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캡숑의 권도혁 대표는 진정 매우 특이한 기업가다. 그의 특이함을 최대한 간결하고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해 말을 하나 만들어봤다. ‘기획 창업가’? 또는 ‘스타트업 디벨로퍼’?
그는 지금껏 울트라캡숑을 포함해 창업을 두 번 했는데 모두 개발자 중심의 팀에 합류해 사업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혼자 움직이고, 좋은 개발자를 찾아 팀에 들어간 뒤 적극적으로 이 팀을 독려해 서비스를 출시하고 자신은 영업과 인재영입, 자금조달 등에 주력해왔다. 공교롭게도 두 번 모두 이런 비슷한 패턴이었다는 것은 자신만의 창업 스타일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연세대 경제학과 94학번 출신인 권 대표는 본인이 엔지니어가 아니어서 그런지 개발자를 더욱 중시하고 개발팀에 힘을 실어주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울트라캡숑이 지난해 핵심 개발자 이탈을 겪었을 때 상당한 타격을 받았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 오랜만에 만난 권도혁 대표를 보면서, 아주 힘든 시기를 겪었고, 그럼에도 살아남았고, 그래서 신발끈을 고쳐매고 다시 뛸 준비가 끝났다는 인상을 받았다. 좀 더 성숙해진 모습이라고 한다면 너무 진부한 표현일까.
◆생각지 못한 변수의 연속
내가 한국의 스타트업 일흔두번째 이야기로 그를 소개한 것은 지난해(2012년) 2월초였다.
당시 울트라캡숑이 선보였던 서비스는 대학생들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클래스메이트(Klassmate). 약 1만여명의 사용자를 갖고 있었고, 미국 10개 대학과 한국의 몇몇 대학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서비스 확대를 준비하고 있던 2월, 카카오에서 사람이 찾아왔고 카카오는 울트라캡숑에 20억원을 전격 투자했다. 카카오가 아직 본격적으로 매출을 올리기 전의 일이었다. 카카오로서도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투자를 받고 나서 울트라캡숑은 클래스메이트의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자금이 넉넉해지고 뭔가 보이는 상황에서 당연한 결정.
일부 대학에서만 서비스하던 클래스메이트의 영역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해외에서도 서비스를 대폭 넓혔다. 이를 위해 각 대학별로 커뮤니티를 이끌어갈 대학생들을 모아 워크샵을 가지기도 했다.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학생 350만명 중에서 절반이 쓰도록 하는게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생각대로 열심히 확장을 시도했는데, 결과적으로 잘 안됐다. 왜 그랬을까.
“일단 방학이 되니까 학생들이 쭉 빠지더라구요. 쓰는 학생 수가 많아지면 어느 정도 해소될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대학생들 대부분 자신들의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 높지도 않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에 별로 관심도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취업난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릴수록 학교 일에 관심을 가질 턱이 없다. 클래스메이트는 강의를 평가하고 학교 정보를 공유하고, 친구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등등 이런 것에 특화된 서비스였다. 즉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서비스가 난관에 부닥친 가운데 5월에 접어들자 권 대표는 다음 서비스 준비에 착수했다고 한다.
“제가 울트라캡숑을 창업하면서 세 가지 키워드를 생각했습니다. 글로벌, 모바일, 그리고 대학생. 그런데 이런 상황에 처하면서 대학생에 대한 시각을 달리해보자 이렇게 됐죠.”
그렇다. 대학생이 항상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점의 문제일 뿐이다.
◆위기와 극복
클래스메이트 서비스의 취약점은 방학이 되면 사용자가 줄고, 학교에 따라 사용자 편차가 대단히 크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당초 강의 평가로 시작된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정작 이성을 만나거나 새로 친구를 사귀는 데 더 관심을 보였다는 점. “아예 학생들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에 집중하면 어떨까하고 생각을 바꾸게 됐어요.”
모바일과 글로벌이라는 화두는 그대로 두고 대학생이라는 키워드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다. 그러면서 4개의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다이어터, 너말고니친구, 미팅학개론, 마티니가 그것이다. 다이어터는 다이어트라는 동일한 목표, 또는 동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서비스. 미팅학개론은 대학생들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클래스메이트의 미팅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일종의 소셜데이팅 서비스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마티니는 세계 각지의 주요 도시에 있는 싱글 남녀들을 위한 그룹미팅 서비스.
