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정지웅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소셜커머스 사업을 하고 있었다. 공동구매 경험을 한 곳에 모은 ‘토스토’라는 서비스를 내놓기 직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뒤로 4년하고도 7개월이 지났다. 이 기간 중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명품 소셜커머스 클럽베닛으로 관련업계 1위에 올랐고 사업을 성공적으로 매각하기도 했다. M&A된 회사에 들어가 잠시 일하기도 했지만 결국 또 다른 창업을 위해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이제 광야에서 다시 출발했다. 바이탈힌트를 창업해 돌아온 정지웅 대표를 만났다.
◆딱 6개월 뒤만 생각하니 길이 보이더라
2010년. 당시엔 소셜커머스가 한창 붐이었다. 티켓몬스터의 급격한 성장에 고무된 스타트업들이 너도나도 소셜커머스란 신분야에 뛰어들었다. 정지웅 대표는 그런 소셜커머스 열풍 속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가 구상해 출시했던 토스토(Tosto)는 일종의 공동구매포털이었다. 당시 소셜커머스들이 특정 상품에 대해 한정된 시간에 싸게 구매할 수 있는 혜택을 주는 방식인데 비해 토스토는 이미 활발하게 공동구매를 하고 있는 유명 카페나 파워 블로그 등을 한 곳에 모으는 공동구매 포털을 지향했다. 블로거들의 마켓플레이스인 셈이었다.
이미 블로그 등을 통해 공동구매를 활발하게 하고 있던 이들을 모았기 때문에 토스토는 초기 안정적인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성장이 신통치 않았다. 거의 정체돼 있다시피한 서비스를 보면서 그는 고민에 휩싸였다. “매출이 하루에 1000만원도 나고 그랬지만 성장을 못 했어요.”
시기가 문제였다. 상당수 블로그의 상업성 때문에 유저들이 블로그를 떠나는 시점에 토스토를 오픈한 것. 때마침 국세청이 블로그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 것도 타격이 컸다. “토스토에 앞서 수공예제품을 거래하는 원포미라는 서비스를 했었는데 그것도 잘 안 됐었거든요. 계속 잘 안되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이유가 뭘까.”
원포미는 너무 빨리 시작햇고, 토스토는 너무 늦게 시작한 게 문제였다. 그게 그의 결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는 커머스 분야를 다시 돌아봤다. 막 명품 아울렛이 생겨나고 있는게 보였다. 6개월후에는 명품에 대한 소셜커머스의 수요가 엄청나게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사실 제가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이미 명품을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사이트들이 꽤 있었어요. 후발주자로 들어간거죠. 하지만 시장이 아직 미성숙해 있어서 승산이 있다고 봤어요.”
그가 볼 때 다른 명품판매 사이트들은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명품 재고를 사서 싸게 파는 방법이었다. 명품 소셜커머스 클럽베닛을 오픈하기 전 그는 쇼핑업계 사람들을 두루 만나고 다녔다. 그리고 한국 현실에 맞는 서비스를 기획했다. “우선 재고없이 가기로 했어요. 오프라인 창고를 두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운영해서 효율성을 높이고 재고를 쌓아두지 않았기 때문에 자금 수요도 적었죠.”
광고도 차별화했다. 외주를 주지 않고 광고를 직접 운영했다고 한다.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 광고를 집행하면서 실시간으로 고객의 반응을 체크했고 고객의 반응에 따라 상품 구성을 수시로 바꿨다.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오늘의 주력 상품으로 원래 프라다를 밀었는데 오늘 루이뷔통이 반응이 더 좋다. 이런 결론이 나오면 바로 제품을 교체하는 거죠. 광고를 집행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바로 알 수 있거든요.”
토스토와 원포미의 실패를 통해서 그는 고객의 반응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 배움을 클럽베닛에서 그대로 실천한 게 성공의 비결이라면 비결. 2012년 클럽베닛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업계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때쯤 싱가포르 소재의 리본즈라는 벤처기업에서 인수 타진이 왔다. 한국에서 리본즈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명품커머스를 하고 있던 이 업체는 아예 클럽베닛을 인수해 한국 사업을 본격화하기로 한 것이다. 지분을 매각하고 리본즈코리아로 들어가 일을 같이 했다. 첫 사업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M&A한 셈이다.
◆Exit을 한 뒤 방황이 시작됐다
사업을 하면서 너무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매각을 하고 나면 좀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사업을 그만두고 나서 방황이 시작됐다. 갑자기 인생의 방향성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원래 저는 제프 베조스같은 기업가가 되는게 꿈이었어요. 훌륭한 기업가들을 롤모델로 삼고 지금까지 살아왔죠. 그런데 막상 창업해서 Exit을 경험하고 나니 인생의 목표가 좀 달라졌다는 걸 깨달은거죠. 그런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나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이런 형이상학적인 고민이 그때부터 시작됐다. 회사를 계속 다녀야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가 들었다. 내가 정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창업 선배들의 조언이 도움이 됐다. “30년 후의 모습을 먼저 그리면 10년 후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고, 10년 후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3년 후 무엇을 해야 할지가 나올 거라고 하더군요. 3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고 1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니 내일 뭘 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구요. 그렇게 했더니 정말 알겠더라구요.”
“그래서, 어떤 결론을 내렸나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사회를 해킹하는 사람이 되자? 표현이 좀 이상한가요? 저는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는데 기술을 기반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오프라인의 삶, 그런 영역에 공헌을 하고 싶은 거에요. 아주 쉽게 말하면 전통산업을 IT로 바꾸는 거라고도 할 수 있죠.”
결국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3년간 있기로 했던 조건을 지키지 못했기에 얼마간의 혜택을 포기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새롭게 출발해 뭔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좋았다.
