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NHN 전 대표를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게 참 많았다.오랫만에 만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NHN은 왜 떠나게 됐는지,게임 사업을 다시 할 건지,1999년에 남궁훈,문태식 대표 등과 함께 한게임을 창업할 때나 NHN을 설립할 때와 비교해 지금의 국내외 인터넷 비즈니스 상황은 어떤지,국내 게임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사전에 메모를 해 놓은 내용만 해도 수첩에 빼곡했다.하지만 미처 준비된 질문을 할 겨를도 없었다.대화가 계속 이어지며 나름의 흐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결국 미리 생각해 놓은 질문은 모두 포기하고 그냥 흐름에 맡겼다.그래도 충분히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그가 재작년 설립한 아이위랩은 분당 정자동,과거 NHN이 있던 그 건물 바로 코 앞에 있었다.왜 하필 여기를 잡았냐고 하자 “그냥 분당이 좋아서요.여기가 살기 좋쟎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사무실에서는 탄천이 내려다보이고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눈이 부실 정도였다.우선 옛날 이야기부터 물었다.미국에서 어땠는지,얼마나 막막했을지가 궁금했다.
-미국에서 얼마나 답답하셨습니까
“처음엔 정말 막막했죠.한국의 어떤 회사라도 미국에 가서 그냥 바로 영업을 시작할 수 있는 회사는 없을 겁니다.그런데 아무 기반도 없이 갔으니..그래도 소득은 있었습니다.가보니 미국에선 보드게임으로 승부 보기가 어려울 것 같더라구요.그래서 퍼블리싱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BEP 정도는 맞출 수 있는 수준으로 회사를 만들어놨습니다.”
-NHN을 나온다는 발표가 있던 시점에 참 뜻밖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뭐랄까..의욕이 좀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제가 생각했던 목표치를 초과달성하고 나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물론 지금의 NHN보다 더 큰 목표를 세울 수도 있었겠지만 1999년 한게임을 만들던 시절엔 그정도까지 생각은 못 했죠.회사가 커지면서 조직을 관리하는 일이 점점 커진 것도 저에겐 별로...제가 삼성SDS를 다니다 나온 것도 그런 게 싫어서였는데,다시 그렇게 되니 뭐 나와야죠”
-그래도 자식같은 기업인데,너무 빨리 나오신 건 아닌지.아이도 키우면 대학 보낼 정도까지는 보살펴줘야하쟎아요?
“하하 물론 그렇죠.아이가 지금 몇살이신지? NHN은 대학은 보낸 것 같은데요..(웃음)”
-직원으로서 계실 때 그런 조직문화가 싫다고 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사장님으로 계시면서도 그런 거대 조직이 싫다고 하시니 참 뜻밖입니다.여전히 젊으십니다 하하
“그러게요.젊게 살려고 하다보니 그런가 봅니다.”
-처음에 위지아라는 서비스를 하실 때와 달리 최근엔 완전히 모바일쪽으로 방향을 잡으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위지아는 실험적인 서비스였는데,잘 안됐습니다.사실 그때만 해도 아직 방향을 잘 못 잡고 있던 때였고 중간에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작년말에 아이폰이 국내에서도 판매되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정말 이 시장이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열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그때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에 올인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습니다.특히 아이폰에 집중하자고 했죠”
-NHN에 계시면서 하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NHN에서 제가 나오던 시절만 해도 아직 분위기가 이정도까지는 아니었죠.아직 새로운 시장이 열리거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 본격화되기 전이어서 그때 그런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NHN을 나오면서 느낌은
“아쉬움도 있었지만...기억나는 것은 NHN을 나올 때 출사표를 던지고 나왔습니다.‘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하지만 배의 본연의 모습은 아니다.’ 당시에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이대로 안주하기엔 아직 젊다는 생각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고,그러기엔 NHN 밖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어떻게 보면 기존 인터넷기업의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맞습니다.기존의 인터넷에서 성장한 지금의 인터넷 강자들은 기존의 웹을 버리는 것을 하지 못합니다.그리고 결국 그게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이를테면 웹에서 우리가 카페를 아주 유용하게 썼지만 모바일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다만 모바일의 카페는 웹의 카페와 전혀 다른 UI와 서비스 형태를 띠겠죠.기존의 웹에 집착해서,성공한 기억을 버리지 못하면 모바일에서는 살아남기 힘듭니다.모바일로 인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시기가 지금입니다.패러다임이 바뀌면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는 것이 이치죠.1990년대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넘어가던 것과 분위기는 비슷한데 시장 규모는 그때보다 훨씬 더 커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TV를 앞세운 애플 진영과 안드로이드를 앞세운 구글의 경쟁 구도로 이야기가 이어지게 됐다.