정확히 말하면 소셜데이팅이 아니다. 정 대표는 이것을 데이팅을 앞세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고 설명했다. 소셜데이팅이라는 범주에 넣기보다는 그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실제로 정 대표가 지향하고 있는 바도 단순 소셜데이팅의 차원을 넘어서는 거였다. 데이트프레소는 데이팅을 사람들 간의 만남과 소통을 위한 일종의 주제로만 삼았을 뿐이다. 

 써니로프트는 소셜데이팅에 그치지 않는다. 좀 더 심각하고 좀 더 큰 시장에 대한 준비도 하고 있다. 클로즈베타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는 Qranga는 지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소셜 검색 서비스다. “이미 SK커뮤니케이션즈가 하고 있지 않나요?”라고 물어볼 만 하다. 나도 그렇게 물었다.

 SK컴즈 출신답게 정주환 대표는 “네이트에서 소셜검색을 시도했지만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1촌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제한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즉 구현 방식 자체는 비슷하지만 일촌들이 미니홈피에서 한 답변 중에서 의미있는 것만 추출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과에 제약이 많았던 것이다.

 와인에 대해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세상 최고의 와인 전문가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전문성은 그보다 좀 떨어져도 우리 집 사정도 좀 알고, 내 취향도 잘 알면서 와인을 잘 아는 친구가 전해주는 정보가 훨씬 유익할 수 있다. 프로젝트명으로 진행중인 Qranga는 이런 점에 착안했다.

 자본금 3억원으로 시작했던 이 회사는 시작하자마자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투자도 유치했다. 일단 소셜데이팅 사업은 매출이 바로 발생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게 여러 기존 회사들의 시도로 입증됐다. 소셜 검색 분야에서의 매출과 수익 문제는 써니로프트가 새롭게 도전해야 할 과제다.

 “앞으로 사람들의 네트워크와 지식, 정보는 아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훨씬 더 견고해질 것 같습니다. 거기서 생겨나는 엄청난 정보와 관계도 제대로 체크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SNS가 발전할수록 끼리끼리 문화가 더욱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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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오브제(Ovjet)’. 언제부터인지 이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2010년 봄 SK텔레콤이 스마트폰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대대적인 광고를 할 때 등장했던 서비스가 오브제였다. 증강현실을 이용해 스마트폰을 길거리에 비추면 커피숍 위치를 보여주는 등 스마트폰의 다양한 활용 방법으로 오브제가 광고에 나왔다. 

 그 덕에 오브제는 안드로이드 폰 이용 초기에 제법 많은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가 정작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다소 난해했던 서비스 페이지를 개선하고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게 해주면서 한동안 주춤했던 다운로드 건수가 다시 늘었다. 지난해 11월 1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한 이 앱은 작년 12월 중순께 1100만도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증강현실이나 위치기반 서비스 수준을 뛰어넘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오브제 개발사 키위플의 신의현 대표를 만났다.

◆휴대폰 기획을 하다가 미래를 보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94학번인 신 대표는 10년 동안 휴대폰 제조업에 종사했다. 2000년 SK텔레텍에 입사, 이 회사가 팬택에 인수되면서 팬택으로 옮겼다가 SK텔레시스에서 일했고 최신원 회장실에서 근무하며 특수 업무(?)도 맡았었다. 신 대표가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했던 일은 휴대폰 상품 기획이었다. 

 팬택 시절 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른바 ‘슬라이드폰’이라는 걸 만들었다. 지금은 터치스크린의 스마트폰이 대세고 주위에 모두들 그런 폰을 쓰는 사람들만 보이는 것 같지만 2000년대 중반에 나온 슬라이드폰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전까지 대세였던 이른바 폴더폰은 한 손으로 폴더를 열고 닫기가 쉽지 않았고 전화를 받다가 폴더가 저절로 닫히면서 전화가 끊어지는 사례가 속출했다.

 가볍게 밀어올리면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게 하는 그런 방법을 그는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에 더 관심을 가졌다는 게 그가 말한 답이었다. “공대를 나왔지만 정통 개발자의 길을 가지는 않았습니다. 상품 기획이라는 게 사실 인문학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거든요. 그런 능력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자기와 맞으면 특별히 발달이 되기도 합니다. 저에겐 이 일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제품에 대한 오랫동안의 고찰은 특히 그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됐다. ‘좋은 제품은 부품의 조합이나 스치는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람에 대한 인문학적인 고찰이 중요하더라구요. 결국 사람의 기호와 선택을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기술을 보기 전에 인간 욕망의 본질을 봐야죠. 예를 들어 지금은 모든 휴대폰이 널찍한 네모 모양입니다. 대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기 자체가 너무 강해요. 또 달라질 겁니다.”

