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갈 때면 새삼 느끼는 게 있다. ‘한국에는 참 싸고 좋은 옷이 많구나.’ 그런데 한국의 싸고 질 좋은 옷들이 해외에선 막상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스토레츠를 만든 재이 김보용 대표의 문제 의식은 여기서 시작됐다. ‘내가 그 일을 해야겠다로 발전한 그의 아이디어는 동대문표 의류와 자체 제작한 패션 상품을 해외에 판매하는 여성 의류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면서 실행됐다.


 재이의 온라인 여성 의류 쇼핑몰 '스토레츠'는 최신 유행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 빠른 상품 회전율,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 유럽, 중동 등에서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성장했다. 올리비아 홀트, 제이미 정 등 할리우드 스타나 유명 패션 블로거들이 스토레츠 제품을 입은 사진을 올리면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1-2년새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스토레츠가 한국의 스타트업 243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왜 한국엔 ZARA 같은 브랜드가 없을까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지만 그는 대학 재학 중에도 전공에서 주로 다루던 국내외 정치 이슈나 정치 이론보다는 사업에 더 관심이 많았다. 특히 옷이나 패션 쪽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 재미를 들였다고 한다. 사실 취미생활 수준이었을 수 있는데, 이걸 좀 격하게 한 것 같다. “대학 재학 중에 동대문에서 양말을 사다가 인터넷에서 판매하기도 했는데 엄청 잘 팔렸어요. 그것 때문에 옥션 파워셀러가 되기도 했죠.”


 하여간 인터넷 쇼핑몰에서 다양한 의류 상품을 이것저것 팔면서 의류 판매에 대한 을 익혔고, 결국 전공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택한 김보용. 2000년대 중반 훌쩍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영국 유학 중에도 한국에서 하던 습관대로 한국 쇼핑몰 등에서 옷을 사입었다고 한다. “지마켓이나 동대문표 옷을 주로 입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사서 입다가 가져간 것도 있고, 해외에서도 한국 쇼핑몰에서 주문해다가 입었던 것도 있구요.”

 그런데 그냥 편하게 그의 취향대로 사 입은 옷에 대해 현지 외국인들의 반응이 좋았다. “이런 옷을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냥 동대문표 옷인데도 말이죠. 그만큼 예쁘고,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의 반응이었어요. 그럴 때마다 한국 패션 의류의 경쟁력을 실감했어요. 그런데 왜 한국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중화된 브랜드가 없을까이런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그는 영국 백화점에서 인턴을 하기도 하고 현지 패션 브랜드를 접할 수 있는 곳에서 틈틈이 경험을 쌓았다. “영국의 브라운스라고 하는 패션 브랜드에서 인터넷 사업부 인턴을 했어요. 해외에서 통하고 글로벌 소비자들을 겨냥한 온라인샵의 초기 상태를 경험해 본 셈이 됐죠.”


 이런 경험을 하면서 그가 자신이 생각했던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한국의 패션 상품들, 특히 롱테일이라고 불릴 수 있는 그런 수많은 브랜드들이 좀 더 큰 시장에 나가지 못한 이유는 기업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아닐까.


 “기업화가 안 된 곳이 많았어요. 패션사업을 글로벌하게 더 키우려는 그런 시도가 적었던 거죠. 하지만 누군가 제대로 시도를 한다면 충분히 해 볼만한 일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목표를 쇼핑몰 창업으로 두고 귀국한 그는 우선 의류 업계의 공급망을 제대로 알기 위해 벤더 업체에 취직했다. 해외 명품 브랜드를 구매하는 업체에도 취직하기도 했다. 패션 상품의 주문부터 제작, 유통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어느 정도 배웠다고 생각한 그는 2011년 인터넷쇼핑몰 스토레츠를 열었다. 동대문 시장에서 물건을 떼 와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사막 한 가운데 옷 가게를 낸 것 같았다


기업화에 대한 고민은 했지만, 그 역시 그쪽에 경험은 없었다. 일단 당면 과제는 인터넷에서 한국의 경쟁력있는 동대문표 의류 상품을 좋은 가격에,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는 것.