어떤 아이템으로 시작을 할까. 골똘히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게 아니다. 계기는 우연처럼 왔다. “아버지께서 고지혈증으로 쓰러지셔서 간호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이 병이 먹는 걸 정말 잘 관리해야 했는데, 특히 짜게 먹으면 안되거든요. 약으로 낫는 병이 아니에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찾는 정보가 잘못된 게 너무 많은 거에요. 이거 안되겠다 싶었죠. 거기서 창업이 시작됐어요.”
◆새로운 시작, 또 하나의 시행착오
그는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지혈증과 관련된 몸에 좋은 음식 정보를 알려주듯이 음식의 영양 성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준비한 것이다.
“처음엔 영양정보 사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정말 유용하게 쓰면 모여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수익모델도 생길 거라고 판단했구요.”
회사명은 바이탈힌트(Vital Hint)라고 지었다. 서비스명도 Hint. 우선 정확한 정보에 초점을 맞췄다. 음식 영양 사전이 목표였다. 방대한 작업이었고 이를 위해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았다.그런데 서비스를 하다보니 사람들의 반응이 그가 생각했던 것과 좀 달랐다.
“이런 음식에 이렇게 좋은 영양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만들 수 있는거냐? 이런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아니, 어떻게 만들면 좋은지 알 수가 없는데 이런 정보가 무슨 소용이 있냐. 이런 지적도 있었구요.”
그리고 사람들이 영양이나 건강만 찾지 않는다는 것도 서비스를 해보고 알게 됐다고 한다. “좋은 정보를 제공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게 꼭 그렇진 않더라구요. 사람들이 음식에서 기대하는 가장 큰 가치는 맛이더군요. 그 다음에 건강을 찾아요. 그러니까 맛있는 음식 중에서 건강한 음식을 찾는 거죠. 그걸 몰랐어요.”
서비스는 이래서 어렵다. 좋은 서비스를 만든다고 되는게 아니다. 사람들이 찾는 서비스가 되야 한다. 첫 사업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그는 영리한 변화를 꾀했다. 흔히 피봇이라고 한다. 영양 정보는 Hint 1.0. 그러면 사람들이 찾는 음식 정보는 Hint 2.0으로 하면 어떨까.
피봇을 할 때는 시장의 흐름을 유심히 봐야 한다. “첫 창업때 느낀 거죠. 너무 일찍 시장에 진입해도, 너무 늦게 진입해도 힘들다는 걸요. 사람들이 음식을 해먹는 것에 슬슬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TV에서 음식 해먹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고. 되겠다 싶었어요.”
◆이번엔 음식이다!
그래서 그의 두 번째 창업 아이템은 시행착오를 거쳐 음식으로 확정됐다. 음식을 해먹는 남녀라는 뜻의 ‘해먹남녀’로 서비스명도 확정했다.
맛집 정보 못지 않게 요즘 관심있는 분야는 직접 해 먹는 음식. 냉장고를 부탁해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도 1인 가구의 증가와 혼자 먹는 음식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남녀노소 구분없이 누구나 간단하게 음식을 해먹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줄었고 건강을 중시하면서 무작정 밖에서 사먹는 음식보다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그러면서도 뭔가 독특하게 해 먹는 음식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
“‘냉장고를 부탁해’ PD 인터뷰를 봤는데, 인상적인 부분이 있더군요. ‘만드는 데 15분 이상 걸리는 요리는 안된다’는 거였어요. 사람들이 그런 요리는 보질 않는다는 거죠. 심플한테 독특하고 몸에 좋고 그런 음식을 찾는 추세입니다.”
시장의 트렌드는 이런데 마침 제대로된 서비스는 없다는 게 그의 판단. 2013년 네이버 키친이 벤처기업 상생 차원에서 폐지되면서 그나마 있던 서비스가 사라졌고 이런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커지고 있다.
요리에 대해서만큼은 네이버를 능가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 수많은 요리의 레시피 재료를 분석해 음식명 뿐 아니라 재료로도 검색이 가능하게 만든다. 시간대별, 난이도별 검색도 된다. 냉장고를 열었더니 재료가 돼지고기와 고추장밖에 없다고 하자. 이런 재료를 입력하면 한정된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 리스트가 뜬다. 음식명, 재료, 난이도 등으로 레시피 검색이 가능한 최초의 요리 검색 서비스가 되겠다는 것이다.
자 그럼 이런 요리 검색을 하기 위한 데이터가 중요한데, 이건 어디서 가져올까. “요리 블로거들과 제휴을 맺었어요. 한 사람당 500개 정도의 레시피가 등록돼 있더군요. 100명과 제휴를 하면 5만개의 레시피가 등록되는 셈이죠.”
요리 블로거들이 기존에 올린 글이 해먹남녀에 맞게 재구성돼 편집된다. 모바일 버전에서는 스마트폰 환경에서 보기 편하게 화면이 재구성된다. 스크롤 방식이 아니라 화면을 넘겨가면서 요리 과정을 보고 따라할 수 있게 한 것. 이와 같은 패턴 알고리즘을 만드는 게 개발의 주요 과정이었다.
해먹남녀는 다음주 중 오픈할 예정이다. 우선 웹으로 나오고 그 다음에 앱으로도 출시된다. 해먹남녀 서비스 추이를 보면서 투자 유치도 추진할 계획. “다시 창업을 하니까, 그런 느낌 아시나요. 심장이 쫄깃쫄깃하다는 느낌. 정말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지나고보면 실패하는 과정이 곧 성공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실패할 때 배우는 게 정말 많았죠. 다시 창업을 하니 행복합니다.”
by won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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