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범 아이이펍 대표는 첫 눈에 운동선수를 연상케 한다. 다부진 몸매와 씩씩한 말투, 짧고 분명한 태도때문에 그렇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전자책 이야기만 했지만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정말 그는 운동선수 출신이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그는 실패가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창업에 계속 도전해왔다. 분야를 가리지 않았고 나이나 환경을 가리지도 않았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 IT 분야 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기도 했고 스킨스쿠버 강사, 스키 강사, 세탁소 운영까지 별 걸 다해 본 인물이다. 10년 넘게 창업에 도전하고 있는 김철범 대표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빚더미에 앉은 대학 시절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그의 집은 넉넉한 편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운동을 잘하고 체격이 좋아 중학교 졸업할 때가지 수영선수과 스키 선수로 활동을 했다. 두 가지를 번갈아할 만큼 체력이 좋았다고 한다. 한양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 얼마 안돼 첫 시련이 시작됐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부모님은 미국으로 사업을 하러 떠나셨고 그는 등록금을 내기가 힘들어 대출을 받게 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돈을 더 빌렸는데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6000만원이 됐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의 일이다. 그 시절에는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학생이 이런 빚을 지게 됐으니 학교 다니기가 어려웠을 터. 빚을 잔뜩 지고 그는 골방에서 두달동안 웅크리고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자살을 결심했다. 약을 사가지고 와서 막 입에 털어 넣으려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돈 때문에 죽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깟 돈이 내 목숨보다 중요할까? ” 그런 생각을 하자 세상이 달리 보였다. 그 길로 골방을 나와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수영 선수로 활동했을 정도였기 때문에 체력 하나는 남달랐다. 그 덕에 봄 여름 가을에는 수영강사로, 겨울에는 스키강사로 뛰면서 돈을 벌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고 한다. ‘사람이 목숨 걸고 하면 정말 되는 구나’ 

 “정말 가진 게 내 몸뚱이 하나 뿐이었던 시절이었지만 막 찾다보니까 길이 열리더라구요. 6000만원을 갚는 1년 6개월 동안 버는 족족 카드사에 보내주기 바빴는데 빚을 다 갚고 제로로 만들던 날 그 카드사 직원이 저에게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수고 정말 많으셨습니다’라고요. 카드빚 무서운 걸 그 때 똑똑히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학교로는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한양대를 중퇴한 그는 포세이돈이라는 스킨스쿠버 장비 회사에 다녔다. 스킨스쿠버 활동을 하다보니 관련 장비를 하는 일에 눈을 뜬 것이다. 장비를 만들어 팔다가 직접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1년 친구와 함께 아쿠아코라는 회사를 창업, 삼성으로부터 발주를 받아 수중디지털카메라 ‘하우징’이라는 것을 개발했다. 100미터 방수가 되고 물속에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전문가용 장비였다.

◆계속되는 실패
아쿠아로는 그로서는 처음으로 하는 창업이었다. 삼성과 계약도 체결하고 해외 전시회도 나가는 등 기세 좋게 출발했다. 그런데 제품의 질이 따라오질 못했다. 물속에서 사진은 잘 찍혔지만 한 박자 느린 게 흠이었다. 처음엔 판매가 좀 됐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촬영이 늦게 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판매가 뜸해졌다. 결국 그는 2005년에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나왔다.

