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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6 벤처신화 아이리버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연도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2002년인가 2003년쯤이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중인 친구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미국에서 대학생들이 가장 받기 원하는 선물이 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그의 대답이 ‘아이리버’였다. 그는 아이리버가 명품의 반열에 올랐다며 미국의 젊은 사람들이 (비싸서 쉽게 사지 못할 뿐이지) MP3 플레이어로 아이리버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그의 말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의 어떤 분위기를 반영한 것은 분명해보였다. 그 정도로 레인콤의 아이리버는 2000년대 초반의 특정 시기에 국내 뿐 아니라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 단순히 인기있는 제품이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멋진 휴대용 IT 기기의 상징이었다. 자랑스러운 한국산 제품이라고 해도 아주 심한 과장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뒤로 불과 1년이 지났을까. 어느날 갑자기 아이리버의 신화가 사라져버렸다! 이 현상은 해외에서 먼저 나타났다. 국내에선 아이리버가 한동안 버텼다. 하지만 해외엔 애플의 아이팟에 밀려 아이리버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아이리버 신화가 해외에서 25%를 넘나드는 MP3플레이어 점유율을 보이면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추락하면서 아이리버의 신화 역시 추락했다. 이후 아이리버는 국내에서도 삼성에 밀리고 애플에 고전했다. 그리고 이제는 MP3플레이어로서 아이리버를 말하는 사람이 없다.

 책 ‘거인과 싸우는 법’은 이런 아이리버의 신화와 몰락을 양덕준 레인콤 창업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다. 아이리버를 만든 레인콤의 창업자들 이야기와 그들의 꿈, 그들이 성공하는 과정을 저자가 분석한 것이 아니라 양덕준 사장에게 직접 들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이점이다. 아이리버가 몰락하게 된 원인과 과정 역시 양 사장에게 직접 들었다.

 저자는 ‘모두가 아이리버 신화에 취해 있을 때, 신화는 추락하고 있었다.(p.173)’며 아이리버 신화의 몰락을 기술하고 있다. 아이리버의 몰락 과정 중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내부의 다툼과 부의 분배 문제 등을 다룬 점도 신선하다. 양 사장과 함께 레인콤을 창업했던 창업자들을 인터뷰해 그들이 본 양 사장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이 책의 특장점이다. 한 명의 걸출한 CEO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 특히 동업자나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흔히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양 사장은 분명 한국이 낳은 이 시대의 위대한 CEO 중 한명일 것이다. 최소한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수긍할 것 같다. 하지만 위대한 인물도 약점이 있고, 무엇보다 그 약점이 두드러지는 시기를 맞이하면 자신의 장점으로 이를 커버할 수 없게 된다. 애플의 등장과 MP3플레이어 경쟁의 패러다임 변화는 아마 그런 시대적인 변화였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과거 아이리버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됐던 부분, 즉 MP3 플레이어 자체가 고도 기술 집약적인 사업이 아니라서 대기업이나 후발주자에게 쉽게 추월을 허용할 수 있는 분야였다는 것, 애플이 콘텐츠와 플랫폼, 기기를 하나로 묶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면서 판을 바꿔버렸다는 것 등에 대해선 자세히 기술하지 않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를 감안하고 있다고 본 것 같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10번 시도해 1번 성공했다면, 이는 9번 실패하고 1번 성공한 것이 아니라 그냥 1번 성공한 것이라고. 레인콤과 아이리버를 만든 양덕준 사장 역시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실패는 성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중간에 그만두는 것이다. 꿈의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책에 따르면 양덕준 사장은 여전히 아이리버를 되찾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레인콤 시절에는 기다림에 대해서 잘 몰랐다며 그 점을 가장 아쉬워했다고 한다. “김치의 맛은 양념의 맛이 아니라 저온에서 오랜 기간을 거쳐야 하는 숙성에서 나오는 건데, 과일로 친다면 잘 익어서 열매가 밖으로 벌어져서 나와야 하는데, 그걸 억지로 끄집어내서 으깬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다리지 못한 것이다. 레인콤때는. ” (p.327)

 그의 진단처럼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오히려 자기 자식같은 레인콤을 더 빨리 떠나지 못한 것이 원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저자나 주인공이 말하는 성공이나 실패의 원인이 뭐 대수랴. 어차피 인생에 답이 없고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어긋나 버린 기회들을 생각하며 아쉬워하기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자기 자신조차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스토리를 솔직하게 다뤘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취재 현장에서 만났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작은 거인 양덕준의 그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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