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티마'시리즈 개발로 유명한 리차드 게리엇을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5월 미국 LA에서 열린 국제게임전시회 E3였다.그 뒤로도 몇 차례 게리엇을 만났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크게 인상이 깊지 않았다.
당시 그는 '타뷸라 라사'를 들고 나와서 개발된 부분까지 시연을 했다.물론 시연 화면으로 볼 때는 그래픽이나 캐릭터의 움직임 등 모두 훌륭해 보였다.하지만 그게 다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엔 게임을 하는 걸 좋아하기만 하지 게임산업이나 유명인에게 더욱 문외한이었던 나는 그가 그렇게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인지도 몰랐다.나중에 동료 기자가 귀뜸해 줬다.
"야 저 사람이 그 유명한 리차드 게리엇이야"
"뭐가 유명한데?"
"울티마 온라인. 모르냐? 그거 이 바닥에선 거의 전설이라고"
근데 그 순간 나처럼 온지 얼마 안된 기자가 불쑥 말했다."근데 그런 사람이 내놓은 게임이 뭐 저래?" 기자들이 순간 쿡쿡하고 웃었다.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지 얼마 안된 문외한들의 에피소드지만 그때 인상때문이었는지 나는 게리엇에 대해 계속 의문을 갖고 있었다.저 사람은 정말 그 천재적 실력을 언제쯤 발휘하게 될까.
2006년 11월 텍사스 오스틴에서도 그를 직접 만났다.그때도 그는 게임에 대해 설명했다.그런데 그때 나는 두가지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첫째는 그가 설명하면서 보여준 게임이 1년 전에 봤을 때랑 다른 점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었다.두번째는 엔씨 오스틴 직원들의 태도였다.직원들은 게리엇에 대해 물어보면 그가 개발중인 게임이나 게임에 대한 열정,그의 번득이는 게임 아이디어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집이 굉장히 호화롭고 비싸며,항상 우주인이 되고 싶은 꿈에 가득차 있다고.그런 점에서 아주 특이한 사람이라고....그에 대해 말할 때 게임 얘기가 나오면 항상 과거의 이야기만 나왔다.울티마,울티마,울티마,,,그런데 지금은?
내가 받은 느낌은 이거였다.
"실력보다 명성이 앞서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그랬을까..지난해 타뷸라 라사가 참패를 면치 못했을 때 전혀 놀랍지 않았다.
난 게으른 천재는 없다고 믿는 편이다.천재가 평소 생활엔 게으를지 몰라도 자기 본업을 할 때는 엄청나게 부지런하고 일반인이 따라올 수 없는 근면성과 성실함을 발휘한다고 알고 있다.리차드 게리엇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엔씨소프트와 게리엇은 최근 결국 결별했다.휴직상태라고는 하지만 그는 우주인이 돼서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곳곳에 자신의 사진만 남겨놓은 채 떠났다.
엔씨소프트는 리차드 게리엇과 로버트 게리엇 형제로 인해 분명 막대한 유형,무형의 이익을 얻었을 것이다.미국 시장에서 초창기 정착하는데 이들의 명성과 실력,인맥 등이 가져다준 소득이 많았을 것이다.그들이 없었다면 엔씨소프트가 미국에서 이처럼 정착하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과연 한국 온라인게임산업에 얼마나 득이 됐는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한국 게임의 맏형인 엔씨가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그를 통해 만든 타뷸라라사가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그와 엔씨소프트,나아가 한국 온라인게임은 밑천이 다 드러났다는 평가를 현지에서 받게 됐다.엔씨소프트 역시 미국에 정착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말로 위안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2001년부터 그가 타뷸라라사를 개발한다고 쏟아부은 수백억원의 돈이 가져온 기회비용은 단순히 비용만 갖고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고 그것때문에 비난받아선 안돼지만 그가 대외적으로 보여준 자세가 너무나 아쉽다.
그가 7년간의 엔씨소프트 생활 중에 남겨 놓은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그가 남겨놓은 것이 실패한 게임 타뷸라라사 뿐이라면 말이다.명성보다 중요한 것은 실력과 성실함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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