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김정주 넥슨 회장을 만났을 때 그의 창업 이야기를 잠깐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공개된 거창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의외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단편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간략하게나마 정리를 해 봤습니다.
이 글은 블로그에 올라오기 전 월간 '머니' 2월호에 먼저 게재됐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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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년 일본을 방문한 서른살 벤처기업가 김정주 넥슨 사장( NXC 대표)은 전자제품 매장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는 장면을 본다. 족히 100미터는 넘어 보이는 그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닌텐도 게임기를 사기 위해 모여있다는 것을 알고 그는 충격에 빠졌다. 그날 밤 일본에 연수중이던 최승우씨를 만나 식사를 함께 하며 두 사람은 의기투합을 했다. “닌텐도를 이기는 게임 회사를 만들자

 당시 넥슨은 게임 사업을 막 시작했지만 게임보다는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회사였다. 김 대표는 한국으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게임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귀국한 최승우씨도 넥슨에 합류했다. 그렇게 13년이 흘렀다.

 2011 1214. 넥슨재팬이 게임의 본고장 일본 증시에 상장하며 김정주 대표의 꿈은 첫 발을 내딛었다. 넥슨의 매출액은 2010년 기준 1조원 수준으로 21조원에 달하는 닌텐도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순이익도 닌텐도 33000억원, 넥슨 3100억원으로 10분의 1 수준이다. 그럼에도 일본 증시에 상장된 넥슨의 시가 총액은 8조원으로 닌텐도(25조원) 3분의 1에 달했다. 실적에 비해 훨씬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김정주 대표의 지분을 환산한 개인 재산은 3조원으로 불어났다. 증시에서 넥슨의 가치가 높게 평가받은 것은 성장성때문이었다. 넥슨의 영업이익은 2010 49.9% 증가했지만 닌텐도는 35.8% 줄었다. 2011년에도 넥슨은 30%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닌텐도는 실적이 후퇴한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닌텐도를 이기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김정주 대표의 꿈은 이렇게 조금씩 현실이 되가고 있다.

◆수재 청년, 온라인 게임을 최초로 만들다
김정주 대표의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덕분에 그는 돈 걱정이 없는 집에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집안도 좋고 머리도 비상했던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86학번)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 전산학과에 들어갔다. 기숙사에서 그는 이해진씨(NHN 창업자)와 같은 방을 썼다. 그들의 방 옆에 송재경(XL게임즈 대표), 김상범(넥슨 이사) 등이 있었다. 이들 네 명은 거의 붙어다니다시피 하며 진로를 고민했다.

 송재경, 김상범 두 사람은 카이스트에서도 소문난 괴짜였다. 송재경은 천재 프로그래머로 벌써부터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김상범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교수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김정주 대표는 송재경, 김상범, 이민교 등과 함께 1994 12월 넥슨을 창업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살 때였다.

 넥슨이 처음부터 게임업체는 아니었다. 웹 오피스라는 인터넷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기업체 내부의 인트라넷을 개발하는 용역 업무도 했다. 아시아나 항공의 예약 시스템을 1995년 개발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주 대표는 이런 인트라넷 솔루션으로 계속 사업을 영위할 생각은 없었다. 외주 개발 업무는 현금 확보를 위한 일종의 수단이었다. 넥슨의 창업자들은 당시 PC통신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온라인게임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봤다.

 1994년 마리텔레콤이 개발한단군의 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여러 사람이 접속해 온라인으로 즐기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이 게임은 그래픽이 없는 텍스트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텍스트로 제시되는 상황 설명을 보고 키보드로 명령어를 입력해 게임을 했다. ‘텍스트로 제시되는 상황 설명 대신 그래픽을 넣으면 어떨까.’ 지금은 게임에 그래픽이 들어가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만 당시만 해도 낮은 PC 사양에 복잡한 개발 과정, 비싼 서버 비용 등으로 인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김정주 대표와 넥슨은 이런 아이디어를 최초로 실현시킨 것이다.

 넥슨은 1995년말 고구려 대무신왕의 정벌담을 그린 온라인게임바람의 나라개발을 완료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4월 이 게임의 유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초의 그래픽 기반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는 게이머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당시 동시에 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고작해야 몇십명 수준이었지만 온라인에서 여러명이 한꺼번에 접속해 게임을 즐기도록 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시도였다. 넥슨은 이듬해인 1997 10월 두번째 작품어둠의 전설을 출시했다. 

◆시대의 흐름을 타다
김정주 대표가 일본을 방문해 닌텐도 게임기를 사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을 봤을 때는 바람의 나라와 어둠의 전설을 출시한 직후였다. 그는 일본에서 소니와 닌텐도 같은 콘솔 업체가 만든 게임을 보며 절망했다. 몇명이 모여 뚝딱 만든 넥슨의 게임과 수백억원을 들여 수천명이 만든 소니와 닌텐도의 게임은 하늘과 땅 차이였기 때문이다. 조잡한 그래픽과 열악한 개발 환경 속에서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끈기있게 계속해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었다.

 1998 12월에는일랜시아라는 게임을 출시했고 이어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게임을 내놓았다. 90년대에 넥슨은 매년 새로운 게임 타이틀을 내놓는 국내 유일한 게임회사였다. 게임을 직접 개발하는 게 힘들 때는 좋은 게임을 사들이기도 했다. 넥슨의 이름으로 국내 게임 산업의 흐름을 바꿔놓을 만한 인기 게임들이 계속 출시됐다. 퀴즈퀴즈, 크레이지아케이드,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카트라이더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게임들이 줄을 이었다.

