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민간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가 나왔다. 프라이머 출범 당시 이를 이끈 멤버들은 권도균 이니시스 창업자, 이택경 다음 창업자, 이재웅 다음 창업자, 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 장병규 네오위즈 및 첫눈 창업자 등 쟁쟁한 인물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프라이머의 파트너에는 조금씩 변화가 생겼지만 권도균 이택경 두 사람은 변함없이 프라이머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최근 변화가 생겼다. 이택경 대표가 프라이머를 나와 매쉬업엔젤스라는 새로운 초기벤처투자 및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 5년 간의 프라이머 활동을 마치고 새출발을 한 이택경 대표를 만나 한국 스타트업의 현황과 투자 계획 등을 들었다.
▷프라이머와 매쉬업엔젤스를 병행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가봅니다.
“여전히 프라이머 팀의 멘토링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2기까지만 그렇게 하고 있죠. 프라이머는 이미 지금 3기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는데요, 저는 3기부터는 관여를 하지 않습니다.”
▷새롭게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프라이머를 하면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엔턴십 프로그램을 했지만 투입하는 자원에 비해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엔턴십 프로그램과 같은 것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그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쪽보다는 멘토링이 저에게 더 적합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너무 기초를, 강의에 기반해서 다수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중요한 포인트, 사업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창업가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을 지적해주고 해결할 방법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이러는 과정이 더 나에게도 맞고 시장에서도 필요로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런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시스템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던 거죠.”
▷오래전부터 구상을 해 온 일인가요.
“다음을 나왔을 때 2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벤처인들, 특히 초창기에 이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주는 것이었구요. 이 부분은 프라이머를 만들어서 5년 동안 해 오면서 많이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엔지니어들의 저변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2002년이던가,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대한민국에서 이공계의 위기가 왔다고. 왜냐하면 정말 우수한 개발자를 찾기 힘들어졌다는 느낌이 왔거든요.. 전자공학은 좀 낫지만 전산학과 쪽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봤습니다.
▷과에 따라 상황이 다른가 봅니다.
“사실 소프트웨어 쪽은 여전히 좋은 개발자가 많지 않습니다. 극소수인 좋은 개발자들은 정말 좋은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실력있는 개발자가 나오기 위해선 대학 시절부터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학쪽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일단 저변을 넓히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보려고 합니다. 모교인 연세대학교에 기부를 좀 했는데 그래서 제가 쓸 수 있는 방이 2개가 생깁니다. 이것을 전산학 관련 동아리방으로 개방할 생각이에요. 관심있는 학생들이 몰려와서 있을 곳도 생기고 여기서 서로 얘기도 하고 토론하고 프로그래밍도 해 보면서 저변이 확대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일단 이렇게 시작해보고 다른 방법도 차차 찾아볼까 합니다.”
▷매쉬업엔젤스는 프라이머와 어떻게 다른가요. 아니 다른 VC나 액셀러레이터, 엔젤투자자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요?
“매쉬업엔젤스는 상당히 오픈된, 플렉서블한 형태입니다. 법인도 아니고 투자조합도 결성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엔젤투자자들의 느슨한 네트워크라고 보면 됩니다. 대표 외에 파트너 한 명이 동의하면 투자가 진행되는거죠. 보통 투자조합을 결성해 투자를 결정하는 시스템에서는 만장일치로 하든 다수의 동의를 받아야 투자가 진행이 됩니다. 그런데 매쉬업엔젤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투자를 하기 싫은 엔젤투자자는 참가하지 않으면 되는 그런 방식입니다. 투자를 한 뒤에는 좀 더 밀착된 관계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엔젤투자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그냥 투자만 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도 연결해주고 여러 가지 조언도 해주고, 문제 해결 방식도 같이 고민하고 등등...저는 후자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다만 너무 초기단계의 기업가교육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 새롭게 매쉬업엔젤스를 시작한 거라고 이해해주세요.”
▷투자 대상 기업을 이제 찾아야 하는 건가요?
“아뇨, 벌써 포트폴리오를 27개 팀으로 구성해놨습니다. 버튼대리, 리멤버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프라이머때 클럽을 한 해 6-7개 팀을 운영했는데 매쉬업엔젤스에서는 보다 공격적으로 할 계획입니다. 최소한 올해 12개 정도, 많으면 15개 정도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멘토링 등을 비롯한 서포트에 80%를 쓰고 나머지 20% 정도는 과거 엔턴십과 같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스타트업을 도우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프라이머때부터 워낙 창업을 막 시작한, 그야말로 초창기 회사들을 많이 만나오셨는데, 요즘 분위기는 좀 어떤가요.
“창업은 올해, 내년 정도가 피크가 될 것 같습니다. 요즘엔 정말 창업자들이 많아서, 예전에는 제가 왠만하면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기획자는 넘쳐나지만 좋은 개발자는 많지 않습니다.
2010년 2차 벤처붐이 일어난 직후 흐름을 보면 처음에 대학생들 창업이 좀 있었고 네이버나 다음에서 일하다 나와서 창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다가 요즘에는 삼성이나 LG 다니다가 나와서 창업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컨설턴트 등 다양한 분야 출신의 창업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죠. 하지만 여전히 훌륭한 개발자 출신이 CEO가 돼서 직접 창업을 하려고 하는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이를 위한 기반을 만들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확실한 건, 버블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현재 한국의 창업붐은 2000년 당시와 달리 거품은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점입니다. 물론 일부에서 밸류에이션에 좀 과장이 있는 경우는 있지만, 그래도 15년전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그런데 중국 창업시장은 확실히 우리와 달리 거품이 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게 우리에게 얼마나,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입니다.”
▷핀테크 얘기를 많이 하는데, 실제 창업 사례를 좀 보셨나요?
“지금 사실 국내에서 일고 있는 핀테크 열풍에 대해선 전 좀 회의적입니다. 규제 일변도인 금융위가 중심이 돼서 핀테크를 추진해봤자 일이 되기 힘들다고 봅니다.
사실 핀테크가 문제가 아니라 공인인증서는 정말 완전히 사라지는데 앞으로 10년쯤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외국에 나가서 일을 할 때 공인인증서를 설명해야 할 일이 있으면 사실 좀 너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거 빨리 없어져야 하는데 도무지 진척이 안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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