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씽은 스마트 화분 플랜티를 만드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분이 전부는 아니다. B2C 사업으로서 화분도 충분히 의미가 있겠지만 이 회사는 더 큰 시장을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큰 목표를 가능하게 한 것은 창업자의 사업에 대한 관심과 열정도 분명히 작용했지만 강렬한 경험과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의 영향이 더 큰 것 같다. 화분 판매에 그치지 않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 한국의 스타트업 일백여든다섯번째 주인공 엔씽의 김혜연 대표를 만났다.

독학으로 프로그래밍 배운 고등학생

고등학교 때부터 프로그램 짜는 걸 좋아했어요.”

김혜연 대표의 이야기는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올라갔다. 당시 학생 김혜연은 혼자서 컴퓨터를 공부해 홈페이지 등을 만들었다. 실력이 알려지다 보니 외주를 받아 웹사이트를 구축해주는 일도 했다고 한다. 학교 공부보다 이게 더 재밌었다. 대학 진학하는 것보다 이렇게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정도.

2001년 가을,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청소년벤처인연합회가 서울에서 출범식을 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된다. 당시 고향 이천에서 살고 있던 김혜연은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다. 그리고 충격을 받게 된다.

분명히 고등학생들인데, 정말 다들 양복 빼입고 와서 명함 나눠주고 인사하고, 그야말로 사업가처럼 보이더라구요. 근데 사업 내용이 별 게 없는 것 같았어요. 홈페이지 제작, 웹호스팅, 등록대행 뭐 이런 거였죠. 저도 다 할 수 있는 것들이고 당시 하고 있던 것들이었는데 동년배들은 서울에서 사업으로 하고 있는 걸 확인한거죠.”

기가 죽었나요?”

우물안 개구리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 뒤로 창업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게 된 게 소득이었죠.”

한양대 전자공학과 04학번으로 입학하고 그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들어가 매니저 일도 그 중 하나였다. “운전도 하고 스케줄도 짜고 온갖 일을 했죠. 기간은 고작 3개월에 불과했지만요.”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 갔더니 회사 문이 닫혀있더란다. 관계자 어느 누구와도 연락도 되질 않았다. 개인 카드로 회사 비용을 대신 결제한 게 있었는데 그 돈도 받을 길이 없어져버렸다. 막막해진 그는 아르바이트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다가 SK텔레콤에서 트렌드보고서 작성 보조 일을 하게 된다. 2008년의 일이었다.

이게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죠. 그 때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10, 20년후 트렌드 자료를 정말 열심히 봤거든요. 당시에 벌써 IoT(사물인터넷), 3D 프린터 이런 내용이 다 들어있었어요. 지금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현실이 되고 있는 사업들인데, 그 당시에도 이런저런 예측이 나와 있었던 거죠.”

물론 그가 여기서 좋은 정보를 얻었다고 해서 바로 사업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처럼 이렇게 곳곳에서 엮인 관계와 정보가 나중에 사업을 시작하는데 결국 크게 밑거름이 된 것만은 분명했다. 당시엔 몰랐지만. 마치 그 누군가가 말한 ‘Connecting the dots’처럼.

우즈베키스탄에서 생긴 꿈

2009년 영국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2010년부터 그는 창업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일단 카페나 하나 차려봐서 사업에 대한 감을 좀 잡아볼까.’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던 그에게 친척 어른의 전화가 걸려왔다. “남자는 장사를 하는게 아니라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일 배우라고 포천으로 오라고 하시더군요.”

이 어른은 경기도 포천에서 농자재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농자재의 시공 생산 유통을 모두 하는, 국내에서는 해당 분야에서 제법 큰 회사다. 그가 한 일은 우즈베키스탄에 농자재,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비닐하우스를 수출하는 거였다. 농업에 대한 사전 지식이 그에게 있을리 만무했지만 그는 비닐하우스 운영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농장 운영과 비닐하우스 및 식물 재배의 원리 등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농작물이 참 신기한 게, 생각보다 단순해요. 질소, , 칼륨 즉 NPK 세 가지가 식물이 섭취하는 핵심 영양소인데요, 이를 비롯해 중요한 영양성분을 어떻게 배합해서 공급하느냐에 따라 당도, , 탄성 등 식물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요.”

물론 이 배합을 실제로 적용해서 건강하고 맛있는 농작물을 키우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런 원칙을 알게 됐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우즈벡을 오가는 생활을 1년여간 하면서 그는 이 시장이 상당한 잠재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의 영농회사들이나 음식 관련 회사들이 재배시설은 잘 만드는데요, 식물을 잘 키우는 기술 쪽은 많이 연구를 안 한 것 같았어요. 특히 식물 재배는 일류 재배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그런 분야 사람이 별로 없었죠. 시설재배(비닐하우스 등) 면적은 세계3위일 정도로 엄청나지만 그에 부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짧은 기간 동안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했을 것 같지만 이 당시만 해도 그는 이것이 나중에 자신의 창업과 어떻게 연결이 될지 인과관계를 찾지는 못한 것 같다. 2011년 친척의 회사를 나온 그는 자신의 첫 창업에 도전하게 된다.

첫 실패 그리고 재도전

친구 두 명과 함께 처음 창업에 나선 김혜연 대표. 당시 그는 자신의 정보를 등록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자신의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놓고 사람들이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트북을 갖고 있고, 아이폰을 쓰며, 사진에 취미가 있어 고급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다는 등 자신이 보유한 물건이나 현재 하고 있는 활동 등을 적다보면 그 사람의 취미나 성향 등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를 기반으로 재미있는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게 김 대표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시도는 보기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개발을 외주를 줬는데요, 정말 시간이 오래걸리더군요. 그때 생각했죠. 아 다시는 외주를 주지 말아야겠다고요. 아주 간단한 서비스 하나 만드는게 무려 7개월이나 걸렸습니다. 그리고도 결국 원하는 제품이 나오질 않았죠.” 결국 1년여만에 폐업했다.