 김정주 대표에게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그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운 좋게 시대의 흐름을 잘 탔습니다

콘솔 게임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한쪽에서 PC 시장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다. 넥슨이 만든 게임은 PC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즐기기에 가장 좋은 콘텐츠였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최대의 장점이었다. 그는실력보다는 시대가 우리 쪽으로 흘렀습니다.”라고 넥슨의 성공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게임 콘텐츠를 내놓고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지치지 않고, 자신이 파악한 시장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를 읽으면서 꾸준히 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넥슨은 해냈다.

◆게임만 잘 하기도 어렵다
넥슨과 관련해 자주 도는 소문이 있다. 제주도에 테마파크를 건설한다거나 영화 사업에 진출한다거나 하는 등의 소문이다. 넥슨이 향후 디즈니랜드 같은 기업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도 종종 들린다. 이럴 때마다 김정주 대표는 이런 말을 한다. “넥슨은 영화나 음악 등 그 어떤 다른 산업에도 진출할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게임에만 집중할 겁니다. 미디어 회사가 될 생각도 없구요, 그럴 여력도 없습니다. 게임만 잘 하려고 해도 어렵습니다. 아직 넥슨이 개척하지 못한 해외 시장도 많고 넥슨은 스포츠게임에서 성과를 보인 게 없습니다. 게임 분야에서도 넥슨은 더 노력해야 합니다.”

 넥슨이 오늘날 미국의 액티비전블리자드에 이어 세계 2위권 온라인게임업체가 된 것은 게임 한 분야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넥슨은 특히 국내외 다른 어떤 게임 회사보다 콘텐츠 개발과 서비스 유지에 공을 많이 들이는 회사다. 이것은 김정주 대표의 사업 철학이자 그가 넥슨에 대해 가장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다. 넥슨의 게임 중 바람의 나라는 출시된 이후 지금까지도 국내외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96년에 출시됐으니 벌써 16년이 됐다.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마비노기 카트라이더 등 넥슨의 인기 게임들은 모두 꾸준히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유지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많은 타이틀에 있어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넥슨이 유일하다.

 넥슨은 플랫폼에 욕심을 낸 적도 없다. 자신들의 게임을 집대성해 그것만 즐길 수 있는 자체 플랫폼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들 법 한데 플랫폼 쪽으로는 별다른 시도를 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작년 여름 기자와 만나 회사의 경영 방침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콘텐츠 회사입니다. 콘텐츠 회사는 플랫폼 영역을 넘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플랫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갑니다. 넥슨은 많은 게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바일이나 소셜용으로 변환하는 것도 엄청난 작업입니다. 앞으로도 플랫폼이 점점 다양해지고 사람들은 다양한 기기,플랫폼에서 게임을 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런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

 김 대표는 다시 시작된 시장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그이지만 지금은 잠도 못 이룰 만큼 고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PC를 외면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넥슨의 성공 기반은 PC였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PC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확 줄었다. 아무리 좋은 게임을 만들어도 시대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걸 김정주 대표는 잘 알고 있다. 어쩌면 10여 년 전 소니가 했던 고민을 지금 그가 하고 있다.

<2011년 5월 김정주 넥슨 회장을 만났을 때 사진. 갑작스레 만나 예고없이 사진을 찍었지만 흔쾌히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했다. >

◆사람, 사람, 사람
2011 11 16일 오후 KAIST 정문술관 2층 강의실. 세계적인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의 연주 동영상이 화면에 떴다. 케니 지가 자신의 밴드 구성원을 한 명씩 청중에게 소개하며 칭찬하는 10분 분량의 동영상이었다.

 김정주 대표가 강단에 서 있었다. 그는 2011년 9월부터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에서기술벤처라는 과목을 맡아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이 동영상을 보여준 뒤 학생들에게이 동영상을 보고 오래 생존하는 기업의 특징을 맞혀보라고 문제를 냈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는팀원들의 유대감을 유지하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20년 전에도 잘나가던 회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속가능한 기업이 되려면 오랫동안 함께 일할 만한 사람을 고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은오랫동안 함께할 만한 사람으로 좋은 사람과 유능한 사람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좋은 사람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그는유능한 사람은 컴포넌트(부품) 역할이 끝나면 나가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면서앞으로 이 사람이 나와 20년을 같이 일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것이 경영자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승우 넥슨재팬 대표, 서민 넥슨코리아 대표, 다니엘 김 넥슨아메리카 대표, 박경환 넥슨차이나 대표, 한경택 CFO(최고재무책임자) 등은 그가 손꼽는오래 일을 같이 할 만한 좋은 사람들이다.

 그는 항상 사람을 강조해왔다. 게임을 종합 작품으로 생각하는 그로서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넥슨은 흔히 자체적으로 게임을 잘 만들었다기 보다는인수합병(M&A)을 잘 해서 큰 회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넥슨의 히트작 메이플스토리는 이승찬 씨가 설립한 위젯이라는 작은 게임개발사가 만들었다. 던전앤파이터는 허민 위메이크프라이스 대표가 만든 네오플에서 개발한 게임이다. 군주온라인, 아틀란티카는 엔도어즈에서 만들었고, 국내 최고 인기 총싸움게임 서든어택은 게임하이의 작품이다. 넥슨은 이런 좋은 게임 개발사들을 모두 인수하면서 덩치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넥슨이 M&A를 계속 해 왔던 것에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좋은 콘텐츠 못지 않게 좋은 사람을 찾는 그의 경영 스타일 때문이다.“오래 같이 즐겁게 일할 사람을 항상 찾고 있습니다. 사업에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그는 오늘도 또 다른 대박 신화를 일궈낼뛰어난 인재가 아닌, ‘좋은 사람을 찾아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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