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래 시장은 매우 특이하다. 우선 정보가 대단히 제한돼 있으며, 중개인을 끼고 거래를 해도 돈을 떼이거나 사기를 당할 우려가 있고, 거래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시장(인테리어, 청소 등)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정보 제한과 돈을 떼일 가능성은 엄청난 리스크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 중 상당수는 허위 매물이거나 가격이 잘못된 경우가 허다하고 중개업소마다 가격이 달라 시세보다 비싸게 살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중개업소에 주는 수수료도 법적으로 정해져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고무줄이다. 게다가 잘못되면 돈만 날릴 수도 있다.
어쩌다 이런 시장이 존재할 수 있을까. 주식시장이든, 차를 사고 팔든, 쇼핑을 하든, 물건을 사고 팔 때 개개인의 판단 실수로 나쁜 물건을 구입하거나 가치 대비 고가에 샀다가 손해를 보거나, 회사가 망해 손실을 보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예 정보가 제대로 없어서, 중개인을 믿기가 힘들어서 거래하기가 힘든 곳은 부동산 거래 분야 외에 다른 예를 찾기 힘들다.
시장이 엄청나게 왜곡돼 있다는 생각을 당연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워낙 전문가들의 영역인데다 규제가 많고 기존 기득권자의 입지가 탄탄한 곳이라 파고들기가 쉽지 않은 분야다. 이런 분야에 한 컨설턴트 출신 창업가가 도전했다. 그의 목표와 비전은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시장에 확실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믿고 거래할 수 있게 해 주며, 가격 부담도 낮춰주겠다는 것이다. 부동산다이어트 김창욱 창업자가 한국의 스타트업 191회 주인공이다.
어긋난 계획, 뜻밖의 기회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05학번인 김창욱은 졸업 후 액센추어라는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다. 컨설팅 회사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퇴직 후 자영업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이들이 예정된 실패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창업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런 주제를 파고들었던 것 같다.
“창업을 하지만 사실 경험이 없쟎아요. 그 분야를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성공 하기 힘들죠. 이런 사람들이 몇 개월 학습을 하면 어떨까. 왜 이런 서비스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는 전국을 다니면서 공실을 찾았다고 한다. 왜? 창업 공간을 임대하는 사업을 구상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커피숍 창업을 꿈꾸는 퇴직자가 있다고 하자. 창업 모의 공간을 빌려서 실험적으로 석 달 정도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물론 이 공간을 빌리는 게 공짜는 아니다. 당연히 유료로 빌리는 것이고 공간 뿐 아니라 필요하면 각종 컨설팅이나 조언도 해 준다. 커피숍 사업을 실험적으로 해보면서 자신에게 맞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미리 알 수 있다. 이게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는 차치하고, 일단 김창욱은 이런 과정이 창업 실패를 줄이는데 일조하리라 생각한 것 같다.
창업 공간 임대사업을 하기 위해선 우선 단기 임대가 가능한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공실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공실을 구할 수가 없으니 사업을 진행하는 게 처음부터 벽에 부닥쳤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
부동산 정보에 대해 고심하던 시기에 그는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2013년초 신혼집 마련을 위해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 가계약금 20만원을 걸어놓고 왔다. 그런데 그 다음날 찾아갔더니 그 물건이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버린 것이다. 공인중개사는 가계약금 20만원을 다시 돌려줬고, 그는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가계약금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냥 그 중개업소를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게 있었다. 가계약도 민법상 계약이기 때문에 사실 그 중개업소는 계약을 위반한 것이다. 어쨌든 이런 경험을 겪으면서 그는 부동산 시장을 주의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장이 상당히 왜곡돼 있다는 것, 그것을 제대로 바꿔놓을 근본적인 시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창업 공간 임대사업을 하려고 했는데, 그걸 제대로 해 보려면 왜곡된 부동산 중개 시장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안하면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불편을 겪어야 하니까요.“
<부동산다이어트 창업멤버들. 왼쪽 첫번째가 임성빈 대표. 두번째가 김창욱 대표>
창업이란 거절의 연속
하지만 그는 바로 창업에 뛰어들진 않았다.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니 컨설팅 회사만 다녀서 벤처 기업 경험이 없고, 인맥도 부족한 데다 시간도 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4년 4월 다니던 엑센추어를 나온 그는 피키캐스트에 입사하게 된다. 급성장하고 있던 피키캐스트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좋은 자양분이 된 것 같다. 여기서 개발자와 스타트업 업계 사람들을 만난 것은 결국 그의 창업 과정에서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일단 창업을 위해선 사람이 필요하다. 그는 자신의 군대 선임을 찾아갔다. 신도리코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군 제대 후에도 계속 연락을 했다고 한다. 왜곡된 부동산 중개 시장에서 뭔가 해 보려면 그 역시 이 분야에서 사업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형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좀 따요.” 군 선임인 임성빈 대표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다. 마음을 먹고 불과 몇 개월만에 해냈다.