개발을 외주로 준 문제도 있었지만 아이템 자체가 기획이 잘못된 거 아니었을까. 어쨌든 첫 실패 후 그는 한국전자부품연구원에 들어가 위촉연구원으로 활동을 했다. 20126월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약 1년간 있었다고 한다. 이때 그는 학교로 복귀해 수업도 들었다. 첫 실패의 교훈을 바탕으로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섭외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후배들과 인사하고 좋은 개발자를 수소문했다. 연구원에서는 IoT(사물인터넷) 관련 플랫폼을 만들고 연구원이 보유한 각종 관련 기술을 서비스화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다양한 경험들이 의미있는 시간들이 돼서 그의 창업이라는 하나의 결실을 맺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것 같다. 그 순간에는 그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수 있지만.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듯했던 경험과 사건들이 연결되면서 그의 두 번째 창업 주제가 정해졌다. 그것은 화분이었다. 화분이 적절해보였다. 농자재와 관련한 그의 경험을 살리면서도 사물인터넷이 가능한 분야였다.

그는 화분이라는 아이템을 정하면서 이를 세 가지 각도에서 바라봤다. 서비스도 물론 그렇게 준비했다. 우선 앱. 식물을 키우는 과정을 기록하고 이것이 축적돼 거대한 데이터가 되면 서비스 전체를 풍성하게 할 수 있다. 그 다음엔 화분에 꽂는 센서. 누구나 화분의 식물을 잘 키울 수 있게 환경을 체크하는 센서다. 마지막으로 화분 그 자체. 항상 인터넷을 통해 스마트폰이나 다른 기기와 연결된 스마트 화분은 앱으로 제어가 가능하고 사람들에게 식물을 키우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엔씽의 창업멤버들. 맨 왼쪽이 김혜연 대표.>

IoT, connection < contents

화분의 식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키우는 사람은 아주 드물죠.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경우가 사실 대부분입니다. 건조하게 키워야 하는 식물에게 물을 잔뜩 준다던가, 서늘한 곳에 놓아야 하는 식물을 해가 쨍쨍 내리쬐는 창가에 둔다던가 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거죠. 엔씽의 서비스는 이런 사람들의 문제를 다 해결해줍니다.”

김혜연 대표가 서비스를 세 가지 차원으로 만든 것은 한 가지 방법만으론 화분을 키우는 고객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화분 관리를 하고 있는 고객으로선 앱만 갖고도 충분할 수 있다. 이 앱은 식물 관리를 하면서 기록을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다. 화분의 상태는 물론, 식물의 종류, 관리방법, 날씨 등은 물론이고 이런 기록들은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알릴 수도 있다. 이 앱은 이미 지난해 6월 출시됐다. 식물 키우는 과정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벌써 7700종의 식물 키우는 과정이 수록됐다.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앱이 활성화되고 유용해진다.

기존에 화분이 많이 있는데 자꾸 식물이 죽는 경우엔 센서가 유용하다. 블루투스로 휴대폰과 연결돼 스마트폰에 정보를 전달해준다. 이 정보를 받아 앱으로 관리를 해 나가면 된다. 이 센서는 곧 출시될 예정.

스마트화분은 하반기께 본격 출시된다. 화분이 없는 사람이라면, 화분과 센서를 별도로 구매할 필요 없이 엔씽의 스마트화분 Planty를 구매하면 된다. 항상 인터넷으로 연결돼서 어디서든 앱으로 제어가 가능하다. 필요한 시간에 물도 주고, 화분의 상태도 관찰할 수 있다. 이 모든 게 원격에서 제어된다. 단 와이파이가 있어야 한다. 집에 화분을 두고 직장이나 밖에서 화분을 관리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여러 분야의 인재가 필요했다. 센서는 이미 아이디어를 갖고 제품을 출품한 사람이 있었다. 2013년 레드닷디자인어워드에서 Best of the best 상을 수상한 정희연씨. 그가 디자인상을 수상한 제품이 바로 화분에 꽂는 센서. 그는 엔씽의 디자인 책임자가 됐다. 8년차 프로그래머 김준영씨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책임지고 있고 생산기술연구원 출신 백경훈씨는 하드웨어 개발을 책임지고 있다. 비즈니스는 Kenny Chung, 영업과 마케팅은 남세기 이사가 담당하고 있다.

엔씽은 이미 머스크앤젤클럽(MOUSQ), 스파크랩 등으로부터 45000만원의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킥스타터에 런칭을 해 이미 목표 금액(10만 달러)을 달성한 상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엔씽의 회사소개서에는 ‘change the whole agricultural industry’라고 쓰여 있다. 화분으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B2B로 가려는 것이다. 개개인의 화분 소비 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농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 농업 혁명으로 가는 꿈까지 꾸고 있다.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IoT는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이죠. 하지만 커넥션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콘텐츠입니다. IoT 세상에서 오히려 인터넷 커넥션이 될수록 커넥션 자체는 별로 중요해지지 않죠. 화분에서도 농업에서도 콘텐츠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걸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겁니다.”

그의 말은 IoT의 정곡을 찌른 듯 했다. 이 회사가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정말 궁금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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