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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3 한국의 스타트업-(151)힐세리온 류정원 대표 3

산부인과 병원이나 외과, 응급실 등 병원 곳곳에서 비교적 흔하게 접하는 초음파진단기기를 쉽게 휴대할 수 있게 되면 어떤 장점이 있을지, 무엇이 달라질 지,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나는 이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지금 생각한들 딱히 신통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류 대표는 물론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하게 됐을까.

 ‘먼 길을 돌고 돌아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할 만큼 그는 복잡하고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그리고 자기 길을 찾기 위해 자주 멈춰서서 생각에 잠기고 방황해야 했지만, 그래도 어느 것 하나 헛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연속에서 자신도 생각지 못했던 인생의 길이 열렸다.

◆엔지니어-벤처 창업-의사

1992년. 학생 류정원은 동국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군대에 가기 전에 1년 동안 학교 수업에 그닥 성실하지 않았던 그가 빠지지 않고 열성을 보였던 것은 로봇동아리 활동. “미로 탐색하는 마이크로 마우스 로봇, 이런 것도 직접 만들고 그랬어요. 대충 한 게 아니었죠.”

 그는 대학 입학 이듬해인 1993년부터 벤처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계기는 아주 우연히, 그의 실수에 의해 만들어졌다. “입대 지원서를 내려고 병무청에 갔더니 휴학생은 안된다는 거에요. 그 당시엔 그랬나봐요. 군대를 가려고 휴학했더니 입대지원서를 못 내는 상황이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휴학하고 좀 기다리면 입영통지서가 날아온다네요. 그래서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죠.”

 갑자기 시간이 붕떠버린 류정원 학생. 마냥 놀 수는 없어서 1993년 나눔기술이라는 벤처기업에 들어가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다. 

 “사장님이 처음엔 좀 황당해했죠. 대학교 1학년짜리 학생에게 기술회사에서 무슨 일을 시켜야 하나 고민이 됐는지, 복사하고 전화받고 등 잔심부름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거 싫다고, 프로그래밍하겠다고 했어요.”

 “원래 프로그래밍을 잘 하셨나봐요.”

 “아뇨, 몰랐어요. 새로 배웠어요. 책이랑 뭐 이런 걸로 배워서 했죠.”

 8개월간 일을 하다가 군대를 갔다. 군대를 가기 전에 그는 제대를 하고 어떻게 살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 당시엔 보통 삼성 현대 등 대기업에 들어갔어요. 선배들이 주로 그랬는데 나한테는 잘 안 어울릴 것 같았어요. 뭐랄까. 답답할 것 같았죠.”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인생 50년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내가 잘 하는 것은 뭘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고 살아갈까. “따져보다보니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군대 갈 때도 책을 싸들고 들어갔어요.”

 군대에서 당연히 생각한 것 만큼 공부할 시간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결심을 한 것이 도움은 됐다. 나오자마자 그는 ‘공부를 제대로 한 번 해보자’고 대성학원에 들어갔다. 1996년. 그리고 그는 97학번으로 서울대 자연과학부에 입학했다. 진짜 공부를 ‘제대로’ 한 셈이다. 

 다시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는 여전히 벤처에 관심이 많았다. 1999년, 3학년이 되면서부터 다시 벤처 회사에 들어갔다. “짧게 여러 회사에서 일한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00년에는 Embeded System Forum(ESF)를 만들었어요. 이게 나중에 창업하는 기반이 됐죠. 이를 통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거든요.”

 2001년 그는 디지젠(Digigen)이라는 회사를 처음으로 창업하게 된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등을 제작하는 사업을 하는 회사였다. “벤처에서 계속 일을 하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나도 창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창업을 하게 됐어요.”

◆Connecting the Dots

그런데 첫 창업은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예정됐던 대규모 딜이 깨지면서 2002년 사업을 정리하게 된다. “저한테는 첫 좌절이었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하고자 했던 일을 다 하면서 살아왔는데, 안되는 일이 있네요.” 2003년 유학 준비를 시작했지만 몸이 근질거렸다. 그래서 또 다시 벤처기업에 들어가 일을 했다. 이번엔 CTO(최고기술책임자)로 들어가 신호처리기술을 개발했다. 소음제거솔루션, 음성인식 솔루션, 이미지퀄리티제어기술 등이 그가 한 일. “원래 인공지능쪽에 관심이 계속 있었어요. 신호처리 관련 일을 하다보니 신경분야를 배워야겠더라구요.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의대를 가야 배울 수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의대 진학 준비를 했습니다.” 2005학번으로 그는 가천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의전원 1기로 들어간 그가 생각한 것은 의학지식과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사업을 하는 것. 남들이 안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자는 게 그의 목표였다고 한다. “남들이 안하는 게 뭘까. 그래서 얻은 결론이 두 가지, 우주와 뇌였어요. 이제 자유롭게 우주로 가는 시대가 올 것 같아서 2006년엔 우주인에 지원도 했지만, 아시다시피 안됐죠. 그래도 그쪽 분야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접은 건 아니에요.”

