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혁명이 오고 있다. 하루 이틀 정도 소요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배송이 언제부턴가 당일배송으로 바뀌었는데 이제는 1~2시간이면 오는 배송이 가능해진 시대다. 아마존은 한걸음 더 나가 배송시간 제로를 천명하고 나섰다. 드론을 띄운다는 둥, 주문을 하면 3D프린터로 고객 가까이에서 즉석에서 만들어준다는 둥, Drive Through 지점을 만든다는 둥, 다양한 방안이 나오고 있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가능할지 여부를 떠나서 얼마나 배송 분야가 난리길래 이 같은 엄청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경기가 침체해도 계속 늘어나고 환율이 요동치고 주식시장이 꼬꾸라져도 계속 성장하고 있는 산업. 바로 택배·물류산업이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 시장에서 한국의 한 작은 벤처기업이 발상의 전환으로 시장 혁신을 꾀하겠다며 나섰다. 한국의 스타트업 이백번 째 스토리 주인공은 파슬넷의 최원재 대표다.

30대 지사장을 꿈꾼 공학도

최원재 대표는 자신의 인생의 꿈을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렴풋하게나마 그렸다. 30대 외국계 기업 한국 지사장이 되는 것. 물론 일을 하면서 생긴 목표일 것이다.

인하대 기계공학과 85학번인 그는 지금 한국의 한국의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그 유명한 80년대 중반 학번들과 같은 세대다. 한국에서 벤처창업 붐을 일으킨 원조세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이들과 함께 생활도 했고, 같은 고민을 하면서 직장 생활을 했다. 다만 약간씩 서 있는 길목이 달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SK건설에 입사해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2년 남짓한 첫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는 엄청난 변화를 목도했다고 한다. “건설사니까, 설계 도면을 그렸죠. 입사할 때만 해도 제도판에 그렸는데 나중에 오토 CAD로 했고, 회사를 나오기 직전엔 워크스테이션에서 작업을 했죠.”

3D 워크스테이션에서 설계한다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었다. “제도판에서 설계를 하는 것과 3D 워크스테이션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은 뭐랄까, 뭔가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차원이 아니에요. 그건 완전히 세계관이 달라지는 거였어요.”

3D 워크스테이션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 세계관이 달라진다는 것. 무슨 뜻일까. 약간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위해 최 대표가 예를 들어줬다. “300분의 1짜리 도면을 설계한다고 가정해 보면, 내가 그린 설계 도면을 300배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작업이 잘 안되요. 그게 상상이 잘 안되거든요. 그런데 내가 300배 큰 거인이 돼서 아주 작은 물건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어요. 세계관이 달라진다는게 이런 겁니다.”

기술의 발전이 그에게 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IT(정보기술)의 세계에 깊이 빠져든다. “IT는 사실 효율화가 전부가 아니에요.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게 훨씬 중요한 거죠.”

1995년 삼성SDS에 입사한 그. 3년 후에는 SAS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만 서른아홉이 되던 해에 목표를 이루게 된다. 호주기업 엑스트랄리스의 한국 지사장이 된 것이다. 목표를 이루고 나서 그는 극도로 허탈했다. 크게 실망도 하게 된다. 지사장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되고 나서 알았기 때문이었다. “초반에 몇 달 지나고 나니까 별로 할 게 없더라구요. 제가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달랐죠. 아 나가서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1995년 삼성SDS로 가면서 IT에 대해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한 지 12년만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꼬박 14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는 첫 창업에 나섰다. 2007. 그의 나이 이미 마흔이 넘어 있을 때였다.

<물류와 배송 혁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최원재 대표.>

40대 늦깎이 창업

2007년 그는 룩타운이라는 영상 편집 솔루션 회사를 세웠다. 사람들이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당시 싸이월드 등에 올려놓던 시기였다. 룩타운은 디지털 이미지를 사용자가 스스로 편집해 책으로 만들어나 출력해서 보관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의 유행을 타고 사진을 출력해서 보려는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해주는 것이 1차 목표. 하지만 출력해서 보려는 사람들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아니 이 회사의 기술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기에 선택받지 못했다고나 할까. 첫 창업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첫 창업의 실패가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그는 룩타운에서 축적한 영상 편집 솔루션을 이용해 명함 사업에 뛰어들었다. 회사 이름은 네이미. 명함을 기반으로 한 링크트인과 같은 서비스였다. 종이명함을 기반으로 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고안했다. 직장이나 직책, 직급이 변경되면 상대방이 바로 알 수 있게 해주는 기능도 있었고 직장인들간에 명함을 주고받으면 이를 기반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였다.

