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업을 시작했는가. 왜 창업을 하는가. 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불확실한 세상에 뛰어드는가. 어차피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무엇을 한다고 해도 누구도 결과를 보장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이왕이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아니 꼭 그렇진 않다. ‘인생에 확실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보다 안전한, 또는 보다 편한 길은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길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마다하고 굳이 어려운 길로 들어서고자 하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런 일들이지만 매일 벌어지고 있고, 이 블로그에서는 그런-어찌보면 정말 이상한-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소개하고 있다.
이상한 듯 보이는 이런 이야기들의 주인공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물결이 사실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힘이 아닐까.(‘이상한’ 이라는 말을 자꾸 썼다고 해서 특정 통신사 광고를 떠올리지는 마시길...) 이번에 소개하는 예스튜디오 최원만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의 창업 과정과 인생역정에 특별한 공감을 느꼈다. 그가 결정을 내리면서 했을 수많은 고민들이-아주 일부분이겠지만-마음에 와닿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그는 뻔하게 전개될 자신의 인생을 예지했고, 다른 길을 택했다. 자신의 삶을 바꿔보기 위한 노력이었겠지만, 그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말없이 지지해주신 부모님
최원만 대표의 이야기는-지금까지의 다른 스토리와 달리-가족들, 특히 그의 부모에서 시작해야겠다. 그가 의식적으로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창업 아이템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문득 나왔다.
“부모님이 두 분 다 말씀을 못하시고, 듣지도 못하세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고로 그렇게 되셨죠.”
그런 환경이다보니 그는 어릴적부터 부모님의 간섭보다는 자율적인, 요즘 말로 하면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야했다. 어린 시절엔 그런 환경에 불평이나 원망이 적지 않게 있었으리라.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어야 했어요. 그때는 잘 몰랐죠. 부모님에 대해 제가 감사할 그런 일이 있을지..”
어지간한 일은 자신이 결정하고 고민해야 했다. 부모님은 다만 계속 그를 응원하고, 말없이 지지해줬다. 썩 쉽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지나고 보니 부끄럽지는 않은 과정들이었다. 그래도 그것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었다. 방황한 날도 적잖게 있었지만 그래도 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고 그와 그의 형, 여동생 등 삼남매가 모두 대학에 갔다.
의정부에 있는 한 전문대학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최원만은 대학 졸업 후 삼성카드에 입사를 하게 된다. 처음에 그가 맡은 업무는 채권추심. 험한 일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렇게 알려져 있다. 이 일을 2년반 넘게 했다. 인생을 배웠다고 한다. 각종 사연을 지닌 사람들에게 채권추심을 하러 다니면서.
일이 험하거나 어려워서 창업을 결심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번듯한 직장을 다니면서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에, 어떤 일이 올지 그도 막막한 채로 그냥 있었다. 계기라는 것은 역시 느닷없이 찾아왔다.
10년 앞을 보다
“2004년인가, 그때였죠. 그때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받았어요. 아니, 그 당시 용어론 희망퇴직이었죠. 그런데 사실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선배들이 꽤 됐어요. 업계가 어려워지면서 구조조정을 하던 시기였는데 아이 둘이 키우고 있는데 갑자기 나가야 하는 처지에 된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었던거에요. 위로도 하고 같이 얘기도 나누고 그러는데, 거기서 문득 제 10년 후 모습이 보이더군요.”
자신도 언젠가는, 그것도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같은 처지가 될 것 같다는 생각. 그 생각 속에 그려진 모습이 자신의 10년 후 미래였다. 그래서 6년차 이하 직원이었던 그는 대상도 아니었지만 회사에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마침 조건도 좋았다. 퇴직금을 받아서 나온 그는 PC방을 차렸다. 첫 개인사업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2005년 이었다.
