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이번엔 제조업체다. 게다가 물건만 만드는 제조업체가 아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자 나선 회사가 주인공이다. 쉽지 않은 도전을 하고 있다. 시장이 얼마나 될 지 모른다. 하지만 창업자의 경력과 비전이 회사의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확실한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회사. 제이디사운드의 김희찬 대표를 만났다.

◆음악으로 행복을 주고픈 꿈

만나자마자 그는 가방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왠 기계(?)를 꺼내들었다. 생김새는 그렇게 생기지 않았지만 분명 휴대용 오디오다. 휴대용이라고는 하지만 제법 크다. 그런데 그냥 음악을 재생하는 장치는 아니다. 음악 재생기라고 한다면 MP3플레이어나 스마트폰이 오히려 편리할 것 같다. 이것을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 제품에 얽힌 사연과 함께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본래 저는 인하대학교 토목공학과를 나왔습니다. 전공에 특별히 취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건축가의 길을 갈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저는 왠지 음악이 좋았어요. 처음 들어간 회사의 영향이 컸죠. ”

 물론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 데는 우연인 듯, 필연이 된 사연이 있었다. 대학때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그는 토목공학을 계속 공부하겠다고 생각하고 국비유학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터널 발파’. 그런데 국비유학은 결과적으로 뜻대로 잘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가 입사한 곳이 일본 종합상사인 가가의 한국 브랜치. 일본에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팠던 그였지만 그가 처음부터 일본 회사에 입사하려고 작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일본 회사에 주로 합격을 하더군요. 가가에 입사해서 처음 맡게 된 분야가 오디오 분야였습니다. ”

 이 대목에서 토목공학 전공과 오디오와의 뜬금없어 보이는 스토리가 연결이 된다. 가가에서 5년 일한 뒤 그는 파인아크라는 일본 회사의 한국 지사장이 됐다. 여기서 그가 한 일도 오디오 프로세서와 관련된 일이었다. “파인아크는 AP 설계회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오디오 쪽 담당이었죠. ”

 파인아크에서 그는 지금의 사업을 기획했다. 애초엔 파인아크 차원에서 진행하려고 했다. 그가 생각한 건 뭐였을까. 오디오쪽 일을 하다보니 음악을 쉽게 편곡하고 작사작곡할 수 있는 그런 플랫폼에 관심이 생겼어요. DJ들이 음악 틀어줄 때 보면 기존의 곡을 즉석에서 재미있게 편곡하고 그러쟎아요. 그걸 할 수 있는 장치들을 전문가들이 많이 쓰는데 일반적으로 누구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즉, 그는 소리의 힘에 반한 것이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고 싶다는 꿈이다. 그런데 파인아크에서 하려는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태생적으로 반도체 회사인 파인아크가 음악에 대한 문화적 측면까지 고려해야 하는 사업을 하기엔 적절치 않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는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믿었지만 기획안을 만들어 여러 회사에 제안을 해도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 국내 모 전자회사와 사업 협력을 위한 논의를 하다가 중단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내가 혼자서라도 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결국 그는 2010년 파인아크를 나와 회사를 차렸다.  

◆바닥에서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사업을 시작하기 전인 2010년말,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지원해 사업에 필요한 자금과 사무 공간 등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이 그의 사업 진행에 크게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자신이 생각한 비즈니스가 외부에서 인정을 받은 것이 가장 기뻤다고 한다. 2011년 그는 제이디사운드(JD Sound)를 설립했다.