수익원이 종이명함을 주문하면 만들어주는 그런 거였어요. 수익원이 명함 제작인 셈이었죠. 어쨌든 그러다보니 명함 만드는 분야도 공부를 좀 했어요. 그런데 이게 결국 인쇄 시장이더라구요.

그는 인쇄업이 세 가지 분야로 나뉘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출판인쇄, 기업인쇄, 포장인쇄가 그것이다. 출판인쇄는 책과 신문 등이 해당되고, 기업인쇄는 카달로그나 달력 등이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포장인쇄는 각종 포장을 비롯해 택배용 박스 생산 등도 포괄하고 있는 시장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재미있는 걸 발견한다. “사실 포장인쇄는 가장 보잘것없는 시장 취급을 받아요. 그런데 세 가지 시장 중 이 시장만 성장을 하더라구요.”

그는 원인을 파고들었다. 왜 하향세를 보이는 인쇄산업에서 포장인쇄 시장만 꾸준하게 성장을 하는 걸까. 원인은 택배 시장의 성장세 때문이었다. 택배를 많이 보내니까 관련 시장이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

사실 처음엔 눈을 의심할 정도였어요. 이게 사실일까하고 생각할 정도로 경기침체나 외부변수에 상관없이 택배 시장이 계속 성장하더라구요. 지표로 다 나와요.”

네이미에 있으면서 택배 시장에 완전 몰입하게 된 최원재 대표. 택배 분야가 왜 성장하는지 자료도 찾아보고, 기사도 읽어보면서 이건 될 수밖에 없는 시장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모바일쇼핑의 급성장이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 게다가 이제 모든 것은 집이나 사무실 등 실내에서 주문해서 받아보는 것을 선호하고 힘들게 돌아다니는 것을 귀챦아하는 풍조 때문에 모바일쇼핑을 필두로 한 온라인 배송주문이 갈수록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택배 물량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관련 산업이 발달하는 것은 자명했다. 여기서 그는 택배 등 포장인쇄에서 택배와 배송 자체로 눈을 돌렸다.

그는 택배업이 성장과 함께 변화가 필연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엄청나게 증가하는 택배업이 여전히 11 대면배송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는 것. 언제까지 이것이 가능할까 생각해봤을 때 곧 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왜 꼭 만나서 물건을 받아야 하나?

그가 던진 질문은 이거였다.

왜 택배에서 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물건을 전달받아야 할까.”

물론 그가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이미 많은 무인택배보관함을 만드는 락커업체들이 난립해 있었다. 같은 문제의식을 일찌감치 갖고 택배업체들이 물건을 락커에 넣어 놓으면 나중에 사람이 찾아가는 구조가 기존의 락커방식이었다. 그는 이것이 틈새시장에 불과하다고 봤다. 택배 시장의 변화 관련, 근본적인 해결 방식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락커를 만들어봤자 택배 물건의 종류에 따라서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물건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무한정 크게만 만들 수도 없구요. 물량이 너무 늘어나니까 무인택배보관함 때문에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지만, 그래도 근본적인 해결은 안되는거죠. ”

그럼 근본적인 해결책은 뭘까. 일단 사람이 직접 물건을 가져다줄 필요는 없다는 건 기본. 하지만 락커만 갖고는 해결이 안된다면?

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택배 시장의 현황은 어떨까. 200554000만 건이었던 연간 택배물량은 올해 18억건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루 택배 물량으로 따지면 147만건에서 500만건으로 늘었다는 것. 물론 평일이냐, 주말이냐, 명절이냐 등에 따라 물량은 크게 출렁인다. 명절 때의 경우 하루 1000만건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런데 택배 기사는 같은 기간, 10년 동안 21000명에서 35000명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물량은 3배가 넘게 늘었는데 이것을 전달할 사람은 채 2배가 늘지 않았다. 결국 택배 기사 1인당 배송 물량은 85건에서 170건으로 증가했다. 혹사를 하면서 배송 관련 잡음이 많아질 수도 있고 배송이 안되는 물품이 늘어날 수도 있다.

