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인터넷은 삶을 포기할 뻔 했던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습니다.인터넷을 통해 다시 태어난 만큼 이제는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임현수 위인터랙티브 사장은 1급 지체·언어장애를 가진 중증 장애인이다.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힘겨웠다. 하지만 현재 그는 직원 11명을 거느린 벤처기업의 어엿한 CEO(최고경영자)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 사람 사연이 보통 많은 게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그가 성장하면서 겪은 어려움과 이를 극복한 불굴의 의지를 어찌 사람의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진작부터 그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주저하고 있었다. ‘우선 만나보고 그날 받은 느낌과 공감의 분위기를 그냥 풀어내도록 하자’ 하는 생각에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장애를 극복한 벤처기업인라는 차원에서 만난 것은 아니었다. 여기 ‘한국의 스타트업’ 코너에서 찾고 있는 불굴의 기업가 정신, 그리고 새로운 시대로의 모험은 어떤 역경이나 환경 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장애를 극복했다는 것을 뛰어넘어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그를 상암동 위인터랙티브 사무실에서 만났다.


◆생후 6개월만에 찾아온 장애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뇌성마비에 걸리면서 그는 중증 장애인이 됐다. 정작 본인이 이를 의식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장애에도 불구하고 또래들을 뛰어넘는 총명함을 보인(이 부분은 그가 아니라 이날 인터뷰를 돕기 위해 동행한 김재갑 이사가 전한 말이었다. 김 이사는 임 사장의 대학교 동창이고 학교에서는 김 이사가 선배였지만 임현수 사장과 뜻을 같이해 함께 창업하게 됐다.) ‘어린이 임현수’는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얼마 안 있어 장애 아동을 위한 학교로 옮기게 됐다.
 그런데 몸은 불편해도 머리는 남달랐던 그에게 장애 학교 수업은 도저히 맞지가 않았다. 결국 그의 고집으로 그는 일반 학교로 다시 옮겼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의 장애가 문제가 됐다. 말만 좀 더듬어도 놀림당하기 십상인 철없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존재가 부각될 수 밖에 없다.
“정말 철저하게 고립됐습니다. 어찌보면 그냥 얌전히 왕따만 당하는 것을 감사해야할 지도 모를 정도였죠. 정말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살고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삶을 포기하는 것 마저도 저에겐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더 이상 자세히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상황이 이해가 갔다.

 힘든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3이 됐을 때 그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1995년 당시 국내에 막 도입된 인터넷을 접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서 임현수 사장은 일반 사람과 똑 같았다. 열개의 손가락 중 한 개의 손가락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삶의 의욕을 찾으면서 학교 성적도 급격하게 올랐다.

 “처음에는 책을 보고 베이직으로 간단한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만 제가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이때부터 대학을 가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죠.”

◆인터넷에서 삶과 꿈을 찾다
독학으로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터득한 그는 인터넷 세상에서 펄펄 날아다녔다.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홈페이지 제작 방법을 알려주는 웹사이트를 열기에 이르렀다.“당시 개인이 만든 사이트인데 하루 5만여명이 접속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어요.사이트가 유명해지다 보니 라이코스가 관련 홈페이지 제작 관련 콘텐츠를 공급해 달라고 해서 졸지에 사업자가 됐습니다.”

 임현수라는 이름이 인터넷 업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고등학생이었지만 그가 홈페이지 제작에서 보여준 성과는 인터넷 업체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지금도 홈페이지 제작을 외주에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이와 관련된 업을 일찌감치 감각적으로 터득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000년엔 청와대와 제 2 건국위원회가 선정하는 신지식인으로도 뽑혔다. 막연하게 컴퓨터가 좋아서 몰두했던 그가 창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2001년 성균관대에 입학해 컴퓨터공학과 경영학을 복수전공한 그는 졸업을 앞두고 취직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그는 창업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우선 인터넷 분야의 비즈니스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2005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입사해 인터넷에 대한 실무를 배웠다.

◆상금 5000만원으로 창업
“사장님은 경진대회의 제왕이에요”
임현수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위인터랙티브 직원이 지나치듯 불쑥 던지고 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금껏 각종 경진대회, 공모전 등에서 상을 받았다. 얼추 잡아 각종 컴퓨터 경진대회와 벤처창업 경진대회에서 20여 차례 수상했고 정보통신부 장관상도 지금까지 네 번이나 받았다. 그의 사무실 벽 한쪽에는 그가 받은 경진대회 상장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2008년에는 창업경진대회에 출전해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개발해 대상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3년전인데 그때 벌써 지금의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를 아이템으로 대회에 출전했어요.사람들이 깜짝 놀랐죠.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걸로 창업을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여간 아이디어 하나는 참 많다. 옆에서 지켜보전 김재갑 이사도 한 마디 거든다. “대학때부터 10여년간 계속 지켜봤는데 정말 신기할 정도입니다.어디 가서 상도 잘 받고, 재미있는 생각도 많이 해요.”