 그는 상품 기획을 하면서 계속해서 2-3년 후의 미래를 보는 훈련을 했다. 그리고 그 훈련 속에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았다. 그건 휴대폰 제조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업종에 대한 위기의식, 그리고 현실에 대한 절박함이 그를 변화로 이끌었다.

◆550가지 아이디어 중 한가지
회장실에서 근무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그래서 텔레시스에서 일하던 마지막 1년6개월여 동안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서 정리를 했다고 한다. “정리해보니 550가지나 되더라구요. 잊을까 싶어 노트에 빼곡하게 적어놨죠.” 피아식별이 가능한 무기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아이디어, 집안 내부 전체를 디스플레이화하는 시스템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 체중연동보험이나 은행이자 상품 등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오브제는 550가지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 그는 이것을 구체화하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그와 뜻을 같이한 사람은 SK텔레텍 시절부터 함께 일했던 동료이자 서울대 후배인 최현정 이사. 신 대표가 SK텔레텍 2년차때 서울대에 채용하러 갔다가 두 사람은 알게 됐다. “그때 신 대표님은 일반 사원이었는데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아 저 사람과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회사로 들어와서 무조건 신 대표와 같이 일하겠다고 떼를 써서 부서를 바꿨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95학번인 최 이사는 신 대표의 창업에 대한 뜻을 알고 2008년말부터 함께 오피스텔을 얻어 사업을 구상했다. 그리고 5명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더 모아왔다. 이들 7명은 2009년 8월 키위플을 창업했다.  

 키위플 창업자들은 모두들 웬만큼 직장 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각자 돈을 내 2억원의 자본금을 만들었다. 그런데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회사를 차린 지 두달만에 3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그게 꼭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너무 빨리, 너무 쉽게 투자를 받아서 아 우리가 열심히 하면 투자를 받을 수 있는거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내 생각은 좀 달랐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SI 안하고 오브제 개발에 전념하신거 아닌가요? 적절할 때 투자를 받지 못해 본업을 제대로 못하고 SI만 하다가 본업을 놓치는 회사들 많습니다.”

<키위플 본사에서. 전체 직원들이 모여. 사진제공=키위플>


◆사물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오브제 아이폰 버전을 개발하던 중 SK텔레콤에서 연락이 왔다. “안드로이드 버전으로 먼저 만듭시다” SK텔레콤은 국내에서 KT와 대항할 대표 앱이 필요했다. 오브제는 증강현실에 위치 기반까지 더해 첨단 느낌을 주기에 딱이었다. “SK텔레콤에 3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사용자에게 돈을 받지 말 것, 일정 기간만 Favor를 주고 이후엔 다른 통신사에도 개방할 것, 해외 나갈 때 도와줄 것. 양해가 되면서 안드로이드용으로 먼저 나왔죠. 그 덕에 마케팅에 큰 도움도 받았구요.”

 오브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사물 또는 장소를 ‘팔로우(Follow)’한다는 독특한 개념 때문. 트위터에서 사람을 팔로우하면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다 볼 수 있듯이 오브제에서는 장소나 사물을 팔로우하면 관련 정보나 이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반응 등을 모두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 명동점이라는 특정 장소나 국회의사당, 한국경제신문 빌딩이라는 특정 건물을 팔로우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건물이나 점포를 방문했던 사람들, 또는 그 건물에 가지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남긴 글과 사진, 사연 등을 통해 서로 친구가 되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건물과 장소, 사물을 통해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찾고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팔로우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해당 별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일종의 소셜네트워크가 형성된다. 내가 황소자리를 좋아해 이를 관심사로 등록하면 황소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올린 글을 볼 수 있고 서로 별자리를 놓고 대화하다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증강현실을 이용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오브제의 장점이다. 앱을 실행한 뒤 하늘에 비춰보면 대낮에도 하늘에 어떤 별자리가 있는지를 증강현실로 보여준다. 커피숍을 찾고 싶어 스마트폰 카메라를 거리에 비추면 인근 커피숍이 증강현실로 나타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숍이 있으면 이를 ‘관심사’로 등록하고 여기를 방문했던 사람들이 어떤 글을 남겼는지 알 수 있다.

