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선택이다. 매순간 열심을 다해 살더라도, 모든 결정적인 것은 선택의 순간에 온다. 단 하나의 선택지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선택이다. 학교를 진학하거나 전공을 선택하는 일도, 배우자를 만나고 직업을 결정하는 것도,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도, 모두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그 선택의 과정에서 결국,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신의 진짜 모습이 나오는 게 아닐까.
한국의 스타트업 이백마흔한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디디소프트 송경수 대표다. 그는 디디소프트 창업을 하기까지 참 굴곡이 많은 시간을 통과했다. 폭풍우에 굴하지 않고 키를 잡고 전진을 외치는 선장처럼, 그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거센 파도와 바람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93학번으로 입학한 송경수 대표는 대학 졸업 뒤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공과대학을 나왔지만 그가 간 곳은 인사팀이었다. 그 자신도 “상당히 의외였다”고 말했다. 인사팀은 통상 권력의 자리로 알려져 있지만 삼성의 인사팀에서 일개 사원이 할 수 있는 역할이나 권한은 거의 없었다. 4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는 회사를 나왔다.
뜻밖에 인사팀으로 가게 됐지만 이후 이 경력은 그를 계속 따라다녔다. 삼성을 나와서도 그가 가게 된 곳은 결국 다른 기업의 인사팀이었다. 2003년에는 당시 ‘뮤온라인’이라는 게임으로 상종가를 치고 있던(상장도 했던), 온라인게임업체 웹젠에 입사하게 된다.
삼성에 있으면서 좀 답답했던 그는 웹젠에서 ‘즐겁게 회사 생활을 했다’고 했다. 인사 기획이나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고 활기차게 일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점점 회사를 둘러싼 외부 환경이 악화되긴 했지만..
2007년말까지 웹젠에 있었던 그는 2008년 이후 소규모 광고대행사로 직장을 옮겼다. 일찌감치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었던 그에게 이해 아들이 태어나는 경사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일이 있었던 때 엄청난 사고가 따라왔다. “그해 세 살 어린 후배가 있었는데, 사기를 당했어요. 날린 금액이 수 억원에 달했으니까요. 구로동 쪽에 집이 있었는데 집도 날리고, 결국 있을 곳이 없어서 대전에 있는 부모님 댁에 내려가 있었어요.”
휴대폰도 해지하고 그는 6개월간 칩거를 했다고 한다. 사람에 대한 배신감, 자신에 대한 실망, 그리고 앞날, 특히 아들과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그가 세상에 다시 나온 것은 이듬해였다. 어쨌든 생계를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인사팀 일을 계속 해 왔으니 헤드헌팅업체를 차려서 영업을 하면 되겠다 싶더군요.”
헤드헌팅 일을 하려는 그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웹젠 시절 그를 채용했던 윤태중 유아짱 부사장이었다. 2009년 당시 전제완, 윤태중, 장규오 등 세 사람은 유아짱을 설립하고 채팅 플랫폼 서비스를 한창 기획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즉시 유아짱에 합류했지만, 이 생활 역시 오래 가지는 못했다. 유아짱이 어려워진 측면도 있지만 자신의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작더라도 내 일을 하자. 이게 당시 그의 판단이었다.
人間萬事 塞翁之馬
2011년 그는 헤드헌팅 업체를 차렸다. 삼성과 웹젠에서 인사 업무를 해 온 경험을 살렸다. 예전에 알던 후배들도 합류했다. 한동안 일은 꽤나 잘 됐다고 한다.
“일이 술술 잘 풀렸어요. 게임업계 쪽에 원래 인맥도 좀 있었고, 영업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죠. 유아짱 시절이나 예전 웹젠 시절에도 항상 늦게 까지 일을 하고 생활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게 일상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이 좀 생기더라구요.”
일찍이 닦아 놓은 인맥을 통해 영업 진행이 잘 되자 일은 마치 내버려둬도 굴러갈 것 같았다. 2012년에 접어들자 그는 투잡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사 일은 잘 되고 있었지만 과거 사기 사건으로 인한 빚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2013년 송 대표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수원대학교 주변)에 위치한 작은 치킨집을 인수, 직접 운영을 했다. 음식점 경영은 물론, 닭을 튀겨본 적도 없는 그가 치킨집 경영에 뛰어든 것. 헤드헌팅 일은 같이 창업을 했던 후배들에게 맡겼다.
헤드헌팅 일이 계속 유지가 되면서 치킨집까지 잘 된다면, 그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리고 경험이 없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치킨집도 잘 됐다! 심지어 동네 인기집으로 떠서 배달의 민족 등 주요 앱에서 항상 최상위에 노출되고 평점이 가장 높은 집으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어려움이 시작됐다.
“헤드헌팅이 계속 영업을 하면서 네트워크를 관리해야 했는데, 그게 전혀 안됐어요. 영업망이 무너지자, 일감이 없어졌죠. 저의 짧은 생각이 결국 헤드헌팅 사업을 망가뜨리게 된 거에요. 제가 일일이 직접 세심하게 챙겼어야 했는데 후배들에게만 맡겨두었던 것이 패착이었던 겁니다.”