 “그 뒤에도 사실 사업이 잘 되진 않았습니다. 좀 꼬였죠. 방황을 많이 했어요.” 아이디어를 디벨로퍼하는 회사를 창업했지만 실패했고 수중 촬영장비 회사에 취직했는데 이 회사에도 큰 재미를 못 봤다. 2008년까지 버티다 미국으로 넘어가 샌드위치프랜차이즈 사업을 했다. 여기까지 정말 그는 온갖 종류의 일을 다 했다. 그가 창업을 하거나 관여한 회사만 10가지가 넘는다. 미국에서 금융위기때문에 사업 확장이 어려움을 겪자 2010년 2월 귀국했다. 그는 이번에는 다른 일을 할 생각을 하고 들어왔다. 스킨스쿠버나 스키 등과 관련이 없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천리안 등 시숍 활동도 하고 PC통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PC통신을 하면서 온라인에 눈 뜬 세대죠. 그런데 온라인에서 뭔가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못했습니다. 이제 해 볼 때라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에 들어온 직후 그는 한 출판사에 취직을 했다. 거기서 그는 전자책 업무를 배워 키워나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을 해보니 전자책과 종이책은 도저히 같이 갈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더라구요. 독자로 다르고 일을 하는 방식도 완전히 서로 상반되고, 문화도 달랐지요. 전자책을 하려면 전자책만 하는 전문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을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배웠습니다.”

<아이이펍 김철범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직원들이 포즈를 취했다. 지금은 광화문에 사무실이 있지만 사진을 찍을 당시엔 사무실이 화정역 인근에 있을 때였다.>

◆전자책에서 길을 찾다
 결국 2010년 11월 출판사는 나와 독립했다. 회사를 나올 때 11년간 도서관 사서로 일했던 아내가 그를 격려해주고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그래서 부부는 전자책 전문 업체 아이이펍을 2010년 11월 설립했다. 전자책을 기획하고 직접 제작을 하면서 직접 유통사에 전자책 파일을 주는 전자책 전문 출판사다. 기획 단계부터 전자책으로 만들 원고를 수집하고 제작을 하면서 전 유통사에 파일을 공급하는 업체는 국내에 많지 않다.

 처음엔 돈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창업하고 8개월 동안 사무실 없이 작업을 했어요. 가지고 있는 장비라고는 나와 아내 소유의 6년 된 노트북 두 대가 전부였고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정말 제로상태로 온 터라 처가에 있으면서 일을 시작했죠.”  그래도 작년 가을엔 기술보증기금 인증 벤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국내 최초로 전자책들이 미국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협약도 체결했다. 
 
전자책은 기존 종이책을 단순하게 변형하는 방식의 수준에서 벗어나고 있다. 기획 단계부터 전자책에 최적화된, 형식도 그렇고 내용도 전자책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기획해서 만드는 그런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아이이펍은 이런 전자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종이책을 단순히 형태만 변형하여 전자책으로 만드는 것과 처음부터 전자책을 목적으로 기획을 하는 것과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일단 전자책과 종이책은 보는 독자 자체가 다르거든요. 형태만 전자책으로 변환한 콘텐츠는 전자책을 보는 독자들에게는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내에서 아직 전자책 시장은 그리 크지 않다. 2000년대 초부터 전자책 시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니, 미래의 핵심 콘텐츠 사업이니 하는 말들이 많이 나왔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사업 중의 하나다. 전자책을 볼 만한 단말기 문제도 있었고, 전자책으로 볼 만한 콘텐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콘텐츠 문제가 가장 컸는데 지금까지 전자책 업체들이나 출판사들은 기존의 오프라인 도서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해결책이 못된다는 걸 이제 모두가 알게 됐다. 전자책은 전자책 자체에서 콘텐츠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300-400페이지씩 하는 오프라인 도서를 전자책으로 바꾸면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김철범 대표는 전자책 전문 콘텐츠가 국내에서도 점차 활성화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장이 형성되면 우리나라의 콘텐츠를 기획해서 해외에 판매하고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마트 모바일 시대에는 장벽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K-POP이 인기라지만 꼭 연예분야 뿐 아니라 한국이 가진 사상과 아이디어가 책과 글을 통해서도 세계 사람들에게 충분한 매력을 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 그게 제 꿈입니다.”

 그의 인생은 정말 파란만장했다. 마흔이 넘어서 빈털터리 상태에서 다시 창업을 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고 얘기를 할까. “저는 KFC 창업자 할랜드 샌더스를 정말 존경합니다. 그 분은 남들이 다 은퇴할 나이에 도전하셔서 성공했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젊지 않은가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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