◆올 상반기 미국, 유럽 등에도 진출
키위플은 왜 이런 앱을 만들었을까. 신의현 대표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지만 모든 사물과 공간에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호감도가 담겨 있게 마련”이라며 “같은 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간의 공통점을 연결하면 새로운 SNS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사물을 통한 SNS라는 개념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대한 그의 인식에서 나온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면 빨간 알약, 파란 알약 둘 중에 고르게 하쟎아요. 파란 알약을 고르면 편하지만 가상 세계에 살게 되고 빨간 약을 고르면 진짜 현실을 마주하게 되죠. 저는 사람들에게 빨간 약을 권하고 싶었습니다. 온라인, 모바일을 거치면서 더욱더 가상화된 삶에 익숙해지는 사람들을 현실 세계로 끄집어내고 싶었어요.”

 2011년 여름 퀄컴벤처스에서 15억원을 투자받으며 사업 역량도 인정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등 수익성 면에서도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동안 오브제가 너무 무겁고 거한 앱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인식, 가볍고 쓰기 편한 3.0 버전을 출시한 게 반응이 좋았다. 아직까지 오브제 이용자는 전부 국내 거주자들이다. 신 대표는 “올해 가장 중요한 경영목표는 미국과 유럽 등에 진출하는 것”이라며 “앱에 붙이는 간단한 광고 모델로도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만큼 단기 수익성보다는 중·장기 성장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내실을 다져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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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온’(Seeon)은 작년 3월 벤처기업 취재 기록을 남기겠다고 하고 첫 스타트를 끊은 이후 딱 쉰번째 기록을 남기게 된 회사다.아직 갈 길이 멀겠지만,회를 거듭할수록 어떤 흐름이나 방향성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시온은 기술전문가가 도전하는 서비스 회사라는 점에서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다뤘던 서비스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우선 기술 분야에서 탄탄한 경험과 지식을 쌓은 대표가 기술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구축한 회사다.인터넷이든 모바일이든 이쪽 분야의 서비스 및 콘텐츠 회사에서 대표이사는 핵심 서비스 내용을 잘 아는게 좋은데,그것은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업의 특성상 기술과 서비스 모두를 알아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안병익 시온 대표는 창업이 처음이 아니지만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B2C 서비스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하지만 통신사에 관련 서비스 솔루션을 만들어 납품하면서 간접적인 경험은 해 왔다.통신사를 상대로 오랫동안 B2B에서 내공을 갈고 닦은 안병익 대표를 만나러 반포동에 있는 시온 사무실을 찾아갔다.

◆LBS 전문가 외길 인생
 안병익 대표는 컴퓨터 공학을 쭉 공부해온 사람이다.처음에 그는 석사학위까지 받고 KT(당시 한국통신)에 입사했다.그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은 연구원이었다고 한다.안 대표는 KT에 입사해서 KT연구개발원에서 일했다.그로서는 하고 싶었던 일을 잘 선택한 셈이다.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그는 연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KT연구개발원에
서 그가 주로 했던 일은 GIS(지리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거였다.“KT는 지도 DB가 많았는데 그것을 갖고 뭔가를 하고 싶어했습니다.제가 하는 일은 지리정보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을 기반으로 생활지리정보서비스를 개발했죠.”

 IMF직후인 1998년 회사에서 사내벤처제도가 만들어졌다.그때 회사의 상사가 그에게 같이 사내벤처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그는 계속 버텼지만 함께 하지 않으면 안하겠다는 상사의 협박(?)에 할수 없이 지리정보서비스를 만드는 한국통신정보기술이라는 사내벤처회사를 만들었다.연구원으로 어찌보면 평탄하게 또는 어찌보면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그의 인생이 전환기를 맞는 순간이었다.

 2년간 이 회사에서 내공을 쌓은 그는 2000년에 독립해 포인트아이라는 위치기반 소프트웨어솔루션을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자신이 이름을 걸고 만든 첫 회사다.이 회사는 KT의 초기 LBS(위치기반서비스)는 거의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안 대표의 설명이다.2006년에는 코스닥시장에 상장도 해 돈도 좀 손에 쥐었다.하지만 2009년에는 다른 회사에 포인트아이를 넘기고 대표이사로서의 역할만 수행하게 된다.회사가 주력으로 삼았던 모바일 솔루션 개발이라는 사업이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점점 어려워지고 있던 시절이었다.이 무렵부터 안 대표는 위치기반 정보라는 자신의 주전공을 살리면서 변화의 시대에 걸맞는 서비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그리고 얼마 안 있어 안 대표는 자신이 창업했던 포인트아이를 홀로 떠났다.2010년 5월의 일이었다.