자신이 자랐고 익숙한 동네인 동두천에서 PC방 사업을 시작한 최원만. 고객을 응대하는 일이 그는 즐거웠다. 단골 고객만 300명, 수시로 오가는 고객이 1000여명에 달하는 대형 PC방으로 성장했다. 그는 1000명의 이름을 모두 외웠다고 한다. “고객들이 패턴이 있더라구요. 어떤 시간대에 방문해서 몇시간 정도 이용을 하고, 어떤 자리를 좋아하고, 주로 어떤 게임을 즐겨하는지를 쉽게 알게 됐죠. 그래서 고객별로 정리를 해 봤어요. 그리고 손님이 오기 전에 세팅을 다 해놓고 음료수도 한 잔 준비해놓고 오면 바로 이용하고 싶은 바로 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준비를 끝내놓죠. 그러면 거의 어김없이 그 분이 와요. 준비가 다 돼 있는 것을 보면 참 고마워 하시더라구요.”
첫 사업은 순항했다. 사업을 하면서 결혼도 했고 아들도 태어났다. 하지만 그가 PC방 사업을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었을까. 5년쯤 했을 때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자신이 이 변화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2009년이었죠. 사업이 뭔지 좀 감을 잡았을 때인데, 그때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접하게 됐어요.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잠이 안왔어요. 게임산업에 엄청난 변화가 올텐데, PC방 사업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한거죠.”
아내와 상의를 했다. 자영업자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이들은 결론을 내렸다.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리고 바로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2010년 당시 그는 일산에서 우유사업을 하고 있던 친척분의 제안으로 우유배달전문점도 하고 있었다. 일단 집중이 필요하다고 본 그는 PC방을 정리하고 우유배달전문점을 하면서 스마트폰과 연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 나섰다. “우유배달 시장만 1조5000억원에 달하더군요. 이게 뭔가 스마트폰 시대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서 하진 않았다. 우선 아내가 함께 했다. 아내는 모바일 디자인 쪽 일을 배웠다. 부부는 우유배달을 모바일에 접목하기로 했다.
돈을 좇았더니 돈이 달아나더라
2012년 7월. 드디어 법인을 설립했다. 첫 자본금은 100만원. 법인명은 예스튜디오. 여전히 모든 게 불확실한 상태에서 뭐든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회사명에 스튜디오를 붙였다. 최원만 대표가 기획을 맡고, 공동대표인 아내는 디자인을 총괄하기로 했다. 서비스명은 헬로밀크.
이들이 헬로밀크를 기획했던 초기에 선릉역 디캠프에서 최원만 대표를 처음 만났다. 아이템은 우유배달 중계 서비스. 대리점주들은 스마트폰으로 고객을 관리하고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우유 배달을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우유업체인 대기업과의 협조도 필요한 일이었고, 무엇보다 대리점주들이 활용을 잘 해야 하는 일이었다.
최원만 대표 본인이 우유 대리점을 했었기에 이쪽 바닥의 생리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기회가 있다고 그는 철썩같이 믿었다. 시장은 충분히 있고,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면 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업은 잘 안됐다. 사용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예스튜디오 창업멤버 및 직원들. 앞줄 왼쪽 앉은 이가 최원만 대표.>
일단 표면적인 가장 큰 이유는 대리점주들의 스마트폰 사용률이 낮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스마트폰을 쓰는 비중이 낮았다. 아니, 생활에선 쓰지만 이것을 통해서 고객을 관리하고 앱으로 고객을 응대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도 많지 않았고, 익숙치 않았기에 불편할 뿐이었다. 그는 편리하다는 가치를 제공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들은 별로 편리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엔 각종 배달앱 서비스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스마트폰으로 배달을 편하게 해준다는 개념이었지만, 그 중 소수만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잘 안될 때는 분명 이유가 있다. 우유를 먹어야 하는 사람과 배달을 하는 대리점 모두가 필요성을 느껴야하는 서비스였다. 그런데 대리점에선 불편해하고, 우유를 배달시켜 먹는 사람들은 그 정도의 효용을 느끼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
“정말 대박이 날 줄 알았어요. 시장이 보이는 듯 했죠. 사실 돈을 벌려고 했어요. 돈 욕심이 생겼고, 돈을 좇았죠. 그런데 돈을 따라가려고 하니 돈이 달아나버리네요.”