 창업대회 대상으로 받은 상금 5000만원을 갖고 임 사장은 2008년 위인터랙티브를 창업했다. 지금 와서 모바일 메신저를 창업 아이템으로 할 걸 하고 생각하지만 당시엔 사실 시장 상황이 그에 적합하지 않았다. 너무 이른 시기였기에 꼭 성공했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인생이나 창업이나 가정은 무의미한 듯 하다. 어쨋든 김재갑 이사와 함께 창업을 했지만 한동안 창업 아이템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검색 기술이나 소셜네트워크를 연결한 무엇을 계속 고민했지만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는 것과 이를 구체적으로 비즈니스화한다는 것은 확실히 조금 다른 문제였다.한동안 생각한 대로 사업이 풀리지 않으면서 어려움도 겪었다.

 “그동안 시장의 변화 등으로 인해 개발만 해놓고 오픈하지도 못한 서비스가 두 개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실패의 과정 속에서 자신감을 상실해 좌절에 빠지기도 했죠. 다행히 그때마다 구성원들이 응원을 해줬고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를 극복해 ‘1000만명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만들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청년기업인 돕는 벤처사업가 되겠다
올들어 위인터랙티브는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현재 임현수 사장은 SNS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검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SNS의 명성과 평판이 기본이 되기 때문에 검색에서 중요한 문서 자체의 신뢰도 뿐 아니라 문서 작성자의 신뢰도 역시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다. 이 회사가 개발중인 소셜검색 서비스의 이름은 ‘퀵플’.응답이 빠르다는 뜻이다. 빠르면 올 연말,늦어도 내년 초에는 출시될 예정이다. 우선 웹 서비스로 내놓고 바로 이어 모바일 서비스로도 출시할 계획이다. 모바일로 만들면 게임 등을 접목해 다양한 재미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지체장애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활발하게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요즘 취업 등의 문제로 힘겨워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는 “그런 심정에 십분 공감한다”면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식산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존 산업에 대한 일자리는 줄었지만 새로운 산업도 많이 생겨나고 있고 여기서 파생된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회사에 취직하는 것에만 목을 매고 있을 것이 아니라 좀더 큰 시야로 세상을 보면 세상에는 할 일도 많고 기회도 많습니다.‘청년들이여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임 사장은 실제로 청년들의 도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그는 “나의 몸은 불편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세상에는 장애가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 왔다”며 “초기창업자들을 위한 벤처캐피털을 만들고 단지 돈만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멘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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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타트업의 모범 사례"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는 알짜배기 스타트업이 궁금하다구요? 선데이토즈에 물어보세요"

선데이토즈에 대해 벤처나 IT업계에서 하는 말들이다.창업한 지 고작 2년반 정도 밖에 안 된 이 회사가 어떻길래 스타트업의 모범 사례로 거론되고 있을까.

◆스타트업에 최적화된 창업자들과 그 조직

선데이토즈의 창업자는 이정웅,임현수,박찬석 등 3명.세 명은 명지대 컴퓨터공학과 00학번 동기생들이다.이정웅 대표는 트랙나인,신텍정보시스템,NHN 등을 거쳤다.NHN에서 4년간 게임 개발자로 일했다.임현수 기술이사(CTO)는 고슴도치플러스,엔씨소프트 등에서 실력을 쌓아왔다.박찬석 운영이사는 T3에서 오디션을 개발했던 인물이다.

 역할은 나뉘어져 있지만 세 사람은 공통적으로 엔지니어다.경영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그들은 조직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했고 타이트하게 운영했다.회사를 앞장서서 포장하기보다는 제대로된 제품을 만드는데 주력했다.당연한 일 같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스타트업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너 자신을 알라

이정웅 대표는 이제 갓 서른의 젊은 사장이지만 서두르거나,쉽게 흥분하거나,과욕을 부리지 않는 스타일이다.

창업시 그는 자신을 이렇게 규정했다고 한다."게임 개발은 많이 해봤지만,창업 전문가는 아니다.그러니깐 내가 모르는 것은 하지 말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전념하자."(이 대표는 한게임에 있던 시절 1년에 50개씩 플래시 게임을 만들 정도로 많은 경험을 쌓았다.작은 재미난 게임들을 끊임없이 계속 만드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는 작은 게임을 빨리 만드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그래서 작은 게임을 오픈플랫폼과 결합해서 승부를 보자고 생각했다."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오픈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우리가 열심히 사람을 모을 필요 없이 오픈 플랫폼에서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게임을 서비스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죠"

◆선데이토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데이토즈의 첫 작품은 실패하고 말았다.내가 이정웅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겨울,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하는 비즈스파크 행사장이었다.그는 그때 '친구에게 게임을 만들어서 선물하자'는 컨셉으로, 즉 소셜네트워크와 UCC가 결합된 형태의 게임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이 소셜RPG게임은 페이스북을 통해 서비스를 하기도 했었다.하지만 첫번째 시도는 무참하게 실패했다.회사 문을 닫을 뻔한 위기였다.