◆B2C를 해보고 싶다
 그가 회사를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포스퀘어였다.위치기반 전문가로서 10년 넘게 일을 해 왔지만 그는 한번도 소비자를 직접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에 올인한 적이 없었다.항상 대기업인 KT의 서비스를 위한 솔루션을 만드는 일에 주력해 왔다.포스퀘어를 보면서 그는 자신이 꿈꿔왔던 위치기반 서비스가 구현되는 것을 눈으로 처음 확인했다.그 자신도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포인트아이에 있으면서 솔루션 업체의 한계를 절감한 것도 있었다.통신사에 의존해서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 아이폰 시대가 열리면서 더 이상 유효한 비즈니스가 아니게 된 것이다.그렇다고 통신사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그는 빨리 변화되는 스마트 모바일 환경에서 통신사가 이런 종류의 일을 하는 것이 적합지 않다고 느꼈다.그래서 혼자서라도 해보겠다고 결심하고 혼자 회사를 설립했다.결국 그는 자신이 기술적으로 생각하고 이론적으로 정립해왔던 것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고 소비자들이 이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위치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온이 지난해 출시한 씨온은 미국의 포스퀘어나 한국의 KTH가 개발한 아임인과 비슷한 서비스다.안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포스퀘어보다는 좀 더 SNS에 집중했고 아임인보다는 좀 더 위치기반 성격이 강하다.위치기반 SNS로 본인의 위치 기록을 통해 주변사람들과 소통 및 장소를 공유하는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포스퀘어는 트위터의 매쉬업 서비스 성격이 강했습니다.하지만 씨온은 자체로 독립적인 서비스이면서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카카오톡 등과 연동돼 자신의 지인들과 편한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자신의 기록을 남기고 주변사람들과 대화하는 커뮤니티 도구이면서 특정장소의 SeeOn(체크인) 내용을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카카오톡 등으로 전송하는 것도 가능하다.씨온 서비스는 현 위치 주변 사람들과 얘기 나눌 수 있는 ‘우리&’,현 위치 주변의 장소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여기&’,지도를 기반으로 친구들과 얘기하고 장소 등을 볼 수 있는 ‘지도&’,내가 쓴 글과 댓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토크&’ 등을 비롯,프로필,최근 SeeOn 정보 및 친구관리,SNS 연동 기능 등을 제공하는 내정보 메뉴로 구성돼 있다.

 씨온 서비스 중 가장 기본은 에헴(Ahem)이라는 항목이다.한글이다.말 그대로 ‘나 여기있다’ 또는 ‘여기 좀 봐줘’라고 말하고 싶을 때 헛기침하듯이 하는 의성어 에헴에서 따온 것이다.소셜네트워크의 특성을 살려 사람들끼리 어색하지 않게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이도록 만들어 놓은 코너다.

 씨온은 현재까지 60만명 정도가 다운로드했다.국내에서는 KTH의 아임인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사람이 다운로드한 서비스다.위치기반 소셜네트워크이지만 소셜커머스와 겹치는 부분도 많다.최근 소셜커머스들은 모두 지역 기반 광고플랫폼을 내세우면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셜커머스 업체의 위치기반사업은 기획에서 마케팅까지 다 하는 ‘홈쇼핑’과 비슷하다.하지만 씨온은 ‘이베이’와 같은 오픈마켓이 모델이다.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해주는 것이다.

◆마케팅플랫폼 플러스샵 오픈
 시온은 최근 국내 최초로 LBS 기반 마케팅 플랫폼 ‘플러스샵’을 선보였다.플러스샵은 매장 관리자가 직접 이벤트나 특별한 혜택을 등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다.“국내 자영업자들은 6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대부분 전단지 같은 구시대적인 마케팅 방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스마트폰이 1000만대 이상 보급된 상황에서 이들에게 유용한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안 대표가 이런 생각으로 만든 것이 ‘플러스샵’이다.자영업자들은 씨온 이용자를 대상으로 이벤트,홍보,마케팅,판매를 할 수 있다.무엇보다 플러스샵에 등록한 자영업자들에게 충성 고객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씨온은 위치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매장에 자주 오는, 혹은 가능성이 높은 이용자를 대상으로 마케팅이 이뤄진다.

