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을 하든 못하든 우리는 살면서 정말 온갖 것을 거래한다.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 친구 숙제를 해주는 대신 딱지를 받았다던가, 중학교 때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고 드래곤볼 만화책을 빌려봤다던가 하는 사소한 일상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마찬가지다. 다만 인터넷이 발달하고 모바일이 일상화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주변 지인 수준을 넘어서 거래 상대방을 보다 광범위하게 찾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개인이 제공할 수 있는 일상의 다양한 서비스(번역, 디자인, 심지어 고민들어주기 등)를 연결해주는 사이트도 많이 등장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오투잡이 이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자신이 뭘 제공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이들에게 가이드 역할까지 한다는 것이다. 즉, 직접 시장을 창출해나가는 기능이 있다. 그 외에도 차별점이 있지만 이것은 글을 읽으면서 찾아보시길. 한국의 스타트업 일백여든번째 주인공은 오투잡 최병욱 대표다.
◆일찌감치 겪은 시행착오
학생시절 최 대표는 음악을 사랑했다. 음악을 좋아하고, 예술이 하고 싶어서 예술대학에 갔다고 한다. 하지만 웬걸, 계속 할 자신이 없었다. 막상 그 분야에 가보니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동안 방황도 하고 고민도 했던 그는 제대를 한 뒤 정말 우연처럼 창업의 세계에 들어오게 된다.
“친구의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하던 도중 쿠폰을 싸게 팔면 돈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들 좋은 생각이라고 했죠. 그래서 음식점, 매장 등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쿠폰을 할인판매하는 일을 준비했어요.”
2009년의 일이었다. 아직 소셜커머스가 국내에서 본격화되기 전이었다. 그런데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사업의 과정은 더디기만 했다.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이 해는 훌쩍 넘어가고 티켓몬스터를 비롯해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준비가 부족했음을 자인할 수 밖에 없었다. 계약을 맺으러 매장을 다녔지만 이미 한발 앞선데다 막강한 영업력을 갖춘 소셜커머스업체들이 이미 시장을 장악한 뒤였다. 결국 그의 첫 창업 시도는 시작하자마자 끝나고 말았다.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창업에 도전했다. 이번엔 ‘북장터’라는 중고책 거래 사이트. 자신의 대학생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전공 서적이 정말 비싸더라구요. 자기가 벌어서 책을 사야 하는 학생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생각이 비슷하면 다 본 전공서적을 싸게 팔면 서로 이득이 될 거라고 본거죠. 주변에 보니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거래하는 사이트는 아무도 안 만드는 거에요. 제가 스스로 이건 너무 불편하다 싶어서 직접 사이트를 만들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북장터는 제법 번창했다. 수 만권의 중고 전공서적이 등록되고 거래가 늘었다. 경진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고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도 받았다. 좋은 아이디어라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북장터의 교훈
축적된 DB와 늘어나는 거래. 커머스사업 활성화의 이상적인 조건을 갖췄지만 문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돈을 벌려면 결제 기능을 붙여야 했고 에스크로, 고객응대시스템, 콜센터, 판매자 관리, 환불 등 다양한 부가 기능이 필요했다. 그는 “결제 기능을 붙이면 사용자가 줄어 학생들이 간편하게 누구나 어디서나 전공서적을 싸게 사게 하겠다는 본래 목적이 훼손된다고 생각했다”며 “반면 결제기능이 없으니 일부 광고 외에는 돈을 벌 방법이 없어 사용자는 늘어나는데 관리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딜레마에 빠진 것도 맞지만, 본격적으로 사업을 할 수 없거나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닐까. 갖춰야 할 게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거꾸로 보면 답이 분명하기도 했다. 어쨌든 당시에 그는 답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 사이트를 그대로 운영하고 있지만 비영리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즉, 대학생들의 전공서적 거래 사이트로 남겨둔 것이다. 대학생들은 북장터에서 정보를 확인하고 학교에서 만나 직접 물건을 확인하고 거래를 하기 때문에 사이트는 정보창구의 역할만 할 뿐 결제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경험을 하면서 사업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감을 익히지 않았을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경험으로 배우면서 한 발씩 더 나가는 게 그의 창업 과정의 특징.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3년 1월 오투잡을 창업했다.
오투잡의 아이디어는 다양한 재능거래에 대한 관찰에서 나왔다. “인터넷 카페같은 곳에서 '5,000원에 모닝콜 해드립니다', '5,000원에 포토샵 해드립니다' 등의 글들이 올라오고 그것이 거래되는 것을 봤어요. 실물이 아닌 이런 무형의 서비스도 웹 사이트로 만들어서 '신뢰성 있는 중계역할을 해주면 좀 더 안전하게 거래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게 됐죠.”
그는 단순 거래 사이트에 그치지 않도록 여기에 하나의 비전을 붙였다. ‘나의 두 번째 직업’. 그래서 이름이 오투잡(O two job)이다. “하기 싫은, 시간 때우는 직장 일이 아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고, 그것이 직장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꿈을 갖게돼 오투잡을 시작했습니다.“
◆잘 하는 일로 돈도 벌 수 있는 세상.
최병욱 대표는 오투잡을 시작하면서 한 가지 원칙을 분명하게 했다. 수익모델이 있는 사업을 하겠다는 것. “힘들게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확실하게 수익이 나는 일을 하자고 했어요. 북장터를 하면서 얻은 교훈인 셈이죠.”
기존에도 개인의 여러 가지 재능을 거래할 수 있는 창구는 존재했다. 대신 번역을 해 준다던가, 교정을 봐 준다던가, 글을 써 준다던가, 포토샵, PPT 자료 등을 대신 만들어주는 일 등이 그것이다. 오투잡이 이런 기존의 창구와 다른 점은 판매자에 대한 깐깐한 검증 절차를 거친다는 점과 결제를 편리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실물거래 오픈마켓으로 지마켓이 있다면 서비스거래엔 오투잡이 있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
최 대표가 세운 서비스 철학은 세 가지. (1)웹 사이트가 단순해도 좋으니 최대한 직관적으로 만든다. (2)오투잡과 판매자, 구매자간 신뢰구축이 최우선. (3)소비자 의견을 즉시즉시 반영한다.
특히 그는 재능을 거래하는데 판매자에 대한 신뢰를 검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이를 위해 프로필 인증제도를 구축했다. 예를 들어 번역 판매자라면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졸업’, ‘토익 985점’, ‘책 번역 경험’ 등의 이력을 증서로 보내주면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런 검증 절차로 인해 등록요청된 판매건의 절반만 승인을 받아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안전한 거래를 위해 에스크로 서비스도 제공한다. 거래와 각종 문의, 주문 사항 등을 문자로 알려주는 등 북장터에서 하지 않았던 편의와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창업한 지 2년여만에 현재 월 거래 건수는 3000건을 넘어섰고, 거래액은 1억원을 돌파했다. 디자인 전공인 한 회원은 오투잡 사이트를 통해 로고제작으로 매월 200만원 가량의 수익을 내는 등 성공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직장이 있는 사람들은 오투잡을 두 번째 직장으로, 대학생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수익을 벌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들겠습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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