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이 선하다. 2014년 어느 날, 회사의 선배가 ‘리멤버’라는 앱을 소개해줬다. 명함관리 앱이라고 했다. “전에도 비슷한 거 써 봤는데 인식률이 영 안좋더라”고 답했다. 그 선배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아냐, 이건 명함을 보내면 손으로 쳐서 준대”
그 때 순간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두가지였다. “아, 그러면 정보는 대충 정확하겠네”와 “근데 그 많은 명함을 다 사람이 직접 입력하려면 얼마나 많은 직원이 필요할까, 돈은 어떻게 벌까”였다.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한국의 링크드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젊은 기업가가 나왔다. “명함을 모으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 근데 그게 되겠어” 싶었다.
2년 여가 지난 2016년11월. 스타트업 취재 담당이 된 기자는 습관처럼 어제 만난 취재원의 명함을 리멤버 앱에서 촬영했다. 그랬더니 1초도 안돼 입력이 완료됐다는 알람이 떴다. “아무리 손이 빨라도 이게 되나” 싶었다. 불현듯 그 젊은 기업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최재호 드라마앤컴퍼니 대표를 찾아가게 됐다.
2년간 모은 6000만장의 명함
리멤버는 회원을 빨리 모았다. 출시 2년 반만에 140만명의 사용자와 명함 6000만장(중복 포함)을 모았다. 140만명은 단순한 앱 다운로드 숫자가 아닌 ‘진성 사용자’ 수다. 최 대표는 “다른 모바일 서비스 대비 지속 이용 시간이 10배 이상 길다”고 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기자로서도 이만큼 유용하고 편리한 앱이 없다. 이제 거의 리멤버가 스마트폰 주소록을 대체할 지경이다.
서비스도 그간 많이 업그레이드 했다. 단순히 명함에 있는 정보를 글로만 옮겨주는 게 아니다. 명함의 주소를 지도로 띄워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유용한 건 ‘라이브’ 서비스다. 리멤버 회원의 명함이 바뀌면, 이전에 같은 명함을 등록한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거래처 차장이 부장으로 승진하면 바로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영업사원들에겐 정말 유용한 기능이다. 그간 시리즈B까지 받은 96억원의 투자금을 서비스 업그레이드에 썼다.
<리멤버의 내년 구상을 설명하고 있는 최재호 드라마앤컴퍼니 대표. 드라마앤컴퍼니 제공>
모은 인물 정보도 질이 좋다. 최 대표는 “직급으로 보면 대표급, 임원급, 팀장급, 중간관리자급, 사원급이 각각 20%씩”이라고 말했다. 대표급 명함만 1200만장, 팀장급 이상으로만 3600만장이라는 얘기다. 밖에서 명함을 활발하게 주고 받는 사람들은 주로 ‘높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자가 의문을 가졌던 대로 돈을 어떻게 버느냐다. 140만명이 쏟아내는 명함 정보를 입력하는 사람 수만 한때 1500명에 이르렀다. 직접 고용이 아니긴 하나 인건비가 만만찮을 수 밖에 없다. 최근 앱에 광고를 붙이기 시작했다. “리멤버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비즈니스맨이어서 관련 광고를 붙이면 효과가 좋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앱 광고만으로 회사를 운영하긴 힘들다. 이미 드라마앤컴퍼니의 정규 임직원 수만 해도 30명이 넘는다. 매년 회사를 유지하는데만 수십억원이 들어간다.
“비용 줄이는 묘책 찾았다”
어느 회사든 돈 버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같다. 비용은 줄이고 매출은 늘리는 것이다. 일단 비용 측면에서 최 대표는 묘안을 찾았다.
리멤버 이전 명함관리 앱들의 인식률이 떨어졌던 것은 OCR(광학적 문자 판독장치)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프로그램이 문자를 읽어주는 기능인데, 이게 명함에선 좀처럼 먹히질 않았다. 명함마다 모양도, 글씨체도, 표시방법도 다 달랐기 때문이다. 최 대표가 ‘수기입력’ 방법을 고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명함 6000만장을 모은 지금, 최 대표는 이제서야 OCR 카드를 꺼냈다. 6000만장의 명함 중 중복된 것이 상당수여서다. 지금은 명함이 새로 들어오면 OCR로 읽는다. 그리고 기존 데이터와 매칭을 시켜본다. 정보가 완벽하게 일치한다면, OCR이 명함을 제대로 읽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사람 손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기자가 최근 입력한 명함을 1초만에 처리해 보내준 것도 이 시스템 덕이었다.
최 대표는 “지금은 전체 명함의 3분의 1 정도는 자동으로 처리한다”며 “한때 1500명에 이르던 타이피스트도 900명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명함 ‘빅데이터’가 늘수록, 그리고 중복되는 비중이 높을 수록 자동 처리 비율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타이피스트들도 점점 숙련되고 있고, 입력 정확도를 높이는 노하우도 많이 도입해서 인당 생산성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 비용은 계속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내년부터 ‘관계 진화’ 서비스 진출
다음은 매출을 늘리는 문제다. 최 대표는 내년부터 한국의 링크드인이 되겠다는 비전을 하나씩 실천에 옮길 계획이다. 1단계는 ‘명함공유첩’이다. 기자는 과거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는데, 보통 ‘팀 명함첩’을 한두권씩 만들었다. 함께 공유해야 하는 거래처 직원 명함이나 접대하기 좋은 식당 명함 등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이 기능이 리멤버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서로 취재원을 공유할 필요가 있는 기자들에게도 유용할 것 같았다. 현재 베타 테스트 중이고 내년 상반기 유료화 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게 최 대표의 계획 중 ‘몸통’은 아니다.
6000만장의 ‘명함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본격적인 사업은 내년 하반기 시작할 계획이다. 일단 인물 소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살다보면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기자의 경우 기사에 멘트를 해 줄 전문가를 찾는데 상당한 시간을 쓴다. 영업사원들은 신규 판매처를 확보할 때 해당 회사 구매팀의 전화번호만이라도 알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는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누구 아느냐”고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최 대표는 리멤버를 통해 이 불편을 해결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기자가 IT 전문가를 찾고 있다고 치자. 기자가 이제껏 리멤버에 입력한 명함에는 IT전문가가 없다. 하지만 기자의 지인이 입력한 명함 중에는 있다. 그러면 지인의 허가를 받고 기자에게 이 IT전문가를 소개해 주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를 ‘관계 진화’ 서비스라고 불렀다.
그 다음단계는 링크드인 처럼 헤드헌팅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 리더들에 대한 정보를 촘촘히 모아놓은 만큼 헤드헌팅 서비스를 하기에도 유리하다. 이 서비스들이 안정되면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투자해 준 벤처캐피탈 들이 일본 시장에 대한 정보를 주고 있다고 한다. 아직 세계적으로도 ‘수기 입력’을 통해 명함 데이터를 모은 사례는 없다.
최 대표는 “회원 수를 국내에서만 500만명 까지는 늘릴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직 목표에 3분의1도 못채운 셈이다. 500만명의 사람들이 쏟아내는 명함 정보를 가지고 인물소개, 구인구직 서비스를 해 준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 사업모델로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면. 구체적으로 과금을 어떻게 할 지는 최 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최 대표의 얘기를 듣고 나니 “한국의 링크드인이 되겠다”는 그의 목표가 허황되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by ink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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