처음엔 개인사업자로 시작했다. 기존에 인터넷 쇼핑몰 파워 셀러 경험을 하면서 익히 해 본 일이었다. 그런데 옷을 팔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쇼핑몰을 열면 사람들이 찾아와 옷을 살 것 같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 매장을 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스토레츠는 결국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의류 상품을 판매하는 게 주된 업이었고, 1차적인 관문은 좋은 상품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었고 이를 잘 알리는 것이었다. 해외 소비자들이 찾는 상품이 많이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 사이트는 활성화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좋은 상품의 확보 못지 않게 해외 소비자들의 눈높에 맞춘 UI나 결제 시스템, 편리한 구매 방식 등이 선결돼야 했다.


 좋은 상품을 확보하는 문제는 자신있었다고 했다. 알리는 것도 하면 되지하는 의식이 있었다. 그런데 결제 문제는 처음부터 이 회사를 난관에 빠뜨렸다.

해외에 있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옷을 팔아야 했는데 당시 한국의 결제 시스템 문제로 외국인이 한국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는 것 자체가 어려웠어요. 결제가 안되는 경우도 허다했고 액티브엑스 등 복잡한 프로그램을 강요해서 구매를 포기하는 사례도 많았죠. 정말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말도 못할 만큼 고생을 했습니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2013년 한국에서 (대통령의 발언 등으로도 물론 화제가 됐지만) 논란이 됐던 액티브엑스 문제가 떠올랐다. 해외에서 물건을 사려고 해도 결제가 안되는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 대한 논란이었다.


 다행히 결제 문제가 조금씩 해결됐다. 결제문제가 개선되면서 해외 소비자들에 대한 마케팅도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업이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역시 법인화를 하면서부터였다. 본엔젤스 등 외부 투자자들의 조언을 듣고 협업을 하면서 사업이 크게 팽창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키운다


 “2015년에 들어와서 법인으로 전환했어요. 사업을 시작하고 4년이나 지나서야 그렇게 한거죠. 법인으로 전환하고 본엔젤스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뒤 본격적으로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판매량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동대문표 옷이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이었다. 하지만 법인화를 전후해 상품의 구성이 다양해졌다. 스토레츠가 지향하는 것은 개성 강한 브랜드’. 한국의 자라(ZARA) 수준에 그치지 않겠다는 게 김보용 대표의 포부다. 즉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와 명품 스타일을 대중화시켜 빠른 시간 내에 상품을 선보이고 회전율을 높인 SPA 브랜드, 딱 그 중간 지점을 겨냥했다.


 “명품 브랜드는 고가라 부담스럽고, SPA 브랜드는 뭐랄까. 너무 유행만 좇는 스타일인 것 같아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가 어렵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고 독특하면서도 예쁜 스타일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를 구축하려고 합니다.”


 결국은 동대문표 옷 만으로는 안된다. 직접 디자인한 옷의 비중을 늘리면서 스토레츠를 자체 브랜드로 키우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다.


 올들어 지난해 상반기 대비 스토레츠 방문자 수는 5.5배 늘었고, 페이지뷰는 718%나 증가했다. 매출은 540% 증가했다. 2분기만 놓고 보면 실적이 더 좋다. 김 대표는 2분기엔 작년 2분기에 비해 매출이 60배 이상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대응하면서 자라나 H&M과 같은 기존의 SPA 브랜드보다 훨씬 더 개성 강한 소비자들을 충족할 수 있는 디자인에 승부를 걸고 있다. 좋은 옷을 싸게 만들어내는 동대문의 효율성과 김 대표의 감성이 만나 현재까지는 반응이 좋다. 김 대표는 처음엔 한국의 자라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우수한 패션을 알리는 대표 브랜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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