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대형 마트 인근에 있는 SK텔레콤 대리점을 들렀다가 우연히 듣게 된 대화 한 토막.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딸 뻘로 짐작되는 학생과 함께 대리점 직원을 붙들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는 애니팡을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지금 이 휴대폰이 너무 오래되서 그런지 애니팡이 안되네요.”

“아 게임을 많이 하세요? 게임 하시기에 좋은 요금제와 폰을 알려드릴까요.”

“아뇨, 게임 안해요. 게임 안 좋아하는데, 딸이 해서 같이 애니팡을 하려고하는데, 안돼서..”

일견하기에도 게임에 별 관심이 없고, 해 본 적도 없는 분인 듯 했다. 그런데 대리점에 와서 게임이 되는 폰을 찾고 있는 모습이라니!

 2005년에 카트라이더가 대박을 치고, 국민 게임의 반열에 오를 때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생전 게임을 안하던 사람들-여학생이나 주부 등-이 게임을 하러 PC방에 가고 친구들하고 게임 이야기를 하는 일이 일어났다. 기존에 게임을 안하던 사람들을 대거 게임 시장으로 끌어들이면서 카트라이더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고, 개발·서비스 업체인 넥슨의 실적과 이 회사에 대한 평가도 껑충 뛰어올랐다.

 현상만 놓고 보면, 애니팡은 이보다 더 한 것 같다. 카트라이더를 하기 위해 PC를 살 사람은 많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애니팡을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바꾸거나 스마트폰을 고르면서 애니팡을 염두에 두는 사람은 이처럼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숫자로 봐도 명확하다. 7월30일에 출시된 애니팡은 그 후 1주일 동안은 소비자들의 큰 변화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1주일뒤부터 사용자가 급증하기 시작해 4주차에 50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고, 5주차가 지나자 다운로드 건수가 1000만을 돌파했다. 하루 평균 이용자수는 무려 600만명, 동시접속자수는 200만명이다. 일일 매출의 경우 다운로드 1000만을 달성하기 전에 이미 1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동안 접속이 잘 안되고 게임을 하다가도 에러가 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할 정도로 사용자 폭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사실 이런 모습은 과거 온라인게임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신작이 나올 때마다 대기하던 사람들이 몰려들 때 흔히 봤던 모습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숫자는 아니었다. 그나마 최근 온라인게임 분야에서는 이와 유사한 현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말이다.

 콘텐츠를 만들고, 모바일 분야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런 모습을 선데이토즈가 만든 애니팡이라는 게임이 해냈다. 애니팡 정도는 아니지만, 이 게임의 뒤를 이어 파티스튜디오의 아이러브커피 등도 인기를 끌면서 ‘모바일 앱 게임’이라는 하나의 시장을 완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물론 애니팡이나 아이러브커피의 성공은 6000만명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카카오톡에 이 게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게임들도 많았다.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이 나오기 전에 앱스토어라는 공간에서 스마트폰 열풍에 힘입어 선전했던 팔라독과 같은 게임들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로비오사의 앵그리버드같은 게임도 있었다. 

 여러 사례들이 있음에도 애니팡을 주목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확산됐다는 점, 여러가지 에러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늘었고 개발사와 카카오톡이 이를 결국 감당해냈다는 점, 카카오톡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애니팡이라는 게임을 만든 회사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점 등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요인은 이번 흥행이 일회성에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앱개발자들을 비롯해 모바일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모두가 바랬던 모바일 시장이 드디여 열렸다. 그 시장을 연 상징적인 현상의 첫번째가 카카오톡이었다면, 두번째는 애니팡 열풍이다. 카카오톡은 사용자 기반 측면에서, 애니팡은 모바일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정표를 세웠다.

 모바일로 광고를 하던, 스폰서를 모으던, 음악 영화 책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던,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시장이지만 결국 게임이 열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즐기고, 열광해야 시장이 만들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것을 애니팡이 다시 일깨워줬다. 애니팡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제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이로 인해 파급될 효과는 지금 생각하는 수준 이상일 것이다. 지금 애니팡이 보여주고 있는 수치가 이미 온라인게임 시절 겪었던 경험치를 한참 초과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애니팡은 낮도깨비처럼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게임이 아니다. 매니아들을 중심으로 알려졌지만 2009년 싸이월드가 앱스토어를 PC기반 웹 서비스에서 오픈했을 때 선데이토즈는 소셜게임 형식으로 애니팡을 서비스했었다. 그때도 사용자수 100만명을 넘기며 인기 몰이를 했었다. 스마트폰 게임보다 훨씬 작은 시장에서 한 차례 검증된 게임을 갖고 모바일에 들여와 제대로된 승부를 펼친 게 주효한 것이다. 즉, 족보가 있는 게임이다. 공교롭게도 애니팡이 출시되던 날 이정웅 사장을 분당 사무실 근처에서 만났었다. 나 역시 그랬지만, 그 역시 애니팡이 이렇게 대박이 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 1000만을 돌파하고 나서 전화를 걸었다. 

“생각해보니 역사적인 날 만났었네요.”

“그러게요. 언젠가 모바일 게임에서 대박이 하나 나올 줄은 알았지만, 첫 게임이 우리가 될 줄은 전혀 몰랐네요. ”

선데이토즈와 이정웅 사장의 스토리는 예전에도 한번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다룬 적 있지만 조만간 최근의 스토리까지 업데이트한 풀스토리를 올려놓을 생각이다. 그 이야기 전체를 본다면, 이 회사와 모바일게임 시장이 가는 방향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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