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벤처 붐은 없다?

한국의 스타트업 2012. 11. 12. 22:07 Posted by wonkis

벤처기업이 급격히 늘어나는 최근의 현상을 제2의 벤처 붐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까. 이에 대해 벤처기업 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 자금을 받는 기업이 대부분이어서 최근의 벤처 열풍을 결코 ‘제2의 벤처붐’으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이 니왔다. 시장 활성화에 따라 벤처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정부자금의 정책적 지원 대상이 늘어난 것 뿐이라는 뜻이다.  

 김기완 한국개발원(KDI) 연구위원은 12일 ‘제2의 벤처붐을 맞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최근 몇 년간 벤처 기업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시장의 평가를 받았다기 보다는 정부 지원을 받아 생존한 업체들”이라며 “정부 자금받는 벤처의 급증이 정부의 벤처지원제도가 남용된 결과는 아닌지, 또 벤처지원제도가 기업 성장을 유도한 것이 아니라 벤처 지위를 유지하도록 유인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한다”고 지적했다.


◆10개 중 9개는 정부지원 받는 벤처

KDI보고서에서 인용한 중소기업청 집계 자료에 따르면 2010년말 국내 벤처기업 수는 2만4645개로 사상 최대 수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벤처기업 수는 2001년 1만1392개까지 늘었다가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2003년 7702개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 2010년 2만개를 돌파했다.

 김기완 연구위원은 이들 중 90.6%인 2만2231개가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의 지원을 받는 정부지원 벤처라고 분석했다.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냉정한 평가를 통해 투자한 회사는 622개(2.5%)에 불과했다. R&D(연구개발)를 위주로 하는 연구개발기업의 비중도 6.4%에 그쳤다. 

 김 연구위원은 벤처 수는 갈수록 늘지만 코스닥 상장 벤처기업은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을 지적했다. 2005년 전체 9732개 벤처기업 중 405개 기업(4.2%)이 코스닥에 상장돼 있었지만 2010년에는 2만4645개 벤처기업 중 1.2%에 불과한 295개만 상장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지원 업체는 상장비율이 더 낮았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설립된 2만5698개 벤처 중 정부 지원을 받은 업체는 2만539개. 이 중 1.8%인 385개사만 상장됐다. 하지만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받은 벤처는 1566개사 중 5.5%인 86개가 상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지원보다 시장에 의한 선별이 기업 성장에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라며 “최근엔 벤처 수만 늘어날 뿐 시장에서 평가받아 성장하는 경우는 줄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만든 ‘가짜’ 벤처생태계

김 연구위원은 정부가 지원을 하는 기업의 규모(매출액 기준)가 2005년 매출액 25억원대에서 2010년 10억원대로 추락하는 등 계속 축소되고 있다는 것도 지적했다. 정부 지원을 받은 뒤 매출이 줄거나 정체되는 회사가 많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의 자금이 점점 더 영세한 기업에만 집중되고 성장과 무관했다는 것은 정책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을 시사한다.

 김 연구위원의 이런 지적은 벤처업계에서 일찍이 논란이 됐던 부분이기도 하다. 전문성에 의한 경쟁력 평가를 기반으로 정부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테마를 정해놓고 무조건 집행하기 때문에 옥석이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벤처 열풍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창업의 테마를 좌지우지하고 이를 따라다니는 벤처인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은 꼭 비판적인 벤처캐피털리스트 뿐 아니라 업계의 벤처기업인들도 계속해서 지적해 온 문제들이다. 권일환 퀄컴벤처스 한국대표는 “한국은 정부가 테마를 정해놓고 투자자금을 배분하면 거기에 맞춰 벤처들이 태어나는 전형적인 정부주도형 벤처생태계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벤처생태계는 정부가 만든 가짜 생태계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은 “특정 테마를 정해놓고 50개 벤처를 지원하라는 지침이 내려지면 회사의 사업 내용, 전망, 기술력 등을 도외시한 채 무작정 숫자만 맞추는게 지금 한국의 벤처지원제도”라며 “이렇게 정부가 억지로 만든, 경쟁력없는 가짜 벤처생태계에 돈을 넣는 것은 세금 낭비”라고 비판했다.

 전반적으로 김 연구위원의 문제 의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벤처 붐은 과거에도 정부 주도형이었다. 다만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투자하는 회사가 전체 벤처기업 중에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한국에서 벤처 붐이란 아예 없었다는 것이 맞지 않을까. 더 중요한 것은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투자하는 회사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정부가 지원하는 벤처기업의 규모는 점점 작아진다는 것. 아주 초창기에 있는 벤처기업들이 시장에서 평가받고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어쨋든 결론은 명확하다. 정부는 직접 지원을 하는 그런 방식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것. 어떻게 하면 벤처캐피털업체들이 좀 더 리스크를 떠 안고 투자를 확대하도록 할 지, 그런 환경을 만드는 데 좀 더 골몰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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