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자동차를 구매하고 난 뒤 자동차와 관련해 (운행을 뺀다면)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물론 주유다. 그 다음으로는? 아마 세차일 것이다. 개인의 성격에 따라 어떤 이들은 주유 못지 않게 잦은 빈도로 차를 씻고 닦을 수도 있다.
이처럼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만 세차는 뜻밖에 부수적인 서비스 정도로 여겨진다. 주유소에서 하는 기계식 세차, 정비소에 비싼 정비를 맡겼을 때 해 주는 손세차 등은 모두 근본적으로 세차를 끼워팔기 내지 덤으로 얹어주는 서비스 정도로 처리하고 있다. 부수적인 서비스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세차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자 한 이가 팀와이퍼의 문현구 대표와 창업멤버들이다. 세차가 그저 차를 닦는 행위가 아니라 거대한 자동차 관련 시장에 진입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이들은 생각했다. 그들의 이런 생각이 얼마나 적중할까. 어찌됐든, 이들은 이미 이런 생각을 어느새 현실화하고 있다.
오프라인 비즈니스에 뛰어든 엔지니어
동국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인공지능으로 석사 과정을 마친 문현구는 LG유플러스에서 사회 생활을 했다. 2003년 1월에 입사해서 2015년 7월까지 일을 했으니 12년하고도 6개월이 넘게 직장 생활을 한 셈이다.
그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것은 2010년께 LG유플러스에서 최연소팀장이 되면서다. 그 덕에 중앙 일간지에 보도가 될 정도였다. 당시 그는 회사 내에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었다. 통신 회사가 통신망 서비스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는게 그의 주장이었다. 마침 당시 탈통신을 외치고 있던 이상철 부회장의 뜻과 맞았다. 누구보다 빨리 팀장이 된 그는 LG유플러스의 최초의 SNS 서비스인 ‘와글’의 기획총괄을 맡았다.
결과적으로 이 서비스는 성공을 하지 못했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큰 조직 내에서 서비스를 개발할 때 생기는 문제들, 소비자의 수요를 조사하는 방법 등 다양한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통신분야 업무만 할 때는 알지 못했던 IT업계의 새로운 인물들을 다양하게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Connected Car 분야에서도 일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커넥티드 카란 기본적으로 자동차에 통신기능을 달아 다양한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통신사 입장에서야 자동차가 됐던 뭐가 됐던 통신기능에만 주력하면 되겠지만 그는 자동차 자체에도 관심이 많았다.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았던 SNS와 자동차라는 그가 가진 두 경력의 접점이 생기는 시점이다.
문제의식은 어느날 문득 생겼다. 2014년 세차를 하러 손세차장을 찾았다가 셀프세차의 문제점과 어려움을 처음 느끼게 된 그는 관련 시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셀프 세차를 하려면 가능한 곳을 찾아야 하고, 가서 힘들게 세차를 해야 하고 번거로운 일이 많쟎아요. 처음에 이걸 편하게 하는 방법이 뭐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딜리버리(Delivery)를 생각했어요. 셀프 세차족보다는 손세차 시장 전체를 보면 뭔가 될 것 같았죠.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그걸 이미 했던 사람이 있더라구요.”
그는 이 분야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회사를 나와 새로 시작할 만한 가능성과 가치가 있을까. 그가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선 몇가지 확인 작업이 필요했다.
三顧草廬
자기보다 앞서서 이것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무작정 그 사람을 찾아 나섰다. 이승윤이라는 사람은 서초구의 한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세 번을 찾아갔죠.”
세 번이라는 숫자만큼이나 그가 이승윤 이사를 만나 함께 창업을 하는 과정은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했다는 삼국지의 일화와 유사하다. 처음에 찾아갔을 때 이승윤 이사는 정비업소에 없었다. 문 대표는 엉뚱한(?) 사람을 붙들고 얘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 딜리버리 세차, 이런 거 하시죠.”
약간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요.”
“고객들의 평가가 어떤가요. 만족해하나요”
“뭐 그거 한번 한 사람은 계속 그 서비스를 받으려고 해요.”
시큰둥한 반응은 좀 뜻밖이었지만 대답의 내용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거 되는 서비스구나. 일단 첫 만남은 썰렁하게 이 정도로 끝내고 그는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왔다.
며칠 뒤. 문 대표는 다시 그 정비소를 찾았다. 그리고 그때 만났던 나이 지긋한 실장님을 찾았다. 문 대표는 당시만 해도 그 실장이 딜리버리 세차 서비스를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회사를 나갔다는 얘길 듣게 된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아니 어떻게 그새 사라졌을까.”
혹시나 해서 딜리버리 세차 서비스를 누가 하고 있는지 물었더니 그 정비업소 사장이 한다는 거였다. 한쪽 구석에서 사장이라기보다는 젊은 정비공처럼 보이는 왠 청년이 뛰어나오며 자신이 사장이란다.
둘은 금새 말이 통했다. 문 대표는 딜리버리 세차의 필요성과 이를 IT 솔루션으로 편리하게 구현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이승윤은 이미 해 본 경험과 소비자의 니즈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고 세차장 네트워크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험을 통해 IT 기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확신을 갖게 된 그는 세 번째로 이승윤을 찾아가 식사를 같이 하면서 그가 하려는 사업의 모델을 설명했다고 한다. “왠만한 VC 앞에서 발표하는 것보다 더 많이 준비하고 가서 긴장하면서 한 것 같아요.”