이 중 가장 특이한 게 너말고니친구, 일명 ‘너말니친’이다. 쉽게 말하면 일반인 이상형 16강 스타일의 미팅 앱. 배틀 형식으로 두 명 중 내 이상형에 보다 가까운 사람을 선택하다보면 결승까지 가게 된다. 결승에서 최종적으로 나의 이상형을 선택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대화를 신청한 뒤 상대방이 대화를 수락하면 대화가 가능하다. 모드가 앱친 모드와 친친 모드가 있어서 앱친 모드를 선택하면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이지만 앱을 다운로드 받은 사람들 중에서 나의 이상형을 찾을 수도 있고 친친 모드는 내 친구 중에서 찾을 수 있게 한 방식이다.
재기발랄한 이 서비스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아는 사람들끼리 배틀을 하면서 놀 수도 있다. 5초 안에 고르도록 긴장감을 불어넣어 사실상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미 22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고 10대와 20대가 왕성하게 쓰고 있다. 하지만 30대 이상도 전체 사용자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혹시 원조교제로 악용되는 등 부작용의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그래서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 대화를 하거나 연결하는데 제한을 두고 있다.
◆새로운 출발, 울트라캡숑 2.0
이 앱의 개발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 있다. “앱을 대학생 인턴이 개발했어요.” 물론 앱 자체의 아이디어는 권 대표에게서 나온 것 같다. “몇년 전에 TV프로그램 놀러와의 이상형 월드컵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는데 그때 황룡 사이러스 대표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눈 적이 있거든요. 그게 문득 생각나서 회사가 할 일 리스트를 만들면서, 30개나 되는 리스트 중에 그걸 하나 끼워넣었죠. 막상 저는 잊고 있었는데, 대학생 인턴이 자기가 이걸 한번 만들어보겠다고 하더라구요. 시험삼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그러라고 했는데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사실 예상 못했죠.”
처음에 앱이 나온 직후엔 좀 난감했던 게 사실. 나름 기술 기업을 자처하고 있던 울트라캡숑에서 어찌보면 아주 유치찬란(?)한 이런 서비스를 어떻게 알릴까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용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사람들이 열렬하게 사용하면서 분위기도 달라졌다.
“‘너말니친’은 울트라캡숑이란 회사와 나 자신에게 일대 전환점이 됐다.” 권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서비스가 떠서 전환점이 됐다는 게 아니다. 어깨에 힘을 빼는 계기가 된 거에요. 사실 힘을 너무 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그걸 안거죠. 강의평가, 네트워킹, 정보교환 등 심각한 문제의식과 목표를 갖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적인 완성도 높이기에 골몰했어요. 그런데 사실 재미가 중요하거든요. 그걸 알게 된 거죠. 어깨에 힘을 빼니깐 서비스가 훨씬 재밌어졌어요.”
진지함이 누그러지면서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고 오픈 마인드(Open Mind)가 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 이 서비스를 하면서 서울대 컴공과 남자들 중심의 회사 분위기도 변하기 시작했다. 여직원들도 하나둘씩 늘어나고 좀 더 복합적이고 다양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너말니친이 재미만 있는 서비스는 아니다. 매일 150만번씩 평가가 이뤄지고 지금까지 누적 7500만번의 평가가 이뤄지다 보니 사람들이 어떤 얼굴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나오게 됐다. “좀 더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그런 얼굴을 추천하는 서비스도 가능하겠더라구요. 이런 것도 일종의 빅데이터죠.”
대화하려면 유료로 100원을 내야한다. 자신의 사진이 사람들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도록 16강 경쟁에 나갈 수 있는 이른바 출전권은 2000원을 주면 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유료화 모델이 있어서 기본적인 운영비 정도는 뽑고 있는 상황. 연말께는 BEP에 도달하는 게 목표.
대만 서비스도 최근 시작했다. 아직은 비공개시범서비스 단계고 8월중 공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대만 서비스명도 재밌다. 외모협회(外貌協會). 중화권에서는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울트라캡숑 시작하면서 5년을 생각했습니다. 큐박스 5년했고, 울트라캡숑 5년 하면 저도 사업을 총 10년을 하게 되는 셈이지요. 10년 정도 하면 뭘 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금씩 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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