얼마전 와이디온라인 유현오 대표는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동일한 주제와 관련해 “결국은 폐쇄적인 애플이 안드로이드에 밀리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하지만 김범수 전 NHN 대표는 전혀 다른 전망을 했다.그는 “애플이 과거 폐쇄적인 정책을 고집하다가 윈텔리즘에 밀린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거기서 분명 교훈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그는 지금 애플의 정책을 보면 과거와 달리 완전히 폐쇄적인 방식을 쓰지는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자신들의 시스템안에서는 모든 것을 개방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김 대표는 애플이 쉽사리 구글에 추월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가 아이폰에 현재 집중하고 있는 것도 그의 이런 분석에 기반하고 있다.아이폰에 최적화된 앱을 하나 만들고 나면 그 뒤로 애플의 다양한 기기나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하기도 쉽고,또 글로벌 진출에도 훨씬 용이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모바일은 글로벌 서비스의 비용을 확 줄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사업 비용은 줄이고 기회는 많아진 거죠”
-과거 해외에서 고생했던 경험을 떠올리신 것 같습니다.
“게임을 제외하고는 해외에서 성공할 만한 국내의 서비스나 콘텐츠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오랫동안 해외 시장을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장벽도 높고 무엇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데 기회는 적고..하지만 모바일 분야에서는 글로벌화의 비용이 확 줄어듭니다.사업하는 입장에서는 엄청난 장점이죠.”
-지금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주로 SNS를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가실 건지
“사실 카카오톡을 내놓을 때 계획은 분기마다 3개씩 1년에 10개 이상의 앱을 출시할 계획이었습니다.그런데 카카오톡이 완전히 뜨면서 기존의 다른 팀을 다 정리하고 이거 하나에 집중하자는 쪽으로 갔죠.지금 한 팀만 빼고 전부 카카오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카카오가 뜨긴 했지만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선 얘기가 좀 다릅니다.저는 모바일에서 2개의 비즈니스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우선 커뮤니케이션인데,이와 관련해서 직원들하고 얘기하면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사람들의 기본적인 니즈가 크게 변할까? 사람들의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해결하는 방식이 변화되는 것 아닐까.모바일에서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인 커뮤니케이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그래서 카카오톡 카카오아지트와 같은 것을 선보인 겁니다.두번째는 콘텐츠입니다.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 환경에서는 분명 콘텐츠 산업이 새롭게 부각될 겁니다.기존 PC 시절엔 불법 복제 때문에 게임을 제외하곤 (특히 국내에서) 다른 콘텐츠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스마트폰에서는 콘텐츠 시장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아이위랩에서도 콘텐츠쪽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
“그렇지 않습니다.따로 회사를 설립해서 그곳에서 전담할 예정입니다.이미 준비중에 있습니다.”
김 대표는 그가 준비하고 있는 모바일 콘텐츠 비즈니스에 대해 기대감이 큰 것 같았다.게임이라고 묻자 게임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게임은 한번 했었는데 이제는 다른 것으로 승부를 봐야죠.게임 말고 다른 분야에서 승부를 볼 겁니다.”그는 살짝 힌트를 줬지만 그의 비즈니스를 위해 여기선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럼 이번에도 NHN처럼 큰 회사 만들 건가
“글쎄..큰 회사라기 보다는..NHN 창업할 때도 큰 회사보다는 100년 짜리 기업을 만들자고 했었습니다.국내 기업사를 보면 100년 넘긴 기업이 별로 없습니다.기업이 100년을 가면 그 자체로 국가경제에 크게 이바지하는 겁니다.NHN은 100년을 영속할 기반을 갖췄다고 보고,또 다른 100년짜리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모바일은 그런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벤처기업 100개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신다는 건가?
“제가 직접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아닙니다.회사 설립에 자문을 하고 컨설팅을 해주고 자금을 모으는데 도움도 주고 벤처 설립에 있어서 각종 시행착오를 줄이고 좀 더 오랫동안 수익을 내면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그런 기업들을 여럿 만드는데 이바지하자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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