결국 부업으로 시작했던 치킨집이 ‘본업’이 됐다. 부업으로서는 할 만 한 일이었지만 본업이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충분한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 그는 떡볶이와 곱창을 추가, 총 3가지 아이템을 판매하는 등 매출을 올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 과정에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본인이 직접 대부분의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조리도 하고 배달도 했다. 배달 도중 오토바이 사고로 새끼 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4개 모두 골절 되는 중상을 입기도 했고, 추운 겨울 기브스를 풀지도 않은 채 배달을 다니는 등 고충을 겪었다. 문제는 이런 고생이 아니었다. 치킨집은 아무리 고생을 해도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른 종류의 창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구로디지털단지 디디소프트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 회사 임직원들. 왼쪽 세 번째가 송경수 대표.>
매장관리 유무선 연동 플랫폼
자신이 치킨집 사장을 하면서 겪은 가장 큰 고충은, 너무 바쁘고 사람이 몰릴 때는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저녁에 주문이 몰릴 때는 정말 여기가 치킨집인지, 전산실인지 모를 정도였어요.” 그만큼 매출을 입력하고 계산하고 정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뜻.
고객이 계산을 하면 POS 단말기로 전송이 된 뒤 매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내부적으로 별도의 관리 프로그램에 입력을 해야 했다. 이걸 그때 그때 일일이 할 수 없으니 하루 영업을 마친 후에 몰아서 하곤 했는데 이러다보니 매출 누락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객이 계산을 했는데 이게 현금인지, 카드인지, 카드 거래를 한 뒤 취소를 했는지 안했는지, 가게 주인이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배달을 나가면 더욱 그랬다.
“고객들이 배달을 쉽게 주문하고 이용하기 편리한 서비스들은 많죠. 하지만 점주 입장에서 매장을 관리하고 고객에게 제때 쿠폰 등을 줄 수 있는 통합 서비스는 없습니다. 제가 해 봤으니 알 수 있는 거죠.”
그는 자신의 매장 경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점포를 관리하는 데 최적화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기획안을 들고 옛 유아짱 시절 선후배들에게 보여줬다. 사업화하면 충분히 수요가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 옛 후배들을 모으고, 디디소프트를 차렸다. 구로디지털단지에 사무실을 내고, 수원 봉담에서 하던 치킨집은 정리했다. 4년여만에 다시 IT업계로 돌아온 것이다.
송 대표의 구상은 매장 업주들을 위한 매장관리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것. 그가 몸소 겪었던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서도 정산을 위해 오랜 시간 매장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점, 그렇게 정산을 하고 나서도 실제 매출과 다른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 배달 나간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해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음식을 조리해 배달하기 쉽지 않다는 점, 너무 많은 다양한 앱과 각종 프로그램을 관리하기 힘들다는 점 등 점주들의 고충은 끝이 없었다.
디디소프트가 개발한 디디샵(DDSHOP)은 매장 관리 유무선 연동 플랫폼이다. 매장 내 상황을 배달 직원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고, 매장 관리 프로그램에 입력한 매출 등 각종 내역이 점주의 스마트폰에도 바로 전송된다. 모든 내역을 스마트폰에서 바로 알 수 있고, 매장 관리 프로그램에 입력과 동시에 공유되기 때문에 매출이 누락되거나 고된 하루 매출 정산 작업을 오랜 시간동안 별도로 할 필요도 없다.
매장 주인 입장에서는 매장 관리 프로그램만 디디샵으로 바꾸고 앱을 깔면 고객에게 쿠폰을 발송해주는 등 단골 고객을 관리하는 데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굳이 기존 배달앱과 다른 별도의 앱을 깔지 않고도 쿠폰 서비스 등을 문자를 통해 받을 수 있다. 물론 디디샵 앱을 깔면 자신이 자주 배달을 시키거나 이용하는 매장의 쿠폰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4,5년 전에도 모바일 매장 관리 프로그램이 나온 적이 있었다. 자영업자들을 겨냥한 서비스였는데, 대부분 너무 사용법이 복잡하거나 추가적인 학습을 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실패했다. 자영업자들의 입장에서 이들의 현실을 알지 못한 채 나온 서비스였기에 현실성이 떨어진 서비스가 많았다.
디디소프트의 디디샵은 이런 자영업자들의 매장 관리용 소프트웨어와 기존 배달앱을 결합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다만 B2B 형태로 매장 주인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익모델은 기존 매장 관리 프로그램처럼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 정산을 하는 방식과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주문이 들어왔을 때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이 있다. 두 가지 모델을 놓고 검토중이다. 이달 중 테스트를 거쳐 서비스가 본격화될 예정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치킨집 이런 거 하지 말고 헤드헌팅 일 만 계속 했으면 더 평탄하게 지내지 않았을까. 하지만 치킨집을 열지 않았으면 이런 사업 기회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겠죠. 사는 게 참 어찌 될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어딘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불편함과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걸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보람이 있습니다. 제가 잘 알고, 해결해 볼 수 있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는 건, 힘들어도 해볼 만한 일인 것 같아요.”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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