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2007년 NHN을 나와 당시 아이위랩이라는 실험적 성격이 짙은 회사를 차리면서 장기적인 목표로 “벤처기업인 100인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카카오를 설립하고 포도트리에 투자하면서 그의 이런 아이디어는 구체화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2010년 두 회사에 이어 다른 회사에 대한 추가적인 투자나 육성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김 의장을 만났을 때도 그는 “방법을 고민중”이라고만 했었다.

그랬던 김 의장이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김범수 의장은 3월 28일 IT분야 초기단계의 벤처기업(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케이큐브벤처스(K Cube Ventures)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인 등록을 마치고 투자조합결성에 나선 이 회사는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투자 활동을 시작한다. 29일 케이큐브벤처스 대표를 맡은 임지훈 사장과 만나 회사 설립 배경과 향후 계획 등을 들었다. 김주완 한국경제신문 IT모바일부 기자가 동행했다.

◆결국은 엔젤투자가 답

김범수 의장을 작년에 만났을 때만 해도 “벤처투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인큐베이팅 회사를 설립하는 가능성에 묻는 질문에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만의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계속 방법을 찾고 있었다는 것. 그의 이런 고민은 임지훈 소프트뱅크벤처스 수석심사역을 만나면서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전개된 것으로 보인다. 

 김범수와 임지훈 두 사람이 만난 것은 공식적으로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일하고 있던 임지훈 대표는 카카오에 대한 투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010년 여름 김범수 의장을 만나러 갔다. 사용자가 200만명이 채 안되던 시절이었다. “카카오톡이 대박이 날 거란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당시엔 외부 투자를 받기엔 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 뒤로도 몇 번을 찾아갔지만 투자는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작년 10월 카카오가 모바일 소셜커머스업체 로티플 인수에 나서면서 소프트뱅크벤처스에 있을 때 이 회사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던 임지훈 대표와 김범수 의장이 다시 만나게 됐다. 임 대표는 개발력이 뛰어난 로티플의 가능성을 보고 이 회사가 생긴지 한 달만에 3억원을 투자했고 서비스를 내놓기 전에 10억원을 추가로 투자했다. 로티플은 설립 8개월만에 카카오에 인수됐다. 소프트뱅크벤처스가 로티플 지분을 상당부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임 대표와 김범수 의장이 마주 앉게 된 것이다. 

 만남이 이어지면서 김 의장은 임 대표의 안목을 평가하게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이것은 김범수 의장이 직접 설명한 부분은 아니다. 임 대표의 이야기를 종합해봤을 때 그럴 것 같다는 추론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공학과 99학번인 임 대표는 졸업후 엑센추어, NHN 등에서 병특으로 병역을 마쳤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을 거쳐 2007년 6월 소프트뱅크벤처스에 합류, 최근까지 여기서 투자심사역으로 활동했다. 경력은 10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30대 초반이다. 국내 창업투자회사 대표들이 대부분 40세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30대 초반인 그의 발탁은 이례적이다. 임 대표는 벤처투자업계에서 선구안이 좋기로 소문난 인물이다.그는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5년여 동안 KINX, 처음앤씨, 한텍엔지니어링 등을 초기에 발굴, 투자해 IPO(기업공개)까지 성공시켰다. 또 선데이토즈, 두빅, 바이미닷컴, 인포마크 등 현재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을 초기에 투자하기도 했다. 

 임 대표가 수석심사역으로 일할 때 두드러졌던 점은 창업가들의 창업 동기, 백그라운드 등을 투자를 결정할 때 중요한 요소로 평가했다는 점이다. 특히 창업자의 됨됨이를 가장 많이 따졌다고 한다. 창업자와 창업 멤버를 10번 이상 매번 두 시간 정도 만나 그들의 열정과 집요함을 확인한다. 임 대표는 “특출나고 끈기 있는 창업자라면 실패를 하더라도 다음에 뭔가를 분명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인류를 좀 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서비스와 제품을 내놓을 창업자를 선호하다. 이런 사업에는 돈도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결국 연초에 김범수 의장은 임 대표에게 자신이 설립할 투자회사의 대표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 투자회사의 성격을 결정지을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다. 임 대표는 아주 초기 단계의 벤처 투자가 전문인 인물. 결국 엔젤투자가 답이라는 결론을 김 의장이 내렸다는 뜻이다.

◆기업가는 가르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엔젤투자회사이지만 기존 엔젤투자와는 좀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투자 금액. 임지훈 대표는 “보통 엔젤투자자들은 1억에서 3억원 정도를 투자하지만 케이큐브벤처스에는 사실상 투자 상한선이 없다”고 설명했다. 업종의 성격에 따라, 또 필요하다면 5억원, 10억원이라도 투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임 대표는 장병규 사장이 만든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가 매우 좋은 선례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케이큐브벤처스는 인큐베이팅도 할까. 인큐베이팅은 하지 않는다. 

 “아직 사업에 서투르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조언을 해주고 가르쳐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임 대표는 단호했다. “기업가는 가르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의 이런 생각은 김범수 의장의 기본 인식과 일맥상통한 것 같다. 케이큐브벤처스는 사업 방향을 잡아주고,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하는 그런 작업은 하지 않는다. 통상의 엔젤투자자보다 큰 금액을 투자하고 네트워킹을 형성하는 것을 도와준다. 

 “우리는 마케팅을 강의로 배우는 사람에게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보다는 훨씬 뛰어난 사람에게 투자하고 싶습니다. 기업가는 그런 것을 스스로 깨쳐서 알게되는 사람입니다.”

 케이큐브벤처스 사무실은 서울시 역삼동의 카카오 사옥인 C&K 빌딩 4층에 마련됐다. 펀드 규모는 100억~150억원. 처음에는 김 의장과 그의 지인이 투자한다. 투자조합을 결성해서 펀드의 3분의 2 가량을 투자하면 바로 그 다음 투자조합을 결성하는 식이다. 케이큐브벤처스는 투자에만 그치지 않는다. 김 의장은 스타트업 기업에 구체적인 조언도 하고 필요하면 자신의 IT업계 인맥을 동원해 ‘원포인트레슨’도 할 계획이다. 또한 매달 1~2번씩 투자받은 회사들의 구성원들과 함께 난상 토론을 하는 등 같이 고개를 맞대는 자리도 만들 예정이다.

 이름을 왜 케이큐브벤처스라고 지었을까. K는 세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김범수의 K, 카카오의 K, 그리고 코리아의 K다. 정육면체, 세제곱 등의 뜻이 있는, 뭔가 아주 이공계적인 냄새가 나는 큐브


를 여기에 붙였다. 케이큐브벤처스는 엔젤투자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까. 아직 엔젤투자가 열악한 국내 환경에서 초기기업 발굴의 고수인 임지훈 대표와 큰 그림을 잘 보는 김범수 의장이 어떤 모델을 만들어갈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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