그는 낙담했을까? 물론 크게 실망했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첫 실패를 겪고 나서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를 돌아봤습니다.그랬더니 우리가 부족한 게 참 많더라구요."

뭐가 부족했을까? " 창업자들이 모두 개발자 출신이라는게 일단 약점이었습니다.제품을 만들 줄은 알지만 그것을 어떻게 마케팅할지,그리고 이후에 어떻게 고객 관리를 하고 서비스를 해 나갈지에 대해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사실 소셜게임은 개발 이후의 단계가 중요한데 말입니다.너무 큰 게임부터 시작한 것도 문제였습니다.처음부터 너무 거창하게 페이스북에 없는 것을 만들자라고 한게 무리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는 '선데이토즈 전략'이라는 것을 2009년 상반기에 수립했다.첫 실패의 교훈이 반영된 게임이 '애니팡'과 '사천성'이다.이 게임들은 2009년 10월 오픈한 네이트 앱스토어에서 대히트를 쳤다.


◆소셜 게임은 일시적 유행인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모든 산업은 저마다의 라이프 사이클이란 게 있다.IT 분야에선 그 사이클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다.소셜게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이 대표는 "최근의 시장 상황을 보면 온라인게임이 과거 10년동안에 이룬 성과를 소셜게임은 3년 만에 이뤄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온라인게임에서 나타났던 카니발라이제이션(신작 게임이 나오면 구 버전의 게임 유저를 잠식하는 것) 효과가 소셜게임에서는 거의 없는 것도 발견했습니다.성장 초기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없던 유저를 새로 창출하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소셜게임은 오래갈 것 같다는 뜻인가? 그는 부가가치가 어디에서 형성되서 어디로 가는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예전에 웹2.0 얘기가 나왔을 때 그 효과나 지속성에 대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왜냐하면 웹2.0이란 것은 상황을 지칭하는 용어로서는 적절하지만 산업적으로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봤습니다.웹2.0의 성과물이라는 것은 결국 M&A에 의해 촉발되고 다시 재투자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반면 지금 소셜게임 업계를 보면 확연히 구별됩니다.소셜게임의 성과들은 다시 소셜게임에 투자되고 있습니다.웹2.0보다는 소셜게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훨씬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스타트업,그 이후를 준비할 때

이 대표는 3개월 주기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소셜게임은 트렌드가 중요하고 사람들의 수요를 잘 읽어야 하기 때문에 개발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3개월 안에 개발을 끝내고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셜 게임이 아니더라도 기존 다른 게임 장르에서도 개발 기간이 길어질수록 소비자의 인식과 괴리가 생긴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이런 생각은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지금 선데이토즈가 걱정하는 것은 스타트업 이후다.2년반이 지난 선데이토즈는 이제 매출도 발생하고 수익도 기대가 되고 있는, 스타트업으로서는 견실한 단계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2008년초 이 대표 어머니가 운영하던 학원의 방 한 칸을 빌려서 3명이서 시작한 회사가 이제 직원수만 10명에 이르고 분당에 자기 사무실을 가진 회사가 됐다.마케팅 담당자도 채용하고 3개월마다 하나씩 게임도 출시한다.그러면 그 다음은?

이정웅 대표는 플레이돔의 '시티오브원더'나 최근 징가가 출시한 '프런티어빌'을 보면서 소셜게임의 다음 세대가 이미 시작됐다고 판단하고 있다.마치 온라인게임이 성장해온 것처럼 소셜게임도 이제 대형화 대자본화 시대가 개막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형화와 함께 탈플랫폼화도 시작될 것으로 내다봤다.완전하게 페이스북같은 플랫폼을 벗어난다기보다는 우선 플랫폼 의존도를 줄이는 쪽으로 갈 것이라는 예상이다.그를 위해 징가가 시도하는 offering 형태의 광고 등을 주목하고 있다.

이 대표는 "소셜게임은 유저의 지불 비율은 온라인게임보다 낮지만 1인당 지불 금액이 더 크고 파이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시장"이라며 "지금 부각되는 미국,일본 뿐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에서도 매출 5조원짜리 소셜게임 기업이 3-4년 안에 나올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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