 왜 회사 이름이 제이디사운드일까? 무슨 뜻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두 기업인의 영문 이니셜을 땄습니다. 제이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디는 할아버지 성함에서 왔습니다. 무일푼에서 시작했지만 회사를 성장시키고 존경을 받은 기업인들처럼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거든요. 저 역시 아무것도 없이 바닥에서 사업을 시작하지만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외국계 기업 지사장자리까지 마다하고 나와 사업을 벌였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무엇보다 본질이 제조업이라는 게 힘든 점이었다. 일단 국내에서는 제조업이라고 하면 투자회사들이나 정부 기관에서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관심을 받기가 어려웠다. 제품 제작 과정도 난관 투성이였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음악 재생 및 편곡기기를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줄이기 위해선 하드웨어 기술도 필요했지만 소프트웨어 기술이 더 중요했다. 오디오 AP를 비롯, 반도체 관련 분야 일을 해왔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훌륭한 인재들이 합류하면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가 일했던 파인아크에서 직원들이 나오면서 이들을 흡수, 일본 지사를 설립하는데 핵심 인재로 채용했고 국내의 개발진도 보강할 수 있었다. 파인아크를 그만두기 전에 1년여 기간 동안 시장을 미리 조사한 것도 도움이 됐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문이 한 가지 생겼다. 음악을 재생하고 편곡하고 DJ처럼 음악을 다루면서 즐기는 것이라면 스마트폰에서 앱을 통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선 충분히 제대로된 기능을 낼 수가 없어요. 스마트폰은 음악을 제대로 구현하기엔 적합한 기기가 아닙니다. 앱을 통해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죠.”

 비록 크기는 작지만, 그는 진짜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일반인도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가 꺼내놓은 제품을 갖고 싸이가 부른 ‘뜨거운 안녕’을 틀어봤다. 여기까지는 일반 Mp3 플레이어와 마찬가지다. 스피커와 연결해 크게 틀어놓고 DJ들이 하듯 디스플레이의 원반 표시를 마치 레코드판을 돌리듯 돌려가면서 여러가지 효과를 내 봤다. 다른 곡을 틀어놓고 두 가지 곡을 믹싱도 해 봤다. 전혀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졌다. 빠르기와 효과음을 조절하는 재미가 있었다.

 재미는 있다. 그런데 이걸 사람들이 계속 하려고 할까. 미국에서는 가능할 것 같다. 파티 문화가 있고, 한쪽에서 누군가 음악을 틀어놓고 DJ처럼 재밌게 진행을 해 준다면 모두가 즐거워질 것이다. 한국에서는 좀 어렵지 않을까.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말도 닫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믿고 살고 있습니다. 안된다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DJ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이디사운드는 다르다. 이런 회사가 될 겁니다.”

 음악가들이나 애호가들에겐 매우 유용한 도구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이 사업을 하면서 이 기기가 아니라면 만날수도 없었을 게 분명한 세계적인 유명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음악가도 많이 만났다. 스티비 원더는 제이디사운드의 제품을 써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기능을 더 넣어달라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중동 시장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동이 폐쇄적이고 외부 활동이 적다보니 오히려 집 안에서 하는 파티가 발달해 있어요. 그래서 이런 기기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박태환이 써서 유명세를 탔던 몬스터 헤드폰의 제조사와 제휴를 맺은 게 최근의 가장 큰 호재. 브랜드를 사용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제이디사운드가 만든 제품이 몬스터 브랜드를 달고 나가 팔리는 것이다. ‘ODM(주문자개발생산)과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에 그는 “ODM과는 다릅니다. ODM은 수량 등을 주문을 받아 만들어서 납품하는 거지만 몬스터와의 제휴는 우리가 몬스터 브랜드를 쓸 뿐 수량이나 가격 등 모든 면에서 직접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다른 회사와의 제휴도 가능하구요.” 

 제이디사운드가 만든 것은 일종의 휴대용 뮤직스테이션이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아버지가 거실에 갖다 놓았던 전축에서 레코드가 돌아가면서 나오는 음악소리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이런 저런 음악을 조합해 멋대로 흥얼거리기도 했다. 요즘엔 오히려 이런 낭만이나 멋이 없는 것 같다. 제이디사운드는 이런 ‘음악이 가득찬 거실,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일상’을 복원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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