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쯤이었던 것 같다.구글이 한국의 벤처기업 태터앤컴퍼니를 인수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게.당시 정치부 기자로 일하고 있었기에 이에 대한 기사를 쓰지는 않았지만,소식을 듣자마자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태터앤컴퍼니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노정석,김창원 사장이었다.그리고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곧 창업하러 나올텐데.이번엔 무엇을 가지고 창업을 할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그리고 실제로 노정석 구글PM(프로덕트매니저)는 결국 지난해 구글을 박차고 나와 자기 이름으로 회사를 차렸다.30대 중반에 벌써 네번째 창업이다.하지만 그가 구글을 나와 다시 창업을 하게 되는 과정은 결코 간단치는 않았다.때론 밖에서 보기엔 너무나 당연해보이는 일도 그 과정은 수많은 우여곡절과 그것이 아니었으면 이뤄지기 힘들었을 운명적인 만남 같은 것으로 점철되기 마련이다.강남역 인근에 사무실을 얻은 노정석 사장의 아블라컴퍼니를 1월초 어느날(아마 폭설이 내린 다음날쯤이었던 것 같다) 찾아갔다.

◆구글플렉스에서 창업을 결심하다
 내심 너무나 당연하기에 물어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노 사장을 만났을 때 창업 동기에 대해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왜 창업했냐”는 질문은 그에게 무의미할 것 같았다.그래서 나는 “정확히 언제부터 구글을 나와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을 실행하기 시작했나”라고 묻고 싶었다.
 노 사장을 만나면 좋은 것이 그가 미리 알아서 답을 한다는 거다.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는 말했다.
 “구글플렉스(항상 언론에 사진이 나오는 그 유명한 구글식당 바로 앞의 파라솔이 줄지어 있는 그 곳)에서 식사를 하고 따사로운 캘리포니아 햇살을 받으며 음료수를 마시다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 좋은 곳에 있으면서 왜 힘들게 창업할 생각을 해요?’라고 물을 만 하다.나는 생각만 했다.

 역시 그는 알아서 먼저 말을 했다.“이렇게 좋은 회사를 나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구글에 오니,그 좋은 구글 캠퍼스에 오니 더욱 그런 생각이 간절해지더라구요.”

 비하인드스토리랄 것까진 없겠지만 여기서 노 대표에게 창업의 의욕을 더욱 샘솟게 두 가지 일이 있었다.그가 아직 구글에 적을 두고 있던 지난해 3월 창업을 하겠다며 패기만만한 2명의 젊은이들이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왔다.노 대표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소셜커머스업체 티켓몬스터 창업을 준비중이었던 신현성 대표와 김동현 이사였다.그리고 그때 노 대표도 마음을 굳혔다.“나도 새롭게 도전하자”

 때 마침 파프리카랩 공동창업자였던 이창수씨와 함께 창업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도 자극이 됐다.노 대표는 소셜게임업체 파프리카랩을 창업했다가 나와서 일본에 있던 이창수씨와 창업을 같이 했다.이창수씨는 CTO를 맡았다.“정말 열정적이고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정말 난리난 사람이었는데,이런 사람이랑 창업 못하면 또 오랜세월 혼자고민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업에 뛰어든 1세대 해커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지만,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는 199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포항공대 해킹 싸움’ 주동자다.KAIST 컴퓨팅 동아리 ‘쿠스(KUS)’ 회장으로서 싸움을 주도했다가 구치소에 수감됐다.다행히 벌금형으로 풀려났지만 이후 그는 전공을 전산학에서 경영공학으로 바꿨다.

 해커로서 그의 실력이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은 1998년.SK텔레콤이 특이한 조건으로 보안시스템을 발주했다.‘SK텔레콤 홈페이지 시스템을 뚫는 회사랑 계약하겠다’는 것.인젠 창업 초기인 당시 그는 단 하루 만에 SK텔레콤 홈페이지 시스템을 해킹해 사업을 따냈다.“해킹은 기술이 10%,인간 심리 이해가 90%입니다.시스템을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하나씩 해킹의 실마리가 풀리죠”
 그는 레이서로도 활동했다.2002년 아마추어 트렉레이스인 ‘타임트라이얼’에서 우승한 뒤 2003년엔 프로로 전향했다.자동차와 레이싱에 대한 그의 관심은 취미 수준이 아니다.

 노 대표는 2005년 말 태터앤컴퍼니를 창업했다.1997년 인젠,2002년 젠터스에 이어 세 번째 창업이다.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해커였고 지금도 그 분야에 상당한 안목이 있지만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해킹사건 그 이후 기술 창업으로 기업가의 꿈을 이루는 쪽으로 전환된 것 같다.물론 그의 입에서 들은 말은 아니다.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느낀 것이다.

◆네번째 창업,아블라컴퍼니
 잠시 과거로 돌아갔던 시계를 다시 현재로 돌려보자.해커이자 레이서였던 그는 기술 창업으로 승부를 봐 왔다.1997년 인젠 창업이후 태터앤커커컴퍼니까지 그의 이런 기조는 유지됐던 것 같다.

