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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0 7년 만에 돌아온 전제완 사장 17

올초 유아짱(www.uajjang.com)을 창업하면서 2002년 12월 이후 벤처계에 복귀한 전제완 사장은 1999년 프리챌을 창업해 전국에 프리챌 커뮤니티 열풍을 불러일으킨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전 사장은 최근 복귀와 함께 자신의 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uaboss )도 만들었는데, 미니홈피를 통해 다시 '자유인'으로 복귀하게 된 소감과 다짐,과거 이야기 등을 비교적 자세히 풀어놓고 있다.그에 대해선 그의 홈피를 참고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겠지만,한때 인터넷 업계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에 대해 나름대로 제3자 입장에서 정리를 한번 해보는 것도 괜챦을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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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의 전제완 사장의 모습.강남 사무실에서>

삼성그룹의 엘리트 사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83학번인 전 사장은 1989년 삼성물산 인사팀에 입사해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이다.전 사장은 1991년 삼성그룹의 인사정보시스템 개발 업무에 투입돼 94년까지 이 일을 맡아서 하게 된다.

당시 그가 이 일을 맡아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인사과에서 일하던 시절 인사 업무처리가 비효율적으로 되는 것을 보고 독학으로 컴퓨터를 공부했기 때문이다.그는 4년간 이 업무를 마치고 제1회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으로 1년간 지역전문가로 파견되기에 이르른다.지금도 그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회상하는 때다.

40여일동안 미국 40개주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고,오레곤주에서 공부도 한 그는 당시 실리콘밸리에 대한 투자가 진행되던 미국의 현실에 깊은 인상을 받고 큰 자극과 도전을 받은 것 같다.(그에 의하면 이때가 인생이 바뀐 시점이라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 3년 정도 삼성에서 더 근무했지만 대기업의 구조에서 탈피해 자유로운 생활을 동경했던 전 사장은 '자유와 도전'이라는 두가지 가치만 들고 미련없이 삼성을 그만뒀다.

자유와 도전정신으로 프리챌 창업
그가 1999년 4월 15일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한 프리챌((주)자유와도전)은 다음,네이버 등 다른 포털이나 이미 당시 국내 최대 인터넷사이트였던 야후코리아에 비해 뒤늦게 출발했지만 확실한 차별점을 갖고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인간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인터넷 상의 공간을 생각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쇼핑 섹션 바이챌, 금융 및 증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찰닷컴, 게임업체 드림챌과 조이챌, 디자인 회사 인디챌 등 그가 프리챌 설립후 확장해 나간 사업들은 이후 인터넷기업들의 모델이 될 만큼 중요한 역할들을 했었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꿈이었던 전제완 사장은 프리챌을 통해 그 꿈을 실현하고자 했다. 프리챌에서 강력한 커뮤니티를 구축한 것은 그런 그의 꿈을 위한 1단계였던 것이다. 커뮤니티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보급하고 그 플랫폼을 통해서 전 세계에서 누구나 자신들의 언어로 접속해 사용하는,그런 모델을 꿈꿨다고 한다.때문에 그는 다음이나 네이버 등 포털업체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봤고,독자적인 모델을 구축하려고 애썼다.

프리챌 돌풍
프리챌은 당시 대학생을 주축으로 한 젊은 층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설립 2년만에 회원 1000만명을 끌어모아 야후,다음과 함께 포털 빅3로 거론될 정도로 성장을 했다.

소프트웨어 업체의 경영자로서 그는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으로서 유료화를 생각했던 것 같다.사용자가 최소한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필수적인 수순이었겠지만 2002년 하반기 당시엔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었다.인터넷은 전부다 공짜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절이었기에 프리챌의 새로운 시도가 미칠 영향에 다들 주목했던 것이다.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40% 이상의 회원들이 유료화에도 불구하고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전 사장은 서비스의 유료화 이후 글로벌화 및 전혀 새로운 개념의 SNS,소프트웨어 제공 등으로 서비스의 선순환을 유도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구속과 7년의 잠적
하지만 이런 모든 과정은 2002년 12월3일 오전 전제완 사장이 주식대금 가장납입 혐의로 전격 체포되면서 모두 끝나 버렸다.

그가 꿈을 안고 세웠고,현재 NHN에 있는 조수용 본부장,오승택 레드덕 대표 등 그가 직접 뽑은 최고의 인재들이 그가 구속된 이후 차례로 프리챌을 떠나게 된다.창업자가 구속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선장을 잃은 프리챌과 프리챌홀딩스 등은 창업 초기의 정신을 모두 상실하고 매각과 부도 등을 거치면서 지금은 완전히 다른 회사로 변했다.

결국 긴급체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가장납입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이미 그는 2년의 옥살이와 회사 부채를 개인이 떠안은 것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됐다.

경제적인 파산과 구속이라는 엄청난 일은 그를 이후 6년이 넘는 기간동안 조용히 지낼 수 밖에 없게 했다.2004년 12월에 출소한 이후에도 그는 여러차례 재기를 모색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한다.

텔미정보통신으로 복귀 시도
그는 2007년 텔미정보통신의 전문경영인으로 근무하면서 클릭질이라는 서비스를 개발해 오픈했다.그로서는 출소후 2년반만에 시도한 복귀전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전문경영인의 영역은 한계가 있었다.뿐만 아니라 오너와의 의견 충돌로 인해 그가 계획됐던 대로 일은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봄 그는 이 회사를 떠났고 그가 떠난 후 텔미정보통신은 폐업처리됐다.모처럼 잡은 기회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신분 회복과 유아짱 오픈
그는 2월20일을 기점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신분으로 회복됐다.그 동안 그가 대표이사로서 떠안았던 부채 등이 해결되지 않아 결국 파산 신청을 했고 그것이 20일로 최종 끝난 것이다.

최근에는 유난희 대표와 함께 유아짱의 공동 대표이사로 취임도 했다.그가 이렇게 외부에 공식적으로 대표이사로 재등장하는 것은 2002년 12월 이후 햇수로 7년만의 일이다.

그가 대표이사로 취임하는 시점에 콘텐츠 전문투자사인 베넥스인베스트먼트로부터 1억원을 투자받기로 계약을 했다.적은 돈이지만 그에겐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이 어려운 시기에,과거 큰 실패를 경험했던 그에게 다시 온 기회이기에 소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가장납입 부분응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실추됐던 명예 일부분을 회복헀다.하지만 대박의 문턱에서 좌절한 벤처기업인이라는 딱지에서는 아직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그가 결국 그의 명예를 온전하게 회복할 길은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하는 길 뿐일 것이다.

이를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는 듯,그의 미니홈피를 들어가보면 과거에 대한 담담한 정리와 함꼐 새로운 결의와 의지로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그가 성공을 시도하다 좌절한 숱한 다른 벤처인들과 같은 길을 갈지,두번째로 인터넷으로 대박을 일궈내는 희귀한 사례의 주인공이 될지는 조만간 밝혀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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