최 대표는 락커도 아니고, 대면 배송도 아닌, 물류센터 혁신에서 답을 찾았다. 즉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공유형 배송사서함을 만들고 여기서 소비자들이 물건을 찾아가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곳은 락커와 다른 공간형태로 돼 있기 때문에 물건의 크기와 상관없이 보관이 가능하다. 11 대면배송이 아니기 때문에 배송기사가 고객을 만나러 여러차례 왔다갔다 하고 집에 사람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그 때문에 소비자들과 배송기사 모두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택배 전문업체와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그는 자신이 세운 가설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 하나를 더했다. 이 모든 것을 플랫폼화하는 것이었다. 즉 배송센터를 만드는 게 다가 아니라 이를 고객과 배송기사 모두 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고 물건이 사서함을 통해서 오가는 현황을 온라인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

이후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20127월 이같은 아이디어로 특허를 출원한 뒤 바로 다음달에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글로벌유망IT기업에 지원, 선정됐다. 처음엔 네이미 내부의 한 사업부로서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선 독립 법인으로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10, 세 번째 창업법인, 파슬넷을 설립했다. 소포나 꾸러미라는 뜻의 ParcelNet을 더한 이름. 그리고 11월엔 정부 지원을 받아 실리콘밸리에 가서 현지 VC(벤처캐피털)와 창업기업들을 만나기도 했다.

질을 바꾸는 양의 임계점을 돌파한 택배시장

파슬넷은 제가 창업해서 만든 회사가 아니에요. 만들어진 회사죠.”

그는 자신의 창업 과정을 설명하던 중 문득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한 것이 아닌, 그냥 일이 되려고 하는 것처럼 술술 진행됐다는 뜻이다. 처음 아이디어가 나온 뒤 3개월만에 특허출원하고 법인설립하고 사람들을 모아 사업을 시작했다. 때가 되면 비즈니스가 만들어지는 것. 그게 파슬넷이 하는 비즈니스였다. “큰 트렌드에 올라타면 그렇게 됩니다.” 될 일은 된다는 뜻이다.

그는 IT기업의 성장 히스토리에 대한 그만의 평도 곁들였다. “흔히들 IT 기업은 기술력이 있어야 성공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기술력도 중요하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트렌드를 따라가야 합니다. 비즈니스에는 질을 바꾸는 양의 임계점이라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어떤 트렌드가 생겨서 산업의 질적인 측면까지 변화시키는 양의 임계점이 있는데, 지금 택배시장은 그런 임계점을 지난 것 같습니다.”

임계점을 지난 택배시장은 이제 기존 택배업체들이 기존의 방식, Door to Door로 물건을 고객에게 직접 가져다주는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폭증한 상태다. 모바일 쇼핑이 대중화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파슬넷은 그래서 거점배송과 근거리 배송을 택했다. 그리고 이것을 모바일로 통합 관리하고 제어하고 확인하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배송기사는 배송기사용 앱으로, 소비자는 자신들을 위한 앱으로 배송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파슬넷은 미유박스라는 통합배송센터를 구축했다. 전국 3만여개에 달하는 아파트 단지 중 1%300개 단지에 일단 구축하는게 목표다. 현재 20개를 구축했다. 이 통합배송센터는 기존의 대면 배송, 고객의 방문확인 등이 모두 가능하다. 파슬넷은 CJ대한통운 등 주요 택배회사들과 제휴를 맺고 미유박스에 여러 택배회사들의 물건을 배송해 갖다 놓는다. 대면 배송을 원하는 소비자에게는 직접 물건을 가져다주고, 배송센터에 방문해 상품을 찾아가길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된다. 내 물건이 도착했는지, 고객이 물건을 찾아갔는지 등을 앱으로 다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그치면 혁신이라는 말을 쓰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파슬넷은 한걸음 더 나가 초단기 유통 상품을 위한 근거리 배송센터도 구축하고 있다. 중고물품을 사용자들끼리 배송센터나 미유박스를 통해 사고팔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 예정이다. 근거리 창고는 음식이나 빨리 처분해야 하는 물건을 거래하는 데 적합하다. 내가 쓰던 가방이나 보던 책 등을 미유박스에 넣어 놓고 앱에 등록을 하면 그걸 원하는 사람이 결제를 한 뒤 비밀번호를 열고 찾아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프라인 유통의 근거리 배송망을 장악, 택배업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파슬넷의 사업계획에서 맨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물건과 사람이 만나는 가장 행복한 방법의 제공자, 미유박스.’ 가장 편하게, 가장 행복하게 물건을 찾고 상품을 받게 해 준다면 그 서비스는 반드시 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슬넷은 그걸 알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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