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물류대란’의 시대다. 거꾸로 보면 ‘물류혁명’의 기회가 왔다. 창고형 마트와 대형 아울렛이 엄청나게 들어서고 있는 한 켠에서는 무거운 짐을 들고 쇼핑하러 다니기 싫어 인터넷과 모바일로 쇼핑을 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이 늘어날수록 누군가 물건을 실어 옮겨야하기에 택배업은 날이 갈수록 성장세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잡다한 물건을 팔거나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물건을 만들어 팔고자 하는 개인들도 많다. 이들은 카페24 등의 서비스를 통해 판매업자로 변신하고 있다. 이런 소규모 판매상까지 가세하면서 물류 폭발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204회의 주인공 손민재 마이창고 대표는 이런 물류대란의 시대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기자-편집장-IT업계를 거쳐 공무원까지
처음 손민재 대표를 만났을 때부터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만만치 않은 스토리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기에 “상당히 사연이 있으신 분 같네요”라고 운을 뗐다. 손민재 대표 역시 자신의 살아온 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목적은 아니었을 거다. 식사나 하면서 새로 시작한 일에 대한 소식을 알리겠다는 의도가 당연히 우선이었을 터. 하지만 내가 ‘사연’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분위기는 초반 그렇게 흘러갔다.
“정부나 이런 쪽에서는 저를 잡지 분야나 미디어 전문가로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정작 언론계에서는 저를 IT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할 거에요. 막상 IT업계에서는 와인 전문가로 규정할 겁니다.”
그의 첫 마디는 이랬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방인의 삶을 살았다는 뜻일까. 그는 서울문화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우먼센스로 알려진 그 잡지사다. 그러다가 경향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문기자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적성에 안 맞더라구요.”
그는 다시 잡지로 돌아왔다. 이영혜 사장을 만나 디자인하우스에서 일했다. 워킹우먼 편집장의 그의 직함이었다. 그러던 중 1998년 2월 조모상을 당하게 된다. “종손이어서 장례식장을 계속 지키는데, 문득 잡지 일을 계속 하기가 싫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바로 그만 뒀어요.”
여기까지만 들어도 독특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IMF(국제통화기금) 한파가 한창이던 때에 그냥 문득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니. 다른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그는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1998년 1년 가까이 선물투자에 돈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결말이 흔히 그렇듯, 거의 전 재산은-그의 표현에 따르면 갖고 있던 모든 돈을-다 날렸다.
돈이 다 떨어졌으니 일을 다시 해야할 수밖에. 1999년 그는 쿠켄이라는 잡지의 편집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요리 잡지는 요리 전문가가 하는 게 좋을까요, 잡지를 잘 아는 사람이 맡는 게 좋을까요.”
그의 느닷없는 질문. 둘 다 잘하면 좋겠지. 하지만 그의 질문은 아마도 우선순위랄까, 아니 기본을 말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잡지를 잘 아는 사람이 만들어야 합니다. 요리 전문가는 요리 잡지에는 적합지 않아요.”
그가 이런 말을 한 까닭은 동양매직이 하는 잡지였던 쿠켄은 잡지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요리나 주방기기 등을 바탕으로 자본이 축적된 기반 위에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즉 출발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그 역시 들어가서 알게 된 것. 그는 결단이 빠른 것 같다. 문제가 있고 자신과 맞지 않음을 알고 바로 나와 이번에는 당시 창간한 지 얼마 안 된 파이낸셜뉴스의 문화부 학술팀장으로 일하게 된다. 회사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아웃소싱 방식으로 기사를 제작하던 그 언론사의 시스템에 맞춰 기사를 아웃소싱하는 일을 한 것.
2000년 11월에는 삼보컴퓨터, 조선일보, 코리아나화장품, 대우기술 등이 합작해 만든 여자와닷컴이라는 유명 여성포털에 들어간다. 여성포털이었지만 이 회사는 오프라인사업도 구상하고 있었고 손민재 대표는 오프라인사업본부장을 맡았다. 회사가 어려워진 뒤 총괄COO까지 됐지만 네이버가 장악한 포털 시장에서 차별점을 내세워 살아남기란 어려웠다. “2004년까지 있었어요. 그러다가 나와서 베스트레스토랑이라는 잡지사 발행인을 했는데, 집까지 날렸죠. 허허”
파란만장한 그의 스토리가 이쯤되면 숨을 좀 고를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았다. 롤러코스터 타듯 인생의 굴곡을 맛보면서 그는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가장 잘 하는게 뭘까.”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뭐든 잘 하는 게 한 가지라도 있고, 그것을 자신있게 내세우면 된다. 그 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잡지 만드는 것, 책 만드는 것을 제일 잘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2007년 동아일보로 갔죠. 빈티지 잡지를 제안했어요. 남성지 시장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게 저의 생각이었죠.”
그는 정치 기사는 한 줄도 안 쓰고, 오로지 경제 기사를 완전히 색다르게 쓰겠다고 다짐하고 동아일보로 갔다. 아니, 그게 그의 제안이었다. 독립된 회사로 분사해 나오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2008년 1월까지 동아일보에 있다가 나왔고 창업을 하기 전 그의 마지막 직장은 문화체육관광부였다. 국정홍보처가 폐지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국정의 홍보 기능을 총괄하게 되면서 국민들에게 정부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줄 매개체가 필요해졌다. 그는 그런 일을 맡을 적임자로 꼽혀 난데없는(?)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된 것. 2013년말까지 그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문화부에 몸을 담았지만 정작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물류혁신이 다가온다
“인터넷과 유통, 물류가 가져오는 혁신에 뭔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확신했어요. 사실 전 메신저 사업이 하고 싶었죠.”
