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에서 대략 한 달쯤 모자란 지난 2013년7월8일 고산 타이드인스티튜트 대표의 근황에 대해 블로그에서 다룬 적이 있다. http://limwonki.com/586 (2년 전 스토리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 글을 참고하시는게 좋을 것 같다) 그때 그가 새롭게 시작한 그의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를 나중에 다시 다루겠다고 약속(?)했었다. 이 약속 아닌 약속을 (혹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최근 고산 대표를 만나면서 생각이 났다.
당시 나는 그를 미완의 우주인으로 소개했었고, 그는 타이드인스티튜트라는 회사를 경영하며 창업가들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뭐랄까..내가 이 코너에서 기록하고 있는 스타트업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 나는 그를 게스트라는 이름으로 소개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뒤로 불과 2년이 지났지만 그는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사실 이미 그때부터 그런 변화가 시작됐지만 이것이 구체화돼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는 이 기간 동안 당시 그가 암시하는 듯 말했던 계획들을 하나씩 실행해나가고 있었다. 돕는 일을 그만두진 않았지만 자신 역시 직접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때도 무르익었다. 어느 덧 이백 회를 향해 치닫고 있는 한국의 스타트업 일백여든아홉 번째 주인공은 에이팀벤처스의 고산 대표다.
‘창업가의 시대’가 왔다
지나가는 말처럼 나는 그에게 ‘언제부터 창업을 생각했는지’ 물었다. 언제쯤부터 이런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고 행동에 옮겼는지 궁금해서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할 때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답변도 있었다.
뜻밖에도 그는 “창업을 하고픈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의외였다. “저는 창업이 아니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정책에 주로 관심이 있었으니까요.” 그의 답이 이어졌다.
이해가 갔다. 그는 ‘우주인’에 도전했던 사나이다. 지금도 여전하다. 그가 우주인에 도전했던 시절 과학기술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얘길 들었었다. 그래서 그는 케네디스쿨에 가서 공부를 했고 이후 과학기술에 국가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찾았다고 했다.
2011년에 그가 찾은 답 중의 하나는 창업지원이었다. 과학기술 분야의 창업에 대한 지원을 하자. 스타트업들의 초기 과정에서 아카데미나 컨퍼런스,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일을 해보자.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타이드인스티튜트(Tide Institute)였다.
뭔가를 시작하면 그로 인해 달라지는 일이 생긴다. 그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정책의 중요성에 일찌감치 주목했지만 타이드인스티튜트를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제는 창업가의 시대입니다.” 그의 말을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이랬다.
“예전에는, 특히 한국이 국가 주도로 발전을 하던 시대에는 관료의 시대였죠.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공무원들, 고위 관료들이 사실상 국가를 창업한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의 창업정신이 국가와 산업을 이끌어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제는 창업가의 시대가 됐습니다. 정책을 만드는 관료들이 아닌 창업가들이 세상을 바꾸고 국가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됐다는 걸 타이드를 하면서 알게 됐어요.”
그는 그래서 창업 지원도 보다 구체화하기로 했다. 팹랩(Fab Lab)을 만들었다. 제조업의 혁신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3D 프린터 등을 이용해 마음껏 시제품을 만들어보고 이를 통해 새로운 제조업에 도전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란 게 그의 기대였다. 그리고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갔다.
A Team Ventures
“그런데 생각보다 별로 제조업에서 창업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많지 않더라구요.”
약간 실망했을까. 지금은 제조업 분야의 창업 기업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 당시엔 분명 그랬다. 여전히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분야의 창업에 비해 절대적으로 수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좋은 설비를 갖춰놓고 별로 이용하는 곳이 없으니 안타까웠을 터.
“내가 직접 사용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실 느닷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본래부터 우주선을 만드는 일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했었다. 2013년 크리에이터블랩스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3D 프린터 개발 및 제조에 나서겠다고 했다. 팀도 꾸렸다. 그런데 팀 구성원 간 지향하는 바가 조금씩 달랐다. 결국 2014년 7월 팀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다. 회사 명도 ‘에이팀벤처스’로 개명했다.
3D 프린터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차원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3D 프린터는 이미 상당히 널리 퍼지고 있고 가격은 계속 낮아지고,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고가의 3D 프린터가 갖고 있는 장점을 살리면서 가격을 낮춰 대중화를 꾀하는 것. 그것이 에이팀벤처스가 하려는 것이었다.
에이팀벤처스는 지난해 이미 3D 프린터 시제품을 출시한 바 있다. 올 5월에는 첫 번째 제품인 크리에이터블D2를 내놓았다. 이 제품은 도면을 저장한 컴퓨터와 USB로 연결하거나 SD메모리카드를 끼우면 내장된 프로그램이 곧바로 파일을 읽어 출력하기 때문에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사용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3D프린터는 일반 프린터의 잉크 역할을 하는 필라멘트를 녹여 한 층씩 층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입체형상을 만들어간다. 때문에 층의 두께가 정밀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된다.
에이팀벤처스는 제품 품질을 유지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일부 인터넷 판매 저가 제품 중에는 50만원 안팎도 있지만 고산 대표는 100만원~200만원 사이의 가격 대에서 최상의 품질을 만들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또 무선랜(WiFi) 기능과 스마트폰과의 연동 앱(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3D프린터의 성능을 확장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
우주인의 꿈 2막 1장
3D프린터를 왜 만들까? 그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이미 시중에 많은 업체들이 만들고 있고 상당한 고가부터 아주 저렴한 저가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라인업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면, 왜 굳이 에이팀벤처스에서 3D프린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그가 왜 3D프린터를 만들고 있는지는 다음 스텝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다음 스텝이 이달 중 나온다. 그는 3D프린터의 온라인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이달 중 서비스가 출시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강력한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
온라인플랫폼은 쉽게 말하면 3D프린터를 잘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3D프린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제품과 제조 가능한 품목 등을 올려놓으면 일반인들이 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적절한 대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3D프린터를 개인적으로 쓰기 위해 샀지만 남는 시간에 놀릴 필요가 뭐가 있나? 그 시간대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문을 받아서 대신 제품을 만들어주고 대가를 받으면 될 것이다.
자신의 3D프린터를 활용해 여러 가지 실험적인 제품을 만들어놓고 이를 판매하는 장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 플랫폼은 3D프린터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자, 그러면 이런 온라인플랫폼은 왜 만들까. 고산 대표는 제조업 혁명에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곧 상상도 못했던 제조업 혁명이 올 것이라 믿고 그것을 준비하고 있다. 3D프린터는 사실 아주 작은 출발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지고 사고방식이 바뀌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집에서 만들어 쓸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것.
그래서 그는 회사의 모토를 ‘Free People’s Creativity’라고 정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유롭게 하자는 것. 그래서 누구나 만들고 싶은 것을 마음껏 만들어볼 수 있게 하자는 것. 그 끝에는 그의 궁극의 꿈인 우주선이 있지 않을까.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픈 과학도의 집념이 여전히 실행중인 것은 아닐까.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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