 다양한 마케팅 방식을 제공하는 것도 장점이다.플러스샵에 등록된 업체는 방문횟수별,시간대별 등 여러 조건에서 프로모션을 벌일 수 있고 고객에게 주는 혜택도 아주 다양하다.고객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큰 강점이.굳이 거래를 유도하기보다는 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의미다.따라서 고객을 끌어모으고 입소문을 확산시키는데 효과적이라는 게 시온 안병익 대표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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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소프트는 지금까지 소개했던 스타트업과는 사뭇 다른 회사다.우선 창업자가 대기업을 다니다가 창업했다던가,서울대-KAIST출신이라던가,예전에 크게 성공이나 실패를 했다던가 하는 그런 범주에서 좀 벗어나 있다.이 회사 창업자는 대기업을 한차례 거친 적은 있지만 최근 10년간 중소기업에 몸담고 있었고,IT 관련 창업가들이 흔히 거치는 그런 과정을 별로 거치지 않았다.하지만 그가 준비하고 소개하는 서비스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그것은 그가 개발자나 공급자 입장이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것을 구현했기 때문이다.6월이면 곧 모습을 드러낼 도래소프트의 이츠타운(it's town)을 미리 만나봤다.

◆10년만에 벤처 재도전
김성욱 대표는 성균관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LG산전(현 LS산전)에 입사했다.1999년부터 그는 창업을 생각했다.물론 그를 자극한 것은 당시 불고 있던 벤처 열풍이었다.

 그는 웹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을 시작했다.쉽게 말하면 웹에이전시 서비스다.그런데 창업 시점이 문제였다.1999년 창업을 하겠다고 회사를 나온것까지는 좋았는데 2000년 5월 창업을 하고 보니 시장이 싸늘하게 식어있었다.그해 3월 이미 거품이 붕괴되면서 주가가 폭락했었고 IT에 관련된 투자 심리는 싸늘하게 얼어붙어있었다.

 창업하자마자 이런 상황에 닥친 그는 (당연히) 고생을 좀 했다고 한다.그래서 2001년초 나라e비즈니스라는 웹 기획 및 솔루션 개발업체와 합병을 했다.덩치를 키워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대기업에 들어갔다가 4년만에 나와 벤처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약간은 어정쩡한 상황이 된 것이다.그리고 뜻밖에 그는 나라e비즈니스에서 10년간 몸을 담게 된다.

◆지역정보 서비스는 왜 안 바뀔까
 나라e비즈니스에서 그는 다른 회사의 웹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을 해줬다.외주를 맡아서 한 셈이다.그가 직접 개발을 하진 않고 마케팅이나 기획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처음 창업할 때의 마음가짐을 그는 계속 갖고 있었던 것 같다.내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자신의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사내에 있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공공연하게 말했던 그는 작년 하반기 결국 독립해서 따로 회사를 차렸다.회사에서 그의 뜻에 동조하는 이들이 몇명 합류했다.

 회사 이름은 자녀들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도래소프트라고 지었다.자식이나 마찬가지인 회사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고 길 도자에 미래 래자를 쓰기 때문에 미래로 가는 길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역 정보 서비스가 수년간 거의 변하지 않아 왔다는 것에 주목했다."포털에서 검색을 하는 결과물이 특히 그렇죠.가장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어떤 지역 정보나 매장 정보를 찾을 때 포털에서 검색을 하지만 지도 옆에 업소 이름과 전화번호 정도 나오는 기본 형태가 몇년째 유지되고 있더라구요."
 요약하자면 포털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닫힌 시스템이 문제였고 그 때문에 개별 업소들이 자기 매장의 정보를 관리하는 것이 힘든 구조가 지속돼 왔다.

 김 대표는 소셜커머스가 본격화된 이후에도 국내 지역 정보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어차피 업소 주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그래서 그는 매장 주인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위치기반 블로그 형태의 서비스를 기획했다.

◆내 주변 정보를 알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오는 6월 출시될 이츠타운은 현재 웹 버전은 거의 완성된 단계다.아직 출시를 하지 않는 것은 6월에 아이폰용 앱을 개발해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즉,웹과 앱 버전을 함께 출시해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아이폰 앱과 함께 출시되면 업주 입장에서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매장 관리와 고객 관리가 모두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한다.소비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있는 위치나 찾고 싶은 곳의 주변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이츠타운 서비스를 설명하면서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자기 집이나 회사 근처에 무슨 식당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반대로 무슨 식당이 있는지는 알지만 그 식당들이 어떤 이벤트나 할인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또 모르는 지역에 갔을 때 그냥 업소 리스트만 보고 음식점이나 매장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지금의 소셜커머스나 지역 정보 서비스들은 사람들이 실제로 처한 상황과는 괴리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사람들의 이런 현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야 한다는 거다.

