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대학때 코딩 못했어요. 1,2학년때 프로그래밍 부진아였죠. 컴퓨터 정말 잘 못했습니다. 수업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이두희 누구나주식회사 대표와의 인터뷰 도중, 그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당한 충격이었다. 한국 벤처업계에서 알아주는 개발자로 손꼽히는 그가 대학때 프로그래밍 수업을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니.
이두희 대표는 업계에선 천재 개발자로 통한다. 대학 재학 중 서울대 전산실을 해킹했던 사건이나 단기간에 만들었던 그의 개발작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인식이다. 멋쟁이 사자처럼의 코딩 교육, SK텔레콤이 설립한 누구나주식회사 대표 등 그간의 이력을 보면서 코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를 찾아갔다. 인터뷰는 구글 캠퍼스서울의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한국경제신문 추가영 기자와 함께 갔다.
누구나주식회사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할지, 멋쟁이 사자처럼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지. 이 회사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등등.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런데 대학때 코딩 부진아였다니?
<즉석에서 작성한 코드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가리키고 있는 이두희 멋쟁이 사자처럼/누구나 주식회사 대표.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대학 2년까지 컴맹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코딩을 잘 하게 됐나요?”
“수업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학점은 전부 1점대를 깔고. 그런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른 길을 찾아볼까 생각도 했는데, 컴퓨터공학과에 들어왔는데 어떻게든 코딩은 배우고 나가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혼자서 공부를 했죠.”
그는 C언어가 너무 힘들어 코딩을 포기할 뻔 했다고 했다. 그래서 파이썬과 루비로 시작을 했다고. (개인적으로는 루비를 더 추천한다고 한다.)
그가 코딩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의미’를 찾았기 때문.
“이 어려운 걸 배워서 뭐하나 이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수업 시간표 프로그램도 만들고, 해킹도 하고. 이것 저것 응용이 되더라구요. 사회에 영향도 미치고. 할 게 정말 많았어요. 그때 정말 빠져들었죠.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그래밍의 의미를 찾은 그는 무섭게 코딩을 익혔다. 울트라캡숑을 창업한 것도 세상에 의미있는 변화를 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는 울트라캡숑 창업자였지만 결국 회사를 나왔고, 끝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이 얘기를 길게 하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어쨌든 울트라캡숑을 나와 집에서 백수로 지냈다고 한다.
“그냥 누워서 빈둥거렸어요. 할 일이 없더라구요. 기분도 안 좋았구요.”
대학에 돌아갈까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을 밟던 도중 그만두겠다고 통보한 터였다. 결정을 번복하기는 싫었다. 할 일을 찾다가 심지어 수능을 다시 보고 약대를 갈까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실제 수능 공부도 했고, 약사 일이 어떨까 싶어서 친구가 하는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도 해 봤다. 그런데 하루 종일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다. 자신에겐 맞지 않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집에 돌아와서 고민했어요. 난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요.”
그때 그가 생각해 낸 것이 ‘멋쟁이 사자처럼’ 프로젝트였다.
“내가 잘 하고, 항상 하고 싶은 것은 코딩이니까 이걸 사람들한테 가르치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일단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얼마나 오래 할까 이런 생각도 없었어요. 내가 백수니까, 근데 백수의 왕은 사자니까, 이름을 사자로 지었구요. 나 자신에게 최면을 가하기 위해 ‘멋쟁이 사자처럼’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나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나는 멋있다. 나는 잘 할 수 있다 계속 최면을 걸었죠. 그때 저에겐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게 필요했어요.”
벼랑끝에서 시작한 ‘멋쟁이 사자처럼’
처음에 30명에게 프로그래밍 교육을 시작했다. 장소를 못 잡아서 애를 먹었는데, 자주 갔던 카페 사장님이 도움을 줬다. 이 사장님은 돈을 벌어서 네팔에 집 지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사정을 듣고 흔쾌히 장소를 내줬다고 한다.
“30명을 어떻게 모았나요?”
“서울대에 안내문을 붙였어요, 딱 10장.”
“그렇게 해서 얼마나 지원을 했나요?”
“한 200명 정도?”
“그 중에서 30명을 어떤 기준으로 뽑나요?” (이게 정말 궁금했다.)
“정말 고마워하면서 배울 사람. 그리고 정말 전력을 다해서 배울 사람을 뽑았습니다. 코딩이 배우기 어렵거든요. 이것만 열심히 해도 배우기 쉽지 않습니다. ”
처음에 30명을 가르쳤는데, 어려운 환경에서도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계속하기는 힘들었다. 수업을 무료로 진행하는데다 오히려 자비를 써가면서 가르쳤는데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한 번 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이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만두겠다고 페이스북에 공지를 했더니 메일이 300통이 넘게 오는 거에요. 교육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죠. 자기도 받고 싶다는 내용도 있구요.”
지원자가 많아서 몇 차례 더 진행을 했지만 번번이 그는 그만두려고 했다. 자금 문제가 있었고, 그도 계속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가 아니라 창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4기까지 하고 정말 그만두려고 했을 때 구글에서 찾아왔다. 이걸 꼭 해야 한다는 게 구글의 요구였다. 비용도 대겠다고 했다. 구글과 손잡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수락했다. 올해 구글의 임팩트 챌린지에서 선정되면서 지속할 수 있는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해서 멋쟁이 사자처럼은 벌써 4년 가까이 진행됐다. 이 기간 중 2000여명이 과정을 거쳐갔다. 어떤 사람들이 코딩을 잘 할까. 얼마나 코딩 능력을 익혔을까. 궁금한 게 많았다.
