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프레스 조은형 대표는 정말 아이디어가 많은 듯 했다. 짧은 시간 만나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풀어냈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인 법. 아이디어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선 예상치 못한 도움과 상당히 힘든 결단이 필요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결국 모험과 도전의 세계로 간 것은 물론 창업자 본인의 강력한 의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경우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었다. 먼저 창업을 한 선배들의 눈빛. 직장인들과는 다른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었던 그는 자신도 기꺼이 모험을 택했다.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싶다
한동대학교 기계전자공학부 95학번으로 입학한 조은형은 대학 시절 전공보다 부전공에 더 관심이 많았고 그쪽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의 부전공은 전산학. 결국 그는 부전공인 전산학을 특기로 졸업후 2003년 6월 LG전자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입사하게 된다.
그는 처음에 당시 뜨고 있던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 사업부에서 펌웨어를 개발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정말 재밌었죠. 제가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작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랬고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던 것 같아요.”
2년 뒤에는 LG전자 특허센터로 옮겼다. 아이디어를 내놓고 토론하고 가능한지 여부를 점검하고 실제로 만들어보는 것을 좋아한 그의 모습을 보고 회사에서 부서를 바꿔줬다는 게 그의 설명. 그의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 그는 이 부서로 옮기고 9년을 더 일하게 된다.
변화의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평소 그는 여러 아이디어를 보고서로 만들어 타당성을 검증받고, 제품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특허를 출원하고, 유지관리를 하거나 소송 및 라이센싱 업무도 그의 몫이었다. 평소처럼 보고서를 만들던 그는 휴대용 키보드가 상당히 불편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휴대용 키보드엔 마우스가 따로 없쟎아요. 달려 있으면 제품이 커지죠. 달려 있어도 실제 사용하기엔 많이 불편하구요. 자판을 마우스처럼 쓸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해 회사에 보고서를 작성해 제시했다. 2012년의 일이었다. 당시에 그가 생각한 것은 광학터치패드. 키보드를 터치패드처럼 쓸 수 있게 키보드의 좌우 측면에서 손가락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적외선레이저를 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이디어는 회사에서 거절당했다. 센서가 너무 커서 제품을 만들었을 때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는 이 아이디어가 이렇게 그냥 사라지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애착이 가는 아이디어였다.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그 시점부터였을거에요. 자신을 돌아봤어요. 항상 아이디어를 보고서로 만들었지만 좀 답답했어요. 페이퍼워크만 하지 말고 진짜 제품을 만들어보고픈 생각이 든거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다 다룰 줄 알았던 그는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들어봤다. 혼자서 2012년 창업진흥원에 지원해 우수창업사례로 선정됐다. 3000만원 지원금을 받아 디자인과 설계 작업에도 들어갔다.
그들은 눈빛이 달랐다
그런데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본격적으로 창업에 모든 것을 걸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만들고 싶은 제품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썩히지 말고 직접 만들어보자는 수준이었다. “대학시절부터 창업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는 조은형.
그의 이런 방향성이 달라지게 된 1차적인 계기는 물론 광학키보드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결심하던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못지 않게 중요한 계기는 창업가들의 모임에서 나왔다.
“고벤처포럼에 갔어요. 거기서 창업을 했거나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표를 들었죠. 정말 놀랐어요.”
“뭐에 놀랐나요?”
“눈빛이 다르더라구요. 그들은 눈빛이 제가 회사를 다니면서 본 사람들하고 달랐어요. 열기도 대단했죠. 저는 그 전에는 한번도 그런 열기를 느껴본 적이 없었거든요. 열기에 완전히 압도됐어요. 그런 사람들하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구요.”
그는 창업가들의 면면에 또 한 번 놀랐다. “뭔가 대단한 백그라운드가 있거나 학벌이 있거나 엄청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창업을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제가 창업을 염두에 두고 회사생활을 한 게 아니어서 그런지 깊이 그쪽의 정보를 알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었겠죠. 그런데 어쨌든 전혀 그렇지 않더라구요. 그전까지는 ‘나같은 사람이 무슨 창업을 하냐’ 이런 생각도 좀 있었는데 그들을 보면서 내가 못한 게 아니라 안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런 결론을 내렸죠.“
2014년 6월. 조은형은 회사를 나와 새로운 자신의 일을 시작했다. 회사명은 이노프레소. Innovation과 Espresso의 결합이 만든 조어다. 기술(이노베이션)과 감성(에스프레소)의 조합이라는 뜻이라는 게 그의 설명. 기술혁신을 통해 감성을 움직이는 기업이 되겠다는 기업 철학 담겼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혼자서 시제품을 만들어보는 등 고군분투하던 그는 올초 최초의 투자자를 만나게 된다. 담담사무소의 양시호 대표를 만나 사업에 대한 조언을 구하던 중 뜻밖에 엔젤투자를 하기로 한다. 디자인 회사인 담담사무소는 투자 뿐 아니라 기술지원 및 브랜드 구축 작업도 함께 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브랜드 모키(Moky)가 탄생했다.
“저는 그냥 모션키보드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이를 모키라는 브랜드로 만들자고 제안을 해 주셨죠.” LG전자 협력사인 Go2Units의 도움도 받았다. 디자인전문인 이 회사는 모키의 디자인을 도왔다.
모키는 휴대용 키보드다. 다만 다른 점은 키보드 자판 자체가 마우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센서를 터치하면 자판 기능이 마우스 기능으로 바뀐다. 자판 위를 손가락으로 쓸면 마우스처럼 화살표가 움직인다. 마우스에서 키보드로 자유자재로 기능이 바뀔 수도 있고 고정해서 쓸 수도 있다. 마우스 때문에 휴대용 키보드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겨냥한 일종의 틈새 시장을 노린 제품이다.
예비 소비자들의 반응은 좋다. 3만 달러의 펀딩을 계획하고 인디고고(INDIEGOGO)에 올렸는데 1주일만에 170%를 달성했다. IT 국내 최대 컨퍼런스인 월드IT쇼(WIS)에 제품을 선보여 관람객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준 모키는 이대로 제품이 출시되면 특히 여성들의 관심을 끌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시제품을 사용해본 바로는 아직까지는 손가락의 움직임 인식에서 약간의 시차가 발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가적인 펀딩을 통해서 제품 양산을 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판매를 하는 게 이 회사의 첫 번째 계획.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판매망을 확보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정이다. 물론 그에 앞서 제품을 더 작고 예쁘게, 그리고 터치패드마우스처럼 편하게 쓸 수 있게 고도화하는 작업이 우선되야 할 것 같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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