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이란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은 무엇일까. 대다수 사람들은 어두침침한 시내 뒷골목에서 도드라지게 반짝거리는 네온사인,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 빨려 들어가듯 건물 속으로 사라지는 커플들, 몇날 며칠 환기를 시켜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방 구석구석 짙게 배인 담배 연기 등을 떠올릴 것이다.
한국에서 모텔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전후다. 올림픽을 앞두고 숙박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는 중소형 숙박업소 설립을 적극 유도했다. 현존하는 모텔 가운데 절반은 이 시기에 생겨났다. 올림픽 이후 대다수 업소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일본에서 성행하던 ‘러브 호텔’을 벤치마킹했다. 중세 시대의 고성(固城)이나 이슬람 모스크를 닮은 건물이 등장하고 숙박이 아닌 대실 위주의 영업이 자리잡은 것도 이 시기다.
500만원에 인수한 다음카페가 야놀자닷컴의 시초
그랬던 모텔에도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변화가 생겼다. 호텔처럼 인터넷·모바일로 예약을 할 수 있게 됐다. 단순히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아니라 파자마 파티를 하고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는 ‘여가 공간’으로 역할이 확대됐다. 지상파 TV에서도 광고를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이같은 변화를 이끌어낸 공(功)의 일부분은 이 사람에게 돌려도 될 것 같다. 바로 숙박 예약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업체 야놀자의 이수진 대표(사진)다. 2005년 처음 온라인으로 전국의 모텔 정보를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모바일 바로 예약, 프랜차이즈 설립, 종사자 교육 등 사업을 다각화했다. 음지에 머물러 있던 모텔을 양지로 끌어내는데 10년 넘게 매진해왔다.
그가 처음 모텔업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군복무를 마친 후 서울로 올라와 ‘종잣돈’을 마련하려던 그에게 모텔은 숙식을 해결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장소였다. 그는 “모텔 청소부터 시작해 매니저, 지배인까지 다 했다”며 “4년 넘게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고객들의 불만사항과 개선점 등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은 모텔 사업자 대상 B2B 사업이었다. 당시 이 대표는 모텔 종사자 1만여명이 가입한 다음 카페의 운영자였다. 자연스럽게 그에게 정보를 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는 “구인구직, 소모품 구입 등 종사자 입장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컨설팅 사업을 해보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2005년 2월 HMP시너지(호텔, 모텔, 펜션의 약자다)란 사이트를 열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매출이 나오지 않았다. 카페 운영자에게 무료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고객이 된다는 보장은 없었던 것.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모텔 정보를 제공하는 B2C 사업에 뛰어든 것은 그 이후다. 우연한 기회에 2005년 모텔 사용자들이 후기 등을 공유하는 카페를 500만원 주고 인수했다. 카페를 통해 모텔 가격, 약도, 사진, 후기 등을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B2B 사업은 주로 비품을 싸게 파는 등 지출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 실제 사업자들은 더 많은 사람이 오게 만들어 매출을 늘리는 데 훨씬 관심이 많더라고요. 저희를 통하면 매출이 늘어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제휴 업소도 빠르게 늘었죠.”
‘숙박업 바꿔야 살아남는다…리스타트’ 선포
2007년 5월 정식으로 야놀자닷컴을 열었다. 그해부터 바로 손익분기점(BEP)을 맞췄고 매년 50~100%씩 성장했다. 스타트업으로는 특이하게 창업 10주년인 지난해까지 단 한차례도 투자를 받지 않았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제도도 없었고 회사에 대한 ‘색안경’도 여전했다”며 “2010년대 이후 스타트업이 늘면서 투자 제안도 많이 받았지만 매년 영업이익이 나는 상황에서 굳이 투자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7월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로부터 100억원, 이어 올해 4월 SL인베스트먼트에서 150억원을 투자받았다. 2019년을 목표로 상장 준비도 하고 있다.
야놀자 자체의 기업가치는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러브 호텔’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소형 숙박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이같은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사업자 역시 이 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야놀자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3월 회사 만 10년을 맞아 전 사원과 가족들, 거래처 관계자 등 800여분을 모셔놓고 ‘리스타트(restart)’ 선포식을 했어요. 지난 10년간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해 살아남았다면 앞으로는 숙박업 자체를 변화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장기적으로 필요한 과제 세 가지를 제시했어요. 시설 현대화와 매뉴얼 구축,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그것입니다.”
시설 현대화는 단순히 ‘고급화’가 아니다. 사랑을 나누는 장소 뿐 아니라 출장자, 여행자들도 부담없이 갈 수 있는 장소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다음으로 운영 매뉴얼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사업자들에게 교육함으로써 고객의 불편함을 최소화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숙박산업을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내·외국인 관광객을 잡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MRO·객실관리시스템·서비스교육 등 사업 다각화
이같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테헤란로의 야놀자 본사 2층에는 좋은숙박연구소가 있다. 이곳에선 모텔 창업자를 위한 교육은 물론 운영에 필요한 마케팅, 서비스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룸메이드 교육을 진행해 취업 알선도 해주고 있다. 창업과정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료다. 쇼룸을 만들어 모텔 리모델링, 리노베이션 컨설팅도 병행하고 있다. 숙박업소 운영에 필요한 각종 소모품 공급 사업(MRO)도 한다.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사물인터넷(IoT) 객실관리 시스템도 직접 개발했다. IoT 센서 개발업체를 인수해 솔루션을 만들어 서울 노량진의 직영점(코텔)에서 지속적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객실에 센서를 부착해 도어락 자동 개폐, 전원 차단 등이 가능하다. 객실에서 전화를 하지 않고도 비품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 대표는 “직원이 적은 모텔은 호텔처럼 바로바로 응대를 할 수 없다”며 “이같은 시스템을 통해 고객의 불편을 줄이고 사업자의 비용은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솔루션은 무상으로 진행하고 하드웨어는 판매하는 방식이다.
사업 다각화로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사업으로 인한 매출의 비중이 늘고 있다. 2014년 매출 174억원 가운데 광고료 수입은 105억원으로 60% 가량을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299억원 중 148억원으로 절반 이하(49.5%)였다. 이 대표는 “온라인을 통한 예약이 대중화되면서 온라인 매출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면서도 “오프라인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만큼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매출 비율이 6대 4 정도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전국의 모텔은 3만개, 객실 수는 90만개 이상이다. 시장 규모는 14조4000억원으로 특급·관광호텔(3조6000억원)의 세 배 이상이다. 하지만 모텔의 ‘음침한’ 이미지 개선은 이제 출발점이다. 이 대표는 “여행, 비즈니스 등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수록 모텔도 바뀌어갈 것”이라며 “그 변화를 야놀자가 주도한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목표”라고 강조했다.
by lees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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