엄밀히 말하면 우유배달 중계라는 분야는 그저 기회만을 찾은 거였다. 그가 이 분야에서 딱히 문제의식을 갖거나 고객에게 줄 차별화된 가치를 찾아낸 것도 없었다.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시기적인 문제도 있었고, 효용 자체의 가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문제도 있지 않았을까. 대기업을 계속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사업 자체의 한계도 분명히 있었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나온 주니몽
2013년 여름이 지나면서 최 대표는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는 헬로밀크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사업을 접느냐, 아니면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느냐의 갈림길.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했다. 이미 회사 자금은 바닥난 상태.
“마지막이라는 심정이었어요. 그래도 직원들을 설득했죠. 한번 더 해 보자고. 사람들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일을.”
삼성카드를 나오지 않고 그냥 회사를 다녔으면 어땠을까. 아내와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있었다. 사업이 어려울 때마다 ‘그냥 회사를 다녔으면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그를 다잡아줬다. “새출발을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제가 좋았다고 하네요. 그냥 대기업 다니고 있었으면 저랑 결혼 안했을거라고도... 하하”
그는 힘들 때 부모님댁을 찾아갔다. 아무 말 없지만 묵묵하게 아들을 지원해주시는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 절로 힘이 났다고 한다. “그래, 나는 몸 건강하고 경험도 있는데 뭔들 못 하겠나.”
어느 날 부모님 댁에 갔다가 아들과 부모님이 손짓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문득 그림으로 소통하는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그림으로 대화를 나누고, 손짓발짓으로 대화를 나눴던 그였기에 충분히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직 글을 모르는 아이들, 또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면 충분히 통할 거란 생각도 들었다.
“4세부터 13세까지의 아이들은 그림을 정말 많이 그려요. 그때 평생 그릴 그림의 70% 이상을 그린다는 연구결과도 있죠. 이 시기에 아이들의 그림은 정말 순수하고 편견이 없죠. 이들이 그림으로 대화를 하게 하면 정말 숨어있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이렇게 해서 주니몽이 나왔다. 컨셉트는 간단했다. 아이들이 쉽게 그림을 그리면서 소통을 하는 SNS였다. 댓글처럼 그림으로 답을 할 수 있는 댓그림을 가능하게 했더니 아이들이 참여도가 높아졌다.
그의 이런 아이디어에 대해 외부에서 응답이 왔다. 개발 과정중 프로토타입만 보고 매쉬업엔젤스의 이택경 대표가 엔젤투자를 했고 빅베이슨캐피털에서 초기 투자를 했다. 지난달에는 동문파트너스와 빅베이슨으로부터 추가 투자도 유치했다.
주니몽 서비스를 이용하면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구경하면서 전 세계의 또래 어린이들을 친구로 사귈 수가 있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전 세계 12개국의 언어가 지원되기 때문에 색을 배우고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친구도 사귀고 간단한 언어도 배울 수 있는 서비스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그린 그림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 그림을 그려서 올려놓고 친구들과 그림으로 소통을 할 수도 있고, 오프라인에서 손으로 그린 그림을 저장해서 두고두고 간직할 수도 있다.
2015년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불과 몇 개월만에 10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고 211개국에서 사용하는 서비스가 됐다. 미국 고객이 54%로 가장 많고 한국과 아시아에서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분석하는 프리미엄 서비스도 준비중이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사용한 색을 토대로 자녀의 현재 감정 등을 분석하면 교육쪽으로도 활용될 가치가 높고 부모들의 관심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1000만 이용자를 확보하는 게 목표에요. 이를 위해선 중국에서 서비스가 활성화되야할 것 같습니다. 3년 내에 전세계 1억명의 어린이들이 쓸 수 있는 그런 서비스가 되고 싶어요.”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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