 의대에 재학중이던 시절에도 계속 의학지식과 비즈니스화를 궁리하던 그는 2009년 졸업후 KMI 검진센터에서 일하게 된다. 물론 의사로서 말이다. 이어 한 지역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다가 그를 창업으로 이끈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날 응급실에 만삭의 임신한 여성이 실려왔어요. DOA(Dead on arrival)였죠. 응급실에선 그런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 분이 지체장애가 있는 분이었어요. 같이 따라온 남편도 그랬죠.”

 그가 이들 부부의 상황을 유독 안타깝게 느낀 것은 당시 그의 아내도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 아마도 감정이입이 됐을 터였다. 둘 다 지체장애로 인해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 못하는 것도 안타까움을 더했다. “심폐소생술로 일단 살렸지만 큰 병원으로 옮겨야 했어요. 20분 걸려 대학병원으로 가는데 데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의사들이 각자 초음파진단기를 들고 다니면 문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가 이런 생각을 한 것도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였다. 종합병원으로 옮겨주고 그는 돌아왔지만 나중에 그 여성과 뱃 속의 아이는 결국 모두 숨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물론 휴대용 초음파진단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삶과 죽음의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장담은 못하죠. 하지만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의사가 현상을 좀 더 빨리 제대로 파악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최소한 장비가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탄식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가 창업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살아온 삶의 과정들이 아무 의미없이 흩어져 있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 연결돼 오늘날 그가 하는 사업의 하나하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료 분야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그는 전자공학을 배웠고, 벤처에서 일했으며, 신호처리분야에서 일했고, 의대를 졸업하고 의료 현장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Connecting the Dots’가 멀리 남의 얘기가 아니다.

<힐세리온은 아직 제품 출시전이라 홈페이지 이미지를 캡쳐해 올렸다. 맨 왼쪽이 류정원 대표.>

◆휴대용 무선초음파진단기, 상반기 출시

자, 이렇게 해서 의사로서의 삶은 중단되고 벤처기업가로서 인생이 다시 펼쳐졌다. 자신이 필요해서, 그는 휴대용 무선초음파진단기 개발을 시작했다. 의료에 IT 기술을 접목해 좀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출발점이 됐다.

 2012년 2월, 류 대표는 힐세리온(Healcerion)을 설립했다. 휴대용 무선초음파진단기를 만드는 게 첫번째 일이다. 물론 현재도 휴대용 초음파진단기가 있지만, 현재 제품보다 크기가 훨씬 작다.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 무선으로 작동한다는 것도 차별화된 점. 그러면서도 가격은 기존 제품들의 10% 수준으로 저렴하게 책정할 계획. 제품이 상반기 내에 출시될 예정인데, 보안을 위해서 자세한 내용은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앱으로 건강을 체크하고 관리할 수 있는 그런 서비스들도 다수 만들어갈 계획. 모바일 헬스케어 시장은 이제서야 태동기에 있다는 게 그의 판단. 

 그는 궁극적으로는 해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초음파진단기 얘기를 꺼내면 의사들이나 일반 소비자들도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거 병원에 가면 다 있쟎아?’ 하지만 사실 현실은 일부 극소수 잘 사는 나라들에서나 그렇다는 겁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임산부 배에 고깔을 대고 아이 상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필요로 하는 곳은 무궁무진합니다. ”

 그는 무선초음파진단기를 의사들의 개인장비로 만들겠다고 한다. 그래서 초음파진단기를 ‘제2의 청진기’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 사업 확장 못지 않게 그는 사람을 살리는 사업,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했다. 그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물론 사업도 잘 돼야지요. 잘 할 수 있을 거라 확신이 있기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합니다. 직원들하고도 이런 얘기를 많이 하죠. ‘만약에 우리 사업이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가 개발한 이 제품이 누군가의 삶을 살리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걸로 또한 족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살아난 사람은 누군가의 아버지일 것이고,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어머니일 수 있으며, 누군가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녀일 수도 있다. 그거면 되지 않나.’ 이렇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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