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자율적인 직장 문화를 꿈꾼다.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일하는 과정에 시시콜콜히 개입하지 않으며 쉬고 싶을 땐 아무 이유 없이 쉬는 그런 문화. 퇴근할 때 눈치를 보지 않고 휴가 갈 때 사유를 작성하지 않으며 집안에 일이 있을 때 걱정 없이 급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그런 문화.
하지만 이런 문화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일반적인’ 직장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런 문화 속에서 일할 때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생산성이 엄청나게 오를 것 같지만, 도입할 수가 없다. 왜? 이런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기(또는 그럴 것이라고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장담하건대, 반드시 있다.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라고 하면 출근 시간이 한도 없이 늘어질 수 있고, 쉬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쉬라고 하면 갑자기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교적 자율적인 환경 하에서 일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노력하더라도 말이다.
이러다보니 우리가 일하는 환경은 이와 정 반대인 경우가 많다. 출근 시간 1분 지각할까봐 전전긍긍하기 일쑤고, 하루 종일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실제로 일을 하기 보단) 보고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가며, 쉬고 싶을 때 마음대로 쉰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 휴가 갈 때 사유를 고민하는 건 당연지사고, 정기 휴가를 갈 때조차 눈치를 보는 게 일반 직장인들의 삶이다.
그런데 꿈에서나 볼 듯한 이런 근무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회사가 있다. 이번 스타트업생태계컨퍼런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스마트스터디 김민석 대표의 ‘우리가 만드는 스타트업 문화’ 강연이었다.
<2016년8월25일 부산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스타트업생태계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김민석 스마트스터디 대표>
2010년 3명의 창업멤버로 시작한 스타트업 스마트스터디. 이 회사 직원 규모는 이제 113명으로 불었다. 아직 작은 규모라면 작다고 할 수 있겠지만, 스타트업으로서는 상당한 규모의 회사가 됐다. 그의 강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109개국에서 교육앱 매출 1위를 기록한 바 있으며 지금도 많은 국가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핑크퐁 시리즈. 창업 2년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해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흑자 경영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회사. 투자를 받았지만 투자금을 거의 쓰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그는 스마트스터디에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고 설명했다. 5분 지각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고 한다. “1분, 2분 늦을까봐, 그 붐비는 아침에 헐레벌떡 나오고, 스트레스 받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렇고 저희 직원들도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출퇴근 시간을 없앴습니다.”
휴가가 무제한이라는 것도 이 회사의 특징. 정말 무제한일까. 김 대표의 말에 따르면 정말 그렇다고 한다. 아무도 특정인이 얼마나 휴가를 쓰는지 신경쓰지 않고 휴가를 간 것 때문에 인사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 회사. 실제로 스마트스터디엔 1년에 한 달 이상 휴가를 쓰는 사람이 무척 많다고 한다. 한꺼번에 한달 이상을 모아서 자리를 비우는 사람도 있다고!
근무지도 자유다. 꼭 매일 아침 회사의 자기 자리에 와서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언제 어디서나 일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누구든 그렇게 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지난해 메르스가 창궐했던 시절엔 전 직원이 자택근무를 하기도 한 회사. 무려 4주 동안이나 말이다.
김민석 대표가 설명한 스타트업 문화는 이상적인 것이었다. 누구나 아마 그런 문화를 가진 회사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까 싶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 회사엔 파티션이 없고, 회의실에도 벽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김 대표는 자신의 회사의 근무 문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규칙을 만들지 않는다’
그는 이런 현상들은 사실 모두 결과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게 중요한 포인트다. 정책과 혜택으로 보이는 현상들은 그저 어떤 가치관으로 꾸준히 회사를 만들어간 결과물일 뿐이라는 점이다.
“어떤 생각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할까요”
김 대표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이렇게 대답을 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일견 수긍이 갔다.
“모든 사람에게는 목표가 있고 지금보다 더 잘하기를 원합니다. 어른답게 놀고 어른답게 일하게 하면 됩니다. 스타트업은 어차피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스타트업은 취업하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개개인의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스마트스터디는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둔다. 다만 회사 차원에서 강조하는 것은, ‘최대한 많이 소통을 하라!’
김민석 대표는 스타트업에게 회사는 일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회사 생활이 곧 삶이고 창업가와 직원들의 삶이 곧 회사 생활이라는 것. 그는 월급에 대해서도 다르게 생각한다고 했다. 월급은 회사가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직접 만들어낸 수익 중 일부를 가져가고 일부는 회사에게 돌려주는 게 회사의 급여 시스템이라고 봤다.
그의 발표가 끝나고 누군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회사의 이런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관리하나요?”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사실은 이런 반응이나 이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위험한 반응이라고 봅니다. 사람을 믿지 않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악용할 만한 사람을 뽑지 말아야 하는 거죠. 그리고 모두가 이런 문화를 만들어가고 지킨다면 악용하려고 하는 사람이 오히려 버텨내지 못하게 되고 스스로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실제로 그런 경험도 했구요.”
김 대표가 발표를 하기 전에 서울에서 부산으로 오는 KTX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 이야기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당연히 주제는 그의 발표 내용이었다.
“이게 정말 이상적이긴 한데, 정말 가능할까요. 현실적으로? 그게 궁금하네요.”
“어느날 갑자기 기존 조직이 우리도 이런 문화를 만들어보자 이렇게 해서 바꾸려고 하면 아마 안 될 겁니다. 스마트스터디도 그렇게 해서 만든 문화가 아니거든요. 그렇게 할 수도 없구요. 이렇게 하려면 직원을 뽑는, 채용 단계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채용을 잘 해야 하는 문제죠. 자율적으로 일하는 정도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움직이고 일을 만들어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다보면 만들어지는 문화인거죠.‘
그가 거듭 말했듯이, 이런 문화는 이렇게 만들어보자라고 시작해서 완성된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꾸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하는 가운데 일하는 최적의 스타일을 찾아내려고 하다보니 생겨난 결과일 뿐이다. 그래도 어느덧 상당히 이상적인 형태가 된 것은 분명하다. 기존 조직을 이렇게 바꾸려고 하면 너무 큰 잡음이 있을 것이고 그의 말처럼 채용 단계에서부터 다른 접근을 해야 하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규모가 점점 커져도 이런 문화가 지속될 수 있을까에는 여전히 의문이 따른다. 결국 회사가 계속 성장하다보면 이질적인 사람들이 들어 올 수밖에 없고, 특히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지점에 오게 되면 외부 인력이 대거 유입된다. 이 외부 인력들은 전혀 다른 문화에서 일했던 사람들이고 이들이 일정 규모 이상 되면 기존의 문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만에 하나 그렇지 않고 지금의 분위기를 계속 이어간다면 이 회사는 사내 문화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김 대표 역시 이런 점을 알기에 ‘만들어가는’ 스타트업문화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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