문제는 개발. 부동산 중개를 온라인에서 하고, 믿을 만한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한다는 큰 틀은 잡았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구현할 지가 문제였다. 처음엔 외주 개발사에 일을 맡겼다. 잘 될 턱이 없었다. 결국 피키캐스트를 다니면서 알게 된 개발자를 영입해 CTO(최고기술책임자)로 삼았다.
서비스는 2월에 나왔다. 서비스명은 부동산 다이어트. 부동산 중개 수수료의 가격 거품을 확 빼주겠다는 뜻에서 만들었다. 고객들에게 알리기 위해 명함 1만장을 찍어서 길거리에서 무작정 나눠줬다. 이름을 각인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달력도 제작했다. 5000개를 만들어 잠실 일대에서 뿌렸다.
소수의 인원으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우선 잠실 지역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 지역에 아파트가 밀집해 있고 거래도 많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서비스를 안착한 후 영역을 확대한다는 생각은 합리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객층을 확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달력을 나눠주고, 명함을 주고, 차별화를 알려주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하기 일쑤였다. “창업이란 게 거절의 연속인 것 같아요. 그런 거절에 흔들리면 사업을 할 수가 없죠. 수많은 거절을 당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혼탁한 부동산중개시장 바꿔보겠다
그가 발견한 부동산 중개 시장의 문제점은 크게 3가지였다.
우선 객관적인 정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 그 이유는 대부분 부동산 정보라는 게 아파트 등 지역 단지 중심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정보를 올려놓고 포털 등에서 정보 검색을 할 수 있지만 상당수 허위 정보와 뒤섞여 있어서 진짜 정보를 판별하기 어렵다. 가격 정보는 더욱 믿기 힘들다. 대략의 변화 수준 정도만 참고할 뿐이다.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지역 장사에만 매몰돼 좁은 시장을 놓고 경쟁을 하다 보니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잘 작동되지 않고 있고 그러다보니 중개업소마다 갖고 있는 정보의 수준 차이가 심할 수밖에 없다.
중개업자들이 잘 모르는 집을 소개하는 경우도 많다. 집주인의 말만 듣고 그냥 집 정보를 올려놓는다. 집주인에게 채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해도 지금까지 장사가 돼 왔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다는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정보 전달의 왜곡도 심하다. 심지어 내가 친하지 않은 중개업소에게는 자신이 갖고 있는 매물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 일도 허다하다.
거래가 안전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매년 5000건 이상의 부동산 중개 관련 사고가 터진다. 거래 상대방이 사기 기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고 부동산 중개업소가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심지어 집 주인이 아닌 사람이 버젓이 주인인양 거래를 한 뒤 돈만 챙겨서 달아나는 일도 있다.
수수료 역시 만만치 않다. 최근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자발적으로 수수료를 인하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이것은 시장이 워낙 침체된 것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것일 뿐이다. 부동산다이어트 창업팀은 ‘부동산 거래시 발생할 위험 가능성, 불확실한 정보 등에 비해 중개 수수료 등이 너무 비싸다’고 판단하고 있다. “집값 상승기에는 중개 수수료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훨씬 더 큰 돈을 집 값 상승으로 벌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중개업소에 내는 수수료도 상당한 부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부동산다이어트는 수수료를 대폭 낮췃다. 부동산 소유자가 매매를 의뢰한 지 2주가 지나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으면 중개 수수료가 무료다. 2주 안에 거래가 성사되도 0.3% 저렴한 수수료를 받는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직접 매물을 확인하고 해당 매물을 사진도 직접 찍었다. 매물 확인도 철저하게 해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서류와 실 소유자를 철저하게 확인하는 작업도 한다. 수수료는 무조건 카드로만 받는다. 그만큼 투명하게 운영하고 신뢰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잠실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당연히 전국 서비스를 꿈꾸고 있다. 기존의 다른 부동산중개업소처럼 지역 단지 매물에 붙잡혀 있을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2월에 첫 거래가 이이뤄지고 하루에 2000명 가량의 사용자가 부동산다이어트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다. 투명하고 안전한 거래. 그러면서 부담없는 중개 수수료. 이들이 꿈꾸는 부동산 중개 시장의 혁신이 언제 가시화될까. 그리고 그런 시도가 기존의 부동산 중개 시장 판도를 뒤흔들 수 있을까.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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