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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11 한국의 스타트업-(167)오픈갤러리 박의규 대표

그림도 빌릴 수 있다. 집이나 사무실에 그림 하나만 바꿔 걸어도 기분이 달라지고 분위기가 싹 바뀌는데 그림 값이 비싸서, 사러 가기 귀챦아서, 들고 오기가 힘들어서, 가져왔다가 맘에 안 든 경험이 있어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런데 싼 값에 빌릴 수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적정한 시기에 바꿔서 걸 수도 있다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림을 빌릴 수도 있다는 것을, 눈앞에 현실이 되기 전까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림 빌려주는 사업을 하는 회사, 오픈갤러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문득 세상의 어떤 것이든 빌릴 수 있게 되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이런 상상의 나래도 펼쳐봤다. 

 ‘그림을 빌려준다’는 그런 독특한 발상을 하기까지는 물론 창업자 본인의 독특한 경험이 작용했다. 하지만 경험 그 자체보다는 그것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대범하게 실천에 옮긴 실행력이 더 돋보인다. 아마 이런 것을 우리는 기업가 정신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이 좋은 곳에 왜 사람이 없을까

박의규 대표는 컨설턴트 출신이다. 부즈앨런과 딜로이트에서 5년을 일했다. 컨설팅 업계는 일이 많은 곳이다. 거의 휴일도 없이 일하고 많은 보수를 받지만 그만큼 빨리 지치는 이들도 많고 그래서 조기 이직 비율이 높다고 한다. 

 그래도 어쨌거나 그는 컨설팅 일도 재밌게 했다. 다만 앞으로 무엇을 할 지 계속 고민했을 뿐. 의도하지 않았던 환경이지만 그는 미술 전시회를 갈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갤러리에 갈 때마다 느꼈던 낯설고 기이한 느낌. 왜? “이렇게 좋은 자리에 멋진 미술관이 들어서 있는데, 사람이 너무 없어요.”

  박 대표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 그가 갤러리, 전시회를 자주 갔던 것은 친구가 작가였기 때문. 친구 작품을 감상할 겸, 친구도 만나러 자주 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를 통해서나 주변 지인 중 작가인 사람들 통해서나 듣는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지인들만 찾아와. 갤러리는 대부분 텅 비어있어.”

 굳이 박 대표의 경험을 빌리지 않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갤러리를 찾아가 미술 작품 감상을 하고 여유롭게 사색에 잠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별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럴만한 환경에 노출되지도 않았다.

 현실이 이러니, 미술 작품을 그린 작가들의 작품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도 힘든 게 당연하다. 시장이 없고, 현재로선 뭔가가 만들어질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마 0.1%? 그 정도 비율도 안 될 겁니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갤러리를 다니는 사람의 비율이 말입니다. 이 비율을 10% 정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굉장한 시장이 만들어질텐데 하고 생각했죠.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고, 작가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죠.”

 그래서 창업이라곤 생각해보지 않았던 박의규 대표는 새로운 미술 작품 시장에 대한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술 쪽으로는 전혀 문외한인 그가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창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박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전형적인 사진 양식을 극도로 싫어하는(?)' 홍 디렉터의 제안에 따라 이런 포즈의 사진이 완성됐다. 이들 12명이 현재 오픈갤러리의 멤버들이다. 아마 오른쪽에서 두번째쯤?에 박 대표가 있을 것이다.>

◆힉회에서 만나 팀을 만들다

박 대표를 만난 자리에 함께 자리했던 미모의 여성 홍지혜 이사. 창업멤버인 그녀는 큐레이터였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한때 미술계의 현실을 타개할 방법을 찾던 그녀는 미술경영을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한다. “외부 전시회를 열어도 지인들만 찾아와요. 왜 이럴까. 저도 박 대표와 마찬가지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거죠. 이걸 어떻게 풀어볼까 고민했어요. 저한테는 인생이 걸린 문제였으니까요.” 

 홍 이사가 생각한 것은 ‘미술작품도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미술작품의 소통을 인생의 사명으로 삼기로 했다고 한다. 미술경영 전공은 서울대 미대 안에 있는 일종의 협동과정이었다. 홍 이사는 미술쪽 경력만 있는 게 아니다. 서울대 미술관에서 연구원으로 2년 있었지만, 워드스케치, 슈거딜, 매직테이블 등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벤처기업에 대한 관심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던 두 사람이 만난 곳은 경영전략학회(SND)라는 대학 연합 동아리. 미술을 전공으로 한 홍 이사가 여기에 참여한 것이 흥미롭다. 새로운 시각의 문제의식을 기대한 게 아니었을까.