“2000명 중 20% 정도? 400명 가량은 코딩 능력을 습득했어요. 이 중에는 저보다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 정도는 사실 중도에 포기했구요. 나머지 60% 정도는 과정은 마쳤지만 코딩 능력을 완전히 익히진 못했어요.”
“그래도 의미가 있나요?”
“네 의미가 있습니다. 코딩은 할 줄 몰라도 볼 줄은 알게 됐어요. 무엇보다 개발자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게 된 거죠. 처음부터 멋쟁이 사자처럼은 이걸 의도헀어요. 비전공자들이 코딩을 배워서 개발자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코딩의 핵심은 ‘문제의식’
“비전공자들을 가르칠 때 어떤가요? 수학을 오랫동안 하지 않은, 예를 들어 인문계 학생들도 잘 배우던가요?”
“사실 인문대생들 가운데 코딩을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기본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거든요. 사실 공대생은 이런 부분이 좀 덜해요.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개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거죠. 예를 들어 총학생회 온라인 투표 앱을 만든 학생은 불문학과 출신이에요. 정치 참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학생이었죠. 이런 문제의식이 확실히 있으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는 개발만 해 온 개발자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게 ‘소통’이라고 했다. 개발자들에게 소통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보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고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있는 비전공자들에게 코딩을 가르쳐 이들이 개발자들과 소통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비전공자들에게 코딩을 가르쳤다는 것. 농대를 다니다가 멋쟁이 사자처럼의 코딩 수업을 듣고 컴퓨터공학과로 전공을 바꾼 사람도 있었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겐, 어쨌든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멋쟁이 사자처럼 과정은 이제 상당히 유명해졌다. 그 덕에 후원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처음의 취지를 지속하기 위해 학생들에겐 무료로 가르치고 있따. 초등학교쪽에도 진출하고 있다. 지리산 토지초등학교 영곡분교라는, 전교생 20명 밖에 안되는 곳에 가서 소프트웨어 의무교육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이곳 학생들은 집에 컴퓨터도 없기 때문에 컴퓨터 후원을 받아서 교육을 진행중이다.
취지는 좋지만 어쨌든 돈을 벌어야 사업도 지속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는 유료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취업층을 1년 안에 개발자로 컨버팅 해 줄테니 믿고 따라와라 하는 식으로 가르칠 수도 있구요. 아주 세심하게 가르쳐야겠죠. 이것도 유료가 가능합니다.”
이두희 대표는 멋쟁이 사자처럼 커리큘럼이 대학에서 배우는 코딩과는 매우 다르다고 했다. “대학교 프로그래밍은 이론부터 출발해요. 변수가 뭐고 분기문, 자료 구조, 알고리즘 등 용어부터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멋쟁이 사자처럼은 ‘조합해서 이것을 만들 수 있다. 네가 만들 것을 정의해라. 3~4명 팀을 갖춰서 팀이 만들 것을 정의하라’고 합니다. 만들 것이 없으면 개발하지 말라고 해요. 예를 들어 채팅 구현하기 위해서 소켓을 배워야합니다. 목적 지향적이에요. 네가 만들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하고 ‘컴퓨터는 그 발판이 될 뿐이다’라는 거죠.”
‘누구’, 국민 비서로 진화한다
코딩을 가르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누구나주식회사의 대표가 된 것은 어찌 된 일일까. 그는 “인공지능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SK텔레콤으로부터 올해 봄, 알파고 붐 직후 얘기를 듣고도 이게 잘 될까 싶었다고 한다. “처음 베타 버전일 때 인식률이 낮았어요. 그런데 이후 개발 속도가 상당히 빠른 걸 보고 제대로 된 뭔가가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올해 초여름경에 SK텔레콤의 ‘누구’ 프로젝트에 합류한 그. 누구나주식회사의 가상 대표를 맡게 된 그가 하는 일은 전문가 집단과 SK텔레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이나 이와 관련된 다양한 학문이 있어요. 여기엔 전문가 분들이 많이 있는데 이 분들의 아이디어 역시 상당히 많습니다. 회의를 자주 해요. 난상 토론을 합니다. 이 분들은 상당한 고집과 철학이 있고, 다 의미가 있는 부분이지만 사업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에요. SK텔레콤에 이런 전문가들의 지식과 제안을 사업화할 수 있게 다듬어서 다시 제안하고 함께 고민하는 게 저의 역할입니다.”
그는 ‘누구’에 대해 기본적으로 잘 짜졌다고 평가했다. “문자 매칭이 아니라 모듈이 잘 짜여 있어요. 버전업이 빨리 될 것 같습니다. 알파고 후에 첫 번째 채널을 잘 열었고,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 에코 등 비슷한 서비스가 있지만 한국어 음성과 발음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의미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서비스는 결국 어떻게 진화되게 될까. “기획 단계에서 고민이 있었어요. 친구 역할을 할지, 비서 역할을 할지. 처음엔 대화 상대로 여기는 시리 쓰듯이 ‘몇 살이지?’, ‘나랑 사귀자’ 와 같은 친근한 대화로 갔습니다. 그런데 비서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앞으론 대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주는 그런 비서와 같은 존재로 성장할 것 같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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