 그런데 아블라컴퍼니에 와서 그는 또 다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이미 인젠과 태터앤컴퍼니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일까.아니면 구글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일까.
 (어디까지나 내 느낌이지만) 노 대표는 창업 경력 10년이 넘어서면서 이제 ‘기술’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뭐 꼭 대단한 기술력을 내세우지 않아도 기술력은 이미 그가 창업하는 모든 회사의 기본이 되 있는 것이고 그는 이제 기술력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아니라 세상에 필요한 서비스를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그런 창업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지난해 창업한 아블라(Ablar)컴퍼니는 스페인어 Hablar 에서 앞에 H 를 날린,Zappos 식 작명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회사다.스페인어 Hablar는 말하다,대화하다 이런 뜻을 갖고 있다.“좀더 많이 말하고 소통하게 해주는 회사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그러한 이름을 지었습니다.CTO 가 단 5분만에 신들린듯 작명한 이름입니다”

◆오프라인 사업자에게 제대로된 온라인 기반을 만들어주자
 노정석 대표 이야기를 하면서 태터앤컴퍼니(TNC)를 빠뜨릴 수 없다.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Consumer Internet Service를 시작한게 TNC가 처음이었습니다.‘Brand Yourself’라는 모토를 가지고 원래 가져야 할 콘텐츠파워를 원래 가진자에게 돌려주다라는 목표하나로 시작했었고 소기의 목적을 이뤘습니다.Tistory 는 명실상부한 대표 블로그 서비스로 성장했고 우리가 만들었던 혁신들은 몇년차이를 두고 포털들의 기본서비스가 됐습니다.우리는 그런 변화를 자극했습니다.그게 우리의 공헌이었고 오픈소스 커뮤니티를 이끌었던 신정규님과 나는 우리는 ’위대한 성공‘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한 아블라컴퍼니의 사업 목표를 요약하면 이렇다.‘과거에 TNC 가 ’Brand yourself’ 라는 목표 아래에서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제대로 된 온라인 기반(홈페이지)을 주려고 했다면 아블라컴퍼니는 오프라인에 사업을 가지고 있으신 분들에게 제대로 된 온라인 기반을 만들어 드리고 싶은 것이 이번 사업 목표’

 노 대표는 이제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판단한 것 같다.과거 콘텐츠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툴을 만들었던 그가 이제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콘텐츠툴을 만들었다고나 할까.
 그는 아블라의 핵심 사업을 이렇게 간단하게 말했다.“자영업자 분들을 위한 페이스북을 만드는 겁니다”

 한가지 차이가 있다면 이 위에서 직접적으로 판매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다.특별하게 복잡한 기능들 만들지 않고 업주분들이 필요하다고 딱 이야기하는 정도를 만들었다.단순한 홍보/판매만 있는게 아니라 제대로된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고,그렇다고 커뮤니케이션만 있다기 보다는 조직화된 정보가 있고 관리가 있는 그런 홈페이지..

◆고객에게 어렵게 뭘 배우게 하면 나쁜 서비스다
 그는 왜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됐을까.“전국에 58만개의 한식,중식,양식부터해서 카페,호프집이 있는데 한해 20만 가까운 숫자가 창업을 하고 또 이만큼의 숫자가 망한다고 합니다.30%의 가게들이 창업후 1년이내에 망하고 2년이내에 50%가 망하죠.사유의 50% 이상이 영업부진.”

 그는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 많은 사장님들을 온오프라인에서 만나고 다녔다고 한다.그가 접촉했던 사장님들이 줄잡아 1000여명에 달한다.

 “많은 사장님들을 만나보니까 이 분들도 음식점의 핵심상품이라고 여겨지던 음식이외에 다른 차별점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셨습니다.이걸 ‘경험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게 더 중요한 시점이 되버린 거죠.다른 기념품을 만들어준다던가, 뭔가 기억을 남겨준다던가, 주방장이 만들어주는 투데이스페셜 뭐 이런 부가적인 것들이 더 중요해졌는데 여기서 가장 필요한게 커뮤니케이션 채널인 것 같았습니다.하지만 카페,블로그 만들어도 잘 안되요.찾아가기가 쉽지 않거든요.쿠폰사이트는 가격적인 메리트는 있지만 그것이 지속적인 연결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트위터는 너무 커뮤니케이션만 있어서 쿠폰이나 이벤트 뭐 이런것들 가게가 가지고 있는 상품들에 기반해서 고객들에게 추가적으로 줄수 있는 그런 것들을 잘 못합니다.그래서 딱 이 중간있으면 되겠다 싶어서 업주분들에게 여쭈어 보니까 음 맘에 든다고 하더라구요.그래서 만들게 됐습니다.”

 서비스 이름은 테이블케이(Table K).2월에 서비스가 출시된다.그의 말처럼 아주 심플하다.업주들이 페이스북처럼 자신의 홈페이지를 테이블케이에 만들어놓고 고객과 소통하고 관리하는 것이다.고객들은 테이블케이를 통해서 전국 각지 업소의 이벤트,쿠폰,메뉴 등 정보를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서비스 자체에 아주 특이한 점은 없다.“이용자에게 새로 뭘 어렵게 배우게 하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우리의 고객인 자영업자분들이 부담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지요.어찌 보면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뻔한 서비스이지만 뻔한걸 뻔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게 좋은 사업이라고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배웠습니다.”

<아블라컴퍼니 7명의 창업멤버들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B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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