 박 대표는 홍 이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미술 시장의 현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해도 작가가 되는 비율은 10%도 채 되질 않는다는 것, 유통 채널이 매우 제한돼 있을 뿐 아니라 유통 플랫폼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없다는 것 등등. 결국 젊은 작가들은 작품을 유통할 수 있는 채널이 없어서 대중을 만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적나라한 현실은 전국 곳곳의 갤러리에서 매일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채널을 만들어주자!” 이게 출발점이 됐다. 컨설턴트와 큐레이터의 절묘한 조합으로 미술 작품 유통 분야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그래도 준비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

<오픈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opengallery.co.kr>

◆미술작품 유통 시장의 개척자

 미술품 유통 시장에 렌탈(대여)이 없다는 것을 박 대표는 간파했다. 해외에 이와 유사한 비즈니스가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가 생각해냈던, 상당히 독창적인 아이디어다. 미술품의 수요가 많지 않지만, 잠재적 수요마저 없지는 않다고 판단한 것. 그리고 약간의 자극, 즉 가격적인 부담을 낮춰주면서 미술을 사다가 거실에 거는 불편함을 해소해준다고 하면 잠재적 수요가 움직일 것이라고 본 것이다.

 미술작품 판매와 렌탈을 모두 다 하지만, 결국 렌탈이 주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10호 크기의 그림, 즉 가로 50㎝, 세로 45㎝㎝인 그림을 거실에 걸어놓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림을 찾으러 시장에 나가야 하고, 골라서 결제를 하고 배달을 부탁하던 직접 가져오던 가져와서 걸어놓게 된다. 그렇게 수십-수백만원, 때론 수천만원 이상의 돈을 들여서 그림을 사서 만족하면 다행이지만 집에 걸어놓고 보니 별로라고 하면, 달리 방법이 없다. 참아야 한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주거나.

 오픈갤러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미술작품을 렌탈해준다. 10호 그림은 한달 대여료가 3만5000원. 10만원이면 석달 동안 그림을 집에서 감상할 수 있다. 싫증이 날 만하면 그림을 바꾸면 된다. 계절에 따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그림 한 두개를 바꿔 달아서 집안이나 사무실 분위기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

 그림을 결정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다. 걱정 없다. 오픈갤러리는 전문 큐레이터(예를 들어 홍 이사)가 방문해 집안 또는 사무실 분위기에 맞는 그림을 추천해 준다. 설치도 해 주고 기간이 지나면 알아서 철거도 한다. 손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다.

 이 그림들은 오픈갤러리가 작가들과 직접 계약을 체결하고 확보한 그림들이다. 렌탈용의 경우 작가들이 전시하는 기간을 피해서 활용되곤 한다. 작가와 오픈갤러리, 소비자 모두가 윈윈하는 구조다. 

 오픈갤러리 이전에 미술 작품의 유통에 관련된 사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그런 시도들이 많지는 않지만, 있었다. 

 박 대표는 사업을 하면서 기존의 사례들을 참고했다. 왜 이런 시도들이 있었는데도 잘 안 됐는가를 따져본 것. “사람들이 아직 미술작품에 대해 친숙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너무 많은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아직 시기상조가 아닐까 생각했죠. 그래서 저희들이 어느 정도 작품을 좀 간추려서 대중들에게 제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그래서 작품을 무작정 많이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진 않았다고 한다. 100여명의 작가들로부터 1000여점의 작품을 확보한 상태. 이 작품들은 모두 작가의 작업실 등 개인 공간에 있기 때문에 오픈갤러리가 공간을 많이 가져갈 필요도 없다. 물론 작품을 옮겨야 하는 일이 많아 위험도 따른다. “이런 비즈니스가 별로 전례가 없어서요.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신경써야 할 것도 많고, 안개 속을 헤쳐가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는 즐겁고, 활기차 보였다. 오픈갤러리의 당면한 첫째 목표는 일단 시장 진입에 안착하는 것. 매출은 이미 작년 연말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홍지혜, 김도연 두 큐레이터가 활동하고 있으며 시장이 확대되면 이들의 역할이 더욱 많아질 것 같다.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모델 같다. 제휴 등을 잘 한다면 해외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미술 시장을 한번 바꿔보고 싶다는 박 대표의 출사표. 관련 분야에 있는 많은 사람을 자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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