이승윤이 합류하면서 그는 이 사업으로 새출발을 하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물론 이 사업에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지만, 대기업에서 앞으로 그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할 지에 대해 확신과 비전을 발견하지 못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된 것 같다. 2015년 3월이었다. 그리고 이때쯤 창업멤버들이 잇따라 합류하게 된다.
<팀와이퍼 창업멤버 및 직원들. 가운데가 문현구 대표. 왼쪽부터 이새봄, 이철림, 문현구, 임석영, 이승윤>
완벽한 팀
SK플래닛, SK커뮤니케이션즈, 소프트맥스 등에서 게임과 각종 기능성 앱 히트작을 개발한 경력이 있는 한원식이 CTO(최고기술책임자)로, 엔씨소프트와 포스코ICT 등의 경력을 지닌 임석영 전 마이후 창업자(대표)가 CSO(최고전략책임자)로 합류했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만나 사업을 같이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LG유플러스에서 와글 사업을 하면서 같은 SNS 업계에서 일한다는 인연이 이들을 모이게 했고 결국 공동창업으로 이어졌다.
“이분들이 없었어도 어떻게든 창업을 하긴 했겠죠. 하지만 아마 제대로 시도도 못해보고 좌초되지 않았을까싶습니다. 개발과 기획, 전략과 업계 네트워크 및 세차 사업 노하우까지 골고루 갖춘 그야말로 최적화된 팀을 만들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행운인 것 같아요.”(문현구 대표)
이들은 우선 기존 손세차의 어려움과 불편함을 해소하는게 초점을 맞췄다. 손세차의 어려움은 우선 따로 특별히 시간을 내야 한다는 점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차를 가지고 갔다가 갖고 다시 나와야 한다는 것도 불편한 요소. 세 번째로 셀프 손세차의 경우 가격은 저렴하지만 힘이 들고, 세차장에 맡기는 손세차는 힘은 들지 않지만 가격이 제법 비싸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어려움은 딜리버리 세차에 IT를 접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즉 세차를 원하는 손님에게 주문을 받아 담당자가 가서 차를 받아 몰고 온 뒤 세차장에서 세차를 해서 고객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과거 이승윤 이사가 혼자서 이 서비스를 할 때 어려웠던 점은, 충분한 세차장을 확보하지 못했고 인력이 부족했기에 고객들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부분이 제일 컸다. 고객들은 수시로 연락이 오지만 이를 컨트롤하지 못한 것이다. 고객들의 수요와 세차 현황, 과정 등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정리해줄 수 있는 IT 기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세 번째 문제의 경우 완벽한 해결은 어렵다. 셀프 손세차에 비해 확실히 힘은 들지 않지만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 물론 그래도 세차장에 맡기는 것보다는 더욱 편하다. 차를 알아서 가지러 오고 갖다 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승윤 이사가 없었다면 사업 초기부터 난관에 부닥쳤을 거라는 게 문 대표의 말이다. 이 사업의 핵심이 곧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세차장을 확보하는 것과 차를 이동시키는 탁송이다. 두 가지 모두에서 이승윤 이사는 경험을 갖고 있다.
세차는 시작일 뿐
팀와이퍼의 딜리버리 세차 서비스는 최근 서울 서초구를 중심으로 우선 시작했다. 서초구에 세차장 네트워크를 우선 확보했기 때문이다.
서비스명은 와이퍼. 말 그대로 닦아주는 서비스다.(철자는 약간 다르다. 서비스명 와이퍼의 스펠링은 Yper다.) 앱을 실행하고 세차 시간을 선택한 뒤 세차서비스를 지정하면 카매니저가 고객이 있는 장소로 와서 차를 받아간다. 차 상태를 미리 휴대폰으로 다 찍어서 분쟁의 소지를 없애고, 세차가 끝나면 고객이 있는 곳으로 차를 가져다 준다. 물론 아직까지는 서초구에서만 서비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지역 내에서만 서비스가 가능하지만 조만간 강남, 송파, 분당, 판교 등지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셀프 세차를 하면서 불편을 겪어봤거나, 차를 세차장에 맡기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 기본 타깃 고객이다. 불편함은 줄이면서도 차를 세차장에 직접 갖고 가 맡기는 것과 가격 차이를 없애 경쟁력을 높였다. 하지만 이들만이 타깃은 아니다. 기계식 세차를 하는 사람들, 차를 맡기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타깃이 될 수 있다.
“차를 맡기는 걸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저희는 모든 과정을 고객이 모니터링 할 수 있고 차량을 어떻게 운송하는지 전 과정을 고객이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습니다.”
팀와이퍼는 세차에 최종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세차는 하나의 단초가 될 뿐. “자동차 관련 서비스 중에 사실 주유를 제외한다면 꾸준히 오는 고정적인 손님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세차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어요. 정비분야는 한번에 큰 돈이 들 수 있지만 꾸준히 오는 손님을 잡는 것은 쉽지 않거든요. 반면 세차는 단골을 다수 확보할 수 있죠.”
즉 팀와이퍼는 세차를 자동차 관련 서비스의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 같다. 수입차 딜러와 계약을 체결하면 신차를 구매하는 고객을 위한 세차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한두번 이용해 본 고객이 맘에 들어한다면 장기적인 단골 손님이 될 수도 있다. 자동차 수리 및 정비나 보험 관련한 창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정말 이런 큰 그림이 세차라는 사소한(?) 단초에서 시작될 수 있을까. 그들의 세차 서비스는 이미 시작됐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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