 그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활용하는 것은 업주들에게 결국 별 도움이 못될거라 예측했다.SNS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것을 스팸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상점도 참여하고 소비자들도 참여하는 지역기반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자고 생각하게 됐다.이츠타운의 특징 중 하나는 따로 회원 가입이 필요없이 모든 종류의 SNS 계정으로 로그인해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페이스북,트위터,미투데이 등 어떤 것이나 된다.

 결국 이츠타운을 통해서 매장 관리를 하면 자체 페이지를 통해서 뿐 아니라 기존의 SNS를 통해서도 홍보를 할 수 있게 된다.매장 주인들이 직접 관리하면서 후기를 올리는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도입할 것이기 때문에 해당 매장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단순 리스트나 할인 정보만 나오는 기존 지역 정보 서비스와는 차별화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업소들이 직접 내용을 올리고 관리하기 때문에 신뢰도 더 할 수 있고 업소들은 충성도 높은 고객을 알게 되는 측면도 있을 겁니다.장기적으로 지역 정보를 기반으로 자영업자들과 소비자들이 교류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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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장이 열리면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다.”
NHN을 창업해 대박 신화를 일궈냈던 김범수 카카오 사장이 평소 즐겨하던 말이다.인터넷을 개척한 것처럼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기회를 찾겠다는 뜻이었다.그리고 그는 자신이 한 말의 주인공이 됐다.그가 NHN을 나와 선보인 카카오톡은 모바일 앱 중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다.

김범수 사장과 21일 급히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카카오톡의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웹에서의 성공 기억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이어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카페 블로그 등이 떴던 것처럼 모바일에서도 그런 소통의 도구들이 인기를 끌 것”이라며 “하지만 UI(사용자인터페이스)나 서비스 형태 등은 전혀 다른 모양새로 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현재 국내 인터넷기업들이 과거 웹에서 성공한 방식을 그대로 모바일에 적용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1990년대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넘어가면서 패러다임 변화와 함께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다”며 “지금은 모바일로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는데 여전히 웹에서의 서비스 방식을 모바일에 그대로 적용하는 회사가 많다”고 꼬집었다.

김 사장은 메신저라는 웹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를 도입해 카카오톡을 만들었다.하지만 모바일에 맞게 전화번호부를 연동하고 집단채팅 등을 도입하는 등 혁신적인 서비스를 통해 결실을 맺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카카오톡의 가장 큰 고민은 수익 모델이 아닐까.하지만 김 사장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그는 “현재 추세면 연말에 이용자수가 2000만명을 넘어설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수익 모델은 자연스럽게 나온다”며 “그것보다는 모바일 환경에서 수많은 앱을 연결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털어놨다.웹을 통해 링크가 엄청난 비즈니스를 만든 것처럼 모바일 시대에도 따로 활동하는 수많은 앱들을 연결하는 것이 더 큰 시장을 만드는 관건이라는 얘기다.

그는 이런 고민을 하다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남궁훈 CJ인터넷 대표,김정주 넥슨 대표,나성균 네오위즈 창업자,천양현 전 NHN재팬 대표,박성찬 다날 대표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다양한 분야로의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 유치다.김 사장은 “모바일 시장은 웹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그래서 혼자서는 하기 힘들 것 같아서 많은 분들과 함께 사업을 하기로 했다”며 “단순 지분투자가 아니고 게임을 비롯,다양한 엔터테인먼트,서비스 등과 연결할 수 있는 첫 단추를 꿴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사장은 카카오톡을 모바일 분야에서 국내 최초의 대규모 소셜네트워크플랫폼으로 키운다는 복안이다.앱스토어에 올리면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기도 쉽기 때문에 해외 진출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이미 지난해말 실험적으로 진출한 중동 시장에서 전체 앱 다운로드 1위에 오르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김 사장은 “카카오톡은 결국 싸이월드를 넘어서는 국내 최대 소셜네트워크가 될 것”이라며 “앱스토어에 있는 수많은 앱들을 카카오톡 중심으로 연결하면 카카오톡이 모바일 시대의 첫 소셜허브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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