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이 지나갔습니다. 어제 새해를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신묘년 2011년이 저뭅니다. 작년 3월 처음으로 한국의 스타트업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올해초에 29회로 막을 열었습니다. 올해 안에 70회까지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맞이했는데, 결과적으로 70회는 다 채우지 못했습니다. 이번이 예순일곱번째 이야기입니다. 약간 부족하지만 더 부지런하게, 더 노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려고 합니다.
스타트업과의 만남은 제가 취재를 하면서, 기자로서 10년 남짓하게 살면서, 가장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일입니다. 작년에 기록한 스물여덟명의 벤처인들, 그리고 올해 만나 기록한 서른아홉명의 벤처인들은 꿈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 꿈만 있고 용기가 없었다면 그들은 그런 시도를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기존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았고 힘든 과정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찾을 것 없이 그들이야말로 Stay Hungry, Stay Foolish를 정말 삶 속에서 구현하며 살아가는 이들이었습니다.
올해는 예순일곱번째 이야기로 한 해를 마감하지만 새해에는 더 풍성한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 거란 소망을 가져봅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와주시고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격려와 비판을 해주시고 공감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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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쓰리래빗츠 대표는 헝그리 정신이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그의 이메일을 받고 그를 만났을 때 사실 그가 하는 사업에 대한 전망이나 사업성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사실 항상 그렇듯이 사업성을 판단하는 것은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었다. 다만 나는 이들의 스토리 속에서 가능성을 엿볼 뿐이었다.
김 대표는 정말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었다. 처음 봤고, 그와 그의 사업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은 정말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구나. 혹 실패를 한다고 하더라도, 아니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니면 큰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냥 묵묵히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겠구나.’ 그는 소박하지만 꿈이 있었고, 용기도 있는 사람이었다. 짧지만 오래 기억이 남을 만한 만남이었다.
◆개발에 꽂힌 경영학도들
김세윤 대표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94학번이다. 그와 함께 창업한 두 명의 친구들이 모두 75년생 토끼띠 남자들이다. 토끼띠 남자들 셋이 모여서 회사를 만들었다고 해서 회사 이름을 쓰리래빗츠라고 지었다.
김 대표는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그냥 일반 재무 관련 일을 하기 싫었다고 한다. 전공보다 그가 관심을 갖고 좋아했던 일은 프로그램 개발이었다.“개발을 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좀 있었습니다.”
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경영대를 나와 다른 사람들이 가는 편한 길을 가지 않은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해서 현장에서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이런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이 창업한 김승환 이사도 경영학과를 나왔다는 점이다. 역시 경영학 일반보다는 엔지니어링에 더 관심이 많았다. 김 대표는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로 복학한 1998년 닷컴 열풍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진로를 확실히 정했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는 뭔가를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
경영학과 출신으로서 그래도 비교적 제대로 컴퓨터 관련 일을 배울 수 있는 곳이 SI(시스템통합) 업체라는 이야기를 학교 다닐 때 들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SK C&C에 입사했다. 그런데 SK C&C는 외주 비율이 높아서 관리직 일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발을 배우고 싶었는데 매니지먼트를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외주 비율이 가장 낮다는 LG CNS로 옮겼습니다. 개발을 정말 배우고 싶었거든요.” 2005년 LG CNS로 옮겼지만 그의 바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기서도 그는 프로젝트 관리 일만 맡았다.
◆대기업을 뛰쳐나오다
8년째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회사를 나왔다. SK C&C R&D 센터에서 일하던 김승환 이사는 조금 사정이 나았다. 연구개발직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일을 좀 더 일찍부터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점점 연차가 차면서 관리직을 맡게 됐다. 김 이사는 제니퍼소프트라는 회사롤 옮겨 일을 하던 중 김 대표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어느날 전화를 걸었다. 제니퍼소프트에 와서 같이 일하자고.
“어? 그런데 잠깐. 어차피 제니퍼소프트에 들어와서 개발을 할 거면 두 사람이 회사를 차려서 만들고 싶은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어떨까?” 김 이사가 이렇게 제안을 먼저 했다. 회사를 옮기려고 하다가 창업을 하게 되는 스토리다.
2009년 여름 두 사람과 또 다른 친구 한 명이 만나(이 사람 역시 경영학도다) 창업을 결정했다. 너무 시간을 질질 끌면 안되기 때문에 ‘2년 안에 결판을 내자’고 세 명이 합의를 봤다. 2년 안에 어떤 성과를 내려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해야만 했다. ‘쓰리래빗츠 북’이라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 의견이 일치됐다. “사실 1년이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들은 기존 워드프로세서, 오피스 프로그램, 구글독스 등이 모두 불편한 점들이 있다는 데 착안했다. 그래서 웹 문서 프로그램을 만들면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이 그들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몸은 고되도 행복하다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문서 작성 틀을 만드는 것이 만만치 않았구요, 언어와 관련된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1년 안에 제품 개발이 끝날 줄 알았는데 1년 6개월만에 끝낼 수 있었죠. 그나마 그것도 당초 생각했던 많은 좋은 기능들을 포기하고서야 가능했습니다.”
2010년 말 제품을 내려고 했는데 2011년 7월에야 제품이 나왔다. ‘쓰리래빗츠 북’은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평소 결제용 문서나 제안서, 보고서 등 정형화된 글을 쓰고 이것을 여럿이 보고 협업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편하게 해 준다. 협업이 힘든 기존 오피스 프로그램보다 경쟁력이 있다. 구글독스의 경우 자유롭게 글을 쓰고 공유하기엔 좋지만 일반인들이 형식에 맞춘 글을 쓰려면 편집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모든 기존 프로그램들의 문제점을 쓰시래빗츠 북은 해결해 준다.
하지만 이 소프트웨어의 가장 큰 장점은 한번 글을 작성하면 웹 형식의 글로 저장될 뿐 아니라 PDF 문서와 이퍼브 방식으로 동시에 출간할 수 있다는 점이다. PC에 다운로드하는 것이 아니라 서버에 저장되기 때문에 항상 최신 버전의 글로 유지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여름에 제품을 출시하자마자 기업들을 대상으로 패키지 판매를 시작했다. 아직은 대단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입소문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계다. 기존 솔루션들에 비해 가격이 10%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하다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개인이 이 프로그램을 쓸 경우 무료로 사용이 가능하고 소규모 기업체에서 10명 미만의 인원들이 20권 안팎의 책 또는 보고서 등을 출간할 때는 100만원에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문서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호주에 아틀라시안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가 만든 JIRA하는 프로그램은 국내 웬만한 회사들이 다 쓸 정도로 개발 오류 등을 관리, 등록해주는 유명한 솔루션입니다. 이 회사는 이 것만으로도 수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회사가 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요즘 흔히 말하는 ‘뜨는’ 비즈니스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남들이 모바일이다 소셜이다 이런 쪽으로 갈 때 고된 소프트웨어 개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행하고 안 맞더라도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잘 하는 것, 개선하고 싶었던 것 이런 것을 만들자고 하고 창업을 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잘 만들면 정말 세상의 많은 부분에 기여할 수 있거든요.”
남들이 다 알아주는 대기업을 뛰쳐나와 힘들진 않을까. 이런 질문을 할 법하다. “대기업에 다닐 때도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와서 창업을 하니 일이 훨씬 많고 고되더군요. 그래도 내가 주인이 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몸은 더 힘들어도 행복합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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