실제로 그는 공직 생활을 하기 전 아이몽(I’m on)이라는 메신저를 만든 경험이 있다. 음성메신저가 뜰 거라고 생각했어요. “문자로 치지 말고 그냥 말로 하게 하자 그러면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이게 기본 컨셉이었어요.”
그는 급성장하는 인터넷 분야의 일을 하고 싶었다. 공직 생활 중에도 다음 일을 생각했다.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카페24와 같은 쇼핑몰 서비스 덕분에 누구나 인터넷 쇼핑몰을 차리기는 쉬워졌다. 택배도 엄청나게 진화했다. 그런데 그 중간 과정의 어려움은 별로 해결되지 않았다. 그의 문제 의식은 물류, 그 중에서도 작은 쇼핑몰을 운영하는 수많은 seller들의 고통에 초점이 모아졌다.
“작은 쇼핑몰을 창업했다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뭔지 아세요? 반품입니다. 반품 때문에 좌절하는 판매상들이 정말 많아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누구나 물건을 파는 것만 생각하거든요. 반품이 들어오는 부분은 생각도 못하죠. 그러다가 판매한 물건이 쏟아져 들어오면 당황하는 거죠. 물류창고요? 어림도 없죠. 그렇게 작은 쇼핑몰들이 어떻게 물류창고를 만들겠어요.”
창고를 소유하고 있는 이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창고를 소유하고 있는 이들의 어려움. 사실 나는 손민재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런 세계를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하여간 국토교통부 자료를 찾아봐도 전국적으로 창고 숫자는 4500여개에 달한다. 이들은 대형 화물 등을 보유한 화주들과 제곱미터 단위로 계약을 체결한다. 당연히 안정적인 거래를 선호할 터. 대량의 화물을 보유했거나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창고를 쓸 만한 화주를 선호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소규모 쇼핑몰 사업주들이 찾아오면 반가울 까닭이 없다. 화물 자체가 많지가 않기 때문에 여러 명의 화주와 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그러면 빈 공간이 많아지거나 불확실성이 커진다. 이래저래 피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큰 화주를 잡기 쉬운 것도 아니다. 창고는 그렇게 계속 빈 채로 남아있게 된다.
창고주와 셀러. 이들의 괴로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방안이 있지 않을까. 양쪽 다 행복할 수 있는. 그렇게 되면 판매상은 더욱 활성화되고, 셀러들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창고주들도 행복해진다. 그는 이 둘을 연결할 방법을 찾았다. 이름하여 마이창고다.
클라우드 창고 시스템 마이창고
손민재 대표는 ‘마이창고’를 2014년 8월20일에 설립했다. 마이창고는 소규모 쇼핑몰 사업자들의 물품을 모아서 창고주와 계약하는 방식이다. 하나하나는 규모가 작지만 모이면 사이즈가 커진다. 화주 입장에선 대규모 화주와 계약하는 것과 규모는 비슷해질 수 있다. 소규모 화주들은 안정적으로 화물 적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것을 관리할 통합 시스템이다.
“창고가 얼마나 전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잘은 모르지만 기본적인 전산 시스템은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들어가고 나가는 기록이라던가, 재고 수량이라던가, 그리고 이것을 주단위, 월단위 등으로 집계하는 시스템 정도? 그런데 손민재 대표는 “그런 기능을 갖추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마이창고의 플랫폼은 이런 창고들을 위한 솔루션이다. 하루 1만개 화물을 보유한 화주나 100개짜리 화물을 보유한 100명의 화주나 결국 숫자로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100명의 화주를 컨트롤하고 이들 각각의 화물을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전산시스템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결국 매니지먼트가 안돼 감당이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창고주가 일일이 그런 시스템을 만들긴 쉽지 않다.
창고주들은 창고 관리 프로그램에 대해 안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게 손 대표의 전언. 창고관리솔루션인 WMS는 대체로 어렵고 돈만 들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 항상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 정비를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기존 창고관리시스템의 주인은 화주였지, 창고주가 아니었다. 손 대표는 화주가 주인이 될 수 있는 창고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
“소호몰을 위한 물류 대행.” 손민재 대표는 마이창고의 업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했다. 소호몰들의 창고 공동구매나 창고프랜차이즈라고 볼 수도 있지만 본질은 물류 대행이라는 것. 그 말은 그냥 창고를 같이 이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존 3자 물류의 서비스들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류, 택배, 반품도 대행해주고, 컨설팅은 물론 전산 솔루션 호스팅 업무까지도 해 준다.
내년에는 하루 2만개의 물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면 연간 최대 500만개까지 물량이 늘어난다. “기존 창고와 화주들은 창고의 면적당 계산을 했지만 마이창고는 화물 개당 정산을 합니다. 공간을 파는 사업을 작업을 파는 사업으로 바꾼 거죠. 이렇게 함으로써 빈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고 단기 보관도 가능해졌습니다. 대형 화주의 틈새 화물도 받을 수 있죠.”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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